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 인류 고전 15권에 묻고 스스로 답하다
박병기 지음 / 인간사랑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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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라는 책의 제목이 제법 묵직한 울림을 준다.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에서 국가나 개인이 하루하루 살아가며 견디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국가적으로는 부도덕한 권력자들이 혼란을 야기하는 정치적 무력함을 겪어야 했고, 이웃나라 일본의 원자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선 노출과 중국의 심각한 대기오염, 북한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 등 대내외적인 여건에서도 위험과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제각기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성공하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치며 앞만 보고 달리는 세상이다. 하지만, 마음대로 안되는 게 세상사 아니던가.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차 등 비교심리로 인한 상대적 빈곤감은 피로사회로 만든다. 이럴 때 잠깐 쉬어가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거리 두기를 전제로 오래된 고전에서 사유와 성찰을 하며 삶의 의미 찾기를 위한 필수 요건이 되고 전통적인 유효성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올해부터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고전과 윤리라는 진로선택과목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금강경,논어같은 동양 고전과국가,니코마코스윤리학등 서양 대표 고전을 다루고 있다. 특히신약성서,꾸란을 포함시켜 종교 간의 만남과 대화를 위한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저자는 고전과 윤리교과서 대표저자로서 이 과목에 들어있는 15권의 고전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를 안내하는 내용과 실천할 수 있는 지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과목의 도입으로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으로 시험공부에만 몰두했던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하다. 그동안 제도 교육은 국영수 과목에 치우쳐서 예체능 과목은 등한시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도덕과 윤리는 하루아침에 싹트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중단되었던 윤리에 대한 과목을 학습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반가운 마음이다.


 이 책의 구성은 1부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 2부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 3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 맺기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를 정립하고 나아가 타인 등 공동체와 그리고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와 더불어 잘 살아가기 위한 지향점을 두고 있어 성장할 수 있는 관계망을 보는 듯하다. 우리 시대의 삶의 양상은 어떤 모습일까. 성공은 차치하고 일단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으로도 벅차다. 요즘처럼 언론이 부도덕한 정치인들이나 많이 알려진 유명 인사들의 사건들로 시끌벅적한 때는 사람이란 과연 왜,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것인지 회의가 든다. 한 세상 길어야 백 년인데, 남의 것을 탐하고 피해를 주며 그렇게 살고 싶을까 싶다. 이러한 배경에는 오로지 성공을 향하여 앞만 보고 달린 결과가 아닌가 한다.


관계 맺기가 얼마나 어려운 시대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혼밥’, ‘혼술등 뭐든지 혼자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세상의 흐름에 저자는 금강경을 소개한다.

수보리 장로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다원(須陀洹)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할 것인가?”

아닙니다. 부처님! 수다원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수다원이라는 말은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참된 수다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경』「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P31) 

                

 ‘사다함이나 수다원은 불교 수행자의 경지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데,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지 중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수다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는 사람이라는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니, 과연 보통사람인 우리는 이 수다원의 경지를 삶의 목표로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뜻이 너무 크다고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우리는 작게라도 노력할 수 있다. 늘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이며 실천하는 것으로 수다원에서 아라한(깨달음을 얻어 이 세상에서 참으로 평화롭게 사는 사람)에 이르는 수행의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하니.


 2부에서 다루는 꾸란은 다종교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낯섦의 대상인 이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대목이다. 눈만 내놓고 온 몸을 꽁꽁 동여맨 복장의 사람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우리를 움츠리게 만든다. 영어식 발음으로 배웠던 코란이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며, ‘성스러운 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한다.


꾸란을 믿는 자들이나 구약을 믿는 자들이나, 그리스도인과 천사를 믿는 시바인들이나, 하나님과 내세를 믿고 선행을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보상이 있을 것이다. 그대들에게는 두려움도 슬픔도 없을 것이다.”(P81)

부모를 위해서, 친척과 고아, 구걸하는 자여행자를 위해서 자선을 베풀어라. 그리하면 그 모든 자선의 행위를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2215

선행이거나 정의의 일이거나, 사람 사이에 화해시키는 일이 아닌 맹세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변명하지 말라.” 2224(P83)


 위의 인용을 통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차별하지 않는 이슬람의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고, 개인의 마음의 평화는 물론 인간관계, 사회 정의, 세계 평화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종교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낯섦을 금세 떨쳐버릴 수는 없다. 원치 않더라도 언제 어느 때든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듯이 다른 사람 다른 종교를 이해함으로써 다가 올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의미 있으리라 생각된다.


