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발자국 줄이기"로써 로컬푸드 운동은 사실 책으로만 접했지 평소 그다지 신경쓸 처지가 아닙니다. 동서남북 시멘트로 겹겹 둘러싸인 아파트 공화국, 텃밭은 커녕 흙 밟기 어려운 환경에 사는데 어찌 "로컬 푸드"를 꿈꾸겠나요?

그러던 제가 옥천 장령산 자연휴양림 부근, "옥천 로컬푸드 직매장"를 이용해본 후 달라졌습니다. 다른 지역가면 '로컬푸드 직매장'을 검색하는 게 습관이 되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직매장들이 제공하는 "식품 + 제품"은 해당 지역민이 직접 납품하기기에 품질에 신뢰가 가고 식품의 경우 매우 신선, 저렴합니다.


단 아쉬운 점은 옥천 로컬푸드 직매장의 경우 온라인 주문이 불가능해요. 매장에 전화를 걸어, 제가 원하는 판매자분들의 정보를 문의한 후에 직접 연락을 드렸어요. 바로 "장앤장"의 대표 "장경숙"님이신데요. 이 분이 운영하시는 블로그에 들어가봤더니 닉넴이 "메주미인"이시더라고요^^ 이름에 가득 담긴 정체성과 음식 철학!!!

Photos = Korea Tourism Organization 


"옥천 로컬푸드 직매장"에 납품하시는 물품을 개인에게도 판매하신 다기에 핸드폰 문자로 주문드렸습니다. (작년 겨울에 이어 이 번이 두 번째 주문입니다. 장류는 유통기한이 상당히 길 터인데도, 장경숙 대표님은 가급적 엊그제 어제 담은 신선한 제품을 보내주시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두 번 구매 모두, 제조일자가 주문일 다음 날짜로 찍혀 있었어요.)


자연과 가까운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

시멘트 벽에 둘러 쌓인 아파트에 살면서, 된장 담기는 커녕 메주콩과 일반 콩 구별도 못하는 게으른 도시까막눈인 제가 이처럼 정직한 발효식품을 먹을 수 있으니 생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발효음식 이 전통을 누가 지켜갈까, 지켜질 것인가 막연한 두려움이 제게 있어요. 기회가 되면 옥천 이원면에 장경숙 대표님 뵈러 가서 이런 저런 귀한 말씀 직접 듣고 싶어집니다.


* 광고성 글로 오해하실까봐 살짝 걱정되네요^^ 올린 사진은 내돈내산 제품 사진이고 저는 이 업체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음식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이었으니 오해하시지는 마시어요^^ 모두 건강하세요.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레이스 2024-03-10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메주 사서 된장 담궈볼까 생각하다가... 후속으로 밀려오는 여러가지 생각에 슬며시 잊어버려요 ㅋㅋ

얄라알라 2024-03-11 00:06   좋아요 1 | URL
저랑 레벨이 다르십니다^^ 저는 된장 담그는 수업, 고추장 담그는 수업을 들어봤으나....돌아서서 바로 잊어버렸어요. 메주는 꿈도 못 꾸어요.

그레이스님에게 밀려오는 후속 생각에 냄새도 포함이 된 걸까요?^^

hnine 2024-03-10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옥천이면 제 집에선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저도 언제 한번 방문해보리라 맘먹고 있는 곳이랍니다.
설마 메주를 구입하셨다는 건 아니겠지요??

얄라알라 2024-03-11 00:05   좋아요 0 | URL
^^:;; 네 설마 ˝메주˝는 설령 얻는다 해도 어떻게 어디에 쓰는지도 제대로 모릅니다. 제가 된장과 청국장을 구매한 판매자님 닉넴이 메주미인이시더라고요.

얄라알라 2024-03-11 00:35   좋아요 0 | URL
hnine님, 여유 되실 때 동선 잘 짜셔서 다녀와보시면 좋죠. 제가 검색해봤을 땐, 다른 로컬직매장에 비해 옥천 직매장이 매출도 높고 지역 농민들과 상생하여 활기 넘치는 것 같았어요^^

2024-03-11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24-03-12 09: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경로를 찾으셨네요. 먹거리가 점점 엉망이라서 가뜩이나 공기도 나쁘고 물도 나쁘고 플라스틱과 환경호르몬을 왕창 섭취하는 시대에 모처럼 좋은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이네요. 부럽습니다.

