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인문학 수업 : 전진 - 일상의 시간에서 세상 밖으로 다시 나아가기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부터 문사철로 거론되는 인문학의 인기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때 인문학에 해당하는 과목을 대학에서도 소홀하게 여기면서 강좌를 줄이는 등 그 폐해에 대해서 분분했던 적이 무색할 만큼 인문학의 열풍은 이전보다 더 뜨겁다. 기업의 CEO 등을 비롯한 부유층일수록 고가의 인문학 강좌에 시간을 투자하는 경우도 많고,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의 통계자료에서도 인문학 분야의 전공자일수록 고소득자의 리스트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을 출간한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한다. 빡빡한 삶에 지친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통해 자기성찰과 치유의 기회도 갖고 인문학에 대한 지적 갈증의 해소 등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2013년부터 서울경제신문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인문학 아카데미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을 바탕으로 새로 쓰고 다듬었다고 한다.

 

 강의내용은 1. 문학과 문장 2. 건축과 공간 3. 클래식과 의식 4. 융합과 이상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이것은 다시 한 PART당 세 개의 강의가 들어 있고 각 강의의 글쓴이는 다르다. 문학, 건축, 음악, 역사, 미술, 문화, 고전, 과학, 사회에 걸친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음에도 하루에 짧은 호흡으로 소화할 수 있어서 부담이 없다. 느리게 음미하듯이 읽어도 좋겠다. 하지만 각 분야의 강의 내용이 재미있어서 제법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나의 경우엔 첫 번째 파트의 문학과 문장에서 다룬 여러 문학작품 이야기와 3강의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가 좋았다. 역시 스토리텔링의 시대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한다. 말과 글이 삶을 바꾼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마음을 다잡는 글쓰기의 기술까지 친절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막히는 글쓰기의 상황에 부딪혔을 때 도망갈 수 없도록 첫 문장을 쓰는 방법을 제시하고 쓴 글은 계속해서 읽고 고치는 것을 반복하라고 한다. 퇴고를 통해서 훌륭한 작가일수록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진다는 것을 경험한다고 한다. 믿음을 가지고 반복해서 오래 해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 잘하는 일이 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건축과 공간 이야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재밌었다. 앞으로는 어떤 건축물의 공간에 들어가면 느낌이 다를 것 같다. 유럽의 광장과 도시의 역사는 흥미로웠다. 같은 유럽이라고 해도 런던과 파리의 건축양식이 다르듯이 그 곳 특유의 분위기에 맞는 조화로움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하게끔 한다. 그런가하면 19세기 건축사에서 빠질 수 없는 에펠탑은 도시의 흉물이라는 비난에 철거 대상이 될 뻔했지만 지금은 파리의 랜드마크이자 관광객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역할을 하고 있다니 의도치 않은 반전이다. 또 근대건축발전에 이바지한 르코르뷔지에,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등 거장들의 건축을 대하는 철학과 태도를 알 수 있었다. 이름난 성당 등 위대한 건축물이나 조형물이 예사로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심사숙고한 그들의 혼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직접 보게 된다면 감동과 경이로움으로 벅찰 것 같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너무 획일화된 주택이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도시공간이 너무 삭막하지 않나 떠올려보게 했다. 건축이란 정형화된 외관만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문화적 산물로 정신적인 양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217 스캔 사진. 파리 노트르담 교회)

