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되는 기억 - 도시 문헌학자의 사진 기록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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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에 관심 많아 답사까지 다니는 친구가 이 분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김시덕. 나는 그 방면에 까막눈이라 시큰둥하게 반응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분은 부동산 관계자가 아니라 학자였다. 그것도 "도시문헌학자." 출사표(?)를 던질 때 심정은 이러했다고 한다.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문헌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 속의 문헌을 연구하는 것은 이제까지 제가 옛 문헌을 연구하던 것과 똑 같은 방식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답사하면서 수집한 문헌을 연구하는 것을 '도시문헌학'이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습니다.

[철거되는 기억] 79쪽

김시덕은 재능이 이끄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발을 옮기다가 '도시 문헌학자'에 이르렀다. 일본문학을 오래 공부한 그는 일본 문헌학 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시덕은 "답사를 직업으로 삼은 이래로 여름마다 열사병에, 대상 포진에, 한 가지씩 병을 얻고 있다"(245)면서도 직업적 사명감으로 서울 경기 일대는 물론 전국을 돌며 답사 중이다. 답사마다 100~500장까지 사진을 남기다 보니 자료가 엄청나게 쌓였는데 그 중 책에 수록하지 못했던 사진을 엮어 [철거되는 기억]을 썼다.


[철거되는 기억]은 2017년 이후 10년의 궤적을 담은 사진기록 중 175장을 엄선하여 총 4부로 엮었다.

1. 길에서 마주하다: 집과 길, 그리고 사람

2. 거리에서 발견하다: 간판과 글자, 그리고 그림

3. 역사의 흐름을 기록하다: 포구, 그리고 광산촌

4. 철거되는 기억: 사라진, 사라질 개발의 풍경

평소 가볼 일 드문 경상도, 전라도, 인천, 강원도, 제주도 등의 풍경도 흥미로웠지만 답사 내공 9단의 김시덕이 남긴 현장 방문의 소회와 후기가 더욱 흥미로웠다. 이런 식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오동리...화순 탄광의 광산촌으로서 번성했을 듯한 이 말은 폐광 이전에 이미 활기를 잃은 상태였습니다...화순 탄광은 2023년 6월에 정식으로 폐광되었지만 탄광촌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이 천운장 마을은 지금의 오래되고 단정한 경관을 한동안 유지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179쪽

김시덕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담벼락에 꼬마들이 남긴 낙서, 예를 들어 프랑스 만화 캐릭터 바바파파네 가족들, 나 마을 주민들이 플라스틱 통에 정성껐 가꾼 도시 화원, 눈 밭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고양이들 발자국 등이다. 나는 그의 이런 따스한 시선이 무척 맘에 든다. 사람과 공간을 포용하는 그의 너그러움이 나에게 힐링이 된다.

서울 중구 회현의 시민 아파트. "세탁물 널지 마십시오"라고 써 있는데 바로 그 옆에 이불을 말리고 있다! 와! 하지 말라는 것만 쏙쏙 골라서 하는 K 반항 기질이 김시덕의 카메라에 담겼다.



예전에는 "후지필름" 같은 데서 슈퍼나 전파사 간판을 대신 해주고 자신의 회사 로고를 넣어 간접광고를 제대로 했다 한다. 그나저나 후지 필름이라니! 와!


"차부"는 여성을 말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맙소사! 이것은 "버스 정류장"의 옛말이다! 나는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슈퍼라는 뜻인 줄 알았다.


의외로 이 책에는 기지촌 사진이 많다. 김시덕이 일부러 기지촌 흔적을 많이 담았거나 한국에는 아직도 기지촌 흔적이 남아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어느편이 맞는지 모르겠다. 기지촌 창이 휑하게 뚫린 숙소(?)에 왜 자개 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윗 사진은 경기도 의정부시 옛 캠프 라과디아 주변 기지촌이라 한다. 아래는 놀랍게도 경기도 수원. 팔달산과 화성이 있을 듯한 주소 "팔달구"인데 거리 한 복판에 이렇게 성매매 업소가 있다니 놀랐다. 심지어 성매매 집결 정비 사업에 반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민이 있어 애도의 문구가 유리창에 붙어 있다.