 3부에서 인상적인 것은 지난 해 619일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에 대한 것이다. 일상에 파고든 문명의 이기는 편안함에 젖어서 좀처럼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후쿠시마 원전 같은 엄청난 재앙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딜레마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지도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이 과제를 각자의 삶과 사회 전반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철학으로 저자는 노자의 도덕경을 소개한다.


하늘은 도()를 본받고 그 도는 자연(自然)을 본받는다.(P186)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도 기꺼이 머물기 때문에 도에 가깝다.(P187) 도덕경

예부터 극심한 자연재해를 만나면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하거나 기도하면서 하늘의 명령이 우리의 본성을 이룬다는 생각을 체계화한 것이 유교철학으로 완성되었다. 하늘의 뿌리를 자연으로 본 것이 도가이며 그 기록이 곧 도덕경이다. 어지러운 일상을 잘 살아내는 대안은 경직된 윤리(倫理)가 아닌 자연의 흐름을 읽고 물처럼 살아가는 무위(無爲)를 강조하며 물 흐르듯이 자연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삶을 강조한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또 교양을 위한다거나 특권층인 것처럼 과시하는 마음으로 고전을 대하지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고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는 금물이다. 그 고전의 저자나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한계는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다른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현재 실정에 맞는 재해석하여 받아들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전을 읽더라도 삶과 연결할 수 없다면 별 의미도 없을 것이다.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겠다는 무모한 도전보다는 마음에 끌리는 부분이라도 조금씩 접하다 보면 고전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도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학부모는 물론 고전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독자가 읽는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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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화의 사기 2 :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장자화의 사기 2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사마천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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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권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는 제 환공, 중이 공자 유랑, 진 문공, 초 장왕, 오자서와 오왕, 범려와 월왕 구천, 조돈과 최저, 조씨 가문 고아, 공자, 소하, 장량, 주아부 고사가 들어있다. 각각의 고사에서 어떤 사명을 갖고 치열하게 분투했는가를 보여준다. 한 인물의 죽음은 물론 가문이 멸족하게 되는 재앙도 맞는다. 군주를 위해 몸을 바쳐서 높은 재상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토사구팽을 당하는 억울한 영혼도 있다. 이래저래 삶이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습관으로 굳어진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단점, 장점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단점, 악습을 알아차리고 변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기도 하고 어려운 일 일수도 있다. 주나라 사자에게 구정(九鼎)의 경중(輕重)을 물은 초장왕 고사가 있다. 구정(九鼎)은 천자의 권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즉위 3년 동안 정사는 돌보지 않고 매일 술과 향락에 빠져 지내던 장왕은 어떻게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수수께끼로 간언을 올린 오거와 충직한 신하 소종의 간언 덕분이다. 장왕에게는 끔찍이 사랑하는 말 한 마리가 있었는데, 비단옷을 입히고 화려한 집을 지어주고 침대에서 재우고 대추와 고기를 먹이다가 비만으로 죽고 만다. 죽은 말을 관을 짜서 신하의 예로 안장하겠다는 왕에게 우맹(優孟)은 재치 있는 간언으로 입을 다물게 만든다. 충언으로 간언을 해도 무시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우매함을 깨닫고 변화하겠다는 열린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 뜻한 바를 이루는데 신념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월왕을 보필하여 오나라를 멸하는데 공을 세운 범려의 일생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맹주가 된 구천이 범려를 상장군에 임명하지만, 사직을 청하고 도망을 간다. ‘잘 나갈 때 물러나라는 말은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과 상통한다. 현실의 조직에서도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며 정상에 오르면, 이제는 내려 갈 일 밖에 남지 않았음을 안다. 과거 역사에서는 큰 공헌을 한 후 온갖 시기와 누명으로 죽음에 내몰리기도 했으니, 사려 깊은 범려는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구천으로부터 벗어난 범려는 스승 계연에게 배운 경제 정책을 가업을 일구는데 활용하여 엄청난 부자가 된다. 삶은 죽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지혜, 겁내지 않고 이전과 다른 일을 시도하려는 변화의 태도는 우리가 배워야 할 생존 철학이 아닐까.


