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 농부 가브리엘과 그의 정원 - 우리가 몰랐던 조지아 소설집 우리가 몰랐던 세계문학
이라클리 삼소나제 지음, 김석희.임정희 옮김 / 마음이음(한국문학번역원)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생소한 이름의 조지아는 들어본 적 있는 옛 이름 그루지야로 캅카스산맥에 위치한 오랜 역사 속에 풍부한 문화를 발전시켜 온 나라로서, 전쟁이 없던 세기가 없을 정도로 핍박을 받던 나라였음을 알았다. 지난 세기 70년 동안 소비에트 치하에서 살았음에도 그들의 언어를 지키기 위해 혼을 바쳤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압하지아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치열한 전쟁을 벌이게 되었고 이 책의 작품들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를 잘 살려낸 작품으로 보인다. 이 소설집은 조지아 현대 작가들 열 명의 작품이 실려 있고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와 닮은 힘들었던 과거 역사를 떠올리며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문학의 역할이란 한 나라 역사의 증언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 여행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게 다르지만 나는 잠을 제일 좋아한다. 음식도 좋다. 예를 들면 따끈한 수프나 스테이트, 으깬 감자 같은, 하지만 잠이 더 좋다. 특히 날이 추울 때 따뜻하고 아늑한 침대에 누워 평화롭게 자는 아침잠이 최고다.’(P19)


  첫 문장은 아직 어린 아이인 화자의 작은 소망이다. 그렇게 커다란 꿈도 아니다. 전쟁이 없었다면 결코 깨닫지 못했을 열두 살 아이의 평범한 소망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아늑하고 따뜻한 침대에서의 아침잠을 그리워하는 이 소년은 지금은 몰래 찾아든 지하실에서 골판지 상자 속에서 잠을 잔다.


 전쟁은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모두 앗아가 버렸다. 심장발작으로 입원한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엄마는 고집을 부렸지만 결국 떠밀려서 피난을 가게 된다. 모든 것은 엉망이 된다. 환경이 변하면 사람도 변하게 마련이다. 다정했던 엄마가 술에 찌들고 아이를 손찌검을 하고 급기야는 보고 싶지 않은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증오에 차서 아버지의 선물인 엄마의 결혼반지와 돈을 훔쳐서 달아난다. 생각해보면 수치스러움으로 진땀이 쏟아지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얼어붙는 듯한 추위와 배고픔의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단짝 친구 추파카와 본드를 흡입하고 아프리카의 낙원을 지나는 얼룩말, 코끼리, 코뿔소, 수많은 영양들의 무리를 본다. 그러다 추파카는 죽어가고... 엄마의 반지가 눈에 띄어 아버지를 떠올리고 소년은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한다. 영악한 친구 고슈카의 도움을 받아 트크바르첼리로 아버지를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의 냄새를 추억하며 한껏 희망에 부푼 마음이다. 오직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소년의 여정을 따라가며 어느새 손에 땀이 밴다. 과연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소년의 도전과 모험이 담긴 짧은 성장소설 같은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져 수상을 했고 작가에겐 최우수 각본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이라 한다.


양계 농부 가브리엘과 그의 정원


 이 작품은 이라클리 삼소나제가 쓴 것으로 1990년대 조지아를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가브리엘이 맞닥뜨린 삶에서 새로운 생활방식과 생존의 조건에 적응하려는 내면의 분투를 작가의 특색인 의식흐름의 기법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래 관공서의 구내식당 수석 요리사였던 가브리엘이 양계 농부로 불리게 된 것은 나라의 내전으로 인한 혼란한 상황에서 희생양으로 몰렸고, 아내 굴리코의 권유로 닭을 키우게 되면서 부터다. 짧고 둥글둥글한 체격과 바지런한 성품의 그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 믿었고 요리사를 택한 것도 음식을 직접 다루는 일이 그의 삶의 중요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국의 상황으로 인해 그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일을 맞는 상황이 된다. 모든 시골 사람들의 꿈인 아파트 일층에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하고 온갖 종류의 나무를 심고 어느덧 12년이 흘러 울창한 동산을 이루고 새들과 마을 사람들의 놀이터가 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일구어낸 낙원에서 다른 사람들이 양계 농부라고 조롱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활에 만족하는 듯이 보인다. 나무들과 새들과 빛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정취와 풍광의 묘사가 나른하게 이어지는 평화로운 정경이다. 계절의 흐름을 오롯이 느끼며 지난날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카키색 재킷을 입은 노인의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지나가는 겨울은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외로운 외침 소리가 들린다.

-! 싼 장작 있어요!”