4월 중에 김시덕의 다른 책들도 다 찾아 읽을 생각이다. 사진 자료가 많아서 책장이 술술 넘어갈 것이라는 전제 아래서 부려보는 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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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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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문구용품처럼 아기자기하고, 무명작가가 무명 출판사에서 낸 소설을 덥석 물지는 않는다. 읽을 거리, 산 옆에 산으로 쌓여 있는데, 그런 소설에까지 손 뻗을 여유가 없다는 오만함으로. 김지혜의 소설, [책들의 부엌]도 친구의 선물이 아니었다면 내가 일부러 찾아 읽을 책은 결코 아니었다. 그 정도로 나는 편견에 쩐 독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벚꽃 만개한 4월 첫주의 주말,

[책들의 부엌]을 다 읽고 난 소감은

한 마디로,

"기대 이상".

김지혜 작가 스스로 "인생의 경계 지대에 오래 머물"(289)었다고 고백하는 만큼, 작가는 대기자/낙오자의 조바심도 느껴봤고, 인생이란 비행의 '연착'과 '지연'이 주는 낭패감도 경험했다. PD되기를 열망했던 그녀는 꿈을 접고 IT 회사에 취업해 살다가 결혼 출산 육아 3종 세트를 거친 후, 현재는 카페에서 소설을 쓰며 산다. 뒤늦게 천직을 찾아 나간 케이스이다.

[책들의 부엌]에 등장하는 인물도 죄다 작가를 닮아 있다. 성별, 연령대, 전공과 직업, 가정환경 등등의 세부 사항은 달라도 모두, 사회가 기대하는 '정상 경로'를 기꺼이 일탈하고 개척지 일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설의 핵심 공간인 '소양리 북스 키친'을 일사천리에 오픈한 사장 유진은 서울 토박이로서 강남 테헤란로로 출근하던 일중독자이다. 하지만 시골 오지의 택지를 매입해서 복합문화공간, 북 스테이 공간을 오픈한다. 소설은 이 공간의 운영자와 스태프, 손님을 중심으로 '북스 키친'에 머물며 인생 항로를 수정하고, 나아갈 힘을 얻는 사례를 펼쳐놓는다. 그들은 최연소 합격자를 숭배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소소한 혁명을 일으킨다. 마음 가는 대로, 뜻 가는 대로 따르는 삶! 내면의 욕구에 충실한 삶.

작가는 대 놓고 소설 속 문장에 인생관을 박제한다.


우리 사회는 최연소 합격자와 최단 시간에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을 숭배해요. 각자가 꽃피우는 방식을 다를 수 있고, 인생의 경로는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조금이라도 길을 벗어나면 초조함에 발을 동동 굴러요.121쪽

매화는 말이야. 봄이 오기를 제일 기다리는 아이야... 봄이 오는 기척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채는 꽃이기도 하고. 꽃샘추의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 온 힘을 다해서 꽃을 피워내는 기개가 근사한 아이지. 30쪽

김지혜 작가는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20대를 반영한 캐릭터들에 애정과 입체감을 불어 넣어 흡인력 있는 소설을 낳았다. 또 모를 일, 김지혜 작가가 훗날, 자신의 이름을 딴 북 스테이 공간을 오픈할지 누가 알랴?^^ 응원합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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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미래가 도착했다 - AI시대 인간의 조건
우숙영 지음 / 창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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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머털도사'에서 도술로 두 명이 된 머털이 중 진짜를 찾아내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무려 36년 전 작품이다. [어느 날 미래가 도착했다: AI 시대 인간의 조건]에서 '디지털 도플갱어digital doppleganger'니 '디지털 페르소나persona' 개념을 접하면서 내적 소름을 느꼈다. 한때 황당무계하다고 여겨졌던 그 설정이 2025년, 디지털 세계에서는 현실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

