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폭 - 시인은 왜 조폭이 되었나?
김율도 지음 / 율도국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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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오랫동안 읽어 온 사람으로서 책을 보는 안목이 나름 높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준이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다고 항상 적중하는 건 아니다내가 책을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는 책의 장정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것이 그 책의 선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쯤 모르는 출판사가 있을까그런데도 이것에 위배되는 조악한 책들이 나온다.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더라도 가끔은 나의 이런 기준을 빗나가 주는 책이 있기를 은연중 바래왔던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런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나라고 항상 내 생각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열 중 한 둘은 틀려줘야 겸손할 수도 있고, 또 그런 책이 정말로 있어 준다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책의 기를 좀 살려주고, “이 책 보기엔 이래봬도 내용은 정말 좋은 책이라고 대신 외쳐주는 의기를 부려보고 싶었다이 책이 그런 책이길 나는 바라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인터넷상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판단을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저런 책이 실제로 보면 의외로 만듦새가 좋을 수 있고, 설혹 만듦새가 후져도 내용까지 나쁠 거라고 속단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이 책에 후한 점수부터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 책에 대한 소개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어느 시인의 뜨거웠던 삶에 관한 자서전 내지는 고백록 같은 거였기 때문이다.

 

사춘기 이후로 시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시인의 자서전 아닌가? 난 본래 그런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일단은 읽어 보자 했다. 제목도 다소 엉뚱하지만 이 둘을 함께 놓은 저자의 뜻을 알고 싶기도 했고, (난 그런 장르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우리가 갱스터 무비를 보는 건 갱스터가 갱스터이기만 하면 재미없을 것이다의외의 모습이나 그들의 똥폼 잡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 것처럼 조폭이 시인이라면 그것도 멋있어 보이긴 한다. 물론 이 책의 경우 조폭이 먼저가 아니라 시인이 먼저지만

 

저자도 서문에 그렇게 썼지만, 시인과 조폭의 공통점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솔직히 난 이 책에 매료되기도 했는데, 시를 처음 접한 이후 시를 너무 좋아했다는 것이다. 아니 좋아한 정도가 아니라 시를 신앙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마치 시가 자신과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해 보인다. 그야말로 시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전폐했다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았던 내가 시인은 정말 이렇게 살까?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가진 의문이기도 했다. 저자는 좋아하는 시가 있으면 모조리 외우고, 뭔가에 빙의되듯 떠오르는 시구를 받아 적는다. , 시인은 정녕 이렇게 해서 되는 걸까? 살짝 부럽기도 했다.  

 

조폭이 됐던 것도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아니다. 지면상 그냥 운명이라고 해 두자. 내가 볼 때 시인과 조폭이 같다기 보단 그는 자신이 선택한 것에 있어서 결코 후회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인 것 같다자신의 선택이 뭐든 지간에 갈등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운명이 그러하다면 결코 거부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한 여자를 끝까지 사랑한다. 그런 사람이 아직도 존재한다니? 또한 조폭이긴 하지만 윤락녀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있어 성매매 금지법에 관해서도 한껏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자신의 애송시를 이자 암송 시 몇 구절을 삽입해 문장의 격을 높였다. 읽고 있노라면 영화를 보는 것도 같고, 누구든 영화로 만들고 싶어 할 것만 같다그만큼 인물 묘사가 강렬하다

 

난 이게 저자의 자전 소설에 가까운 에세이라고 생각하는데(장르가 명확하지 않다), 시를 써 와서일까? 300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자신의 일생을 이렇게 명징하게 담아내다니 과연 이야기 솜씨가 일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뒤에 가면 뭐 하나가 딱 걸린다. 그것은 작가가 몸소 겪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단면을 얘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리나라 차기 대통령 후보 중 저격당한 사건의 내용이었다. ? 그런 일이 있었어의아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은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해 이건 저자 자신의 이야기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읽었기 때문이다.

 

오죽 의아스러우면 저자에게 묻고 싶을 정도였다. 이거 실화냐고. 무슨 근거를 가지고 이렇게 쓰는 거냐, 독자를 희롱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내용은 무슨 쌍팔년도 느와르를 연상시킨다. 뭐 그것까지는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가 저격을 당했다는 것은 도저히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거야 말로 허위 사실 유포 아닌가?

 

그러다 문득 서문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었다. 이 소설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아 맞추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저자가 치는 뻥에 나는 넘어간 셈이고, 자신은 그것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도 읽혀지는데, 허탈하다기 보단 왜 끝까지 사실과 진실을 견지하지 못했던 걸까 불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서문 첫 문장은 이제 때가 됐다며 30년 동안 묵혀왔던 이야기를 한다는 비장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란 문장에서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의심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더구나 이 책을 한국소설이라고 분류했는데, 이건 소설의 형식을 완전히 갖춘 것도 아니다. 물론 자전 소설이라고 우긴다면 그래 좋다. 그렇게 봐주자.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저자도 글 깨나 쓰는 사람 같은데 글은 정직해야 한다는 것쯤 배우고 들어갔을 것 아닌가? 어디서 진실과 허구란 말장난으로  독자를 후려칠 생각부터 하는지 지금까지 써 온 글이 아깝지도 않은가 거기에 상상력의 극대화 뭐 이런 말로 자신의 글을 정당화라도 하고 싶은가 싶다. 