 QR코드를 스캔하면 아름다운 건축물의 실물을 볼 수 있어 이해를 돕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의 심장인 서울의 건축문화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점도 유용했다. 궁궐 문지기에서 재상의 반열에 오른 박자청의 뛰어난 능력과 장인정신으로 탄생한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룰 줄은 그 누가 알았을까. 노래로만 듣던 장충단 공원도 역사의 한가운데를 건너온 산물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세 번째의 클래식과 의식에서는 클래식과 문학이 상상력의 만남으로 어우러진 풍성한 문화의 확대를 보여준다. 괴테의 <파우스트>, 세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빅토르 위고 등의 작품이 음악가들의 영감과 상상력으로 오페라로 탄생하여 더욱 폭넓은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음악을 듣고 살아갈까. 경쟁사회에서 감정마저 경화되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바쁘다는 핑계로 점점 삭막해져가는 이 시대에 의도적으로라도 음악을 듣고 시를 한 편 읽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을 것 같다. 여기에도 QR코드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함께 들으면 좋은 음악의 정보를 알려주고 있어서 음악적 감성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오래되어야 좋은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오래되고도 아름다운 것은 결국 내면의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적막과 고독, 비움을 이겨내고 그 속에서 사유의 결과로 탄생하는 예술을 이야기하는 8강도 좋았다. 소멸하는 것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동아시아적 사고 대순환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유한한 삶을 어떻게 좀 더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게 한다. 바로 이어지는 9강에서는 시간이 만든 완성품, 와인이나 명품이 탄생하게 된 스토리가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적 배경에 녹아들어 있다. 인간의 욕망에 파고들어 신비주의 스토리텔링으로 성장한 장인들의 명품 브랜드는 오늘날에는 더욱 상업화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또 잔 다르크의 전설이 얽힌 백년전쟁이 결국은 포도밭을 되찾기 위한 프랑스와 영국의 영토분쟁이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듯 음악, 문학, 식품 등 분야는 달라도 역사와 전통속에서 빚어내는 스토리텔링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네 번째 장의 마지막 12강 제4의 물결 편은 영국혁명을 시작으로 프랑스대혁명 등 세계의 굵직한 혁명과 우리의 촛불 혁명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조각조각 알고 있거나 잘 몰랐던 혁명사에 관해 짧은 챕터지만 상세하고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한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문학작품을 읽어내는데도 좋은 배경지식이 될 것이다. 8만여 명이 수강한 인기 강연 프로그램을 재구성한 <퇴근길 인문학 수업>은 인문학적 지식과 사고에 목말랐던 갈증을 채워주는데 훌륭한 강의가 되리라 믿는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이 있는 저녁 - 동양철학 50 철학이 있는 저녁
리샤오둥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래타임즈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이룬 물질문명 덕분에 현대인들의 생활이 옛날보다는 훨씬 편리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등으로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 행복과 성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에서 경쟁은 필수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체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앞날에 대한 희망과 마음에 위안을 주는 글과 책을 찾게 된다. 동양철학자 50인의 이야기를 다룬 <철학이 있는 저녁>은 표지부터 마음에 들었다. 부드러운 저녁 햇볕의 그림자가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아침에는 세상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하고 저녁에는 하루를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보자고 하는 듯이.


 공자와 맹자를 비롯하여 50인의 철학자, 사상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잘 몰랐던 인물들이 꽤 많았다. 2,500년 전에 살았던 인물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기적 폭도 상당히 넓다. 그동안 역사소설이나 역사서를 통해서 시대적 상황과 인물에 얽힌 이야기로 조금씩 철학을 접해왔다. 이 책에서는 한 인물에 대해 짧은 이야기로 구성하여 속도감 있게 읽히고 재미있다.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읽고 싶은 부분을 먼저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잘 알려진 유가 사상, 도가, 법가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괜찮았지만 이학, 심학 등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다행히 한 꼭지의 글 뒤에는 철학적 사색거리가 있어서 오늘날 현재 상황과 견주어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하고 내용의 이해를 도와준다. 수천 년이나 된 이야기가 오늘날의 삶에 적용하는데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선인들의 삶의 궤적과 사상이 얼마나 심오한지 짐작할 수 있다.


불행은 행운이 기대는 곳이고, 행운은 불행이 숨는 곳이다.”(P18)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이며 노자의 변증법 사상을 대표하는 명제라고 할 수 있다. 고사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는 이 명제에 대한 좋은 사례의 이야기다. 영원한 불행도 영원한 행복도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좋지 않은 상황을 만났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행운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차분한 마음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깨우쳐준다. 모든 것은 곧 지나가며 변화하기 마련이라는 것, 행운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아주 가까운 것이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P63)


