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22
헤르만 헤세 지음, 김세나 옮김 / 별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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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헤세의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쉽게 읽히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겪어보았을 학창시절을 다룬 이야기이고, 그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우쭐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어린 소년에게 그것이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 또 위험한 일인지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한스 기벤라트는 그 마을에서 이전에도 없던 신비로운 불꽃같은 존재였다. 학교 선생들이나 교장, 이웃 사람들, 목사 등 모두가 한스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하고 특별한 인물이 될 거라고 믿었다. 해마다 주()에서 치르는 시험을 거쳐 신학교에 들어가고 튀빙겐 대학에 가서 목사나 선생이 되는 소위 안정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의 유일한 후보였다. 시험이 가까워지자 한스의 불안감은 가중된다. 시험을 치르고도 안절부절 못한다. 다행이 2등으로 합격한 한스는 모든 이의 축하를 받으며 그 보상으로 다른 학생보다 1주일 먼저 방학을 맞이하게 된다.


  낚싯대를 만들어 낚시를 하며 오랜만에 맞는 해방감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전 날 잡은 물고기를 목사에게 주러갔다가 신학교에 가서 여유롭게 보내려면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등 공부를 미리 해 두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듣는다. 또 교장선생이 집으로 찾아와서 신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려면 수학 공부를 해야 한다고 권유한다. 한스는 마음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거절하지 못한다. 더구나 왜 그렇게 공부해야 하는지 이유는 알지 못한 채 얌전하게 따르기만 한다. 오래전부터 기대를 받아왔던 터라 우쭐한 마음 또한 갖고 있다.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의 앞날의 꿈과 계획을 생각해 보았다면 무작정 어른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을 텐데. 가엾게도 한스는 어머니가 안 계시고 아들의 앞날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상하고 현명한 아버지도 아니었다.


  신학교에서 들어간 한스는 9명의 동료와 헬라스 방에 배치된다. 슈바벤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한스는 공부만 할 줄 알았지 몸도 너무 약하고 마음도 여리다. 금세 어울려 노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수줍은 성격인 한스는 다가가지 못한다. 누군가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기를 기다리는데... 이름난 슈바르츠발트 가문에서 온 헤르만 하일너는 한스에게 바보처럼 공부만 한다고 비난하지만 한스는 그가 싫지 않다. 주관이 뚜렷하고 열정적인 태도와 시인 기질을 보이는 자유분방함까지 지닌 하일너에게 점점 매료된다. 워낙 거칠 것 없이 자유분방한 하일너는 루치우스와 싸우다가 교장의 방에 넘어지게 하는 바람에 홀로 감금당하는 벌을 받게 된다.


  하일너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하면서도 부끄러움 때문에 용기 있게 나서지 못하다가 배신하게 된다. 그 사이 같은 방 친구 힌딩거가 살얼음이 언 연못에서 빠져 죽는 사건이 발생하여 아이들은 충격에 빠진다. 친구의 죽음을 본 후 한스는 하일너에 대한 죄의식으로 더 불안한 마음이 되었는데 하일너를 찾아가 진정으로 사과를 하고는 둘은 단순한 우정을 넘어선 첫사랑에 빠진 연인 같은 사이가 된다. 당연히 성적은 떨어지고 더 이상 모범생이 아니게 된다. 교장은 성적이 떨어진 이유를 묻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충고하며, 하일너와 멀어지기를 권하지만, 비겁하게 친구를 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교장과 선생들은 한스에게서 관심을 거둔다.


  그런 중에 하일너는 한스와 산책을 했다는 이유로 다시 감금되는데, 도주한 사실이 밝혀져 결국 퇴학 처분을 받는다. 이 무렵 한스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헛것이 보이는 등 건강 상태의 큰 변화가 찾아온다. 이제 공부에도 아무런 희망을 걸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으로 집에 돌아오게 된다. 너무나 여린 영혼인 한스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삶이었다. 어쩌다 하일너와 친해져서 공부를 망쳤을까. 자신이 갖지 못한 하일너의 강한 성격에 매료된 것일까. 따뜻한 사랑에 굶주렸던 한스는 무뚝뚝한 아버지에게 칭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맹목적으로 공부했던 것이 아닐까. 학교 선생과 아버지, 어른들이 자신의 명예와 욕심을 위해 한스를 혹사시켰고 병들게 한 것이다.


  유년시절에 자주 놀던 곳을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참 안타까웠다. 마음껏 뛰 놀고 쉬게 했어야 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마음이 싹트듯이. 가끔 희망에 차 있다가도 다시는 어린아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이야기는 낚시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강에서 한스의 주검이 발견되는 비극으로 마무리 된다. 지난날의 수치심과 자책으로 괴로웠던 마음,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온갖 비웃음을 흐르는 강물에 씻어 낼 수 있었을까. ‘착한 아이를 강요받아야 했던 지친 영혼은 삶의 수레바퀴 아래서 고단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저기 가는 저놈들이 한스를 이렇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고도 할 수 있죠.”

