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 이야기 - 세상을 담고 싶었던
박성우 지음, 김소라 그림 / 오티움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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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록빛 표지가 싱그러움과 함께 시인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이자 아홉 살 마음 사전으로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까지 사랑받는다는 박성우 시인을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컵 이야기작품 소개를 맨 처음 접하고는 어느 그릇에 담겨도 유연하게 적응하는 물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었다. 역시 시인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지 못하는 사물을 가지고도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구나 감탄했다. 몇 해 전 코끼리의 마음으로 만난 김소라의 그림과 함께 어우러진 동화여서 더욱 시적인 이미지가 느껴졌다. 오랜만에 읽은 동화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위로의 시간이 되었다. 박성우 시인은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등 다수 있고 산문집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 청소년 책 사춘기 준비사전등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과 소년시집, 동시집 등 다양한 작품을 펴냈다.

 

 소풍을 나왔다가 버려진 컵 커커가 자연 속의 동식물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위안을 주고 자신도 함께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곤충이나 식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투영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랫동안 사용했던 물건들을 버리곤 한다. 그런데 박성우 시인은 버려진 컵 커커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여러 동식물들의 만남과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 준다. 쓸모없는 존재처럼 버려졌지만 다른 친구들을 위로해 주는 넉넉한 마음이 있었다.  따뜻하고 시원한 마실 것을 담아 주었던 머그 컵 커커가 어느 날, 미루나무 아래에 버려진다. 마치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내쳐진 사람의 신세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해서 별로 낙담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그렇게 되었으니까. 사람들이 사는 집안에만 있다가 밖에서 느끼는 햇살과 풀냄새, 강바람 소리가 새롭게 느껴진다. 상황이 변화되었으면 이제 자신의 태도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컵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의 전환에 이르게 된다.

 

 맨 처음 나비 나나를 만난다. 언제나 낯선 만남은 어색하기만 하다. 다행히 배추흰나비는 쑥스러워하는 커커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커커에게서 꽃냄새가 나고 하얀색이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해 주자 둘은 금세 친해진다. 나나는 자신은 원래 털이 숭숭 난 애벌레였고, 커커는 진흙덩이였다는 자신의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털어놓으며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이어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외로움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 언제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외롭다는 일개미 일일이, 남들과 비교하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참게 차차, 짝을 찾고 싶은 딱새, 외로움에 절어 있었던 깡충거미 외로로, 신나는 모험을 즐기는 땅강아지 삽삽이, 무엇을 보아도 감탄하다가 울음을 멈추지 않는 민달팽이 핑핑이, 나팔꽃 모모, 노래를 못해서 자신감이 없다는 귀두라미 뚜뚜, 뭐든지 당연히 여기던 자신의 이기심을 반성하는 도마뱀 도도를 만난다.

 

 커커는 이들을 품어주는 고민 상담소이자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언제나 외로웠던 일개미 일일이는 진딧물의 꽁무니에서 단물을 빨아내어 어린 애벌레들에게 줄 먹이를 마련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병정개미가 되고 싶었지만 태생이 일개미라서 처음부터 꿈꿀 수 없는 일이었다. 까다롭게 굴며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진딧물에게 화가 나서 무작정 걷다가 하얀 컵 커커를 발견하고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느라 힘들었던 사연을 모두 털어놓으면서 속이 후련해진다. 그러다가 개미함정에 빠졌다가 일개미 동료들에게 구출을 받던 일을 떠올린다. 자신이 받은 고마움은 잊어버리고 불평불만에 빠져 자기가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결코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리저리 휘둘리면서도 참아내며 하루하루 버텨내는 우리의 미생들의 일상이 겹쳐졌다.

 

나한테도 발이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어, 하지만 커커는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며 사는 일만큼 귀한 일도 드물 것이라는 것을 되짚어본다. 누구인가의 든든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건 귀한 일이야, 슬프거나 외롭고 힘든 이가 찾아오면 언제든 그들에게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로 당분간은 살아가야겠다고 커커는 다짐한다.’(P137)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땅강아지 삽삽이를 보면서 커커는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숙명을 가진 커커는 마음을 돌이킨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다른 친구들에게 힘을 주는 삶도 귀한 일이라고. 필요한 이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참게 차차의 삐딱한 자세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커커가 모든 불만을 들어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람의 집에 살 때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끊이지 않게 들었던 커커는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누구보다 익숙했다. 딱새 따따가 어렵게 만나 사랑하게 된 짝 띠띠와 자신의 잘못으로 헤어진 이야기를 털어놓자 상대를 어떻게 배려하고 존중하며 사랑해야 하는지 조언을 해준다. 다시 만난 딱새부부에게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도록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으며 실컷 울고 싶은 민달팽이 핑핑이에게는 울음통이 되어 준다.

 

 민달팽이 핑핑이의 감성 폭발 이야기는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온갖 것을 보고 감탄하다가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원추리 꽃이 핀 걸 보고 대견해서 훌쩍거리고 노루가 발자국에 마실 물을 남겨 주어 고마워서 운다. 칡꽃 냄새가 너무 좋은데 혼자서 그렇게 좋은 향을 맡아야 하는 게 아까워서 운다. 땅강아지가 구렁이 굴에서 쫓겨나오는 것이 너무 측은해서 운다. 맛있는 상추를 먹다가 상추가 불쌍해서 울고 가녀린 나팔꽃이 꽃을 피운 것에 감동하며 울고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며 울어대는데 정말 못 말리는 민달팽이다. 점점 감성이 메말라가는 우리들에게 소박한 것에 감탄하는 법을 배워보라고 시인은 말하는 듯하다.

 

 

 

 열 번째 주인공은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를 보고 뭐든 당연한 듯 여기던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반성하고 자신의 뒷모습이 아름다워졌으면 하는 도마뱀 도도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습관처럼 마실 것이나 담던 커커는 여러 친구들을 만나던 시간을 되새겨본다. 비운다는 것은 채울 준비를 마쳐두었다는 것, 자신의 안쪽을 비워두었기에(P212)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는 것에 흐뭇해한다. 버려진 컵이었지만 많은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며 더욱 넉넉한 곁을 내주었다. 아무리 부족하고 나약해 보이더라도 누구나 한 가지의 장점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쓰임새를 찾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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