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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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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맛은 역시 좀 씁쓰름하지 않은가?

나의 출생년도는 58년 개띠 만수산 4인방 보다야 훨씬 뒤에 태어난 사람이긴 하지만, 나 역시 베이붐 세대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 때 우리반은 98명이던가 97명으로 졸업했었다. 한때 99명까지도 갔었고 중간에 전학간 놈이 있어서 끝내 100명을 채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졸업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난 친구 사귀는데는 별재주가 없었다. 그냥 가만 있어도 따라붙는 놈은 따라붙고 떨어져 나갈 놈은 떨어져 나갔다. 유독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쉬는 시간 몇분 동안에도 할 일이 없어 책상 서랍안에 넣어놨던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책 읽는 속도가 워낙 느려 두 페이지만 읽으면 아쉬운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그 재미없고 따분한 교과서에 눈을 박아야 했다.

그때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엔 어린이 위인전기도 제법 읽어 제꼈던 것 같다. 그때 어린이 위인전기는 요즘의평전과는 달라서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으로 그 사람의 업적을 미화시켜 놓은 게 거진 대부분이다. 묘하게도 난 은희경의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 꿈을 키우는데 일조한 어린이 위인전기를 떠올렸다.

물론 지금 잘 나간다는, 이 책의 제목식으로 말해보자면 메이저리그의 사람들이 자신이 성공한 요인 중에 어렸을 때 위인전기를 읽어서 많이 읽어서 성공했다고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읽었던 위인전기들은 우리가 메이져리그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래왔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미소가 나왔다.    

왜 사람들은 메이저리그로 진출하지 못해 안달일까? 그리고 한쪽에선 그렇게 몰지 못해 안달하는가? 세상엔 성공한 사람보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고, 영어를 기똥차게 잘하는 인간군 보다 영어를 기똥차게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컴퓨터나 자가용을 굴리는 것도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보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런데도 매스컴은 늘 잘난 놈에게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대길 더 좋아한다.

물론 가끔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댐으로 대중의 동정심을 유발하고 언론이 이렇게 자비심이 있다는 것을 들어내길 서슴치 않은 때도 있기는 하다. 매스컴은 이렇게 극단의 삶을 보여주는 것엔 원만큼 이력이 붙어버린 모양이다.

요는 성공도 실패도 하지 않고, 속물이면서 애처로움을 가진 그러면서도 성공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과 성공이 의미하는 게 뭐지라고 묻는  메이져리그의 사람들에겐 얄짜가 없다. 왜? 특징이 없거든. 그런데 그 사이를 헤집고 그들의 삶은 어떠한가? 특별히 58년 개띠들의 삶은 어떠한가를 사회적이면서도 개인사적으로 조명해 보는 작업을 시도했던 것이 이 책이었단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은희경 씨는 참 똑똑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매스컴의 사각지대 또는 검정과 백색을 조합해 놓은 흑색의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잘도 그려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본인도 58년에서 약간 비껴난 59년 생이면서 어찌보면 같은 세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조금은 감상에 젖을 법도 한데 작중화자인 김형준의 생각을 빌어 그 시절의 사람들을 잘 조망해 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 소설에 등장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지 않가는지도 모른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성공이란 게 뭔지도 모르면서 떠밀면 떠밀리는대로 어떨결에 나이먹고 사는 얼떨리우스들이 아닌가. 그리고 그게 인생이라고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 같다.

만수산 4인방도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새 흩어지고 헤어지고 헤어졌다간 다시 만나고, 먼저 죽고, 그 죽음을 바라봐줘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모습도 많이 달라졌고. 나는 책의 말미에 다다를수록 전에도 그런 생각을 가끔하지만, 나의 학교 때 같은 반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되어있을까를 생각해 보곤한다.

반에서 뿐아니라 전교에서 기고 뛰고 날랐다는 아이들, 난 그들이 한번쯤은 TV나 신문의 한 귀퉁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 있을까? 병이나 사고로 죽은 녀석들도 있겠지. 그들을 다시 만났다고 해서 "와 살아있었네!"하며 와락 끌어 안아줄 친구는 몇명이나 될까? 등등. 암튼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게 만들었다. 

인생 별거 있겠는가?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서도 작가의 관조적 문체가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자기에게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멈추고 돌아보니 그렇게 의식없이 보내버린 시간이 쌓여서 바로 자기 인생이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뭐라고? 나는 좋은 시간이 오길 바라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인생다운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는데, 그런데 내가 무턱대고 살아왔던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이었다고?(53p) 이런 문체가. 그리고 작중화자가 나를 많이 닮아있는 것 같아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ㅋㅋ.
 