……

이젠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당신이나 저도 아마 이 아이한테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게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을까요?”(P237)


  평소에도 한스를 아끼던 구둣방 아저씨가 던지는 말이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그럼에도 한스의 아버지는 아무런 뉘우침도 없이 선생들을 두둔한다. 자녀는 부모의 꿈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행복하게 살다 갈 권리가 있다. 자녀를 위해서라는 명제 아래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성적과 규칙만을 내세우기보다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며 우정을 나누는 일에도 관대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하일너의 강한 성격이나 자유분방함이 선생들에겐 눈의 가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개성을 고려하고 건강상태를 신경 쓰거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칠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읽으면서 학생시절의 나와 부모입장의 나를 돌아보았다. 나의 시절은 흘러갔지만... 나는 아이들의 개성과 그들의 꿈을 우선시 하였는가? 간혹 세간의 행복론을 들이대며 안정적인 삶이 최고라고 말하며 그것을 따르도록 해서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았는가? ... 몰아붙이기보다는 기다리고 지켜보며 믿어주는 태도가 자녀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라고 다시금 깨달았다.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들을 위하여 제대로 된 교육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헤세는 자신의 사춘기 시절의 경험을 이 작품에 투영하여 일률적이고 규격화된 인물을 길러내는 제도권 교육의 한계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백년도 넘은 이 작품이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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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페스트 (양장) - 194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변광배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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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 시절에 이 작품을 읽었으니 꽤 오래 되었다. 섬뜩하고 두려운 이야기지만 우리와는 관계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오랜 시간 지난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루는 중에 다시 읽은 이 작품은 다르게 다가왔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안전문자,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실천하며 답답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터라 더 실감나고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알제리 해변에 있는 오랑 시는 비둘기, 나무, 정원이 없는 삭막하고 보기 흉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지구촌 곳곳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대비를 이룬다. 바이러스는 국경도 인종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4월 어느 날 진료실 계단에서 죽은 쥐 한 마리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쥐가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니어서 장난꾸러기들의 소행이려니 가볍게 여겼는데 어느새 온 동네 사람들이 쥐 이야기를 하게 된다. 며칠 사이에 지하실에서 다락까지, 계단마다 이웃집 쓰레기통에도 온통 쥐들로 가득하자 시민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힌다. 시청 구서과(驅鼠科)에 전화했지만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명령을 받아야 조치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듣는다. 그러던 중 기이한 병으로 수위 미셸이 죽음으로써 공포심은 커지고 심상치 않은 사태를 자각하기 시작하는데. 이야기를 읽으면서 난해하게 느꼈던 점은 서술자를 설정한 점이었다. 모호한 인물을 서술자로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몰입할 수 있는 주제의 이야기임에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야 했다. 처음엔 보건 위생대를 조직하고 리외를 돕는 장 타루인가 했다. 이건 나중에 밝혀지는데 의사 리외였다. 즉 페스트의 최전선에서 일하면서 그의 시선으로 이 연대기를 써 나가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리외는 수위의 시신을 격리시키고 서혜부 열병에 대해 물어보는 등 여러 의사들에게 조사해서 얻은 결과, 치명적인 병임을 인식하고 의사협회 회장인 리샤르에게 새로운 환자들의 격리를 요청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도청에서 조치를 취해야 할 거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사건의 제보가 들어오면 자세히 검토하여 신속하게 대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책임 떠넘기기식의 늑장 대응하는 동안에 상황은 심각해진다. 비슷한 사례로 코로나 바이러스 발원지라는 우한에서 30대 의사가 그 위험성을 알렸다는 이유로 추궁을 받았다는 기사가 생각났다.(나중에 사과했다는 기사도 나왔지만.) 언제나 큰일이 일어나는 전조는 별일 아니라는 가벼운 마음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를 만드는 것 같다.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서야 페스트 사태를 공표하고 도시를 폐쇄하게 되는데...


  이 소설의 전개방식에서 특이한 점은 타루의 수첩에 묘사 된 이야기가 이 연대기를 완성하는데 꽤 많은 부분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보기 흉한 도시에 와서 나무가 없는 시내라든가 볼품없는 집 부조리한 도시 구획 등 전차나 거리에서 들었던 대화를 기록하는 등 별 의미는 없어 보이는 것까지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오랑시와 사람들의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쥐 이야기에 심지어 의사 리외의 자세한 묘사까지... 아마도 오랑 시에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 일까 궁금했다. 그 또한 페스트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있었고, 어느 날 리외를 찾아와서 이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서 보건 위생대를 조직하고 선두에 서겠다고 제안한다.