장자는 저것은 이것 때문에 생겨나고, 이것은 저것 때문에 생겨난다. 저것과 이것은 상대적으로 생겨난다는 말이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가능한 것이 있기에 불가능한 것이 있으며, 불가능한 것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있다. 옳음이 있으면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으면 옳음이 있다.”(P63~64)-장자의 장자제물론-


 ‘장자의 나비 꿈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한데, 여기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이렇게 대립되는 요소는 우리네 삶에 늘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높은 인품을 지닌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 죽음은 삶이 발명한 것 중 최고의 것이라고 했던가. 유한한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끔은 잊고 살지 않은지. 평생 살 것처럼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 이러한 명제를 마음 깊이 새길 때 오늘 하루를 마지막인 것처럼 충실히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우리 앞에 놓인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아이가 한 걸음에 이삼 리를 가니, 작은 마을에 밥 짓는 연기가 나는 집이 네다섯 채 있네. 정자가 예닐곱 채 있는데 그 옆엔 여덟, 아홉, , 많은 꽃이 피었구나.”(P182)


 재미난 숫자시다. 시골마을의 평화로운 풍경을 그대로 눈앞에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 시의 주인공은 북송시대의 철학자이자 역학자인 소옹(邵雍)이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놀랍기 만하다. 당시 조정에서 관직을 주려했지만 병을 핑계로 모두 거절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는 도가 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철학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천지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선천상수(先天象數)’의 도식으로 보아 선천의 학문은 마음이다.’라고 하면서 성인은 하나의 마음으로 만인의 마음을 관찰하고, 하나의 몸으로 만인의 몸을 관찰하고, 하나의 사물로 만물을 관찰하고, 한 세대를 통해 만세를 관찰 할 수 있다.”(P185)고 말했다. 선천의 학문은 모두 마음의 법이므로, 세상의 일과 사물 그리고 변화는 모두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다녀라.”(P282)-고염무의 일지록-


 멋진 구절을 만났다. 지금처럼 변화무쌍한 시대에 아주 적합한 말이 아닐까. 견문을 두루 넓히라는 메시지로 다가오지만 고염무가 평생 동안 추구했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단다. 명말청초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저명한 사상가이자 역사가, 언어학자였다. 망국의 신하로 태어난 고염무는 청나라의 관직을 받지 않은 채 평생 유랑하며 방랑자로 살다가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또한 언급한 책에서 천하를 지키는 것은 비천한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후에 천하의 흥성과 패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로 널리 알려지면서 중국 근대 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다. 혼자인 것 같지만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책임감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인물에 대한 사상과 철학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시원스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시간을 두고 음미하면서 읽으면 된다. 서양 철학이 인간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에서 세상이치를 묻기 위한 철학으로 비롯되었다면 동양철학은 지금 이곳에서의 삶의 태도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기 위한 철학이라고 추천사에서 밝히고 있다. 평소에 서양철학을 접근하는 것은 좀 어렵게 생각되었는데 동양철학은 고향에 온 듯 편안한 느낌이다. 동양철학에서 다루는 주제에 가까운 것이 우리의 그것과 닮아서가 아닐까. 우리에겐 인간과 우주의 호기심 같은 커다란 주제보다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더욱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철학은 먼데 있지 않다.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선택과 마주하는가. 여기서 다룬 50인의 사상과 지혜는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우리에게 밝은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쓰기의 감각 - 삶의 감각을 깨우는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작가라는 위치는 각별한 느낌을 주는 선망의 대상일 것이다. 좋은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하지만 읽는 행위를 오랫동안 반복하며 세월을 보내다 보면 쓰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면서 자꾸 미련이 남고 심지어는 괴로운 마음까지 느껴 보지 않았는지. 그렇게 누가 쓰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쓰는 일에 목말라 하고 이런저런 글쓰기 책을 기웃거리며 특별한 비법이 있나 궁금해 한다. 그런 비법이 있을 리 없다. 일단 쓰는 것 말고는. 불후의 명작을 쓴 대문호도 처음에는 쓰레기 같은 글을 썼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다시 글쓰기에 대한 책을 만나게 되어 웅크리고 있던 열정을 일으켜 세우고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된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글쓰기 관련 책을 생각해 볼 때 쓰기의 감각은 많이 다른 느낌이다. 전에 읽었던 책이 구체적인 글쓰기의 방법이나 스킬을 알려주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작가로 서의 삶과 글쓰기 노하우, 나아가 인생 이야기까지 들어있다. 출간한지 25년이나 되었음에도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사랑받는 글쓰기의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역시나 글쓰기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처럼 다양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웃기고 짠하면서 괴팍한 듯 유쾌한 저자의 솔직한 성품도 느껴져, 마치 소설을 읽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글쓰기 수업의 내용은 1.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다듬는 방법 2. 쓰는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 3. 계속 써나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들 4. 그럼에도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5. 마지막 수업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렇게 다섯 개의 장으로 진행된다.