 제자들과 천하를 주유하며 궁핍하게 살았던 공자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감동을 준다. 그 중심 사상 인()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우리에게 절실한 주제가 아닐까.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는다. 모두가 원만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과제는 인()의 실천일 것이다. ()이 없는 시대를 살다 간 공자는 시대 풍속을 바꾸고자 했으나 오히려 오해와 질투 모함에 시달렸다. 오로지 붓의 힘으로 논어등 여러 위대한 저작이 남았으니 공자는 영원히 후세의 마음에 살아남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평범한 사람이 위대한 사명감을 갖는 일은 좀처럼 드물겠지만, 저마다 작은 마음속의 부름은 있을 것이다. 어떤 것,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서 꼭 지켜야 할 책임감을 갖게 했을까. 역사 속 다양한 인물들의 지난한 삶에서 소중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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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화의 사기 1 : 큰 그릇이 된다는 것 1 장자화의 사기 1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사마천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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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고전이며, 중국 최고의 역사 저작이자 세계적인 고전이 사마천의 사기. 사기처럼 오늘날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인용되고 읽혀지는 책이 또 있을까. 중국 역사 가운데 3천년을 본기12, 10,8,세가30열전70편 총 130편에 걸쳐 기록한 방대한 저작이다. 이 중 장자화의 사기시리즈는 역사서 최초로 기전체를 도입한 사마천의 역사관을 따라, 인물을 중심으로 쓴 다섯 권의 사기해설서다. 1,2권을 만나게 되었는데, 나머지는 출간예정이라고 한다. 1큰 그릇이 된다는 것본기를 바탕으로 세가열전에 수록된 관련 내용을 참고해서 썼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내용은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고사 형태로 되어 있다. 특히 삽화는 이야기의 내용을 실감나게 해주는데 한나라 때 돌에 새긴 그림처럼 보이도록 판화 방식을 도입했다 한다. 중국 고대의 멋을 살리고자 한 그림으로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현대 문학의 표현법으로 인물의 심리와 행동에 담긴 의미를 그렸으며, 각 장의 끝에는 ‘3분 역사 키워드를 넣어 문학, 역사학, 철학, 심리학, 경영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인물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또 작품 속 사건은 현대식 연도로 표기했고 지도의 삽입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제에 해당하는 큰 그릇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그 기준은 땅이나 재물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사회 조직에서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가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타인과 현명하게 관계 맺는가, 그 관계에서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는가, 에 있다. 요순 선양 고사를 비롯하여 탕무 혁명 고사, 주공 섭정 고사, 진시황 고사, 항우의 패업 창립 고사, 제왕이 된 유방의 고사, 여후 고사, 한 무제의 고사가 실려 있다. 맨 마지막의 태사공 사마천의 고사에는 죽음을 앞둔 친구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가 들어 있어 애절하다. 남성으로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치욕적인 부형을 받은 사마천의 곤혹스런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누구를 진심으로 도우려고 했던 순수한 마음이 의심을 사서 의도하지 않게 오해를 사기도 한다. 역사에서는 오해를 넘어서 죽음을 이르기도 한다. 포악한 상 주왕을 토벌하고 왕조를 세운 무왕은 오로지 나랏일에만 매진하다가 불과 4년 만에 죽고 만다. 보위를 이어받은 성왕은 겨우 12. 그 무거운 짐을 돕기 위해 주공의 섭정이 시작되는데, 이런 상황이면 반드시 시샘하고 모략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유언비어를 퍼뜨려 도륙하려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목표가 올바르고 떳떳하다면 남의 험담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임해야 한다. 이렇게 군주를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성심을 다해 보좌하는 주공 같은 인재가 아쉬운 시대다.


