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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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쓴 작가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문인 김연수·문태준과 ‘김천 3인문(三人文)’으로 통하는 중학교 동기동창이라는 소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연수 작가와 문태준 시인의 글을 접한 후 그들의 노력과 내공에서 공감대를 얻어서였을까. 언젠가부터 글쓰기는 많은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학교나 직장 어디서든지 길고 짧은 글쓰기는 물론이고, 글로써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다. 더구나 예술과 문화라는 분야에서 스토리텔링은 어엿한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흐름에 반영이라도 하듯 서점가에는 글쓰기, 책쓰기에 관한 책이 넘치고, 각종 교육 센터에는 그러한 강좌들이 성행하며 여전히 목마른 자의 갈증을 덜어주고 있다.


 나도 꽤 읽어 본 것 같다. 책 제목도 하나 같이 현란하다. 내 인생을 바꿔주는 ‘기적의 글쓰기’, 아직 읽어보지 못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등등... 하나같이 책을 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거나, 가족들도 당사자를 새롭게 본다는 등의 희망을 심어주는 이야기가 잔뜩 들어있다. 지금까지 읽어 온 책과 다르게 좀 개성이 느껴진다고 할까. 이 책의 구성은 창작의 도구들, 창작의 시작, 실전 글쓰기, 실전 그림 그리기, 대화 완전정복의 코너로 되어 있다. 와! 그림도 그릴 줄 아는 작가다! 웹툰을 연재하기도 했단다. 만화도 들어 있어서 적절한 여백도 있고 읽기에 편안하고 재미도 있다. 자신의 책에 본인의 솜씨로 그린 그림이 들어간다면 몇 배 더 뿌듯한 마음이겠지.


 창작의 도구들에서는 작가가 애용하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소개한다. 아이패드라든가 블루투스 해드폰, 각종 팬 들, 컴퓨터 등. 자신의 글쓰기 역사와 함께 업그레이드 된 애용품을 소개하는데, 이건 뭐냐? 하는 황당함도 들지만, 애교로 봐줄 만하다. 마치 공부하라는 부모님 말씀에 책상 정리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아이 같은 천진함이 보인다. 아마도 직업적으로 장시간 사용해야 하니 손목에 무리가 덜 가는 키보드라든가 질 좋은 필기도구를 찾게 되는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자꾸 물건이 쌓인다고.


 창작은 어떻게 시작될까. 굳이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구분하고자 할 때 서너 가지 기준이 있다고 한다. 한 문장에 같은 단어가 서너 개 있을 때,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반복하는 글, 마지막 대목을 ‘교훈’이나 ‘반성’으로 끝내는 글은 별로 신뢰할 수 없는 글이라고 했다. 너무 의도적인 티가 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이겠지. 스코틀랜드 화가 폴 가드너는 “그림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흥미로운 곳에서 멈출 뿐이다.”(P57)고 한다. 14매 정도의 산문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여 원고지 14매가 되면 멈춘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명쾌한가! 그러니 글쓰기 비법은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직접 써 봐야 한다. 외국어 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글쓰기 또한 그럴 것이다. 써 보고 쓰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것이 아닐까.


 창작의 시작에 있어 읽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것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 다독, 정독, 속독 등 많은 방법이 있지만, 두 번 이상 읽는 방법으로 ‘방향’과 ‘의도’가 생긴다는 오에 겐자부로와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한 것이 공감된다.


“나는 인생이, 세계가 악몽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탈출할 수 없고 그저 꿈만 꾸는 거죠.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 구원은 우리에게서 차단되어 있지요.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나의 구원은 글을 쓰는 데 있다고, 꽤나 가망 없는 방식이지만 글쓰기에 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계속해서 꿈을 꾸고, 글을 쓰고, (중략) 많은 경험 가운데 가장 행복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에요. 아, 책 읽기보다 훨씬 더 좋은 게 있어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인데, 이미 읽었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더 풍요롭게 읽을 수 있답니다. 나는 새 책을 적게 읽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건 더 많이 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군요.”(P64~65 『보르헤스의 말』)

이와 더불어 인간의 머릿속에 들끓고 있는 생각의 파편들, 붙잡아두면 생각은 썩어버린다며 적절하게 메모하거나 스크랩하는 등 자료를 저장해 둘 필요성을 말한다.


 실전 글쓰기에서는 첫 문장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우리는 문학작품을 접하면서 멋진 문장에 공감하고 마음을 뺏긴다. 17년차인 작가도 여전히 첫 문장은 어렵다고 한다. 하얀 원고지, 어서 입력해 주기를 기다리는 커서가 깜빡이는 빈 모니터는 작가에게 있어 진을 빼놓기도 하겠다. 더구나 원고마감이 코앞에 닥쳤는데 그런 상황이라면 피가 마를 일이다. 하지만, 일단 쓰면 ‘첫 문장과 함께 돌은 굴러가기 시작한다.’(P76)고.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이렇게 첫 문장으로 시작하여 끝을 경험하는 일, 바로 글을 쓰는 일이라는 것. 어디 글을 쓰는 일 뿐이겠는가. 인생은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듯이,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다. 어떤 일을 끝까지 해 보았는가, 자문하게 된다.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여 끝을 보았는가. 운동을, 일기를 끝까지 써 보았는가. 어떤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볼 때까지 해 보았는가 말이다. 시작은 있었지만, 끝은 없었다. 수없는 중단만이 자꾸자꾸 미련으로 쌓인다.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하루에 A4용지 4매씩 매일 한 달 동안 쓰면 한 권의 책 분량이 된다고. 시작해서 끝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대견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실전 그림 그리기 코너에서는 작가가 2000년에 꿈에 그리던 소설가가 되었는데, 할 일이 없었고 뭔가는 해야 해서 독학으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당시 유행하던 그림일기를 그리다가 웹툰을 연재하게 되는 사연이 들어있다. 글쓰기 관련 책에서 이렇게 그림 그리기까지 보여주는 글쓰기 책은 처음인 것 같아서 신선했다. 내용도 재미있어서 술술 읽을 수 있다.


 마지막의 대화 완전정복 코너는 수험생도 아니고 이건 또 뭐지, 하는 생뚱한 생각이 들었다. 언어 영역, 예술 영역, 사회 영역, 과학 영역 네 가지로 나뉘어 있다. 실제 문학 작품이나 인터뷰의 지문이 나오고 (문제)로 주어진 부분은 답을 맞추는 형식이다. 즉, 이어질 대화를 추측해야 한다. 생각보다 꽤 어렵다. 작가란 체험하지 않은 것을 쓸 수 없다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체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상력이야말로 작품을 쓰는 원천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코너라고 할 수 있겠다. 여타의 글쓰기 관련 책과는 달리 작가만의 개성이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점이 호불호로 나뉠 수도 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저자의 독자에 대한 주문이기도 하다. 그냥 저절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이든 쓰기 시작할 때, 무엇이든 쓸 수 있는 마법이 생기겠지. 밥을 떠 먹여 줄 수는 있지만, 씹고 소화시키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창작자의 가장 중요한 재능이라는 ‘관찰’을 멈추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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