  ‘페스트라는 갑작스런 재앙을 맞은 상황에서 사람들의 태도와 반응은 참 다양하다. 우리가 맞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발 빠르게 대처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눈덩이처럼 확산되어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서는 몇 명의 중심인물들의 태도와 반응을 볼 수 있는데 페스트에 맞서는 유형의 사람은 파늘루 신부와 신문기자 랑베르이고 이러한 부조리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인물로는 의사 리외를 비롯하여 타루와 시청 서기 그랑을 들 수 있다. 그는 페스트 환자를 이송하거나 사망자용 차량을 운전하다가 통계 작업까지 하겠다고 나서며 위생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가 된다. 또 어느 팀에도 끼지 않고 페스트라는 상황을 즐기는 듯한 코타르가 있다. 재앙의 와중에 불의의 이익을 챙기는 이기심이 엿보이는 인물이다. 어느 사회에나 있긴 마련인.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가 찾아온 것은 성찰할 때가 왔기 때문이라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신앙의 힘을 강조한다.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이른바, ‘집단적 처벌을 하기 위해서 재앙이 찾아오는 거라고 말했지만 오통 판사의 어린 아들이 페스트로 고통 받다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본 후에는 심경의 변화가 온다. 결국 신앙의 힘으로는 페스트를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함께 이겨내자고 설교하며 남아 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부르짖지만 그는 페스트에 걸려 치료도 거부한 채 죽어간다.

랑베르는 아랍인의 보건 상태를 취재하러 왔다가 오랑시에 갇히게 된다. 파리에 아내를 두고 왔기에 랑베르는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해서 빠져나가려고 애쓰다가 마음의 변화가 오고 리외를 도와 보건 위생대에 합류하게 된다. 사랑과 행복을 우선시하고 이방일 뿐인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리외를 향해 추상운운하던 랑베르가 바뀐 것이다. 페스트의 공포로 뒤덮인 오랑 시민들의 고통스런 상황을 보고 자각을 한 것이다. 혼자만 행복한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뒤늦게라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분명 희망적인 일이다.


  코로나 사태를 맞이한 지 벌써 서너 달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평범한 시민으로써 단지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건강유지에 힘쓰고 어서 물러가기를 바라면 될 뿐이다. 이런 상황만으로도 정말 지루하고 답답한 나날이다. 하루빨리 마스크 쓰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는 희망만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의료의 최전선에서 환자들을 돌보거나 환자가 되어 격리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무겁다. 여기서 의사라는 본분을 다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리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처럼 첨단 장비와 시스템이 있는 병원도 아니고 왕진을 하면서 페스트와 투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4월에 시작된 페스트는 이듬해 1월이 되어서 막을 내리고 오랑 시민들은 축제 분위기로 환호하는데 정작 리외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자신의 왼팔처럼 도와주던 타루가 페스트에 걸려 죽음을 맞는다. 그것도 페스트가 막을 내린 마당에. 또 아내의 부고를 받았는데 이미 일주일 전의 일이라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환자를 돌보느라 집에도 가지 못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에 대한 기사가 겹치는 부분이다. 진단을 하고 선고를 내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격리 명령을 할 뿐 의사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결국은 승리했지만 안타까운 반쪽의 승리였다.


