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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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에세이는 처음부터 낚싯밥이 확실하다. 전 세계 독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부터 다루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그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알다시피 요즘엔 거대담론보다는 디테일하고 미니멀리즘 한 얘기가 더 잘 먹힌다. (이미 많이 떠든 얘기지만) 난 하루키의 소설은 안 읽으면서 남들이 그에 대해 무슨 얘기하는지에 대해선 솔깃하다. 작품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면들이 더 알고 싶은지라.   


책을 보니 작년 기준으로 하루키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된 게 14년째란다. 그러니 해마다 그와의 인터뷰를 시도하려고 기자들이 대기 전쟁을 치르는가 보다. 그것이 안 되면 꿩 대신 닭이라고 번역가라도 인터뷰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저자도 해마다 홍역 아닌 홍역을 치른다고 한다. 그러면 하루키에 대해 쥐뿔도 모른다는 말을 자동응답기에 녹음해 두고 싶다고 하는데 웃음이 낫다. 그 상황이 정말 이해 간다. 번역자가 이런데 하루키 본인은 어떨까. 평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표정에 거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표정 관리에 은근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저자가 이런 지경이라면 전 세계 하루키 번역가들도 비슷한 상황일 거라는 건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하루키가 그 상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데 그건 나도 동감이다. 물론 나 역시 하루키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일본에 노벨문학상을 안겨 주는 게 싫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생각이 찔끔 바뀌기도 했다. 도대체 노벨문학상이 뭐라고 해마다 하루키는 고사하고, 기자는 무슨 고생이고, 하루키 번역가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전 하루키의 책을 번역한 죄 밖에 없어요. 정말 하루키에 대해서 쥐뿔도 몰라요. 그러니 우리 그냥 번역만 하게 해 주세요. 그들의 절규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들이 어디 하루키 책만 번역하고 살겠는가.  


 

#2

요즘 부쩍 나도 진작 번역을 해 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글을 잘 쓰려면 베껴쓰기는 필수다. 나도 아주 간혹 가물에 콩 나기로 베껴쓰기를 해 보는데 끝까지 한 건 가물에 콩도 안 날 정도다. 암튼 그렇게 하다 보면 차라리 원작을 번역을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문장 공부도 할 겸 돈도 벌고 좋지 않은가. 요즘엔 작가가 번역을 하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하루키가 번역도 했다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우리나라도 작가 김영하나 김연수 등 몇몇 작가들이 번역을 하기도 한다. 작가가 번역도 하면 좀 폼나지 않나? 더구나 저자의 말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색을 드러낼 수도 있고.


저자는 '타 업종 사람들의 습격'이란 글에서 이렇게 소설가들이 번역도 하는 것에 대해 쫄았다고 했는데 만일 나까지 번역한다고 했으면 어쩔 뻔했겠는가. 그럴 줄 알고 난 번역 안 하지 않는가. 아, 그런데 나는 어쩌자고 한국어 외엔 제대로 구사하는 외국어가 하나도 없는 건지. 모르긴 해도 이번 생엔 외국어를 아는 일은 없지 싶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요즘엔 미니 시리즈 드라마 한 편을 보려면 어떤 작가가 썼느냐가 그 드라마에 누가 나오느냐 못지않게 중요해졌는데, 번역가는 (편집자와 함께) 거의 유령 작가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 같아 그 점이 좀 아쉽다. 번역가도 직업상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대중에게 안 알려져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번역가도 자기 글을 쓰고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원작자의 이름에 가려 타 업종의 습격을 받을까 노심초사하며 번역만 할 것인가. 까이 꺼, 인생 얼마나 산다고. 습격엔 반드시 반격이 필요한 법. 저자의 소설로 반격할 날을 기대해 본다. 


 

#3

저자는 어린 시절 의외로 긍정적인 아이라고 했다. 9살 때 집이 망했을 때도 '나도 위인전의 위인들처럼 가난해졌다. 나도 위인처럼 될 수 있어! 했고, 중학교 때 환경이 바뀌었을 때도 소설 쓸 거리가 늘어났다! 하고 좋아했더란다.('그런 아이였다 1' 글에서, 098p)


오래전,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유명 탤런트가 배우 지망생 때 속상한 일을 당하면 꼭 반드시 유명한 배우가 돼서 그때를 생각하며 이 부분에서 이렇게 연기해 주고 말거야 해서 좀 놀란 적이 있었다. 나는 배우는 아니지만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이 상황을 꼭 소설로 쓰고 말 거야라며 소설 감 하나 더 늘어난 것을 기뻐(?)하곤 했으니까. 하긴, 오래전 나의 글 선생님도 말씀하시곤 하셨다. 내 안에 분노가 있는가. 그것이 글을 쓰게 할 거라고. 그 후 난 오랜 세월 동안 분노란 단어는 꽤 여러 번 다른 단어로 바뀌거나 구체화됐다.


사실 꿈이란 막연히 갖는 아름답고 고상한 그 무엇이 아닌지도 모른다. 오히려 비루하고, 부조리하며, 결핍 속에 자라나는 나를 긍정하며 살게 만드는 어떤 힘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그런 아이는 자라서 위인은 되지 못했지만, 벌레처럼 무시당하는 일은 없는 어른이 됐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 쓸 거리는 계속 느는데 아직 쓰지 못하는 게으른 어른이 됐다고 고백한다. 그 부분을 읽는데 딱 내 얘기하는 줄 알았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소설 쓸 거리는 계속 느는데 쓰진 못하고 게으른 어른이 됐다. (저자와 나의 나잇대도 비슷하다.) 그래도 저자는 번역을 계속하지만 난 그나마 쓰던 대본도 지금은 쓰지 않고 있다. 대본 안 쓰게 되면 소설 쓴다고 했는데, 빼도 박도 못하고 둘 중 하나가 됐다. 지금이라도 소설을 쓰거나 그냥 게으른 어른으로 남거나.ㅠ


 

#4

지난 2016년도에 (운이 좋아) 책을 내고 두 번 정도 방송이라는 걸 탔다. 한 번은 라디오 인터뷰였고, 한 번은 강연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출판사에서 그랬다. 책이 나오면 여기저기서 강연이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거라고. 원치 않으면 안 할 수도 있지만 가급적 응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출판사 측에서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하라는 소리다. 내 책 내 준 것도 고마운데 제가 무슨 강연이냐고 거절을 못하겠더라.


