N23015

언니네 이발관과 이석원 작가님을 좋아한다. 북플에서 자주 썼었는데, 특히 언니네 이발관을 너무 많이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 언니네 이발관이 처음 데뷔앨범을 냈을 때부터 좋아했다.


2집은 더 좋았다. ‘유리‘랑 ‘어제만난 슈팅스타‘는 아직도 자주 듣는다. 그리고 ‘너의 비밀의 화원‘은 힘들때마다 찾아 듣는다.


3집도 좋았다. ‘헤븐‘의 키보드, 힘들었던 2002년을 떠오르게 하는 ‘2002년의 시간들‘ 너무나 아련한 ‘언젠가 이발관‘ 까지 명곡들이 다수 실려 있다.


5집인 ‘가장 보통의 존재‘는 뭐 공인된 명반이니 생략하기로 하고...


마지막 앨범인 6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이다. 가장 힘든 시절에 들어서 그런지, 나에게는 5집 보다도 6집이 더 좋았다. 6집만 들으면 힘들었던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면 4집은...사실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2집에도 실려있지만 4집에도 실려있는 곡인 ‘꿈의 팝송‘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이지만, 다른 곡들은 그렇게 손이 잘 안가더라. 그 4집 앨범의 타이틀이 바로 이번에 이석원 작가님이 낸 책과 같은 제목인 <순간을 믿어요> 다.


이번에 이석원 작가님이 하필 신간의 제목을 <순간을 믿어요>로 하다니 나에게 있어서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걸까?


이 책을 읽다보면 이석원 작가님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띠지에도 그렇게 쓰여있고, 일단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구성이 아주 비슷하다. 그래서 읽는 재미는 확실하다. 이석원 작가님 특유의 문체와 특이한 내용, 다음 페이지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구성까지 여전히 좋다.


하지만...전반적인 내용이 너무 따듯하고 착해서(?) 그런지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좀 다크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막 강추는 못하겠지만, 이석원 작가님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국 문학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글 중간중간에 있는 작가님 특유의 문장은 너무 와닿았다.

˝평생을 지고 또 지고 지겹게 져서
이제는 오직 자기 자신과의 승부밖엔
남지 않은 어느 보통 사람의 이야기.˝

˝사랑이란 둘이 비슷하게 시작할 수는 있어도
동시에 끝낼 수는 없는 법.
그게 이 행위의 문제라면 가장 큰 문제다.˝

˝예민한 사람의 머릿속은 좀처럼
마음의 평화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신경 쓸 거리를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갑자기 찾아온 만큼
또 불쑥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까 봐.˝




이 책에 실린 이야기가 실제인지, 실제를 가미한 허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끝이 해피엔딩이기를 바래본다.


ps. 작품의 중간에 알라딘을 까는(?) 문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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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4-03 21: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니네이발관 인생의 별이랑 나를 잊었나요 좋아해요ㅎㅎㅎ그런데 이상하게 이석원 글은 안 좋아해요 노래가 더 좋음 밴드 왜 그만뒀어 하고요…ㅋㅋ새파랑님 찐팬심 알라딘 이웃 중에 모르는 사람 없을 것 같아요 ㅋㅋㅋ알라딘 까는 문장 궁금한데 옮겨주시지ㅋㅋㅋ(제목에 밤 들어가는 책 표지에 진짜로 먹는 밤 그려놓고 싶어했다는 거 보고 아…난 이석원 못 읽어 새파랑님은 못 잃지만 난 못 읽어…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04-03 22:30   좋아요 2 | URL
인생의 별이랑 나를 잊었나요도 너무좋죠~! 제 마음은 브로콜리 보다는 이발관이 조금더~!! 이발관 해체할때 너무 슬펐습니다 ㅋ

열반인님 덕분에 다시 책을 찾아보니

˝사람들은 넷플릭스 등 더 많은 재미있는 것들을 보느라 그런지 안 그래도 외면하던 책을 더욱 보지 않았고, 그나마 남은 독자들도 기업화된 중고 서점들이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었다. 중고 책은 백만 권이 팔려도 작가와 출판사에 겐 단 일 원도 돌아가지 않는다.˝ 요렇게 써있더라구요. 이거 알라딘 말하는거 아닌가요? ㅋ

