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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명확한" 목표. 2권.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사회]는 몇 년 전, 산만한 가지치기에 피곤해져서 읽다 중단했었다. [아이 사라지는 세상]은 2022년 다시 읽었다.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사회] 저자는 "왜 지리 교과서에서 맬서스를 언급하면 안 되나? 인구 논의에 지리학이야 말로 유용하지!" 하는 문제의식에서 책 쓰기를 마음 먹었다고 한다. 지리학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는 저자 윤정현은 고등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친다. 참고 문헌만 14쪽에 이르는 꼼꼼한 문헌연구로 축적한 자료 보따리를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사회]에서 다 풀어 놓았다. 



목차를 살피며,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사회]의 전체 윤곽을 그려보았다. 책을 끝까지 읽으니 도리어 윤곽선이 흐려지다니! 목차 소제목 배열로도 추정할 수 있겠지만, 키워드들이 교집합인지 차집합인지 알기 어렵게 교차된다. 저자는 미셸 푸코를 소개하며 프랑스어 포풀라시옹을 만지작거렸다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인구론의 우생학적 함의를 언급한다. 피임약 챕터에서는 한국 사회 출산장려정책에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성토한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을 소재로 한 소설 [개구리], [미생], [설국열차] , [올리버 트위스트] 등을 예시로 들어 독자의 주의를 환기한다. 그러나 [걸리버 여행기]가 왜 필독서인지 설명하는 데 페이지를 과하게 할애했다. 고령화 사회 디지털 격차 문제를 언급하며 노령공학gerontechnology과 노인친화적 도시까지 등장시킨다.  

저자가 헌신적 노력으로 자료를 수집하였음이 행간에서 느껴지기에 독자로서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하지만 자료의 잡곡을 두세번 체에 걸러 내었더라면 훨씬 맛있는 밥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2018년 12월,  "#헬조선 #소확행 #자식농사?" 라는 제목의 토크쇼가 열렸다. 이를 활자로 풀어낸 책이 바로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 출산율 제로 시대를 바라보는 7가지 새로운 시선]이다.




책의 서문에서, 대한민국 저출산 현상을 사회구조의 문제나 출산장려정책 실패로만 볼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 이유로 7가지 시선을 대표하는 7분야 (인구학, 진화학, 동물학, 행복심리학, 역사학, 빅데이터)의 전문가가 토크쇼에 참석했다. 각자 전공 분야의 관점에서 저출산 현상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한다.  



7가지 시선을 요약해 본다. 


1. 장대익(진화학) 

 "짝짓기"나 "번식"이라는 단어를 종종 쓰는 장대익에게 불편감을 느낄 독자도 있겠다. 진화학자의 언어이다. 진화학자 장대식은 현대 한국 사회 저출산 현상을 "주위 환경에 오래 적응해온 인간 마음이 본능적으로 작동한 결과" (25)라고 파악한다. 경쟁이 치열한(혹은 치열하다고 인식되는) 사회 성원들은  K-선택, 그러니까 '양보다 질' 전략을 취한다.

2018년 12월 토크쇼 당시에는 장대익 교수가 "한국 초저출산 문제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모델"을 수립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고 했다. 2022년 시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이 궁금하다. 장대익은 흥미롭게도 진화학자의 장기적 관점으로 현시대 저출산 문제를 진단하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짝짓기에 성공한 커플을 지방으로 유도하는 제도를 마련하면 어떨까요아이들 교육문제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지방에서 지내도록 하는 거죠 커플이 다시 수도권에 올라올 즈음에  결혼한 커플을 순환보직으로 내려보내고요삶의 물리적 심리적 밀도를 낮추려면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요?" (205) 인구학자 조영태 역시 장대익과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제주도 5년 살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당신이 소위 "지방민"이라면 이런 해법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2. 장구 (동물학)