 

이왕 말이 나와서 말인데, 최근 우리나라 작가들 글을 쓴답시고, 소설인지 수필인지 모를 글들을 양산하고 있다. 처음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쓰는 글에 번지수도 확실히 정하지 못하면서 무슨 탈장르를 선언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고, 뭐 그것도 작가의 표현의 자유라고 치자. 적어도 자신이 쓰는 글에 진실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이 책 읽은 지 며칠 됐는데 감동 보다는 아직도 뭔가 속았다는 느낌에 불쾌한 느낌이 쉬 떨쳐지지 않는다. 허구를 얘기하고도 마지막 한 문장이 그것을 상쇄시키는 책이 있는가 하면, 내내 진실을 얘기하다가도 한 가지 뻔한 거짓말이 책을 망쳐놓은 경우가 있다. 이 책은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책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앞서 얘기한 독자로서의 의기. 즉 다소 보기엔 이래봬도 내용은 정말 좋은 책이라는 의기를 부려보고 싶은 기회가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라며 혀마저 끌끌 차게 만든다. 어떻기에 그렇게까지 말하느냐고? 처음 받아든 순간 쌍팔년도 무슨 중고등 학교 교지를 연상케 한다. (내가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인 관계로 요즘 교지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독자로서 이런 책을 읽었단 말이다. 소설적 허구란 게 그런 게 아닌데 저자가 과연 이걸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안 그랬다면 다음 판에선 좀 나은 옷을 입고 나오지 않을까? 요즘 인터넷 서점마다 리커버가 유행이던데잘하면 리커버로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말이다. 저자는 어쩌자고 다된 밥에 코를 빠트렸던 걸까? 그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하듯, 우리나라 책도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또 모르지. 괜찮은 표지로 나왔더라면 나의 이 마음도 다소는 이성을 유지했을지도.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지면을 통해 모든 출판사에 말하고 싶다. 표지에 신경 써라. 책이 되어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하지 마라. 독자에게 욕을 들어도 싼 책은 아예 제작부터 하지 마라. 표지가 후진 책은 누구에게 권하지도 못한다. 독자는 그런 마음이 있다. 내가 읽는 책이 누군가의 눈에 띄었으면. 그래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뭔데 라고 질문 받고 싶어 한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마지막까지 진실해질 수 없다면 차라리 안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이래도 괜찮겠지 하는 호기가 결국 30년 인생 이야기를 스스로 깎아 먹은 건 아닌지안타까운 마음에 쓴 소리 좀 했다. 불쾌했다면 용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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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11-26 18:06   좋아요 1 | URL
에이, 좋은 게 좋은 거려니 하면 안 되죠.
물론 제가 너무 잘 봤다가 실망해서 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건 장편소설도 아니라니까요.
문제는 문제라고 꼭 집어야 해요.
작품은 독자가 완성한다 잖아요.
안타깝더군요.
 
밥보다 일기 - 서민 교수의 매일 30분, 글 쓰는 힘 밥보다
서민 지음 / 책밥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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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왔을 때 반갑기도 했지만 좀 의아스럽기도 했다. 일기에 관해 뭐 할 말이 있을까 싶은 것이다. 특히 학교 때 일기 쓰기 숙제에 학을 떼어 본 사람이라면 뭐 이런 책을...? 하며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이 척 보기에도 나 그렇게 지루한 책 아냐.”라고 말 하는 것 같고, 실제로도 그렇다. 하긴, 일기 쓰기에 대해 철학적이며 인류학적이고, 기록학적 고찰을 해 놓았다면 누가 일기를 쓰고 싶어하겠는가? 더구나 저자는 유쾌하게 강연하기로 소문났다. 그런 그가 이 머리 아픈 주제를 어렵게 쓸리 없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은근히 아니 대놓고 집요한데가 있다. 물론 저자의 집요함은 이 책에만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닌다. 지금까지 저자의 책을 빼놓지 않고 읽은 건 아니지만 저자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그걸 아기 다루듯 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려는 측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 얼마 전 낸 <서민 독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거기엔 저자가 읽어 온 책이 빼곡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건 결국 책 읽기에 대한 (강력한)촉구다.

 

이 책도 어찌보면 그 연장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읽는다면 다음엔 써야한다. 일기 하나를 잘 쓰기 위해 책을 읽으라고 강()조하고 있다. 도대체 일기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그야말로 돈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싶기도 할 것이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일기 한 권은 잘 쓴 에세이 10권 부럽지 않은 경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이 별것 아닐 것 같은 일기에 이토록이나 정성스럽게 강조하는 것을 보면 집요함을 넘어 진정성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요즘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이 나오는데 저자도 그냥 글쓰기에 관한 책 한 권 내지 뭐 이렇게까지 하는데는 뭔가의 이유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중학교 이후 누가 일기를 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지. 무엇보다 내가 쓰지 않는다. 내가 쓰지 않는데 감히 누구한테 권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내가 쓰기 때문에 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뻔하다. “너나 잘하세요.” 그런데 가끔은 어렸을 때 들었던 그 잔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일기 쓰이기도 하다. 옛날 같으면 참견 같아 듣기 싫을 것 같은데 비록 책이긴 하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뉘라서 그런 말을 해 준단 말인가? 더구나 저자 특유의 솔직함과 유머를 대하니 누구라도 일기를 안 쓰면 안 될 것만 같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이 초등학교 때까지는 일기 쓰기가 거의 의무로 되다시피 하지만 중학교부터는 권장만 하고 관리는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일견 이해한다. 좋은 습관 길러준다는 것과 내가 맡은 아이가 방학 때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고, 맞춤법 향상을 위해 그 숙제는 꽤 유용해 보인다. 그러나 중학교쯤 되면 사춘기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보장해 줘야한다. 무엇보다 일기는 비밀 유지가 되야하는 하는데 아무리 선생님이라고 해도 누군가가 보는 거라면 일기는 이미 일기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바쁜데 일일이 일기 검사까지 할 여력이 없다.