'페스트 간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옷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어서, , 지하실, 짐 가방, 손수건, 폐지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그것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낼 날이 분명 오리라는 사실을 말이다.’(P410)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은 언젠가 페스트가 다시 찾아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페스트는 단지 전염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잊을 만하면 한번 씩 터져 경악케 하는 온갖 사회악 등을 접하게 되는 것을 보면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몇 달 째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기는커녕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다. 마치 사망자 수를 카운트 하듯이 쏟아내는 뉴스를 보며 놀라는 일상이 되었다. 정말 이게 현실일까 싶을 만큼. 그러면서도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되는 이런 현상에 무뎌지는 것이 아닐까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이런 무뎌지는 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집단의 경우만이 아니라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흉악한 페스트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로 들렸다.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상징적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더구나 초판본으로  다시 읽을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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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마르크 로제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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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소재로 쓰인 이야기는 언제나 따뜻함과 희망을 느끼게 한다. 저자 마르크 로제는 지금까지 약 27년 동안 대중 낭독가로서 프랑스 전역의 서점과 도서관 등을 순회하며 낭독회를 열었으며 직업적인 낭독가로서 세계 곳곳을 누비며책과 함께하는 프랑스 일주등 여행기를 다수 썼고 이 작품은 그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도 책을 읽어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느껴지는 낭독가가 존재한다는 게 신기했다. 더구나 소외계층에 속할 수 있는 병약한 노인들이 사는 수레국화라는 요양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것도. 오랫동안 낭독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책과 사람을 매개로 소통의 장을 열어주는 그레구아르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책을 읽어주는 낭독자로서의 그레구아르와 소통하고 변화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흔한 교훈적인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엉뚱 발랄한 사건과 문체를 도입한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작품 속 화자는 이제 열여덟 살 청년인 그레구아르다. ‘바칼로레아에 통과하지 못한 그레구아르가 나무를 좋아한다고 하니, 진로상담 선생님은 바칼로레아를 준비해서 산림청에 들어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어처구니가 없어 한다. 엄마의 조언으로 용케 시청 녹지과에 일자리를 얻게 되는데 금세 넌더리가 나서 나오게 된다. 이번에는 시청 사회복지과 부책임자인 테롱 씨를 알고 있는 엄마의 백으로 수레국화요양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하는 잡역꾼 취급을 하며 스스로도 우습게 느껴진다. 그러는 중 주방에 사람이 비어 대신 그 자리를 메우러 갔다가 28호실의 피키에 할아버지를 만나고 낭독가가 되는데.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그레구아르였기 때문에, 사람의 일은 참으로 알 수 없다는 말에 더욱 공감했고 그레구아르가 어떻게 변화될지 궁금해 하며 몰입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할아버지와 비좁은 방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그레구아르는 놀라는 눈치다. 삼천 권의 책으로 빼곡한데도 갖고 오지 못한 이만 칠천 권의 책 때문에 환상통을 느낀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지만, 한 권의 책도 없는 그레구아르가 그의 뼈아픈 통증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레구아르를 할아버지 방으로 가도록 끌어당기는 어떤 힘을 스스로도 느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방으로 천장까지 빼곡한 책만 보아도 배부른 듯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그레구아르는 의식적으로 만지거나 펼쳐보지도 않고 조심에 조심을 한다. 할아버지도 책 얘기는 뻥긋도 하지 않는데, 서로 기 싸움이라도 벌이는 듯 긴장되는 분위기와 뻔한 속셈에 웃음이 났다. ‘바칼로레아에 떨어졌다고 해서 그런 눈치도 없는 그레구아르는 아니다.

 

피키에 씨, 당신은 책을 읽지 않는 하루는 헛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요, 제가 피키에 씨를 알게 된 이후로 책 읽으시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걸요.”

……” (P24)

 

  학창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책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지만 그레구아르는 자기도 모르게 책에 매료되어 간다. 하지만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무뚝뚝하고 시건방진 목소리로 이렇게 묻자, 할아버지는 한참 만에 이제는 손이 떨리고 눈에 녹내장이 와서 읽을 수 없고 남은 건 음악뿐이라고 한다. 순간 너무 당황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가슴이 미어지는 그레구아르다. 이틀 후 할아버지에게 사과를 하며 한 시간씩 책을 읽어드리겠다고 제안을 한다. 자기도 주방에서 일을 한 시간 덜 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일 아니냐고. 원장 마송 부인은 가뜩이나 직원도 모자라는 판에 이건 특혜라며 마지못해 허락하는데... 이리하여 그레구아르는 책을 읽어주는 낭독가가 된다. 무엇보다도 주방 일에서 한 시간 동안 해방이 된다는 기쁨이 더 크다.

 

  드디어 책을 읽어주기로 약속 한 날이 되어 할아버지 앞에 앉았는데 중압감이 밀려오고 중학교 수업시간에 혼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 할아버지가 내민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오랜만에 책을 든 그레구아르는 처음에 버벅거리지만 이내 주인공에게 동화된다. 두려움, 불안, 부끄러움 등을 느끼면서도 결국은 감동을 받고 금세 한 시간이 지났음을 알고 스스로 대견함을 느낀다.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여름 휴가철이 되면서 갑작스레 세탁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온갖 냄새나는 옷가지를 수거하고 세탁해서 가져다주는 일이 지옥같이 느껴질 만큼 힘든데, 세탁장 책임자 다니엘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면서도 잘도 참는다. 책을 읽어주는 것을 질투를 하는지 먹물 선생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기본이고 그렇게 월급을 받는다고 분풀이를 한다. 젊은 그레구아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면서 뛰쳐나가지 않았는지 신기할 정도로 잘도 참아 냈다.

 

책읽기는 신성한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꾹 참는다. 그러면 매번 효과를 보는데,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던 모든 매듭들이 조금씩 조금씩 풀린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폭군이 나에게 가하는 그 모든 모욕들이 하나하나 지워진다. 낭독이 끝날 때쯤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화가 모두 사라진다. ‘수레국화와 나와 다니 사이에 얽힌 문제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몰입하면서 나는 모든 걸 잊는다. 낭독을 마치는 순간, 나는 망각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온다. 씻기고 정화된 채로 행복한 현실로.’(P44~45)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란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더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타자인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행위와도 같은 거지. 설령 그저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해도 마찬가지야.”(P53)

 