 범증의 충고를 무시하고 신안(新安)에서 항복한 진나라 군사 이십만 명을 산 채로 매장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항우의 처사는 진나라 장수 백기가 장평(長坪)에서 조나라 군사 사십 만 명을 산 채로 매장한 일과 묘하게 닮았다. 원한으로 일을 처리하면 자신도 원한으로 당하는 게 세상사다. 홍문연에서 범증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항우에겐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란 내가 놓치면 다른 상대가 얻게 되는 것이니, 이것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살이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기회를 놓친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하늘을 탓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 돼지를 만든 여인여후에 대한 고사가 있다. 이 또한 권력을 이용하여 사무친 원한을 철저히 갚는 이야기다. 여공은 유방의 관상을 좋게 보고 딸 여치를 유방에게 시집을 보낸다. 늘 항우와 싸우느라 집안을 책임져야 했고, 항우의 손아귀에서 끔찍한 인질 생활 등 고난을 이기고 황제와 황후가 되지만 유방이 누구인가. 유난히 여색을 밝히는 사람이라 미녀 척희(戚熙)만을 총애한다. 유방이 죽자 가슴에 쌓인 원한을 복수로 갚는다. 척 부인을 손발을 자르고, 두 눈을 파내고, 귀를 태우고, 약을 먹여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게 한 다음 돼지우리에 가두는 만행이다. 중국 역사서를 보면 과연 사람이 할 짓인가 할 정도로 잔혹한 장면이 많은데, 정말 끔찍하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늙고 권세는 기울기 마련이다. 평생 지속되는 것이 천하에 있을까. 그렇게 복수를 하고 나면 후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그렇게 될까봐 벌벌 떨게 된다. 원한, 분노야 말로 인간의 기본적인 건강마저 해치게 되는 해악임에는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요순임금 같은 군주가 되고 싶어 했다는 한 무제를 후세는 진시황과 비교한다고 한다. 웅장함, 문치(文治), 군사력 과시, 미색에 대한 욕망, 준마(俊馬), 신선이 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었다. 군주의 과도한 욕망은 수많은 재물을 낭비하고 백성의 살림을 도탄에 빠뜨린다. 더구나 터무니없이 신선이나 귀신, 미신을 맹신했다는 대목은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는 부분이라 놀랍다. 역사가 돌고 돌듯이 사람들의 마음이나 행동 양식도 닮는 것인지, 묘한 느낌이다. 리더로서 원대한 야망과 업적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수양은 필수불가결하다고 할 것이다.


 ‘장자화의 사기는 원래 청소년들을 위해 기획된 시리즈라고 한다. 또 고전을 처음 시작하려는 독자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출간하였단다. 그래서인지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역사 속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 실감나게 느껴져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몰입할 수 있다. 대학 시절 사기에 매료되어 잠시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고, 깊은 밤 사기를 읽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는 저자의사기에 대한 깊은 애정과 내공이 잘 드러나 있다.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큰 그릇의 인품을 지향하는 삶이라면 한정된 인생, 좀 더 의미 깊게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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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와 숫자로 보는 366일 신비한 생일 사전
새피 크로퍼드.제럴딘 설리번 지음, 유엔제이 옮김 / 현암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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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자리와 숫자로 보는 신기한 366일 신비한 생일 사전이다. 오래전 생년월일로 운세를 봐주고 그 내역을 인쇄해 주는 별자리 운세가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기억도 희미하지만 직업운, 자녀운 등 여러 항목이 있었고, 몇 살이 되면 대길하고, 물가에 가지 말라든가 어느 방향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수 있다, 는 등 재미있는 글귀를 읽으면서 괜히 마음이 두근두근 했었다. 또 어릴 적 신년이 되면 아버지가 구해 오신 토정비결 책자를 본 기억도 있다. 요즘에도 인터넷 사이트에 많은 운세 사이트가 성행하고 있는 걸 보면, 앞날의 운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한 것 같다.

 

 이 책은 런던에서 수비학자, 점성학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새피 크로퍼드와 제럴딘 설리번 공저이며 새피 크로퍼드는 점성학 카운슬러, 점성학과 수비학 워크숍을 진행하며, 제럴딘 설리번은 워크숍도 열고 점성학도 가르치며 전 세계로 강연을 다니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점성학의 세계, 항성과 점성학, 수비학(數秘學)의 세계, 366일 날짜별 생일 분석으로 되어 있다. 역사 초기부터 인류는 자연의 힘과 주기를 알고 있었고, 이것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항성은 고대부터 점성학에서 다루는 한 부분이었는데, 여기서는 1366일 하루하루에 대해 항성이 미치는 영향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점성학과 수비학은 이 영향을 해석하는 방법이며 이 주기들이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점성학 연구에는 천문학, 상징주의 심리학, 기하학 등 다양한 학문이 포함되며, 수비학(數秘學)은 숫자가 질과 양의 이원성을 띤다는 이론을 구체화한다.