 

하지만 저자가 제안하는 것도 타당성은 있어 보인다. 저자는 일기 검사를 전담하는 빨간펜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을 네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학생이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어야 하고, 일기 검사는 매일 이루어져야하며, 검사자가 학생의 일기를 읽고 난 뒤 오타나 비문 등을 고쳐주고 보다 매끄러운 문장이 되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려 주며, 검사자가 학생의 일기에 자신의 견해를 달아줘야 한다(60p)고 썼다.

 

물론 안 그래도 예산이 부족한데 무슨 일기 전담 빨간펜 선생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육 선진국일수록 작문을 중요시 한다. 즉 학생의 글로 표현된 생각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좋은 생각은 좋은 글에서 나오며, 좋은 글은 좋은 생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디 그런가? 도무지 생각할 시간을 주질 않는다. 말은 그렇게 아이들의 자율성과 일기의 비밀성을 들어 거부할지 모르겠지만 일기가 아니면 작문 교육을 대체할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비문에 줄임말에 청소년용 육두문자가 남발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글을 잘 쓰는지 못 쓰는지도 모르고 졸업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일기의 비밀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또 어떤가? 나의 글과 나의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더 열심히 일기를 쓸 학생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비밀성이 보장되지 않은 열린 일기가 되어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일기 쓰기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는 건 그 자체가 지루하고 의미없는 행동이라기 보단 생각, 사고를 중시하지 않는 시스템 때문은 아닐까? 또한 이 작문이란 것도 무엇에 대해 쓰라고 하면 너무 어렵다. 주제가 주어지지 않은 일기 같은 글부터 쓰게 하는 것이 접근하기에 더 좋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주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고 얼마나 좋은가?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뭐 일기에 대해 할 말이 있을까 했던 것도 사실이다. 독자를 쉽게 봐도 너무 쉽게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읽을수록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면서 목차를 정하고, 메모를 하고 내용을 채워나가기까지 뮤즈는 끊임없이 저자를 흔들어 놓았겠구나 싶다. 특히 요즘 소확행이 유행인데 일기 쓰기 역시 그 품목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 읽으면서 얼마나 킥킥대고 웃었던지. 마치 명랑 만화를 보는 것 같았다.

 

저자는 요즘의 SNS가 활성화 되면서 오로지 좋아요에만 목맨 영혼없는 글에 대해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블로그 글쓰기는 어떤가? 난 중학교를 입학하던 해부터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블로그가 생기면서 일기를 안 썼다. 블로그 활동을 하는데 굳이 일기를 또 써야 하나 싶었고 이건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저자도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이게 나름 반갑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무엇보다 난 이 시기를 일기를 쓰지 않았던 시기로 봐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블로그로 대체했으니 여전히 썼다고 봐야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저자는 그것을 가르기 보단 일기와 블로그의 장단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여기서 일기 쓰기란 노트에 쓰는 아날로그적 방법을 말한다. 블로그는 다분히 보여지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솔직함이 어느 정도 희석된다. 그런데 비해 일기는 100% 솔직해질 수 있다. 솔직함이 꼭 좋은 것이냐는 것엔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어 보이지만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내가 내 자신에게 솔직해질 필요는 있다. 그렇다면 일기는 필요하다. 솔직해져야 한다고 해서 블로그에 있는 그대로 까발리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블로그에 글을 쓰면 누군가 볼 거란 전제가 있기 때문에 싫어도 몇 번의 정서를 거쳐야 한다. 낙서 같은 글이건, 각 잡고 쓰는 글이건. 그런 점에서는 블로그가 더 유리하다.

 

솔직히 나는 일기는 좀 함부로 막쓰는 경우가 많다. 블로그는 첫 문장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할 때가 많지만, 일기는 왜 이 문장부터 썼지? 후회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미 쓴 문장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만 알아보면 되니까. 이 세상 어디엔가는 마구 망가져도 누가 뭐랄 것 없는 곳 하나는 있어야 한다. 예전에 정서하는 게 너무 귀찮아서 한 번 있는 그대로 글을 블로그에 올렸던 적이 있다. 그러고 그 다음 날 당장 내렸다. 정말 저자의 말마따나 맞춤법이고 뭐고 무시하고 글을 올리면 없어 보이기 딱 좋다. 내가 뭐 그렇게 풍성하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없어 보일 필요는 없지 않는가? 어쩔 수 없이 그때는 발견되지 않는 오탈자라면 모를까 고쳐 쓸 수 있는데 맞춤법 무시하고 올린 글 보면 인상이 찌푸려지던데 내 글이라고 오죽할까 싶은 것이다. (그래도 맞춤법은 어렵다.ㅠㅠ)

