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대 소설 수호전·금병매·홍루몽 편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나미 리쓰코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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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렸을 때부터 고전을 읽으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성인이 돼서도 그것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또 고전을 읽으라면 그건 서양 고전이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일까? 최근까지 중국의 5대 기서 즉 삼국지연의를 제외하고 서유기. 수호전. 금병매. 홍루몽(어떻게 하면 고전을 넘어 기서라는 말까지 듣는 건지 중국은 놀라운 나라긴 하다)이 있다는 사실을 거의 잊고 지낸 것 같다.


특히 금병매와 홍루몽은 좀처럼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이 소설이 지구 상에 존재한다는 말을 들은 건 그 옛날 내가 중학생 때였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야하니 이담에 성인이 돼서 읽으라고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도 읽지 않는 건 꼭 잊고 있어서만도 아니다. 난 야한 건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라 그 때문에 더 빨리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아이들은 청개구리 심리가 있으니 정말 이걸 선생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때 당장 읽었으면 어땠을까? 압수당했을까? 그도 그럴 것이 난 그 무렵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학교에서 몰래 읽다가 한쪽 귀퉁이를 선생님께 들켰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선생님은 그 책을 압수하지 않았다. 하이틴 로맨스는 압수 대상인데 말이다. 이유는 한 가지. 로렌스의 소설은 에로티시즘의 고전이라 서다. 하이틴 로맨스는 야한 장면 하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그러니 중국의 5대 기서 중 하나인 금병매와 홍루몽은 어떨지 알았어야 했다. 하지만 쉽게 살 수 있는 책도 아니거니와 한 두 권이 아니었다. 로렌스의 소설도 헉헉대고 읽었는데 그것의 몇 배나 되니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내가 학생 신분이니 서점 주인이 아무리 돈이 궁하다고 해도 팔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로렌스의 소설은 어쩌다 얻어걸린 책이지만 내 취향이 아닌 책을 붙들고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다 최근 이 책이 고맙게도 다시 나와줬다. 원래 요약본이나 좋아하고 그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꼭 무슨 차에 무임승차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읽은 척하는 거, 솔직히 안 읽으면 안 읽었지 지조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누가 알겠는가? 이 책이 마중물이 되어 진짜 정본으로 읽게 될지. 우리가 서평집을 왜 읽는가. 다 그러자고 읽는 것 아니겠는가. 또한 책이 워낙 많으니 아무리 책이 좋아도 다 읽을 수는 없다. 거르고 줄이고 요약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때 유용한 게 서평집이다. 이를테면 요약본도 그런 역할을 훌륭히 잘 해내고 있다.    


아, 근데 이 책 요약본이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책 자체는 500페이지 정도라 결코 얇은 건 아니지만 이 한 권의 책에 수호지와 금병매, 홍루몽을 다뤘다면 요약으로 가능하지 않다. 해설집이었다. 그렇게 보니 저자는 책 하나하나에 꼼꼼한 각주를 더 해 자세한 해설을 했다. 그런 저자의 작업엔 경의를 표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중국 5대 기서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라 호기심을 끌기엔 다소 역부족은 아닌가 싶다. 차라리 요약본을 읽는 것이 기서를 읽는데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관심이 있으면 정본을 읽고 이 해설집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나는 너무 무림의 고수의 이야기 같아 일단 해설집이라도 읽어 봤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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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27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요약해설서였군요. 한권에 다 나오려면 요약서일 수 밖에 없겠네요. stella.k님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stella.K 2019-12-27 19:25   좋아요 1 | URL
아, 서니님. 서재 달인된 거 축하해요.
서니님도 연말 잘 보내시고 희망찬 새해 맞이하시길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박균호 2019-12-27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stella.K 2019-12-27 19:45   좋아요 0 | URL
저는 약간 주저되는데 님께서 읽으시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평점이 높긴한데 각주도 많고해서...;;

수이 2019-12-2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번쩍번쩍! 크크 읽어봐야겠어요!

stella.K 2019-12-27 19:47   좋아요 1 | URL
ㅎㅎ 이거 보다 차라리 요약판에서 정본으로 넘어가는 것이...
요약판이 있더라구요.

hnine 2019-12-28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루몽은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래요. 삼국지, 수허전 같은 것이 한국인에게도 중국 못지 않게 사랑받아오고 있는 것에 반해 홍루몽은 그렇지 않은 편이라서 그게 이상할 정도라고 하더군요. 금병매와 같이 약간 통속적인 내용의 소설에 속하지만 홍루몽이 훨씬 시적이고 중국 전통 문화가 잘 반영되어 있다고요.
그런데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중국에서 TV시리즈로도 여러 버젼으로 만들어졌다니 기회가 되면 중국 드라마로 한번 볼까 생각은 하고 있지요.

stella.K 2019-12-28 06:39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솔직히 전 이 책 내용은 좋은데 재미는 없더라구요.
설명만 많아서 오히려 읽기에 방해가 되었어요.
시작이 안 좋으면 나중에 본격적으로 작품을 읽는데 꺼려되는 게 있어요.
또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남성적 시각에서 쓰였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겠더군요.
금병매와 홍루몽은 몰라도 나머지 3편은 정말 중국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지긴
했어요. 그런데 잘 안 보게 되더군요. 한국 드라마도 헉헉대고 보는지라...
나중에 저도 한번 챙겨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재의 달인된 거 축하하구요, 올해도 변함없이 h님과 소통할 수 있게 되서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희망찬 새해 맞으시기
바랄개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9-12-28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2-29 14:30   좋아요 1 | URL
아유, 그 어찌 민망한 말씀을...
인사도 제가 먼저 드렸어야 하는 건데 번번히 선수를 놓치는가 봅니다.ㅠ
올해도 변함없이 소통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내년에도 무탈하시어 계속 알라딘에서 뵐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한해 수고 많이하셨구요. 내년에도 더욱 복되시길.^^