 

 인류는 먼 옛날부터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천체를 관찰해왔으며, 점성학은 별, 행성의 주기와 지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간의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한다.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는 것처럼 그 무엇도 홀로 하나의 법칙으로 서 있지 못한다. 모든 것은 우주 주기와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관계의 일부이며 점성학자들의 이러한 상호작용을 인식하고 상징을 통해 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점성학의 두 가지 빛은 태양과 달이며 낮과 밤의 주기에 상응한다. 동양 철학에서는 음양, 즉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로 특징짓는데 결국 같은 의미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점성학에서 쓰이는 12개의 별자리는 양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게자리, 사자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전갈자리, 궁수자리, 염소자리, 물병자리, 물고기자리 이며 창조 활동에서 자신의 힘을 나타내기 위해 특정 원형의 역할을 알려준다. , 해당 별자리에 잘 맞는 직업이나 그 사람의 특성에 대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10개의 천체는 태양, ,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이며, 사람의 심리 작용과 우리 성격의 장단점을 알려준다.

 

 항성과 점성학에서 특이한 점은 모든 생일이 항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12개의 별자리는 각각 세분화된 항성의 목록이 들어있다. 양자리를 예를 들자면, 데네브 카이토스(Deneb Kaitos)5개나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은 항성을 관찰하여 세상사와 연결시켜 왔는데, 메소포타미아와 바빌로니아 시대에 이미 항성에 이름을 붙인 기록이 남아 있다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빌로니아의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Epoth of Gilgamesch)'에 언급되었고 혜성, 일식, 월식, 행성과 함께 기상 현상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항성들은 무의식, 개인이 가진 잠재력이나 문제들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을 제시한다고 한다고 하며 항성을 해석할 때는 탄생 천궁도를 바탕으로 주의 깊은 분석이 요구됨을 언급하고 있다.

 

 수비학(數秘學)의 세계에서는 학창시절 수학시간에 무수히 들었던 피타고라스 정리를 만나게 된다. 이외에도 히브리히 신비철학, 역경(易經), 마야 이론을 언급하는데, 이는 수비학(數秘學)이 포함된 가장 유명한 체계라고 한다. 피타고라스는 숫자는 신성한 것이며 만물은 수라고 주장했으며 음악과 숫자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밝혀 악보와 수학을 조화롭게 연결시켰는데, 고대 그리스의 많은 철학자들은 숫자의 신비에 강한 흥미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많은 수학자들도 공유하는 생각이며 보통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마다 좋아하는 숫자가 있으며 그런 신비한 힘을 믿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수비학(數秘學)은 점성학과 같이 상징적 체계이며 우리 자신과 삶의 목적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도구이다. 긍정적 힘과 부정적 힘을 나타내고 숫자의 의미를 탐구하게 되면 우리의 개인적 잠재력을 발견하여 계발하고 삶이라는 여행의 지침을 얻는데 유용하다. 여기에는 탄생수 계산하기에 기본이 되는 9개의 숫자와 ‘1년 수 계산법’, 9개의 1년 수 해석, 31개의 1일 수 해석이 들어있다. , 점성학과 수비학(數秘學), 지배하는 항성까지 아우르는 생일 분석이 되는 것이다. 탄생수 계산하는 방법은 참 간단하다. 먼저 자신의 생년월일을 모두 더한다. 만약 생년월일이 199999일이라면, 1+9+9+9+9+9=373+7=101+0=1 탄생수는 19개 기본수 중 1’을 읽어보면 해당하는 사람의 장점, 단점이 나타나 있다.

