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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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손을 떼지 삶을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믿는다). 한 때 수입의 1/3을 책 사는 데 쓰고, 비행기로 박스 째 책을 실어 나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오랫동안 책에 치여 살았다. 서가는 물론, 옷장과 수납장 구석구석을 책으로 채우며 뿌듯해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적 디딤돌 없이 살면서 물질로서의 책이 거추장스러워졌다. "많이" 쟁여 둘 게 아니라 한 권을 읽더라도 뼈와 피 삼는 게 중요하겠다 싶었다. 가벼워지고 싶었다. 한 밤 숲 속에서 흰 빵 흘리는 헨젤처럼 야금야금 책을 버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3000권 넘게 내보냈다.

​*

서두가 길다. 책을 거의 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내용을 기억하기 어려운 전문서적만 주로 집으로 모신다. 800번대 책을  사는 일은, 1년에 1권? 책 덕후치고는 야박하다. 그런 내가 어젯 밤 서점에 다녀왔다. 이미 두 번이나 읽었는데도 [순례주택] 을 갑자기 소장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이 소설은 전체를 놓고 보아도,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따로 보아도 좋다. 작가의 인생관과 지혜를 그득 담아 놓았다. 게다가 그것은 나의 지향과 상당히 공명한다.

​**

[순례주택]의 주요 캐릭터 순례 할머니는 "순례(巡禮)"로 개명했다. 이름처럼 무소유와 홀가분함을 지향한다. 17억 빌딩 주인이면서 시세보다 훨씬 월세를 싸게 받고, 통잔 잔액이 1000만원 넘지 않게 관리한다. 세신사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산 집이라서 "때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런 순례씨가 20년을 남친 삼았던 할아버지의 친 딸은 "원더 그랜디움 Wonder Grandium"아파트에 산다. 엄밀히 말하면 딸과 사위가 제 아버지의 집을 뺏다시피 무단점거한 것이다. 딸은 아버지 재산을 행여라도 빼앗길까 순례씨와 아버지의 결혼을 결사반대하고 순례씨를 '동거녀'라며 폄하한다. 한술 더떠서 순례씨가 사는 '빌라촌' 주민을 길고양이 취급했다. 딸의 남편도 만만치 않은 속물이어서,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데 장인어른과 4명의 누이의 지원금으로 살았다. 그 돈으로 대학을 마쳤는데 이후로도 도움만 기대한다. 염치도 없다. 그들은 고층 아파트 "Wonder Grandium"처럼 고층의 삶을 지향할 뿐, 땅에 발 딛게 될 경우 두발로 서지도 못할 인간형이다. 큰 딸 '오미림'도 그런 엄마아빠를 닮아서 "드라이클리닝 냄새 가시지 않은 잘 다려진 옷을 입고 BMW mini타고 출근하는 미래를 꿈꾼다. 공부는 잘해서 전교 1-2등 권이다. 반면 동생 오수림은 반에서 12-13등 짜리라고 제 엄마아빠에게서 "모지리" 취급 당하지만 [순례주택]에서 가장 당차고 똘똘한 캐릭터이다. 


****


수림이 엄마아빠처럼  '상대적으로' 조금 더 학교를 다녔고 '상대적으로' 조금 더 좋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정직하게 사는 선량한 사람을 멸시하는 속물.  "나" 화법만 쓰지 "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 적 없는 젠체들, 교육 받은 예의범절로 저열함을 감춘 사람을 나는 싫어한다(내가 그럴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다). 대신 사람 내면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초감각과 제3의 눈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대한민국 공교육을 통해서 잘 길러지기 어려울 감각이다. 그런데 [순례주택]의 중학생, "오수림"은 그런 제3의 눈을 가졌다. 수림이는 아마도 유은실 작가가 본인의 할머니를 본따서 입체감을 더했을 캐릭터일 터인데 "생활지능"이 높고 삶을 독립적으로 살 힘을 지녔다. 즉,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존재이다. 나이만 40~50살이지 아직도 덜자란 '덜어른' 수림이 엄마아빠와는 달리...




