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문장 수업 - 좋은 문장을 만드는 핵심 코드 177
이병갑 지음 / 학민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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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저자는 30년간 신문사에서 교열 작업에만 매달려 온 베테랑 교열 전문가다. 평소 업무 중에 발견한 비문, 악문 등을 177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번역 수업의 스터디 교재인 데다 글쓰기에 도움 될 만한 내용이 많아서 소장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한국어는 어미가 발달한 언어라서 무궁무진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국어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저자의 저서로는 중국역사사전, 공저서로 올바른 기사문장론등 다수 있다. 아울러 이 책 내용 중 절반가량은 올바른 기사문장론에 실려있는 내용이고, 일반인들도 접할 수 있도록 분량을 추가하여 재구성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1. 단어, 구 절의 나열 2, 문장 성분의 호응 3. 문장의 연결 4. 조사의 특성 5. 연결어미의 쓰임 6. 수식 구조 7. 부사어의 쓰임 8. 시제, , 부정 표현 9. 단어, 문장 성분의 생략 10. 겹말, 중복, 군더더기 11. 의미적인 것들 12. 기타 이렇게 총 12개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소제목의 내용에서는 하나의 문장을 제시하며 왜 어색한지 또는 왜 비문이 되는지 예를 들며 설명을 한다. 그리고 나아가 더 알아보기코너를 두어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게 하였다.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해 보겠다.

 



같은 조사끼리


그 식당은 맛도 있고 값이 싸다.

냉장고에 사과며 배가 잔뜩 들어 있다.


1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다. 저자는 임도 보고 뽕도 딴다라는 관용 표현을 언급하며 설명한다. 이것을 임도 보고 뽕을 딴다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번 제시문처럼 맛도 있고 값도 싸다식으로 형 문장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2번 문장도 형 문장에 비해 덜 선호된다고 한다. ‘냉장고에 사과며 배며 먹을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애초에 다른 것은 없고 사과와 배만 들어 있다면 대신 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만들어 주면 된다.

 


->냉장고에 사과와 배가 잔뜩 들어 있다.

->냉장고에 사과, 배 등이 잔뜩 들어 있다.

다르고 다르다는 말이 있다. 고작 조사 하나에 따라 의미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 덕분에 알았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한국어는 연결어미가 특히 발달한 언어라고 한다. 어떤 연결어미를 쓰느냐에 따라 문장의 호응을 이루기도 하고 비문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는 연결어미를 다루는 예시를 하나 소개해 보겠다.

 


앞뒤 절의 주어를 같게 하는 ‘-려다’, ‘-려고

 

제시문: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려다 사람들이 만류했다.

 

위의 소제목에도 나와 있지만, 연결어미 ‘-()려다는 앞뒤 절의 주어가 같을 때 쓴다. ‘철수가 울려다 영희가 웃었다라는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 것은 앞뒤 절의 주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려고도 마찬가지여서 철수가 물을 먹으려고 영희가 도와주었다식의 표현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고쳐야 할까.

 


->1.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려는데 주변 사람들이 만류했다. (주어를 달리한 경우)

->2.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려다 주변 사람들이 만류해서 못했다. (주어를 같게 한 경우)

 


위 바꾼 문장을 보면 1번은 앞뒤 절의 주어가 달라도 되는 연결어미 ‘-ㄴ데를 사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2번처럼 뒤 절의 서술어가 앞 절의 주어와 호응이 되도록 고치는 것이다.