 

특히 항상 글을 잘 써야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일수록 일기는 숨어서 쓰기에 좋은 글 같다. 또한 블로그에 글을 써서 좋아요도 많고, 댓글도 많이 받으면 좋긴 하지만 그것에 일일이 답글을 달다가 분위기에 휩쓸려서 정작 써야할 글을 못 쓰거나 의지가 꺾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면 블로그 쓰기는 양날의 검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의 지적대로 일기와 블로그 쓰기는 적당히 활용하면 좋을 것이지 어느 한쪽을 편들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굳이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난 일기를 더 우위에 두고 싶다.

 

난 올해부터 다시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15년만의 일이다. 물론 여러 가지로 도전이 많이 있었다. 올초 일기에 관한 책 한 권을 읽기도 했고, 알라딘에서 서재의 달인됐다고 다이어리를 보내줬는데 하루에 한 페이지가 아닌 반 페이지씩 쓰도록 되어 있다. 이 정도라면 메모 정도 밖엔 안되 진짜 일기 쓰는 사람에겐 불편하긴 할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전략 같기도 하다. 다이어리엔 메모 정도만하고 자세한 건 서재에 쓰라는(것 같은). 저자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사진만 잔뜩있고 메모식의 영혼없는 글은 가급적 쓰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은데, 이 사회 시스템이 자꾸만 생각하기를 방해하고 편하고 간단한 것만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것 같아 마땅치가 않다.

 

책을 보면, 일기 쓰기로 할 수 있는 일은 제법 많아 보인다. 더 정확히는 일기 쓰기가 동력이 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중 눈에 띄는 건, 자기 소개서다. 스펙이고, 토익 점수 따는 건 한때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도 계속 쓰게 되는 건 자기 소개서란 것이다. 내가 누군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스펙 쌓고, 토익 점수 따고, 시험 점수 올리느라 정작 내가 누군지에 대해 선듯 말할 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되어버렸다. 그런 사람에게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그것은 하루 아침에 오지 않는다. 뭔가의 부속품으로만 살아갈 뿐 내가 누군지에 대해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일기 하나 잘 써서 성공했다는 사람도 적잖이 보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자주 꼭꼭 씹어 먹으라고 하곤 했다. 그때 난 너무 어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꼭꼭 씹어 먹으라니? 먹는대로 먹는 거지 꼭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게 나이들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꾸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건 내가 밥 먹다 체할까 봐, 또는 생선 얹은 밥에 혹시 가시라도 걸릴까 봐 그렇게 먹으라는 것인데 세상에 밥처럼 밍밍해서 금방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음식이 또 있을까? 그럴수록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것이다. 하루를 반성하고 되새김질을 하려면 일기를 써야한다. 그것은 하루를 꼭꼭 씹어 보내는 일과 같은 일이다.

 

이 책은 유쾌하게 읽다가 맨 마지막에 잔잔한 감동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그건 일기를 통한 아버지와의 화해다. 내가 앞서 일기는 비밀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누구에겐가 읽혀질 것을 생각하고 쓰는 의도성도 있다. 왜 일기에 의도성을 포함시킬까를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또는 한 사람에게라도 더 이해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는 아닐까? 저자가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고 화해할 수 있게 된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옛 속담에 짐승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애석하게도 사람은 그렇게 유명하지 않다. 사람이 죽고 한 세대가 가기도 전에 잊혀질 사람이 기억되는 사람 보다 훨씬 더 많다. 그렇다면 그런 속담은 가능하지가 않다. 그나마 일기를 남기는 것이 확실한 방법은 아닐까? 그게 아니더라도 일기를 씀으로 해서 인생에 성공을 가져왔다는 사람도 많이 받다. 알지 않는가?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퇴보하고 나중엔 짐승처럼 변한다고. 일기는 정말로 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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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1-18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종이 노트에 검정 볼펜에 써야 한다고 봐요. 제가 그렇게 하고 있어서요.ㅋ
매일 쓰지 않고 며칠에 한 번 쓰고 어떤 때는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두 번 쓸 때가 있지요.
쓰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 고민이 작아지는 기분, 복잡하게 생각했던 게 간단하게
정리되는 기분, 그런 걸 느낍니다. 순전히 저만을 위한 방법입니다.

마태우스 님의 책, 책 제목을 잘 지은 것 같아요. 그리고 감탄하게 되네요. 어쩌면 그렇게 속도 있게 빨리 책을 여러 권 낼 수가 있는 건가요? 도저히 저로선 이해 불가...
어쨌든 많이 많이 팔리기를 응원하는 바입니다. 저도 사 보겠습니다.
스텔라 님의 리뷰도 좋고요...

stella.K 2018-11-18 19:58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언니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누구는 일기를 밤에 쓰지 말고 아침에 쓰라는 말도
있던데 저는 그렇게 안 되더라구요.
알라딘 다이어리는 매일 쓰게 되어 있던데
쓸게 많은 날은 지면이 좀 모자라지만
좋으나 싫으나 매일 쓰게 되어 있으니 습관 들이기엔 좋은 거 같아요.

