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출판번역을 잘하기 위해서는 듣기와 말하기 같은 회화능력보다는 독해능력이 더 중요하며, 독해를 잘하기 위해서는 문법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저자의 논리와 메시지를 잡아낼 수 있는 논리력이 훨씬 중요하다. 번역 실력을 늘리는 데는 항상 논리력 향상이 가장 큰 과제가 되곤 한다. - P32

 나는 번역가로 전업하고 나서 오랫동안 회사로 출근하는 꿈을꿨다. 그만큼 조직의 품에 있다는 안정감이 그리웠던 것이다. 실제로 많은분야의 사람들이 프리랜서를 선언했다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조직의 품으로 다시 들어가곤 한다. 그만큼 일감이 끊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아니, 실제로 어느 기간 동안은 일감이 끊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불안과 공포의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는 법이다. - P39

몰아쳐서 해야 좋은 공부가 있고, 조금씩 꾸준히 해야 좋은 공부가 있는데, 언어공부나 번역공부는 ‘조금씩 꾸준히 해야 좋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많이 꾸준히‘를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선 처음에는 단거리를 살살 달리다가 차츰 거리를 늘려야 한다. 물론 나중에는 장거리 달리기 연습을 꼭 해야 한다.  - P57

하나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까지 남아 있는 학생은 매우 적다. 그만큼 우직하게 ‘꾸준히 공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번역은 영리하고 민첩하게 행동하는 사람보다는 조금 우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살아남는 분야다. - P59

기성 번역가들을 대상으로 번역가 지망생들이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하면좋을지 조언해달라는 설문조사를 바른번역에서 한 적이 있었다. 흔히 지망생들은 문법과 독해 공부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의외로 많은 번역가들이 가장 많이 권한 공부 방법은 독서다. 그렇다고 반드시 외국어서를 봐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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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모나리자 2024-01-02 15:5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루피닷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곡 2024-01-01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새해 인사 드립니다 해피 뉴이어!!

모나리자 2024-01-02 15:5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서곡님.^^
새해 좋은 일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혹시 이런 농담을 들은 적 있는가? "의사는 마누라가 좋은 직업이고, 판검사는 처가집이 좋은 직업이다." 소위 돈 잘 버는 ‘사‘자 들어가는 일등 신랑감들이 우스개로 자조하는 농담이다. 반면 번역가는 아내나 처갓집 부모님들이 반색하는 직업은 아니다. 그래서 난 그들의 농담에 이렇게 첨가한다. ‘번역가는 본인만 좋은 직업이다.‘ - P15

*우선 책보기를 즐기는 사람에겐 좋은 직업이다. 번역을 하다보면 그냥책을 읽을 때보다 더 깊게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고 또 이를 토대로 사고를확장시켜 나간다. 내 경우, 번역한 책의 내용을 토대로 강연해달라는 의뢰를 기업이나 학교로부터 심심치 않게 받곤 하는데, 강연 준비를 하면서 스스로가 더더욱 많은 걸 배우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직업이 스스로 좋아서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듯이,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세상을 알아나가는 재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직업이다.

그런데 번역이라는 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외국어만 잘하면 번역쯤이야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외국인들의 사고에 적합하게 쓴 문장을 한국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게 생각만큼손쉬운 작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떤 문장에서 꽉 막혀 진도가 안나가는 경우도 있고, 찾아봐야 할 자료가 너무 많아 품이 많이 드는 경우도있다. 너무 고생스러운 책을 할 때는 ‘정말 이 책만 번역하고 번역 일을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원・・・・・・ . 하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 P16

나는 사업을 하면서 부업삼아 번역을 하다가 전업을 한 경우인데, 책 번역을 하면서 정말 세상에 이렇게 편한 직업이 없다고 생각했다. 직장생활도 해보고, 개인사업도 해본 나는 세상에 편하게 돈버는 일이 없다는걸 잘 안다. 겉으로 봐서는 남이 하는 일은 다 쉬워 보이지만, 막상 그 일을 하면 모든 것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물론 번역은 품이많이 드는 고된 직업이긴 하지만, 직장 동료나 거래처 등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는 거의 없어서 좋다. 