 글을 잘 쓰려면 매일 써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처음에는 잘 쓰다가 나중에는 쓸 게 없는 것 같고 이런저런 핑계로 오래가지 못한다. 앤 라모트의 작가 아버지는 그에 대해 이런 조언을 했다고 한다.

 

글쓰기를 피아노의 음계 연습하듯이 해라. 너 스스로 사전 조율을 하고 나서 말이다. 글쓰기를 체면상 갚아야 할 빚(노름빚)처럼 다루어라. 그리고 일들을 어떻게든 끝맺을 수 있도록 헌신해라.”(P25)

 

 과연, 현명한 조언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의무감을 부여하여 글쓰기를 습관화시킨 부모의 열정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사명감을 심어준 것이 작가로서의 삶을 선물 받은 것은 아닌가 싶다. 작가를 지향한 저자의 노력과 열정도 물론이고.


 쓰고는 싶은데 도대체 무엇을 쓴 단 말인가. 많은 작가 지망생들의 질문이기도 하단다. 이에 저자는 유년시절부터 시작해 보라고 말한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작가는 늦게 되어도 늦은 것이 아니라는. ,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되살려 살아온 과정을 차근차근 작품으로 형상화 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유년 시절을 견뎌 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생에서 글감을 풍부히 지니고 있다(P42)는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을 덧붙이면서, 고통의 기억이라도 잘 표현하기만 한다면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일단 쓰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함을 설파한다.


 그 중 짧은 글 한 편쓰는 법을 알려준다. 거창한 것 보다는 자신의 책상에 놓인 2.5cm의 사진틀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글로 옮기는 것, 내가 성장한 마을에서 우리가 처음 마주쳤던 순간 그 여자의 모습을 묘사할 수 있는 단 한편의 짧은 글을 써보라고 제안한다. ‘일단 쓰기의 실행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것 같다.


나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베스트셀러 작가 몇 명과 알고 지내는데, 그중에 글쓰기가 수월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계가 작동하듯이 글쓰기에 대한 열망과 확신이 발동되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우아한 초고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좋다. 솔직히 말해 그들 중 한 명은 그렇다고 말하긴 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가 풍부한 내적 경험이 있다거나 하느님이 그녀를 사랑하거나 그녀를 견뎌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P66)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에 유명한 작가들은 작품을 쉽게 쓰리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의 경력을 가졌으니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은근히 희망이 생기지 않은가.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과정을 산고(産苦)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글쓰기는 힘든 과정을 겪어야만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일 게다. 또한 글쓰기에 있어 완벽주의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며 실수와 시행착오를 무릅쓰더라도 계속 써야함을 조언한다. 오히려 뒤죽박죽 무질서 속에서도 연습, 오직 연습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종이를 써버리라고 하며, 더 나아가기 위해서 실패는 필수라는 것을.


 열심히 캐릭터들과 호흡하며 시간을 보내고 작품으로 출간하기로 정해졌을 때 기분은 어떨까. 얼마나 기대에 차 있을까. 책이 나오기까지 과정은 눈부신 환상이 아니라 커다란 고통이기도 하다는 것을 토로한다. 바로 세간의 악평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다음 작품을 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라고. 일단 출판을 했다는 자체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제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사회적인 지위를 얻은 것이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희귀한 신분에 소속되는, 잔잔한 기쁨(P322)에 대해서도 얘기해 준다.


