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철학이야기 -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강성률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동안에 읽었던 철학 관련 책과 달리 표지부터 흥미를 끌었다. 흔히 철학은 어렵다는 고정관념과 함께 우리에게 비춰졌던 철학자들의 이미지, 사상과 명제를 설명하는 식의 딱딱한 철학 관련 책도 철학과 친해지는 기회를 방해한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야기의 내용을 상기시켜주는 그림이 삽입되어 있고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주석을 해당 페이지에 실어 놓아서 참고하기에도 편했다. 보통 주석이 맨 끝에 놓이는 것을 생각할 때 앞뒤로 왔다 갔다 하다보면 독서의 흐름이 끊기기도 하는 등 맥을 놓치기도 하는데 이런 점을 보완해 주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저자는 현재 1988년부터 광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교내외에서도 다양한 역할과 학회활동을 펼쳐오면서 칸트철학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2500년간의 고독과 자유,청소년을 위한 동양철학사,칸트, 근세 철학을 완성하다, 장편소설땅콩집 이야기7080등 다수 있다. 거꾸로 읽는 철학 이야기는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철학과 근엄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철학자들의 이미지를 거꾸로뒤집어 보고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서 다른 사고로 바라보는 지평을 열기 위해서 썼다고 한다. 저자의 말대로 성인을 대상으로 집필되었지만, 삽입된 그림으로 흥미와 호기심을 갖게 하고 핵심 단어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서 청소년 이상이라면 무난히 소화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동서양의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들어있는데, 우리의 신라, 조선시대를 살았던 유명한 선비들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야기의 구성은 1. 명언에 대한 뒷담화(?) 2. 황당한 궤변 시리즈 3. 출생의 비밀 4.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 5. 모범생과 문제아 6. 금수저와 흙수저 여섯 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철학자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상기시켜주는 것이 명언이 아닐까 싶다. 또한 황당하지만 들어보면 거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그럴듯한 궤변, 출생하고 성장하기까지의 배경은 철학자이기 전에 한 인간이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그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저명한 철학자의 이야기라면 더욱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많이 알려진 노자나 공자, 맹자 등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서양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그들의 내밀한 성장 배경을 알게 되어서 흥미로웠다. 이 덕분에 고정관념으로 자리한 그들의 철학 사상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1장 명언에 대한 뒷담화(?)

  수없이 인용되는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델포이 신전 현관 기둥에 쓰여 있는 말이라고 한다. ‘gnoth seauton’, 원래는 너를 알다라고 하는 평어체인데 나중에 너를 알라라는 명령체로 바뀌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40세 무렵에 그의 친구이며 제자였던 카이레폰이 델포이 신전에 가서 아폴로 신에게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도 현명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신탁을 듣는다. 정작 소크라테스는 그 새겨진 글을 외고 다니며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철학의 시작이라는 것, 그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존재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 악법도 법이다는 말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해석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당시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정치적인 면과 상당 부분 맞물려 있던 것을 생각할 때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맺어져 이들 도시국가들이 30년 동안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스파르타가 승리하게 된다. 아테네에는 스파르타식의 귀족정치와 과두정치가 세워졌는데 소크라테스는 바로 이 귀족주의적 정파에 이념적 무기를 제공하고 있었던 바, 또 한 차례의 정부 전복에 의해 민주주의자들이 권좌에 올라서게 됨으로써 누명을 쓰고 고소를 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죽마고우였던 크리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탈출을 권했지만 자신은 아테네 시민으로서 특권과 자유를 누려왔는데 그 법이 자신에게 불리해졌다고 해서 그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비겁하지 않은가, 하며 단호히 거절했다는 데서 악법도 법이다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라고 한다.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철학자의 명언이 재해석되는 느낌이다. 이밖에도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 정신적인 사랑을 고귀하게 표현하는 플라토닉 러브는 플라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재미있는 뒷담화도 들려준다.

