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시리즈 중 2020년에 출간된 5권을 읽은 후, 4권, 3권, 2권에 이어 드디어 1권까지 읽었다. 1권 초판연도는 1996년이다. 아주 우연히 손맛 깊은 맛집을 만나 재방문을 거듭하며, 메뉴를 고루 맛보는 경험이라 할까? 우연히 저자 김영길의 글을 접하고, 그 품성에 호감을, 건강관에 호기심을 느껴서 몇 주 만에 저서를 모조리 읽었으니. 최신간 2020년판부터 1권 1996년판까지 내 맘대로 순서로 저자를 따라다니는 경험, 유익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의 5, 2, 4, 3, 1권을 각 권에서 문체나 태도에서 미묘한 변화를 느꼈다. 치유 사례로 저자가 소개하는 인물들이 각 권에서 종종 겹치는데, 어느 편에서는 대중적 의학 드라마 캐릭터처럼 드라마틱하게 묘사되고. 어느 경우 옆 동네 주민 이야기처럼 잔잔하다(편집자가 달라진 걸까,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1권 수록 사진 자료: 겨울 계곡 낚시
1996년 초판인 1권의 경우, 저자가 강원도 방태산에 들어가서 한약방 개원한 초창기 에피소드와 강원도 오지 화전민 마을 사진이 많다. 내용도 "나는 화타다!"라기보다는 이제 막 시작하려는 자의 조심스러움과 포부, 뭐랄까, (훗날 우뚝 서기 위한 초석 다지기로서) 그러모으는 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2020년(저자가 1946년 생이니, 70대에 쓴) 발행된 5권부터 읽었기 때문에 변화를 더 크게 느낀지도 모르겠다. 5권 읽으며 느꼈던 명료한 건강관과 누적된 임상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보다는, 1권에서는 '한 줄 쓰고 한 줄 성찰하며 내려놓는 느낌을 받았다. 확신이 덜한 목소리가 오히려 솔직하고 겸손하게 느껴져, 그 역시 좋다. 나는 이런 사람이 좋고, 이런 작가가 좋다. 저자는 평생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왔고, 나 역시 책으로나마 이 분께 귀한 지혜를 얻는다.
저가 김영길 선생님이 생각하는 명의의 요건, 치료의 목적을 드러내는 문장들이 있어 옮겨본다.
O (심한 부정맥으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저자가 내심 생각했던) "연 노인을 진맥하고 난 뒤 느낀 점을 첨언하고자 한다. 그 때 나는 이 노인처럼 일을 많이 하고 병을 병으로 생각하지 않는 기氣를 가진 사람을 진맥하는 것은 어쩌면 사기 詐欺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297쪽)."
☞ 종합건강검진을 통해 숫자와 전문진단명을 통해 자기 몸을 들여다보는 도시인들과 달리, 나이 일흔 혹은 여든까지 눈뜨면 일하고 산 오르내리는 분들을 저자는 책에서 많이 언급한다. 그런 분들 이웃으로 오래 강원도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말기 암" 진단을 받았어도, 암에 대한 지식이 그다지 없기에 되레 담담하고 평상시처럼 살아가다가 자가치유되는 (일부) 화전민을 보면서, 저자는 '자신이 건강하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이들에게 굳이 진단명 들이대고 진맥으로 평하는 과정이 필요할까 자문한다. 나는 이 문단이 굉장히, 와닿았다.
O "건강을 유지시키는 방법은 다름 아닌 기 氣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210쪽)."
O "무엇보다 나 자신부터 '열린 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열린 기'는 환자에게 낫는다는 희망을 주고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겠다는 신념과 정성을 다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내가 오전에만 환자를 보고 오후에는 여름이건 겨울이건 간에 산행과 반욕법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 까닭은 항상 '열린 기'를 가지고 있기 위함이다(161쪽)."
화타 김영길 선생이 강원도 방태산을 떠나 일산에 한의원을 운영하신다는 데, 검색해도 자료를 못찾겠다. 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