유은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재미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그 분의 인생경험과 인생 롤모델은 과연 무엇이길래 이런 작품을 썼을까? 너무 재밌어서....어쩌지. 3번 읽고나니 이제 유은실 작가에게 팬레터를 쓰고 싶어진다. 본격적인 [순례주택] 리뷰를 다음 번으로 미루고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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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3-06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까지 이 책이 건축에 관한 책인 줄 알았는데 청소년 소설이었군요. 아, 이런~
글치않아도 소설이라고 쓰셔서 오타 아닌가 했었다는. ㅋㅋ
저도 얼마전부터 다시 안 읽을 책은 슬금슬금 버리고 있습니다. 그래봐야 새 책 들여놓을려고 버리는 꼴 밖엔 안되지만. 이젠 기증도 중고샵에 가지고 나가는 것도 다 귀찮더군요. 근데 얄라님 이 책 좋아라 하시니 갈등 생기는데요? ㅎㅎ

얄라알라 2024-03-06 11:55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추천 받기로는.....서너번이나 오프라인에서 열렬히 추천 받고도 ‘표지가 구려서‘ + ‘건축관련‘ 책인가 싶어 안 읽었어요 ㅎㅎㅎ 저랑 비슷하신 생각을 하셨네요.

중고샵이 귀찮아 지셨으면, 그냥 빌려읽으시어요^^ 가볍게 가볍게 가벼운 삶을 !^^ 어떤 마음이신지 저도 알 것 같아요 ㅎ

그레이스 2024-03-07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한동안 ˝생활지능˝이란 말로 농담했습니다. 생활지능이 낮아! 하고...!^^

얄라알라 2024-03-10 11:45   좋아요 1 | URL
ㅎㅎㅎ농담으로 쓰기 넘 좋아요^^

저는 ˝생활지능˝이 바닥을 칩니다 ㅎ 오미림보다 더한..

2024-03-07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10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12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nan 2024-03-1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넓고 읽고 싶은 책은 많습니다. 오늘 얄라알라님 덕분에 또 한 권 읽고 싶은 책이 생겼습니다. 작년에 전자책 리더기를 산 이후에는 주로 전자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알라딘 구매이력은 늘고 있)는데 이 책 역시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생활지능이 높아지길 기대하면서~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이고 싶다니,

(누가)..... (누구를) 죽이고 싶은 걸까?

[죽이고 싶은 아이]



"죽음"은 어린이 동화용으로는 암묵적 금기어이다. 그림책 천 여권을 읽으며 알게된 사실이다. 하물며 "죽이고 싶은"은 어린이책 제목으로 더더욱 어울리지 않다. 비록 주어를 생략했으나 "(자연사를 포괄한) 죽음dying"과 달리 "죽이고 싶은kill"은 주체의 살생의지와 폭력의 표적을 내포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죽이고 싶은 아이]를 피해왔다."재밌다"는 소문이 뜨거운데도 차갑게 외면해왔다.



하지만 어쩌다 읽었다. [죽이고 싶은 아이]는 과연 소문대로 재미있었다. 손에서 놓기 싫을 정도로. 왜? 이꽃님 작가가 "재미 극대화" 장치를다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살펴보자!

일단 첫 페이지부터 사람을 죽인다.




처음엔 다 자살인 줄 알았죠. 지주연이 죽였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상상도 못 했지. 하여간 지주연 때문에 우리 학교가 망했다고 다 난리예요. 솔직이 학생이 죽어 나간 학교에 누가 다니고 싶겠어요.

[죽이고 싶은 아이] 8-9.



"살인/ 살해/ 죽음"이 요즘 판매부수 높은 청소년 소설 특징인가?(아! 암울할지어다!) 소설 2~3장 넘기는 사이에 6명(7명이었나?)을 칼부림과 묻지마 폭력으로 죽이는 [아몬드], 피비린내 진동하는 가족 살해 현장 묘사로 시작되는 이희영의 [소금아이]. 그리고 [죽이고 싶은 아이]도 다르지 않다. 첫 장부터 벽돌 가격으로 '죽임 당한' 아이와 '죽이고 싶었던' 아이를 등장시킨다. 첫 장면부터 작가는 노골적으로 용의자를 드러낸다. 죽은 아이의 유일했다는 친구. '정말 친구가 살인자인가? 여고생이 벽돌 산산조각 날 만큼 센 힘으로 친구 머리를 내려칠 수 있던가' 그게 궁금해서라도 독자는 책을 손에서 못 놓게 된다.