이 책을 덮으면서 초등학교 시절 친구따라 갔던 교회 주일학교 교사 였던 어느 여 선생님이 생각이 났다. 그때는 초여름이 었고 수련회 준비를 했어야 했던 모양인데, "제가요 58년 개띠라서 더위를 유독 많이 타거든요."라고 말했던 그녀. 지금은 50을 바라보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있겠지.
 
그리고 어쩌면 중학교 때까지 다녔던 단골서점의 펑퍼짐한 체구의 주인아저씨도 그 언저리쯤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아저씨는 "인생이 재미가 없어."라고 말하곤 했었는데 이 책 읽으면서 그 아저씨가 유독 많이 생각났다. 지금쯤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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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2-0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개띠이야기를 개띠해에 읽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감우성과 이준기가 모두 개띠라는 걸 신기해했던 기억이....

stella.K 2006-02-0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마태님, 저는 어떻게 쓰면 마태님의 추천을 받아볼 수 있을까요...?ㅜ.ㅜ
 
에펠 - 상상의 힘으로 근대 유럽을 건설한 19세기의 공학 천재
데이비드 하비 지음, 이현주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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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부턴가 나는 집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복부인이 되겠다는 말은 아니고, 인간이 살기 위한 기본 요건, 즉 의.식.주 중에 이 주(住)에 해당하는 건축이 어떻게 발전해 가는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 내가 '건축'이란 것에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됐고, 건축과 인간과의 관계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고 싶어졌다.

건축과 인간과의 관계를 알려면 즉 인간이 건축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발전시켜 왔는가를 알필요가 있을 것 같고 그에 관련된 평전을 읽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 뽑아 든 것이 이 책이다.

무식함을 자랑하는 것 밖엔 되지 않되는 거겠지만,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이 이 구스타브 에펠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잊고 있었거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굳이 뉴욕 맨하탄에 있다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그 곳에 가지 않아도 그것이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있는지는 뻔히 알면서도 이것을 만든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새삼스럽게 알게 됐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 온 걸까 쓴웃음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 내가 별천지에 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좀 변명 같을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새삼스럽게 느낀 건 내가  이렇게 건축물에 무지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건 건축물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과 동양의 사고 방식이 달라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생각해 보라. 뭐든 '동양 최대' 내지는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탑에 대해서는 그리도 생각이 없는걸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탑이 다보탑 정도인데 그것은 저 프랑스의 에펠탑에 비하면 그 높이나 규모면에선 새발의 피도 안되 보인다. 더구나 불교의 융성기와 쇠퇴기를 반복해 오면서 그것은 역사의 유물이 된지 오래다.

차라리 정서상 가까운 건 돌탑이다. 누군가 오며 가며 소원을 비는 마음으로 하나씩 쌓아 올렸다던 이름없는 돌탑이 우리에겐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세상에 누가 한 나라를 상징하고 그 이름에 개인의 이름을 붙이고, 그 탑으로 돈을 벌어 들일 생각을 했겠는가? 탑은 우리에겐 그저 하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바라는 정령(情靈)이 깃든 상징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탑의 진정한 의미는 신화의 상징이고 인간 욕망의 상징은 아닐까? 구약성경을 보면,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의 한 족속이오, 언어도 하나임으로 이 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하여금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5~7)

이것은 인간의 오만함을 드러낸 바벨탑 사건을 묘사한 것인데 그만큼 탑엔 인간의 욕망이 함축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구스타브 에펠도 자신의 이름을 딴 탑을 세우기까지도 만만치 않은 난항이 있었다. 당대 지식층들은 노골적으로 탑 건설을 반대하기도 했고, 그에 못지 않게 찬성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탑에 대한 애증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죽했으면 잘 알려진 사실로, 소설가 서머셋 모옴은 에텔탑이 보기가 싫어 그 안에서 식사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지 않는가. 그만큼 에펠탑은 프랑스 어딜가도 보일만큼 높이 세워져 있음이 분명한가 보다. 그러니 서머셋 모옴 그 성격에 식사인들 마음 편히 했겠는가?

신은 가장 높은 곳에서 인간을 내려다 보고 있다고 하는데 에펠의 눈도 탑 맨 꼭대기 위에 있었을 것이니 가히 신화적 존재가 아니었을까?