 

2. 황당한 궤변 시리즈

  많이 들어본 유명한 궤변 중의 하나가 황희 정승의 두 계집종의 다툼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누구를 콕 찍어서 잘못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며 양쪽이 다 옳다고 했던 이야기를 그저 재미있게만 느꼈었다. 3자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유연하고 관대한 판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억울한 쪽은 있기 마련이다. 결국 황희 정승의 양시론(兩是論)’적 발언은 어느 한쪽에 자신이 부정적으로 남지 않으려는 처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궤변이 한 사람의 금전상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까. ‘궤변(詭辯)’이란 말 자체가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이리저리 따져서 말하는 모습을 담은 글자라고 한다. 프로타고라스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며 인간의 감각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감각에 의존하는 모든 지식이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진리는 객관적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우리들 주관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고 더 나아가 소피스트 고르기아스에 이르면 유용한 변론이란 객관적 진리를 논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누구나 그렇게 믿도록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역시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언어유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허무맹랑한 말솜씨로 장난을 치는 느낌 또한 떨칠 수 없지만 궤변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3.출생의 비밀

  이 장에서는 키르케고르의 이야기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집에 태어났지만 그의 어머니 안네는 그 집의 하녀였고 전처가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버지는 안네를 강간하여 임신케 하였고 당시 교리에 금지되어 있는 재혼을 감행했다는 사실. 원래 양심적이고 종교적이었던 그 아버지는 이 사실을 두고 평생 괴로워했다고 하는데. 그런 인물이라면 좀 더 나은 방법을 썼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이 사실을 키르케고르는 스물두 살에 알게 되는데 그에게는 대지진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었다. 어려서부터 신체도 허약했고 열일곱 살에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신학과에 입학하지만 문학과 철학 쪽으로 관심이 기울어지고 방탕한 생활이 이어진다.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그런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23세에는 자살미수 소동까지 벌어진다. 그의 정신적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부분이다. 부침 있는 그의 삶은 18551020순간10호를 준비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마흔 두 살의 짧은 생을 마치게 된다. 또 병실에 누워있을 때 불화로 끊고 살았던 목사 형이 찾아왔는데 끝내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종합해 보면 자녀를 둔 부모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자녀에게 있어 부모의 위치란 얼마나 중요한지, 인간이란 강한 것 같으면서도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런 면을 보면 강하고 근엄할 것 같은 철학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인간이란 누구나 똑같은 존재라는 측은지심이 느껴진다.

 

4.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

  여기서는 아버지의 선한 영향력과 나쁜 영향력, 어머니의 선한 영향력과 부재에 따른 영향력을 이야기한다. 증자와 파스칼, , 키르케고르, 사르트르 마하비라, 맹자, 구라마습, 이이, 아우구스티누스 등 많은 철학자가 여기에 속한다. 성장하는 배경을 다루는 데서는 몇 명의 철학자는 겹치는 부분도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의 아버지는 해군 장교였고 어머니는 슈바이처의 사촌으로 자존심이 무척 강한 여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르트르가 두 살 때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얻은 후유증으로 죽어서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부터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아버지 없는 어린 시절이 오히려 축복이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좋은 아버지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나의 아버지가 오래 살았다면, 그는 나의 머리 위해 군림하며 나를 억압하고 있었으리라나는 내 위의 어떤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P115)

 

  어째서 그랬을까. 아마도 대단한 독서가였던 외할아버지의 사랑과 문학적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또 하나는 어머니가 재혼하게 되어 의붓아버지 밑에서 살아야 했는데 그의 생애 중 가장 불행한 3~4이었다고 한다. 특별히 구박이나 미움을 받지는 않았지만 눈치를 보게 되는 분위기와 환경이 자유를 향한 욕구가 더 커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버지라는 존재를 모르다가 의붓아버지가 나타나자 낯설게 느껴지고 불편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아버지 없는 자유를 누구보다 더 누렸을 법하지만, 유난히 자유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는 걸 보면 감수성 있고 예민했던 그의 정신을 오래도록 지배했던 힘든 부분이 아니었을까 짐작케 했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개성과 특성이 존재하는 걸 보면 이해 못할 부분도 아닌 것 같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어머니의 선한 영향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야기다. 선한 영향력은커녕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66년 동안의 삶이 방황의 연속이었던 루소의 삶도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교육론을 이야기한 그의 작품 에밀을 한동안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읽은 적이 있었다.에밀에밀이란 이름의 고아가 태어나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25년 동안 현명한 교사의 이상적인 지도를 받는 과정을 그렸다고 한다. 루소의 성장 배경을 전혀 모르고 읽었다. 보통 고전이라면 작가의 유명세와 긍정적인 끌림으로 읽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적으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이 거꾸로읽는 방법을 착안해 낸 저자의 책이 더욱 유용하게 다가왔다.