저자와 나와의 대화만 있을 뿐,
다른 사람은 그 사이에 끼어드는 법이 없다. 저자의 머릿속을 추리해야 하는 작업은 마치 탐정 놀이처럼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이 저자는 어떤 주장을 펴려고 이런 논리로 이야기하고 있을까?", "이 부분에서는 어떻게 전달해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을까?‘라는 생각 뿐, 다른 잡념은 별로 끼어들지 않는다. - P17

출판번역가 사용 경고문


1. 스스로 스케줄 관리를 못하면 마감 때가 개학날처럼 악몽으로 바뀝니다.
2. 출퇴근을 하지 않고 일하면 남들한테 백수나 백조로 보일 수 있습니다.
3. 만약 집에서 일한다면 식구들이 이것저것 집안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4. 개념 없는 주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서류를 내밀며 번역해달라고 부탁할수 있습니다.
5. 책을 읽어도 내용이 들어오지 않고, 번역이 잘됐는지만 살펴보게 됩니다.
6. 똥배가 나오고 팔다리는 가늘어지는 외계인 체형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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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5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09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민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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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이탈리아어에 대한 애정과 번역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외국어 공부, 특히 번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다. 다중 언어로 읽고 쓰고 사고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라히리의 당당하고 의연한 포부를 느꼈다. 그 반에 반이라도 그 여정을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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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2-26 0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연휴 잘 보내셨나요.
작년에 나온 줌파 라히리 신작이네요. 이 작가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눈이 와서 바깥이 하얀 색입니다.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모나리자 2023-12-27 23:07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 연휴가 금세 지나갔어요.
줌파 라히리의 책을 전부터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제야 만났고
정말 좋았어요.
낮에 영상이긴 해도 아직 눈이 녹지 않고 있네요.
감기조심하시고 행복한 연말연시 보내세요.^^
 
2024 결국은 부동산 - 23인의 멘토가 알려주는 부동산 인사이트
올라잇 칼럼니스트 23인 지음 / 원앤원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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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3인의 경제 멘토가 알려주는 2024년 부동산 트렌드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코로나 시기를 거쳐 요동을 치던 부동산 시장이 요즘 조금 가라앉는 분위기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러다가도 무슨 기사만 뜨면 다시 종잡을 수 없게 요동을 치는 것이 부동산 시장 아닌가 한다. 사실 부동산을 투자할 여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사는 세상의 흐름을 읽어두어야 기회가 왔을 때 활용할 여지도 있지 않나 싶다.

 



이 책 구성은 PART1 2024년에도 부동산밖에 없다 PART2 격변의 시장에서 오는 투자 기회를 잡아라 PART3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투자전략을 세워라 PART4 달라질 미래를 위한 부동산 핵심 공부법으로 되어있다. 저자들의 대표인 김학렬 소장은 2019~2021년의 부동산 광풍의 시기를 언급하면서 2024년 부동산 시장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고 예고하며 싸고 좋은 부동산은 없다. 비쌀수록 좋은 부동산이다.’ 이런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두 사기라며 전문가들의 안목을 참고삼아 자산 증식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맨 처음 이야기는 빠숑 김학렬 소장의 지방시대의 부활, ‘최첨단일자리가 좌우한다! 이다. 서울 경기로 인구가 몰리는 이유는 일자리가 가장 많고 추가 일자리들이 계속 생겨나는 곳이 수도권이기 때문이란다. 평택 고덕과 새롭게 결정된 용인에 삼성 반도체 지구가 들어서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지방 소멸 우려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총 7개의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하고 2042년까지 민간투자 총 613조 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한다. 반도체 외에도 이차전지의 밸류체인인 전북 새만금, 오창 지역의 배터리 생산, 소재 분야는 경북 포항 등 울산광역시에 LFP 전지 생산기반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 갭투자, 짜장면과 치킨 가격 인상을 비교하며 아파트지수를 설명하는 등 돈과 행복의 주제를 얘기하며 돈을 모을수록 행복한 부자가 되는 방법을 얘기한다. 돈과 행복과의 관계는 오랫동안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많을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면에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2024년 바뀌는 청약제도 완벽 분석을 시작으로 재개발, 재건축 투자, 새로운 도시행정 정책으로 변화하는 구도심 투자, 지식산업센터, 관광숙박업 사례로 보는 상가 투자 수익 극대화 방법을 다루고 있다. 이중 바뀌는 청약제도 분석에서는 2자녀도 다자녀 특별공급에 해당된다는 것, 신생아 특별공급이 신설되었고, 소형 저가 주택을 가지고 있어도 특별공급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이 눈에 띈다. 20242월부터 청년 주택드림 청약통장을 신설한다고 한다. 기존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 가입자는 청년 주택드림 청약통장 출시일에 별도의 신청 없이 자동으로 전환되는 게 특징이다. 기존 청약통장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해당 통장에 1년 이상 가입하면 분양가 6억 원 전용 85이하 주택에 당첨됐을 때 최대 40년 만기로 금리는 연 2.2~3.6% 범위 내에 제공되는 청년 주택드림 대출과 연동되는 혜택이 있다.

