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부(학문) 하는가?,'

'많은 이가 제 곳간 채우기에 급급한데 왜 어떤 이는 곳간을 세상에 열어 주는가?



가끔 떠오르는 질문인데 의료인류학자 "김관욱"을 통해서 그 답을 엿보았다. 그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2018)를 시작으로 [사람입니다, 고객님](2022)에 이어 2024년에는 [달라붙는 감정들] 외에도 무려 [몸: 살아내고 말하고 저항하는 몸들의 인류학]과 [지불되지 않는 사회]까지 단독 출간했다. 김관욱은 열정적 저술활동 만큼이나 대학강단과 현장에서도 뜨거운 심장과 행보로 깊은 영감을 주어왔다. 그의 활동을 관통하는 공통 화두라면 #건강, #몸, #인류학, #사람일텐데 그는 세상에 뜨거운 질문을 던지고 응답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지불되지 않는 사회]의 부제 역시 [ 인류학자, 노동, 그리고 뜨거운 질문들]이다. 인류학자 김관욱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져서라도 "각자도생(사)"하는 차가운 사회에서 "냉혹한 노동 현실에 대한 뜨거운 질문"을 던진다.



"[숨가쁨] 얼마나 아파야 노동자는 쉴 수 있을까?"

"[허무함] 나의 사유재인 노동은 왜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고 착취 당하는 공공재가 되어 버렸을까?"

"[상처] 과로사, 절망사, 노동자살, 산재 등등...어쩌다가 생존을 위한 밥줄이 나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우울] 어쩌다 노동은 마음과 몸을 병들게 했을까?"

"과연 우리 사회는 '공정한, 좋은 노동'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하고 있는가?"



김관욱은 어려서부터 감각이 "과잉" 발달하여 타인의 고통에 눈과 귀가 열렸다. 경쟁사회 생활인에게 과잉감각은 약점이겠지만 실천하는 인류학자에게는 축복이다. 그는 "노동"에 대한 이미지를 축 삼아 [지불되지 않는 사회]를 구성하였다. 독자는 노동의 "숨가쁨"(청각), "허무감"(감각), "바쁨" (시각), "상처"(시각)에 공감각하며 김관욱의 뜨거운 질문을 공유하게 된다.


최초의 질문은 단순하지만 본질적이다. "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어떤 이들의) 노동은 소모되면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가?" 김관욱은 치열하게 구축해온 학문세계의 언어와 풍부한 현장연구 데이터를 빌어 이 질문을 탐색한다. 그는 자본주의 기원과 야만적 축적(노동가치의 저평가) 현실을 소개하고, '과로-성과체제'가 초래한 '분열적 피로'와 '우울' 그리고 '절망사 death of despair'의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또한 우리사회가, '생존을 위한 밥줄이 오히려 목숨을 위협하는 가혹한 노동현실'에 희생된 이들에게 위로나 치유보다는 혐오를 쏟는 "탈脫도덕"의 사회로 가고 있지 않나 우려를 표한다.


김관욱은 타인의 고통에 귀를 닫고 심장이 차가워진 사회, 환대의 의례가 사라진 사회, 그리고 내편-네편을 경계짓는 "덩이 존재론"에 갇힌 사회의 암울함을 지적한다. 동시에 그는 인류학자 제이슨 히켈, 철학자 한병철, 인류학자 팀 잉골드, 사회학자 사라 아메드의 사상에서 혜안을 빌어와 대안을 제시한다.


일하다 다치거나 아프고 죽는 사회가 아니라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는 서로 매듭처럼 연결된 "선line의 존재론"과 "공감의 정동affect"이 필요하다. 의외로 작은 데서 시작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귀를 열고, 서로 돌보면 된다. 의료인류학자 김관욱의 과잉감각과 뜨거운 질문이, 그래서 더 소중하다. 고맙습니다.





[해당 리뷰는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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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1-24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하다가 다치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누구나 으레 다칩니다. 아이는 다치면서 어느새 낫고, 앓으면서 조금씩 삶과 몸을 알아가면서 천천히 철들어 어른으로 나아갑니다.

