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를 던지다 - 왕들의 살인과 다산의 탕론까지 고전과 함께 하는 세상 읽기
강명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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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을 통해 속 시원한 딴지걸기
역사의 숨결이 스며있는 유적이나 선조들의 정서가 담긴 옛글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을 그 속으로 이끌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삶을 먼저 살아온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지혜를 얻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 그러한 목적을 실현하는데 가장 유익한 수단 중 하나가 옛 사람들의 정서와 기상이 오롯하게 담긴 글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이 직면하는 여러 가지 현안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며 만든 일들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스승이나 선배들을 찾아 그들의 삶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에서 해결의 방법을 얻고자 하는 것처럼 선조들이 남긴 옛글을 통해 우리 스스로 돌아보는 법을 배우고 해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한계레출판에서 발간한 강명관의 [시비를 던지다]는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며 시대정신을 반영한 해법을 찾아가는 묘미를 전해주고 있다.

[나는 조선시대를 사는 사람이 아니고,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사는 사람이다. 조선시대는 나의 학문적 관심대상이지만, 21세기 한국 사회는 나의 삶이 이루어지는 구체적 시공간이다. 나에게 후자가 더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조선시대는 현재 내가 처한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또 삶을 만족스럽게 변화시키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이 끌어대는 조선시대의 글 역시 그 방편의 하나다.](저자 서문에서)

이 글에서 알 수 있듯 [시비를 던지다]에는 옛글에서 찾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에 대한 의문을 풀어내는 저자의 독특한 이야기 방식이 담겨 있다. 첫 이야기부터 가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가짜를 만들어 내는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옹고집전의 헛옹가의 이야기를 통해 가짜를 양산하는 현 시대의 풍조에 대한 저자의 속내를 시원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뿐 아니다 호학군주며 성군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정조의 부부싸움 끝에 부인을 발로 차 죽인 박춘복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때의 백성과 지금의 국민이라는 존재가 어떤 위치인지도 비교 분석한다. 또한 조선의 과학은 왜 낙후하게 되었는가에서는 조선이라는 사회의 근간을 이뤄왔던 학문의 흐름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으며 탐관오리 불멸론, 소인배 승승장구론, 소인배 등급론 등에서 보여주는 우리의 현실은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당장 직면하는 교육현안, 노동자, 권력의 부정부패, 암울한 사회현상 등의 문제를 과거 속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고 있다. 옛글에서 찾은 선조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상황을 분통한 마음으로 때론 안타까움을 담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만을 본다면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토피아를 꿈꾸지 못하는 세상에서 저자는 다산 정약용의 글을 통해 희망 찾기를 보여주고 있다.

글은 그들이 살던 시대정신의 반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사사로운 감정뿐 아니라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이 있고 현실을 딛고 미래를 밝혀줄 지혜를 담고 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찾고 탐독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제반 문제에 대해 과거와 오늘을 비교하며 시비(是非)를 따지고 해법을 모색하자는 것이라 생각된다.

답답함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자의 속 시원한 풍자가 그저 속풀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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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 책과 사람, 그리고 맑고 서늘한 그 사유의 발자취
김풍기 지음 / 푸르메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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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 속에 담긴 스승과 벗
어느 날 문득 소소하지만 소중하게 여기는 내 책장을 가만히 바라본다. 유난히 마음이 가는 책이 있다. 그 책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내게 한없는 즐거움과 뿌듯함을 안겨주었던 책들이다. 그런 책들은 책장에서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게 된다. 눈길이 스칠 때마다 책에서 느낀 그 감동을 잊지 않고 마음에 세기고 싶은 욕심일지 모른다. 내가 책을 대하는 마음이 이렇다면 책과 더불어 학문을 하고 자신의 삶을 꾸려갔던 우리 역사 속 선비들은 어떠했을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자신의 뜻을 담은 서재를 꾸미고 그 공간에서 문학을 논하고 벗을 사귀며 백성과 나라에 대한 충심을 보였던 선비들의 서가에는 어떤 책들이 있었을까? 그 물음에 답을 주는 책이 있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가 그 책이며 푸르메에서 발간했다. 옛 책을 가까이 접하는 저자 김풍기 교수는 옛 선비들 뿐만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책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전해지며 오늘날까지 그 존재를 드러내는 책이나 이미 사라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책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이 책에는 전등신화, 금오신화, 기재기이, 서유기 등 소설책뿐만 아니라 선비들의 시문을 모은 고문진보, 문선, 규장전운을 비롯하여 당시 서민들의 기초교육을 담당했던 서당에서 교재로 사용되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맹자, 소학, 천자문, 자치통감 등과 함께 불교의 수행과 관련 된 사십이장경, 선가귀감 그리고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사고전서, 연암집, 발해고, 정감록, 조선부 등 총 27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다섯 가지 분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오랫동안 책을 읽으면서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만들라는 충고를 무수히 들어왔다. 마음으로는 언제나 내게 주어진 안온한 삶을 버리고 드넓은 광야로 걸어나갔지만, 이 몸으로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삶을『사십이장경』은 내게 권하고 있다.](본문 256페이지)