 



PART3에서는 청약보다는 매수를, 부동산 투자에 필수인 임장활동, 토지로 큰 수익을 얻는 경매 테크닉, 빌딩 투자의 기회, 갓성비 좋은 건물리모델링 방법을 다루고 있다. 청약보다 매수를 권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지금은 공급은 적은데 비싸기까지 하다고 한다. 반값 분양가로 인해 로또청약은 옛말이 되었단다. 비강남권 전용면적 84분양가가 14억 원을 초과하는 등 청약의 매리트가 사라졌다는 말이다. 각 지역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분양소식이 들리면 이웃단지의 가격을 살펴보라고 말한다. 여기에 세 가지 방법이 있는 첫째, 입주장에 산다, 둘째 2급지 중대형을 산다, 셋째 2기 신도시 막바지 청약과 매수를 동시에 고민한다, 이다. 신축아파트를 싸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입주기간 동안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입주하지 못한 매물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달라질 미래에 부동산 핵심 공부법으로 7명의 전문가가 이야기한다. 보상투자의 모든 것, 영종도의 변화와 투자가치 분석, 전세자금대출과 DSR의 관계, 경매 낙찰을 받은 대출, 상급지 갈아타기에 필요한 4가지 절세법, 상속을 대비해야 하는 이유 등 유익하고 알찬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중 상속세에 대한 것을 언급해 볼까 한다. OECD 38개국 중 17개국은 상속세가 없거나 폐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직계 상속에 대해서는 대부분 낮은 상속세를 부과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총 조세수입 중 상속세 및 증여세 비중이 2.42%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으며 무려 5.7배 이상이나 높다고 한다. 상속세 신고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면서 상속 개시일 1개월, 3개월, 9개월 이내에 할 일 등 사전증여가 필요한 중요한 이유 등을 알려준다. 2024년부터 1억 원 더 적용받는 혼인 증여재산 공제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상당히 방대한 분량의 책이지만 23인의 멘토가 특색있는 부동산 투자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으로 2024년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자주 들추어보며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 투자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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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2-25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동산 이야기, 저와 너무 먼 이야기네요. 이런 책도 봐 줘야 하는 건데 말이죠. 즐거운 성탄절 보내십시오.

모나리자 2023-12-25 20:47   좋아요 0 | URL
저도 부동산 관련 책은 오랜만에 읽었어요.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페크님.^^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민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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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를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제목으로 예상했던 내용은 나와 타인 사이를 헤아리고 공감하는 그런 이야기인가 했다. 그런데 번역 그 자체에 대한 얘기였다.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를 사랑하게 되고 2015년에 로마로 이주한다. 매일 그 언어로 말을 하고 새로운 표현에 친숙해지고 새로운 사람과 문화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 그곳으로 이끌었다. 그곳에 도착한 날부터 어떻게든 자주 이탈리아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한다. 과연 외국어를 배우는데 최정석이 아닐까. 그런 여건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이 이야기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번역을 사유한 글들의 묶음이다.