희선 2019-12-30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 하면 서양 소설이 먼저 생각나기도 합니다 중국이나 한국에도 있는데... 그렇다 해도 고전은 거의 안 봤습니다 stella.k 님은 사춘기 때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보셨군요 선생님은 어떤 책이냐에 따라 빼앗기도 뺏지 않기도 하셨네요 책을 다 본 건 아니라 해도 해설집을 본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stella.k 님 올해 남은 날 편안하게 보내시고 새해 잘 맞이하세요 새해 첫날은 좀 춥다고 하더군요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희선

stella.K 2019-12-30 15:29   좋아요 1 | URL
<채털리 부인...>는 포르노 보단 에로스고 예술 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정말 그걸 모르는 선생님이었으면 압수 당했을 거예요.ㅎ

희선님도 따뜻하고 건강한 새해 맞으십시오.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9-12-31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올해도 좋은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송구영신 예배로 새해 맞으시겠지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후애(厚愛) 2020-01-0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그리고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추운 날씨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편안한 오후 시간 되세요.^^


stella.K 2020-01-01 18:13   좋아요 0 | URL
아유, 부탁은 제가 드려야지요.ㅎ
후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0-01-10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백 쪽이 넘다니 부담스러운 분량이군요. 해설서도 나름대로 읽을 만한 책 같아요. 저도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읽다가 관심 가는 책이 생기면 사 보면 되고요.

몸을 아끼시길 바라고,
새해 건필을 기원합니다.

stella.K 2020-01-10 13:55   좋아요 1 | URL
해설서는 해설서인 것 같아요. 그게 재밌을 리는 없죠.
저는 축약본을 기대했던 것 같아요.
축약본과 해설서는 같은 게 아닌데...

어제부터 손목에 손수건을 대고 키보드를 치고 있는데
좀 낫긴하더군요.
몸에 없던 증상이 하나씩 나타나면 서글퍼져요.ㅠㅠ
한편 더 아프기 전에 뭐라도 해놔야 하는 거 아닌가 조바심도 나구요.
이래서 갱년긴가 싶기도 하네요.
고맙습니다. 언니도요.^^

transient-guest 2020-01-15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와나미 시리즈를 계속 모으고 있는데 순전히 다치바나 다카시 탓입니다.ㅎㅎ 이걸 다 읽으면 비로소 기본적인 교양을 갖추게 된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ㅎ 이번에 저도 이 책을 받았는데 길더라구요. 뭔가 했는데 해설서라니..-__-: 아직 원전을 읽지 못했으니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만 해설서가 500페이지면 무척 길다고 느껴지네요.

stella.K 2020-01-15 18:32   좋아요 1 | URL
금병매와 홍루몽이 같이 있는 거라서 반반이라고 보면
그리 긴 것도 아니죠. 원서에 비하면.
줄거리를 밝히긴 했지만 줄거리는 줄거리라 재미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님이시라면 재밌게 읽으시지 않을까요?^^

후애(厚愛) 2020-01-16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너무 춥지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게 보내세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구요.^^

stella.K 2020-01-16 15:48   좋아요 0 | URL
네. 후애님도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생소설 - 나는 왜 작가가 되었나
다니엘 이치비아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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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리뷰>(번역본 '작가란 무엇인가' 전 3권 있다)라는 잡지가 있다. 1953년 창간한 이래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부커상 등 지구 상에서 더 이상 유명해질 수 없는 상을 받은 작가들을 인터뷰한 것으로 유명한 문학잡지다. 본산은 역시 프랑스가 아닐까? 그런 유명한 잡지가 같은 동향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이하 베베)를 아직 인터뷰하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이렇게 유명한 작가를 아직도 인터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잡지의 인터뷰 조건은 뭐란 말인가. 저 위에 밝힌 조건 중 한 가지의 상이라도 받아야 인터뷰 대상이 되는 걸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베베는 명성에 비해 상복이 지지리도 없는 작가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가 그의 많은 책들을 열거하면서 무슨 상을 받았다는 글 한 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새삼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렇게 이 책의 저자가 그를 인터뷰하고 독자적인 책까지 내줬으니 그럭저럭 위로는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저자는 프랑스 내에서 유명한 전기 작가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 보단 전기적인 느낌이 강한 책인 것도 사실이다. 읽다 보면 무슨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그만큼 문체가 유려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베베를 아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책을 몇 권 읽어본 나로선 그를 싫어하기도 쉽진 않다.(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 건 그의 세계관 때문이다. 특히 사람은 언제든 자의로 생을 중지시킬 수도 있다고 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좋지만 그의 사상까지는 좋아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공상 과학 소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의 공전의 히트작 <개미> 읽고 그를 싫어하기란 쉽지 않다. 30년 전쯤 우리나라에 그 작품이 상륙했을 때 내가 뭐 이런 작품을 읽을 필요가 있나 거드름 피우기도 했다. 그때 후배 하나가 정말 재밌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나는 끝까지 그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언론이 아무리 뒤떠들어도 말이다. 그 책을 읽고 베베에게 매력을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그런 공상 과학 소설에 눈을 떴다는 게 기특하고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우리가 살던 집엔 조그만 집개 미들이 함께 세 들어 살았는데 이것들은 쪼금해도 생명력이 강해서 손으로 눌러선 잘 죽지도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못 쓰는 컵에 물을 받아 놓고 거기에 빠뜨려 죽이는 것이다. 그럼 지네들끼리 엉기다 결국 물속에 빠져 죽곤 했는데 덕분에 집안에 개미가 좀 줄긴 했다. 아무래도 지네들끼리 결의를 했던 것 같다. 사람들 눈에 띄지 말자고. 혹시 눈에 띄면 서로 돕자는 말도. 하지만 왠지 <개미>를 읽고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만큼 개미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탁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작품은 그가 30대 초반의 나이에 냈는데 소년 시절부터 개미를 관찰한 끈기도 끈기지만 관찰력이 대단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 작품 역시 초메가톤급 히트작 <해리 포터>만큼이나 출판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건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우린 흔히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말에 현혹되면 안 된다. 그렇게 출판되기 전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듯 펼쳐지는데 뭔가 마음이 찡한 느낌이 든다. 