 

  그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버린다.(나중에 다른 책에서도 접하게 되었다.) 16세 때는 집사로 일하면서 그 집의 남작부인과 연인사이로 발전하거나 매춘부와 난잡스런 관계를 맺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며 혼란스런 삶을 살았다. 가난한 시계공 이었던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과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출산 후유증으로 죽은 어머니에 대해 많은 자책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그러한 마음이 역설적으로 반영되어 에밀이란 작품을 쓴 것은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으며 자랐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정신적 반항으로 아이들을 고아원에 버리는 기행을 벌이고 정상적인 사랑을 통해 가정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을 논하면서 남의 잘못을 보면 그러지 말아야지 뉘우치며,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나약한 인간의 삶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5.모범생과 문제아

  모범생으로 간주할 수 있는 철학자로는 공자, 주자, 헤겔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문제아였던 철학자들에게 관심이 쏠린다. 문제아였음에도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게 되었는가가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안셀무스, 마르크스, 니체, 야스퍼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중 야스퍼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하이데거와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철학자로 불리는 야스퍼스는 독일의 작은 도시 올덴부르크에서 부유하고 자애로운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는데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너무 약하여 부모의 병간호를 받아야 했다는 점이다. 심한 천식에 시달리고 피부병을 앓기도 했으며 모범이 될 만한 영재는 결코 아니었다고 한다. 또 김나지움 시절에는, 신분이나 계급 등의 외적인 것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을 용인할 수 없으며, 음주 등으로 소란을 피우는 것 역시 저속하며, 거창한 의식이 싫다는 이유로 어느 조직에도 가담하지 않고 고립을 자처했기에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어떤 조직에 속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에 어려움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아마도 자신의 병약함이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에 가장 커다란 불편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런 그에게 김나지움 졸업은 해방감을 느끼게 했는데, 건강상의 문제는 항상 따라다녀서 열여덟 살에는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한다. 그는 동기생인 에른스트 마이어의 누이를 만나 삶의 의욕을 느끼면서 바뀌어간다. 결혼을 하고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평생 동안 실천하면서 여든 여섯 살의 장수를 누렸다고 한다. 당시의 의학 수준과 다른 철학자들의 짧은 삶을 비교해 볼 때 대단한 일이다.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노력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성취로 보인다.

 

6.금수저와 흙수저

  왕족 출신의 철학자로 의천, 석가모니, 구마라습, 아우렐리우스를 명문귀족 출신으로 플라톤, 베이컨, 러셀, 완적을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아리스토텔레스, 포이어바흐, 비트겐스타인 등, 선비나 하급관리 집안 출신, 가난한 집안 출신부터 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던 사상, 철학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조선 정조의 문신이자 실학자, 저술가, 시인, 철학자, 과학자, 공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많은 사람들이 흠모해 마지않는 위인 중의 하나이다. 유배지에서 가족의 안녕을 걱정했으며 나라의 위안을 걱정하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누님의 남편인 이승훈과 학문적으로 명성이 높은 이가환을 만났는데 이승훈은 조선에서 최초로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인물이고,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삼촌이자 성호 이익의 종손이었다. 정약용은 이들을 통해 성호의 학문을 접하고 실학사상의 토대를 다졌다고 한다.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였지만 신해박해 당시 조상의 제사를 허락하지 않는 교황의 교서가 내려지자, 대부분의 양반 신자들과 함께 배교했다고 한다. 또한 교우를 고발하고 도망간 신자를 붙잡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며 수사에 협조했다고 한다. 매부 이승훈은 천 사람을 죽여도 정약용을 죽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자신이 정약용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자백할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이 일에 대해 참회했다는 내용도 있는 걸 보면 없는 일은 아닌가 보다. 그동안 알고 있던 실학자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 맞아? 하고 반문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고고한 철학자들도 한 가지 흠결도 없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고 보면 남보다는 내가 살아야 했을 것이고 보살펴야 할 가족을 생각했을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의 감추고 싶었던 비밀 이야기를 알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왠지 전보다 인간적인 면이 느껴져서 더 친숙해진 느낌도 들었다. 위대한 사상과 명제를 낸 철학자들도 알고 보면 우리와 똑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 그 공감대만으로도 충분했다. 환경은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좋은 환경을 떨쳐내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짊어진 현인들도 있었고 역경을 이겨내고 훌륭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도 있었다. 어쨌든 모두 주어진 상황에서 치열하게 살아서 자신들의 언어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분명하다. ‘거꾸로보는 방법으로 동서양의 여러 철학자의 이야기를 제공해 준 저자 덕분에 철학은 어렵다는 편견과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알고 보면 재미있고 우리의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높여줄 수 있는 철학에 많은 독자들이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뮈 -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 클래식 클라우드 16
최수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작가나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편안하게 앉아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잘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했던 마음이 환해지기도 하고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은 어떤 시선과 관점으로 읽으면 되겠구나 생각을 하면서 오롯이 그 작가와 대화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 때문이다. 카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양복 차림에 말끔한 스타일의 짧은 머리, 담배를 물고 있는 시니컬한 표정이다. 왠지 상냥할 것 같지는 않은 지식인의 모습으로 각인된다. 카뮈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오롯이 담은 이 책을 읽고 그 많은 역경을 이겨냈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고 그 모습도 나름 멋이 느껴졌다. 사람이 살면서 그가 속해있는 환경이나 생각 등 여러 요소가 그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카뮈의 작품 페스트를 고1때 읽었는데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헤쳐 나가려는 긍정적인 성격의 주인공이 있었기 때문일까. 요즘 신종 코로나 전염 확대로 인해 시끄러운데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알리고 자신은 환자에게 전염되어 세상을 떠났다는 중국인 의사가 떠올라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알렸다고 당국에 처벌을 받기도 했다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고 애쓰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것도 카뮈가 말하고자했던 세상의 부조리의 단면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삶 자체가 반항이며 부조리에 걸려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부조리로부터 발을 빼지 않는 것이다.”(P142)작가수첩2는 카뮈의 말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이 책의 저자 최수철은 1981조선일보신춘 문예에 맹점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그동안 이상문학상, 윤동주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다수 수상하였고, 고래 뱃속에서등 다수의 장편소설과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한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다소 평범하게 시작되는 것 같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이 저자도 처음엔 카뮈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이어 이방인』『페스트』『전락을 읽으면서 강한 인상으로 남았고 그 다음에는 저자가 소설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무렵 자신의 장편소설 페스트를 쓰면서 카뮈의페스트를 다시 읽기를 통해서 카뮈의 삶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풍부한 사진 자료와 작품 읽기를 통해 함께 하는 여행처럼 실감나고 재미있게 읽혀서 좋았다.