반유행열반인 2023-04-03 22:55   좋아요 1 | URL
아 이거 저 같이 중고책 좋아하는 그지 독자 까는 건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시 나랑 이석원 안 맞네! 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3-04-03 2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석원 작가는 잘 몰라요.
함 찾아봐야겠네요.
알라딘에 대한 얘기 궁금해요.^^;;

새파랑 2023-04-03 22:33   좋아요 2 | URL
위에 댓글로 썼는데 알라딘 말하는거 같았습니다 ㅋ 아닐수도 있지만~!! 이석원작가님 그래도 인기 많은 작가님이십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보통의 존재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음악도 엄청 좋아요 ^^

은하수 2023-04-03 2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래도 책도 모두 너무 좋아합니다.~~
너무 반갑네요^^

새파랑 2023-04-04 06:42   좋아요 2 | URL
은하수님도 좋아하시는군요~!! 반갑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계속 읽을수 있다는건 기쁜일인거 같아요 ^^

거리의화가 2023-04-04 0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6집을 가장 좋아해요. 언니네 이발관 음반들을 모두 들은 것은 아니지만^^; 6집 들을 때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ㅎㅎㅎ
이제는 가수가 아니라 작가로 자리잡으신 것 같아 추억이 되었네요. 저는 아직 책으로는 접해보질 못했어요. 새파랑님은 진정한 팬이 맞으신듯!^^

새파랑 2023-04-04 19:44   좋아요 1 | URL
역시 거리의 화가님 음잘알 이시군요~~!! 6집 너무 좋습니다. 특히 비올때 들으면 딱 좋은거 같아요. 책도 꼭 접해보시기 바랍니다~!!

레삭매냐 2023-04-04 0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오래 전에 한참 음악
들을 적에 시디로 구한 기억
이 납니다.

또 요상한 이름의 밴드도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
네요. 언니네 이발관하고
결을 같이 하는 그런 밴드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죠.

물감 2023-04-04 12:07   좋아요 3 | URL
혹시 스웨덴 세탁소 말씀은 아니실지...

새파랑 2023-04-04 19:45   좋아요 0 | URL
델리 스파이스가 그때 활동하긴 했었는데 그 팀 아닐까요? ㅋ

그시절 인디음악이 참 좋았습니다 ^^

페넬로페 2023-04-05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까는 얘기 궁금해요.
언니네 이발관과 이석원 작가 둘 다 잘 모르는데 음악 듣고 책도 읽어야 할 듯요^^

새파랑 2023-04-05 07:33   좋아요 1 | URL
맨위에 댓글로 남겼습니다 ^^
전 책보다는 음악이 더 좋더라구요~!! 비오는날은 6집이 딱 입니다 ㅋ

han22598 2023-04-05 0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니네 이발관..추억 돋네요.
언니네는 인디인데 너무 알려지면서 전 시들해졌어요. ㅋㅋ
희한하게 유명해지면 전 시큰둥해지더라고요 ㅎ

새파랑 2023-04-05 07:35   좋아요 0 | URL
제 주위에는 언니네 이발관 듣는 사람이 없었어서 유명한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마지막 6집 앨범 추천합니다 ㅋ 완전 좋아요 ^^

희선 2023-04-06 0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니네 이발관 <순간을 믿어요>를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전에 조금 알았지만, 마침 그때 4집이 나와서... 5집은 못 듣고 마지막 6집은 들었군요 몇 번 못 들었어요 저는 예전에 소설 봤군요 《실내 인간》... 다른 책을 못 봤어요 다른 건 산문이면서 소설 같다고 한 말은 봤어요 이것도 그럴 것 같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3-04-06 06:49   좋아요 1 | URL
희선님은 4집부터 들으셨군요 ㅋ 이 책도 소설같은 산문 맞습니다~!! <실내인간> 보다는 다른 책들이 더 좋았던거 같아요 ^^
 
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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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14

윌리엄 트레버가 쓴 23편의 단편들이 실린 모음집. 거의 한달동안 이 책 한권만 읽었다. 어떻게 모든 단편들이 다 좋을수가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나에게 있어서 단편하면 윌리엄 트레버다.