탑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복잡 미묘한가 보다. 사람은 탑에서 긍지와 자부심도 느끼지만 죽음의 욕망도 함께 느껴 에펠탑에서 공중으로 몸을 던짐으로 죽기를 서슴치 않는 자살자도 나왔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지금은 자살방지를 위해 뭔가를 설치해 둔 모양이지만.

책을 읽다가 저자가 바르트의 <신화론>을 잠깐 인용한 것이 눈에 띄어 나 역시도 그 일부를 인용해 본다.

"...에펠은 예술가들의 항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자신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미래의 탑의 모든 쓰임새를 꼼꼼하게 열거하였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가 공학자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과학적인 쓰임새들이다. 공기 역학 측정, 물체의 저항에 관한 연구, 전기 통신의 문제들, 기상학적 관측 등등. 이것들은 의심할 바 없이 명백하지만, 탑의 압도적인 신화 옆에선 우습게 보인다. 이미 탑은 그 신화의 인간적인 의미를 세상 도처에 알려준 상태인 것이다. 이는 실용적인 구실이 아무리 과학의 신화에 의해 고상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을 엄밀히 인간적이게 해주는 그 위대한 상상의 기능에 비하면 보잘 것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건축물 하나를 세울 때 무조건 크고, 편하고, 아름답고를 뛰어넘어 이런 신화적 발상도 있어야 폼나는 것이 아닐까?

난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좀 지루했다. 대체로 평이하게 별 어려움 없이 읽히긴 했지만 평전을 대할 때는 그 사람의 남다른 삶을 알고 싶어서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배경을 이해하지 않으면 읽는 게 용이하지마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고르는데 좀 신중해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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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헬퍼 2006-01-1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펠탑도 도시 미관을 헤친다고 한 때 철거 논쟁이 있었다지요. 혹시 이 책이 지루하게 읽었다는 그 책인가요. 그래도 리뷰를 보니 책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데요.

stella.K 2006-01-1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향 나름이겠죠. 저 개인적으론 그랬다는 것입니다.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주미힌 2006-01-1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어... 욕망의 탑, 신화적 상상의 탑이라...

2006-01-19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01-19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더라요? 에펠탑이 보기 싫어 안봤다던 문인이 있었죠?

stella.K 2006-01-19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제가 님을 아주 많이 좋아하게될 것 같습니다. 흐흐
물만두님/잘 인 읽으셨군요. 다시 읽으세요. 흥~!

검둥개 2006-01-20 0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읽고 싶어지는데요. ^^
어떻게 지루했다시면서 일케 읽고 싶게 리뷰를 쓰셨나요? :)

stella.K 2006-01-20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지루하시면 어쩔려고. 그래도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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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마도 나에게 있어 올해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지난 여름 본의 아니게 마태우스님과 사소한 의견차로 토라져버리고 서로 말도 안하고 있었을 때 이 책이 나온 걸 알았다. 그때 난 어떤 책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애써 외면했었다. 속으로,'사람 약올리는 방법도 여러가지군.'하며 말이다. 이 상태가 얼마나 갈까 기약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은 모름지기 싸움도 잘 해야하지만 풀어지기도 잘 해야한다. 난 그다지 한번 싸우면 잘 못 푸는 스타일인데, 마태님은 풀어주시는 것도 잘한다. 본인도 그러기 싶지 않을텐데, 그때 무엇인가를 개기로 나에 관한 이야기를 페이퍼에 덜컥 올려놔 주셨다. 그때의 쑥스러움이란...그때 나는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정식 화해를 요청했고, 그것을 받아주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정표로 이 책을 보내주시면 저를 용서해 주시는 뜻으로 알겠다고 했다.

그러자 두말도 않고 마태님은 즉시 이 책을 보내주셨다. 그만의 말싸인과 함께. 이로써 나는 이 책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즉 마태님은 싸움의 고수이시겠지만, 난 책을 얻는데 고수라고나 할까? 

 <대통령과 기생충>을 워낙에 재미있게 읽었던터라 이 책에 대한 기대 또한 남달랐다. 그리고 이 책은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의학적인 주제 가지고 이만큼 재미있게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는 책이 몇권이나 되나? 의학이라면 왠지 어렵고 방대하고 무거울 것 같은데 이만큼 친숙하게 쓰기란 게 쉬운 일일까?