  다니에게 받은 정신적 상처를 치유 받은 듯해서 다행이었다. 그레구아르는 세탁장의 악몽을 할아버지에게 모두 털어놓고 할아버지는 자신이 동성애자였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내력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놀라웠다. 심했던 파킨슨병의 증상이 어느새 눈에 띌 정도로 좋아졌다. 그저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레구아르는 이전과 달리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책을 읽어준다는 소문을 듣고 할머니들도 그레구아르에게 부탁을 해 온다. 이제는 오전에는 주방 일을 하고 오후에게 홀에 모인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게 된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향해 기대감을 갖고 시선을 집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것이 현실의 요양원의 풍경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무기력한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라, 현재를 즐겁게 살아가고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그레구아르를 단순한 낭독자로 놔두지 않는다. 마치 운동선수를 가르치는 코치처럼 조언을 한다. 공유하고 싶은 좋은 레퍼토리를 선택하는 것, 장르나 주제 등을 정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적절하게 요소를 배합시키도록 코치를 한다. 또 낭독회가 끝나면 청중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철저히 모니터링을 한다. 그레구아르의 낭독 실력은 날로 업그레이드되고 청중들은 행복해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똑똑한 발음을 하기 위해서는 운동선수처럼 근육을 키워야 한다며 운하에서 수영을 하면서 호흡을 늘리라고 하는데... 추운 겨울에 수영이라니.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레구아르는 훈련의 중요성을 깨닫고 열심이다. 얼마 남지 않은 셀레스틴 모렐 부인을 위해 책을 읽어주면서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도 본다. 처음 겪는 슬픔과 고통속에서도 책의 마지막 구절까지 다 들려줄 수 있도록 살아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어주는 것 밖에는 없다. 요양원이 아니었다면 그레구아르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다양한 삶의 이력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죽음도 배운다. 그러면서 그레구아르의 정신세계도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을까. 그런가 하면 할아버지의 기상천외한 생각으로 화장실 변기를 이용해서 방송을 하여 요양원의 모든 사람들이 낭독을 듣게 한 것은 정말 엉뚱했다. 불법이라며 길길이 뛰는 마송부인과 대적하면서도 어떻게든 수레국화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할아버지의 노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며 행복해 한다.

 

나는 얼마 못 가 죽을 거야.”

……

내 시신은 화장해달라고 부탁해놨다. 그리고 기왕 하는 거,

내 책들과 자료들도 함께 불태워달라고 했어.”

…… 나는 어째서 이 감옥 같은 곳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기 전에 내 집에서 생을 끝낼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뭐가 그리 두려웠던 건지. 이제 난 준비가 되어 있어.”(P217~218)

 

  책방 할아버지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하려는 것 같다.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던 책을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다니... 어쩌면 분신이었으니 더욱 함께 가고 싶었을까, 마음이 숙연해졌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면서 마지막 부탁을 들어달라고 한다. 그 부탁은 퐁트브로 수도원에 가서 아름다운 조각상 여인 알리에노르 다키텐을 찾아가 장 주네의 장미의 기적을 읽어주라는 것이다. 250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으로 걸어서 열흘이나 걸리는 곳이다. 그레구아르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미션을 완수 할 것인가. 엉뚱한 부탁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기꺼이 이 도보 여행을 시작하는 그레구아르의 마음은 할아버지와 헤어진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

  기드 모파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와 작품의 향연을 보는 듯했다.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그레구아르가 처음에는 자신을 위해 책을 읽었지만 나중에는 수레국화 요양원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낭독자가 된다. 할아버지의 조각상에게 책을 읽어주라는 마지막 부탁이 처음엔 의아했었다. 조각상에게 책을 읽어주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 주네는 한때 감옥이기도 했던 그 수도원에서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의 빛나는 문장들을 숭배했기 때문에 그 장소를 찾아가고 거기서 보았던 아름다운 조각상과의 조우 등 젊은 날의 감동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애 마지막 여정을 돌아보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비록 직접 가지 못하지만 그레구아르와의 공유를 통해서 교감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결국 그레구아르 혼자서 갔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발이 되고 마음속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과 가르침으로 가득 찼으니까. 생소했던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된 것도 좋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장 주네가 궁금해졌다. 책과 사람을 공유하는 이야기는 미지의 또 다른 작가와 닿을 수 있도록 건너가는 다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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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최지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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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자 메이 올컷의작은 아씨들은 워낙 유명해서 언젠가 읽어본 적이 있지 않나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예전에 중고생이었을 때 명화극장으로 흘려보던 기억이 있지만 책으로 읽고 나니 전혀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올컷의 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작품이다. 요전에 작가와 예술가들의 루틴 이야기를 모아 놓은예술하는 습관에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올컷은 작품을 쓸 때 광적으로 몰입하며 쓰는 타입이었는데 그럴 때면 며칠 밤낮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썼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작품은 아동서의 잠재적 수익성을 포착한 편집자와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려고 썼다 한다. 전혀 영감을 느끼지 못한 이 작품이 잘 팔리는 바람에 재정적으로 독립해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었다는 점도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바느질, 가사노동, 가정교사 일을 해 왔다고 하는데 이 작품 자매들 이야기 속에 그 힘겨운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메그, , 베스, 에이미 네 자매는 성격도 전혀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른데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는 형제애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각자 다른 개성과 성격 때문에 아웅다웅 싸울 때가 있지만 돌아서면 후회하고 서로 용서하는 모습이 천생 사랑으로 똘똘 뭉친 가족이었다. 그 따뜻한 사랑으로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이겨냈으리라.