오늘날 숱한 ‘일자리’는 “일하는 자리”가 아니라, “돈을 벌어서 서울에 터를 잡고 버티는 자리”이기 일쑤입니다. “일을 하며 살림을 가꾸고 보금자리를 일구어서 스스로 즐겁고 한집안이 오붓한 길을 바라는 일자리”는 어떤 ‘틀(회사·공장·공무원)’로도 이루지 못 하거나 않습니다. 먼지 하나라도 들어왔다가는 공장 기계가 망가지니, 공장은 그토록 깐깐하고 모질며 차갑습니다. 누구한테나 고르게 맞추려는 틀을 잡으려고 하기에 ‘공직사회’도 똑같이 깐깐하고 모질며 차가울 뿐 아니라, 이러한 틀(회사·공장·공무원)에 스스로 맞추어서 “돈을 버는 자리”를 얻으려고 하니, 아주 마땅히 힘들고 지치게 마련입니다.

서울(도시)에 있는 일자리 가운데, 햇볕을 넉넉히 쬐면서, 풀꽃과 나무를 늘 마주하는 곳에 세운 일터가 있을까요? 아마 한두 군데 있을는지 모르나, 모든 공공건물과 회사건물과 공장에는 나무는커녕 들풀 한 포기조차 자랄 틈이 없고, 멧새나 풀벌레나 개구리는커녕 매미조차 깃들지 못 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조차 농약과 비료와 기계와 비닐로 덮어씌울 뿐 아니라, 이제는 ‘스마트팜’이라는 이름으로 멀쩡한 논밭에 시멘트로 터를 다져서 유리온실을 때려짓고는 와이파이로 다루는 ‘공장식 축산’과 똑같은 ‘공장식 농업’으로 간다면서, 몇 조 원도 아닌, 몇 백 조 원을 들이붓는 나라입니다.

‘일’이란 무엇인지부터 처음으로 돌아가서 들여다볼 적에 비로소 실마리를 푼다고 느낍니다. 왜 “지불되지 않는 사회”일까요? 삶자리·보금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가 아닌, 더구나 일자리조차 아닌 ‘돈벌자리’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라에서 사람들을 ‘돈벌자리’로 내모는 탓이 하나에, 나라가 사람들을 ‘돈벌자리’로 내모는 줄 알면서도 그냥그냥 ‘서울에 깃들어서 돈벌자리를 쥐는 우리 스스로’ 모든 수렁을 깊이 판다고 느낍니다.

아픈 이웃에 귀를 기울이려면, 서울부터 떠나면 된다고 느낍니다. 사람한테 시달리고 죽는 뭇소리부터 귀를 기울여야, 드디어 사람이 왜 아프고 죽는지 알아본다고 느낍니다. 가을겨울에 봄이면 우리나라는 모든 곳에서 가지치기를 끔찍하게 일삼는데, 길나무 가지를 마구마구 자를 적에 “내 팔이 잘리는구나” 하고 느끼는 분이 갈수록 줄어듭니다. 서울(도시)을 넓히면서 들숲메를 깎아내는 삽질이 날마다 불거지지만, 살갗으로 하나도 안 아픈 사람도 갈수록 늘어납니다. 나라에서 몇 백 조 원에 이르는 돈을 ‘해상 국립공원’ 바다에 쏟아부어서 태양광과 풍력시설을 박는데, 바다가 앓고 아픈 줄 느끼는 사람도 갈수록 사라집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먼저 들숲바다가 앓아눕고 죽어가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싶습니다.

얄라알라 2025-01-25 20:49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안녕하세요? 제가 24년에는 알라딘 서재를 자주 못들어 왔지만 간혹 숲노래님의 서재 글 읽고 공감하고 갔습니다. 귀한 말씀 들려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삶자리·보금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

˝일˝에 더해진 ˝자리˝의 느낌은 팍팍했는데, 말씀해 주신 ˝삶자리·보금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는 다 사람을 살리는 자리였네요. 거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저도 돌아보게 됩니다.

아파트 1층 주민 분들 민원이나 여러 이유로 가로수 마구 가지치기하고 난 길을 걸으면 나무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그게 고통의 냄새였겠군요...숲나무님 덕분에 저도 인간에게만 열린 귀가 아닌 더 큰 귀를 갖도록 키워야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나쁜 책 - 금서기행
김유태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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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2024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궈놓는 책, 새벽3시까지 술 마시다 쩔었어도 집 들어오자마자 다시 펴본 책, 너무 재밌는 책. 책 좋아하는 문학가가 작정하고 쓰니 이렇게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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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06-24 0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제일 나쁜 책 한 권 아는데(금서로 많이 지정되었고, 책 제목을 보면 ‘이거 정말 위험한 책’이라고 누구나 공감할 거예요), 그 책이 <나쁜 책>에 나오지 않았어요. ^^

얄라알라 2024-06-24 09:12   좋아요 0 | URL
cyrus님 반가우세요. 월요일 잘 시작하셨는지요?