둘째, 이꽃님 작가는 중심 캐릭터 외에도 다양한 화자를 등장시킨다. '죽은 아이'가 알바했던 편의점 사장님, 남자친구. '죽이고 싶어한 아이'의 학원동창, 변호사, 정신과 의사 등등. 덕분에 "Shorts" 빨리 넘겨보기인양 글 호흡이 짧고 진행이 빠르다. 게다가 작가는 실제 고등학생이 쓸만한 저속한 입말을 구사해서 현실감을 더했다. 사망 사건을 목격했다거나 관련 증언하는 다양한 주체가 나와서 저마다의 추측과 편견으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독자는 '누구를 미워해도 되는지,' '누구를 동정해야 하는지' '누가 죗값을 받아야하는지'를 자연스레 정하고 책 읽는 내내 그 도덕률에 따른다.

스포일링을 하자면.....(스포를 원하시지 않는 분은 여기까지만 읽으세요^^)


**************************************

강 스 포!

피해자는 가난한데 밝고 선량하다(가난이 죄다).

가해자는 부자이며 자기중심적이고 지배성향 강하다. (돈으로 친구를 휘두른다)

이 죽음 혹은 살인사건을 세상은 "학교폭력, 주종관계" 심지어 "치정관계"로 몰고간다.

이러한 전형성과 달리 소설의 결말은 황당하다. 친구를 "죽이고 싶어했기에" "미움받고, 죗값 받아 마땅한" 소녀는 사실 범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 아이를 '가해자, 살인자'로 만들고 싶어했고 아이는 세상의 시선에 고개를 수그려 수긍했다. 있지도 않은 죄를 자백했다. 하지만, 어쩌면 누군가를 '미워해도 되는 대상'으로 상정하고 책 읽던 독자야말로 진짜 가해자 아닌지? [죽이고 싶은 아이]는 결국 독자 자신도 '(상징적) 살해' 공모죄에서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려준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미워해도 될' 이유를 붙여주고 더러운 이름을 주는 순간 그 대상을 정말 사회적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죽이고 싶은 아이]를 읽고 나자 영화 "라쇼몽"이 생각났다. "진화evolution"를 전공하신 교수님께서 리뷰과제로 내주셨던 영화였다. 철없고 까막눈이었던 나는 당시 "라쇼몽"이 도대체 "인류진화사"와 뭔 관계이길래 내가 이 고생을 하나,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라쇼몽"이야말로 "인류진화사"를 얘기할 때 곁들이기 좋은 영화 맞다. 객관성의 신화에 대한 폭로이자 진실 만들기라는 공모의 범죄를 다루고 있으니까.... 그것이 바로 [죽이고 싶은 아이]를 통해 작가가 사회에 던지고 싶었던 문제의식과도 같다.


[죽이고 싶은 아이]는 제목 그대로 음산한 작품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관계성 - "친구 대 친구", "제자 대 선생님", "부모 대 자녀" - 중 어디에서도 서로 보듬고 넉넉히 헤아리는 관계는 보이지 않는다. 소위 뒤에서 욕하고 등치고 이익을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 [죽이고 싶은 아이]는 마음 기댈 데 없이 불안한 요즘 아이들의 세계를 보여주는가? 삭막하고 스산하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주제의식과 별개로 인간관계에 대한 작가의 시니컬한 시선을 느끼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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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08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쇼몽 포스터군요
ㅎㄷㄷ

중학교에서 추천했더니,,, 쌤들이 안된다고,,, 제목이 넘 폭력적이라고 그러시네요
요즘 학교가 넘 험악해져서;;

얄라알라 2024-02-08 23:14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그래도 그레이스님 그 중학교 선생님들께서는 깨여 계시는 거라 생각해요. 저는 [아몬드]가 초등 논술학원에 왜 그렇게 필독서로 올라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칼로 찌르고 발로 차고.. 그런 죽음으로 도입부가 시작되는 소설, 후반부에도 잔혹한 폭력이 등장하잖아요....초등학생들이 많이 읽더라고요. 중고등학생에게도 벅찰 것 같은데.