 

<생일 5월 31일의 예시>

 

 각 날짜별 생일을 분석하여 해당 생일자의 특징과 전반적인 운세, 숨어 있는 자아, 일과 적성, 수비학으로 본 당신의 운세, 연애와 인간관계에 대해 알려준다. 맨 오른쪽 코너에는 당신에게 특별한 사람의 코너로 힘이 되어 주는 사람’, ‘운명의 상대’, ‘경쟁자’, ‘소울메이트까지 생월과 생일을 실어 놓았다. 이렇게 자세한 사항까지 알려준다. 특히 숨어 있는 자아부분은 생일에 해당하는 사람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장점과 약점을 설명하는데, 실제의 자신을 비교해 보고 장단점을 살리는데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이날 태어난 유명인에서는 역사 속 인물과 현재의 인물까지도 알려주는데 신기하고 흥미롭다. 좀 의외인 것은 11일부터가 아니라, 321일부터 다음 해 320일까지 1년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별자리 순서대로 나열한 때문인 것 같다. 부록에 나와 있는 항성의 특징은 전문적으로 작성된 점성학 차트와 함께 이용하면 천체들의 의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니 참고하면 좋겠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덕담을 나누기도 하고 좋은 꿈을 꾸었으면 하는 바램도 갖는다. 사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아무도 모르며, 예상치 못한 일도 비일비재하니 운세가 완벽하게 정확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 예전부터 어른들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은 딱 맞춘다는 말이 있어왔다. 재미삼아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운세를 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기억했다가 마음과 행동을 잘 헤아리면서 살아가는 태도라면 아마도 좀 부족한 운도 비켜가지 않을까. 생소한 용어는 별로 없고 비교적 쉽게 읽힌다. 서론에서 다루는 점성학, 항성과 점성학의 관계, 수비학의 세계를 꼼꼼히 읽어두면 유용하게 자신의 생일에 해당하는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1년 내내 조금씩 들추어보고 자신을 돌아본다면, 하루하루의 삶에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는 재미있고 신비한 생일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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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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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맨부커상 수상작과는 달리 좀 안 읽혔다. 초반에는 좀 지루한 느낌이었고, 과거의 기억과 현실을 오가는 때문인지 앞뒤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작품의 도입 부분부터 감정을 절제한 자제력 있는 깔끔한 문장과 작가의 감성이 느껴졌다. 오히려 담담한 절제미가 눈물을 자아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형 톰이 전쟁에서 돌아왔는데,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는 장면...)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는 문학을 통해서 간접체험 한다. 직접 체험한 사람의 심정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문학 작품을 통해 그 참상을 감정이입하며 공감하게 된다. 전에 읽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삶의 의미 찾기가 주제였다면, 이 작품은 열린 공간이지만 자유롭지 못한 포로였다는 점은 비슷하다. 오히려 더 가혹하다고 할까. 동료들 앞에서 구타를 당하고 모든 수치스러움을 견뎌야 한다. 그 관계 속에서 인간의 선악, 상실감으로 인한 무기력 등 복잡한 내면의 심리를 이토록 세밀하게 그릴 수 있을까 싶다.



 이 작품의 내용을 알기 전에 제목만 봐서는 시적인 느낌이 강했다. 일본의 와카[和歌]와 함께 일본 시가문학의 커다란 장르를 이룬다는 하이쿠가 등장한다. 17세기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의 고전 오쿠로 가는 좁은 길의 영어판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에번스가 테니슨의 율리시스를 말하는 장면과 하이쿠를 언급하는데, 그 시적 우아함과는 전혀 상반되며 오히려 그 참혹함의 대비를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타이-미얀마 간 죽음의 철도라인에서 살아남아 현재 잘나가는 의사이자 화려한 전쟁영웅이 된 외과의 도리고 에번스다. 의도하지 않게 언론과 방송의 주목을 받으며 어느새 유명(有名) 인사가 되었지만, 마음은 몹시 불편하다. 도리고 에번스가 젊은 날 전쟁터로 출정 전 우연히 만난 키스 고모부의 아내 에이미와 나눈 사랑에 대한 기억과, 차후에 철도건설 현장의 일본군 전쟁포로로서 겪는 잔혹하고 비참한 현실이 주된 이야기 배경으로, 자신의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교차하며 괴로워하는 삶의 어둡고도 치열한 현장을 보여준다.