(책 뒷표지에 써있는 소개글)

˝트레버는 단편소설을 “누군가의 삶 혹은 인간관계를 슬쩍 들여다보는 눈 길˝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단편이 지닌 힘은 그 안에 무언가를 담는 것 못지않게 덜어내는 데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장편소설이 무의미한 순간들로 채워지다시피 한 우리의 삶을 본뜬 것이라면 단편소설은 모든 군더더기를 떼어 낸 뒤에 남는 뼈대와 같다고 설명한다. 트레버가 노련한 손 놀림으로 군더더기를 발라낸 자리에는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이 남는다.˝


Ps. 그동안 바빠서 책을 거의 못읽었는데, 4월부터는 다시 독서생활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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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3-03-29 23: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웰컴백입니다~!!

새파랑 2023-03-29 23:38   좋아요 4 | URL
열심히 책 읽으려고 책도 사습니다~!!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3-03-30 0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웰컴 새파랑님!
반가워요~~
윌리엄 트레버로 시작하셨군요^^

새파랑 2023-03-30 06:22   좋아요 2 | URL
시간날때마다 트레버 단편을 한편씩 읽었어요 ㅋ 벽돌책이어서 읽는데 오래걸리더라구요 ^^

희선 2023-03-30 01: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삼월 이틀 남았네요 삼월이 가기 전에 다 봤군요 다 좋다니 윌리엄 트레버가 좋아할 말이네요


희선

새파랑 2023-03-30 06:24   좋아요 2 | URL
국내 출판된 윌리엄 트레버의 책은 다읽었네요 ㅋ 다른 작품들도 번역되면 좋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3-30 09: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리뷰가 넘넘 반갑습니다^^ 국내 출간된 윌리엄 트레버 책들을 모조리 섭렵하시다니... 새파랑님을 위해서라도 다른 작품들도 번역되길 소망해야겠어요ㅋ 4월에 즐독하시길!

새파랑 2023-03-31 12:09   좋아요 0 | URL
리뷰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 내일부터는 독서 열심히하겠습니다~!!

얄라알라 2023-03-31 0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마 새파랑님께서 아무리 바쁘신들 책을 못 읽으셨겠어요
쉼 없이 꾸준히 읽으시는 새파랑님^^ 4월 페이퍼들 기대하겠습니다

새파랑 2023-03-31 12:10   좋아요 0 | URL
정말 이책 딱 한권 읽었습니다 ㅋ 4월부터는 북플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파이버 2023-04-02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3편의 소설이라면 거의 하루에 한 편 씩 읽으신 셈이네요~ 3월은 늘 정신 없이 지나가는 달인 것 같습니다. 예쁜 벚꽃과 함께 여유 있는 4월 되시길 바랍니다.

새파랑 2023-04-03 19:23   좋아요 1 | URL
파이버님 감사합니다~!! 파이버님도 즐거운 4월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coolcat329 2023-04-04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23편의 이야기가 다 좋았어요.
저의 최애는 로맨스 무도장이에요.

새파랑님 글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좋은 하루되세요!

새파랑 2023-04-05 10:34   좋아요 0 | URL
역시 책잘알 쿨캣님~!! 단편들이 어찌 하나같이 다 좋던지요 ㅋ

오늘부터는 독서모드 진짜 할겁니다 ㅋ
 
귀향 외 문학의 세계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최병근 옮김 / 책세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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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13

"날 영원히 기억한다고요? 그러실 필요없어요. 어차피 잊게 될 테니까요.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 그냥 저를 잊어주세요."


요새 책을 거의 못 읽었다. 일도 좀 바빴지만 눈이 많이 피로해서 그랬다. 모니터를 계속 보는 일을 해서 그런가? 책도 그렇게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집에 오면 일단 눈을 감고 있으려고 했다. 확실히 눈을 감고 있으면 눈이 편해지더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눈이 핵심인데... 그래서 눈 영양제도 먹고 있다 ㅋ 이게 다 2월에 책을 적게 읽은 내 핑계일 뿐이다.



시간도 없고 눈이 아픈 와중에도 아주 좋은 책을 만났다. 바로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귀향>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책에는 표제작을 포함한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어쩜 이렇게 5편 모두 좋은지. 단편만다 아련함이 느껴졌다. 다시 러시아 문학(러시아 말고...)에 대한 애정이 불타올랐다. 가장 좋았던 두편의 단편을 소개해 본다.