언제나 그렇듯 작가는 첫 작품을 어떻게 내느냐와 계속 책을 낼 것이냐로 정해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내지 말라고 말한다. 책 내봤자 읽는 사람도 없고 종이만 낭비한다고 작가가 되겠다는 의지를 어찌나 꺾던지. 더구나 비평가들에게 혹독한 소릴 듣는 건 차라리 낫다. 어차피 비평가들은 좋은 얘기는 안 하니까. 미움받는 것보다 무서운 것이 무관심 이랬다고 독자가 외면하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그래도 베베는 비평가들에게 욕을 먹을지언정 독자들에겐 먹히는 작가였다. 첫 작품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이 첫 작품만큼 성공할 것인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작품을 낸다. 책을 읽어보면 전반적으로 베베의 성격은 호기심이 많고 부지런하며 성실해하다. 이건 확실히 그가 작가가 되기에 아주 좋은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그다지 좋은 평판은 아닌 것 같긴 하다. 아, 물론 베베가 <개미> 이후의 작품이 범작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 그가 한참 뒤에 쓴 <뇌>란 작품을 두 번째로 읽었는데 <개미> 보다 훨씬 재밌게 읽었다. 요는 처녀작 이후의 작품은 더 좋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대체로 신인 작가들은 차기작이 처녀작만 못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의기소침해지기도 하는데 설혹 그런 소리를 듣게 될지라도 개의치 말고 계속 쓰라는 것이다. 작가가 되고 안 되고는 매번 좋은 평판을 들어야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자신이 작가임을 독자에게 계속해서 각인시키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건 차기작이 더 낫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베베는 그렇게 열심히 써서 어느 틈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건 매번 좋은 작품을 써서가 아니다. 그는 몇 번의 부침이 있었다. <개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작품도 워낙 우여곡절 끝에 나왔지만 대개는 비평가들의 혹평과 뭔가 될 듯 될 듯하면서도 안 되는 출판 상황이지만 행운의 여신은 우연히 미소 짓지 않는다. 그건 베베의 독자들에 의해 증명되기도 한다. 그의 독자들은 늘 그의 작품을 기다렸다. 거기엔 또 성실하게 쓰는 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하기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을 돌파하는 건 힘이나 판세를 읽는 영리함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우직한 성실함 같다. 특히 작가의 세계는. 뭐든 열심히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하지만 성실함이란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쉽지 않다.  


베베는 자기 본토인 프랑스에서 알아주는 작가이긴 하지만 해외에서 더 각광받는 작가다. 특히 저자는 베베가 한국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거의 한 페이지에 걸쳐서 쓰고 있는데 과연 그 정돈가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나라가 책을 안 읽을 땐 아주 안 읽어도 이렇게 좋은 작가는 확실히 밀어주는 근성은 있다. 그건 또 달리 말하면 좋아하는 작가에만 쏠려 있다는 뜻도 될 것이다. 또 달리 말하면 그전까지는 이렇다 할 공상 과학 작가들이 없었다 베베는 그 분야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으로도 풀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 영화에도 손을 댄다. 그는 알만한 제작자와 배우와 협업을 하기도 했다.  


하루키를 말할 때 그는 피츠제럴드와 레이먼드 카버와 레이먼드 카버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건 이미 잘 알려졌다. 그렇다면 베베는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았을까? <파운데이션>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와 <듄>을 쓴 프랭크 허버트 그리고 스티븐 킹을 꼽기도 했다. 알아두면 알은척하기에 좋을 듯하다.


베베는 어느 대학의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베르나르는 학생들에게 동물들이 하는 것처럼 그 어떤 목표도 세우지 말고 무엇인가를 하며 순수한 기쁨을 느껴 보자는 제안도 했다. 무엇인가를 할 때 판단하지 않고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꿀벌은 꿀을 만들 때 좋은 꿀을 만들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꿀을 만들어낼 뿐이죠. 여러분도 음악이든 그림이든 문학이든 무엇인가를 할 때 괜찮은 것인지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해보세요!" (316p)

나처럼 생각이 많아 한 발을 내 딛기도 힘든 사람에게 정말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를 잘 대변해 주기 도하는 말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하는 작가라면 꼭 읽어 봐야 하지 않을까. 