막연히 작가의 꿈을 꾸었을 땐 글만 잘 쓰면 되는 줄 알았다. 근데 여기저기 얼굴을 팔고(?) 다녀야 하다니, 이게 과연 내 팔자에 있었나 싶기도 했다. 작가야 말로 자기 책의 확실한 책장사가 돼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문제는 말주변이 없다는 거다. 또한 버벅댈 것이다. 버벅대지 않으면 내가 아니다. 버벅댈 수도 있다. 아예 생각부터 그렇게 하는 게 속편 하겠다 싶었다. 그러면 역으로 버벅대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역시 인터뷰도 그렇고, 강연도 그렇고 버벅댔다. 역시 난 버벅 여왕이었다. 얼마나 버벅댔던지 나중에 강연을 초청했던 분이 나를 다 위로를 한다. 저자는 앞에선 낯가림이 심해 강연을 못한다고 어쩌고 해도 결국 마지막은 자기 자랑으로 마무리한다. 부러웠다. 나는 적어도 나중에 그 강연 좋았어요. 뭐 그런 피드백을 듣지는 못하더라도, 그때 딱 한 번만이라도 청중을 웃게 만들었어야 했던 건데 그걸 못했다.


얼마 전, 강연 잘하기 노하우를 가르치는 어떤 사람의 동영상을 우연히 봤는데, 누구라면 알만한 셀럽은 매주 개그 콘서트를 챙겨보고, 유머집을 달달 외우며 체화시켜 강연을 한다고 한다. 역시 그냥 되는 일은 없구나. 그걸 그때 알았더라면 나도 노력해 보는 건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강연 섭외는 들어오지 않고 있다. 


 

#5

사진이란 게 그렇긴 하다. 찍어 놓고 보면 내가 나 같지가 않다. 남들은 이게 너라고. 예쁘게 나왔는데 왜 그러냐고 눈치 빠른 사람은 그렇게도 말해 주지만,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니냐고 은근 타박을 놓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역시 이런 나 자신의 낯섦 때문에 사진 찍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저자도 그런 말을 하지만,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내가 달라서다. 그래도 지나 놓고 보면 이때도 나쁘진 않았네 싶을 때가 있다. 그때야 비로소 나 자신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적어도 그 사진이 지금 보다 젊기 때문일 것이다. 젊음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진 찍힐 테면 찍혀라. 뭐 그런 자세도 필요한 할 것 같긴 하다. 지금의 내 모습도 훗날 다시 보면 싫지 않을 때가 반드시 있으리니.


 

#6

무슨 에세이가 이렇게 웃겨도 되나 싶게 스탠딩 코미디를 보는 줄 알았다. 유머 코드도 나와 잘 맞고. 요즘 에세이가 고급스러워진 것도 사실이다. 새삼 에세이가 꼭 그렇게 고급스러울 필요가 있을까. 공감하고 언제나 즐겁게 읽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거 아닌가 싶다. 저자의 글재주가 부럽기도 했다. 번역만 하지 말고 가끔 이렇게 에세이도 쓰고, 바라던 소설도 썼으면 좋겠다. 뭐가 됐던 다음 책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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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3-25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 때 제 모습을 찍은 사진이 많지 않아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셀카를 단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어요. 제 사진이 너무 희귀해요(?).. ㅎㅎㅎ 중년이 되고 나서 2, 30대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면 낯설게 느껴질 것 같아요.. ^^;;

stella.K 2020-03-26 15:22   좋아요 0 | URL
ㅎㅎ 나도 셀카는 없어. 내 사진 보는 게 좀 괴롭긴하지.
그래도 나중에 보면 저때도 나쁘지 않았네 할 거야.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찍어 두라고. 나중에 아쉬울 수 있으니.^^

페크pek0501 2020-03-3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라디오는 괜찮지만 강연을 하시다니...
많은 사람들 앞에 자기 모습을 보이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저라면 못할 것 같아요. ㅋ


stella.K 2020-03-30 11:48   좋아요 0 | URL
ㅎㅎ 언니도 책 내시면 하셔야 할 걸요?
지금부터 조금씩 연습해 두소서.^^

2020-03-30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30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 퇴진 요정 김민식 피디의 웃음 터지는 싸움 노하우
김민식 지음 / 푸른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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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PD는 아무나 하나. 그것도 우리나라 3대 지상파 방송국중 하나다. 그가 MBC에 입사하던 해가 유독 천운이 열리는 해였나 보다. 게다가 그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MBC는 선후배 사이가 돈독해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미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조직문화를 자랑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유독 그가 활동했던 시절 스타 기자, 스타 PD가 많았었다고 한다. 그러니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그러던 MBC가 이명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변질되기 시작한다. 그의 이력 중 하나가 MBC 노조 부위원장인데 그렇게 애사심이 강하다면 누가 등 떠밀기 전에 총대를 맬 법도 하지만 그는 그 자리를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며 거부한다. 가정이 있는 몸이다 보니 스스로 밥줄을 끊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회사와 노조 사이에서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회사에선 승진을 시켜주고 노조에선 회사의 부역자라고 낙인찍힌다. 그 얘기를 읽는데 왜 그리 우픈지 마치 채플린 식 코미디를 보는 것도 같다. 그 이유에 대해서 밝히는데 뉴스와 드라마는 분야도 다를 뿐만 아니라 일하는 성질도 다르단다. 뉴스의 단발성을 들어 언제든지 농성이 끝나면 복귀하면 빨리 일을 시작할 수 있지만 드라마는 6개월을 앞두고 기획하고 섭외하고, 관리는 특성이 있다. 그것을 접고 농성을 한다면 농부가 1년 농사를 망치는 것과 같은 거란다. 가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랬다고 우리는 언론인과 기자들에게 쉽게 기레기라고 욕하고 비난 하지만, 좋든 싫든 그것을 감수하며 그곳을 다니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지 한 번쯤 생각할 필요는 있겠다 싶다. 누군들 명예롭고 싶지 않겠는가. 더구나 지상파 방송국이라면 신이 내린 직장 아닌가. 그런 회사가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가장 마음 아파할 사람은 기레기라고 욕하는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기레기라고 욕하기 전에 총대를 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 대해 격려와 위로는 차치하고라도 좀 지켜봐 줘야 하지 않을까. 싸잡아 매도하는 건 그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 될 것이다. MBC가 공공재라면 말이다. 우린 그 공공재라고 하는 방송이 썩어 화가 나 욕하고 종편으로 갈아탈 줄만 알았지 그들을 도와주지 못했다. 왜? 그렇게 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또한 그게 대중의 속성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런 것을 통해 경각심을 갖고 반성하고 거듭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지 우리가 아니다.      