 그러나 결국 여타의 작가와 마찬가지로 책상 앞에 앉아 빈 페이지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 ()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바로 예술가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당신은 주고, 주어도 또 주어야 할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글을 쓰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당신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진실도 꺼내 주어야 하고, 그렇게 주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이며, 주는 행위가 그 자체로 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작품을 출간하는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주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P306)


 누구보다 깨어 있어야 하며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작가의 자세에 대해 말하면서도 주고 주어야 한다는 말이 의외이지 싶은데 깊은 공감에 이른다. 내면에 들끓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진실을 말함으로써 독자는 공감과 감화를, 글쓴이 자신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반복하는, 주고 또 주는 글쓰기의 행위를 사랑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니 작가의 통찰력이 참으로 놀랍다. 무엇인가를 완성하기 위해 힘든 과정을 되풀이하고 견뎌내는 작가들이란 경이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원제는 버드 바이 버드(Bird by bird)’ 새 한 마리씩 한 마리씩이라고 한다. 앤 라모트의 오빠가 새에 대한 리포트를 마감이 다 되도록 쓰지 못해 끙끙 앓고 있을 때 아버지의 조언.


하나씩 하나씩. 새 한 마리 한 마리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P63)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엄청나게 큰일을 마주했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바닥을 보이지 않을까. 막연한 글쓰기에 관해 이 말만큼 용기를 주는 말이 있을까 싶다. 짧은 글 한 편, 조잡한 초고라도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써 나가다보면 누구라도 글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과정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글쓰기와 더불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기술까지 배울 수 있는 쓰기의 감각은 이제부터 든든한 글쓰기 친구가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
가와노 겐지 지음, 한승동 옮김 / 두레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학창시절에 역사, 즉 세계사에 대한 공부를 떠올려 볼 때 암기식으로 치우친 점, 또 하나는 성인이 되어 역사에 대한 공부가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에 좀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대한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읽기 쉽고 간결하게 정리했다는 소개에 더욱 호기심을 끌었었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은 여러 이유로 집중을 다하지 못하고 띄엄띄엄 읽게 되는 바람에 맥을 잇기 어려웠고 그로 인해 흥미를 못 느꼈다는 점이 아쉽게 다가온다. 이 점을 반성하며 추후에 다시 읽는 기회를 가진다면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기서 다루는 시대적 배경은 민중이 바스티유를 공격하기 2년 전인 1787년부터 나폴레옹이 실권자로 등장하는 1799년까지 10여 년간의 프랑스 혁명을 다루고 있다. 기존의 혁명의 역사와 달리 서술 쪽보다는 사색을 하는 쪽에 좀 더 기울였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점은 서술이 길어져서 지루한 책읽기가 될 수도 있는 독자에게 배려심이 엿보여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선 목차의 구성을 보면,

1. 혁명과 계급 2. 계몽사상 3. 혁명의 계기 4. 왕과 의회와 민중 5. 전쟁과 혁명 6. 혁명과 민중 7. 부르주아 국가의 출현 종장. “혁명은 끝났다로 되어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배경과 계기를 설명하고, 4장부터 7장까지는 프랑스 혁명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크게 나뉜다.

  1장은 혁명 집단과 반혁명 집단의 대립, 프랑스 혁명의 주체와 관련된 계급을 분석한다. 2장은 프랑스 혁명이 유일하게 계몽혁명이 어우러진 사상의 혁명이라는 점을 들어 케네, 디드로, 루소 등으로 대표되는 18세기 후반기 계몽사상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당시 사상의 혁명이라는 점에서도 독보적인 지위를 가졌던 프랑스로서는 계몽혁명의 결합은 행운으로 작용하여 혁명이 실현되었음을 설파하고 있다. 3장은 전쟁과 귀족의 저항 등을 중심으로, 프랑스 혁명의 주체와 사상이 언제 어떤 계기로 어떻게 혁명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4장부터 7장까지는 프랑스 혁명의 발발부터 나폴레옹이 실권자로 등장하는 시기까지를 간결하게 정리하고 분석해 준다.