현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소설에 대한 흥미는 옛날 사람들도 대단했다. 중국의 전등신화를 모델로 한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의 설명이나 학문을 비우기 시작하는 단계에 배웠던 천자문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운 흥미를 불러온다. 근엄한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선비들이 저자거리에 나도는 이야기를 모아 책을 만들었던 이유도 찾아보고 호학군주로 책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정조가 사고전서를 구하려고 했던 노력에서는 책을 향한 사랑이 상상을 초월하게 한다. 또한 수산 광한루기라는 책을 통해 평비라는 새로운 분야를 알게되어 참으로 흥미로웠다. 이렇듯 저자는 각각의 책이 만들어지게 되는 배경이나 많은 선비들이 어떻게 그 책을 읽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책을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이 넘기는 책장마다 가득하다.

[세상의 모든 책은 자신만의 운명을 지닌다. 사람들의 눈길을 전혀 끌지 못하는 하잘 것 없는 책부터 위대한 정신을 담은 책에 이르기까지, 어떤 책이든 나름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본문 278페이지)

책은 만들어지고 읽히면서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뿐만 아니라 책 스스로도 그 운명의 변화를 맞는다. 대단한 장서가로 유명했던 홍길동의 저자 교산 허균의 그 많은 책들은 어디로 갔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책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 하는 저자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어떤 책 역시 시간이 흘러 어떤 운명을 맞을지 모를 일이다.

선인들이 책을 만들며 책 속에 담은 뜻을 오늘날까지 이어받아 그 정신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나에게 왔던 책이 나의 생각을 변화 시키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며 책 스스로의 운명을 다해가는 것처럼 진정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옛 지식인들이 책을 대하는 마음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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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서재에 들다
고전연구회 사암 엮음 / 포럼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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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선비닮은 서재를 갖고 싶다
거실을 치우며 집에 있는 책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한 권 한 권 분야별로 분류도 해보고 작가별로 정리도 해 보며 다른 느낌의 책들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쌓여있는 이 책을 정리하면서 책과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서재를 갖는다는 것은 첫 번째로 소망하는 것일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우리 선조들 역시 그러한 서재를 만들고 그곳에 자신의 꿈을 담았다. 책을 읽는 풍토도 다르고 취향도 달라진 현대의 서재가 갖는 의미와는 사뭇 다른 조선 선비들이 서재에 담은 뜻과 의미를 생각해 본다.[조선의 선비 서재에 들다]는 고전연구회 사암이라는 모임에서 발간한 책이다. 고전연구회 사암((俟巖)은 고전의 대중화를 위해 시작한 모임이라고 한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고전과 일반 독자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기 위한 다양한 모색을 하고 있다.

[조선의 선비 서재에 들다]에는 옛 선비들의 서재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서재는 선비들이 책을 보관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보다는 선비들의 삶과 구체적인 관련을 맺는 공간이다. 이 책은 서재의 이름을 짓는 것부터 서재가 선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공간이었는지, 서재에서 선비들이 무엇을 하였는지 등 모두 선비들의 삶과 직결되는 이야기들이다.