얄라알라 2024-03-13 12:54   좋아요 2 | URL
비행기에 마늘장아찌 태워서 transient님께 보내드리고 싶네요.....^^ 넘 건강한 맛입니다^^;;;; 마늘 냄새가 몸에서 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런 자연 가까운 맛이 정말 좋아요
 

언어 능력이 곧 생존지수였던 외국 생활, 현지인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을 귀쫑긋 세워 외우던 시절이었다. 당시 한 번 듣고 강렬해서 잊히지도 않는 표현현이 있었는데 바로


Let's capitalize our time!


정확한 워딩은 잊었지만, "시간을 자본화한다"는 그 개념,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수다가 서로 시간 낭비이니 이쯤 끝내고 남은 시간 각자 잘 쓰자는 의미가 모욕이 되지 않는 사회는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긴 이제 우리 사회도 점점 더 "시간=돈," "돌봄 = 돈," "이야기 들어주는 (노동)= 돈" "(거의) 모든 게 돈"의 사회로 급속 전환 중이긴 하다.


옛 기억을 소환한 이유는 오늘 우연히 들었던 7살 꼬마의 말 때문이었다. 줄 서서 먹는 이웃마을 맛집에서였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주인분께서 500ml 사이다를 들고 오셨다. 사장님이 가시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귀여운 꼬마가 이렇게 말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세상 공짜 없다던데, 그냥 주네.




해맑게 웃는 꼬마를 나는 깜짝 놀라서 바라보았다.

'도대체 꼬마는 저 어른 말을 누구에게서 들어봤지?' '어떻게 저 어려운 말을 맥락에 맞게 쓸 수 있을까?'

꼬마의 부모님을 떠올려본다. 그런 말을 자주 쓸 것 같지 않은 분들이다. 그렇다면 꼬마가 다닌다는 어린이집 선생님? 그럴 리가.... 하지만 분명 아이는 그 말을 자주 들어보았을 터이다. 아이는 "세상에 공짜 없다고 어른들이 말했지만, 공짜가 있네요."의 뉘앙스 천진하게 말했으니까.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전모를 알면 아이가 슬퍼할 것 같다. 맛집의 규모가 작고 점심 피크타임이어서 5명의 손님을 4인석에 몰아 앉히셨던 사장님이 "미안해서" 사이다를 주셨던 것이다. "그냥"이 아니었다. 이유 없는 친절 없고, 세상에 공짜도 없다는 걸 보여주는 예시였다. "세상에 공짜 없다던데 아니네."가 아니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4-02-21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4-02-22 0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아.... 공짜가 아니었다니...🤣

얄라알라 2024-02-23 14:48   좋아요 1 | URL
은오니~~~이이~~~임^^ 락방님께서 왜 글 안쓰시냐고 하시던데^^ 바쁘셔서 만약 못쓰시고 계셨다면 이렇게 제 낙서같은 글에 댓글 남겨주시는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러게요 사이다가 공짜가 아니었어요 ㅎ

은오 2024-02-24 08:05   좋아요 1 | URL
얄님 글은 항상 잘 읽고있습니다~! 💕💕 댓글은 매번 달지 못해 제가 더 아쉬운걸요 ㅠㅠㅠㅠ
 


2027년 배경의 SF 영화 [Children of Men]을 보았던 이유는 순전히 배우 때문이었다.

크리스찬 베일

매즈 미켈슨

클리브 오웬

애정하는 배우들의 영화는 놓치지 않으려 하니까.

몇 년 전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불임이 표준이 된 세계, 마지막 남은 임산부와 태어난 아기라는 설정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줄거리를 슬렁슬렁 넘겼다.(그래서 지금도 줄거리 기억은 잘 안 난다. 오로지 주인공 클리브 오웬의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만 훔쳐 보았으니까.....) 특히, 영화 후반부의 이 장면.