stella.K 2024-02-08 1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청소년 소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더니 정말 그러네요.
옛날엔 사랑이 꽃피는 나무 같은 청소년 드라마도 있었는데 어린이 드라마도 있고. 언제부턴가 그런 드라마에 대한 구분이 없어졌어요.
라쇼몽. 옛날 영화 가끔 보긴하는데 넘 오래된 건 잘 안 보게되더군요.

얄라알라 2024-02-08 23:16   좋아요 1 | URL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다....˝

저는 그 말씀은 들어본 적 없는데 stella님 말씀 들으니 절로 공감이 됩니다.
몇 해전에 ˝이원수 동화작가˝님 작품 읽고 띵...머리가 띵해졌어요.

그 안에 담긴 세계, 정서가 너무나 요즘의 것과 달라서 띵해졌어요. 무형의 정서가 참으로 격하게 변해가나봅니다^^:;; 이걸 아쉬워하면 꼰대가 되는 걸까요?

반유행열반인 2024-02-08 2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라쇼몽 대학 때 과제로 봤는데 다른 강의 ’역사와 영화‘였어요 ㅋㅋㅋ좋은 영화랑 원작 소설 많이 읽은 덕분에 아직 기억에 남는 수업… 남의 과(인문대 서양사학과) 교수님에 교양 과목이었던ㅋㅋㅋ(정작 전공 학점은 개판이고…)
청소년 소설 보면 이렇게 까지 자극적일 일인가 싶다가도 저 어릴 때도 한국문학사 명작이랍시고 보던 소설들 막 불지르고 낫부림하고 야하고… 그랬던 거 보면 아 애들도 그런 거 재밌겠구나 끄덕끄덕 하고 맙니다 ㅋㅋㅋ

얄라알라 2024-02-08 23:18   좋아요 1 | URL
열반인님 서양사학과 과목^^ 저는 전공과목에서 보았어요. 저희 은근 통하는 게 많군요 ㅎㅎㅎ

열반인님 말씀도 맞아요. 저도 [테스] 중학교 때, [쿼바디스] 초딩 때 읽으며 그 야시러운 부분에 초집중해서 ㅎ

근데 제가 언급한 소설의 장면들은 피와 칼과 발길질과 죽음이 등장하니..저로서는 당황스럽더라고요
 



Zazie44, CC BY-SA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앤서니 버지스(Anthony Burgess)에게 독자로서 불경을 고백합니다. [시계태엽 오렌지] 하면 오직 "스탠리 큐브릭" 감독만 생각나는 겁니다. 영화 원작 소설을 누가 썼는지는 관심 없었고요. 하지만 책날개 작가 소개가 워낙 인상적인지라 한 번 알게 되니 쉽게 잊히지 않겠군요. 앤서니 버지스는 뇌종양 판정을 받고 홀로 남을 아내의 여생을 염려하며 창작열을 불태웠는데 실은 오진이었던지라 이후 33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는 부모님이 '돈이 많이 든다'라며 음악가의 길을 인정해 주지 않자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운 음악애호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디스토피아 블랙코미디 [시계태엽 오렌지]가 전개되는 내내 클래식 음악이 캐릭터 성향을 드러낼 뿐 아니라 작품의 상징 의미를 해독하게 해주는 중요 장치처럼 활용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몽골몽골한 분위기와 결코 어울리지 않는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를 3시간 동안 읽는 내내 [1984]를 떠올렸는데요. 번역자 박시영의 해설을 살펴보니 앤서니 버지스는 조지 오웰의 열렬한 팬이었다 합니다. 


제가 계속 변죽만 울리고 있네요. 그래서 [시계태엽 오렌지]는 어떤 작품이냐고요?

