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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평점 :
2012년 6월에 읽고 두 번째로 읽게 되었다. 당시에도 먹먹한 감동과 함께 이런 일이 같은 인간에 의해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수용소의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나만 힘든 것처럼 여겼던 태도가 부끄럽게 느껴졌었다. 그때 좀 힘든 상황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겪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큰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전에도 이시형 박사의 번역으로 읽었는데 이 책 또한 그분의 번역으로 만나서 반가웠다. 까만 표지에 뚜렷한 금박의 디자인의 대비가 마치 죽음을 뚫고 나온 승리의 월계관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책의 내용은 첫째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둘째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셋째 비극 속에서의 낙관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익명으로 출판하려던 것을 친구의 권고로 초판이 출판되기 직전에 속표지에 이름이 들어감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어떤 명성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어떤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순수한 의도로 나왔고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인생을 살면서 여러 힘겨운 상황에 놓였을 때 삶의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1984년판에 부친 서문에 나온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에 따라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P9~P10)
저자가 평소 학생들에게 자주 해 준 이야기라고 한다. 이 책이 의도치 않게 베스트셀러가 된 데서 얻은 교훈과 연결 지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에서 나오는 역설 의도(paradoxical intention)’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지나친 주의 집중이 오히려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만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보다는 그 과정에 충실하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과정을 충실히 즐기다 보면 성공은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1.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수용소에서의 체험 이야기는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이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들고 들어와 그것을 베개 삼아 잠을 잘 잤다는 사람 이야기, 이를 닦을 수 없는 수용소의 규칙 때문에 심각한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잇몸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했다는 사례를 들어 인간이 얼마나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지 이야기한다. 또 죽음으로의 선발을 피해가려고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된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회교도’로 취급되어 가스실로 보내지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면도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야 하는 등 최대한 건강하게 보여야 한다. 어디서든 연기가 필요한 걸까,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났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던 장교의 손짓의 의미를 알게 된 이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이 찾아오고 무감각이라는 감정에 도달한다. 괴롭힘을 당하고 죽어가거나 죽은 것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게 되면서 더 이상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전처럼 다른 감정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우슈비츠에서 바바리아 수용소로 이송되는 도중 찬란한 석양빛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을 하거나 수용소 안에서 행해지는 예술 행위가 그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유머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건축 공사장에서 일을 빨리하라고 고함을 질러대거나 콩알을 더 먹기 위해서 '밑바닥에서 퍼' 달라는 말을 패러디하는 방식으로 유머를 이야기하며 견디고 있었다. 다른 수용소로 이동해서는 동료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이튿날 아침까지 꽁꽁 언 채 비를 맞으며 서 있어야 했지만 그 수용소에는 굴뚝이 없고 아우슈비츠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행복감을 맛보기도 한다. 그렇게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수용소의 일상을 살면서도 삶의 의미를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P110)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느낌이었을 것 같다. 아무리 시련이 한 사람의 인생을 단련시킨다는 말도 있지만. 수감자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생각이 부유하고 있을까,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물론 저자의 체험이다. 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에 심한 종기가 생겨서 극심한 통증을 걸으며 절뚝거리며 걸어간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사정없이 내리치지만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그것을 빵과 바꾸어 먹을까, 끊어진 신발 끈을 대신할 철사를 어디서 구할까,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수용소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는 카포는 없을까, 그 카포와 잘 사귀려면 어떻게 할까. 이런 하찮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 때 빅터 프랭클은 불이 환하게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 강단에 서 있고,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자신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하면서 현실의 상황과 고통을 이기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야기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죽음으로 이어진 사례도 이야기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P123)
니체의 말이다. 이 말은 비단 수용소의 절체절명의 상황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다가 해방의 자유를 맞이했는데도 환희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는 부분은 정말 안타까웠다. 살아남기 위한 목표 한 가지에 열중하다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천천히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다시 배워야 했다. 또 자유를 얻은 후에도 애타게 만남을 기대하며 상상했던 가족의 상실로 또 한 번 좌절하게 된다. 가족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주었는데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
2.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로고테라피는 환자가 이루어야 할 미래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하며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P163~P164)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P164)
‘로고테라피(Logotherapy)’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를 말하며 ‘빈 제3정신 의학파’로 부르는 이론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으로,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어떤 가르침도 아니고 설교도 아니며 비유하자면 화가라기보다는 안과 의사가 하는 일에 가깝다고 했다. 화가가 자기 눈에 비친 세상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라면, 안과의사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 주려는 것과 같은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에 의존해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인생에 책임감을 갖고 삶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깨는 느낌이다. 유한한 삶을 낭비하지 말고 덤으로 얻은 시간이라 생각하고 ‘지금’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로 여겨진다. 살면서 후회를 줄일 수 있는 진지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되었다.
로고테라피를 활용하여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P166)
이렇게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일을 하거나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시련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 도착하고 나서 ‘정신적인 자식’같은 원고를 잃는 고통을 당해야 했는데 물려받은 다른 수감자의 외투 속에서 찢어진 히브리 기도책 <셰마 이스라엘(Shema Yisrael)> 한 장을 발견하고 ‘살라’는 의미의 신의 계시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것과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또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잘 살아 남았고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했다. 이런 긴장은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well-being)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3. 비극 속에서의 낙관
이 내용은 1983년 6월, 서독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열린 제3회 로고테라피 세계 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쓴 것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의 비극적인 요소는 인간의 삶을 제한 할 수 있는 ‘고통, 죄, 죽음’을 의미한다. 이 모든 비극을 맞이한 상황에서 ‘네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가 있다고 인지하는 것을 전제한다. 중요한 것은 낙관적인 생각이 명령이나 지시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을 때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로고테라피가 오늘날 미국 문화가 지니고 있는 건전하지 못한 성향을 근절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오늘날 미국에는 자신의 시련을 자랑스러워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것을 품위 있는 것으로 만들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치유 불가능한 환자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불행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있다.”(P209)
에디트 바이스코프 요엘슨은 로고테라피에 대한 희망을 위와 같이 피력했다고 한다. 베트남전 전쟁 포로생활로 엄청난 고문과 지병 등으로 스트레스을 겪었음에도 성장에 도움이 되는 체험이었다는 연구 사례와 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목 아래 부분이 마비된 제리 롱의 사례를 보더라도 시련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드시 시련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이후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히로시마 이후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되었으니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를 맺고 있다. 네 군데나 전전해야 했던 절체절명의 강제 수용소 체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독자가 있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크다고 느꼈던 자신의 고통이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 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P125)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