안타깝고 무서운 건 국가 권력이 언론을 장악해 사유화할 수 있다는 이런 발상이 아직도 가능하다는 것이 참 놀랍다. 앞으로 그 어떤 정부의 집권자도 그런 허황된 꿈은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국가 권력에 줄을 대고 자신뿐 아니라 자손만대가 복을 누리겠다고 하는 사람도 그만 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일해서 잘 살아 보겠다는 꿈을 가진 자는 어쩌란 말인가. 이 후자의 사람들을 을이라고 봤을 때 전자의 그런 작은 날개 짓만으로도 을은 날개가 꺾이다 못해 피눈물을 흘린다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MBC 노조가 어떻게 싸워 왔는지를 알리기도 했지만, 결국 노조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느꼈던 것들, 싸움의 노하우 등을 공유하기도 한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안 싸울 수가 없다. 항상 전시 상황을 사는 사람은 싸움의 근육이 붙고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 같이 간헐적으로 싸우고 사는 사람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저 가슴만 콩당콩당 뛰고 상대를 원하는 만큼 제압시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분노를 삭이다 어떠한 결과도 얻지 못하고 빨리 싸움을 종결하려고 한다. X 밟았다 하면서 말이다.


솔직히 싸우면 창피한 생각이 든다. 나는 어디서든 고상한 사람이길 원하는데 괜히 싸움닭으로 오인을 받을까 봐 싫은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이 결코 옳은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그 허점을 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책 제목이 마음에 든다.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우다니. 역사는 항상 승자의 것이고 패배자는 기억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싸워보기 전에 미리 겁먹고 패배 의식부터 갖는지도 모르겠다. 헬조선이니 개천에서 용 안 나온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책과 영화를 정말로 좋아하는가 보다. 거의 매 쳅터마다 영화 아니면 책을 인용해 놓고 있는데, 나는 아직 보지 못한 (어쩌면 볼 생각이 없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를 인용하기도 한다. 막강한 전력을 소유한 악당이 이런 말을 한단다.

"너는 나를 이길 수 없어!"

그러자 닥터 스트레인지가,

"응, 나도 이길 생각은 없어. 대신 나는 너에게 지고, 또 지고, 끝없이 질 거야. 지고도 계속 싸움을 건다면, 적어도 그동안에 너는 승리하지 못할 거야."

"싸움에서 계속 지는 건 고통스러울 텐데?"

"고통은 내 오랜 친구야."

꺄오, 이런 멋지구리한 장면이 있었다니! 저자 역시 영화를 보다가 감탄했단다. 이런 싸움법도 있구나 해서. 나도 동감이다. 싸움은 힘이나 기술로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지면서도 버티는 방법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기는 자의 반대쪽은 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노조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겼다. 하지만 이겼음에도 저자를 비롯한 노조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예전을 회복하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은 다른 방송국을 찾아 떠났고, 어떤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가기도 했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더구나 그렇게 사측과 싸우는 동안 저자는 나이가 들어 도저히 예전의 드라마 PD를 맡을 수가 없더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것은 시트콤을 만들 감각이 퇴화되기도 하거니와 한창 물 오른 후배를 생각하니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없겠다고. 그야말로 상처뿐인 승리고 영광인 것 같다.


하지만 저저는 행복은 질이 아니라 빈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물론 싸울 때 고통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새로운 싸움법과 시위 방법을 개발하고 함께 싸우며 즐거움과 보람을 얘기하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MBC 프리덤>과 어느 팟캐스트에 나가 김재철 사장의 업적을 찬양한 것 등이다. 행복이라는 것, 희열이라는 건 참 묘하긴 하다. 그것들은 평온하고 충만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때 찾아온다. 저자를 비롯한 노조 사람들이 그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행복의 빈도수를 자주 느꼈다면 분명 불행하지마는 않았을 것이다.


책 뒤에 가면 부록처럼 그동안 노조가 걸어온 길을 도표처럼 보여주는데 좀 뭉클하다. MBC가 타락하고 썩은 것 같지만 그 어디에선가 이런 노력들이 있었구나 싶어 이제라도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응원을 보내고 싶어 진다. 더불어 나 역시 앞으로 살면서 싸울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흐리멍덩하게 싸우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쉽진 않다. 저자는 연대했지만 나의 싸움은 언제나 혼자다. 그래서 버티기가 어렵다. 하지만 저자는 말했다. 싸울 때 싸우지 않는 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또한 그것은 <손자병법>에 나온 말이기도 하다. <손자병법>은 싸움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적들에게 스스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고, 그것은 스스로를 향한 존중을 시작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나도 싸울 때마다 이 말을 기억하겠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저자를 따라 하고 싶은 게 한 가지 있다. 그는 SNS에 매일 아침에 글 한 편을 올린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인가 싶어 저자의 SNS을 추적해 확인해 봤는데 사실인 것 같다. 과연 대단하다 싶다. 그리 한가한 분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매일 올릴 수 있을까. 나도 한때는 거짓말 좀 보태 블로그에 하루로 글을 올리지 않으면 목에 가시가 돋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차츰 안 올리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가물에 콩 나듯 올리고 있다. 게을러진 것도 있지만 왠지 너무 자주 올리면 한가한 사람으로 찍히는 것 같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나의 게으름을 정당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그 올린 글이 어느 정도 모아지면 책을 낸다지 않는가. 그런 저자를 보면서 나도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또 싸울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그럴 일이 또 생긴다면 부디 잘 싸우시고 잘 버텨주시라 당부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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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3-10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은 쓰고 싶을 때 써야 해요. 자꾸 미루면 나중에 글쓰기가 어려워져요. 적응이 안 돼요. 한가할 때든 바쁠 때든 살아 있다면 뭐라도 써야 해요. ^^

stella.K 2020-03-10 18:5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 말야. 근데 그게 머리에만 있고 몸은 안 따라주고.ㅠ
이책 읽으면서 이러면 안 되지 싶더군.
지금도 머리속에 몇 개의 이유기가 맴돌고 있는데 언제 뽑아 쓸런지
모르겠어.ㅠ