 



번역 수업에서는 국어 공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실제로 번역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전은 어미 사전일 정도로 중요하단다. 한국어는 연결어미가 발달한 언어라는 것을 방증해 주는 듯하다. 사실 우리는 모국어로 한국어를 말하고 글을 써왔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어떤 문장이 올바른지 어색한지 알 수 있다. 오히려 체계적으로 정리된 방대한 분량의 책을 대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읽어보니 기우였다. 과연 베테랑 교열 전문가답게 다양한 제시문을 들며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술술 읽힌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아주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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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3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25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결코, 배불리 먹지 말 것 - 성공과 행복을 이루고 싶다면! 세기의 책들 20선, 천년의 지혜 시리즈 경제경영 편 4
미즈노 남보쿠 지음, 서진 엮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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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의 책 소개를 듣다 알게 된 책이다. 무엇보다 출간된 지 2백 년이 넘었고, 음식에 길흉화복이 있다는 메시지에 호기심이 생겨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400쇄를 돌파한 돈의 속성김승호 저자님이 적극 추천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단다. 저자인 미즈노남보쿠는 18세기 이름을 떨친 명성가로 3천 명의 제자가 있었고, 당시 평균 수명이 40대 중반이었던 시대에 78세까지 장수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관상으로 대단한 위상을 떨치며 벼슬에 올랐으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요한 한 가지 핵심을 전파하고 가르치는데 거의 전 생애를 바쳤다. 그 핵심은 음식을 먹는 일에서 절제를 가장 기본적인 본질이라고 하며 그것을 실천할 때 행복과 장수, 번영과 성공이 따른다고 주장한다.

 



111쪽의 얇은 분량이라 앉은 자리에서 금세 읽을 수 있다. 경어체로 되어있고 삽화와 여백이 많아서 읽기 수월 하지만 내용은 되새겨 읽어야 할 만큼 울림을 준다. 저자는 오랫동안 관상을 보는 직업을 갖고 살았는데 인간의 길흉화복이 음식에 있다는 것을 늦게 알았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음식을 먹는 일에서 절제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몸을 혹사하지 않는 정도의 음식을 먹는 것’(p21)이라고 말한다. 요즘처럼 먹거리가 넘치는 세상에 음식을 절제하라고 하다니, 이게 무슨 서운한 얘기인가 사람도 있겠다. 먹는 즐거움을 무시할 수 없으니 말이다. 저자는 육체 노동자처럼 몸을 많이 쓰는 사람인가, 몸의 크기나 기운의 많고 적음, 약함에 따라 식사량도 달라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세상에 태어나면 각자의 몫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다. 예전에 어른들 말씀 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제 먹을 것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떠오른다.

 



음식은 생명의 원천이며 생명은 음식에 달렸다는 말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런데 어떻게 행운과 불운이 모두 음식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걸까. 타고난 기질과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음식의 양보다 적은 양을 먹는 것이 바로 운명을 갈고 닦는 일이라고 한다. 소식하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건강한 사람이 병약한 사람보다는 선택의 자유가 있고 성공과 행복을 누릴 혜택이 큰지도 모른다. 여기서 절제란 적게 먹는 것 외에도 규칙적인 식사를 포함한다고 말한다.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보다 적게 사용하고

아껴 사용하며 적게 먹는 절제에서만

성공과 발전과 지복이 흐르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사람이 고귀해지기도 하고 천하게 되기도 하는 것은

모두 음식을 절제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p37)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먹거리도 그렇지만 물건도 넘친다. 충동구매를 하거나 싸니까 사지 않으면 왠지 손해라는 생각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기도 한다. 버려지는 음식, 버려지는 물건들을 생각하면 정말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음식을 모두 소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자손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즉 과하게 먹는 것은 그 은혜를 줄이고 줄여서 결국에는 가난하게 되는 거라고 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과하게 먹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오히려 인명을 해치는 일입니다.’(p51)

 

이렇듯 귀하게 제공되는 물건들을 낭비하고

쓸데없는 비난과 원망을 마음에 품어 두고

음식까지 함부로 먹어왔으니

아무리 인품이 좋아도 천리(天理)에 어긋나는

일을 해 온 것입니다.’(p62)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농부들이 오곡을 공급해주고 장인들은 여러 도구를 만들어 준다. 상인들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제공한다. 이렇게 하늘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지켜주고 있으니 감사함으로 살아야 하며 함부로 낭비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그러므로 현세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무엇이든 낭비하지 않고 음덕을 쌓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부처가 되는 것, 즉 자신을 구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행동하지 않고는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p83)

