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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 - 삶의 의미를 더하는 작가의 말 ㅣ 지노 지혜의 말 시리즈
케빈 니퍼트 엮음, 금정연 옮김 / 지노 / 2020년 8월
평점 :
이 책 이벤트가 나왔을 때 내가 꼭 읽어야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제목도 끌렸지만 이름만 들어도 술렁거리게 하는 작가들이 원고 수정 문제로 편집자와 옥신각신했다는 등 책 소개를 보고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풍성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상상하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받고 보니 생각보다 작은 판형에, 짧은 문장의 원문과 번역 문장으로 된 구성을 보고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금세 읽을 수 있어서 좋긴 하겠다. 바쁜데 잘 됐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그런데 웬 일, 반전처럼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속에 파고들어왔다. 짧은 문장 속에 숨어있는 글쓰기의 기쁨과 고뇌에 깊은 공감을 하며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부분인 역자 후기를 읽고 있었다.
소개하고 싶은 문장이 너무도 많았지만 그 중 많이 공감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했던 문장들을 소개해 보겠다.
Your mother will
not make you a
writer. my advice
to any young person
who wants to write
is: Leave home. -Paul Theroux(1941~)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작가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작가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하나다.
집을 떠나라. (폴 서루(1941~)(P42~43)
작가가 된다는 것은 집을 떠나는 것처럼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일이 아닐까. 글을 쓴다는 것은 기꺼이 혼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이다. 꼭 집을 떠나야만 작가가 되는 건 아니겠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과 결별을 하는 것, 어떤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THE FIRST
THING A
WRITER
HAS TO DO
IS FIND
ANOTHER
SOURCE
OF INCOME.
작가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다른 수입원을 찾는 것이다. - 엘렌 길크리스트(1935~) (P56~57)
너무 짧은 문장으로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다니, 너무 냉정하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냉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말인지도 모른다. 어느 사회든 어느 분야든 파레토 법칙이 성립되지 않는 예가 없을 정도니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작가가 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가 소원인 사람들은 최소한 이 말을 명심해야겠다.
I really want to
escape muyself as
much as I can
myself as the artist,
or as the writer,
or as the thinker.(Chan-Rae Lee(1965~)
나는 가능한 한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싶다.
예술가로서의, 작가로서의, 사상가로서의, 모든 나로부터,
(이창래(1965~)(P88~89)
글쓰는 것만 빼면 작가는 정말 좋은 직업이라는 말을 읽은 적 있다. 출퇴근에 매이지 않는 작가란 얼마나 자유로운 직업인가. 하지만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싶다'고 한다. 글쓰기라는 중압감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대변하는 말인가.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일이 되면 재미가 없어지고 무거움이 되겠지. 어떤 일이든 그렇지 않을까. 드라마 작가 최연지는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에서 한 장의 글을 쓰는 일이란 한 마지기의 밭을 매는 것과 비슷한 강도의 노동이라고 했다. 그것도 반드시 혼자서 해야하는 노동집약적 작업이 집필이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한 마지기의 밭을 매 본 적 있는지 묻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한다. 실제로 경험해 보았다면 그래도 글쓰기가 쉽다고 하지 않을까. 어쨌든 그만큼 글쓰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표현한 거겠지.
The first draft is
torture! It's so hard
for me. Once I've
written the first
draft, I Have the
pieces to the puzzle,
and I love to put it
together and make
it into a whole.- Judy Blume(1938~)
초고는 고문이다! 정말 너무 힘들다. 일단 초고를 쓰면 내 손에는 퍼즐 조각이 생긴다.
나는 그 조각들을 맞춰 커다란 전체를 완성하는 것을 사랑한다.
- 주디 블룸(1938~) (P144~115)
초고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고문에 비유했을까. 뒤에서도 초고에 관한 글이 한 번 더 언급되겠지만 어쨌든 쓰레기 같은 초고를 계속 쓰는 과정을 통해서 문장은 유려해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 권의 책이 완성될 것이다.
How to write: butt in chair.
Start each day anywhere.
Let yourself do it badly.
Just take one passage
at a time. Get butt back
in chair. - Anne Lamott(1954~)
글을 쓰는 방법:
엉덩이로 써라.
매일 어디서든 시작하라.
멋대로 쓰도록 내버려둬라.
한 번에 한 구절씩 써라.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라. - 앤 라모트(1954~) (P220~221)
참 명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공부도 엉덩이로 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주디 리브스는 『365일 작가연습』 에서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위대한 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썼는지 알려준다. 아침 9시면 어김없이 펜과 공책을 들고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썼다는 다니엘 스틸, 그는 새벽 3시에 찾아오는 영감을 믿지 않았단다. 25년 동안 매일 썼던 토마스 만, 1800편의 시를 썼지만 생전에 발표된 시는 고작 7편에 불과했다는 에밀리 디킨슨, 3주만에 『변신』을 완성했다는 카프카, 매일 혼자 방에 틀어박혀 10~12시간씩 글을 쓴 이사벨 아옌데, 500권이 넘는 책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 등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 모두 진득이 앉아서 엉덩이로 썼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작가들이다.
Get a dog…
Being a dog owner
requires a similar
form of dissciplme
[to writing]. You wake
up every morning.
You walk the dog.
You do this whether
you do this whether
you're tired, depressed,
broke, hung over,
or have been recently
dumped. You do it. - Jennifer Weiner(1970~)
개를 키워라 …
개를 기르는 일은 (글쓰기와)
비슷한 규을을 필요로 한다
당신은 매일 아침 일어난다.