약간 아쉬운 점은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처럼 문단줄 띄어쓰기가 너무 빈번하다는 것인데 웹은 쉽게 눈이 피로해지기 때문에 줄을 띄어 쓰는 게 좋은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종이책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또한 느낌표의 과다 사용도 보이는데 확실히 글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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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0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2-10 14:3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전 글 쓰기가 점점 더 좋아지는데
실제로 쓰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근데 전 이상하게 나 좋자고만 쓰면 더 못 쓰겠더라구요.
뭐든 리액션이 중요하다고 누군가 내 글을 좋아하고 추임새 넣어주면
잘 쓸 수 있는데...ㅎㅎ
고맙습니다.^^

빵굽는건축가 2019-12-1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엔 또 성실하게 쓰는 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하기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을 돌파하는 건 힘이나 판세를 읽는 영리함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우직한 성실함 같다‘ 성실함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와요. 출장길에 재미나게.읽어봅니다.

stella.K 2019-12-10 14:35   좋아요 1 | URL
아유, 이렇게 열심히 읽어주시다뇨. 황송하네요.ㅎ
어제 저 리뷰 쓰느라고 팔목이 고생 좀 했습니다.
급하게 쓰느라 뭔가 미진한 게 있는 것 같기도한데 나중에 손 좀 봐야겠어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19-12-1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미국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liberal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살이나 섹스에 대한 그의 논조는 무척 프렌치스럽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그의 기발한 발상도 그렇지만 타나토노트를 읽고 처음 느낀 유체이탈의 경험이 신기했습니다. 그만큼 제가 푹 빠져 읽었던 것도 있지만 글에는 (약간은 미신적/주술적인 이야기) 뭔가 힘이 깃든다는 말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리고 지금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K-Pop의 한국 이전부터 한국을 다뤄준 것도 기억이 나네요. 보통 아시아가 서양작가의 책에 등장할 땐 중국 아니면 일본이던 시절부터 말이죠.

stella.K 2019-12-10 14:3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세계관이 쫌 그래요.
동양사상 그중에서도 장자인지 도교에 심취해있다고 하던데...
하지만 그의 소년 같은 지적 호기심은 높이 사 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베베하고 우리나라 정서하고 뭔가 잘 맞는가 봐요.
유독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군요.

카알벨루치 2019-12-1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베배 글 하나도 안 읽었네요 ㅎ

stella.K 2019-12-19 15:46   좋아요 1 | URL
헉, 의왼데요? 저 같이 공상과학 소설 잘 안 읽는 사람도
베베의 책 한 두 권은 다 읽는데...
저는 그의 초창기 소설을 추천합니다.
<개미>나 <뇌>는 정말 훌륭하죠. 후기로 갈수록 별론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노력하는 작가임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혼밥 자작 감행 - 밥도 술도 혼자가 최고!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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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고 먹는 게 중요하긴 한가 보다. 못 먹던 시대는 못 먹던 시대대로, 잘 먹는 시대는 잘 먹는 시대대로 고민이 많다. 그것은 영양학적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우리는 이 문제가 해결이 되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자 먹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됐다. 바로 혼술, 혼밥이 대세인 시대가 된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같이 어울려 먹는 것이 피곤하단다. 게다가 같이 먹으면 메뉴를 통일해야 하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없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혼밥, 혼술이 대두되기 이전엔 우리가 중요했지만 이젠 내가 중요해졌다. 과연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간다. 먹는 주체는 난데 왜 남의 뜻에 묻어가야 한단 말인가. 미워하면서 진수성찬을 먹기보다 한 가지의 음식을 먹어도 편한 마음으로 먹자는 의미에서 혼술, 혼밥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혼자 먹는 게 꼭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뭐든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 같이 먹는 것이 불편한 사람은 혼자 먹어도 불편하고, 혼자 먹는 것이 즐거운 사람은 같이 먹어도 즐거울 것이다.


좋으나 싫으나 매번 혼자 먹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자발적인 건지 아니면 이런저런 사정 때문인지 아무튼 혼자 먹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책도 냈겠지. 보통의 내공 가지고 이런 책이 나올 리 없다. 우리나라엔 잘 안 알려진 작가다. 일본 내에선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일을 하는가 보다. 


나이가 많으니 혼자 먹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할 것도 같은데 그렇지도 아닌가 보다. 책 한 권을 낼 정도니 말이다. 하긴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하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느 식당에서 여든 넘은 노인이 혼자 술이나 밥을 먹는다고 하면 예사로 보지 않을 것이다. 이 시간에 왜 혼자 와서 저러고 있는 걸까, 독거노인인가, 배우자와 싸우고 갈 곳이 없나, 왠지 쓸쓸해 보이네 등등. 하지만 저자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 당당해지라면서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한다.   


사람은 태어나 엄마 젖을 빨 때부터 혼자 무엇을 먹도록 되어있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교감이란 말이다. 하지만 자라면서 매번 사람들과 뭔가를 먹을 수는 없다. 집에서라면 문제가 없겠는데 문제는 학교나 직장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왠지 혼자 먹으면 어색할 거란 사회적 편견이 이런 책을 낳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두 개의 TV 영상이 생각났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한 외국인이 혼자 점심을 먹으러 어느 식당에 들렀는데 그곳 주인이 자신을 되게 안쓰럽게 보고 있어서 불편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또 하나는 한물간 어느 아이돌이 혼자 어디까지 놀아 볼 수 있을까 레벨 테스트를 하는 장면이었다. 혼고라고 해서 혼자 고기를 먹는 게 혼밥, 혼술 보다 훨씬 높은 레벨이었다. 그는 좀 어색했긴 했지만 혼고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안도하는 모습이다.  


