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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마르크 로제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평점 :
책을 소재로 쓰인 이야기는 언제나 따뜻함과 희망을 느끼게 한다. 저자 마르크 로제는 지금까지 약 27년 동안 대중 낭독가로서 프랑스 전역의 서점과 도서관 등을 순회하며 낭독회를 열었으며 직업적인 낭독가로서 세계 곳곳을 누비며『책과 함께하는 프랑스 일주』등 여행기를 다수 썼고 이 작품은 그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도 책을 읽어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느껴지는 낭독가가 존재한다는 게 신기했다. 더구나 소외계층에 속할 수 있는 병약한 노인들이 사는 ‘수레국화’라는 요양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것도. 오랫동안 낭독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책과 사람을 매개로 소통의 장을 열어주는 그레구아르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책을 읽어주는 낭독자로서의 그레구아르와 소통하고 변화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흔한 교훈적인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엉뚱 발랄한 사건과 문체를 도입한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작품 속 화자는 이제 열여덟 살 청년인 그레구아르다. ‘바칼로레아’에 통과하지 못한 그레구아르가 나무를 좋아한다고 하니, 진로상담 선생님은 ‘바칼로레아’를 준비해서 산림청에 들어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어처구니가 없어 한다. 엄마의 조언으로 용케 시청 녹지과에 일자리를 얻게 되는데 금세 넌더리가 나서 나오게 된다. 이번에는 시청 사회복지과 부책임자인 테롱 씨를 알고 있는 엄마의 백으로 ‘수레국화’ 요양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하는 잡역꾼 취급을 하며 스스로도 우습게 느껴진다. 그러는 중 주방에 사람이 비어 대신 그 자리를 메우러 갔다가 28호실의 피키에 할아버지를 만나고 낭독가가 되는데.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그레구아르였기 때문에, 사람의 일은 참으로 알 수 없다는 말에 더욱 공감했고 그레구아르가 어떻게 변화될지 궁금해 하며 몰입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할아버지와 비좁은 방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그레구아르는 놀라는 눈치다. 삼천 권의 책으로 빼곡한데도 갖고 오지 못한 이만 칠천 권의 책 때문에 환상통을 느낀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지만, 한 권의 책도 없는 그레구아르가 그의 뼈아픈 통증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레구아르를 할아버지 방으로 가도록 끌어당기는 어떤 힘을 스스로도 느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방으로 천장까지 빼곡한 책만 보아도 배부른 듯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그레구아르는 의식적으로 만지거나 펼쳐보지도 않고 조심에 조심을 한다. 할아버지도 책 얘기는 뻥긋도 하지 않는데, 서로 ‘기 싸움’이라도 벌이는 듯 긴장되는 분위기와 뻔한 속셈에 웃음이 났다. ‘바칼로레아’에 떨어졌다고 해서 그런 눈치도 없는 그레구아르는 아니다.
“피키에 씨, 당신은 책을 읽지 않는 하루는 헛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요, 제가 피키에 씨를 알게 된 이후로 책 읽으시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걸요.”
“……” (P24)
학창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책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지만 그레구아르는 자기도 모르게 책에 매료되어 간다. 하지만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무뚝뚝하고 시건방진 목소리로 이렇게 묻자, 할아버지는 한참 만에 이제는 손이 떨리고 눈에 녹내장이 와서 읽을 수 없고 남은 건 음악뿐이라고 한다. 순간 너무 당황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가슴이 미어지는 그레구아르다. 이틀 후 할아버지에게 사과를 하며 한 시간씩 책을 읽어드리겠다고 제안을 한다. 자기도 주방에서 일을 한 시간 덜 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일 아니냐고. 원장 마송 부인은 가뜩이나 직원도 모자라는 판에 이건 특혜라며 마지못해 허락하는데... 이리하여 그레구아르는 책을 읽어주는 낭독가가 된다. 무엇보다도 주방 일에서 한 시간 동안 해방이 된다는 기쁨이 더 크다.
드디어 책을 읽어주기로 약속 한 날이 되어 할아버지 앞에 앉았는데 중압감이 밀려오고 중학교 수업시간에 혼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 할아버지가 내민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오랜만에 책을 든 그레구아르는 처음에 버벅거리지만 이내 주인공에게 동화된다. 두려움, 불안, 부끄러움 등을 느끼면서도 결국은 감동을 받고 금세 한 시간이 지났음을 알고 스스로 대견함을 느낀다.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여름 휴가철이 되면서 갑작스레 세탁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온갖 냄새나는 옷가지를 수거하고 세탁해서 가져다주는 일이 지옥같이 느껴질 만큼 힘든데, 세탁장 책임자 다니엘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면서도 잘도 참는다. 책을 읽어주는 것을 질투를 하는지 ‘먹물 선생’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기본이고 그렇게 월급을 받는다고 분풀이를 한다. 젊은 그레구아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면서 뛰쳐나가지 않았는지 신기할 정도로 잘도 참아 냈다.