<귀향>

대학교 1학년때 나온 김동률의 <귀향>이란 노래를 아주 좋아했었다. 그 이후로 나에게 귀향이라는 단어는 애뜻함이였다. 20년이 지난 후 만난 플라토노프의 <귀향> 역시 애뜻함 그 자체가 되었다.


오랜 전쟁 기간동안 군생활을 했던 이바노프는 제대 명령을 받고 군대를 떠난다. 하지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젠 이곳이 익숙해서 였을까? 그리고 고향으로 가기위한 기차역에서 미샤라는, 역시 군대에서 보조요리사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가는 여인을 만난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가을의 풍경은 음울하고 슬퍼 보였다. 이 순간 마샤와 이바노프를 집으로 실어 갈 기차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잿빛 공간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사람에게 위안과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람의 마음밖에 없다.] P.9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낀 이바노프는 고향으로 가는 대신 미샤의 목적지에서 내린다. 왜인지 모르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혼자인 미샤 역시 이바노프와 함께 있는게 나쁘지 않았지만 둘은 함께 할 수 없었다. 이틀 후 이바노프는 고향으로 떠난다.

[이바노프는 철도 사령부에 체류 신고를 마치고 마샤와 함께 이 도시에 머물렀다. 사실 그는 4년째 보지 못한 아내와 두 자식이 기 다리고 있는 집으로 하루 빨리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바노프는 가족과의 설렘과 기쁨의 재회를 뒤로 미루고 있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이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유의 시간을 좀더갖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P.11



집에 도착한 이바노프는 모든게 낯설기만하다. 첫째 아들은 너무 어른이 되어버렸고, 딸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아내 역시 무언가를 숨기는 듯 하며 편하지가 않다. 내가 변한걸까, 가족이 변한걸까? 그의 몸은 귀향했지만, 마음은 아직까지 귀향하지 못했다.

[한편 이바노프에게 고향집은 여전히 이상하고 낯설었다. 아내는 피로에 지친 얼굴이었지만, 예전의 모습 그대로 어여쁘고 다소곳했 다. 당연히 그래야 하듯 많이 자라긴 했지만, 아이들도 자신에게서 태어난 그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왠지 이바노프는 귀향의 기쁨을 만끽할 수 없었다. 가족들과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것인가.] P.21



언제쯤 나의 귀향은 끝나는 걸까?

[모든 사랑은 무언가에 대한 필요와 외로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런 부족함도 느끼지 못하고 외로워하지도 않는다면 결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P.43





결론은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한데, 이바노프의 내적 갈등과 치유의 과정이 잘 그려진 작품이었다. 왜 사람은 떠나고 싶은 곳(군대) 인데도 그곳에 익숙해지면 그곳을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그리워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오랜 시간 후에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도 잘 적응하고, 그래서 과거의 아픔을 지워나갈 수 있을것이다, 어딘가엔가 돌아갈 곳만 있다면.






<포투단강>

이 작품 역시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귀향하는 니키타에 대한 이야기이다. 포투단강을 따라 집으로 가는 니키타는 이제 이십대 초반일 뿐이었다. 어린나이에 전쟁이라는 참상을 경험한 그의 마음에는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향에는 이제 나이든 아버지만이 남아있었고, 고향에서 그는 어린시절 잠시 알고 지냈던 류바라는 여자와 재회한다. 나름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던 류바였지만, 이제 그녀의 주변에 남은 가족은 없었고, 그녀는 혼자서 굶주림을 버티면서 힘겹게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니키타는 연민을 느낀다.

[니키타는 나무가 제대로 타고 있는지 지켜보다 가끔 류바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주 어쩌다 한 번씩 류바를 쳐다본 다음 다시 불길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니키타는 류바가 자 신의 시선을 싫증낼까 두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니키타 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된다는 것이 아쉬웠다.] P.95



과거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니키타는 목공일을 하고 류바는 의사가 된다. 그리고 두사람은 서로를 의지하게 되고 결국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이 두 사람의 행복을 불러오진 못한다. 그들은 함께 있음에도 거리를 느끼게 되고 말하지 못할 눈물을 몰래 흘린다. 전쟁의 후유증 때문이었을까,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더이상 그녀를 위로할 수 없었던 니키타는 결국 집을 나간다. 그리고 방랑을 시작한다.

