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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산문 산책 - 조선의 문장을 만나다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과 사귀는 즐거움에 빠지다
읽던 책을 덮으며 가슴 뿌듯함이 밀려오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즘같이 쏟아지는 책의 홍수에 어떤 책을 골라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이 모호할 경우는 더하다. 책에 대한 취향은 사람마다 달라서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책이라고 해서 꼭 좋은 책의 범주에 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수양을 목적으로 학문하고 뜻한 바를 담아 문장을 지어 책으로 엮어 놓은 선조들의 글에 담긴 따스한 마음들이 오롯이 모여 있는 책을 대할 때면 마치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 한 복판에 함께 서 있는 느낌을 가지곤 한다. 오늘 다시 그런 느낌을 전하는 책을 접하고 가슴 뭉클함까지 있다. 안대회 선생님의 [고전 산문 산책]이 그 책이다.
이 책에는 18~19세기 조선 후기 문인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산문을 가려 뽑아 우리말로 옮겨놓은 책이다. 허균, 이용휴, 심익운, 박지원, 노긍, 이덕무, 이가환,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유만주, 이옥, 남공철, 김려, 강이천, 심로숭, 정약용, 유본학, 장혼, 이학규, 남종현, 홍길주, 조희룡에 이르는 23명의 문인과 160여 편의 글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아는 문인뿐만 아니라 저자의 노력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사람들까지 포함되어 있어 조선 후기 소품 문학의 총화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 같다.
[고전 산문 산책]에 담긴 글을 통해 조선 후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고 그들이 주목했던 문학과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현대인이 삶에 지표를 삼을 만한 내용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생활상의 고단함이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부당함을 받았던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중국 중심의 문학에서 벗어나 조선의 문학을 일구어 냈던 그들의 당당함이 보여 선조들에 대한 자긍심까지 얻게 한다. 정조가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선포할 정도로 새바람을 일으킨 시대적 상황뿐 아니라 새로운 문예사조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또한, 당시 북학파로 새로운 조선을 일궈가려는 꿈을 가졌던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등의 글에서 보여주는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와 세상을 담는 마음,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일상적인 글에서 풍기는 솔직함이 돋보인다.
[글을 쓰는 사람에는 푹 익은 자가 있고, 즐기는 사람이 있으며, 좋아하는 자가 있고, 힘쓰는 자가 있으며, 구하는 자가 있고, 뜻을 둔 자가 있다. 체용(體用)이 완성되어 못할 것이 없는 것을 푹 익었다 하고, 법칙을 정성스럽게 갖추어 머무는 것이 편안하고 바탕이 깊은 것을 즐긴다고 하며,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아 나날이 열심히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며, 큰 뜻을 알아 법도로 들어가려 하는 것을 힘쓴다고 하며, 신중히 사고하고 간절하게 질문하여 올바른 방향을 따라가기에 애쓰는 것을 구한다고 하며, 읭녀하게 자립하여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모범으로 삼는 것을 뜻을 두었다고 한다](본문 602페이지)
작가를 지망하는 동자에게 남종현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오늘날 자신의 생각을 글에 담아 뜻을 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글이 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 길을 알려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이 가진 힘, 맛, 멋이 읽어가는 독자로 하여금 눈을 반짝이며 가슴 뛰게 하는 글들이 모음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이덕무, 이서구, 유득공 등 그동안 찾아서 읽고 싶었던 조선 후기 문인들과 그들의 글뿐 아니라 새롭게 알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한문 실력이 된다면 부록으로 담겨진 원문을 읽어가는 맛도 더 할 것이란 생각에 아쉼이 있다.
한문 원전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하여 그 감동을 전하며 각각의 문인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포함한 글에 담긴 뜻을 알려주는 저자의 노고를 짐작할만하다. 조선 후기 소품문을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해온 저자 안대회의 노력과 그의 글맛 또한 조선 문인들의 그것과 비슷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펼쳐보며 저자의 다른 책들도 찾아보는 책으로의 여정이 지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