고협재, 소완정, 명경신당, 원지정사, 연초재, 통곡헌, 신재, 표번당, 방산서료, 독서당, 옥연서당, 입암정사, 돈간재, 송석재, 독락당, 이요재, 암서재, 공재, 매헌, 양졸당, 삼사재, 외재, 삼환재, 억만재, 경학재, 뇌룡사, 사촌서실, 취몽재, 척약재, 구서재 이 모두가 이 책에 등장하는 선비들의 서재 이름이다. 이름만으로도 어떤 의미인지 감이 오는 이름도 있지만 새겨봐야 할 이름들이 대부분이다.

마음을 비워 바깥의 사물을 받아들이고 사사로운 욕심이나 욕망을 벗어나 담담하게 책을 보고 즐긴다는 이서구의 [소완정], 위선과 허식 그리고 독선과 편견에 휩싸여 있는 양반 사회의 윤리나 도덕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비판의식을 담은 허친의 [통고헌], 그침이 거처할 곳을 얻는 곳이라는 뜻으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거두어 거처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새로운 뜻을 펴는 곳이라는 권대재의 [돈간재], 타고난 노둔함과 어리석음을 극복하기 위해 보통 글을 읽을 때 1만 번이 넘게 반복하여 읽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김득신의 [억만재], 책 보는 것을 즐거움 삼아 추위나 더위, 배고픔과 아픈 것도 전혀 알지 못했던 이덕무가 책에 대한 모든 것을 체득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지은 [구서재] 무엇하나 간단히 지나칠 수 없는 이름들이다.

[조선의 선비 서재에 들다]에서 살펴 본 서재는 단순한 독서 공간이 아니라 선비들이 추구하는 본질이 무엇이며, 그 뜻을 실현하기 위해 선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열려진 공간이라는 것이다. 같이 학문하는 동료나 선, 후배에 대한 따스한 마음이 보이고, 자연을 벗하고 마음을 쉬며 벗들과 교유하며 사상을 논하고 시를 짓고 때론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며 울분을 삭이기도 하고 임금에게 올릴 상소를 작성하기도 했다.

서재, 소소한 삶의 근거지든 자연 속 풍광과 어울리는 장소든 그곳이 어디든지 학문하는 선비들의 뜻을 오롯하게 담아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선비들의 서재가 아닐까. 이 책을 그러한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잘 드러내 놓고 있다. 책을 읽으며 아쉬운 점은 같은 사람이 자주 등장하여 동일한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것과 우리말로 해설해 놓은 부분에 원문이 함께 했다면 비교해 보는 맛이 더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탈자 : 68페이지, 이성계와 정도전의 손에 동문인 정도전과 이숭인이 죽고 → 이성계와 정도전의 동문인 정몽주와 이숭인이 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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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글쟁이들 - 조선의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
문효 지음 / 왕의서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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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사람이어서 조선시를 즐겨 짓는다
글쟁이, 누군가는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고 싶은 말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갈망하는 바가 아닐까 한다. 마음에 담아둔 무엇이 넘치는데 글을 쓴다는 것이 여의치 못한 사람일 경우 얼마나 바라고 바라는 말일 것인가. 글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만들어 진다.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쓴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공감 받는 것은 아니다. 글이 어떤 뜻을 담았는지, 글 속에 담긴 뜻이 제대로 표현되었는지 등 개인의 글을 두고 할 수 있는 말들은 많고 많을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에 대해 옛 선인들은 어떻게 바라봤는지 안다면 오늘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고 글쟁이의 사명감이 무엇인지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글쟁이들]은 학문을 갈고 닦던 선비가 주류를 이루던 조선시대의 글쓰기에 뛰어난 선비들의 글을 통해 글을 쓰는 뜻과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식인으로써의 자세 등을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지원, 정약용, 유몽인, 신숙주, 이달, 허균, 허난설헌, 이이, 이황, 김시습, 정철, 김만중, 이익, 강희맹에 이르기까지 글로 당대를 휘둘렀든 사람들이 그들이다. 태어난 배경, 살았던 환경, 공부하는 방법, 지향하는 가치관 등이 모두 다르기에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여정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14명에 달하는 조선 선비들을 [시대를 아파하라,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라, 진실을 담아라] 등으로 크게 4부로 나누어 살피고 있다. 저자가 굳이 이렇게 사람들을 분류해 살피는 의미를 책을 읽어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만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선의 개혁을 꿈꿨던 사람, 다시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사람, 신분의 굴레에 갇혀 암울한 시간을 보낸 사람, 목숨을 걸고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 시대를 앞서가며 자유로운 삶을 지향했던 사람 등 처지는 다르지만 그들이 보여준 글에는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있고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조선 글쟁이들의 남다른 삶을 보고 그들의 글을 읽어가면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시사해 주는바가 많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그들의 글 속에 찾은 공통점이 있으며 그 공통점은 바로 삶을 대하는 진정성과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신, 그리고 강자의 편이 아닌 약자들의 편에 서 있다는 점이다.