 굶주림과 전염병과 폭력이 난무하는 빗속의 정글에서 철도 건설 현장에 투입된 포로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참혹함 그 자체이다. 주먹밥 하나로 하루 일정을 마쳐야 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도 채울 수 없을 만큼 극심한 상황이라 먹을 것과 휴식만이 간절하다. 기계도 없이 정과 망치 하나만으로 정글을 베어내고 바위를 깨서 길을 내야 하는 과정이다. 간혹 오리 알 이나 작은 야자당 한두 개를 구경하게 되면 그들은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대하듯이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을 대하듯이희망을 가진다. 어디 굶주림뿐인가. 군화도 없이 맨 발로 작업복은커녕 거의 알몸이다시피 한 몸으로 이동하다가 죽기도 한다. 철도 건설이 진척되기도 전에 시체가 쌓이기 시작한다.



 이에 일본군 사령부는 안달이 난다. 완공 시한을 두 달이나 앞당기며 채찍을 가한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명령일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도 고타와 나카무라는 잇사와 부손, 바쇼의 하이쿠에 공감하면서 점점 감상에 빠져든다. 철도가 인도 침공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생각, 바쇼의 아름다운 시와 더불어 온 세계가 하나가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들뜬다. 철도의 완성은 일본 정신이며, 유럽인이 못한 일을 자신들이 해냄으로써 우월한 인종이라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되고 그 정신이야말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할 거라는. ()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랑에 관한

키스 멀베이니와 에이미의 어긋난 사랑은 도리고와 엘라의 사랑 없는 결혼생활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도리고의 마음에는 에이미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욕망, 끝없는 바람기가 계속된다. 아내와 자식들과의 불협화음을 이룰 수밖에 없다. 그저 자신의 육욕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절제할 수 없는 이기심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한 배려의 결여, 윤리적인 의식의 결여에 다름 아니다.



 만약, 에번스가 빅터 프랭클 처럼 삶의 의미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원()의 일상으로 돌아온 후반의 삶은 좀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그 자체가 감사함이 아닌가.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 모든 모임, 가족관계에서 외로움과 지루함을 느낄 틈이 어디 있겠는가. 외양만 영웅이 아니라 내적으로 성숙한 영웅으로서 희생자 가족이나 지역사회에 모범이 되는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한 노력 없이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는 없다. 그냥 자신의 마음을 따라 충족하려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세상은 얼마나 무질서한 아수라장이 될 것인가.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그렇게 먹칠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악에 관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이 악을 저지르는 자는 의외로 원래 악한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고타는 하이쿠를 읊고 낭만을 아는 사람이지만, 천황의 명령을 따라야 된다는 명제 하에 사람의 목을 치는 기술도 마다하지 않고 배운다. 처음엔 속으로는 죽도록 겁에 질렸지만, 한 번 해냄으로써 죽어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 과정을 나카무라한테 얘기하는 장면은 끔찍하다. 그러니까 어떤 이의도 달지 말고 철도 완성의 임무를 마쳐야 한다는 말이다. 굶주림, 영양실조, 콜레라, 각기병 등 전염병, 폭력에 시달리다가 인원은 점점 줄어드는, 죽어도 불가능한 상황에 포로 백 명은 스리파고다패스 구간 근청의 캠프로 보내라는 명령이다. 버마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 약 150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한다. 기계나 연장도 추가 지급 없이 인력은 부족한 상태로 어쩔 수 없지만다른 길은 없다. 포로를 철도 건설의 원료에 불과하다는 그들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집착과 광기를 본다.



동료들의 죽음에 관한 상실감

 전쟁 포로가 되어 생사를 함께 하다보면 미우나 고우나 동료애가 싹트기 마련이다. 전쟁에 관련된 작품을 많이 접했지만, 이토록 처참한 내용은 처음인 것 같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희망을 떠올리며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하는 장면은 애잔하다. 덩치가 크고 건장했던 타이니가 일본인이 정한 할당량을 더 빠른 시간에 해내어 죽음을 목전에 둔 동료들의 미움을 받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점점 해골이 되어간다. 거기에 더욱 잔인해지는 경비병들의 매질까지,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다. 다키 가디너는 그가 싫지만, 그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한 명이 죽어나갈 때마다 자신이 죽어가는 것이다.