제게 큰 숙제를 주셨는데요. 궁금해서 들썩들썩 ㅎㅎㅎ

잠자냥 2024-06-24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얄 님도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다 쩔기도 해요??? +_+?

2024-06-24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24-07-13 0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식이 무척 해박하고 깊습니다. 책읽기와 책을 모두 좋아하는 진심과 내공이 느껴지더라구요.ㅎㅎ

고양이라디오 2024-07-22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하네요 얄라님이 이렇게 칭찬하시니ㅎ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감각을 못 견디는 나는 번번이 수영강습에서 낙오되었고 낚싯배 타서도 선실에 콕 박혀 있었다. 겁쟁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 노인은 용감하다. 조각배 하나에 의지해 먼바다로 나가, 배 보다 더 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인다. 가난한 그는 빈 손이다. 망망대해에서 고독을 달래줄 라디오는커녕 물고기에 뿌릴 소금조차 없다. 원양어업에서 으레 동원할 든든한 장비도 없다. 달랑 몸뚱어리뿐이다. 그나마 노화하여 말도 제대로 안 듣는 몸. 그런데 몸이야 말로 일당백이다. 예를 들어 노인의 목소리는 망망대해에서 외로움을 달래줄, 건전지 안 먹는 독백 라디오가 된다. 노인의 억센 손과 강건한 어깨는 물고기와 맞서게 해줄 무기다. '아! 몸 그 자체가 도구, 존재 자체가 어부이구나!' 여기에 생각에 미치자 그제야 왜 소년이 산티아고 노인을 "최고의 어부"라며 존경하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물고기 잘 잡는 어부들이야 많겠죠. 훌륭한 어부도 더러는 있고요. 하지만 진짜 어부는 할아버지뿐이에요.



세상은 노인이 84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하자 측은지심을 넘어 무시한다. 소년의 부모님은 노인에게 불운이 붙었다며 아예 노인의 배에 타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도 소년은 노인에게서 "최고의 어부"를 본다. 소년은 "최고"에 걸맞은 예우를 할뿐더러 "최고"에게서 배우고 싶어 한다. 노인은 남들 눈에 덕지덕지 녹이 낀 작살 같을 자신의 존재를 유일하게 인정해 주는 소년이 고마워서라도 거대한 물고기와 끝까지 싸웠다. 노인 역시 '내가 죽느냐, 물고기 네가 죽느냐'의 상황에서 물고기를 인정해준다. 심지어 '형제자매'라고 부른다.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을 때마다 헤밍웨이가 숨겨 놓은 문장의 빙하 밑으로 파내려가게 된다. 곱씹는다. 왜 소년에게 노인은 '최고의 어부'인지, 소년의 눈에만 '최고'인지, 만약 그렇다면 노인은 그런 한평생에 만족하고 세상을 뜰 수 있을지? "최고의 어부"란 무엇인지? 나는 "최고"인 노인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전폭 지지해주는 것만큼 잠재력을 끌어올리게 하는 당근이 있는지...[노인과 바다]는 얇은 철학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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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5-30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의 깔끔한 문장도 좋고, 말씀하신대로 숨겨놓은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탁월함도 있어, 저도 좋아해요.
그의 생과는 별개로^^;;;;

얄라알라 2024-05-31 07:45   좋아요 1 | URL
우연히 검색하다 본 어떤 전기에서는 헤밍웨이가 총 들고 있느 사진을 표지에 썼더라고요...고작 저는 인터뷰집 1권 읽었는데 좀 더 알아보고 싶어지네요^^;

햇살과함께 2024-05-31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10대 때는 알지 못했는데 다시 읽으며 저 문장들이, 노인이 물고기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레삭매냐 2024-06-1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의
책이야말로 고전이 가진 매력
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읽어 보고 싶네요,
<노인과 바다>.
 