 

  이 소설의 배경은 미국 남북전쟁(1861~65)의 시기로 작품이 시작되는 때는 1861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부터다. 아이들에게 있어 크리스마스란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떠올리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다. 각자 갖고 싶은 선물과 가난 타령으로 시작하는 네 자매의 이야기에 마음이 짠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쟁터에 나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군대에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번 크리스마스는 선물 없이 보내자는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그렇다고 아쉬운 마음이 사라질까. 이제 겨우 십대인 소녀들인데. 가난한 형편 때문에 아이들은 메그는 가정교사를 조는 마치 할머니를 돌보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모양인데 조는 자기가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한다. 베스는 해나와 집안 정리 정돈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일이 최악이고 에이미는 학교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제일 힘들다고 푸념을 한다. 이 자매들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면서 이들 앞에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몰입하며 읽어나갔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어머니는 이웃에 새로 태어난 아기와 가난한 여자가 있는데 자신들이 먹을 아침 식사를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한다. 배고픔을 참고 기다렸던 참이라 힘들지만 잠시 주저하다가 선뜻 따른다. 이들에게 엄마는 거의 우상 같은 존재였으니. 배고픈 아이들을 두고도 더 힘든 이웃을 위해 자선을 베풀려는 엄마의 마음도 거기에 호응하는 아이들도 대단했다. 이들의 선행은 하인 해나에 의해 이웃집 로런스 할아버지에게 알려지고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훌륭한 성찬으로 저녁식사를 보상받게 된다.

 

   이 작품을 읽는 재미는 조가 이웃 부잣집의 로런스 할아버지의 손자 로리를 알게 되고 친해지는 장면을 만나면서 더욱 배가된다.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와 외롭게 살아가던 로리에게 이웃집 마치부인과 네 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털털한 성격에 모험을 좋아하는 조는 눈 내리는 어느 날 오후 눈길을 쓸다가 위엄 있는 궁전을 연상케 하는 로런스 할아버지의 집안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무도회장의 커튼 뒤에 숨었다가 우연히 알게 된 로리를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궁리한다. 눈뭉치를 창에 던져 로리가 창문을 열게 하더니 드디어 궁전에 입성하게 되는데 참으로 조다운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책이야기, 어머니와 즐겁게 보내는 자매들의 모습을 본의 아니게 내려다보면서 부러웠다는 이야기를 하는 로리의 말을 들으며 로리의 외로움을 알게 된다. 가난하지만 자신은 사랑하는 가족과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된 조는 로리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말괄량이 기질과 대담한 성격인 조는 손자를 사랑하지만 고지식한 면이 있는 로런스 할아버지의 굳건한 마음도 녹여버리고 만다. 외로웠던 로리도 점점 밝아지고 숨겨있던 장난기가 발동하면서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나간다.

 

  네 자매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을 곁들여 그려내고 있는데 이웃집 로리와 연결되면서 더욱 따뜻하고 풍성한 이야기가 된다. 피아노를 배우려고 엄청 노력했지만 음악수업도 받을 수 없었고 좋은 피아노가 없어서 조율도 되지 않은 낡은 피아노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베스에게 피아노 선물이 생긴다. 에이미는 한창 학교에서 유행하는 라임을 메그 언니가 주는 돈으로 사게 되어 의기양양해진다. 지금까지 베스를 놀리고 무시하던 친구들도 온통 에이미에게 관심을 쏟는데, 당했던 설움을 베스는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지나친 자만심은 복수심에 불탄 친구에 의해 추락하는데... 제니가 선생님께 고자질한 바람에 아까운 라임을 창밖으로 버려야 했고 교단에 서서 벌을 받게 된다. 집에 와서 언니들에게 분노를 하소연하는 장면 또한 웃음 없이는 읽을 수 없다. 에이미는 조,메그 언니들이 자기를 떼놓고 비밀스럽게 외출하는 것에 화가 나서 조가 쓰던 원고 책을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벌이는 바람에 갈등 상황이 생긴다. 화가 나면 그 사람이 가장 아끼는 것을 공격하게 마련인가. 그래도 그렇지 너무 심하지 않았나 싶어 웃겼다. 로리와 조가 스케이트를 타러 가는데 에이미는 또 졸졸 따라 나갔다가 얕은 얼음물에 빠지고 만다. 이 사건으로 조는 자신의 못된 성질머리를 고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울면서 엄마와 이야기를 하고 에이미와도 화해하게 된다. 또 메그는 애니 모팻의 초대로 여행을 떠났다가 상처를 받고 와서 화려하지 않아도 엄마와 동생들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전보를 받고 어머니가 안 계신 사이에 성홍열에 걸린 베스가 사경을 헤매는 안타까운 사건이 생기기도 한다. 또 로리의 가정교사인 브룩 선생이 메그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로리의 장난편지가 메그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언니를 빼앗길 것 같은 불안함에 브룩 선생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하는 조의 마음을 엿보는 것도 참 귀여웠다. 부자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마치 할머니를 노여움에 빠뜨리면서도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한 메그의 용기도 놀라웠다. 화려한 것을 꿈꾸던 메그의 성숙한 마음을 엿보았다고 할까. 결국 사랑의 힘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욱 소중한 가족과 이웃이라는 것을 느낀다