영혼의 눈에는 어두운 밤만 보이고, 차가운 심연 속에서는 떠돌이 개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저 멀리 들려온다. 창가에 서면 갈라진 아스팔트 위로 노인과 당나귀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고, 난로 연통이 창문 밖으로 삐져나온 흉측한 집들이 보인다. 바람이 창문을 때리고 잠시 잠잠해지던 바람은 곧 다시 휘몰아치면서 연통에서 검댕과 연기를 앗아가 교외 지역을 뒤덮은 먹구름과 뒤섞인다. 바람에 아스팔트 위의 빈 플라스틱 병이 뒹굴고 비닐봉지가 찢길 때, 어딘가에 몸을 숨긴 흰 비둘기들이 떠오른다.’(P91)


 하지만, 겨울이 깊어가며 점점 헐벗어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가브리엘의 차분한 마음은 더욱 가라앉고 심연 속을 서성이는 느낌이다. 혼란한 나라 상황이 계속되면서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감추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어서 봄이 되어 생명의 약동과 함께 가브리엘의 동동거리며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의식흐름의 기법으로 쓰인 작품들이 어렵게 느껴졌는데 반복적으로 읽어보니 시적인 느낌이 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능직 무명으로 짠 낙원


 러시아 전쟁에서 아들 라티를 잃은 레나는 밤이면 아들의 망령을 만난다. 아들을 잃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는 없을 게다. 아들이 어릴 때 입었던 능직 무명 바지에서 다람쥐, 토끼, 야자나무를 오려내서 벽에 붙인다. 바지는 갈가리 찢어졌다. 행복하다고만 할 수는 없었겠지만 이전의 삶이 낙원이었던 것이다. 오줌 쌀 곳을 가리지 못하고 첫사랑의 남자를 보고도 기억하지 못한다. 조카 라우라가 가끔 와서 숙모를 보살펴주기도 하지만 힘에 부친다.


어때요? 레나 숙모, 거기로 갈까요?”

어디로?”

노파가 나지막이 물었다.

거기…… 멋진 집으로요. 내가 종종 들를게요. 따뜻한 음식도 가져갈게요. 거기 가면 친구를 아주 많이 만날 거예요! 그럼 나한테도 그 사람들 소개 좀 시켜줘요. 여기서는 지내기 힘들어요, 레나 숙모. 기억 때문에 괴로울 거예요. 게다가 이렇게 혼자서, ,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P150)


“(전략) 이제 그만 가봐야 해요, 레나 아줌나, 라티의 영혼에 맹세컨대, 아줌마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내가 후회하게 해 줄 테니까요! 난 이제 가요, 걱정하지 말아요……. , 제 걱정은 하지 말아요…….”(P154)


 라티의 친구 렉소는 레나를 만나는 것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죄인이나 다름없다. 맨 정신으로 레나를 마주대할 수가 없어 술에 취해 횡설수설 장광설로 늘어놓기 일쑤다. 전쟁의 비극으로 인한 상실을 누가 어떻게 몰아내 줄 것인가.


 형제


 첫사랑의 아이를 잉태한 여인이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들 바르탄을 낳는다. 바르탄이 상속자가 될 것이기에 잔인하고 모진 성격인 남편의 온갖 모욕적인 행동을 견디어낸다. 8년 동안이나 침묵을 지키면서. 남편이 이 사실을 모르리라는 여자의 생각과 달리 남편은 바르탄이 두 살이 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참아내면서 아들을 미워도 하고 사랑하기도 한다. 그런데 8년이 지나 자신의 핏줄 레오가 태어나면서 인물들의 운명은 극으로 치달린다. 레오가 태어나던 추운 겨울 날 바르탄은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얻어맞는다.


 자신의 피붙이라는 이유로 오냐오냐 키우면서 레오는 위아래도 못 알아보는 망나니로 자라난다. 사랑을 독차지하는 레오에 대한 시샘과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은 깊어간다. 특히 형보다 더 교활하고 뻔뻔스러운 레오의 행동과 비웃음은 레오를 두려워하게 되고 형의 지위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오직 어머니의 위로만이 인간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바르탄에게 비빌 언덕이 더 이상 없다.


 그 차갑고 잔인한 아버지가 어느 날 몸져누웠는데, 두 형제는 각각 다른 이유로 기뻐한다. 레오는 재산을 모두 물려받을 생각에, 바르탄은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 병상을 지키며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희망은 사라진다.


나는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어. 나는 더는 내가 아니니까. 내 이름도 이제는 바르탄이 아니야. 내 이름은 하나뿐. 인간이 내 이름이야. 나는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어. 하지만 내 의무와 내 양심은 어떻지? 어머니는 어떻지? 어머니는 뭐라고 하실까?’(P197~198)


이 녀석은 몸속에 피가 얼마나 많은 거야?” 바르탄은 생각했다. 그리고 의식을 잃으려는 순간, 제수를 빼앗은 게 동생에 대한 앙갚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수는 어머니를 대신했을 뿐이다.(P203)


 사랑의 결핍은 시샘을 낳았고 냉담함과 잔인함은 복수심을 키웠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몸부림은 양심과 이성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애착의 대상을 잃고 낭떠러지에 선 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가를 절절히 보여준다.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이렇게 세밀하게 그려낼 줄이야. 구람 메그렐리슈빌리의 <형제>는 이 소설집에서 몰입감 최고의 소설이며 등장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빚어진 상처와 부도덕, 증오와 복수심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낯 선 먼 나라 조지아의 문학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고 할까. 앞으로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조지아 문학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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