저는 뭘 쌓아두는 게 싫어서도 일기를 안 썼어요.
그런데 마태님 말마따나 블로그에 쓰는 것도 안전하진 않겠더라구요.
사이트가 없어졌다 새로 생기고 그게 또 없어지고를 반복하면서
소실되기도 하죠. 육필 일기도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게 제일 안전한 것 같아요.
책 말미는 좀 찡하더군요. 한번 읽어 보세요.^^
 
로맨틱, 파리
데이비드 다우니 지음, 김수진 옮김 / 올댓북스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사람들 저마다 자기 좋아하는 독서 분야가 따로 있을 것이다. 또 그런만큼 기피 대상 분야도 있지 않을까? 나도 기피 분야가 있긴 하다. 바로 요리와 여행이다. 아무리 먹방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난 요리를 소재로한 그 어떤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방송을 물론이고, 책도 영화도 별로다. 먹어 볼 수도 없는데 그 앞에서 군침을 삼키는 게 좀 바보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여행을 소재로한 어떤 책도 영상물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 볼 수도 없는데 방에 들어 앉아 괜히 나 자신을 자책는 게 싫은 것이다. 그나마 음식 보다 나은 게 여행이긴 하지만.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미국 출신이지만 프랑스 파리를 좋아해 아예 이주하면서 그곳을 취재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것도 문학 분야. 저자는 기행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문학 기행다. 그러니 또 마음이 동한다. 여행기를 읽을 때 어떤 분야에 방점을 두고 읽느냐에 따라 그 읽는 느낌이 다를텐데 문학 기행이라면 나로선 안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일까? 책이 참 마음에 든다. 원래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 문학을 좀 좋아하긴 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정말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기나 한 걸까 싶게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의 이름이나 몇명 꿸 줄 알지 그들의 문학을 열심히 읽은 것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프랑스 문학을 좋아한다고 했을까? 또 그런 생각이 들만큼 책은 프랑스 작가들의 삶과 거리와 공간에 대해 꼼꼼하면서도 자유럽게 잘도 써놨다. 그런 저자의 글 재주가 부럽다.        

 

인상적인 건 빅토르 위고와 조르주 상드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위고는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가 가장 사랑하는 국민 작가요 가히 모든 작가들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위고도 부인과 정부 사이를 오가며 애증의 관계인 것을 볼 때, 또한 상드는 남장을 하리만큼 자신의 성정체에 자유한 삶을 살았던 것을 볼 때 문화적 충격을 넘어 프랑스는 가히 팜므바탈적이란 느낌도 든다. 저자도 위고를 많이 동경했던 걸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위고에 관한 이야기가 끊어질듯 하면서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런 것을 볼 때 확실히 위고가 프랑스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그가 죽었을 땐 아예 국장으로 치뤘다니 알만하지 않은가.

 

아무튼 나로선 프랑스는 넘사벽이지만 동시에 더 궁금해지고 알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을 언제고 다시 또 한 번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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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8-10-0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요리와 여행에 관한 책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요리도 여행도 잘 하지 않는 주제에 읽는 것만 좋아해요 호호^^;;; 문학기행이라니, 거기다 stella.K님께서 좋은 책이라 말씀하시니 저도 읽고 싶어욧@_@;;;

stella.K 2018-10-04 15:46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문학 기행만 좋아해요.
문학 기행 좋아하시면 감히 추천드립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8-10-04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10-04 16: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읽어도 다 못 읽지요.
사실 이책 완독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못했어요.
협찬 받은 거라 오늘이 마감이거든요.
또 하필 가장 바쁠 때 읽게되서 여유가 없더군요.
정말 이책은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건데.ㅠ

파리 여행 꼭 가세요.
정말 님 사진 보고 싶어요. 염장인가요?ㅎㅎ

후애(厚愛) 2018-10-04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로맨틱, 파리라고 해서 로맨스 소설인 줄 알았어요.^^;;
여행에세이 책이네요.
아침저녁으로 많이 선선한데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환절김 감기조심하세요.^^

stella.K 2018-10-04 16:49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처음에 잠깐 착각했어요.

네. 고맙습니다. 후애님도 건강하시길...^^
 
종교 없는 삶 - 불안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졌다
필 주커먼 지음, 박윤정 옮김 / 판미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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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그 제목부터 호불호가 갈리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신앙이 없는 사람에겐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논리적으로 대변해주고 있으니 사이다 같은 책일 것이고, 믿는 사람은 좀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나아가서 이 책에 분노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래도 전자에 동조하지 못할 것은 확실하다.  

 

사실 처음엔 좀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처음 읽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거라 그다지 많이 화가 났던 것도 아니다. 먼저 저자는 1장에서, 신을 믿지 않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느냐고 했는데, 나는 여기서부터 저자가 시작부터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도덕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저자는 종교와 도덕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종교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종교 안에 도덕성이 포함되는 것이지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요는 저자는 이것을 같은 범주의 것으로 생각해 자신의 논리가 타당함을 독자로 하여금 주입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솔직히 그렇게 얘기를 하자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자들에게 더 많은 도덕성을 요구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인을 핍박하거나 거부할 때 가장 쉽게 꺼내들었던 카드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다고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부도덕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당연 무종교에서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종교에서 도덕이 결여된 사람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도덕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에 대해 할 얘기가 없는 것이 아니나 여기선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겠다. 