서울대 수의학과 장구 교수는 '서가명강과 '차이나는 클라스'의 스타강사라고 한다. 그가 쓴 [멍이가 임신을 했어요]의 제목처럼, 그는 인간 특화의 저출산 문제보다는 비인간까지 포괄한 '출산' 전문가이다.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에서는, 수의학과 생명공학의 교점에서 재생산신기술을 소개하고 이 기술이 어떤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는지 정리해준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 사회 저출산 현상에 특화되었다기보다는 일반론적 강의라고 느꼈다. 장구 교수는 동물 세계에서도 불임과 난임은 환경오염, 기후(heat wave 같은 변화), 대사변화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하다가, 출산의 감동을 끌어오며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그는 편의점 정크푸드가 생물학적 불임을 초래하니, 디저트세를 부과해야한다고도 주장한다. 저출산 현상을 생물학적 원인과 연결지으려는 그의 시도를 긍정하면서도, 그가 제시하는 해법이 추상적이고 적시성이 낮아보여 아쉬웠다. 



3. 서은국(행복심리학)

행복 분야 전문가인 Ed Diener 밑에서 공부한 서은국 교수(UC Irvine) 역시 '세계 100인의 행복학자'이다. 최근 [임신중지: 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의 정치사]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서은국 교수 역시, 재생산을 행복감과 연결해 파악한다. 그에게 감정이란 "진화의 여정에서 습득한 생존 지혜"(58)를 담은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행복할 때, 즉 뇌의 파란 신호등이 켜져 있을 때 더 많이 출산한다는 것이다. 서은국 교수는 저출산을 인간의 '자연에 대한 반역'으로 규정하면서, 쉬운 말로 설명한다. "신혼부부가 책을 200 읽은  아이를 낳을지 말지 결정하지는 않습니다….아이를 인생에 착륙시킬 활주로가 확보" (70)된 후에 출산을 결정한다고 표현했다. 





    4. 허지원


    뇌인지과학을 전공한 허지원 교수는 "비출산의 심리학적 기제와 기능"에 초점을 둔다. 그녀는 현대인이 사소한 좌절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동기화되었는데, 이는 회복탄력성을 기를 기회를 차단하는 셈이라고 안타까워한다. 허교수는 그 연장선상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비혼, 비출산 결정을 해석한다. 결혼생활처럼 성공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도전 앞에서 사람들은 감정적 에너지 투자를 축소한다는 것이다. 

    나는 허지원 교수가 "좋은 엄마"에 대해 서은국 교수와 사뭇 다른 해석을 내리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두 분 모두 심리학 전공인데도, 서교수는 에릭슨을 인용해가며 "좋은 엄마=행복한 엄마"의 공식을 제시한다. 반면 허지원 교수는 "좋은 엄마" 압박이야말로 불행의 시작이라면서 "그럭저럭 좋은 엄마 good enough mother"로도 충분하다고 다독인다. 가족 역시, 미디어에서 신화화한 정상가족을 벗어나 '느슨한 가족'을 사회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5. 송길영

        




    송길영은 저출산이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이라면서, 데이터를 통해서 그 현실을 명확히 들여다 보려 한다. 저출산 정책집의 추상적인 통계나 딱딱한 조항이 아닌, 말랑말랑한 구체의 현실을 보여주는 그의 접근법은 무척 흥미롭다. 현실을 외면한 국가주의적 발상 '1-2-3 운동'이 왜 '1-2-3-4 운동'으로 패러디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결혼 후 1년 내 임신하고 2명의 자녀를 30세 이전에 낳았다가는 40대에 파산할 수 있는 현실부터 파악해야 프로파겐다라도 설 자리가 있는 것이다. 


        



      송길영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와 본다. "구글 검색창에 '엄마처럼' 써넣으면 연관어가 ' 살아' '살기 싫다' 뜹니다...저출산의 책임과 해결책을 해당 세대에게만 미룰 것이 아닙니다대신 이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명의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시스템을 갖춘 배려' 준비해야   입니다." (139) 


      6. 주경철(역사학)

      역사학자인 주경철은, 저출산 현상이 우리 시대한국만의 문제인가유사한 사례는 없는가다른 사회와의 비교를 통한 우리 사회 문제를 어떻게 진단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에서는 사회병리적 수준의 인구감소 사례를 1990년대 러시아에서 찾는다. 