전자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서양에서 온 외국인이 었는데 알겠지만 서양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곳 아니던가. 그러니 식사를 혼자 하는 것쯤이야 아무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을 두고 우리나라 잣대를 들이대 외롭지 않을까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건 괜한 오지랖을 넘어 무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후자의 경우 그렇게 어색한 걸 통과했다고 좋아하느니 차라리 고기를 사서 집에서 먹거나 마음에 맞는 사람 한 둘과 같이 오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 아이돌이 고기를 함께 먹을 사람이 없으리만큼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요는 혼자 먹든 같이 먹든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다는 거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혼밥은 누구도 피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일수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독신으로 살게 될 때다. 혼자 있으면 밥을 잘 안 먹게 된다. 먹어도 대충 때우거나. 중요한 건, 그럴수록 더 맛있게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돌아가신 친할머니는 일찍 홀로 되시기도 하셨지만 또 일찌감치 자식들을 출가시키기도 하셨다. 연로하시니 이젠 누군가 차려주는 밥을 드셔도 좋을 텐데 그러지 않으셨다. 혼자 지내시기 뭐해 세를 두기도 하셨지만 그렇다고 그 세든 사람과 밥까지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할머닌 언제나 밥과 반찬을 손수 만들어 꼭 밥상에 받혀 안방에서 드시곤 했다. 어느 한 끼도 부엌 부뚜막에 앉아 대충 때우시는 법이 없으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야 말로 진정한 혼밥의 고수는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는 80을 넘겨 사셨으니 옛날 노인 치고 장수하신 편이다. 매번 그러기가 쉬웠겠는가. 어쩌면 할머니에게 혼밥은 하나의 수행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드니 그런 할머니가 많이 생각이 난다. 나도 과연 할머니같이 살 수 있을까. 


사실 난 예나 지금이나 혼밥이 그리 익숙하지 못하다. 물론 집에서는 전혀 문제가 안 되지만 바깥에 나가서 혼자 무엇을 먹는다는 게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요즘엔 식당 어디를 가도 혼자 먹는 사람 한 둘은 꼭 보게 되니 닥치면 잘한다. 오래전 혼밥 혼술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 나는 갑자기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 정말 혼자 식당에 들어가 먹고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누구와 같이 먹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혼자 먹는다는 불편함 감수할 만큼 김밥이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먹는 내내 '까짓 거 혼자면 어때 이렇게 맛있는 걸.' 하며 혼자 먹는 나를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거기엔 TV가 한 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건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다소 편하게 해 준 것도 사실이다.       


책을 보면 혼식에도 나름의 요령은 있는 것 같긴 하다. 이를테면 주인이 너무 친절한 식당은 가지 말란다. TV는 필수고, 읽을거리를 챙겨 가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밝은 곳이나 깔끔한 곳 보단 다소 허름한 곳에 가급적 화장실이나 출입구 가까운 구석진 곳에 앉으라고도 한다. 저자가 우리와 가까운 일본 사람이고 보면 정서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게 챙겨서야 어디 편하게 식당인들 갈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조차 버려야 진정한 혼밥인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럴 수 없다면 거듭 말하지만 차라리 그냥 혼자 집에서 먹어라. 그게 훨씬 낫다. 


이 책은 정서가 비슷한 우리나라에선 어느 정도 읽힐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 사고방식이 다른 앞서 말한 서양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난 이 책을 다 완독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어느 유명 셰프가 재밌다고 극찬해서 호기심에 읽었는데 별로였다. 같은 동양권이라고 해도 먹는 음식이 다르고 낯서니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혹시 우리나라 어느 미식가가 쓴 책이라면 좀 읽어 줄만 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호불호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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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2-0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혼밥 마니아는 음식을 천천히 먹을 줄 아는 사람이에요. 대부분 사람은 음식을 빨리 먹는 편이에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빨리 먹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제가 혼밥을 선호하는 이유는 음식을 천천히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건강을 위해 음식을 오래 씹으면서 먹어야 해요. ^^

stella.K 2019-12-02 14:23   좋아요 0 | URL
맞아. 그리고 아무거나 대충 때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만들어 먹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겠지.
우리 할머니처럼.^^

페크pek0501 2019-12-0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밥 먹으면 맛을 깊게 음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누군가와 먹으면 말하면서 먹느라 들으면서 먹느라 맛 음미가 소홀해질 수 있죠.
커피도 그렇더라고요. 누구와 만나 마시면 정신 없이 마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느 나라의 음식점에선 말없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규칙이 있대요.

stella.K 2019-12-04 14: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게 가장 좋은 혼밥의 자세일 거예요.
그런데 이 책은 어떻게 하면 혼자 먹는 그 머쓱함을 최소화
할거냐 뭐 그런 거에 촛점이 맞혀진 듯하고 나머지는
무슨 요리는 이렇더라 저렇더라며 소소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생각 보다 재미가 없더라구요. 제가 일본 요리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불자들이 바루공양하는 건 정말 좋은 모습같아요.^^

후애(厚愛) 2019-12-04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점심때만 혼자 밥을 먹는데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혼자 먹을 때는 너무 급하게 먹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대충 먹어요.
같이 먹을 때는 이것저것 만드는데 이상하게 혼자 먹게 되면 요리도 하기 싫고 대충 먹게 되네요.

많이 춥습니다.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stella.K 2019-12-04 18:47   좋아요 0 | URL
ㅎㅎ 먹는 것도 성격 나름이긴 해요.
어떤 사람은 혼자인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후애님처럼 누군가를 즐겁게 해야 비로소 나도 즐겁게 되는.
좋은 성격이이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음식을 이것저것 한꺼번에 못 만듭니다. 너무 힘들어
한 두 가지만 만들어 먹는 타입이죠.

그러게요. 올 겨울도 별로 안 추울 거라고 하긴 하는데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네요. 후애님도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후애(厚愛) 2019-12-06 17:20   좋아요 0 | URL
정말 올 겨울도 별로 안 추울 거라고 하더니 옆지기 때문에 오전에 병원 갔었는데 많이 추웠어요.
이런 날씨에는 따뜻한 방에서 귤을 먹으면 책과 시간 보내는 게 딱인 것 같습니다. ㅎ
따뜻하게 주말 보내시고요, 항상 건강하세요!!!!^^

stella.K 2019-12-06 20:36   좋아요 1 | URL
오늘 모처럼 중고샵 갖다왔는데 춥긴 춥더군요.
우리나라 추위가 시베리아 추위보다 더 춥다고하는데
안 가 봐서 모르겠고 그래도 몇분 지나면 곧 익숙해지던데요 뭐.ㅋ
후애님도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서니데이 2019-12-07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은 혼자 밥먹는 것도 영화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약속이 생겨서 친구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혼자 편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더라구요.