'인공지능 미디어 아티스트'라는 이색 직함으로 소개되는 저자 우숙영은 AI 시대를 "현실적이고 실존적"(9) 차원에서 탐색한다. "마음 가는 부분부터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10)는 저자의 너그러운 안내에도 불구하고 맨 앞장부터 차근차근 책장을 넘겼다. '상실과 애도' '존재와 기억' '대화와 관계' '믿음과 신뢰' '추천과 선택' '위임과 책임' '고용과 일' '배움과 교육' '생산과 윤리' 그리고 마지막 10장, '죽음과 삶'까지...읽어 나가면서, 나는 이 책이 단순한 기술 논의가 아니라 AI 시대를 살아가는(또는 살아갈) '인간실존'에 대 정면으로 질문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만약 저자가 최신 AI 산업 지형도와 국제 규제, 국가 정책 등 기술적 이슈에만 주력했다면, 독자로서 나는 저자가 제기하는 질문을 '남의 일, 먼 미래의 일'로 흘려보냈을지 모른. 하지만 우숙영은 한 줌의 AI 전문가나 엘리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AI 시대를 새로운 존재론으로 살아내 하는 보통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는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 "죽은 사람을 (디지털로) 재현하는 것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20)

  • "디지털 도플갱어를 정말 나의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62)

  •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 모든 대화에서 나의 발화와 욕망이 우선시된다. 우리의 삶에 이런 종류의 대화가 보편화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98쪽)

  • "인공지능이 생각해낸 것을 내가 생각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62)

  • “인공지능이 내린 판단은 정말로 인간의 기대만큼 객관적이고 공정할까?”(179쪽)

  •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은 자동화하지 않을까?”(218쪽)

  •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은 어떤 역량을 말하는 걸까?"(240)

이 질문들은 인류의 실존과 삶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물음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예술 전공생을 가르치는 동시에 언어·데이터·AI를 아우르는 프로젝트를 기획해온 이력만큼이나 앞선 질문을 답하기 위해 다채로운 자료를 끌어온다. 근미래 디스토피아 대표 드라마인 [Black Mirror]를 비롯해, [1984]의 '빅 브라더Big Brother와 [멋진 신세계]의 '작은 누이들 Little sisters',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After Yang](2022), [Her](2013)을 인용한다. 또한 AI 시대 인간이 마주한 실존적 문제를 보여주는 현실의 구체적인 사례를 적절히 배치하여 읽는 이론적 논의를 삶의 문제로 끌어와준다. 예를 들어, 챗봇 앱과 6주 동안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 챗봇의 유도로 생을 마감한 벨기에의 한 남성, 암투병 중인 아버지의 챗봇, Dadbot을 만든 제임스 블라호스,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피해자가 되었던 테일러 등 현실의 예는, "어느날 미래가 도착했다"는 책 제목을 실감나게 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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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림책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얼마나 많이 위안 받고 배웠던가? 그러나 시나브로 그림책과 멀어지던 차에 "2024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이라는 홍보문구를 보고 바로 데려왔다.

페루 작가 '이사 와타나베Issa Watanabe'의 『킨츠기』!

처음엔 책 제목이 사람 - 그림책 속에서는 날아가 버린 새로 상징된 가족원(저자의 딸)- 이름이라고 짐작했다. 왜냐하면 저자가 "사랑하는 딸 마에Mae에게"라고 그림책을 헌정했고, 주요 캐릭터인 토끼와 새가 부모자식 관계처럼 상상되었으므로.




토끼 한 마리가 찻잔 두 개를 들고 식탁으로 이동한다. 양복바지와 양장용 구두 차림으로 미루어 '아버지'로 상상된다. 테이블, 토끼 맞은편에는 빨간 새가 자리한다. 하지만 새는 어디선가 부름을 받은 듯 뒤를 돌아보더니 홀연히 날아가 버린다. 그 순간, 토끼가 새와 함께 가꿔나가려 했던 일상의 자잘한 재미거리가 와르르 무너진다. 조각난다. 말 그대로 절망, 무력감, 슬픔과 그리움이 뒤엉킨 카이오스 상태이다.

토끼는 떠나버린 새를 찾아 다른(무채색, 생기 없음, 어두움, 초월, 망자, 영혼) 세계를 헤매고 다닌다. 하지만 새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다. 망연자실했던 아버지는 자세를 바로 잡아 앉더니 깨진 조각들을 주워 수리하고 정렬한다. 조각들을 이어 붙인다. 다시 희망의 나무를 키워내려는 심정으로.