      7. 조영태(인구학)


      조영태는 "한국 정부의 저출산 대응 정책에는 '역사학적이며 생물학적이고 심리학적 본성에 대한 고찰이 빠져 있다"(173)고 비판한다. 그는 저출산 논의가 제도와 구조에 집중되어, 관련 예산 역시 보육환경 개선에 주로 쓰이지만 복지정책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은 이 사회에서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고밀도를 지각하면서, 각자의 생존에 에너지를 축적하여 살아남으려 하지 재생산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은 밀도 높은 사회에 청년들이 적응하는 과정" (189)인데  "기성세대 중심의 제도와 규범으로 사회질서를 유지"(193)하려는 시도는 실패가 뻔하다는 입장이다. 청년들에게 좀 더 살만한 세상, 경쟁 밀도가 낮아진 세상을 경험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게 된다는 입장. 조영태가 내놓은 구체적 해법으로는 '서울로 집중된 청년 관련 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획일적인 사회 규범 느슨하게 풀기' 등이 있다. 


      한국 사회 저출산을 "문제"나 "국가적 재앙"으로 "병리화"하기 이전에 "현상"으로 놓고, 그 현상부터 파악하려는 시도. 7가지 시선에서 파악하려는 시도가 굉장히 흥미롭고 유익하다. 코로나 때문에 별다방 도서관 오프라인 회동이 어렵겠지만, 7분의 전문가를 다시 한 자리에 모시고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 시즌 2를 진행해주기를 독자로서 부탁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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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i74 2022-02-17 0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들도 새끼를 키우기 힘든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황이 되면 알을 버리고 간다던 글이 생각납니다 ㅠㅠ알라님 정리 정말 잘하셔서 편하게 잘 읽었습니다 *^^*

      얄라알라 2022-02-17 00:47   좋아요 1 | URL
      얼마 전 최재천 교수님께서, 운영하시는 유투브 갑자기 조회수 치솟은 이유가 저출산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해석한 동영상 때문이었다고 하셨어요.
      상대적으로 덜 친숙한 설명이라 그랬을 텐데,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에서는 비중있게 다루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새들이 알을 버리고 간다는 건, mini74님 덕분에 처음 들어봅니다. 엄마새의 심정(?)을 상상한다는 게 인간 중심적이긴 하지만 새들도 얼마나..흑...

      2022-02-17 0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8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9 0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vita 2022-02-17 0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 들은 정희진 선생님 강의에서도 남편에게 매 맞고 돈도 벌어야 하고 수발해야하는 노부모 있고 자식까지 있는 경우 도망치는 여인들이 있는데 이때 이 여인들을 두고 사람들은 모성애도 없고 자식까지 버리고 도망치는 비열한 여인들로 그리는데 만일 이런 상황에 처했을때 상상하보라 하시더라구요. 임신중단과 모성애 관련 이야기 나올때였는데 뒤통수를 누가 세게 친듯 했어요.

      얄라알라 2022-02-18 12:45   좋아요 2 | URL
      vita님 말씀하시니 생각나는 친구가 있어요

      친구는 남편도 대학원생
      본인도 대학원생
      소득은 적고
      아이들은 둘이고

      ˝전쟁 통에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어머니도 있었다. 더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 많다˝ 이런 뉘앙으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지금 와서 보면 큰 충격파의 말이 아닌데도 당시에는, 충격을 주었던 생각이었어요...

      2022-02-17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8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2-02-19 10: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낳는 것도 중요하
      지만 건사하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결혼 시스템에서
      태어난 아이들만 케어하는
      국가 정책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얄라알라 2022-02-19 11:31   좋아요 3 | URL
      레삭매냐님 정말 중요한 말씀이십니다.

      김희경 선생님의 스테디셀러 영향도 있겠지만
      요즘은 워낙 정상가족 프레임 깨기에 대해 많이 생각 공유하시니
      대놓고 생각 이야기하기 더 편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론상 그렇고 가끔 제가 결혼 관계 내의 가족만 생각하고 있는 걸 깨닫고 부끄러워 화끈거릴 때도 있습니다.