 

구원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책은 그 어디에도 구원에 관한 언급이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즉 종교없는 삶이 그토록 타당한 것이라면 구원이 의미가 없고 그것을 반박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저자는 구원이란 게 뭔지 알지 못하거나 지나친 채 그저 현상학적 측면만을 나열했다. 저자는 신자로부터 종교가 있냐고 물어보는 게 꽤나 귀찮았던 것 같고, 그것을 위협적(?)으로까지 느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해 못할 부분도 아닌 것 같다. 그런 질문을 한 두 번도 아니고 꽤 여러번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더구나 교회에서 전도 프로그램 수련자가 실습하겠다고 재수없이 접근해 오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뭔가 반박할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비판대신 조금씩 이해하는 마음으로 읽어가다 보면 이 사람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도 꼭 그리 틀린 말도 아니겠다 싶다. 사실 저자도 무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증명해서 그렇지, 사실 책에 언급한 내용 거의 대부분은 이미 종교 진영 특별히 기독교에선 이미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 것들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무종교 진영에선 타당한 것들을 기독교에선 위기로 보는 시각의 차이를 갖고 있다는 것뿐이다. 

 

예를들면, 저자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종교를 찾지 않는 이유라고 했는데 그도 맞는 얘기다. 직장 일하랴, 육아까지 떠안은 여성이 교회에 나올 확률은 극히 낮아 보인다. 더구나 교회 생활이 안식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사회성과 의무를 요구한다면 집에서 쉬거나 다른 활동을 하고 싶지 교회 나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옛날엔 여성들이 사회진출이 그리 많지 않으니 교회 나오기는 용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족성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교회엔 아직도 남성의 비율 보단 여성의 비율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남녀를 떠나 그렇게 피곤해서 교회 안 나올 것만 같지만 나오는 사람은 나온다. 요는 저자가 무종교의 타당성을 증명하려면 교회 나오는 사람은 왜 나오는가에 대해서도 연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데 어느 한 측면만 부각시키다 보니 객관성이 떨어지고 설득력도 별로다. 

 

물론 저자는 교회 다니는 사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연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만났던 사람은 자신의 논증을 뒷바침해 줄 사람만 만났나 보다. 저자가 미국인인만큼 미국에 국한시켜 연구를 했던 모양인데 세속화를 언급하면서 신앙이 있는 사람들 역시 보면 별 것 아닌 수준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교회도 세속화되고 있으니. 그러나 모든 교인들이 그런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오산이다. 그래도 얼마간은 구원을 믿으며 경건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비율에 낮아서 그렇지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비율은 저자가 잘 써 먹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또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신앙 생활 잘하고 있는 사람을 안 믿는 사람은 급진적이고 맹신으로 매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희화화시키거나 조롱하기도 하고. 그것은 빠뜨린 채 도덕성 운운하는 건 좀 넌센스 아닌가?

 

저자는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 중 또 하나로 성소수자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것 역시 당연하긴 하다.기독교에선 기본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물론 요즘엔 일부나마 동성애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동성애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문제라 저자가 제시한 것이 최근에 나온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요즘 나온 문제처럼 말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성소수자가 교회를 기피하는 것도 맞는 것 같긴하다. 그러나 조금 더 이성적여 보자. 정말 기독교만이 동성애를 부정해 왔는가? 그래서 마치 기독교는 이 성소수자에 대해 피도 눈물도 없고, 또한 그로인해 그들은 기독교인에 대한 반감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소수자를 기독교인만이 피박해 왔을까? 무종교나 타종교인들 중에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독교인에 집중되어 온 이유는 뭘까? 

 

저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종교없는 삶을 짚어내고 있지만 기독교라고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기독교가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때로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 역시 세속화가 위협이 되기도 한다. 세속화가 믿지 않은 사람에겐 신앙을 갖지 않을 근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이다. 전에 모 교수가 TV에서 과학은 하나의 가설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진화론도 그렇게 시작됐을 것이고, 여전히 가설로 연구 대상인데 진화론은 마치 과학의 신이요 끝판왕처럼 신봉하는 반면, 창조론은 특정 종교를 표방한다고 해서 배제시켜 왔다. 가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과학이라면, 창조론도 같은 관점에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 아닌가?

 