 



이 책에는 열 편의 에세이가 들어있다. 이탈리아어 연설문으로 작성했다는 왜 이탈리아어인가는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글을 쓸 때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았는데 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당혹감과 이탈리아어에 대한 사랑, 이탈리아어를 향한 자신의 꿈과 각오가 들어있다. 그저 이탈리아어를 어떻게 하면 자기의 언어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했지만 왜 이탈리아어를 선택했는지 스스로 질문한 적이 없었던 라히리는 그것을 사유하면서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를 쓰기에 이른다. 물론 이탈리아어로. 라히리는 자유로움을 느끼기 위해서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고 했다. 언급한 이 책에는 세 가지 은유가 담겨 있는데 이탈리아 여성 작가 랄라 로마노와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 덕분이었다. 로마노의 첫 산문집 변신 Le Metamorfost에 나오는 Le Porte이라는 꿈 이야기를 통해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 과정을 사유한다. 인용하고 있는 문장이 너무나 공감되었기에 일부를 언급해 보겠다.

 



문은 아직 열려 있지만 곧 닫힐 참이다. 높고 육중한 한쪽 문짝이 천천히 다른 문짝 위로 떨어진다. 나는 뛰어서 틈을 통과한다. 문 너머에는 첫 번째 것과 똑같은 또 다른 문이 있다. 이 문도 닫히기 일보 직전이고, 이번에도 나는 뛰어서 통과한다. 다음 문이 있고 또 다음 문이 있다. (중략) 문은 하나씩 차례로 나타나는데, 모두 똑같은 문이다. 나는 아직은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부질없다. 항상 또 다른 문이 있을 테니.’(p32)(로마노의 에 나오는 꿈 이야기)

 



하나의 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문이 나오고 끝이 없이 빠져나가야 하는 악몽을 다룬 꿈이다. 이 꿈 이야기를 통해 라히리는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고 글을 써서 책이 나오면 독자라는 을 통과해야 하는 과정을 사유한다.

 



어떤 외국어든 그 언어를 정복하려는 사람은 두 가지 주요한 문을 열어야 한다. 첫째는 독해력, 둘째는 입말이다. 중간에 놓인 더 작은 문들, 이를테면 구문, 문법, 어휘, 의미의 뉘앙스, 발음도 무엇 하나 건너뛸 수 없다. 그것들을 통과하면 비교적 숙달된 수준에 도달한다. 나는 여기서 나아가 감히 글말이라는 제3의 문을 연 것이다.’(p33)

 



두 번째 은유도 랄라 로마노의 마지막 책 최후의 일기 Diario Ultimo를 거의 실명에 가까운 시력으로 유고집을 냈다는데, 자신도 새로운 언어로 글을 쓰는 것이 일종의 실명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이탈리아어를 선택하고 책을 썼지만, 태생적 한계에 대해 독자와 자기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굳이 선택한 이유를 대답하자면 다른 눈을 키워보려고, 취약함을 실험해보려고한다고 라히리는 말한다. 세 번째 은유 접목은 엘레나 페란테의 세 번째 소설 잃어버린 사랑(2019년 번역본 출간됨)을 인용하며 이민 가정의 자녀로서 존재 자체가 아슬아슬한 지리적, 문화적 접목의 결실이라는 점, 글쓰기 주제도 그러한 경험과 트라우마였다. 접목이라는 단어는 줌파 라히리에게 있어 전진하게 해주고 자신의 과거, 시작점, 자신의 궤적을 서술해준다고 했다. 결국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문을 열고, 다르게 보려고, 다른 존재에 접목해 보려는 이유라고 글을 맺는다. 이 한 편의 에세이를 읽으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지적 통찰과 감성이, 그리고 언어에 대한 사랑, 인간의 삶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느껴졌다.

