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지
천천히 기울어가는 하루 또 일년
쏟아지는 햇살에 말라버린 풀처럼
더디 타버린 마음

우리 이제 그만 접을까
많이 버텼으니까
더 참다가 속마음을 들키고 무너지면
나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차라리 투정 부리는게 나을지도 몰라
희미해져가는 날들을 붙잡는게 삶이라면
올해는

브로콜리너마저, <2020> - P73

어떤 문장은 뜻을 뒤집어 표현했을 때 별 의미 없는 말이된다. ‘아, 이 문장은 아무 말이나 그냥 갖다 붙인 것이구나‘
하고 깨닫기도 한다. 어떤 문장은 표현을 달리해도 본래 의미가 변하지 않아서 같은 생각의 다른 버전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정한 말인 줄 알았는데 아주 슬픈 말이 되기도 하는 위로의 메시지를 쓰다 보면 항상 그렇다. 곰곰이 따져보면 결국 거짓말이 되거나 말하기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정말 다괜찮아지는 걸까?‘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줄 수 있나?‘ 하는 질문을 참아내기란 쉽지 않다. - P76

결론적으로 ‘대충 하는 것‘을 올해의 목표로 삼았다. 정 - P84

확히 말하자면 ‘대충‘보다는 ‘하는 것에 방점이 찍히지만 말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고, 또 잘하고 싶은 마음에 항상 속으로만 분주한 날이 많았다. 올해는 일단대충 하자고 마음먹고 몸을 분주하게 움직이려고 한다. 그렇게 일단 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나면 언젠가는 ‘대충‘을 떼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누군들 잘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조바심 갖지는 않으려고 한다. 하기도 전에 대충을떼고 싶어 하는 순간, 무언가를 시작하기 어려워지는 게 아닐까 해서. - P85

음악을 본격적으로 할 생각으로 발표했던 밴드의 첫 번째 정규 앨범 제목은 「보편적인 노래」다. 지금 와서 보면 무슨 용기로 지었을까 싶은 제목이지만, 한편으로는 음악을 하며 언젠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을 이야기해주는 앨범 - P92

명 같다. 앞으로 어떤 노래를 더 만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만들어진, 앞으로 만들어질 노래들에 물을 주듯이 살고 싶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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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내게 고통만 주는 무능한 유태인 노인네보다는 더 나은 가정을 택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로자 아줌마가 그런 상태로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로자 아줌마가 개였다면, 진작에 사람들이안락사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사람에게보다 개에게 더 친절한 탓에 사람이 고통없이 죽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나딘 양 - 나중에 그녀가 자기 이름이나딘이라고 가르쳐주었다 - 을 따라간 것이 로자 아줌마가 혼자서 조용히 죽기를 바라서 그런 것이라고 오해하는 일이 있어서는안 되기 때문이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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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자유를 찾으려면 스스로를 책임지고 제대로 돌볼줄 아는 애티튜드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잊거나, 자신을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면 안 된다. 의식하고 산다는 건 깨어있다는 말이다. 자신에게 솔직하기. 어떤 행위의 한가운데서도 나의 자유를 생각할 것. 그리고 여기에 적절한 여유도 추가하기. 이 정신의 자유를 찾는 여정이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이다. - P11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건 바로 체면의 필요성을 거부하는 일과도 같다. 체면의 옷을 벗어 버려야 생산적이고 유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늦었지만 이제라도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외면과 내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나만의 입문 과정을 만들어 공부하는 일만 남았다. 늙음과 늦음은 왜 함께 다니는지, - P24

우리는 태생부터 모두 다른 얼굴로 태어난다. 다른 사람과 같아지지 않아도 된다. 능력에 한계를 둘 필요도 없다. 내 능력의 한계는 내가 정하는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나이 들어 가는 나날들에 나의 모든 존재가 들어 있다. 자기답게 살 수 있는 시간, 자신이 되고 싶은 존재로 커 나갈 수 있는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더 늘어난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를 가 본 적 없는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주는 존재이므로 일단 기대해 보는 걸로.

죽음은 우리를 삶에서 떼어 놓는 게 아니라
삶 속에 섞어 넣는 것. - P37

이미 저물었지만 할 일이 많이 남았다면 아직 괜찮다는 뜻이다. 하루가 다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할 일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다. 용기 있는 사람들은 인생의 어느 시기에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런데 혼자만 하면 재미가 없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 그리고 아끼는 사람들에게만 시간을 내주고 싶다. 시간은 모든 것이므로,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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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적 주체를 지향하는 서구의 개인주의는 타인으로부터의 독립이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러나 한국식 개인주의는 끊임없는 노출을 매개로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받고, 증명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타자 의존적 존재입니다. - P331

인정받지 못해 붕괴하는 자아를 지키기 위해 한국인이 필사적으로 소환하는 무기가 있습니다. ‘피해자 서사‘입니다. 내면이 공허한 사람은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습니다. 대신 외부의 적을 만들어냅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세상이 잘못되어서 억울하게 당한 것이다!‘라고 믿어버리는 겁니다. 피해자가 되는 순간, 마음은 놀라울 정도로 편안해집니다. 피해자는 약하지만, 도덕적으로는 옳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정체성victimhood identity‘이란 ‘피해자는 언제나 옳다!‘라는 서사를 동원합니다. 성취를 통해 얻지 못한 인정을, ‘억울함‘을 통해 얻으려는 슬픈 보상 심리, 이것이 바로 속도전에 지친 한국인이 자신의 공허를 메우는 방식입니다. - P332