역사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미국이 기독교적 이념에서 출발한 국가가 아니라면서 대통령이 성서를에 손을 얹고 대통령직을 수락하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지 않은 대통령을 지목하기도 하고, 그밖에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도 비기독교 내지는 비종교인임을 지적한다. 물론 그렇게 따진다면 저들의 입장에선 기독교 진영에서 위대한 기독교인을 추들며 기독교의 위대성을 말하는 것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위대한 사람은 종교인에서건 비종교인이건 다 나올 수 있다는 것엔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일제 강점기 국가적으론 패망이었지만 기독교가 그 시대에 했던 일은 가히 놀랍다 못해 위대했다. 그런데 그런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역사 교과서에선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그뿐인가? 아이들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도 대학만 들어가면 급속하게 신앙을 버리는 것에 대해 위기 의식을 느낀다. 게다가 나라 정책이 점점 비신앙을 옹호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하다못해 미션 스쿨에서도 성서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다고 들었다. 이것을 단순히 저자가 나열한 무종교의 탁월한 예를들어 그냥 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또한 저자는 죽으면 내세는 없으며 지금 여기의 삶을 살라고 하는데 물론 그럴 듯하긴 하다. 하지만 내세관 역시 내세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철학이다. 그것을 단지 몇 페이지 또는 몇 줄만으로 긍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내세관이 없는 것 보단 있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이 세상에서 싫은 사람을 죽은 후 저 세상에서도 만날 걸 생각하면 끔찍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저 세상에서 볼 수 있다면 사별의 슬픔은 좀 덜 하지 않을까? 또한 나쁜 사람들을 지옥이나 가라고 저주할 수도 없다. 아무리 비종교인의 우수한 도덕성과 교육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죄까지 없앨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삶이 나쁜 건 아니지만 깊어지면 죄의식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걸 저자는 간과하고 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이미 적잖은 지면을 할애했고, 이런 논의는 한도 없고, 끝도 없다. 또한 이러는 나 역시 처음부터 종교적 인간이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도 교회를 다니지만 여전히 회의속에서 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무종교의 삶이 종교의 삶 보다 나을 거란 근거를 못 찾겠다. 저자가 이만큼 고민해서 이런 책을 썼을 것이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한 왜 종교적 삶이 합당한지 고민해 보겠다. 결국 이건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종교적 삶과 무종교의 접점을 찾는 책중 하나로 봤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고가 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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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29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 전 언제 쓰죠? 오늘 도서관 못 가고 부모님 호출로 시골에 와서 노가다했네요 아 일정이 어그러졌네요 ㅋㅋㅋㅋㅋ

stella.K 2018-09-29 19:55   좋아요 1 | URL
ㅎㅎ 내일 쓰시면 되죠.
카알님은 어떻게 느끼셨을지 궁금하네요.^^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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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벌써 1년된 일이구나.

작년, 운이 좋아 주진우 기자가 이명박의 비리를 추격한(파헤친) 책이 나와  북콘서트에 간적이 있었다. 그때 게스트로 그가 나왔다. 평소 그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던, 나는 그의 진가를 거기서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어찌나 사람의 혼을 빼놓던지 게스트가 그렇게 훌륭하면 주인공이 기가죽는 법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가 죽을 주 기자도 아니겠지만. 물론 그날 그도 알았던 것 같다. 자신이 메인이 아니고 게스트란 걸. 그래서 그리 오랜 시간 무대를 장악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예사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1년여 후, 그는 이 책을 가지고 독자들을 공약하러 나섰다. 바로 얼마 전 북토크쇼에 메인이 됐던 것. 공히 말하건데 TV에 나온 그는 상당히 점잖게 나오는 것이다. 라이브에 강한 가수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라이브 토크에 강한 사람이 있다는 건 그때 또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원래 예정이 1시간이었는데 거의 2시간을 무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게스트 없이 혼자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과연 대단하다 싶었다.

 

주진우 때 헌법을 술술 외워서 속으로 야, 대단하다 했다. 외우는데 잼병인 나는 그저 부러울 밖에. 그런데 알고 봤더니 헌법이 그렇게 크고 두꺼운 책이 아니었다.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에 30쪽 내외나 되려나? 그런 것이었다. 물론 난 여전히 못 외울 것이긴 하지만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무대 밥 먹고 사는 사람이야 당연히 외우지 않을까?

 

그는 헌법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헌법 내용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그 문체가 좋다고 했다. 어쩌면 그리도 딱딱 떨어질 수 있는지.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시 대신 법전을 읽는다던 김훈 작가가 생각났다. 작가의 단문이면서 딱 떨어지는 명징한 문장은 법전을 읽은 영향이 크다고 했다. 그랬구나. 문득 법전은 고사하고 헌법이 어떻게 씌여있는지도 몰랐던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법이라는 건 어느 특정 계층을 위한 거지 나같은 일개 시민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게 아니어도 난 법에 대해선 도통 모르겠으니 일단 그것에 저촉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용히 살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야 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책을 보면 그가 언제 헌법 전도사요 예찬자인지 놀랄 정도다. 과연 그는 언제부터 그러고 살았던 걸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 법에 관한 대중서가 의외로 찾아보면 많다. 그것들은 다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썼을 것이다. 법을 대중에 알리려는 그들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고 생각한다. 나도 몇년 전 그런 류의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솔직히 재미있었던 건 아니다. 물론 그런 걸 재미로 읽을 수는 없다. 쉽게 접근하려고 여러 가지 사례를 곁들이긴 했지만 기억에 남는 건 거의 없다. 왜 읽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물론 이런 책은 어떻게 써져 있을까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문득 왜 우리나라 법조인은 김제동처럼 쓰지 못할까를 생각했다. 우리나라 법이 얼마나 잘 생겼는지를 일깨워주는데서부터 시작해야 맞는 거 아닌가? 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어떤 법에 이런 사례가 있다는 것만 딥따 알려주려고만 있으니 뭐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니었다. 내 필요나 지적 욕망을 자극하지 않으면, 우리가 뭐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사례를 보여줌으로 흥미를 유발하려고 했지만 지나고보면 그것도 주입식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럴 바엔 차라리 법정 드라마를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찌감치 접어둔 직업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법조인이었다. 물론 그만한 깜냥도 못 되지만 그 어마어마한 법을 어떻게 다 외울까 싶어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법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건 아닌지를 생각하게 만든 것도 이 책 때문이다. 책의 기획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헌법을 가지고 에세이를 쓰려고 하다니. 가히 깜찍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것도 법조인도 아닌 (일개의)연예인이! 하긴 그래도 김제동이나 하니까 읽어 볼 생각도 하지 않을까? 어느 알지도 못하는 법조인이 썼다면 읽을 마음이 이토록 간절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책 참 독특하다. 물론 전혀 어렵지 않다. 그 특유의 웃김말도 깨소금처럼 뿌려져 있다. 문체는 시종 구어체다. 그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읽고 있으면 그 특유의 사람을 위로하는 화법이 느껴진다. 더 나아가선 사실 우리나라 헬조선, 헬조선 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우리나라도 좋은 나라야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잘 생긴 헌법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면서. 거기에 이랬으면 좋겠어요, 저랬으면 좋겠어요 하는 그의 바람이 더해졌다.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정제된듯 하다. 토크쇼에 참여해 본 바에 의하면). 