……

좋은 친구였던 로리와 조는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조는 어엿한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진다...

 

  한 울타리에서 살아가는 가족에게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갈등하다가도 화해를 하고 새로운 친구와 환경을 경험하고 나서 가난하지만 집이 좋고 가족이 제일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마음의 변화에는 어머니의 교훈적인 훈화가 많이 작용하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다. 착하게 살자는 교훈적인 내용이 많이 강조된 듯한 이 이야기가 엄청난 시대의 변화를 겪은 지금 얼마나 공감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점점 혼자가 많아지는 이 시대에 올망졸망 함께 자랐던 어린 시절의 형제자매를 떠올리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로런스가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정을 나누는 모습도 이웃과 소원한 채 살아가는 요즘이어서 그런지 정답고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제 영화로 그 실감나는 장면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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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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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드 <런치의 여왕><하얀 거탑>을 정말 재미있게 본 적이 있는데 그 작가의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조건 읽어도 실망하는 일이 없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읽어나갔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주인공급의 생생한 인물 묘사를 통해서 아키쓰 역은 누구, 마코토역은 아, 그 배우가 어울리겠군, 상상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전에 본 일드가 생각났다. 금융권을 소재로 한 이야기인데 남녀 콤비 직원이 의뢰를 받고 은행의 부조리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해당 점포를 방문하고 조사를 통해 원인을 밝혀내고 징계를 하는 내용이었다. 조직 사회는 수직관계의 특성상 편파적인 상황을 낳고 여러 가지 부조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부하직원들은 억울해도 그런 상황을 떠안게 되는데 실제로도 그런 시스템이 있다면 직장생활 할 만하지 않을까 했었다. 두 콤비의 역할이 악당을 혼내주는 도깨비 방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후련함을 느꼈던 기억이다.


  이 작품도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괴롭힘 문제를 다룬 이야기다. ‘파워하라라는 원래 단어 ‘Power Harassment’(パワ?ハラスメント)의 줄임말이다. 실제로 이런 전담 부서가 설치된 회사가 있을까. 직장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희롱, 성차별, 근무조건, 승진 등을 둘러싼 온갖 억울한 일도 많을 것이다. 부조리한 면을 줄이고 서로 열린 마음으로 의사소통할 수 면 살맛나는 일터가 되지 않을까. 아마도 좀처럼 그런 일이 없으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대리만족으로 위안을 삼거나 선순환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쿄에서도 먼 지방 도야마 추오점 점장으로 근무하던 아키쓰는 이례적인 인사 발령 전화를 받는다. 마루오 홀딩스 도쿄 본사 컴플라이언스실 실장으로. 이 갑작스런 발령은 마루오 슈퍼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던 완전 안심크림빵에서 1엔짜리 동전이 나온 사건이 터졌기 때문인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키쓰는 명령을 받고 움직일 뿐이다. 7년 전 부하직원에게 파워하라를 했다는 이유로 좌천된 자신이, 도쿄 본사에 그것도 사내 해러스먼트를 다루는 실장으로 임명되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쨌든 이 사건부터 해서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실장의 임무다. 더구나 기존 슈퍼와는 다른 고차원의 시나가와 점 오픈을 3일 앞둔 시점에 벌어진 사건에 사장을 포함한 임원진들의 분위기는 긴박한 상황이다.