12월이 되니, 날씨가 이젠 진짜 겨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제는 정말 차가웠어요.
갑자기 날씨가 차가워져서 감기 걸린 분도 많으시대요.
steall.K님,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transient-guest 2019-12-0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술은 좀 합니다만 혼밥은 귀찮아서 대충 때우게 됩니다 그냥 뭐 싸가거나 사갖고 와서 사무실에서 편히 먹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편한 걸 최고로 치게 됩니다 ㅎ

stella.K 2019-12-09 12:58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술 먹는데 안주는 간단하잖아요. 땅콩 하나만 있어도 안주가 되니.
혼밥은 귀찮긴 해요. 그래도 요섹남이라고 요리 몇 가지는 알아두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ㅎㅎ

transient-guest 2019-12-10 09:39   좋아요 1 | URL
아 혼밥여부와는 별개로 제가 요리는 좀 합니다 ㅎㅎ 뭐 잘 한다기 보다는 이것 저것 그냥 할 줄 아는 정도 ㅎㅎ
 
하루키의 언어 - 더없이 꼼꼼하고 너무나 사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어 500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도젠 히로코 엮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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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600페이지가 넘는 것을 보고 솔직히 좀 식겁했다. 어느 정도 도톰한 책을 선호하긴 하지만 6백 페이지는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하루키의 많은 저작물을 생각할 때 6백 페이지는 결코 두꺼운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발췌독을 하게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받고 보니 풋 웃음이 나왔다. 책 모양이 좀 특이한데, 손바닥만 한 단어 카드 묶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정말 "야레야레, 하루키."란 말이 절로 나온다. 여기서 야레야레란 "이런, 이런" 뜻이라고 한다. 


사실 난 하루키의 작품을 그리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 번씩 하루키에 관한 책이 나오면 관심이 간다. 세상엔 저명한 작가들도 많고 그 작가의 저작물은 물론이고 그에 관한 책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하루키만큼 많이 나오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하루키 한 사람에 대한 부가가치는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오죽하면 이젠 하루키스트 또는 무라카미 주의자란 말이 있을까. 이만하면 (전에도 느끼긴 했지만) 그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도대체 하루키가 누구라고 글 깨나 쓰는 먹물들은 그에 관한 책을 쓰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일까. 이 책도 보라. 사전식으로 정리하긴 쉬운 일인가.


그런데 반해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막상 하루키 자신은 자신이 이룬 문학적 업적에 대해 덤덤한 자세를 견지한다. 그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특별한 표정이 없다. 웃는 얼굴도 없지만 찡그리는 것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을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책을 쓰고 번역을 했음에도 글쓰기가 천명인 양 흔들림이 없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다면 앓는 소리나 잰 척을 해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을 텐데 그는 항상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난 그저 내가 할 일을 할 뿐인데 뭐가 문젠 가요 하는 식이다. 글쎄, (너무도 유명한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젊었던 어느 날 야구장에서 튀어 오르는 야구공을 보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날부터 글을 썼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 마음을 매일 골 천 번을 먹어도 끝내 어느 지점에서 절필하고 문단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작가도 수두룩 빽빽한데, 어떻게 하루키는 나이 70이 넘도록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그처럼 많은 사람들의 총애를 받는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는 야구공이 튀어 오르는 순간 우리가 모르는 번개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 번개 말이다.


아무튼, 그런 하루키의 한결같음을 재수 없어하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하지만 하루키가 그와 정반대의 사람이 되어도 똑같이 싫어하지 않을까? 또 누구는 하루키가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건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 배어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앞서 말한 대로 그의 작품을 별로 즐겨하진 않지만 하루키 자체는 존경하는 쪽이다. 이 세대가 어떤 세대인가? 책을 정말 안 읽는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일본도 책을 안 읽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그것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꾸준히 글을 썼고 책을 냈다. 내가 그를 존경하는 건 그것이다. 그의 문학적 업적 때문도 아니고, 그가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기 때문도 아니다. 꾸준히 책을 낸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어떤 신인 작가 또는 작기 지망생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어도 그의 시작은 데뷔작 한 권에서 시작이 되었을 테니까.   


그는 이제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하나의 왕국을 건설했다. 그야말로 하루키 월드다. 거기에 하루키스트도, 무라카미 주의자도 있는 건 당연해 보인다. 우리는 일본의 모든 것을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하루키만큼은 싫아할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하루키만 추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역시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갖기까지 실상 미국 문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니까. 특히 스콧 피츠제럴드.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스트, 하루키언을 자처할 때 그는 피츠제럴드언이었다. 그는 미국 문학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미국 작가들의 작품만 번역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루키를 따라서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책을 보면 하루키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번역을 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는 번역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하루키스트가 되려면 정말 바쁘겠구나 싶기도 하다. 영어도 잘하고, 번역의 기술도 배워야 할 테니. 뭐 그게 아니어도 하루키가 좋아한다는 미국 문학은 꿰뚫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에 관한 책들이 많기도 하지만 이렇게 사전식으로 일목요연하게 나오기는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개인적으론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저마다 온도차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키에 대해 웬만큼 아는 사람은 이 책이 뭐 대단한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은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취약한 점도 없지 않다. 즉 내가 알고 이해한 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장편 같은 경우 이 사람이 그 사람 같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 맞나 작가의 서사를 따라간다는 게 가끔 버거울 때가 있다. 물론 독자의 자유 중 오독의 자유도 있다지만 딴 데 가서 남의 다리 긁고 있는 것도 작가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그 책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어느 정도 알면 오독률을 줄여 볼 수도 있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읽은 척할 수도 있을 테니 이런 책 한 권쯤 옆에 끼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매 페이지마다 삽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것도 꽤 즐길만하다.