 



2백 년도 더 된 책이지만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보아도 현대인들이 얼마나 무절제하게 살아가는지 돌아보게 한다. 제때 관리하지 못해서 버려지는 음식물과 물건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절제는 음식 먹는 일에도 필요하지만, 좋은 에너지가 흐르는 공간을 갖추는데도 마찬가지겠다. 이 책을 통해서 가볍게 사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 보았다. 건강은 물론 행복과 성공에도 이를 수 있다는 절제에 대한 메시지를 깊이 명심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 보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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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2-15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안녕하세요 저도 이 저자의 책을 읽은 적 있습니다 ‘소식주의자‘라는 제목인데 아마 비슷한 내용일 듯합니다 ... 이 달도 이제 반이 넘어가네요 새해 복 또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모나리자 2024-02-15 15:42   좋아요 2 | URL
와, 오래전에 읽으셨군요. 정말 얇은 책이라 금세 앉은 자리에서 읽었습니다.
네, 너무 시간이 빨리 지나가네요. 서곡님도 올 한해 건강하시고 복도 많이 받으세요.^^
 
취미로 직업을 삼다 - 85세 번역가 김욱의 생존분투기
김욱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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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도 힘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모처럼 일주일 동안 휴강이라 책을 읽는 호사를 누렸다. 이 책의 저자인 김욱 번역가는 몇 년 전 김애리의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를 읽고 나서 알았다. 나이 일흔에 번역가가 되었다는 것과 30년 기자 생활을 하다가 은퇴 후 보증을 잘못 서서 쫄딱 망했다는 사연 정도만 알고 있었다. 얇은 분량에 내 책 판형보다 더 작은 이 책에 저자의 묵직한 인생이 들어있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문학에 관심이 많아 고교에 입학하자마자 문학동인회를 만드는 등 대학에서도 국문학을 전공했단다. 문학지 신인 작품 모집에 응모하여 1차 예심에 합격하고 2차 심사만 남겨둔 어느 날, 6.25 전쟁이 터졌다. 그 후로는 이북에 끌려갔다가 2개월 만에 죽기 살기로 도망쳐왔고, 생업을 위해 신문 기자가 되어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에서 30년 동안 일했다. 그리고 은퇴 후 그의 인생은 급변하여 거센 풍랑을 만난다. 고통스러운 인생 이야기를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고 재미있게 쓰셨는지. 인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 존재인가. 웃다 울다 가슴 찡한 먹먹한 감동에 뭉클해지기도 했다.

 


번역 공부를 하는 중인 나로서는 어떻게 김욱 할아버지가 번역가가 되셨는지 제일 궁금했다. 1930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일본어를 강제로 공부해야 하는 시절이어서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15세에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고 기자 생활 30년을 했으니 글밥을 먹는 인생을 사셨다. 그렇다고 해도 학창 시절 배운 일본어로 번역가가 된다는 건 다른 문제다. 하지만 김욱 번역가는 어렸을 때부터 외우다시피 읽었던 책들이라 번역이 아니라 독후감 쓰듯 술술 글이 나왔단다. 일흔이라는 나이에 어느 날 뚝딱 하고 번역가가 된 게 아니었다. 꿈을 향한 열정과 꾸준함이 낸 성과였다. 공부의 쓸모란 정말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95세에 일어 번역가를 은퇴하고 나서 새롭게 중국어를 공부한 다음 백열 살쯤에는 루쉰의 명작 광인 일기를 번역하고 싶다던 김욱 할아버지의 도전 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이가 많다, 여건이 안 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날마다 과제가 있고 마감 시간을 지켜야 하는 다소 벅찬 번역 수업을 수행하면서 괜히 사서 고생하는 건가,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잠깐 이런 고민을 하던 나는 큰 힘을 얻었다. 그리고 역시 시작하길 잘했다고 스스로 뿌듯해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열심히 번역에 몰두하고 일을 마치면 점심시간이란다. 남들이 한창 일할 시간에 여유롭게 서점에 나가 책을 고르거나 산책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번역가의 삶을 엿보며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나이 여든이 되어서도 번역에 열중하고 있는 인생이란 멋지겠다. 적어도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일 테니까.