그렇다면 혁명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는 끝없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항해 무역 등 식민지의 증대 목표는 귀족이나 상인 군주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피폐해진 민중의 저항은 커질 수밖에 없다. 수공업자와 농민들이 몰락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부랑자와 도시빈민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남는 것은 분노밖에 없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1787년에 시작된 귀족의 저항이라고 하니 다소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다. 혁명이 일어난다면 귀족과 성직자들은 타도당할 수밖에 없는 계급임에도 그들이 혁명의 불씨를 지녔다는 점이다.


 계몽주의자들 중 유일하게 루소만이 인민의 소리는 신의 소리(P80)라고 표명했다고 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인민을 어리석은 부류로 폄하하며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혁명의 싹이 트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과 모든 혁명의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혁명의 순교자였던 로베스피에르도 테르미도로 반동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하지만 그의 1,2년에 걸친 정치적 실천이 무효가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레닌에게는 가장 좋은 학교가 되었으며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의 거대한 빗자루가 되었기에 인민들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혁명은 진행 중이다.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의 혁명과 동시에 민중이 참가하여 민중이 승리한 혁명이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촛불 혁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혁명 주역들의 인물 약전과 간략히 정리한 혁명 약연표는 프랑스 혁명을 좀 더 쉽게 이해하는데 유용해 보인다. 프랑스 혁명의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가 읽는다면 짧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유익한 독서가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뇌 이야기 -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딘 버넷 지음, 임수미 옮김, 허규형 감수 / 미래의창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까지 내가 읽은 뇌에 관한 책이라면 오래전 하루야마 시게오의 뇌내혁명이 있고 그 후로 읽은 나덕렬 교수의 앞쪽형 인간을 비롯한 몇 권으로 기억한다. 앞의 책은 뇌를 잘 관리하면(뇌가 젊으면) 125세 까지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뒤의 책은 주로 앞쪽 뇌 즉, 전두엽에 관한 이야기로 앞쪽 뇌가 하는 놀라운 일과 앞쪽 뇌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방법 등을 알려준다. 특히 전두엽을 기업의 CEO와 비유하면서 알기 쉽고 설명하는 뇌 이야기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으며 뇌 과학의 세계에 깊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흔히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에 비유될 정도로 그 성능이 무궁무진하게 정교하고 놀라울 정도이며 평생 살면서 3% 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어왔다.


 이번에 읽게 된 딘 버넷의 이 책은 그간의 뇌의 신비와 그 우수성이라는 측면이라는 것에 고정관념을 깨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사람의 뇌는 엉망진창이라는 그의 말에 이전에 읽은 뇌 이야기와 확연히 다르게 다가온다. 수백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서 현재의 섬세함을 갖추었지만,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온갖 잡다한 구닥다리 프로그램들과 다운 받아 놓은 영화 파일이 가득해서 제대로 작동 되지 않은 상태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마치 온갖 식료품을 쟁여놓고 무엇이 어디 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리가 안 된 냉장고 속을 상상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총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 생존하기까지 일등공신이 된 뇌부터 인간의 기억시스템, 타인보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믿는 경향의 사람들 이야기, 뇌의 정보처리 기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성격은 뇌 때문이라는 것, 감정이 있는 뇌, 뇌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수백만 년 전의 인간에게 있어 뇌의 목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단순했다고 한다. 바로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우리 몸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니. 원시적인 특성의 파충류 뇌와 진화한 현대 사회의 인간이 누리고 있는 의식, 주의력, 인지력, 사고력 등 고차원적은 능력은 새롭다는 뜻의 neo-' 이 앞에 붙은 신피질neocortex'의 뇌는 지금도 충돌하고 있단다. 파충류 뇌는 자기 방식만을 고집하는 소위 꼰대들에 비유하며 신피질은 융통성 있고 호응을 잘하는 세대에 비유하는 부분도 재미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멀미나 식욕조절 과정, 잠에 대해 뇌가 관여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 기차, 비행기 등 교통수단에 앉아서 이동할 때 사람은 이동의 주체가 아니다. 가만히 앉아 있지만 전정계의 판단은 귓속 액체가 빠른 움직임과 가속도로 인해 발생하는 힘의 반응을 뇌에 전달하는데 파충류 뇌의 선택은 으로 인식하여 구토라는 반사작용을 작동시키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사람은 충분히 먹고 나면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못 먹겠다고 하면서도 디저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도 우리 뇌의 강력한 작용 보상 체계임을 알게 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재충전을 위한 중요한 요소는 수면이다. 수면 중에도 뇌는 더 복잡한 행동을 보이며 특히 뇌가 매우 활발한 상태인 렘수면 중에는 기억을 정리하고 유지하는 작업을 하는 등 기억을 활성화시킨다.