[한번은 니키타가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지, 함께 살지 아니면 따로 살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봄까지는 행복을 느낄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가능한 한 빨리 과학원의 의학 공부를 마쳐야 하고 그 다음은 그때 가봐야 알게 될 거라고 했다. 니키타는 이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고 류바 때문에 지금 그가 느끼는 행 복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사실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는 확신이 없었다.] P.99



아직 포투단강은 얼어있었고, 아직 봄은 오질 않았다. 봄이 오면 돌아갈수 있을까? 그때까지 류바는 니키타를 기다리고 있을까? 봄이 오면 아픔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곧 나을 거예요. 사람들이 죽는 건 혼자서 아프기 때문이죠. 누 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하지만 지금 당신 곁에는 내가 있잖아요."] P.103




<포투단강>의 경우 왜 니키타가 집을 나갔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 중이다. 해설을 보면 답(?)이 써있긴 한데 그게 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꼭 아픔의 이유를 알아야만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




러시아 단편 하면 체호프랑 이반 부닌만 떠올렸는데, 여기에 플라토노프도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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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3-03-01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건 사람의 마음 밖에 없다. 정곡을 찌르는 감동이네요. 예전에 읽었던 포투단 강 인용문을 보니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러시아 문학 고프네요.ㅋㅎ
3월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새파랑님. ^^

새파랑 2023-03-01 11:16   좋아요 1 | URL
이미 읽으셨군요. 역시~!!
모나리지님도 즐거운 3월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미미 2023-03-01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동률<귀향>저 아직도 아주 좋아합니다ㅋ 떠나고 싶으면서 떠나기 싫고 또 떠나고 싶고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심리가 사람에겐 늘 있는것 같아요. ^^

새파랑 2023-03-01 18:47   좋아요 1 | URL
요새 일이 많아서 저는

떠나고 싶습니다 ㅋ 전 역마살이 있는거 같아요 ^^

바람돌이 2023-03-01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기억 기억.... 세상에 좋은 작가는 다 새파랑님이 소개해주시는듯요. ^^

새파랑 2023-03-01 18:47   좋아요 1 | URL
요책 좋습니다. 실망하시지 않을거에요. 잘 기억해주세요~!!

페넬로페 2023-03-01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부터 저도 눈이 약해지면서 눈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눈영양제를 꼭 챙겨먹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새파랑님!
눈 건강 유의하시고요,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새파랑님 덕분에 또 좋은 작품을 알게 되었어요^^

새파랑 2023-03-04 23:29   좋아요 1 | URL
눈이 정말 중요한거 같아요 ㅋ 요즘은 헨폰도 잘 안하고 있습니다 ㅡㅡ 그래서 그런지 좀 괜찮아지는거 같아요 ㅋ

희선 2023-03-02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이 안 좋을 때는 자주 쉬는 게 좋지요 천천히라도 새파랑 님이 좋아하게 된 소설을 만나서 기뻤겠네요 사람은 가까이 있다 멀리 떨어지면 마음도 좀 멀어지겠지요 식구는 다시 함께 살면 나아질지... 이 소설에서는 나아졌다니 다행이네요


희선

새파랑 2023-03-04 23:30   좋아요 0 | URL
몸이 떨어져 있으면 마음도 왠지 조금씩 멀어지는거 같아요. 그러다 다시 함께 하면 가까워지는거 같아도 예전같지는 않고.. 뮈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요 ^^

그레이스 2023-03-03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동률 귀향 좋아하는 일인 추가요^^
이 책도 장바구니에 추가요~^^

새파랑 2023-03-04 23:31   좋아요 1 | URL
역시 책잘알 음잘알 그레이스님! 그레이스님 취향에 맞을거 같아요 ^^

페크pek0501 2023-03-07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라토노프, 검색해 보겠습니당~~

새파랑 2023-03-08 20:29   좋아요 0 | URL
좋습니다~! 성수기 끝나면 전작할겁니다~!!

coolcat329 2023-03-08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라토로프 책도 꼭 읽어보고 싶어요. 코틀로반 먼저 읽어보고 이 책도 기억할게요~

새파랑님 건강이 젤 중요하니 맘 편히 하시고 휴식의 시간 가지시길요~

새파랑 2023-03-08 20:30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역시 중요한건 건강! 쿨캣님도 항상 건강 잘 챙기세요 ^^

물감 2023-03-17 0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살아계시죠? ㅋㅋㅋ

새파랑 2023-03-18 11:20   좋아요 2 | URL
안부를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새 뭐 하는게 있어서 북플이랑 책을 아예 못하고 있네요 ㅜㅜ 다다음주부터 잘 하겠습니다~!!

scott 2023-03-17 11: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어디선가100권 책탑 쌓아 놓고 계실것 같응 ㅋㅋㅋ

새파랑 2023-03-18 11:21   좋아요 2 | URL
이번달에 책 1권도 못읽고 있습니다 ㅜㅜ 담달부터는 몰아서 보겠습니다~!!