작품 초반에는 역겨운 강력 범죄, 그것도 10대 소년들이 저지르는 폭력과 일탈이 충격적일 만큼 상세하게 묘사됩니다. 마약 탄 음료를 (비유적으로는 "칼을 섞어") 마시고 면도칼, 칼, 쇠사슬을 무기로 휘두르면서 이유 없이 폭력이라는 설사를 밤거리에 싸고 다니는 무리에서 독자는 공포감을 느낍니다. 전통 서구 사회는 이런 일탈자를 '교도소'라는 교화기관에 격리하는 방식을 택해왔죠? 이 디스토피아 SF 소설에서는 약물과 심리요법을 결합한 새로운 교화술로 일탈자를 다스립니다. 폭력, 범죄를 상상하거나 보기만 해도 신체적으로 극렬한 고통을 느끼기에 그 욕구 자체를 누르도록 인간개조를 하는 것이지요. 마치 영화 [이퀼리브리엄]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사람들이 약물로 인간 본성의 어떤 측면을 꾹꾹 눌러 억제하도록 강요당하듯이요.

이 교화술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며 국민을 통제하려는 정부고위관료(장관)은 이렇게 자화자찬합니다.


우리의 임상 대상은, 여러분도 보다시피, 강제적으로 착한 일을 하게끔 되었습니다...폭력적으로 행동하려는 의도에 동반해서 육체적 괴로움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자 승진 가능성을 확 낮출 걸 알면서도 교도소의 신부가 고위관료에게 소신발언합니다.


저 애에게는 진정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자기 이익,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모독하는 괴이한 행동을 하게 된 거죠... 쟤는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또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신의 피조물도 더 이상은 아니지요." 

고위관료에게는 "임상대상," 신부에게는 "불쌍한 아이"인, 우리의 주인공은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요?



나, 나, 나. 도대체 나는 어쩌라고요? 난 여기서 뭐란 말이야? 내가 무슨 짐승이나 개란 말이야?.... 내가 무슨 태엽 달린 오렌지란 말이야?"



독자가 전반부에 묘사되는 강간폭력살인마약 등 자극적인 소재에 정신줄 놓지 마시고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자 앤서니 버지스가 인간 본성과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도 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가정을 꾸려 사회 일원으로 정착하고픈 욕구'가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교화술인듯 제시되는 마지막 장면은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지만, 60년 전 소설(1962)의 흡인력이 이처럼 강렬하다니!

저는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무척 부적절한 영화겠지만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까지 섭렵하러 가야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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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2-24 1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와 <시계태엽오렌지>랑 좀 안어울리긴 하지만 책은 죄가 없죠 ㅋㅋ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3-12-24 23:23   좋아요 2 | URL
ㅋㅋ저는 새파랑님의 점잖은 유머감각이 좋아요
맞아요 맞아. 책은 죄가 없어요

다 읽고 나니, 증보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왕 읽을 걸 증보판으로 읽었으면 좀 틈새 정보 많이 알았을텐데, 살짝 후회되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하시어요 새파랑님^^

무한냥 2023-12-24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3년 알라딘 서재를 정답게 가꿔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얄라알라 2023-12-24 23:22   좋아요 0 | URL
무한냥님 감사드립니다
다정한 이웃님들 계시는 알라딘 서재 덕분에 외롭지 않고 행복했어요.
무한냥님, 2024년에 더 자주 뵈어요^^
 


[프랑켄슈타인]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던 문지방 위에서 읽었을 것이다. 완역판으로 다시 읽으며, 과연 13살 꼬맹이가 줄거리나 제대로 이해했을까 회의적이다. 하물며 저자가 천재라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으리라!

[프랑켄슈타인] 읽은 지 벌써 3주가 흘러가는데, 나는 아직도 일상에서 불쑥불쑥 메리 셸리를 떠올린다. 200여 년 전, 10대 소녀가 소설을 통해 던진 화두가 어떻게 21세기에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지 작가인 메리 셸리에게 탄복한다. 상상하기를 좋아했다는 그녀가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몽이라도 꾸었을까, 나 역시 상상한다.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프랑켄슈타인]은 초자연적 소재로 공포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가벼운 내기의 결과로 탄생했다(워낙 유명한 썰이다. 메리 셸리의 남편, 시인 바이런 등 같이 어울리던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하여 공포소설 만들기 내기를 했다는 건). 메리 셸리는 자신이 꿈에서 보았던 영상을 9개월 집필로 살을 붙여 세상에 내놓았다.