 

우린 법을 모른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가 그랬다. 헌법은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있는 것이지 우리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납세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 정도 밖에 없다고 했다. 나머지는 나라가 할 일이고 위정자가 할 일이라고. 오히려 위정자들이 헌법에 명시된대로 하고 있는지 지켜보라고도 했다. 그러므로 법 앞에서 위정자들 앞에서 절대로 쫄지 말라고. 아, 그게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이책 참 괜찮은 책이다. 읽으면 위로 받는 느낌이 들것이다. 그리고 읽는 사람에 따라 부럽다 못해 살짝 샘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나는 이상하게도 좀 그랬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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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9-2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험 과목에 헌법이 있어서 대충 대충은 알지만, 그래도 다 외우지는 못해요.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예요. 법조문 자체를 아예 외우면 좋겠지만, 그것말고도 외울게 많아서(실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데다 암기력이 좋지 않다는 점이 진짜일지도 모릅니다만) 아직도 못외우고 있습니다. 외워야 하는 걸까요.;;

stella.K 2018-09-21 21:48   좋아요 1 | URL
아유, 뭐 그런 자책을...
안 외워도 우리 사는데 지장 없잖아요.
안 외워도 되요.ㅎㅎ

진짜 외우는 것도 한땐 것 같더라구요.
어렸을 때 외운 건 어렴풋하게 생각은 나요.
그게 기억나면 신기하더라니까요.^^

카알벨루치 2018-09-2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헌법>이랑 <우리 다시 헌법>인가 그 책 사뒀는데 함 읽어봐야겠네요 김제동씨 책은 한번 읽고는 싶은데 잘 안되네요 스텔라님 추석 잘 쇠고 오세욧! ^^

stella.K 2018-09-22 15:08   좋아요 1 | URL
그런 책 있으시면 이책은 굳이 읽으실 필요는...ㅋ

저는 특별히 명절 때 어디 가지는 않습니다.
언니랑 조카들이 외가라고 해서 오는 게 다죠.
녀석들이 많이 큽니다. 막내만 빼고 둘이가 다 사회인이죠.
다 컸는데도 녀석들 보는 게 기대되고 좋습니다.ㅎ
카알님도 즐거운 추석되시기 바랍니다.^^

세상틈에 2018-09-2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무도 감시도 꼼꼼히.^^ 그나저나 헌법과 김제동이라... 의외의 조합이네요.

stella.K 2018-09-22 15:10   좋아요 0 | URL
좀 의외긴 하죠? 그런데 의외로 있어보이긴 하더라구요.ㅋㅋ

북프리쿠키 2018-09-22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워~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은 아니지만.텔라님이 좋다하시니 얇디얇은 귀가 팔랑팔랑ㅎ 추석 잘 보내시고 찌짐 많이 드십시오^^

stella.K 2018-09-22 15:1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법에 관한 거니까 뭔가 지식을 원할 수도 있는데
김제동 특유의 사람 사는 얘기, 약간의 유머 그런 거라
혹시 나중에 중고샵에서 발견하시면...

ㅎㅎ 네. 찌짐 많이 먹겠습니다. 쿠키님도
행복한 명절되십시오.^^

2018-09-22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9-24 13:37   좋아요 0 | URL
아, 네. 고맙습니다.
연휴 잘 보내고 계시죠?^^

페크pek0501 2018-09-2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박 비리는 <닥치고 정치>를 보고 진작 알았어요. 이 책에 거짓이 있다면 그가 명예 훼손으로
고발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이 책 내용이 사실이구나 생각했었죠.

stella.K 2018-09-29 14:21   좋아요 0 | URL
제가 김제동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더라구요.
그가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여유롭게 자신의 과거 가지고 웃어가며
얘기하는데 다행이죠.
책이 재밌어요. 김제동 팬이라면 모를까 어떤 면에선
좀 가볍게 쓴 느낌도 들어서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더라구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