희선 2023-03-27 0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어느새 삼월 마지막 주예요 주말부터 사월 시작이군요 이번 한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3년 삼월 얼마 남지 않았다니... 새파랑 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새파랑 2023-03-27 08:46   좋아요 1 | URL
오늘부터 다시 독서모드로 들어가겠습니다~!!
 

N23011

˝일이라는 건 늘 똑같아. 아침 아홉 시에는 계획과 능력과 진실로 가득하지. 오후 네시엔 실패자야.˝


헝가리 출신으로 영국으로 망명한 화가 야노스. 우여곡절 끝에 개인전시회를 개최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그는 사라진다. 어디로 간걸까? 그의 절친인 영국인 존은 사라진 야노스의 작업실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케치북에 남겨진, 헝가리어로 쓰여진 야노스의 일기를 발견한다.



존은 일기를 통해 타국에서 망명자로 살아온 그의 고독, 이념과 예술사이에서 느꼈을 고뇌를, 그동안 몰랐던 친구의 진실을 처음으로 알게된다.

[나는 나 자신을 이중의 망명자로 만 들어 버렸어. 나는 우리들의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네. 그리고 내 인생을 당면한 목표가 아닌 예술에 쏟기로 했지. 그리하여 나는 내가 참여했을지도 모르는 것을 바라보는 구경꾼이야. 그래서 나는 끊임 없이 질문을 던져,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작은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이 세상을 내 마음속에서 나만 의 차원으로 축소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거야. 어쩌면 우리 둘 다 우리가 기다리던 네번째 사람을 배반한 건지도 몰라. 작업을 하려 면 잠을 자야만 해. 작업은 끝이 날 수도 있지. 용서하게나.]  P.99



그의 일기에는 조국을, 이념을 버렸다는 자책김을 가지고 살아가야 했던 이방인의 외로움이 담담하게 담겨져있다. 그 외로움은 가끔씩 내가, 우리가 느끼던 감정과 별반 다르진 않았다. 가끔 야노스처럼 다 내려놓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단지 생각에서 끝날뿐인 생각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괜찮은 화가였다. 모든 자살은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 데서 나오는 결과다. 자살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이해라는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의미도 없다고 믿는다. 그 사람이 만약 예술가라면 그렇게 결여된 인정은, 적어도 일부분이나마, 그의 작품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태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P.154



예술(삶)이 우선일까? 신념(가치)이 우선일까? 둘을 같이 할 수는 없는걸까?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질문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이애나가 없는 스튜디오에 있으려니 어쩐지 더 늙은 듯한 기분이 다. 한밤중에 깨어 여기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을 하면 삼십 년 전의 베를린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와 지금 내가 몰두하는 일의 차이가 나이를 온전히 실감케 한다. 그때 나 자신을 입증할 방법이 백 가지 였다면, 지금은 단 하나뿐이다.]  P.177




<우리 시대의 화가>는 절절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삶과 신념 사이에서 방황하는 고뇌가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담담한척 보이려고 노력했던 야노스의 마음이란... 외부로 표출되는 고뇌 보다는 내면으로 삭히는 고뇌가 더 절절한 법이다.

[돌이켜 보니, 가까운 사람들 중 누구라도 자신이 직면한 위기를 이해할 수 있으리란 희망이 가당찮다고 생각했을 뿐이라는게 확실해진다. 그리고 그 점에선 그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P.217




Ps. 일기 형식의 전개방식을 택하다보니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타인의 머릿속을 훔쳐보는 기분이랄까?



Ps. 지금까지 존버거의 작품을 네편 읽었는데 다 좋았었다~!! 모두 다 99점 이상?