‘책읽기는 신성한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꾹 참는다. 그러면 매번 효과를 보는데,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던 모든 매듭들이 조금씩 조금씩 풀린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폭군이 나에게 가하는 그 모든 모욕들이 하나하나 지워진다. 낭독이 끝날 때쯤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화가 모두 사라진다. ‘수레국화’와 나와 다니 사이에 얽힌 문제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몰입하면서 나는 모든 걸 잊는다. 낭독을 마치는 순간, 나는 망각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온다. 씻기고 정화된 채로 행복한 현실로.’(P44~45)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란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더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타자인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행위와도 같은 거지. 설령 그저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해도 마찬가지야.”(P53)
다니에게 받은 정신적 상처를 치유 받은 듯해서 다행이었다. 그레구아르는 세탁장의 악몽을 할아버지에게 모두 털어놓고 할아버지는 자신이 동성애자였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내력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놀라웠다. 심했던 파킨슨병의 증상이 어느새 눈에 띌 정도로 좋아졌다. 그저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레구아르는 이전과 달리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책을 읽어준다는 소문을 듣고 할머니들도 그레구아르에게 부탁을 해 온다. 이제는 오전에는 주방 일을 하고 오후에게 홀에 모인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게 된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향해 기대감을 갖고 시선을 집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것이 현실의 요양원의 풍경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무기력한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라, 현재를 즐겁게 살아가고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그레구아르를 단순한 낭독자로 놔두지 않는다. 마치 운동선수를 가르치는 코치처럼 조언을 한다. 공유하고 싶은 좋은 레퍼토리를 선택하는 것, 장르나 주제 등을 정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적절하게 요소를 배합시키도록 코치를 한다. 또 낭독회가 끝나면 청중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철저히 모니터링을 한다. 그레구아르의 낭독 실력은 날로 업그레이드되고 청중들은 행복해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똑똑한 발음을 하기 위해서는 운동선수처럼 근육을 키워야 한다며 운하에서 수영을 하면서 호흡을 늘리라고 하는데... 추운 겨울에 수영이라니.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레구아르는 훈련의 중요성을 깨닫고 열심이다. 얼마 남지 않은 셀레스틴 모렐 부인을 위해 책을 읽어주면서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도 본다. 처음 겪는 슬픔과 고통속에서도 책의 마지막 구절까지 다 들려줄 수 있도록 살아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어주는 것 밖에는 없다. 요양원이 아니었다면 그레구아르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다양한 삶의 이력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죽음도 배운다. 그러면서 그레구아르의 정신세계도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을까. 그런가 하면 할아버지의 기상천외한 생각으로 화장실 변기를 이용해서 방송을 하여 요양원의 모든 사람들이 낭독을 듣게 한 것은 정말 엉뚱했다. 불법이라며 길길이 뛰는 마송부인과 대적하면서도 어떻게든 ‘수레국화’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할아버지의 노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며 행복해 한다.
“나는 얼마 못 가 죽을 거야.”
“……”
“내 시신은 화장해달라고 부탁해놨다. 그리고 기왕 하는 거,
내 책들과 자료들도 함께 불태워달라고 했어.”
“…… 나는 어째서 이 감옥 같은 곳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기 전에 내 집에서 생을 끝낼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뭐가 그리 두려웠던 건지. 이제 난 준비가 되어 있어.”(P217~218)
책방 할아버지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하려는 것 같다.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던 책을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다니... 어쩌면 분신이었으니 더욱 함께 가고 싶었을까, 마음이 숙연해졌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면서 마지막 부탁을 들어달라고 한다. 그 부탁은 퐁트브로 수도원에 가서 아름다운 조각상 여인 알리에노르 다키텐을 찾아가 장 주네의 『장미의 기적』을 읽어주라는 것이다. 250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으로 걸어서 열흘이나 걸리는 곳이다. 그레구아르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미션을 완수 할 것인가. 엉뚱한 부탁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기꺼이 이 도보 여행을 시작하는 그레구아르의 마음은 할아버지와 헤어진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
기드 모파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와 작품의 향연을 보는 듯했다.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그레구아르가 처음에는 자신을 위해 책을 읽었지만 나중에는 수레국화 요양원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낭독자가 된다. 할아버지의 조각상에게 책을 읽어주라는 마지막 부탁이 처음엔 의아했었다. 조각상에게 책을 읽어주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 주네는 한때 감옥이기도 했던 그 수도원에서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의 빛나는 문장들을 숭배했기 때문에 그 장소를 찾아가고 거기서 보았던 아름다운 조각상과의 조우 등 젊은 날의 감동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애 마지막 여정을 돌아보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비록 직접 가지 못하지만 그레구아르와의 공유를 통해서 교감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결국 그레구아르 혼자서 갔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발이 되고 마음속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과 가르침으로 가득 찼으니까. 생소했던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된 것도 좋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장 주네가 궁금해졌다. 책과 사람을 공유하는 이야기는 미지의 또 다른 작가와 닿을 수 있도록 건너가는 다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