억울함이 도덕적 확신과 결합하면, 사건의 복잡한 맥락은 아주 쉽게 이분법 서사로 단순화됩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놈‘
의 책임 분배는 과잉 명료화되고, 구조적 문제와 상호작용의 회색지대는 시야 밖으로 밀려납니다. 모든 경계는 본질적으로 회색이지만, 피해자 서사로 인해 아주 굵고 간단한 선이 그 경계에 그어집니다. 피해자 정체성이 반복되면,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경쟁적 피해 서사 속에서 소모됩니다. ‘누가 더 큰 피해자인가‘를. 경쟁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때 유행했던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가 바로 그 구체적 사례입니다. 각종 SNS가 난무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증폭된 억울함은 공감의 속도를 높이기도 하지만, 전후 맥락을 파악하며 사실을 검증하고 숙고하는 시간을 압축해버립니다. 억울함의 에너지는 변화의 촉진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회적 양극화와 도덕적 과열을 심화시키는 역설을 낳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한국사회에 곧 닥쳐올 미래입니다. - P337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 ‘잘못된 믿음(틀린추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보이는 세계 reality‘
에서 ‘해석된 세계 representation ‘로의 전환이 이뤄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눈앞에 펼쳐진 물리적 사실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믿던 ‘실재론realism‘을 부수고 나오는 사건입니다. 아이는 내 머릿속의 정보와 타인의 머릿속 정보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고, 타인의 행동이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그가 믿고 있는 ‘주관적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약 4세부터 그런 능력이 생긴다는 겁니다. 위머와 페르너의 실험은 인간이 타인을 ‘움직이는 사물‘이 아닌 ‘마음을 가진 주체‘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탄생의 순간을 포착해낸 것입니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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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래는 날개를 달고
적은 몸짓으로 높이 오르지만
내가 불러주는 만큼만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이름도 있죠

브로콜리너마저,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 - P5

붙들고 있던 게 사라질까봐
다듬고 다듬어도 모자랐죠.
말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었을까요.

마음속에 간직했던 생각들을
꺼내지도 못한 채로
아무것도 쓰지 못한 사람이 되어
헤매고 있었죠.

이젠

열심히 조금 대충 쓰는 사람이 될래요. - P11

내가 쓴 글은 대부분 요점만 반복한다. 이렇게 저렇게 길게 써보지만 사실 처음 생각을 정리하면서 한 줄로 썼을 때 가장 좋아 보인다. 이것은 한 문장에 모든 것을 담는 가사를 주로 써온 나의 경험에서 비롯했을 수도 있겠다. 다양한직간접적인 경험을 잘 녹여내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뭔가더 써보려고 하다가 비루한 속을 들키지 않게 조심하는 심정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 화면에 글이 한 줄 한 줄 늘어날수록 내용은 더 얄팍해지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잘 쓰고자 하는 마음이 클수록 내 글은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었다. - P34

새로 산 노트북은 구입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백스페이스가 반질반질하다. 그래서일까, 자판을 거쳐서 나온 - P40

문장은 내가 실제로 망설이고 돌아간 길이 아니라 내비게이션의 최단 거리를 알려주는 것 같다. 더 오래 많이 쓰기 위해서는 단어들 사이의 방황과 실패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물론 노트를 쓴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 P41

다시 영화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상상해본다. 집중한 상태로 조용히 손목을 올려 음성 메모를 하고 잠들기 전 다시 들어본 음성 메모에서 단서를 건져내는 해준의 모습을 하지만 단호한 음성으로 핵심을 바로 메모할 수 있다면, 구닥다리 형사 수첩으로도 같은 수준의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해준이 서래(탕웨이 분)의 말을 이해하는 데 영화의 후반을 전부 소모했듯이, 어떤 메모는 쓰는 과정보다 읽는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해준은 형사로서 능숙하게 메모했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서는 그러지 못했다.
노래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나는 어떠한지? 일단 애플워치를 구입할 계획은 보류해두었다. - P54

그래서 너무 고민하고 걱정하지 않았으면 해.

그냥 밥 잘 먹고 잠 잘 자기만 해도 돼. 눈앞에 놓인 일들하나씩 하면서, 나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항상 어떻게 하는게 정답일까, 지금 나는 똑바로 하고 있는가, 걱정했지만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은 그냥 살아가는데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지금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모든 게 불투명해도 이 순간을어떻게든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캄캄해서 앞도 보이지 않던 새벽에 올랐던 산길처럼 막막해도 걷다 보면 땀이날 거야. 해가 밝을 때쯤이면 어느새 정상이 가까워졌다는 걸 느끼게 될걸?

그냥 걸어가다 보면 잊히는 것도 있어. 아름다운 풍경도또다시 나타날 거야.

「바른생활」 소개문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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