아주 오래 전 문국진 박사의 <지상아>란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국내의 법의학 분야를 알기 쉽게 써서 대중화에 나름대로 성공한 책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쇼킹하기도 했고 흥미진진한 면도 있었지만 웃기지는 않았다. 법의학에 관한 책이 어떻게 웃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렵기로는 법의학 못지 않은 의학 분야가 마태님의 손에 재탄생할 때는 정말 웃긴다. 특히 대머리에 관한 부분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대머리가 주인공인 드라마나 영화가 나와야 한다는 마태님 특유의 설득은 정말 그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잘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부록처럼 만들어 놓은 오지선다형의 문제들. 책이 지니고 있는 권위주의(?)를 과감하게 탈피한 유쾌한 기획이란 생각이든다.

하지만 읽다보면 저자가 얼마나 따뜻한 마음도 지니셨는지를 또한 느낄 수가 있다. 그런 면면은 저자의 블로그를 드나들었던 사람들이라면 다 알 수가 있는 것이기도 한데, 특히 책에서 여성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글들을 읽다보면 정말 감동하게 된다. 특히 남자도 아기를 낳아보아야 한다며, 아프게 낳은 자식일수록 사랑으로 키운다는 다소는 여성의 출산의 고통을 당연시 하는 억지스런 말에 일침을 가하는 부분이란 감동하다 못해 통쾌하기까지 하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고통을 아는가?

그밖에 의료보험에 대한 생각 또한 함께 생각해 봐야할 부분으로, 현재 우리 가족은 아직 아픈 사람이나 다쳐서 병원신세를 져야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이 상태가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을거라는 생각만 하면 자연 의료보험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의사들이 의료보험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를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좀 의외란 생각이 든다. 또한 잘못된 의학 상식이 권력과 맞물리는 현 행태를 저자는 간과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모든 면면들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낄낄거리고 웃도 저자에 감동하게 만들었다. 특히 책을 닫으면서 자신의 책이 나오면 누구보다 사재기에 앞장 서 주시는 어머니께 감사한다고 할 때도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참 겸손하시고 소박하신 분이란 생각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끝으로 마태님이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인용구를 보면서 정말 많이 읽으시는구나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까 이만한 책을 쓰시는 거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건, 올해가 다가기 전에 백세주로 화해주를 마셔야 할텐데, 2005년도도 내일 하루 남은 상황에서 그건 좀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해를 넘겨야 하는 걸까? 그래도 못 이룬 화해주는 유효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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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5-12-3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책의 저자 알아요. -_-)/ ㅋㅋㅋㅋ

하늘바람 2005-12-3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참 재미있겠네요. ^^

stella.K 2005-12-3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재밌어요. 꼭 보세요.^^

2005-12-31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6-01-01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있는 마태님, 뭘 그리 쑥스러워 하십니까? 님답지 않으십니다. 저는 진실이 아니면 하지 않는데요!!^^

파란여우 2006-01-0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아는 분의 책이구랴^^

stella.K 2006-01-0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원래는 이 책을 빨리 읽을 마음이 없었다. 기한이 좀 있으니 그 때 임박해서 읽고 후다닥 리뷰를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냥 훑어보다가 아예 작심하고 붙들고 읽게된 그런 책이다. 그만큼 재밌고 빨려들어게 만든 책이다.

사실 이 책은 홍대를 중심으로한 비주류 예술가들의  생활과 그들의 예술에 대한 담론을. 그리고 그것이 홍대를 중심으로 해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를 소개한 책이다.  스무 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담으려니 어찌보면 단편적이고 다소 가벼운 듯한 느낌도 있다.

하지만 늘 길을 가도 같은 길로만 가고, 버스를 타도 늘 타던 버스만 타며, 놀아도 같은 장소에서만 놀기 좋아하는 내가, 책을 보아도 비슷한 류의 책만을 보는 경향이 있는 나에게 어느 날 이 책이 손에 들어와 붙들게 됐다는 건 왠지 신선한 산소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난 이 책 읽기를 미룰 수가 없었다.

새삼 놀라운 일은 한 나라의 문화를 논할 때 그 지역의 특색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 또한 놀랍다. 한 지역의 문화가 형성되기까지 어떠한 필요와 이제까지의 삶에 반(反)하는 저항과 몸짓이 있었던 것일까?

분명 세상은 어떤 패턴과 유형을 정해 놓고 이렇게 살라고 한다. 그것이 정형화되면 그것이 마치 정석인양 살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애써 그 부류에 속할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정석인지 누가 알겠는가? 그냥 많은 사람이 그렇게들 살고 있으니까 소외 당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사는 척 하는 것이라는 걸 우리들 자신은 알고 있을텐데.