그래도 꼭 줄을 세운다면,

1.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2. 결혼식 가는 길
3. 우리 시대의 화가
4. A가 X에게로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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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2-16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머릿속을 훔쳐보는 기분 재밌겠네요! 새파랑님 이렇게
계속 읽어나가시는 걸 보니 저도 존 버거 더 궁금해집니다^^

새파랑 2023-02-16 15:18   좋아요 1 | URL
문장들 깊이가 있어서 좋습니다. 오래오래 읽어야할거 같은 느낌의 작품입니다. 전 두번 읽었어요 ^^

그레이스 2023-02-16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있네요
책만 모은 자의 부끄러움!;;

새파랑 2023-02-16 17:15   좋아요 1 | URL
일단 모으면

언젠가는 읽지 않을까요? ^^

바람돌이 2023-02-16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아름다운 책이 존 버거였던거 같아요. 안읽은 책들도 다 찾아서 읽고 싶게 해주는 새파랑님. ^^

새파랑 2023-02-17 06:35   좋아요 1 | URL
ㅋ 아 쉽지 않은건 맞는거 같아요. 문장들이 다 쉽게 쓰인거 같지는 않더라구요. 그런데 그냥 좋습니다 ^^

희선 2023-02-17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겠네요 예술이 정치에 이용되지 않아야 할 텐데, 그런 때도 있고 지금이라고 아주 자유로운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3-02-17 11:50   좋아요 1 | URL
예술을 예술 그 자체로만 보면 좋을텐데 꼭 그렇지는 않은거 같아서 아쉽긴 합니다 ㅋ 생각해보면 땔래야 땔수없는거 같기도 하고 🤔

페넬로페 2023-02-17 15: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방인이 아니어도 우리는 다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을 듯 합니다. 그럴때 일기를 써야 하는가요! 저는 예술과 삶이 양립되기 힘들다고 봐요. 생각의 깊이가 남달라야 하기 때문에 평범하게 사는게 힘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새파랑 2023-02-17 17:06   좋아요 2 | URL
저도 일기를 쓰고는 싶은데 글씨를 못써서 잘 안되더라구요 ㅋ

페넬로페님도 예술가처럼 생각의 깊이가 남다르십니다~!!

페크pek0501 2023-02-24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2. 결혼식 가는 길
3. 우리 시대의 화가
4. A가 X에게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3-03-10 17:11   좋아요 0 | URL
존버거 책이 페크님에게 잘 맞으면 좋겠네요~!!
 
결혼식 가는 길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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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10

"제 생각에 인생에서는요, 알게 된 무언가에 대해 의미를 주는 건 장소가 아니라 사람인 것 같아요. 아끼는 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이요."


난 익숙한 것보다는 낯선 것을 좋아하고 희극보다는 비극을 좋아한다. 실제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을 책으로 또 접하고 싶지는 않고, 인생의 종착은 비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저나 선생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잘알 거예요.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는요,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이미 그 일을 마치고 나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죠. 그 일이 지나갔을 때를 말입니다. 이 친구는 아니에요. 그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만 생각합니다.] P.133



또한 너무 감정적인 것보다는 담담한걸 좋아하고, 극단적인 결말로 나아가는 것보다는 서서히 연착륙하는 결말을 좋아한다. 인생은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게 흘러가니까.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제가 한 일은 '스텔라'라는 말을 지어낸 것밖에 없어요. 그리고 지노에겐 인내심을 가지라고 했어요. 니농은 죽은 셈 치라고 했죠. 죽은 거라고. 니농이겪었던 일을 겪으면 누구나 죽을 만큼 힘들 거예요. 기다리라고, 그럼 어쩌면, 정말 어쩌면, 니농이 두번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정말 그녀를 원하면 그렇게 하라고 제가 말했어요. 지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세요? 놀랐어요. 지노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았거든요. 니농의 두번째 삶은 우리 결혼식으로 시작할 거야, 지노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 전에 두 사람은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P.179