 

참, 우리가 언제부턴가 자주 쓰는 '소확행'은 알고 봤더니 하루키가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글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 뜻으로 처음 쓰기 시작한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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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0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0-10 19:4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정말 작죠?
소설 싫어하는 사람은 하루키 정말 최악일 수도 있어요.
실제로 오래 전 저 아는 사람은 읽다가 머리에 쥐났다고 하더군요.
근데 전 이 책 정말 괜찮았어요.아무 생각없이 읽기만 하면 되니깐요.ㅋ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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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의 책을 읽으니 내 안에 책 읽는 뇌가 모처럼 세로토닌이 발산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읽으면서 문득문득 이윤기처럼 살면 좋겠다 싶다. 인생을 흔히 고해니 고통의 연속이니 하며 세상 못 살 것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꼭 그러기만 하겠는가? 인생은 유레카다. 발견에서 기쁨을 누리고 희열을 느끼는. 그런 것 없이 재미없어 어찌 살겠는가.


그는 책에서 자신에겐 행복한 징크스가 있다고 했다. 그는 뭔가에 관심이 생기면 꼭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여건과 환경이 생긴다고 했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작가와 번역가로서 어떤 책이나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꼭 출판사로부터 그 분야에 대한 번역이나 조사를 의뢰받는다고. 원서를 정독할 절호의 기회가 생기고,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즐거움에 출판사에선 돈까지 준다고 하면서 '책 읽기', '책 옮기기'에 관한 한 자신은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쯤 되면 그는 꽤 행운아처럼 느껴진다.


이왕 행운아란 말이 나왔으니 잠시 생각해 보자. 그거 왠지 내 것이 아니고 남의 것만 같다. 그렇지 않은가? 남은 그렇게 좋은 일이 많이도 생기는데 나만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행운도 하늘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작가 이윤기는 자신이 그럴 수 있기까지는 어느 정도 떠들고 다닌다고 괄호 쳐 놓고 얘기한다. 작가의 괄호 친 말은 보통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참고로 밝혀둘 때 쓰이기도 한다. 우린 바로 이런 괄호 쳐 놓고 하는 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고 행운이라는 것도 그냥 가만히 있는데 굴러들어 오지 않는다. 그것도 알고 보면 준비된 자에게 들어온다. 그러니 행운을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떠들어라. 그래야 행운이 알아듣고 그 사람에게로 갈지 모른다.


그런 것을 보면 난 왠지 작가가 인생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겸손하게 말해 '행복한 징크스'란 것이지 알고 보면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가는데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즉 좋게 말하면 책략가고, 나쁘게 말하면 꾀돌이라고나 할까.


거기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야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관심 있어하는 쪽은 늘 책이었다. 그는 60년 대 초 한 출판사에서 초등생을 겨냥한 각각 100권짜리 소설 전집과 위인 전기을 읽으면서, '일찍이 나에게, 장차 무슨 짓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다고 술회한다. 그의 입말이 참 좋다. 무슨 짓을 하면서, 어떻게 사냐니. 


그러고 보면 꽤 일찍 발견한 것 같다. 그것을 발견하고 가슴은 얼마나 뜨거웠겠는가. 그리고 그건 훗날 번역으로, 신화 연구로, 소설가로 아깝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직함으로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지만,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기는 그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와 움베르고 에코의 여러 소설 그중에서도 <장미의 이름>을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희랍인 조르바>의 번역은 그 말고도 몇 명의 번역자들이 더 있다. 그리고 이윤기를 포함해 대부분 영역을 번역한 것으로 아무리 번역이 뛰어날지 몰라도 중역의 오명을 피하지 못한다. 게다가 완역본도 최근에야 나왔다. 물론 난 아직 그 누구의 번역본으로도 읽지 못했지만 그 누구의 번역본을 읽는다면 이윤기 번역본은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그의 번역본이 갖는 아우라가 결코 작지 않으며, 그 역시 그 소설은 자기 문학의 '성서'라고까지 했다. 그러니 이윤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번역본을 읽지 않는다면 그건 그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또 그래서일까? 이윤기에게서 왠지 조르바의 느낌도 나는 듯하다.(나는 책으로는 못 읽었지만 영화로는 봤다. 영화 속 조르바 역을 맡은 앤서니 퀸은 그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에서 조르바의 그림자를 느낀다는 건 엉뚱하게도 그가 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 번역을 언급할 때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당연 이태리어로 글을 썼겠지만, 그는 이태리어를 번역했던 것이 아니고, 영어로 된 것을 번역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번역은 철학자 강유원 박사로부터 찬사와 오명을 동시에 받는다.


옛날 일제 강점기 아무리 유명한 작품도 영어나 일어를 중역으로 하더라도 그게 그렇게 흉이 안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독자들의 욕구가 높아져 중역은 웬만해선 읽지 않으려고 한다. 게다가 우린 학(學)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가. 물론 학문을 중요시 여기고 그것에 완벽함을 기하는 거야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다가 사대주의에 갇힐 수도 있다.  