거기에 굳이 소외 당할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어찌보면 그것을 역이용해서 오히려 주류의 삶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그들이 좋다. 이 책에 나오는 어느 홍대통의 말을 들어보자.

전 어떻게 하면 반항을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어떻게 하면 지루한 세상을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말하자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오랫동안 하다가 바위치기의 전략가가 된 셈이다.(59p)

결국 이것이 언더그라운드의 삶이고 힘이고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홍대를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낸 건 아닐까? 그러면서 또 다른 홍대통은 홍대 문화를 이렇게 말한다.

"홍대 주변 하면 반항이란 단어가 떠오르죠? 아니면 언더그라운드? 인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 동네의 키워드는 관용이에요. 다른 데서는 옷을 홀딱 벗고 길거리로 뛰어나오면 사람들이 바로 신고하죠. 하지만 홍대 주변에서는 조금 봐줘요. 그만큼 상대방을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예요. 마음의 여유, 시선의 여유,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이 동네가 좋죠."(65p)

솔직히 난 관용 보다는 정이 있는 곳이 더 좋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그것은 요즘 같이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나는 주류의 삶 보단 비주류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애정이 더 간다. 그것은 난 아무래도 주류적 삶을 살 것 같지가 않아서 이기도 하겠지만 누군가는 주류적 삶이 그르지는 않을지라도 꼭 옳은 것도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솔직히 주류적 삶이라는 건 힘있는 자들이 쳐놓은 네트워크가 아니던가?

이 책을 읽다가 세계 100대 기업 안에 속하는 우리나라 굴지의 모 기업에 다니는 나의 후배 녀석이 생각이 났다. 녀석은 거길 다니는 바람에 커리어는 좋다고 할지 모르지만 거의 살인적으로 일에 혹사 당하고 있어 항상 후줄근하게 하고 다딘다.

나는 그에게 안쓰러워서, "야, 사람나고 일 났지, 일나고 사람 났냐? 사람이 우선 살고 봐야하는 거 아니냐?"했더니, 그러지 않아도 다들 그런 말을 한단다. 녀석을 보면 그 기업이 괜히 세계 100 기업이 아니겠구나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내 견지에선 왠지 석연치 않다.

예전엔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했다. 하지만 요즘 세대를 예전에 비하면 안된다. 노는 것이 일하는 것이고, 일하는 것이 노는 것인, 거기서 가치창출이 되고 돈도 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21세기는 자고로 잘 노는 사람이 대우 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해마다 대입학력 고사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도 없어야 하고, 직업을 못 구해 미쳐 돌아가는 사람도 없어야 한다.

여기 연극계에 종사하는 또 다른 홍대통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보며 이 글을 맺을까 한다.

내가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면 관객도 즐거워질 것이고, 그러면 세상이 즐거워진다.(67p)  

세상 모든 사람이 즐겁게 사는 그날까지 홍대 옆 놀아터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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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2-0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 사람나고 일 낳지, 일나고 사람 낳냐?
낳냐--났냐, 로 고쳐주세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스텔라님!
저도 읽고 써야 해요.;;

stella.K 2005-12-04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래요. 고마워요.^^

하늘바람 2005-12-04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나던 책이었지요

stella.K 2005-12-0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한번쯤 읽어보셔도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진주 2005-12-13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요즘 이 책 엄청 지르시누만요....여기저기서 사라고 아주 불을 질러요....ㅡ.ㅜ

stella.K 2005-12-1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덕의 기술
벤자민 프랭클린 지음, 조지 L. 로저스 엮음, 정혜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참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바쁜 이유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보지만, 한권의 책을 오래도록 붙들고 있는 건 그다지 좋은 습관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너무도 유명한 벤저민 플랭클린이 쓴 저작물이라고 하지만, 그가 직접 쓴 것은 아니고 그가 살아생전 여기 저기에 기고했던 글들을 액기스로 모아 놓은 책이다.

어찌보면 이 한권의 책으로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어떠한 사상을 지닌 사람인지를 알 수도 있겠지만, 그를 정말로 알고 싶다면 그의 유명한 저작 <자서전>을 읽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또 바쁜 현대인이 읽기에 이 책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가 되어있어 읽기에 부담이 없어보인다.

물론 우리가 잘 아는대로 그는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너무도 완벽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도덕 교과서를 읽는 것 같다는 부담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완벽한 것엔 많은 지혜와 처세, 리더십이 담겨져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는가?

옛 현인들의 삶은 교훈적이다. 한번쯤 읽으면서 교훈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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