비록 글자는 없지만, 이 그림책 [킨츠기]가 매일 식탁에서 마주 보는 가까운 존재, 즉 가족을 상징하는 인물이 갑작스럽게 사라짐(죽음)을 소재 삼았다는 것은 눈치 없는 독자라도 금새 알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을 나는 차마 자세히 보기 어렵다. 상실의 고통과 다 포기하고 싶은 좌절감을 상상하게 될까, 토끼에게 감정이입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책장을 빠르게 넘긴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간다. 두 번 연거푸 [킨츠기]를 본 후, 궁금해져서 제목을 검색하다 그제야 알게 된다. '킨츠기'는 사람 이름이 아니고 저자의 딸 이름이 더더욱 아님을. 킨츠키kintsugi는 일본의 전통도예수리기법이다.

Mishima ware hakeme-type tea bowl with kintsugi gold lacquer, 16th century


작가 이사 와타나베는 싱글 맘으로서 본인이 색연필로 한 땀 한 땀 수놓듯 그리는 그림책은 모두 딸, 마에Mae를 위한 선물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딸 마에에게"

[킨츠기] 첫 페이지에서 옮김.

https://www.redcariboushop.com/blogs/news/interview-with-issa-watanabe-the-art-of-storytelling-through-images-and-silences


Q: Has your experience as a mother influenced your work in any way?엄마가 된 경험이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A: Being a mom influences every aspect of your life. Your perspective on things changes. (...)

I want Mae to read what I make and enjoy it... I dedicate everything to her..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쳐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죠. (…) 저는 메이가 제가 만든 책을 읽고 즐기기를 바라요. 그래서 제 모든 작업을 딸에게 바칩니다.


인터뷰를 읽고 작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쓰나 알고 나니, [킨츠기]에서 처음 느꼈던 고통과 절망의 압박감이 조금 가벼워진다. '결국 작가가 진정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절망, 파괴 혹은 붕괴, 깨어짐 보다는 접합, 회복, 치유, 희망이었구나' 싶어서 마음이 포근해진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소개해본다. 이런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고 자라는 페루 꼬마공주님 Mae의 행복을 멀리 한국에서 빌어본다.

 

5월 30일 한가로움으로 어슬렁 거리다가 찍은 사진들이다. 그림책 [킨츠기]의 메시지와 잘 어울리는 듯하여 나란히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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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5-31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형물인듯요
넘 예뻐요!
아!
죽음과 킨츠기를 연결시켜 생각하면, 희망적인 메세지일까요?
일본의 죽음에 대한 전통적 사상이 배경이 되는가요?

얄라알라 2025-06-01 16:2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그레이스님 너무나 반가우세요. 조형물 - 사슴 말씀하시나요? 정말 예쁘죠?

저도 사실, 킨츠기를 이 그림책 덕분에 처음 들어봤는데 바로 부토가 떠올랐어요. 일본만의 고유하고, 쉽게 해석할 수 없는 예술영역(?)들이 있나봐요. 저도 더 알고 싶네요^^

hnine 2025-05-31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급기야 킨즈키라는 제목의 그림책까지 나왔군요.
작년에 박물관대학 강의 들으며 저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일본 사람들의 매우 특이한 취향이라면서 어떤 모양으로 깨졌고, 어떻게 그 틈을 메워 넣는냐에 따라 그 도자기의 가격이 천차만별로 매겨진다더군요. youtube 채널에 들어가서 kintsugi 라고 검색해보면 그 인기도를 짐작할 수 있을거라면서요.
더구나 이 그림책의 저자가 일본사람도 아니고 페루 사람이군요.

그레이스 2025-05-31 20:15   좋아요 1 | URL
유튜브 보고 왔어요.
흥미롭네요. 재미있어요.
집에 접시를 깨뜨려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기는 !^^

얄라알라 2025-06-01 16:24   좋아요 0 | URL
와. 박물관대학이 정말 전문분야 강의를 열어주었나봐요. 틈을 매우는 질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거군요. 저도 처음에는 당연히 일본 사람인줄 알았다가 구글 검색해보니 부드럽고 인자한 엄마 미소 한 가득 품은 엿어분이시더라고요

얄라알라 2025-06-01 16:24   좋아요 1 | URL
ㅋㅋㅋ그레이스님 참으시어야 합니다 ㅎㅎ
 

'왜 공부(학문) 하는가?,'

'많은 이가 제 곳간 채우기에 급급한데 왜 어떤 이는 곳간을 세상에 열어 주는가?