 


김욱 번역가의 인생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무엇을 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걸 상기해준다. 번듯한 기자 생활을 하다가 남의 가문 묘막 살이를 하는 등 혹독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어렸을 적 꿈을 간직하고 있다가 일흔에 번역가가 되고 작가도 되었다.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독자들에게 큰 용기를 줄 만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인상적인 몇 대목을 인용하며 리뷰를 마치려 한다.

 


묘막에 기거하던 어느 날, 하릴없이 백과사전을 뒤지며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바그너가 소개된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고, 히틀러와 니체가 우상처럼 섬겼던 대작곡가가 현재의 나와 비슷한 나이에 빚에 쫓겨 감방을 드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중략)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바그너보다는 형편이 좋은 것 아닌가.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내보자면 감방을 들락거리던 바그너도 예순아홉 나이에 필생의 역작인 파르지팔을 완성하고 대성공을 거두었다.’(p46~47)

 


찰스 스트릭랜드도 포기하며 살았을 것이고, 폴 고갱도 포기하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 또한 포기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찰스 스트릭랜드는 찾아냈고, 폴 고갱도 결국에는 찾아냈다. 남은 것은 우리들이다. 찾아내려고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 늘 마음 한구석에 미련이 남고, 궁금하고, 흥분되는 뭔가가 있었지만, 바쁘니까, 누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늙었으니까 나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부정해온 만큼, 핑계를 찾아낸 만큼, 게으름을 피운 만큼, 빈둥거리며 가는 시간만 재고 앉았던 수고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하고, 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서두르고, 뭔가를 붙들려고 노력한 시간들이 쌓였더라면 지금과 같은 후회스런 모습은 결단코 되지 않았으리라.’(p123~124)

 


그런데 사람들은 해보지도 않고 못하겠다며 물러난다. 여든이 넘은 늙은이도 해내는 판에 나보다 훨씬 어린 것들이, 건장한 것들이, 힘이 있는 것들이, 능력이 있는 것들이 못하겠다며 우는 소리를 해댄다.’(p135)

 


막다른 골목은 절대로 나쁜 의미가 아니다. 여기보다 재미난 놀이터는 없다. 길이 끊긴 벽 앞에서 어떻게 해야 이 벽이 부서질까를 고민하는 것처럼 즐거울 때가 없다. 나를 가로막는 벽이 없고 사방이 뻥 뚫려 있는 것이야말로 곤란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갈피를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누가 나를 아프게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아프게 만드는 것이다. 누가 나를 때리기 전에 내가 먼저 모나게 구는 것이다. 자처하는 삶이자, 선점하는 인생이다.’(p156~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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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을 앞두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젊어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내가 대처하지 못한 방향으로 끌려갔다.
이제 내 삶은 길지 않다. 더는 끌려가고 싶지 않다. 세상이 어디로 가든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야겠다. 세상이라는 곳을 보이는 대로 납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 나름으로 파악해야겠다.‘  - P11

아내가 그토록 아끼던 미제 웨스팅하우스 냉장고를 고물상에 넘기면서 돈대신 짐 몇 개만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차두 대로 내 손으로 지어 올린 집을 떠나 묘막으로향했다. 내 평생 잊지 못할 그날이 이제는 나를 벗어나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된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시 이런 날이 올 줄은 인생은아무도 모른다. - P49