아가를 본 어른 사람들이 경이롭고 감격에 찬 표정으로 길을 터주는 이 장면은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오늘 어린이병원에서 딱 저런 표정으로 아가들을 보고 있었다. 그 대형 병원은 어린이 전문 병원인지라 대기실 복도에 아가들이 바글거렸다. 말이 좋아 아가이지, 엄마 몸 속에서 하루 종일 잠자던 태아의 모습과 크게 차이 안나는 쬐그만 신생아들도 있었다. 그 복도에서 1시간 이상 머물렀는데, 나는 챙겨갔던 책을 아예 꺼내보지도 못했다. 정확히는 책 꺼낼 생각조차 안났다. 병원 복도에 들고 나는 아기들의 물결에 마음을 빼앗기고, 아기들에 자꾸 머무는 시선을 애써 감추느라. 특별한 지인 찬스가 아니라면 일상에서 아가 보기 힘들어진 저출산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렇게 많은 어린 생명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자꾸 눈이 아가들에게 머물러서, 그 아가들의 부모님들이 싫어할까 조심해야 했다. 원체 아가를 너무도 좋아하지만, 내 시선은 틀림없이 끈적거렸으리라.

나도 모르게 '아! 미래를 위한 희망! 너희 작은 생명들....'이런 프로파겐다적 생각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가는 그냥 생명으로서 소중할 뿐인데, 나도 모르게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희망이라는 거국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딱, 영화 속 저 장면처럼......


이 영화는 2027년을 배경 삼는다. 근미래라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가까운 내일이다. 과연 2027년 대한민국의 거리 풍경은 어떠할까? 우리는 아가들의 옹알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24-02-16 12: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영화를 90년대 나왔다면 리얼리~? 하며 봤을지도.ㅋ 27년이래 봤자 얼마 안 남았네요. 2000년이 됐을 때도 세상이 되게 많이 바뀌어 있을 줄 알았는데 밥 먹고 화장실 가고, 태어나고 죽고. 세상은 돌고 도는 것 뿐이죠. 저는 애들 별로 안 좋아했는데 요즘은 좋더군요. 저도 나이 들었나 봅니다. ㅠ

얄라알라 2024-02-18 17:32   좋아요 3 | URL
2027년..
노스트라다무스 예언...때문에 21세기가 없는 줄 알았는데^^;;;

stella. K님 비오는 일요일 행복한 오후 보내시어요

레삭매냐 2024-02-16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별무소용
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들이 말한 막대한 예산이라는
말도 예산 전용으로 거짓말이라
는 걸 잘 알게 되었지만...

의료 교육 모두에서 소아과 기피,
한 때 최고의 직업이라고 불리던
교사가 불과 몇 년 사이에 기피
직이 되었다는 역설 등등 -

노키즈존이 점점 늘어나는 어느
나라의 서글픈 현실이네요.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미래의 단순 노동자로 보는 시선
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인구 절벽
은 이제 되돌이킬 수 없는 현실
이 된 느낌입니다.

얄라알라 2024-02-18 17:33   좋아요 1 | URL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근심 그득한 표정으로
레삭매냐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끄덕 공감합니다

이렇게 수도권에 건물을 몰아 짓는데 지방 소멸은 어떻할 것이며...암울해요

2024-02-20 0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02-22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가들 너무 이뻐요ㅎ 저도 귀여운 아가들을 보면 자꾸 눈이 가고 기분도 좋아진답니다ㅎㅎ

아기라는 말보다 아가라는 말 너무 정감가고 귀엽고 좋네요ㅎ

아가라는 말 검색해보니 정의 2, 3 번에 감탄사로 분류된 게 너무 웃기네요ㅎ 아기를 부를 때, 시부모가 젊은 며느리를 정답게 부르는 말이래요ㅎ

얄라알라 2024-02-23 14:49   좋아요 1 | URL
그 사전 매우 현실적이네요. 그런데 21세기에도 시어머니와 젊은 며느리 사이에 ˝아가˝라는 말이 쓰이나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ㅎㅎ우리도 이젠 미국처럼 차가운 호칭으로 부르게 될 날도 곧 올것 같아서요