'최초의 SF'라는 평가를 받는 이 "위대한" 19세기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는 [위대한 괴물의 탄생]이 알려준다. 이 그림책에서는 태어난 지 11일 만에 어머니를 잃은 메리 셸리의 유년기 삶이 결코 평탄하기 않았으며, 소녀가 그 와중에도 지적인 열망을 풀어내려 노력했음을 보여준다(이는 작품 속에서 '프랑켄슈타인'이나 '월튼 선장'의 지식욕과 탐험정신으로 싱크로된다). 또한 정규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아켈레스 건이 도리어 이 재기 발랄한 소녀에게는 범접불가한 창의력을 끌어낸 플러스 요인이었음을 암시한다.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며 그 우아한 문체가 아름답지만 답답하게 느껴졌다. 황망한 죽음이 자주 발생해 21세기 인간으로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메리 셸리 자체가 평생, 21세기 현대인에게는 생소한 이유의 죽음들(예를 들어, 어머니의 산욕열 등)을 가까운 이로부터 자주 경험해왔기 때문에 그런 설정이 작위적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나는 [프랑켄슈타인]을 고딕, 공포소설로 분류하기 이전에 철학소설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그 정도로, 19세 소녀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보기에 과히 심오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빛나는 작품이다.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망자의 세계와 소통을 강렬하게 희구해왔을 어린 딸의 염원은 다른 이에게 쉽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열어준 것만 같다.



** 메리 셸리는 1700년대 태어난 사람인데도, 교통수단 훨씬 발달한 오늘날 나보다 훨씬 스케일이 크게 논다. 우리 나이로 딱 중2 시점, 반항심 최고조이던 시절 아빠와 의붓엄마가 멀리 떠나보낸 스코틀랜드에서는 광활한 자연과 어울렸고, 더 크게 한 방 가족에게 어퍼컷 날릴 때는 아예 유부남과 국경을 넘어 도망간다. 그림책에서는 우리 나이로 고딩인 메리 셸리가 아내 있는 연상남과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면서도 죄책감이나 불안감은커녕 해방감을 만끽하는 표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나는 아래 페이지를 [위대한 괴물의 탄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페이지로 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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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1-23 0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가장 놀랐던게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니었다는...

200여년전 작품이라기에는 너무 세련된거 같아요~!!

얄라알라 2023-11-23 15:29   좋아요 0 | URL
˝괴물˝이라는 그 존재의 청산유수에 저는 그만 입이 떠억 벌어졌습니다

stella.K 2023-11-23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동에서 나오기 전 것을 가지고 있다가 안 읽어서 중고샵에 판 기억이 있습니다. 얄라님 이리 쓰시니 읽고 싶네요. 올린 그림들 책에 나온 그림인가요? 암튼 좋은데요?
저는 그 문지방 때 뭘 읽었나 모르겠습니다. 어린이 문고본 떼고 어른이나 보는 세로줄 소설책을 읽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나 캐리같은 공포소설 읽으려고하다 실패했네요. ㅋ

얄라알라 2023-11-23 15:31   좋아요 1 | URL
^^ 안녕하세요 Stella k님

[프랑켄슈타인] 읽기 전에 검색 많이 해서 문동 번역으로 택해 읽었어요^^ 추천들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프랑~]읽고 메리 셸리가 궁금해서 책 뒤지다가 결국 그림책으로 갔습니다.