마태우스 2020-03-10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책을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란 말이 나오네요! 책 읽고난 뒤 MBC 프리덤 찾아보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사실 삶이라는 게 세상과 싸우는 거 아닌가 싶은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stella.K 2020-03-11 15:43   좋아요 0 | URL
헉, 마태님이 이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습니다.
그럼 저 잘한 거죠?ㅋ
내용이 약간 산만한 것도 같은데 그게 그리 큰 흠은 안 되는 것 같구요
제가 모르는 MBC의 또 다른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자의 인상이 좋더군요. 귀엽다고나 할까?ㅋㅋ

페크pek0501 2020-03-11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싸울 일이 있었을 때 싸움을 피한 게 나중에 후회가 되더군요. 참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비굴한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지금도 싸움은 싫어요. 싸움에 소모하는 에너지가 아깝고 쓸데없는 짓 하는 것 같거든요.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겠지만...
싸움을 피하는 대신 아예 다시 안 보는 쪽으로 마음 정리를 하게 됩니다. 다시 볼 생각이면 싸우고요. ㅋ

stella.K 2020-03-11 15:50   좋아요 1 | URL
ㅎㅎ 다시 볼 생각이면 싸우시는군요.
저는 다시 볼 생각이 없으면 싸우는데. 이판사판이잖아요.
근데 반대로 볼 생각하고 안 싸우려고 참고 좋게 좋게 지내려고 해도
멀어질 사람은 멀어지더군요.
네가 뭔데 나랑 안 싸워 뭐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싸울 땐 싸우려구요. 인간 별 거 있습니까?ㅋ

쫌 아까 공원에 바람 쐬고 들어왔는데 집에만 하루종일 있는 것 보다야
낫겠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하나 싶네요.ㅠ

 
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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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 좋아한다. 이를테면 어떤 작가의 무슨 책 보단 그 책을 쓴 작가에 관해 시시콜콜하게 쓴 책. 대표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지 않을까. 이제 그에 관한 책은 그가 쓴 책들보다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한 작가가 아닌가. 유명한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글을 쓰고, 뭐에 관심이 많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남의 삶이 왜 그렇게 궁금하냐고 할 텐가?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사람을 알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거다. 일반 대중이 연예인들에 대해 관심 있어하는 거랑 무엇이 다르겠는가. 단 난 그저 그 대상이 작가에게 있다는 것뿐. 하루키는 새벽 4시 전후로 일어나 한잔의 커피와 함께 책상 앞에 앉아 10시까지 글을 쓰고, 이후 10킬로미터를 달리고, 2시엔 번역 작업을 하거나 어느 음반 가게를 기웃거리고, 저녁에 장을 봐서 요리를 해 먹은 뒤 책을 읽다 밤 10시경 잠자리에 든다. 사실 이 이야기는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또 이런 식으로 작가들의 일상을 써 놓은 책은 없을까 기웃거린다. 그래서일까? 저자들 중엔 아예 작가의 일상을 채집해서 책으로 엮은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다. 이 책은 무려 131명의 여성 예술가의 루틴을 소개하고 있다. 그 정도라면 너무 많아 세례가 아니라 폭격 수준이다.  


루틴, 말 그대로 일상을 의미하는 단어로 저자는 예술가들이 어떤 작업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넓게는 무용가나 화가, 연출가, 배우 등 예술가라 불릴만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지만 가장 많이 다룬 직업은 시나 소설가 같은 문인이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하루키에 대해 느꼈던 흥미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의 루틴을 모았을까, 읽는 사람은 좋긴 한데 쓰는 저자는 멀미가 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솔직히 읽는 나도 멀미가 좀 났다.ㅠ) 


소개된 예술가들 대부분은 하루키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루틴을 철저하게 실천했고, 어떤 사람은 아예 워커 홀릭인 경우도 있었다. 특히 코코 샤넬은 쉬는 것을 두려워하기까지 했는데, 일만 하고 살면 오래 못 살았을 것 같지만 나름 오래 살았다. 하루키 때문일까, 나 역시 작가는 자신만의 루틴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꼭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어 오히려 반가웠다. 예를 들면, 시인이었던 엘리자베스 비숍이 그렇다.


그녀는 만성 천식 환자로 코르티손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약물의 부작용이 오히려 유익을 가져다줬다고 말한다. 그것의 부작용은 불면증이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창작의 희열을 느끼게 해 줬다고. 하지만 그 희열의 수명은 오래가지 못했고 정서가 망가질까 봐 복용을 중단하고 아주 천천히 쓰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이렇게 작가는 뭔가의 강박에 쫓겨 하루에도 몇 장의 원고를 써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생각에 동조라도 하듯 시인인 니키 조반니와 소설가 제이디 스미스 같은 사람은 쓰고 싶을 때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 글을 쓰다 보면 처음엔 긴장해서 열심히 쓰다가도 중간쯤 되면 느슨해지고 나중엔 포기하고 싶거나 정말 포기하게 된다. 그럴 때 니키는 장벽 같은 건 없다고 얘기하는데 그게 또 좀 말이 된다. 장벽을 받아들이면 장벽은 없는 것이다. 장벽이라고 생각되면 장벽인 것이고. 즉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이디 스미스는 한 술 더 뜬다. 글이란 절박한 심정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읽을 때도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진짜 글을 써야겠다 싶을 때가 아니면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도 맞는 얘기 같다. 죄짜듯 또는 싫은데 억지로 쓰는 거 별로다.  


그러고 보니 누가 생각이 난다. 빚을 갚기 위해 글을 썼다는 도스토옙스키와 발자크. 글을 써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글을 썼다. 작가라는 직업은 정말 묘한 직업 같다. 이렇게 절박함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니. 그렇다고 절박함을 위해 일부러 빚을 지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라. 절박함을 갖는 방법이 꼭 그것만이 있는 건 아니다. 글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고, 출판사와 계약 맺거나 아니면 일부러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떠벌릴 수도 있다. 그렇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나를 던져 넣으면 된다. 솔직히 빚을 지든 원고 계약을 맺든 작가가 돈만큼 절박한 게 또 있을까.  