      레삭매냐님께서는 [페인트] 혹시 읽어보셨는지요?^^

      mini74 2022-03-08 18: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배울 점 많았던 글 , 알라님 당선 축하드려요 ~~

      얄라알라 2022-03-10 11:06   좋아요 0 | URL
      mini74님, 들려주셔서, 부족한데도 좋게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북플 그렇게 열심히 활동했어도 깜냥이 깜냥인지라
      당선은 수 년 만에 처음입니다.
      부끄럽네요^^

      새파랑 2022-03-08 18: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정 독서 북사랑님 당선 축하드려요~!!

      얄라알라 2022-03-10 11:15   좋아요 1 | URL
      ˝열정˝ 오랜만에 듣는 말이라 감사한 선물입니다.^^ 새파랑님!
      여유로운 목요릴 보내시기를

      2022-03-08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10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2-03-08 1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사랑님 축하드령요

      얄라알라 2022-03-10 11:16   좋아요 1 | URL
      ^^ 그레이스님, 제가 요즘 북플 조금 덜 자주 들어와서 인사가 늦어버렸어요 늘 따뜻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서니데이 2022-03-08 1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얄라알라 2022-03-10 11:17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제가 요새 조금 게을러져서 책과도 어색해진 사이가 되었는데 많은 플친님들께서 축하해주시니 다시 열심 읽어야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리고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하라 2022-03-08 19: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알라님^^

      얄라알라 2022-03-10 11:18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감사드립니다.
      올려주시는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행복한 목요일 보내시고 계시기를

      독서괭 2022-03-09 0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럭저럭 좋은 엄마˝라는 표현 넘 좋은걸요??
      얄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얄라알라 2022-03-10 11:19   좋아요 2 | URL
      그쵸? 꼭 ˝엄마˝가 아닌,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밖에서 그려놓는 이상적 타입이 아닌, 내가 추구하는 상으로 가면 좋을 것 같아요
      독서괭님도 축하드립니다!!!
       



      [현대 한국의 인간 재생산](배은경 2012)은 10년 전 출간물이다.  #재생산 #저출산고령화 #돌봄(care) #가족 #(가족, 복지) 정책 등을 키워드 삼은 최신 연구가 궁금해서 [영 케어러: 돌봄을 짊어진 아동 청년의 현실]부터 읽었다. 일본 세이케이 대학 시부야 도모코 교수(현대사회학)이 일본학술진흥회 연구과제로 제출했던 보고서를 다듬어서 2018년 썼다. 

      *   

      시부야 도모코는 2010년, 영국 러프버러대학교 방문을 계기로 '영케어러 young carer'를 연구대상으로 "발견(=선점)"했다. 이후, 7~8년간 영국과 일본의 '영 케어러'를 글로 풀어내고자 노력했다. 저자 스스로 "혼란에 빠져 기록을 끝까지 정리하지 못한 인터뷰도 있다"(189)거나 "현재 돌봄의 한복판에 있는 영 케어러의 목소리는 별로 담지 못했다. 지금은 이것이 최선" (191)이라고 자평했듯, [영 케어러]는 밀도 높은 학술서라기보다는 관심을 촉구하는 시발적 보고서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는 저자의 태만이 아닌 연구 맥락의 측면에서 이해된다.

      *  * 

      "영 케어러," 즉 "어린" 돌봄제공자에 대한 조사는 1998년 영국에서 최초 시도했다. 저자의 기억에 따르면, 2010년만 해도 일본 사회에서 관련 연구물은 커녕, "young carer" 범주조차 생소했다고 한다. 즉 선행연구물도, 동료연구자도 많지 않던 상황이었다. 다만, 가족원의 돌봄을 전담 혹은 분담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사회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동,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었다. 

      *  *   * 

      저자는 이 분야 연구를 선도한 영국 사회의 성과물을 검토하고, 일본 사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인터뷰를 수행했다. 다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 (191)이라는 자기방어적 진술처럼, 이 방법론에는 구멍이 보인다. 

      *   *   *   * 

      대표적으로 "영 케어러"의 범주와 정의 문제. 