저 그림은 그 그림책에 나오는 건데, 연애 즐거움에 흥분된 표정으로 도망가는 메리 셸리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지 않나요?

yamoo 2023-11-23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프랑켄슈타인 완역본을 읽은 적이 없는데, 얄라님 리뷰를 보니 봐야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구미를 당기는 리뷰 아주 잘 봤습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이 좀 힘들었겠다는 느낌이 있긴 했는데, 진짜 힘겨운 유년 시절을 보냈네요. 그 어둡고 우울함이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동력이 된듯합니다~^^

얄라알라 2023-11-28 01:14   좋아요 0 | URL
네네 yamoo님께 강렬한 영감을 줄지 모를 작품입니다

저는 작품에서 ‘괴물‘로 불리는 존재의 화려한 언변(?)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19살이 이런 글을 썼다고??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10대 중반 메리 셸리가 얼마나 매력적이었으면 아내 있는 남자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일 수 있었을까? 그런 궁금증도 들고요^^

그럼 좋은 화요일 맞으시기 바랍니다. yamoo님^^
 


2020년 3월 마스크 수급이 불안정하던 때, 신분 증빙용으로 여권 들고 약국에 줄 서 있었던 기억을 꺼내니 친구가 "정말? 정말?"을 연발하며 놀라워하는 걸 보면서,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 새삼 확인합니다. 코로나가 확산 일로에 있던 때, 아파트 단지 내 엘리베이터 버튼에는 항균력 99.9% 시트지와 '턱스크 혹은 노마스크 주민은 엘리베이터 이용 마시라'는 경고문도 붙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가 확산되던 때는 서울 소재 병원에 입원했다가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거주지역이 탄로(?)났다는 한 모녀가 전국구 뉴스거리가 되었더랬죠. 코로나 확진 사실을 숨기고 과외를 했던 인하대 대학원생은 실형까지 받았고요. QR 코드 확인 없이는 공공장소 출입이 어려워졌기에 홈리스 분들이 (도서관이나 백화점에 비치된) 정수기를 이용 못해 물조차 마시기 어려웠다는 인터뷰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 터널을 지나는 와중에 너도나도 '포스트코로나'를 예측했지요. 드디어 그 터널을 지나온 2023년 시점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특히 저는 코로나가 개인 및 공동체적 차원에서 정신 건강에 미친 영향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래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포스트코로나 #팬데믹 #마스크


위 키워드로 검색하면 아찔할 정도로 많은 신간이 쏟아집니다. 시류를 파악하는 데 부지런한 저자와 발 빠른 출판사들 덕분이지요. 책이 워낙 많아서, 고르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팬데믹 브레인]으로 고른 이유는 지은이의 약력 때문이었습니다. 정수근 교수는 연세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존스홉킨스대학교를 거친 심리학 박사입니다. 네임벨류에 넙죽하는 사대주의적 사고법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자의 전문성이 '코로나 시대 정신건강'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다뤄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저자는 2020년 가을부터 2021년 봄, 즉 약 6개월 안팎의 기간 동안 [팬데믹 브레인]을 집필했다고 후기에서 밝힙니다. 또한 본인이 코로나바이러스 전문가가 아니므로 바이러스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거나, 최신자료를 활용하다보니 정식으로 학술지로 출간되지 않은 연구들에도 기댔다는 점도 분명히 합니다. 편집을 야박하게 했다면 230쪽을 150쪽으로 충분히 줄일 수 있을 본문은, ""코로나는 우리의 뇌와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라는 부제를 Q&A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1, 2, 3부로 구성된 책의 얼개를 가볍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1부 "코로나는 우리 뇌와 마음을 어떻게 위협하는가?

1부 "코로나는 우리 뇌와 마음을 어떻게 위협하는가?"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 인류는 '역사상 최대 규모 사회적 고립 실험' 중이라는 전제하에 팬데믹을 겪은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를 서술합니다. 저자는 감염 후유증으로 섬망, 브레인 포그, 그리고 인지저하증을 언급하고, 사회적 고립의 결과로 인지능력이 감소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심리학자인 만큼 심리학 실험 결과들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나 축소가 해마(인지능력과 관련)의 축소로 연결된다는 실험, 코로나로 인한 스킨십 부재 혹은 감소가 뇌의 체감각 기회를 감소시켜 인지능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무서운 연구결과도 언급합니다. 특히, 소위 "코로나 베이비"의 인지능력 저하에 대한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기 까지 합니다.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2011~2019년 사이 태어난 아기들 IQ 98~107인데 반해서, 코로나 시기였던 2020년 태어난 아기들 IQ 평균은 86, 2021년생 아기들 아이큐 평균은 78.9 였다고 합니다. (뭣이 중한디? 심리학자는 역시 '인지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구나를 느끼게 했던 1부 였습니다)