이와 반대의 개념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최초의 여성 사회학자요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해리엇 마티노(1802~1876)는, 글을 쓰기 위하여 자리에 앉았다면 처음 무조건 쓰라고 조언한다. 그것은 글 쓸 기분이 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쓰면 당혹감과 우울함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공부든 글 쓰기든 책상 앞에 앉았다고 바로 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일단 인터넷에 들어가 여기저기 서핑을 하다 하게 되는데 이게 좀 위험하긴 하다. 유독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땐 그걸로 시간을 채우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땐 마티노의 말이 맞는 것 같긴 하다. 25분 동안 글을 쓰고 인터넷을 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럼 그 25분 안에 풍덩 빠져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25분 동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25분 동안만 인터넷을 하다 바로 글을 쓰는 것으로 하던가. 그러니까 인터넷 25분은 글을 쓰기 위한 일종의 리추얼 같은 것이다. (나름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인터넷 25분은 가능한 시간 같지는 않다. 25분은 그냥 상징적 시간으로 해 두자.ㅋ)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거릿 미첼의 경우 그런 대작을 썼다면 매일 최소 30장 이상은 쓰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는 고작 두 장 정도를 쓰고, 다음 날 아침 다듬고 나면 겨우 여섯 줄이 남는다고 한다. 그럼 다시 시작하고. 그렇다면 그녀는 도대체 몇 년에 걸쳐서 그 작품을 완성시킨 걸까. 책을 보니 1928년에 쓰기 시작해서 1935년 가을에 편집자에게 원고를 넘겼다고 하니 나 같으면 진작에 못 쓴다고 했을 것 같다. 더구나 각장을 20번 이상 고쳐 썼다. 문득 습작이라고 썼던 내 지난날의 글들을 그렇게 쉽게 폐기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싶기도 하다. 글 쓰기는 그렇게 지난한 것이다. 문득 내가 처음 작가의 꿈을 가졌을 때 이럴 줄 알고 있었나를 생각하면, 난 꿈에도 몰랐다. 미첼은 이 작품으로 퓰리처 상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 한 작품도 쓰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무엇을 준다고 해도 그 일을 다시 시작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득 오래전 나의 사부가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그렇게 힘들 게 쓰고도 또 쓰고 싶은 생각이 나면 작가가 자기 천성에 맞는 거라고. 그렇다면 마거릿 미첼 같은 작가는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인생 한 방이라더니 작가도 한 방인 건가.


내가 이런 책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작가의 사생활이 궁금한 관음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 뭔가 쓰고 싶은 욕구가 꿈틀대기도 한다.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를 논할 때 보통 엉덩이의 힘으로 쓴다고 하는데 이제 그 말은 너무 단순하고 식상해서 웃음도 않나 온다. 예술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루틴 속에서 예술을 창조해 나갔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책은 매 장이 끝날 때마다 그 사람이 누구고 뭐했던 사람인지를 짤막하게 써 놓고 있다. 거기엔 그들의 출생 연도와 생몰연도까지도 밝혀놓고 있다. 보고 있노라면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렇게 살다 간 예술가들은 언제까지나 어제와 같은 일상을 살 것 같은데 어느 하루부터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날을 맞이하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소 허망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들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았기 때문에 아쉬움 같은 건 없을 것 같다. 가끔 사람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다고 일상의 고단함 또는 무료함을 토로하기도 하는데 인간의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지 않으면 둘 중 하나다. 어디가 아프거나 죽은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아파보면 일상이 주는 고마움을 알게 된다. 부디 삶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삶의 비결은 별 것 없다. 꿈이 있다면 그 목표를 이루는데 합당한 루틴을 만들고 하루하루 그것에 맞혀 사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예술가들은 예술적 재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을 위해 매일 루틴을 지키고 살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찌 보면 그게 재능보다 더 힘든 거라는 건 잠 작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여성 예술가들의 루틴을 다뤘다. 이 책이 여성 예술가를 집중적으로 다룬 건, 이 책 이전에 저자는 <리추얼>이란 책을 썼는데 그건 남성 예술가를 주로 다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책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가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열심히 글 쓰기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가 알만한 작가들의 사진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난 그게 참 섹시해 보인다. 저 표정 한컷을 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자기 루틴을 지키며 살았을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누구는 그랬다. 작가에겐 원죄가 있는데,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죄로 책상 앞에 평생 뭔가를 써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그들은 평생 거미줄을 잣는 아라크네의 후예들이라고. 일부러 글 감옥에도 들어가는데 그 정도라면 칭찬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거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작가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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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2-2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장바구니에 담아갑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리추얼>도 재미있게 읽어서 기대돼요.

stella.K 2020-02-23 20:32   좋아요 0 | URL
저는 대체적으로 이런 책을 좋아해서 나름 재밌게 읽었는데
내용이 좀 많다는 느낌은 듭니다.
리추얼은 안 읽어서 모르겠는데 오히려 리추얼이 더 재밌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저자들이 첫 책에 공을 많이 들이잖아요.^^

북프리쿠키 2020-02-23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나 페이퍼를 쓸때도 아~이번 글은 참 마음에 든다. 할 때가 쥐똥만큼 생길 때도 있는데, 작가는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꿈틀거리는 욕구 좀 푸셔야 하지 않을까요~^^

stella.K 2020-02-24 12:1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저는 솔직히 쿠키님 저한테 이렇게 자극 주실 때가
젤 좋고 감사합니다. 작가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죠. 고맙습니다. 쿠키님을 위해서라도
올해는 어떻게든 두번째 책을 내보도록 노력하겠슴다.ㅋㅋ

2020-02-25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2-26 15:05   좋아요 0 | URL
와우, 도서관 매니아시군요.
저도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이 한 번은 중고샵을 나가려고
생각중인데 그 루틴은 안 지켜지고 있어요.ㅠ
 
우리 한자어사전 - 한자어 속뜻 사전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이재운 외 엮음 / 노마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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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이야 온라인 검색창에 자신이 알고자 하는 단어를 입력하면 휘리릭 알아서 찾아준다. 아날로그 시대 땐 사전 찾는 법을 따로 배워야 했다. 또 두껍기는 얼마나 두껍던지. 학창 시절엔 뭐든지 필요에 의해서 배우는 곳이라 국어사전보다는 영어 사전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금은 보지도 않는 중학교 때 산 벽돌 같은 영어 사전을 아직도 가지고 있지만, 변변한 국어사전은 그때나 지금이나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온라인에서 사전을 수시로 찾아본다.