근데 저는 이 글 올릴 때 저 멋진 배우님들 언급하는 댓글이 하나라도 달리지 않으까 했는데 얼굴에 빠지는 건 저만인가봐요 ㅎㅎ

고양이라디오 2024-02-23 16:02   좋아요 1 | URL
아ㅎㅎㅎ 저는 남자라서 이쁜 배우 아니면 관심이 없다는...ㅎ

크리스찬 베일은 저도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밤에 걷는 일이 잦은(카페 자주 순례하는) 나로서는 종종 동네에서 전구장식나무 사이를 지나기도 한다. 이 짧은 길을 지날 때마다 지인이 전해준 가쉽이 생각나는데, 그에 따르면 재작년 아파트 입주민 대표 위원회(?) 에서 겨우내 전구나무가 잡아먹는 전기세가 아깝다고 관행처럼 해오던 나무 장식을 생략했다고 한다. 그러자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입주민들이

"우리가 못 사는 사람들도 아닌데, 우아파트를 우중충하니 없어 보이게 한다(집값 떨어진다)"

"옆 단지 아파트들은 다 화려하게 조명 밝혀 놨는데 여기만 없어 보인다..."

"일 년 쓰는 관리비가 얼마인데 그깟 몇 백만 원 때문에 아파트 이미지 망치고 뭐냐?"


하며 거세게 반발했다고 한다. 2023년도 입주민 대표 위원회(?) 임원들이 대거 물갈이된 이면에 그 '조명나무장식'이 한 몫했다는 Gossip이었다. 사실이건, 부풀려진 이야기건, 나는 이 '전구장식 나무길'을 지날 때마다 왜 도시민은 불나방을 흉내 내고 싶어 하는지, 거기엔 어떤 상징성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나 역시 아파트에 산다. 밤 산책을 할 때마다 흥미로운 관찰을 하게 된다. 시공사도, 평형도 같은 아파트. 올려다볼 때 "거기에서 거기" 다 똑같아 보이는 네모 구조의 아파트이건만 조명의 화려함이 극적으로 다르다. 어느 집은 고급 백화점 매장 천장처럼 거실 천장을 화려하다 못해 정신 아득하게 밝혀 놓았다. 어느 집은 입주할 때 기본으로 탑재된 (유행 지난) 조명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그 다채로운 조명 전시회를 볼 때마다 '자본주의 사회, 이 아파트 공화국에서 자신을 변별하고픈 욕구가 온통 밤에는 조명으로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는 과연 어떤 욕망을 품고 있나, 내 집 거실 조명을 올려다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4-02-14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4-02-14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얄라님 아파트는 조명장식이 정말 백화점 수준인데요? 저는 이 조명들을 보면 빛공해로 인한 생태계 파괴가 걱정이 되더라구요.
정말 어딜가도 돈냄새가 납니다.

꼬마요정 2024-02-14 1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집값 때문에 밝히는 거였군요... 저는 전기도 아깝다 생각하고 밤에 너무 밝아서 안 좋지 않나 생각했는데 그런 거였군요. 저렇게 밝으면 잠 못 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들도, 거기 사는 작은 생명들도 쉬지 못할 것 같구요.... 돈이 최고인 세상이로군요. 씁쓸합니다.

얄라알라 2024-02-18 17:36   좋아요 2 | URL
네, 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인데...