사랑이 훅! 창비아동문고 295
진형민 지음, 최민호 그림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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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6학년 때 고백한 번 못하고 끙끙 가슴에 품었던 첫사랑 기억 꺼내어 쓴 소설이라 20년전 느낌도 있어요^^ 농구 좋아하고 땀 번들거리는 종수 캐릭터가 혹시 작가님 첫사랑 닮은 사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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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동안 [노인과 바다]를 세 가지 버전(각각 백정욱, 이정서, 박상은 번역가 버전)으로 접했다. 내친김에 [헤밍웨이의 말: 은둔 시절의 마지막 인터뷰]까지 읽었고 박균호 작가의 [세계문학 필독서 50]을 펼쳐서 작품해설도 살펴봤다. 한 마디로 엄청난 재발견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대표작이라고 어른들이 하도 권하시길래 10대 때 읽었다. 대학 입시 영어 시험도 대비할 겸 원서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철부지 나는 줄거리만 따라가며 '이렇게 밍밍한 책이 도대체 왜 유명하지?,' 책 추천해준 어른들에게 속은 느낌이었다.


아둔함은 독이다. 교만함은 독자의 눈을 가린다. 청소년기 나는 빨대 꽂아 음료 마시듯 [노인과 바다] 줄거리만 쪽쪽 빨고는 진짜 중요한 양분은 싹 내 버린 셈이다. 단순한 줄거리 이면에는 헤아리기 벅찬 인생의 지혜와 생각거리가 담겨 있었는데도 말이다. 어렸던 나의 경솔과 오만을 속죄하듯 이번에는 [노인과 바다]를 경이로운 마음으로 읽었다.




"빙산 원칙"에 따라 작품을 쓴다는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의 단순한 줄거리라는 빙산 아래, 자신이 경험한 인생의 폭과 밀도를 꾹꾹 눌러 감춰두었다. 80여일 동안 빈 배로 돌아오던 노인이 사투를 벌여서 인생 최고의 물고기를 낚는다. 몸길이가 5.5미터에 이르는 물고기(청새치로 추정)를 실을 공간이 없어 쪽배에 매단다. 그 와중에 프리라이더 상어 떼에게 물고기 살점을 다 뜯겨 뭍에 닿았을 즈음, 물고기는 뼈대와 꼬리, 머리통만 남아 한때 정녕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노인은 물고기와 목숨을 걸고 했던 사투로 기력을 다 써서 깊은 잠에 빠진다. 사자 꿈을 꾸면서......



Jackiemora01, CC BY-SA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나는 엉뚱하게도 노인의 소박한 식사법과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일단 노인은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고, 음식이 제 몸으로 들어간 후 어떻게 작용할지를 상상하고 외부의 생명과 자신의 연결성을 이해하며 먹이를 음미한다. 노인의 식사법에는 과도함,즉 과식과 낭비가 없다. 반면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인은 혀끝의 자극과 쾌락, 소비를 통한 과시, 습관적 먹기를 하며 음식을 사유하지 못한다. 

노인은 자신이 잡은 5.5미터짜리(자신의 배보다 몇 뼘 더 큰) 청새치라면 어른 한 명이 겨우내내 식량 삼을 수 있다 가늠하면서도 이걸 먹을 자격 갖춘 인간이 흔히 없다는 것도 안다. 비록 둘(물고기 혹은 노인)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싸움인지라 물고기에게 작살을 꽂았지만 노인은 물고기를 형제의 마음으로 대하고 존중한다. 자연에서 음식을 취하며 생존하고 자신을 살게 해주는 그 존재에 감사하는 노인이야말로 어부이자 철학자가 아닌가, 나는 감탄했다.


그 외에도 뼛 속까지 어부인 노인이 바다를 여성형 명사라면서 바다 및 바다 생물체에 보이는 태도, 몸 속 장기가 밖으로 녹아 나올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의지, 라디오 하나 없이 가난한 어부로서 망망대해에서 혼잣말하는 노인의 외로움, 피붙이도 아닌데 망망대해 위에서 의리와 신뢰 관계로 다져진 노인과 소년의 우정, 노쇠해가는 몸을 살살 달래고 어르며 노화를 수용하는 노인의 태도 등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읽을수록 좋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작가로서 출세하지 못했더라면 어부로서 이름을 날렸을 거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믿게 되었다. 



Look Magazine, Photographer (1953)/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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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4-05-18 0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키트와 보양탕 ㅋㅋㅋ 적절한 표현입니다 해마다 다시 먹어줘야죠~

얄라알라 2024-05-18 02:37   좋아요 1 | URL
ㅎ네네^^ 그리고 이왕이면 몇 글자라도 보양탕 몸보신 기록을 해주는 게 좋은데
저는 자꾸만 적는 걸 귀찮아하네요.

2024-05-16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18 0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