2부 "전 지구적 방역 현장이 된 우리의 일상"


2부에서는 "전 지구적 방역 현장이 된 우리의 일상"이라는 타이틀로 일반 대중의 호기심을 끌 이야기들을 카드뉴스 수준으로 나열합니다. 예를 들어, 줌 피로(Zoom Fatigue)의 원인이나, "마기꾼"의 비밀(마스크의 인식방해 효과), 마스크와 언어습득 능력의 상관관계 등등 이제는 상식이 되어 버린 익숙한 화두들이 각각 소챕터를 이루는 구성입니다.

저는 2부를 읽다 여러 차례, 책을 덮었는데요.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 종종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백신접종 후유증의 개인편차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믿고 기대하느냐에 따라 후유증을 심하게 혹은 약하게 겪도록 만들 수 있다"(135)고 주장합니다. 출판사측에서는 친절하게도 저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우리가 예측하고 기대하는 만큼 아프다"라는 소제목을 달아 주었지만 저는 고개 갸우뚱 했습니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협조적인 사람일수록 작업기억용량이 크다는 주장도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해당 주장을 인용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리학 문외한이라 "작업 기억 용량"이 무얼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중장기적 손익 계산을 더 잘하는 사람이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더 협조적이라는 주장으로 윗 글을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작업 기억용량"만으로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자발적 협조성을 설명하기는 부족한데요. 반례를 들자면, 외부로부터의 시선, 즉 문화적 압력이 강한 한국과 일본에서 유럽과 미국에 비해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 지키는 데 철저했습니다. 

3부 "펜데믹에도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

3부는 "팬데믹에도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제목에 담긴 낙관적 뉘앙스 그대로 인간이 팬데믹을 잘 이겨내리라는 데 저자가 한 표를 던집니다. 마찬가지로 심리학자여서 그런지, 흥미롭게도 그 재난 극복의 힘을 "인간 뇌의 가소성"에서 찾습니다. 즉, 심리한 문외한이자 평범한 독자로서 제가 보기에 그 관점은 1부와 2부에서 내내 보이는 전지구적 차원의 재난에 대한 개인화된 해석과 해법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 정수근은 팬데믹 이겨내는 해법으로, 종교 활동 등 사회적 교류와 지지 높이기, 감정 조절력 높이기, 공포 영화를 즐겨주지, 꿀잠 자기 등 지극히 개인화된 차원의 해법을 제시합니다. 그 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앞서 말했던 QR 코드가 없어 공공시설의 정수기 사용을 못했던 홈리스분에게 공포 영화를 즐겨서 회복 탄력을 높이거나 꿀잠 자라는 해법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저자 정수근 교수는 코로나 시기와 현재에도 활발하게 학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충북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저자의 최근 이력을 살펴보았는데, 아쉽게도 코로나 팬데믹과 관련한 심리 문제를 다룬 글은 없더라고요. 저는 저자가 2024년쯤에 [팬데믹 브레인] 후속판을 전문가의 관점에서 다시 내주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직 정수근 교수만 제시할 수 있는 화두와 날카로운 분석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팬데믹 브레인]이 코로나19의 한가운데서 잠정적인 썰 위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한 걸음 멀어져서 차분하게 분석한 내용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팬데믹 브레인]을 읽으며, 오늘날의 미디어가 전문가적 지식이라는 것을 얼마나 빠르고 널리 대중화시키는지, 전문가적 지식이 얼마나 평준화되고 있는지 느꼈습니다. [팬데믹 브레인]에서 제시된 많은 이야기들을 이미 SNS인풀루언서가 발행하는 가쉽거리 포스팅이나 뉴스에서 많이 읽어왔거든요. 이 점은 흥미롭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지난 주, 충청북도의 한 사찰에서 찍어 온 사진입니다. 물이 깨끗하지 않았고, 음용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없는데도 기꺼이 바가지를 들어 물을 드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코로나 시절이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광경입니다.


다시 한번,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과 망각의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코로나와 정신건강에 관한 다른 글을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좋은 자료 아시는 분들은 댓글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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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1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8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