해당 아파트에 사는 분께 전해 들었던 에피소드가 잇는데, 짜장면(?) 먹고 배달기사님 힘드실까봐 1층 공동현관 앞에 가져다 놨더니 ˝아파트 격 떨어진다˝고 관리소장님이....^^:;;;;방송을

2024-02-16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18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자란 성인치고 영어 공부에 최소 십수 년 쏟지 않은 이 없으리. 영어 사교육이 망하지 않을 나라, 초등학생이 TOFEL과 GRE 영단어를 외우는 나라. 그런 대한민국에서 나 역시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에 올인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관점을 바꾸었다. '보다 더 예의 바른 영어 표현, 보다 더 커뮤니케이션 기능에 충실한 영어를 구사하기' 목표를 바꾸니 공부하는 영역도 달라져서 요새는 "사람in" 출판사의 "결정적" 시리즈를 자주 찾아본다. 그중에서도 연휴 기간에 [영어 표현의 결정적 뉘앙스]를 읽으며 'A-ha' 모멘트를 여러 번 경험했다. 예를 들어 대다수 한국인이 'fat'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하는 'skinny'가 실은 '피골이 상접한'의 뉘앙스를 띤 단어라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휘 자체를 암기할 수는 있어도 그 이면의 문화적 상징성이나 복합적 뉘앙스까지 깨닫기는 참으로 어려운 길이라는 생각을 책 읽으며 여러 번 했다.


마침 이런 에피소드를 겪었다. 소위 "오징어 & 꼴뚜기" 껀이다.


<a href='https://pngtree.com/freepng/dried-seafood--cuttlefish--seafood_6732742.html'>png image from pngtree.com/</a>

설 명절 만난 꼬마 중, 너스레도 잘 떨고 쾌활한 녀석이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였는지 졸졸 따라다니며 이상한 소리를 한다. 다름 아닌

오징어! 오징어!

심지어 "말린 오징어" 실물을 들고 흔들며 내게 "오징어, 오징어!" 하며 따라다닌다. 꼬마가 그러는데도 '허허허!허허.......(야 이 꼬마야.....허허' 너그러운 반응이 나오지 않고 바로 부아가 치민다. 이것이야말로 속 좁은 밴댕이가 아닌가. 돌려 말한다.


꼬마야! 한국에서는 '오징어'가 사람 부를 땐 좋은 말이 아니란다..(허허허허허)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묘용 두상에서처럼 3D 입체 이목구비를 가지지 않았기에 더더욱 "오징어"는 욕이 된다....라는 말을 꼬마에게 직접 하지는 않았다.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이미 눈빛에서 차가운 레이저가 뿜어나가는 것을 감지한 꼬마는 이번에는 다른 단어를 골랐다.

https://www.needpix.com/photo/749093/

꼴뚜기! 꼴뚜기!


아니! 그 많고도 많은 단어 중에도, 그 많고 많은 어류 중에 왜 저 아이는 하필 나를 꼴뚜기라 부르는가. 기분 나쁘게. 저 녀석은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킨다'라는 옛말을 들어봤을 턱이 없지


꼬마가 장난하는 걸 알면서도, 점점 빈정이 상하는 나는 [영어 표현의 결정적 뉘앙스]를 다시 떠올린다. 꼬마가 내게 포식자 이미지 "상어"나 귀여운 "돌고래"라고 놀렸으면 덜 신경질 났을 것 같다. 뉘앙스는 어느 언어에서나 중요하다. 사회생활이 필요한 어른뿐 아니라, 세뱃돈을 기대해야 하는 꼬마에게도 !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24-02-11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등학생이 GRE단어를? 정말요? 세상에나. 어려서부터 영어에 학을 떼게 할 일 있나요.
그 꼬마 맹랑하네요. 친하고 싶어 그러는 것이라면 ‘으른‘된 사람으로서 우리가 이해를 해줘야겠네요. ^^

반유행열반인 2024-02-11 16: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걸 안 갚아주시고 그냥 두세요?ㅋㅋㅋ 저라면 오징어야! 하면 왜 해파리야? 왜 삼엽충아? 오징어랑 놀래? 하고 갚아주지요 ㅋㅋㅋ 부모가 듣고 있으면 더더욱 ㅋㅋ엄마 해파리한테 가 임마! 이러고 ㅋㅋ

transient-guest 2024-02-13 0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가 아는 단어가 별로 없었나요?? 근데 그 애는 왜 다른 사람을 그런 표현으로 부르는 건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아는 단어가 그런 것들만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아서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