      '젊은 young'은 시대, 사회, 개인 등에 따라 그 범주가 상대적이다. 특히 복지정책 대상자로서의 'the young'을 설정하는 데는 복잡한 셈법이 동원될 터이다. 저자는 일본 사회에서는 18세 미만을 '아동,'으로 18세부터 30세는 청년으로 정리했다. 문제는 'young carer'라는 발명된 범주에 대한 인식이다. 일본 사회에서 이 용어는 일상어라 하기 어렵다(한국 상황도 비슷?). 또한 시부야 도모코가 자인했듯, 인터뷰 참여자 다수는 "어떤 계기로 영 케어러라는 말을 알았"(191)던, 다시 말해 "영케어러"로 발굴되었거나 자기 정의하는 사람들이다. 이 연구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고, 스스로 인식할 기회도 없으며 사회적으로 배려를 받아본 적 없는 "영 케어러"가 빙산 아래 상당히 존재할 것이다. 연구의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영케어러로) 발굴되거나 자기정의 가능한" 이들이 아니라 돌봄의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자기 상황을 직시할 여유도 없는 아이들에 초점 두어야 한다. 

      *  *   *   *   * 

      저자도 "현재 돌봄의 한복판에 있는 영 케어러"(191) 에 주목한다(이들에게 접근하지 못했지만.....). 무엇보다 "영 케어러가 돌봄 경험을 안심하고 말할 상태와 채널 만들기"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족 내 돌봄 관계지형도에는 젠더, 연령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외출 시 가족원(주로 아이들)의 마스크를 챙기고, 고열 증상시 해열제를 챙기는 이는 주로 여성 성인(엄마)이다. 역의 역할은 우리 상상 속에서도 낯설다(엄마의 KF94마스크가 잘 착용되었는지 살피는 중3 아들?). 이런 고정관념 때문인지 '영케어러'가 어렵사지 자신이 겪는 고충을 이야기할지라도 '네 부모님은 (어린) 네가 그런 일까지 하게 놔두니?'하면서 아이의 부모를 비난하거나 어쭙잖은 충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온정적 시선은 '영 케어러'가 자신의 상황을 터놓고 말하고 정보와 사회적 지지를 얻을 네트워크를 형성할 기회를 차단한다. 








      따라서, 돌봄 관계 유형에 대한 생각을 유연히 하고, 어린 돌봄제공자들에게 사회적 편견의 오명을 씌우지 않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돌보는 자를 돌보는 사회적 안전망은 제공하되 '영케어러'를 불쌍하게만 보는 온정주의적 시선을 넘어 돌봄의 긍정적 기능도 인정해주는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그 외에도 [영 케어러: 돌봄을 짊어진 아동 청년의 현실] 에서는 "영 케어러가 집에서 맡는 돌봄과 책임 줄이기"라는 실질적인 해법도 제안한다. 


      일본 상황과 비교하여, 21세기 한국에서 돌봄 논의가 어느 대상까지 확장되어 있고 관련 정책이 얼마나 실질적 효용성 있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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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돌이 2022-01-23 19: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읽은 기사에서 어린 동생을 돌보는 한 청년이 입대통지서를 받고 난감해했던 것이 방송을 타면서 군면제를 받아 동생과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게 생각나네요. 이런 일이 특별한 이슈가 아니게 세심히 찾아내고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아직 그것에 대한 연구나 문제제기는 많이 부족한 듯해요. 이웃나라의 연구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얄라알라 2022-01-23 19:19   좋아요 4 | URL
      아! 저도 그 기사 오늘 접하고 저장해두었어요. 얼마나 다행인지요, 역으로 ‘방송을 타지도, 관심도 못받아서‘ 돌봄 의무와 병역의무를 병행해야만 했던 젊은이들도 많을텐데요....바람돌이님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이 이슈에 같이 관심 나눌 수 있어 참 고맙습니다.

      2022-01-25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26 0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읽을거리 목록"에 올렸던 두 권 중, 오늘에서야 [조선의 결혼과 출산 문화]를 정리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연구 사업팀의 기획으로 경북대 박희진 교수가 썼다. [한국 역사인구학연구의 가능성](2016), [고문서로 읽는 영남의 미시세계] (2009) 등 기존 저서를 통해 추정할 수 있듯, 역사인구학의 관점에서 조선의 결혼과 출산 문화 파악을 시도한 책이다. 호적, 족보, 혼서, 행장류 등 평소 간접적으로만 접했던 고문헌의 조각보들이 박희진 교수의 바느질 덕분에 '조선의 출산문화'를 보여주는 지도로 재탄생하였다. 양적 지표로 뼈대 세우고, 정성적 자료로 살 붙이는 어려운 작업을 했고, 이제 시작이라는 뉘앙스의 서문에서 후속 작업도 기대한다. 