가끔 떠오르는 질문인데 의료인류학자 "김관욱"을 통해서 그 답을 엿보았다. 그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2018)를 시작으로 [사람입니다, 고객님](2022)에 이어 2024년에는 [달라붙는 감정들] 외에도 무려 [몸: 살아내고 말하고 저항하는 몸들의 인류학]과 [지불되지 않는 사회]까지 단독 출간했다. 김관욱은 열정적 저술활동 만큼이나 대학강단과 현장에서도 뜨거운 심장과 행보로 깊은 영감을 주어왔다. 그의 활동을 관통하는 공통 화두라면 #건강, #몸, #인류학, #사람일텐데 그는 세상에 뜨거운 질문을 던지고 응답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지불되지 않는 사회]의 부제 역시 [ 인류학자, 노동, 그리고 뜨거운 질문들]이다. 인류학자 김관욱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져서라도 "각자도생(사)"하는 차가운 사회에서 "냉혹한 노동 현실에 대한 뜨거운 질문"을 던진다.



"[숨가쁨] 얼마나 아파야 노동자는 쉴 수 있을까?"

"[허무함] 나의 사유재인 노동은 왜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고 착취 당하는 공공재가 되어 버렸을까?"

"[상처] 과로사, 절망사, 노동자살, 산재 등등...어쩌다가 생존을 위한 밥줄이 나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우울] 어쩌다 노동은 마음과 몸을 병들게 했을까?"

"과연 우리 사회는 '공정한, 좋은 노동'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하고 있는가?"



김관욱은 어려서부터 감각이 "과잉" 발달하여 타인의 고통에 눈과 귀가 열렸다. 경쟁사회 생활인에게 과잉감각은 약점이겠지만 실천하는 인류학자에게는 축복이다. 그는 "노동"에 대한 이미지를 축 삼아 [지불되지 않는 사회]를 구성하였다. 독자는 노동의 "숨가쁨"(청각), "허무감"(감각), "바쁨" (시각), "상처"(시각)에 공감각하며 김관욱의 뜨거운 질문을 공유하게 된다.


최초의 질문은 단순하지만 본질적이다. "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어떤 이들의) 노동은 소모되면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가?" 김관욱은 치열하게 구축해온 학문세계의 언어와 풍부한 현장연구 데이터를 빌어 이 질문을 탐색한다. 그는 자본주의 기원과 야만적 축적(노동가치의 저평가) 현실을 소개하고, '과로-성과체제'가 초래한 '분열적 피로'와 '우울' 그리고 '절망사 death of despair'의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또한 우리사회가, '생존을 위한 밥줄이 오히려 목숨을 위협하는 가혹한 노동현실'에 희생된 이들에게 위로나 치유보다는 혐오를 쏟는 "탈脫도덕"의 사회로 가고 있지 않나 우려를 표한다.


김관욱은 타인의 고통에 귀를 닫고 심장이 차가워진 사회, 환대의 의례가 사라진 사회, 그리고 내편-네편을 경계짓는 "덩이 존재론"에 갇힌 사회의 암울함을 지적한다. 동시에 그는 인류학자 제이슨 히켈, 철학자 한병철, 인류학자 팀 잉골드, 사회학자 사라 아메드의 사상에서 혜안을 빌어와 대안을 제시한다.


일하다 다치거나 아프고 죽는 사회가 아니라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는 서로 매듭처럼 연결된 "선line의 존재론"과 "공감의 정동affect"이 필요하다. 의외로 작은 데서 시작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귀를 열고, 서로 돌보면 된다. 의료인류학자 김관욱의 과잉감각과 뜨거운 질문이, 그래서 더 소중하다. 고맙습니다.





[해당 리뷰는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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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01-24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하다가 다치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누구나 으레 다칩니다. 아이는 다치면서 어느새 낫고, 앓으면서 조금씩 삶과 몸을 알아가면서 천천히 철들어 어른으로 나아갑니다.