  한편 마코토는 전임 실장 구리하라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서 2주 동안이나 공석인 중에 최강의 상사를 보내주겠다는 마루오 사장의 말을 듣고 왠지 불안한 마음이 되는데. 와키타 상무의 파견 비서 미나코로부터 미리 아키쓰의 명함을 건네받은 마코토는 깜짝 놀란다. ‘최강의 실장이라는 상사가 지방의 점장이었다니. 대면 장면도 참 웃겼다. 마코토에게 선배라는 호칭을 붙이며 너스레를 떠는 아키쓰를 보고 새초롬해지는데... 이 둘은 최강의 콤비가 될 수 있을까. 여기에 법률 고문으로 야자와 변호사가 함께 하게 되는데, 처음엔 모래알처럼 따로 노는 듯 불안해 보였지만 차츰 마음을 열고 호흡을 맞추어가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첫 번 째 크림 빵 사건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피해자 오가와 마이의 집에 가서 얘기를 듣고 빵을 사간 렌마점을 들러본다. 아키쓰는 벌써 탐정의 촉수가 느껴진다. 마이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고 하니 변호사 야자와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멋대로 녹음했다며 따를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7년 전 부하직원의 배신으로 좌천당하고 쓴맛 단맛 다 겪어본 아키쓰가 이런 일로 주춤하지 않는다. 예전 점포개발부에서 날렸던 추진력이나 판단력이 다시 돌아온 듯하다. 렌마점에서 방범 카메라 영상을 확보해서 분석해 보니 44초의 영상이 잘린 것을 알아낸다. 비밀은 그 44초에 있을 텐데...


  왜 하필 1엔짜리 동전이었을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렌마점에서 일하는 주임 사사베는 아버지 친구 마루오 사장의 연줄로 입사했는데 본사에서 쫓겨나 잔뜩 위축되어서 일도 변변히 못하고 파트타이머들에게 짐짝 취급을 받다 주의를 준 모토 점장에게 원한을 품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불특정인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다니 무서운 세상이다. 1엔짜리 동전은 뢴트겐에 찍히지 않는 경우가 있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사사베의 잘못을 사정없이 추궁한다.


왜 점장님이 1엔짜리 동전을 주우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건 당신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두세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주의 한 번 주지 않는 것을 방치라고 합니다. 그게 훨씬 더 잔혹하고 무자비한 파워하라입니다.”(P70)


, 이런 말을 하는 아키쓰, 정말 멋졌다

잘못을 보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폭력인가.


  사건의 전말을 밝혀냈지만 이것을 어떻게 공개할 것인가가 문제다. 결국은 짜인 각본대로 엄중히 조사를 했지만 어떤 경로로 이물질이 혼입되었는지 판명되지 않았고 제조된 빵을 전부 회수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으로 공표한다. 물론 사사베의 잘못도 묻힌 거나 다름없다. 진실을 그대로 밝혔을 때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진실을 밝히는 일에서 이익의 여부를 먼저 따지게 되는 상황에서는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언제나 약자의 손해보다 강자의 이익이 중시되는 사회가 아닌가.


  또 이어지는 시나가와 점 오픈을 코앞에 둔 시점에 파트타이머 18명이 전부 그만두겠다는 사건, 상품개발부 도쿠나가의 블랙육아 사건, 수도권 개발부장 히데미의 집단 따돌림의 사건을 하나하나 해결한다. 여기엔 아키쓰 실장의 시원시원한 성격과 탐정 기질의 촉수가 발휘되고 있다. 눈치가 빠르고 추리력이 단연 돋보였다. 컴플라이언스실 특성 상 사원 메일을 볼 수 있다는 비밀을 마코토가 말하자, ‘1엔짜리 동전을 키워드로 검색하는 부분은 기발했다.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솔직함과 치밀함도 엿보였다. 미리 식당 할인권을 뿌려놓고 개발부원의 회식장소 옆방에 자리잡고 우연을 가장하여 현장을 덮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아키쓰의 일 처리 방식에 불만이던 마코토와 변호사 야자와도 감탄사를 내두르게 된다.


  마지막에는 도쿄 쓰키지의 마루오 슈퍼에서 벌어진 카스하라 사건이다. 상품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트집을 잡으며 난폭한 행동을 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현장에 가서 잘 무마시킨 아키쓰는 그 즈음에 이 일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와키타 상무의 파워하라를 조사하라는 사장의 밀명도 떠올리며 거절할까 생각도 하지만 그것이 빌미가 되어 다시 좌천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등... 그러다가 아키쓰가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키쓰의 휴대폰으로 123억 엔을 내놓으라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며 회사는 발칵 뒤집어진다. 암호 같은 숫자 123은 무엇을 뜻하는가. 과연 아키쓰는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기지를 발휘하여 살아 돌아오는데, 그 장면도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정말 인기 있는 드라마 작가의 내공이 느껴졌다. 와키타 상무가 왜 자신을 배신했는지 그 궁금증이 비로소 풀린다. 납치사건의 내막에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권력자의 검은 마음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결국 하나의 괴롭힘은 또 하나의 괴롭힘을 낳고 서로 게임을 벌이는 형국의 이야기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관계 속에서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는 이면에서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삶의 단면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존재이지 않을까. 공감할 수 있는 소재여서 재미있게 읽었다. 관련 드라마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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