 



이 밖에도 병치는 도메니코 스타르노네의 작품에 발췌문과 서문으로 실린 글이고, 영문으로 쓴 에코 예찬, 기원문에 부치는 송가,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쓴나를 발견하는 곳, 앞서 언급한 스타르네노의 소설 트러스트의 후기인 치환,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이탈리아어 최신 완성판 출간을 기념해 에이나우디출판사와 그람시재단이 주최한 토론회의 발표문인 그람시의 트라두치온, 언어와 언어들, 이국의 칼비노가 들어있다. 모두 라히리의 열정과 진심이 엿보이는 아름다운 글이라 많이 소개하고 싶지만 읽을 독자를 위해 아껴 두려고 한다.

 



에세이마다 라히리의 이탈리아어에 대한 애정과 번역에 대한 사유가 진하게 묻어있다. 이중 그람시의 트라두치온에 대해 잠깐 언급해 보겠다. 이 글을 통해서 이름만 들었던 안토니오 그람시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립하고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서 11년을 살았는데 그 당시 주고받은 편지 일기 등을 읽으며 라히리는 그람시의 삶을 조명하고 번역한다. 맞다. 번역이다. 낱낱이 해부하여 분석하고 해석하고 사유하는 과정은 그가 말하는 번역과 닮았으며 번역 그 자체였다. 이 글은 여러 핵심 단어를 주제로 하여 번역이 지니는 특성을 자신의 해석으로 설명해주는데 라히리가 얼마나 번역에 대해 열정이 있는지, 나아가 다양한 언어에 능통했던 그람시를 향한 오마주라고 할 정도로 그와 그의 인생을 세세하게 되살려낸다. 번역이라는 텍스트를 얼마나 깊이 꿰뚫고 있는지 통찰이 엿보여서 전율이 일었다.

 



처음 읽은 줌파 라히리의 글 정말 좋았다. 이탈리아어를 사랑하게 되고 작품과 작가들과 친밀해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얼마나 언어를 사랑하는지 외국어 공부에 진심인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스타르네노, 안토니오 그람시 등 작가의 작품과 편지글을 읽고 그들과 깊이 교유하는 모습은 한 편의 서정시를 보는 듯했다. 읽은 작품의 훌륭한 서평가였고 독자였고 번역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인간의 삶, 관계를 감지하는 통찰력에 정말 감탄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람시의 트라두치온에서 그람시가 옥중에 있었기에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기에 편지글에서만 살아 움직이는 그람시의 사회적 존재를 번역이라는 텍스트로 사유한 문장이다.

 



번역은 두 텍스트, 개념, 현실, 순간 사이에 맺는 친밀하면서도 불완전한 관계를 암시한다. 그람시의 편지를 읽다 보면, 부인, 어머니, 처형, 형제, 자식을 비롯한 가까운 인물들과 그람시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하면서도 불완전한가를 이해하게 된다. 그람시의 편지를 읽으면서 모든 대인관계가 번역의 한 형태로 읽힐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p157)

 



뱅골어와 영어를 썼던 다섯 살 때부터 이미 언어와 번역의 딜레마를 경험했다는 라히리에게 어쩌면 이탈리아어 공부는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어를 배워서 그 텍스트를 번역하는 것과 그 언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까지도 공부하며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번역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는 줌파 라히리에게 한없는 존경심과 경외감이 들었다. 라히리는 이탈리아어로 읽고 쓰고 살면서 더 주의 깊고 적극적이며 호기심이 많은 독자, 작가, 사람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없는 세상에서 살거나 글을 쓰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당당하고 결연하게 나아가는 줌파 라히히를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일본어 번역에 뜻을 두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고 있는데 나는 이만큼 번역에 진심이 있는지 자문해 보았다. 공부하는 여정에서 내게 커다란 힘이 되어줄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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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2-25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 님이 흥미롭게 읽었을 책 같군요.ㅋ

모나리자 2023-12-25 20:4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줌파 라히리가 언어공부와 번역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게 되었어요.
12월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편안한 한 주 보내세요. 페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