 가끔 우리는 무언가를 가지러 왔다가 금세 잊어버리고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기억에는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이 있는데 둘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기기억은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고 단기기억은 기껏해야 1분 정도 지속되는 기억이다. 단기기억은 용량도 매우 적어서 최대 4개의 아이템까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도중에 어떤 일로 방해를 받게 되면 오류가 발생하여 내가 지금 뭘 가지러 왔지?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빠르게 이용할 수 있는 단기기억은 순간적인 기억이고 장기기억은 지속적이고 영구적이며 큼직한 기억이다.


그렇다면 우리 뇌의 기억체계는 과연 믿을 수 있을 만큼 정확하고 안전한 것일까?

저자는 믿을 수 있는’, ‘정확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 혼란이 생긴다. 우리는 오래된 기억을 추억으로 생각하며 되새기곤 한다. 놀랍게도 사람의 기억은 상당히 가변적이고, 여러 방식으로 뜯어고치거나 억제할 수 있으며, 원인을 잘못 기억할 수도 있다는데 이런 현상을 기억편향memory bias'이라고 한단다. 이것은 우리의 자아에 의해 발생한다.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은 바로 뇌의 특징이며, 뇌가 하는 일은 우리가 좀 더 멋있게 보이고 좋은 기분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니 아무래도 인간의 본능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사람은 하루에도 오만 가지 생각, 걱정을 한다는 말이 있다. 세상은 변했지만 우리 뇌는 아직도 잠재적인 위협 요소들을 생각해내며 걱정거리를 어떻게든 찾아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섬세한 시스템을 가진 덕분에 인류는 황무지에서도 오랫동안 살아남았으며 문명화된 인간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장점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 미신은 믿지 않으면서도 나쁜 운은 피하고 싶어서 문지방을 밟지 않고 건너가거나 장례식장에 다녀온 뒤 소금을 뿌리거나 시험 날에 미역국을 먹지 않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히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선택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역사적으로는 마음과 몸이 별개라고 믿었지만, 사람의 성격이 뇌와 중요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원래 온화하고 성실했던 사람도 뇌를 심하게 다침으로서 예의가 없고 나쁜 사람으로 변한 사례를 들려준다. 뇌에도 감정이 있을까? 사람은 타인을 꽤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그것은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면서 남들이 우리를 좋아해주기를 바라며 남들보다 우월하기를 바라는 뇌의 성향이 사기꾼들에게 이용당하기 쉽게도 한다니 우리 뇌에는 정말 엉뚱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았다.


 에드먼드 버크는 악마가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단 한 가지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단다. 이를 뒷받침하는 예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홀로코스트 전범자들에게 심문 했을 때, 이들은 그저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는 변명을 든다. 글쎄 성격이든 옳고 그른 일의 판단을 못하는 것도 뇌가 일조하는 것이라니 좀 두려운 생각도 든다. 진화론적 측면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복종하는 성향이 좀 더 효율적이라는 것, 집단을 형성하며 그 일원으로 소속하려는 성향으로 설명하고 있다.


 현대인은 예전보다 각박한 상황에서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우울증 등 신경 정신질환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뇌는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몸의 핵심 부분이다. 신비하고 똑똑하다고만 알고 있었던 뇌가 엉뚱하고 복잡하기도 한 매커니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될 것 같다. 어렵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재미까지 있는 뇌 이야기다. 평생의 동반자 뇌를 앎으로 인해 삶의 태도나 방식에도 변화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