 다키는 그와 오리 알 한 개와 주먹밥 하나를 나누어 먹는 장면은 눈물 젖게 만든다. 타이니는 마치 성체를 받듯이 두 손으로 받아 둘이서 캄캄하고 축축한 어둠 속에서 한 입 두 입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는다. 생사를 같이 했던 동료 중 스케치 재주가 있던 토끼 헨드릭스, 괴저로 다리가 썩어 수술을 받던 잭 레인보우 등 하나씩 죽어간다. 활활 타는 동료의 주검을 본다. 그 상황을 에번스도 그 누구도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 끔찍한 공포에서 도망칠 길이 없고 인간이 숭배하는 어떤 신보다 폭력이 더 위대한 곳이다. 바지에 똥을 지리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던 다키는 똥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 에 절망하고 우리가 되어간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관한

일본의 패전으로 포로들의 지옥 같은 악몽은 끝이 난다. 그리고 이들을 삶과 죽음으로 갈라놓았다.


그들은 죽음의 냄새를 막으려고 담배를 피우고, 죽음이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농담을 주고받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되새기려고 음식을 먹었다. 다키 가디너는 자신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을 계산하면서 매번 자신의 운이 좋아진고 있다고 믿었다.’(P50)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서 온갖 것에 희망을 걸고, 순전히 환상에 대한 믿음으로 살았지만 운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잔인한 세월을 보낸 뒤 이제 트라우마로 고생한다. 가족과 불협화음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도 정상적이지 않다. 마음은 온통 동료들의 시체가 쌓인 정글에 머물러 있다.



 전범을 처벌한다는 신문기사가 나고 재판이 시작되지만, 고타나 나카무라는 그 벌이 미약하거나 피해간다. 그런 악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는데, 처벌은커녕 선한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 추악한 가식으로 무장한 선() 이다. 인간의 내면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환경에 재빠르게 적응하는 동물이 인간이라고 했던가. 천황의 명을 받들며 살기 위해 온갖 악행을 쌓더니, 이제는 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선을 가장한다.



 일본군의 경비병이었던 최상민의 삶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겁 많은 선량한 소년이 악의 우두머리의 하수인이 되었다가 사형수 신분이 되었다. 일본인 가정에서 하인으로 숙식과 매달 6엔의 봉급과 매질을 견디다가 매달 50엔을 준다는 말에 경비병이 된다.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로지 돈을 위해 살았던 그는 내 돈 50엔을 외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빈곤한 가정, 시대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로지 돈 만을 쫓은 삶이 이런 결과를 만든 건 아닐까. 학습한 악()은 그대로 전이된다.



 철도 라인의 삶이 선()상의 삶이라면 그 후의 삶은 원()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반복되는 삶, 죽음이 삶이 되고 삶이 죽음이 되고 그것이 계속된다. 여기서 에번스가 떠올렸던 빛이란 어둠의 그늘에서 간절히 바랐던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구에게 억압되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갈 자유, 자연속에서 호흡 할 자유 말이다. 전쟁의 한 가운데 포로가 되어 한 배에 탄 동료들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가 죽으면 내가 죽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하루하루가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가혹한 굶주림과 병약해진 몸으로 서로 살아남기 위해 견뎌내는 몸부림이 너무 가혹하다. 작가는 큰 틀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그 아래에서는 인간관계의 내면 심리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선과 악, 증오, 부끄러움의 내밀한 마음이 아프도록 절절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비교적 안정을 찾아가는 가운데 모든 것은 점점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조금씩 잊어간다. 선악의 주고받음도. 평온한 일상은 지루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시시포스가 절벽 꼭대기까지 바위를 굴려 올리는 것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중에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비인간적인 전쟁 범죄는 어떻게든 단죄를 받아야하며 그 기억은 잊어서는 안 된다. 연합군 중에 오스트레일리아 군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네들의 이기적인 광신을 위해 희생된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모르는 많은 상흔의 실상이 이렇게 문학작품으로 많이 나와야 한다. 마치 이건 꿈이 아닐까, 저 너머의 세계, 꿈에서도 만나기 싫은 세계를 들여다 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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