글은 쓰면 쓸수록 단어에 대한 집착이 편집증처럼 강해진다. 이미 아는 단어도 다시 찾아보게 된다. 내가 혹시 잘못 알거나 대충 알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또한 이 문장에 이 단어를 써도 되나 확인 차원에서 알아보게 된다. 얼마나 좋은가. 책으로 된 사전이었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을 인터넷이 가능하니 손쉽게 할 수 있다. 대신 단점이 있기는 하다. 꼭 내가 알고자 하는 단어만 알 수 있지 그 외의 것을 에둘러 알아보지는 않게 된다. 책으로 된 사전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항목별로 나열되어 있어 에누리로 몇 개의 단어를 더 읽어 볼 수도 있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는 제의를 거치기도 한다. 뭐 그게 꼭 아니더라도 어휘가 풍부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멋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사전은 누가 만드는 걸까. 읽는 것 자체도 지난한데 그걸 편찬하는 사람은 얼마나 지난한 작업을 할지 짐작도 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려고 하니 언젠가 보았던  <행복한 사전>이란 일본 영화가 생각났다. 주인공으로 마츠다 류헤이의 캐스팅은 적절하다 못해 정말 훌륭하기까지 했다. 그는 정말 치밀하고 꼼꼼한 서생처럼 생겼다. 과연 이런 일을 하기에 딱 어울리는 이미지다. 아니면 시계를 만들거나.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못할 것만 같지만 뭔가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점에선 새삼 존경스러움이 느껴진다. 이 책의 엮은이도 그렇다. 엮는 작업과 사전 편찬의 수고로움이 무슨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새삼 존경스러움이 느껴졌다. 그걸 또 이번에 처음 펴낸 것도 아니다. 비슷한 작업을 전에도 했고 이것만도 증보판이다. 그가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를 머리말에 밝혀놓고 있는데 과연 이럴 수 있나 싶기도 하다. 이것 말고도 소설도 썼다. 


"...... 나는 우리 어휘를 써서 소설을 써온 작가로서 누구보다 우리말에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1994년부터 우리말 사전 시리즈를 편찬해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 사전>을 2005년에야 초판이 나올 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거의 10년간 한자어를 연구하고 수집하고 검증하여 겨우 초판을 만들어 세상에 선보였다.

 3년 만에 2판을 낼 때는 더 집중하여 관련 어휘를 1000개로 늘렸고, 이번 3판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 한자어 사전>에서는 생활 어휘를 더 추가하여 2000여 개 어휘로 확 늘렸다. "


과연 이것을 언제 다했을까 싶다. 특별히 자신이 한자어 공부를 한 연유를 밝히고 있는데, 어렸을 때 서당 다니던 형을 따라 천자문과 통감을 웅얼거리고, 고등학교 때 한문 서적을 많이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한문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더구나 후배가 8년간 수천만 원을 들여 사들인 한문 고서적 1만여 권을 그의 서재로 보내 마음껏 읽게 해 준 이야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대학원 시절 스승인 서정주 시인에게 여쭸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스승님 같이 시를 잘 쓸 수 있냐고, 그러자 미당은 시를 잘 쓰려면 이런 거 저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일단 한문 공부부터 하라고 조언하더란다. 그래야 우리글의 깊은 맛을 낼 수 있다고. 우리말 그릇이 본디 한자어고, 한자어는 한문으로 길들여진 말이니 그 그릇이 튼튼해야 서양 공부든 동양 공부든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이쯤 되면 한자어는 그의 운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 운명에 확실한 쐐기를 밖은 건, 우리 국어사전에 한자어가 70%란 통계가 있더란다. 하지만 그 70%의 한자어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대부분 일본 한자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원래 쓰지 않았던 것을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 일본 유학생들이 쓰던 그들만의 한자어라는 것이다. 그다음 말은 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운명이 사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수록된 단어는 본뜻과 자구 해석, 바뀐 뜻, 보기글로 세분화되어 있는데 비교적 간단명료하지만 어떤 건 그 단어가 유래된 배경을 설명하기도 한다. 정말 읽어 볼만하다. 그건 또 거의 대부분 고대 중국에서 유래된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작가가 지적한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 국어사전을 쥐고 흔들만한 단어는 뭐가 있었을까. 한 예로 방송(放送)이란 단어가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다. 이것의 본뜻은 죄수를 감옥이나 유배에서 풀어주다의 뜻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방송국이 생기기 전인 1920년대까지 방송은 석방(釋放)과 같은 뜻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영을 내려 시행한다는 의미로 '방송을 명한다'라고 했다. 이것의 바뀐 뜻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장교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었는데 후에 이것이 영어의 '브로드캐스팅'을 번역한 말로 채택되어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용어가 지금의 전파를 송출해서 내보내는 통신용어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아직도 설을 구정이라고 쓰는 사람이 있다. 종종 있다. 구정이야 말로 일제 강점기 때 썼던 말인데 지난 세월 이런 우리 국어에서 일제의 잔재를 걷어내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완전히 없앤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가 보다.


읽다가 매춘(賣春)이란 단어가 생각보다 흥미롭다. 원래 춘이란 단어가 중국 당나라에서 쓰이던 말로 좋은  뜻이란 뜻이란다. 대개 술은 정월에 빚어 봄이 가기 전에 완성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의 자구 해석은 좋은 술을 사다인데  여자가 남자를 그리워하는 정을 춘이라고도 했단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매춘이란 단어다. 그렇다면 '위안(慰安)'이란 단어는 어떨까? 남의 종기를 불로 지져 치료해 주는 사람이란 뜻의 위와 편안하게 해 주다는 뜻의 안이 하나가 된 단어다. 이는 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일본군들이 성노예로서 위로하고 편안하게 해 준다는 뜻으로 썼다. 문득 이 매춘과 위안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듯하면서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우리가 알듯 모를듯한 단어를 새롭게 또는 확실하게 안다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가까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또는 머리가 복잡할 때 조금씩 읽어 두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이 지난한 일을 한결같은 자세로 임했을 이재운 작가와 함께한 이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박수를 전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난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종이책의 묵직함이 사전은 잘 안 찾아질 것 같다. 전자책으로 보는 것이 훨씬 활용도가 높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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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0-01-31 0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사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밑도끝도 없겠지만
오래 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촉망받던 소설가, 김소진씨의 국어사전 공부가 생각나는군요.
전공이 영문학이었던 한겨레신문 기자로 소설을 쓰기 위한 공부가 국어사전이여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설가 뿐 아니라 문학가라면 대부분 김소진씨와 비슷한 노력을 하겠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니르바나도 종이사전 애호가입니다.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저의 집에도
사전이라고 이름 붙은 책이 한 50종은 될 듯 싶은데요.(일종의 책부심입니다.ㅎㅎ)


