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나무를 심는 마음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고 한다. 더디고 오랜시간이 걸려야 비로소 주어진 사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손바닥만한 뜰에ㅈ다양한 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유독 그 다음을 생각하며 심은 나무가 이 살구나무다. 딱히 간식으노 먹을것도 없었던 어린시절 보리타작할 즈음에 노랗게 노랗게 익어 떨어진 살구를 주워다가 아껴가며 먹었던 기억이 다음 누군가에게도 그런 추억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기에 묘목을 고르고골라 심었다.
묘목을 심고 2년이 지났는데 제법 키를 키우더니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 꽃으로 보면 앵두나무, 자두나무와 차이를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비슷비슷하지만 살구나무 만의 특성을 발견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나무의 수형이 갖춰지면서 더 빛나는 나무로 기억된다.
"청명 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길 가는 행인 너무 힘들어/목동을 붙잡고 술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더니/손들어 멀리 살구꽃 핀 마을(행화촌)을 가리키네"
당나라 시인 두보가 읊은 시에 등장하는 살구나무다. 살구나무는 이렇듯 오래전부터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다. 어린시절 나고자란 시골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듯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 것이 아득하다.
살구꽃 피면 봄이 무르익어 간다는 신호다. 무렵 잎보다 먼저 연분홍색으로 피고 동그스름한 잎을 펼친다. 초여름에 들면 다른 과일보다 훨씬 먼저 붉은 기가 살짝 들어간 노란 열매가 열린다. 시큼함이 입안에 멤도는 살구다.
내가 이사 온 마을 한구퉁이 집 담벼락에 오래된 살구나무 한그루 서 있다. 오며가며 언제 꽃이 피나 살피는데 더디기만 하다. 담장 넘어 누군가 훔쳐보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리라. '처녀의 부끄러움', '의혹'이라는 꽃말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