[다산은 미사어구를 늘어놓음으로써 좋은 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 글의 참뜻이 절로 우러나야 참된 글이라고 했다. 그 노력은 마음을 닦고, 역사서와 고금의 저서들을 통해 지식을 체득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본문 51페이지)

어떤 글이 오랫동안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조선의 글쟁이들의 글을 보면서 그들의 글이 시간을 거슬러 오늘날까지 당당한 울림과 감동을 주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를 살피게 된다. 글쓰기는 재주가 아니라 자신을 갈고 닦은 수행의 결과가 쌓여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그 사람의 향기와도 같다. 그 향기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진실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가 바로 그와 같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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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을유세계문학전집 19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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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올라 공간을 만나다
뜻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접할 때 [낯선]이라는 단어처럼 사람의 감정을 적절하게 나타내는 표현이 있을까 싶다. 당황스런 상황,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장소, 예상치 못한 느낌 등에서 오는 이 말이 이토록 강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쩌다 그런 낯선 상황을 즐길 때도 있긴 했었다. 오늘 내가 느끼는 당혹감은 만만치 않다. 처음 접하는 독일문학의 한 작가의 소설이 그런 기분을 준다.

[아우스터리츠]의 저자 W. G. 제발트는 독일문학에서 꽤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그는 1944년 독일 베르타흐의 한 유리 제조업을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독일에서 대학공부를 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앵글리아 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가르쳤다. 2001년 교통사고로 죽기까지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고 각종 문학상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 제발트는 1999년,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에 대하여 왜 독일 작가들은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문제를 제기한 [공중전과 문학]을 발표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제발트의 대표작으로는 첫 시집 [자연에 따라. 근원시](1988년)를 시작으로 산문집 [현기증. 감정](1990년), [무서운 고향. 오스트리아 문학에 관한 에세이들](1991년), 소설 [이민자들](1992년), [아우스터리츠](2001년) 등이 있다.

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 어린이들을 피신시키는 구명운동의 일환으로 영국으로 보내진 한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나라는 사람이 아우스터리츠를 만나면서 그의 과거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목사인 양부모와 함께 [데이비드 일라이어스]라는 이름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던 중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시험에 [아우스터리츠]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과거를 찾아갈 기회를 만들어간다. 그 후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장소나 친부모)에 대해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잃어버린 과거는 시간 개념이지만 그 시간을 현실과 연결시킬 수 있는 매개가 시간과 공간이 함께 머무는 [어떠한 장소]이기에 이 소설은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한 호흡으로는 도저히 읽어가지 못할 긴 문장에 온갖 수사어구를 총 동원한 이 소설은 내용 따라가기가 수월치 않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읽어간다. 소설 속에 나타나는 수서어구를 통해서 바라본 저자의 관심사는 실로 다양하고 깊다. 건축, 역사, 천문, 식물, 광학, 곤충, 조류, 회화, 의학에 이르기까지 전문가 이상의 무엇인가가 들어있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따라가기 힘들어 하면서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나왔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제발트 만의 독특한 글쓰기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을 나타내는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걸까? 책장을 덮으면서도 쉽게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이다.

시간을 거슬러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다는 것은 특정한 경험을 한 어떤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잊혀진 아니면 애써 외면했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 잊혀진 기억을 찾아 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의 과정일 것이다.

이 책을 접할 때 느낀 그 [낯선]이라는 느낌이 처음 접하는 독일 문학이라서가 아니라 제발트라는 작가와의 낯선 만남이여서 그런 것이라 위안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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