그도 자칫 그럴 뻔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말하는데 무엇으로 반박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으로 한쪽 구석에 조용히 있으면 그건 우리가 알던 이윤기가 아니다. 그는 에코의 소설을 비롯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독과 오역으로 인한 질타 속에서도 '중세 이후 유럽의 예술가들이 그토록 다양하게 변주하던 신화에 대해, '창'을 '도끼'라고 썼다고 해서 '문화를 오역한 자'로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111p)라며 반박했다. 그는 어쩌면 학적인 완벽함보다 사상의 자유로움이 더 중요함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다. 그것이 문득 자유인으로 살았던 조르바와 오버랩되기도 했다.


그는 무엇이든지 마음먹은 일은 하고야 마는 성격이다. 우리나라는 단편이고 장편이고 소설을 쓰는 사람이면 무조건 다 '소설가'라고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오직 장편을 쓰는 작가에게만 그 이름을 허락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라이터(글 쓰는 사람 정도)만을 허락할 뿐이다.  그는 거기서 충격을 받았을까? 나중에 기어이 장편소설을 쓰고 기어코 노블 리스트가 되었다. 그건 좀 우리나라도 배워야 할 것 같다. 미국만 해도 그렇게 장편을 쓰는 소설가를 대우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장편을 꺼려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스스로 소설은 죽었다고 말하는 건 바로 이런 분위기가 배면에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까. 쓰기도 전에 패배의식부터 갖게 되는 이 분위기는 언제쯤 걷히게 될지. 이윤기 작가는 그것을 결단코 허용하지 않는다. 소설 가지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생각을 하냐고 오히려 나무라는 듯하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 문학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이 책 곳곳에 깔려있다. 문득 답답해지거든 문학 선배로서의 그에 대한 생각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호기심이 많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싶다.


책을 읽으면 그가 글을 쓰는지, 말을 하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쉽게 쓴다. 한마디로 착착 감긴다. 그걸 두고 껍진껍진한 입말이라고 한다는데,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싶은 대로 쓰는 구어체 즉 입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앞으로 글의 추세는 이렇게 갈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작가 박경덕은 생각하는 대로 글을 쓰지 않고, 말하고 싶은 대로 쓴다는 '말글'로도 설명하고 있는데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지식욕이 대단했다. 그것이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욕구만으로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아 보인다. 지구의 한 귀퉁이에 틀어박혀 숨만 쉬고 살지 말자. 그런 욕구가 있어야 세상을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살 수 있다.


그런 욕구로 그는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오래 장수하며 살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했다. 지금도 그는 책상에 앉아 번역에 몰두하던가, 지중해 어딘가를 헤매고 다닐 것만 같은데 말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꽤 된듯하다. 아직도 그의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게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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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07-1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새 리뷰를 쓰셨네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노땅 소리 듣겠지만
분명 요즘 작가들은 스텔라님 어린 시절보다 넓이는 모르지만 문학적 깊이에서
작가적 역량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시절 문학이 주는 감동을 퍼스널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고 나서
게임이나 스마트폰 검색 같은 생활 유희가 문학의 자리를 대체했기 때문이죠.

더 이상 이윤기 선생 같은 분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 문학적 토양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이윤기 작가의 부재가 더 아쉽습니다.
스텔라님도 공감하시죠.


stella.K 2019-07-16 15:05   좋아요 0 | URL
그리 말씀해 주시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이곳에 따로 글을 올리지 않아도
아깝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잘못 생각했네요.
그러면 니르바나님과 이렇게 안부 인사도 못하는 건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잘 지내시죠?

맞아요. 이윤기 작가는 정말 아타까운 작가입니다.
언젠가 EBS에 나와 인문학 강의도 했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지금도 선명한지.ㅠ

2019-07-1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6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16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처음 자전거를 탄 딸을 위해 선생이 자전거를 뒤에서 밀어주는 일화가 나와요.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은 그 일화를 언급하면서 자신을 ‘신화를 처음 읽는 독자를 위해 천천히 뒤에서 밀어주는 존재’라고 묘사했던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중학생인 저를 신화의 세계에 갈 수 있도록 천천히 밀어준 분이 이윤기 선생이었어요. 그 분 아니었으면 신화에 대한 매력을 몰랐을 거예요. ^^

stella.K 2019-07-16 19:58   좋아요 0 | URL
맞아. 나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분을 통해 알게 되었지.
그리고 소설도 읽고, 에세이도 읽었는데 후회해 본적이 없어.
아직도 읽은 책 보단 안 읽은 책이 많은데
따님하고 쓴 플루타크 영웅전인가? 그게 여러 권 있더군.
근데 출판된지가 꽤 돼.
언제고 이분의 선집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도 따님이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어.
참 아까운 분이지.

서니데이 2019-07-18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선생은 번역서가 많지만, 이 책은 번역서가 아닌 이윤기 선생의 책이네요.
오늘 날씨 많이 더웠는데 잘 보내셨나요.
편안한 밤 되세요.^^

stella.K 2019-07-19 14:03   좋아요 1 | URL
직접 쓴 글이 생각 보다 많아요.
원기왕성한 분이죠. 전 항상 비실비실인데.ㅠ
여러모로 부러운 분이시죠.

페크pek0501 2019-07-2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의 출현이십니다. 환영합니다!!!!!

이윤기 선생의 작품을 저도 몇 편 읽었어요. 그의 부고 소식에 안타까웠던 게 생각납니다.

stella.K 2019-07-21 19:54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잠깐 짬을 내어 올렸습니다.
읽기는 오래 전에 읽었는데. 올핸 이상하게 완독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그날 그날 내키는 대로 읽고 있습니다.
그래야 제 방에 쌓아둔 책들 손떼라도 묻혀 보겠더라구요.
물론 이 책은 완독했습니다. 오랜만에 이윤기님의 책을 읽으니
좋더군요. 더구나 이런 글쓰기 책을 좋아하거든요.^^

2019-08-13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3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