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의 인간 재생산](배은경 2012)은 10년 전 출간물이다. #재생산 #저출산고령화 #돌봄(care) #가족 #(가족, 복지) 정책 등을 키워드 삼은 최신 연구가 궁금해서 [영 케어러: 돌봄을 짊어진 아동 청년의 현실]부터 읽었다. 일본 세이케이 대학 시부야 도모코 교수(현대사회학)이 일본학술진흥회 연구과제로 제출했던 보고서를 다듬어서 2018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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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도모코는 2010년, 영국 러프버러대학교 방문을 계기로 '영케어러 young carer'를 연구대상으로 "발견(=선점)"했다. 이후, 7~8년간 영국과 일본의 '영 케어러'를 글로 풀어내고자 노력했다. 저자 스스로 "혼란에 빠져 기록을 끝까지 정리하지 못한 인터뷰도 있다"(189)거나 "현재 돌봄의 한복판에 있는 영 케어러의 목소리는 별로 담지 못했다. 지금은 이것이 최선" (191)이라고 자평했듯, [영 케어러]는 밀도 높은 학술서라기보다는 관심을 촉구하는 시발적 보고서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는 저자의 태만이 아닌 연구 맥락의 측면에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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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케어러," 즉 "어린" 돌봄제공자에 대한 조사는 1998년 영국에서 최초 시도했다. 저자의 기억에 따르면, 2010년만 해도 일본 사회에서 관련 연구물은 커녕, "young carer" 범주조차 생소했다고 한다. 즉 선행연구물도, 동료연구자도 많지 않던 상황이었다. 다만, 가족원의 돌봄을 전담 혹은 분담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사회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동,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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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분야 연구를 선도한 영국 사회의 성과물을 검토하고, 일본 사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인터뷰를 수행했다. 다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 (191)이라는 자기방어적 진술처럼, 이 방법론에는 구멍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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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영 케어러"의 범주와 정의 문제.
'젊은 young'은 시대, 사회, 개인 등에 따라 그 범주가 상대적이다. 특히 복지정책 대상자로서의 'the young'을 설정하는 데는 복잡한 셈법이 동원될 터이다. 저자는 일본 사회에서는 18세 미만을 '아동,'으로 18세부터 30세는 청년으로 정리했다. 문제는 'young carer'라는 발명된 범주에 대한 인식이다. 일본 사회에서 이 용어는 일상어라 하기 어렵다(한국 상황도 비슷?). 또한 시부야 도모코가 자인했듯, 인터뷰 참여자 다수는 "어떤 계기로 영 케어러라는 말을 알았"(191)던, 다시 말해 "영케어러"로 발굴되었거나 자기 정의하는 사람들이다. 이 연구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고, 스스로 인식할 기회도 없으며 사회적으로 배려를 받아본 적 없는 "영 케어러"가 빙산 아래 상당히 존재할 것이다. 연구의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영케어러로) 발굴되거나 자기정의 가능한" 이들이 아니라 돌봄의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자기 상황을 직시할 여유도 없는 아이들에 초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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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현재 돌봄의 한복판에 있는 영 케어러"(191) 에 주목한다(이들에게 접근하지 못했지만.....). 무엇보다 "영 케어러가 돌봄 경험을 안심하고 말할 상태와 채널 만들기"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족 내 돌봄 관계지형도에는 젠더, 연령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외출 시 가족원(주로 아이들)의 마스크를 챙기고, 고열 증상시 해열제를 챙기는 이는 주로 여성 성인(엄마)이다. 역의 역할은 우리 상상 속에서도 낯설다(엄마의 KF94마스크가 잘 착용되었는지 살피는 중3 아들?). 이런 고정관념 때문인지 '영케어러'가 어렵사지 자신이 겪는 고충을 이야기할지라도 '네 부모님은 (어린) 네가 그런 일까지 하게 놔두니?'하면서 아이의 부모를 비난하거나 어쭙잖은 충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온정적 시선은 '영 케어러'가 자신의 상황을 터놓고 말하고 정보와 사회적 지지를 얻을 네트워크를 형성할 기회를 차단한다.
따라서, 돌봄 관계 유형에 대한 생각을 유연히 하고, 어린 돌봄제공자들에게 사회적 편견의 오명을 씌우지 않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돌보는 자를 돌보는 사회적 안전망은 제공하되 '영케어러'를 불쌍하게만 보는 온정주의적 시선을 넘어 돌봄의 긍정적 기능도 인정해주는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그 외에도 [영 케어러: 돌봄을 짊어진 아동 청년의 현실] 에서는 "영 케어러가 집에서 맡는 돌봄과 책임 줄이기"라는 실질적인 해법도 제안한다.
일본 상황과 비교하여, 21세기 한국에서 돌봄 논의가 어느 대상까지 확장되어 있고 관련 정책이 얼마나 실질적 효용성 있는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