stella.K 2020-01-31 15:28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그렇지 않아도 리뷰 올리면서 소설가 한 사람을 생각했는데
그게 김소진 작가였어요. 머리속에서 뱅뱅 돌았습니다.ㅋ
그런데 사전을 그렇게 많이 갖고 계시다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네요.
저도 종이책 애호간데 요즘 제가 손목이 시여서 이런 무거운 책은
이제 욕심낼게 못되겠다 싶더군요. 그래도 이 시리즈 욕심이 나긴 납니다.

참, 제가 올해 니르바나님께 새해 인사 드렸던가요?
늦었지만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 빌겠습니다.
변함없이 서재에서 가끔 뵈어요.^^

cyrus 2020-02-0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님의 글을 읽으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사전들을 소개하고 싶은 글을 써보고 싶네요. 저는 특별한 주제와 내용이 있는 사전들을 가지고 있어요. ^^

stella.K 2020-02-02 18:47   좋아요 0 | URL
엇, 정말! 궁금하네. 난 사전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무슨 사전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
기대할게.^^
 
음악, 좋아하세요?
엄상준 지음 / 호밀밭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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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의 물성을 좋아한다. 내내 블로그나 카페에서 보던 글도 종이책으로 보면 그 느낌이나 질감이 다르다. 그건 아마도 내가 아날로그 세대여서 인지도 모르고 디지털이 아무리 발전해도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일반인들도 책을 내는 시대라 내내 인터넷에서 보아 온 글도 종이책으로 보면 또 달리 보이는 게 있다. 


이 책의 저자와는 한때 운이 좋아서 같은 사이트의 블로그를 사용(인터넷 서점 알라딘)하고 있어 한동안 글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땐 저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주로 음악에 관한 글이 많이 올라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쪽의 애호가는 아닐까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책으로 마주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책 표지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아 사인본까지 받았다. 난 그때서야 알았다. 그가 한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 PD라는 걸. 그러자 그 시절 그가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 이해가 갔다. 음악과 책을 한 쳅터 안에 엮는 솜씨도 뛰어나지만 문장이 정말로 좋다. 각 글의 제목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세상에 무슨 짓을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음악은 늘 우리와 함께한다. 우리가 의식하든 안 하든.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저렇게 음악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다. 어렸을 적 내가 음반을 가까이할 수 있었던 건 이사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당시 신상품이었던 스테레오 전축을 들여오면서부터 였다. 물론 전에도 전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래되기도 했고 고장이 나서 그 위에 다른 세간살이를 올려놓는 등 받침대 역할 밖엔 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너무 어려 그런 물건에 관심도 없었다.


그때 아버지는 음악을 들으려고 전축을 산 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허세를 즐겨하셨던 아버지는 음악보다는 전시 효과를 위해 그걸 집안이 들이셨다. 덕분에 호사를 누리건 우리 4남매였다. 그때 언니는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두 살 터울인 오빠도 발동이 걸리려고 폼 잡고 있는데다 난 또래보다 다소 조숙했다. 사춘기가 시작했다는 건 그 안에 문예부흥이 시작됐다는 말도 된다. 그동안 TV나 라디오에서 간헐적으로 듣고 알았던 것들이 허기로 느껴지면서 소유욕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언니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닐 다이아몬드, 폴 모리아 악단 같은 팝 음악을 모으기 시작했고, 오빠는 락을 좋아했으며, 나는 고상하게도 클래식을 좋아했다. 내 동생은 아직 코찔찔이라 음반 보단 만화를 더 좋아했는데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나중에 음반에 대한 조예는 나를 훨씬 능가하긴 했다.              


내가 한때나마 클래식 음반을 좋아했던 건 부모님이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오직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신 것에 기인한다. 단지 안타까운 건 내가 피아노를 배우기 전 먼저 클래식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했다면 중간에 그만두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한창 백건우와 정명훈이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을 땐데 부모님은 그들이 어떻게 피아노를 치는지 나에게 들려준 적이 없으면서 무조건 그들과 같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라고만 하셨다. 그때 난 백건우나 정명훈보다 내 몸의 다섯 배쯤 되는 시커먼 피아노가 더 무서웠다. 그래도 그때 배웠던 몇몇 피아노곡은 아주 싫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속한 반이 합주반이었다. 그때 우린 서울 지역의 초등학교와 합주 경연을 해야 했는데 몇 번의 예선을 거쳐 본선 최종 엔트리에 올라 마지막 경합을 벌여야 했다. 그때 우리의 출전곡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사실 난 처음엔 이 합주를 못할 뻔했다. 왜냐하면 피아노를 그만두고 얼마 있지 않아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가 와서 이제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내 생애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합주 구성 악기 중 멜로디혼 파트가 있었는데 그건 본래 한 손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그런 거라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바로 그것이다. 음악을 알려면 먼저 그렇게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음악을 듣다면 꼭 클래식만 들었고 음반도 꼭 클래식만 사 모았다. 아마도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경험이 없었다면 더 나아가 피아노 수업 경험이 없었다면 클래식은 내 생애 없는지도 모른다. 또한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과 그 곡을 직접 연주해 본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 부모들이 할 수만 있으면 자기 자녀들에게 음악을 시키려 하는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클래식은 확실히 약간의 노력과 의도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물론 늘 클래식 음악만 흐르는 가정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말이다. 이건 정말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후로 줄곧 클래식만 들을 것 같던 내가 어느새 듣는 음악이 팝송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최동욱, 이종환, 김기덕, 김광한, 전영혁 등 전문 DJ 또는 팝 칼럼니스트가 라디오에 등장해 춘추전국 시대를 이루었다. 클래식은 영원하지만 대중음악은 그때가 아니면 안 된다. 책의 저자는 라디오는 복지라고 했는데 그 말에 동의한다. 매일 틀어주는데 듣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다.  