 그래서 그것이 불가능해졌을 때 우리는극복하려는 시도조차 생각해내지 못한다. 절박한간절함은 그것을 가능케 한다. 간절함은 계기를통해 만들어진다. 다행히 우리에겐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충분하다. - P63


울고 있는 야누스의 얼굴 뒤에는 웃고 있는 얼굴이 기다리고 있다. 10년 전의 나는 그것을 알지못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들 깨닫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또 1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내며 어떻게든 앞으로 한 발 내디뎠을 것이다. 그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 P70


찰스 스트릭랜드도 포기하며 살았을 것이고,
폴 고갱도 포기하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 또한 포기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찰스 스트릭랜드는 찾아냈고, 폴 고갱도 결국에는 찾아냈다. 남은 것은 우리들이다. 찾아내려고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
늘 마음 한구석에 미련이 남고, 궁금하고, 흥분되는 뭔가가 있었지만, 바쁘니까, 누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늙었으니까 나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부정해온 만큼, 핑계를 찾아낸 만큼, 게으름을 피운 만큼, 빈둥거리며 가는 - P123

시간만 재고 앉았던 수고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긍정하고, 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서두르고, 뭔가를 붙들려고 노력한 시간들이 쌓였더라면 지금과같은 후회스런 모습은 결단코 되지 않았으리라. - P124


그런데 사람들은 해보지도 않고 못하겠다며 물러난다. 여든이 넘은 늙은이도 해내는 판에 나보다 훨씬 어린 것들이, 건장한 것들이, 힘이 있는 것들이, 능력이 있는 것들이 못하겠다며 우는 소리를 해댄다.
- P135


남보다 한 발 앞서 행복해지기를 꿈꾸기 전에남보다 한 발 앞서 상처에 도달하기를 꿈꾼다. 남보다 하나라도 더 가지기를 계획하기 전에 남보다하나 더 실패하기를 계획한다. 이런 나를 아프게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세상이 이런 나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없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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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바닥을 통해 조금씩 올라오는 아래층의 온기가 전부라서 그는 해진 퀼트 이불과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자칫 책장이 찢어지지 않게 곱은 손을 후후 불어가며 책장을 넘겼다.
그는 대학 공부도 농장 일을 도울 때처럼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이 철저하게, 양심적으로 했다.  - P16

하지만 필수과목인 영문학 개론은 그에게 생전 처음 느끼는 고민과 고뇌를 안겨주었다.
강의를 맡은 아처 슬론 교수는 50대 초반의 중년남자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얕보고 경멸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커서그 간격을 좁히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 P18

그는 영문학 개론 강의를 다른 강의들처럼 대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저자들의 이름과 작품, 연대와 영향력 등을 모두 외웠는데도그는 첫 번째 시험에서 거의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두 번째 시험결과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교수가 숙제로 내준작품들을 읽고 또 읽었다. 어찌나 많이 읽었는지 다른 강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가 책에서 읽는 단어들은그냥 단어일 뿐, 자신이 책을 읽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 P19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그는 슬론에게서 시선을 떼어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빛이 동료 학생들의 얼굴에 안착해서, 마치 그들의 안에서 나온 빛이 어둠에 맞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 P22

그해 2학기에 윌리엄 스토너는 기초교양 강의들을 빼버리고, 농과대 커리큘럼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 철학과 고대역사의 기초강의한 개씩과 영문학 강의 두 개를 들었다. 여름에 그는 다시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했지만 대학에서 어떤공부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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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1-28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정독해서인지 올려 주신 글들이 다 생각납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설입니다.ㅋㅋ

모나리자 2024-02-15 15:30   좋아요 0 | URL
댓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ㅜ 정신없이 보내고 있네요.
그래서 이 책도 더 이상 진도를 못내고 있어요..
많이 읽지 못했지만 흥미로운 소설인 것 같아요.
벌써 2월이 반도 더 지났네요. 잘 보내고 계시겠죠. 페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