        • "양적 지표로 나타나는 인구 현상은 인간의 삶과 문화라는 질적인 문제와 관련된다. 조선 시대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인식, 조상 자식에 대한 태도 등이 혼인, 출산, 사망이라는 양적지표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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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크pek0501 2021-08-12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을 듯합니다. 역사도 배우고 선조들의 지혜도 배울 수 있는...

      얄라알라 2021-08-12 15:10   좋아요 1 | URL
      예, 페크님, 아주 얇고 한자도 별로 없어서(^^:;;) 제 수준에 딱 좋더라고요.

      박희진 교수 역시 많은 조사를 하고 집필하셨지만, 이 분야 축적된 연구가 많지 않아 미완 느낌이라도 시발점 되고자 하신다고 서문에 쓰셨더라고요^^
       
      재생산에 관하여 - 낳는 문제와 페미니즘
      머브 엠리 지음, 박우정 옮김 / 마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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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낳다. 아기를 낳다. 

      어떻게 낳을 건데? 왜 낳으려는데? 혹은 낳지 못하는 데? 누가 낳을 건데? 낳을 수 있는데? 낳지 않으면 뭐가 어때서? 낳고 난 후의 책임과 의무는? 



      [재생산에 관하여]는 본격적으로 '낳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2018년, "Once and Future Feminist" 포럼에서 발표된 글을 엮었다. 머브 엠리Merve Emre가 발제문 형식으로 쓴 "재생산에 관하여 On Reproduction"에 대해 생물 정치학, 생명윤리학, 문학, 여성학 등을 배경으로 활동중인 페미니스트들이 피드백하는 형식의 얼개를 갖췄다. 따라서, 총 14명 필진의 글과 인터뷰가 짧은 호흡으로 이어지는 이 글에서 숨 틀 길을 제대로 찾으려면 머브 엠리의 발제문부터 충실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엠리는 '기술-유물론적 페미니스트' 와 '급진적 재생산 정의(radical reproductive justice)'라는 두 라인의 사고가 서로 대화가능한 접점을 포용적 페미니즘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여기에서 2차 페미니즘 운동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보조재생산기술에서 되레 저항의 가능성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엠리의 주장 기저에 흐르는 핵심 생각은 바로 ""심지어 '자연스러워'보이는 재생산이라도 모든 재생산은 도움을 받는다...(40)"인데, 이 주장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어 동조 혹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8명에게서 생산적이고 비판적 피드백을 받은 엠리는 " "A Right to Reproduce"라는 글에서 오독을 거부한다. 문장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 "나는 페미니스트 선언문들에 나타난 자연과 기술의 역사적 대립을 추적하며 글을 시작했지만, 내가 어느 한쪽을 선택했다고 단언한다면 주장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90)"



      즉, 엠리가 진정 주장하는 것은 보조생식기술이 여성을 재생산 노동에서 해방시켜주리라는 기술적 해결 예찬론이 아니라는 의미같다( 실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이 안 선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기술"의 이항대립에 갇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재생산이 제기하고 있는 논의들을 단순화시키지 말자는 제안도 한다. 즉 영화 <GATTACA>(1995)에서처럼 "자연적인 분만으로 나은 태양의 아이 vs. 우생학적, 선별적 기술로 창조된 강화 인간"의 대립구도로만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재생산에 관하여]는 얇지만 쉴 새 없이 메모하게 만드는 책이다. 14명 필진의 저서만 찾아 읽어도 한 분기가 지날 것 같다. 참고로, 이 책의 리뷰로는 출판사 편집진이 내 놓은 출판사 소개글이 무척 훌륭하다. 정독 후, 출판사 측에서 내놓은 리뷰를 두어 차례 읽고 다시 머브 엠리의 발제문을 비판적으로 읽는 방식을 추천한다. 