당신은 개를 산책시킨다.
당신은 지쳤거나, 우울하거나,
절망하거나, 숙취가 있거나,
최근에 차였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없이 그렇게 한다.
당신은 그것을 한다. - 제니퍼 와이너(1970~) (P226~227)
'개를 키워라'는 말로 규칙적인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애완동물, 반려식물을 키우는 일은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규칙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때맞추어 밥을 주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고 산책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것처럼 글쓰기도 비슷한 규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하루의 시간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Here's a short list
of what not to do
when you sit down to
write. Don't answer t
he phone. Don't look
at e-mail. Don't go
on the Internet for
any reason. -
Dani Shapiro(1962~)
여기 당신이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을 때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의
짧은 목록이 있다.
전화를 받지 마라.
이메일을 확인하지 마라.
어떤 이유로든
인터넷을 하지 마라. - 다니 사피로(1962~) (P228~229)
이 부분은 정말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메일을 열어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 두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 버렸는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 한다고 붙잡을 수도 없다. 글을 쓸 때는 글쓰기에 집중하자. 이건 내가 명심해야 할 말이기도 하다.
YOU CAN ONLY WRITE
REGULARLY IF YOU'RE
WILLING TO WRITE
BADLY. YOU CAN'T
WRITE REGULARLY
AND WELL. ONE SHOULD
ACCEPT BAD WRITING
AS A WAY OF PRIMING
THE PUMP, A WARM-UP
EXERCISE THAT ALLOWS
YOU TO WRITE WELL. - jennifer Egan(1962~)
규칙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형편없는 글을 기꺼이 쓸 수 있어야 한다.
규칙적으로 잘 쓸 수는 없다.
못 쓴 글을 펌프의 마중물로,
잘 쓸 수 있게 하는
몸풀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 제니퍼 이건(1962~) (P236~237)
쓸 때마다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잘 써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안 써지는 날이 있다. 항상 잘 써진다면 작가 노릇하기가 식은 죽 먹기겠지.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처음엔 쓰레기 글을 썼다고 하지 않은가. 형편없는 글을 쓰는 시간을 보낸 만큼 문장은 다듬어질 것이다. 다음 글을 잘 쓸 수 있는 몸풀기로 받아들이라는 말에 위로를 받는다.
You can
always fix
bad pages.
You can't fix
no pages. - Harlan Coben(1962~)
못 쓴 페이지는 언제든지 고칠 수 있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페이지를 고칠 수는 없다. - 알란 코벤(1962~) (P238~239)
더 말해 무엇 하랴. 써야만 고칠 원고도 있다는 것이다. 모니터의 빈 화면을 마주할 때 참 막연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씩 쓰다보면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고 빼곡하게 채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그러니 무조건 그냥 앉아서 써야 한다.
이 책에는 역사상 존경받는 문인부터 촉망받는 신예 작가까지, 소설가, 에세이스트, 저널리스트, 문법학자, 교사 등이 전해주는 글쓰기의 기쁨과 고뇌 위트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수많은 글쓰기 관련 책을 읽어왔다.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은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과 이로운 점을 알려주는 책이었고,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글쓰기의 태도와 자세에 관한 책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 책은 작가들의 일상인 글쓰기에 녹아든 명언 같은 것이었다. 글쓰기는 최고의 자기계발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크고 작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의 글쓰기 등 글쓰기의 목적은 다양하다. 그런데 직업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 은 어떻게 말 할 수 있을까. 이 책에 언급된 작가들의 문장을 통해서 느낀 것은 글을 쓴다는 것은 또 하나의 ‘삶’ 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네 삶의 과정에 희로애락이 반복되듯이 작가들의 글쓰기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삶이 계속되는 한, 글쓰기도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물론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때 글쓰기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지금 책쓰기를 위한 글을 쓰고 있어서 더욱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한 권의 책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원고를 쓰고 그것을 읽어주는 편집자가 있고 수정에 수정을 거치고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한 권의 책이 나온다는 것. 그럭저럭 술술 써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엉뚱한 내용을 쓴 원고를 보냈다가 민망한 마음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렇게 진땀나는 과정도 모두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과정이었다. 편집자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책을 좋아하고 활자 자체를 좋아하고 갓 나온 새 책 냄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감성을 가진사람이 편집자이고 출판사라는 걸, 나아가 책 한 권으로 많은 이들을 꿈꾸게 하고 싶다는 사명감을 가진 분들이 출판 일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편집자님께 정말 감사드린다.(너무 바쁘셔서 이 글을 못 보시겠지만) 그래서 이 책은 원고를 탈고하고 책이 나오기까지 나에게 많은 힘과 응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매일 써라, 절대 멈추지 마라.(릭 바스(1958~)
정리하자면, 이 책의 특징은 글쓰기에 관한 작가들의 함축된 짧은 문장이 원문과 번역 문장으로 함께 나와 있어 영어공부도 되는 일석이조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이자 편집자인 케빈 니퍼트와 역자 모두 디테일한 문장 속에서 뽑아낸 명언을 책으로 엮고 번역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직역으로 번역한 부분도 있다고 하니 이 점 감안해서 읽으면 좋겠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고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옆에 끼고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문장 속에 감탄과 위트가 넘친다. 이 책 이벤트 때 출근할 때마다 울었다는 역자 소개를 접하고 빵 터졌는데 역자 후기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좀 한가해지면 역자가 쓴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