그리고 섬세한 묘사를 좋아한다. 불친절한 것보다는 하나하나 세세하게 그려주는 작품이 좋다. 그것이 풍경이든, 심리든간에 말이다. 작가가 의도했던 모습과 내가 느낀 그림이 일치할 때 느껴지는 쾌감은 어느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신기한 것은, 음악이 흐르면 그 장소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종종 음악은 몸 안으로 들어온다. 더 이상 귀를 통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자리를 잡는다. 두 개의 몸이 춤출 때, 그 과정은 빠르게 일어난다. 그때 연주되는 음악은 춤추는 이들의 몸을 통해 들린다. 마치 녹음된 음악처럼, 백만 분의 일 초의 시차를 두고, 이미 음악이 그들의 몸 안에서 진동하는 것만 같다. 음악과 함께, 희망도 몸 안으로 들어온다.] P.191




존 버거의 <결혼식 가는 길>은 이런 내 취향을 완벽하게 만족시켜주는 작품이었다. 어찌보면 너무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감동적으로 느낀 이유는 그가 써내려간 아름다운 문장과 세밀한 묘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줄거리를 쓰고 싶지만 그러면 스포일러가 될거 같아서 생략한다...)



화자의 시점이 계속 바뀌는 것도 아주 좋았다. 한 사람의 시점으로만 계속 글이 이어지면 지루해질 수도 있고 감정이 극단으로 흐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시점 변화를 통해 슬픔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과 감정을 풍부하게 그리고 있다. 200페이지 내외의 작품이지만 600페이지의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랄까? 영화보다 더 영화처럼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한 줌 눈이면 훌륭하지
여름의 열기에 힘들어하는 남자의 입에는
봄바람이면 훌륭하지
항해에 나서려는 선원들에게는
홑겹 이불 하나면 그 무엇보다 훌륭하지
침대에 누운 두 연인에게는"



Ps. 올해는 존버거의 작품들을 전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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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2-08 2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어요~♡

새파랑 2023-02-08 22:07   좋아요 2 | URL
이 책 강추입니다 ㅋ 너무 좋아서 또 읽고싶네요 ^^

페넬로페 2023-02-09 0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빨리 존 버거 작품 입문하고 싶네요~~
새파랑님께서 어떤 작품 좋아하시는지 알겠어요. 누구의 결혼식인지 궁금해요^^

새파랑 2023-02-09 08:59   좋아요 1 | URL
ㅋ 제가 좀 취향이 까다롭습니다 ㅋ 딸의 결혼식이에요. 상황은 슬픈데 막 슬프기만 한건 아닌 결혼식? 😅

coolcat329 2023-02-09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언젠가 찜해 둔 책인데 새파랑님이 다시 생각나게 해주셨네요.
저도 너무 궁금합니다.

새파랑 2023-02-09 12:07   좋아요 0 | URL
쿨캣님은 이 책을 좋아하실거 라 확신합니다 ~!!

Yeagene 2023-02-09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새파랑님 올해 존 버거 전작 화이팅입니다!멋지세요!♡

새파랑 2023-02-09 20:50   좋아요 1 | URL
언제나 말만 전작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전작한 작가는 별로 없는거 같아요 😅 응원 감사합니다~!!

희선 2023-02-10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3년엔 존 버거 책을 다 보실 거군요 한사람 정해놓고 다 보기 좋은 것 같네요 슬퍼도 그렇게 슬픔만 있는 건 아닌가 봅니다 삶이 그렇죠


희선

새파랑 2023-02-10 18:57   좋아요 1 | URL
전 이런 잔잔한 슬픔이 더 와닿더라구요~!! 지금도 존버거 책을 펼쳤습니다 ^^

han22598 2023-02-14 0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버거.......책장에서 잠자고 있는 책이 두권인가 되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더라고요.
얇은데...먼가 어려울 것 같아서 ㅋㅋ

새파랑 2023-02-14 07:50   좋아요 0 | URL
이 책은 하나도 안어렵고 완전 좋습니다. han님은 이책하고 잘 맞으실거 같아요. 완전 좋습니다~!!!

물감 2023-02-15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작 완독을 약속하실 정도면... 음. 새파랑 님께서 보시기에 제가 이 작가랑 잘 맞을 것 같으신가요 ㅋㅋㅋㅋㅋ 확신을 주시면 도전해보게요 ^^

새파랑 2023-02-15 12:52   좋아요 1 | URL
음 존버거 소설을 제가 딱 네편 읽었는데, 스토리가 막 이어지는게 아니어서 왠지 물감님에게는 안맞을거 같아요? 약간 이미지가 강하게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ㅋ 그런데 물감님이면 그런거 상관없이 잘 읽으실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