      * "심지어 '자연스러워'보이는 재생산이라도 모든 재생산은 도움을 받는다...임신하기 위해 돈을 필요가 없는 사람은 임신에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임신하기 위해 몸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임신이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의사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조롱하거나 무시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를 낳기에 충분히 건강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존재론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40)"



      • "우리가 유익한 방식으로 요구해야 하고 친밀한 사람들과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모방하도록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정치 체계가 필요하다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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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을 이끄는 인구 혁명 - 인구에 대한 가장 정확한 예측과 대안이 담긴 미래보고서
      제임스 량 지음, 최성옥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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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한 사업가를 연상시키는 이미지 연출 때문이었을까? 은하계 인구의 절반을 날려버린 후, 농부 차림에 평화로운 몸짓을 보이는 타노스가 "악역"인지 잠시 헷갈렸다. 타노스의 대선배 멜서스는 1798년 익명으로 출간한 "인구론"에서 인구증가를 디스토피아의 전조로 파악했다. 반면, 중국의 학자이자 온라인 여행사 CEO인 제임스 량은 저서 『혁신을 이끄는 인구 혁명』에서 "인구구조와 경제에 관한 멜서스의 이론을 산업화 경제 이전 시기나 최빈개도국에게나 적용할 수 있다" (50쪽)고 단언한다. 대신, 그는 경제적 인구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는데 '높은 출산율, 플러스 인구 성장률의 인구구조'야말로 성공적 혁신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먼저 『혁신을 이끄는 인구 혁명』의 저자 제임스 량부터 알아보자. 불과 15세의 나이에 중국 푸단 대학(Fudan University)에 입학했고, 18세에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에 입학하여 20세에 '컴퓨터 공학'으로 대학원 과정을 모두 이수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다가 중국에서 1999년 "씨트립"을 공동 창업했고 현재에도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한다. 42세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북경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약력부터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거의 400여 쪽에 이르는 저서에서 "한국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분석에 오롯이 한 챕터를 할애하며 제시한 정책이 그의 이런 인생 경험과 유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는 2026년부터는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 한국이 채택할 수 있는 최우선 정책으로 "공교육 12년에서 10년으로 단축"을 꼽고 있다. 세계 최우수의 인적자원을 가진 한국이 대학 입학을 위한 입시학원과 다름없는 중고등교육에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젊은이들이 보다 일찍 사회생활 시작하여 혁신에 기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라는 조언이다.



      『혁신을 이끄는 인구 혁명』을 읽다보면, 저자가 사회문제들을 인공위성처럼 높은 데서 내려다 보며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동시에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던 친구의 아들이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권 외국인 학생이 전학오면서 4등으로 내려갔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친구에게는 어짜피 세계무대에서 경쟁상대이며 외국인유학생 덕분에 학교명성이 높아졌다는 식으로 생각을 물꼬를 돌려준다. 큰 틀에서 인구문제를 파악하는 제임스 량의 예측에 따르면, 중국은 1985년부터 2015년까지 강압적으로 진행했던 "출산억제정책"으로 손상된 인구구조 때문에 21세기 후반까지 선전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중국, 미국, 인도가 미래 혁신선도국이 될 것이다. 일본에 대해서는 "잃어버린 10년"이 아닌, "30년"으로 봐야 옳다고 하는 동시에, 기업가정신의 쇠퇴로 인해 전망을 어둡게 한다. 


      한국?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 전 세계 1위를 기록하는 등 혁신과 기업가정신의 측면에서는 선두이지만, 곧 초저출산으로 인해 (손 쓰지 않으면) 쇠퇴를 맞게 된다는 예측이다. 이 책의 부제가 "인구에 대한 가장 정확한 예측과 대안이 담긴 미래보고서"인데, 읽으면서 본인이 몇 번이나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는지 녹화해보면 어떨지 싶다. 분석과 제시한 대안에 격하게 공감하며 읽게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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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yrus 2019-09-16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제목과 부제에 ‘정확한’이라는 표현이 있으면 저는 의심하거나 거릅니다.. ^^;;

      2019-09-17 0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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