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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자작 감행 - 밥도 술도 혼자가 최고!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19년 11월
평점 :
어느 시대고 먹는 게 중요하긴 한가 보다. 못 먹던 시대는 못 먹던 시대대로, 잘 먹는 시대는 잘 먹는 시대대로 고민이 많다. 그것은 영양학적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우리는 이 문제가 해결이 되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자 먹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됐다. 바로 혼술, 혼밥이 대세인 시대가 된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같이 어울려 먹는 것이 피곤하단다. 게다가 같이 먹으면 메뉴를 통일해야 하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없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혼밥, 혼술이 대두되기 이전엔 우리가 중요했지만 이젠 내가 중요해졌다. 과연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간다. 먹는 주체는 난데 왜 남의 뜻에 묻어가야 한단 말인가. 미워하면서 진수성찬을 먹기보다 한 가지의 음식을 먹어도 편한 마음으로 먹자는 의미에서 혼술, 혼밥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혼자 먹는 게 꼭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뭐든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 같이 먹는 것이 불편한 사람은 혼자 먹어도 불편하고, 혼자 먹는 것이 즐거운 사람은 같이 먹어도 즐거울 것이다.
좋으나 싫으나 매번 혼자 먹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자발적인 건지 아니면 이런저런 사정 때문인지 아무튼 혼자 먹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책도 냈겠지. 보통의 내공 가지고 이런 책이 나올 리 없다. 우리나라엔 잘 안 알려진 작가다. 일본 내에선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일을 하는가 보다.
나이가 많으니 혼자 먹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할 것도 같은데 그렇지도 아닌가 보다. 책 한 권을 낼 정도니 말이다. 하긴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하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느 식당에서 여든 넘은 노인이 혼자 술이나 밥을 먹는다고 하면 예사로 보지 않을 것이다. 이 시간에 왜 혼자 와서 저러고 있는 걸까, 독거노인인가, 배우자와 싸우고 갈 곳이 없나, 왠지 쓸쓸해 보이네 등등. 하지만 저자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 당당해지라면서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한다.
사람은 태어나 엄마 젖을 빨 때부터 혼자 무엇을 먹도록 되어있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교감이란 말이다. 하지만 자라면서 매번 사람들과 뭔가를 먹을 수는 없다. 집에서라면 문제가 없겠는데 문제는 학교나 직장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왠지 혼자 먹으면 어색할 거란 사회적 편견이 이런 책을 낳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두 개의 TV 영상이 생각났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한 외국인이 혼자 점심을 먹으러 어느 식당에 들렀는데 그곳 주인이 자신을 되게 안쓰럽게 보고 있어서 불편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또 하나는 한물간 어느 아이돌이 혼자 어디까지 놀아 볼 수 있을까 레벨 테스트를 하는 장면이었다. 혼고라고 해서 혼자 고기를 먹는 게 혼밥, 혼술 보다 훨씬 높은 레벨이었다. 그는 좀 어색했긴 했지만 혼고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안도하는 모습이다.
전자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서양에서 온 외국인이 었는데 알겠지만 서양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곳 아니던가. 그러니 식사를 혼자 하는 것쯤이야 아무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을 두고 우리나라 잣대를 들이대 외롭지 않을까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건 괜한 오지랖을 넘어 무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후자의 경우 그렇게 어색한 걸 통과했다고 좋아하느니 차라리 고기를 사서 집에서 먹거나 마음에 맞는 사람 한 둘과 같이 오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 아이돌이 고기를 함께 먹을 사람이 없으리만큼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요는 혼자 먹든 같이 먹든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다는 거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혼밥은 누구도 피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일수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독신으로 살게 될 때다. 혼자 있으면 밥을 잘 안 먹게 된다. 먹어도 대충 때우거나. 중요한 건, 그럴수록 더 맛있게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돌아가신 친할머니는 일찍 홀로 되시기도 하셨지만 또 일찌감치 자식들을 출가시키기도 하셨다. 연로하시니 이젠 누군가 차려주는 밥을 드셔도 좋을 텐데 그러지 않으셨다. 혼자 지내시기 뭐해 세를 두기도 하셨지만 그렇다고 그 세든 사람과 밥까지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할머닌 언제나 밥과 반찬을 손수 만들어 꼭 밥상에 받혀 안방에서 드시곤 했다. 어느 한 끼도 부엌 부뚜막에 앉아 대충 때우시는 법이 없으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야 말로 진정한 혼밥의 고수는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는 80을 넘겨 사셨으니 옛날 노인 치고 장수하신 편이다. 매번 그러기가 쉬웠겠는가. 어쩌면 할머니에게 혼밥은 하나의 수행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드니 그런 할머니가 많이 생각이 난다. 나도 과연 할머니같이 살 수 있을까.
사실 난 예나 지금이나 혼밥이 그리 익숙하지 못하다. 물론 집에서는 전혀 문제가 안 되지만 바깥에 나가서 혼자 무엇을 먹는다는 게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요즘엔 식당 어디를 가도 혼자 먹는 사람 한 둘은 꼭 보게 되니 닥치면 잘한다. 오래전 혼밥 혼술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 나는 갑자기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 정말 혼자 식당에 들어가 먹고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누구와 같이 먹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혼자 먹는다는 불편함 감수할 만큼 김밥이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먹는 내내 '까짓 거 혼자면 어때 이렇게 맛있는 걸.' 하며 혼자 먹는 나를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거기엔 TV가 한 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건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다소 편하게 해 준 것도 사실이다.
책을 보면 혼식에도 나름의 요령은 있는 것 같긴 하다. 이를테면 주인이 너무 친절한 식당은 가지 말란다. TV는 필수고, 읽을거리를 챙겨 가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밝은 곳이나 깔끔한 곳 보단 다소 허름한 곳에 가급적 화장실이나 출입구 가까운 구석진 곳에 앉으라고도 한다. 저자가 우리와 가까운 일본 사람이고 보면 정서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게 챙겨서야 어디 편하게 식당인들 갈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조차 버려야 진정한 혼밥인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럴 수 없다면 거듭 말하지만 차라리 그냥 혼자 집에서 먹어라. 그게 훨씬 낫다.
이 책은 정서가 비슷한 우리나라에선 어느 정도 읽힐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 사고방식이 다른 앞서 말한 서양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난 이 책을 다 완독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어느 유명 셰프가 재밌다고 극찬해서 호기심에 읽었는데 별로였다. 같은 동양권이라고 해도 먹는 음식이 다르고 낯서니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혹시 우리나라 어느 미식가가 쓴 책이라면 좀 읽어 줄만 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호불호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