귀동냥이 무섭다고 괜찮은 음악은 제목과 가수 이름을 메모도 하고, 녹음테이프에 녹음도 했다. 아마 공부를 그렇게 했더라면 S대 아니야 하버드대도 갔을 것이다. 게다가 그 시절엔 각 다방마다 DJ 박스가 있어 음악 신청도 할 수가 있었는데, 친구와 함께 다방에 갔다 내가 신청한 음악 리스트를 DJ가 보고 예사롭지 않은 선곡이라며 한껏 띄워주는 바람에 우쭐한 적도 있다. 왜 그런 일은 학점 인정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  


그런 내가 90년대 들어서면서 음악 듣기가 시들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하다못해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 놨는데도 난 그다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냥 그런 음악이 있나 보다 할 뿐이다. 더 이상 들을 게 없는 것처럼 모든 게 시큰둥이다. 하긴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흐르면 권태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엄밀히 생각해 보면 열광만 안 했다 뿐이지 난 그때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듣고 있었을 것이다. 아 맞다. 생각해 보니 난 그 시절 가스펠, 복음성가를 즐겨 들었다. 그건 물론 내가 기독교인이기도 하지만 송정미나 하덕규, 박종호 같은 90년대 기라성 같은 가스펠 가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의 음악은 종교음악이라는 특정에 갇혀 있어서 그렇지 편곡이나 음악성은 웬만한 메이저 가수들 못지않은 기량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음악을 들어준다면 난 언제나 가스펠이었다.     


그러다 음악을 다른 관점에서 듣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연극에서 음악은 어떤 곡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좀 더 생산적으로 듣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그건 새로운 경험이고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떤 음악이 어떻게 쓰이나를 관찰하는 버릇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난 정말 약속처럼 클래식 음악으로 돌아와 있었다.


언젠가 문학수 기자가 클래식을 듣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난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인생을 두고 고행이라고도 하지만 가끔은 선물 같은 때가 있다. 그게 또 인생이다. 음악도 그런 것 아닐까. 아무리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도 모든 음악을 다 좋아할 수는 없다. 음악을 듣다 보면 문득 '얻어걸리는'게 있다. 그게 바로 선물 같은 순간일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음악에 대한 관심은 시작되고 자란다. 나를 보라. 초등학교 시절 내가 속했던 반이 합주반이 아니었다면 그때 내가 멜로디혼 파트를 자청하지 않았다면 요한 슈트라우스가 무슨 행진곡을 어떻게 작곡했는지 알지 못했거나 훨씬 나중에 알았을 것이다. 그건 정말 지금 생각해도 선물 같은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합주 연습을 했던 당시는 정말 지난했다. 추억이 선물이었을 테지.)     


솔직히 어렸을 때 나의 음악 교육은 실패였다. 그건 나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나의 부모의 실패이기도 하다. 물론 부모님은 내가 피아노를 배워서 훗날 뭐에라도 써먹길 바라셨을 것이다. 또한 기왕이면 원대가 꿈을 가져주길 바라셨을 것이고. 그건 또 여느 부모라면 다 갖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단 어떻게든 이 아이가 생을 즐길 줄 알고 누릴 줄 알고 조금이라도 풍요롭게 살아주길 바라서 음악을 가르치는 거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모든 것엔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성취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누리면서 배우는 것과 목적 성취를 위해 배우는 건 그 시작부터가 다른 것인데 말이다. 책을 읽다 정말 공감하는 말이 있어서 밑줄을 쳤다.


어린 시절에는 사람들이 알만한 성과를 거두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 나이가 되었다. 어떤 삶은 그냥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희망이고 성공이다. 봄 그늘 아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어여쁜가. (103p)  


과연 어여쁜 깨달음이고, 어여쁜 말이다. 우리는 이것을 깨닫기 위해 얼마만 한 인생을 되돌아왔을까. 음악을 왜 들어야 하냐는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말자. 음악은 내가 태어나기 수천 년 전부터 있어왔고 불려 왔으며 들어왔다. 음악을 듣고 아는 건 각자의 선택이고 알아서 할 일이다. 음악을 알아서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라면 알지 않을 이유가 없다.


책이 정말 좋다. 읽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저자의 책이 이제야 나왔다는 게 너무 늦은 행보는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 만큼 저자의 다음 책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는데 오탈자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곧 2쇄가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땐 바로 잡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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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1-21 0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어머니의 교육열에 떠밀려서 피아노 학원에 다녔어요. 그땐 피아노를 배우기 싫었어요. 그런데 계속 학원을 다니다보니까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IMF가 왔던 해에 학원을 그만뒀어요. 이제 막 피아노 연주하는 재미에 푹 빠졌는데 학원의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울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너무 아쉬워요. 피아노 학원을 나오지 않고 계속 다녔으면 고급 수준의 피아노 교본에 있는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을 거예요.

stella.K 2020-01-21 14:50   좋아요 0 | URL
아깝게 됐네. 하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성인이 되서 피아노나 바이올린 배우는 사람도 많더라구.
꼭 피아노가 아니더라도 뭐라도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
기타는 어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아님 아예 남이 잘 안하는 걸 개척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그런 거 배워두면 모임에서 꿀리지 않고 좋을 거야.^^

후애(厚愛) 2020-01-2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정말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오후 시간 되세요.^^

stella.K 2020-01-21 16:55   좋아요 0 | URL
아유, 뭘요...책이 정말 좋죠.
고맙습니다.
후애님도 좋은 시간 되시길.^^

2020-01-21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1-21 18:08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저도 그래요.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시큰둥 했던 사람이
비틀즈를 능가한다던 BTS가 뭘하든 그런가 보다 하죠.
책에 소개된 곡들을 보면서 저도 유튜브로 찾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음반 사 모으는 시대가 아니라는 게 좀 섭섭하긴 해요.^^

2020-01-22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3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3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0-01-24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즐거운 명절연휴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stella.K 2020-01-24 15:55   좋아요 1 | URL
앗, 서니님, 고맙습니다.
서니님도 복된 설 보내시고,
새해 복 듬북듬북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