오늘날 숱한 ‘일자리’는 “일하는 자리”가 아니라, “돈을 벌어서 서울에 터를 잡고 버티는 자리”이기 일쑤입니다. “일을 하며 살림을 가꾸고 보금자리를 일구어서 스스로 즐겁고 한집안이 오붓한 길을 바라는 일자리”는 어떤 ‘틀(회사·공장·공무원)’로도 이루지 못 하거나 않습니다. 먼지 하나라도 들어왔다가는 공장 기계가 망가지니, 공장은 그토록 깐깐하고 모질며 차갑습니다. 누구한테나 고르게 맞추려는 틀을 잡으려고 하기에 ‘공직사회’도 똑같이 깐깐하고 모질며 차가울 뿐 아니라, 이러한 틀(회사·공장·공무원)에 스스로 맞추어서 “돈을 버는 자리”를 얻으려고 하니, 아주 마땅히 힘들고 지치게 마련입니다.

서울(도시)에 있는 일자리 가운데, 햇볕을 넉넉히 쬐면서, 풀꽃과 나무를 늘 마주하는 곳에 세운 일터가 있을까요? 아마 한두 군데 있을는지 모르나, 모든 공공건물과 회사건물과 공장에는 나무는커녕 들풀 한 포기조차 자랄 틈이 없고, 멧새나 풀벌레나 개구리는커녕 매미조차 깃들지 못 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조차 농약과 비료와 기계와 비닐로 덮어씌울 뿐 아니라, 이제는 ‘스마트팜’이라는 이름으로 멀쩡한 논밭에 시멘트로 터를 다져서 유리온실을 때려짓고는 와이파이로 다루는 ‘공장식 축산’과 똑같은 ‘공장식 농업’으로 간다면서, 몇 조 원도 아닌, 몇 백 조 원을 들이붓는 나라입니다.

‘일’이란 무엇인지부터 처음으로 돌아가서 들여다볼 적에 비로소 실마리를 푼다고 느낍니다. 왜 “지불되지 않는 사회”일까요? 삶자리·보금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가 아닌, 더구나 일자리조차 아닌 ‘돈벌자리’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라에서 사람들을 ‘돈벌자리’로 내모는 탓이 하나에, 나라가 사람들을 ‘돈벌자리’로 내모는 줄 알면서도 그냥그냥 ‘서울에 깃들어서 돈벌자리를 쥐는 우리 스스로’ 모든 수렁을 깊이 판다고 느낍니다.

아픈 이웃에 귀를 기울이려면, 서울부터 떠나면 된다고 느낍니다. 사람한테 시달리고 죽는 뭇소리부터 귀를 기울여야, 드디어 사람이 왜 아프고 죽는지 알아본다고 느낍니다. 가을겨울에 봄이면 우리나라는 모든 곳에서 가지치기를 끔찍하게 일삼는데, 길나무 가지를 마구마구 자를 적에 “내 팔이 잘리는구나” 하고 느끼는 분이 갈수록 줄어듭니다. 서울(도시)을 넓히면서 들숲메를 깎아내는 삽질이 날마다 불거지지만, 살갗으로 하나도 안 아픈 사람도 갈수록 늘어납니다. 나라에서 몇 백 조 원에 이르는 돈을 ‘해상 국립공원’ 바다에 쏟아부어서 태양광과 풍력시설을 박는데, 바다가 앓고 아픈 줄 느끼는 사람도 갈수록 사라집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먼저 들숲바다가 앓아눕고 죽어가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싶습니다.

얄라알라 2025-01-25 20:49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안녕하세요? 제가 24년에는 알라딘 서재를 자주 못들어 왔지만 간혹 숲노래님의 서재 글 읽고 공감하고 갔습니다. 귀한 말씀 들려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삶자리·보금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

˝일˝에 더해진 ˝자리˝의 느낌은 팍팍했는데, 말씀해 주신 ˝삶자리·보금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는 다 사람을 살리는 자리였네요. 거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저도 돌아보게 됩니다.

아파트 1층 주민 분들 민원이나 여러 이유로 가로수 마구 가지치기하고 난 길을 걸으면 나무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그게 고통의 냄새였겠군요...숲나무님 덕분에 저도 인간에게만 열린 귀가 아닌 더 큰 귀를 갖도록 키워야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