 

  카뮈는 프랑스 이민자 3세대로 알제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8개월에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 카뮈의 어머니는 가정부 일을 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야말로 가난과 온갖 역경과 싸워야 하는 삶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장기를 보냈던 알제리의 벨쿠르,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발견했던 카빌리, 청년시절에 자주 들러 명상에 잠겼던 티파사, 카뮈의 피난처이자 페스트의 배경지가 되는 오랑과 예술과 정치 활동의 정점을 찍었던 프랑스 파리, 평생 카뮈를 힘들게 했던 폐병으로 요양을 하면서 보냈던 파늘리에, 연극 축제가 열렸던 앙제, 말년의 거처가 있었던 루르마랭 까지 돌아보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카뮈의 여러 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불러낸다. 작품마다 카뮈의 분신과 함께 호흡하는 듯 더욱 실감나는 여행으로 만들어주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 주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르침을 주었던 루이 제르맹 선생을 만날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족들 대부분이 문맹이었고, 어머니는 선천적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데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말을 더듬고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던 스페인 출신 여성이었다. 집 안에 책이나 잡지 한 권도 없는 문화적 진공 상태에서 살았던 카뮈가 파리의 지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를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 스승의 사랑이 기초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의무교육만 마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처지였던 카뮈에게 있어 커다란 삶의 은총이었다. 학교는 책과 더불어 지적 욕구를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었지만 집에 오면 낯선 세계처럼 이방인이 되었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려운 집안 환경이 부끄럽고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용납되지 않는 모순 속에서 반전이 일어나는데...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위로 내리쬐던 그 아름다운 햇볕 덕분에 원한이라는 감정을 품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햇볕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주인공 뫼르소가 떠올랐다. 한 번 더 읽는다면 카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좀 더 명쾌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빈곤 속에서 살았지만 즐거움을 만끽할 줄도 알았다니 아마도 선천적인 활기를 갖고 있었던 듯하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작품인데 작가 수첩에 대한 언급이 꽤 많이 나온다. 카뮈가 19355월부터 195312월까지 일곱 권의 공책에 쓴 것인데, 이것을 모두 모아 출간하면서 그 제목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작가 수첩은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품 구상도 아니지만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걸 나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뮈는 자기의 삶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걸 싫어했는데 이것은 나중에는 조금 경향이 바뀌기도 했다.이방인을 두 번 읽었지만 같은 제목의 시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바로 보들레르의 시 <이방인>이라고 하는데 카뮈는 스무 살 무렵부터 이 시를 암송했다고 한다.

 

 

수수께끼 같은 친구여, 말해보게.

너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제?

나에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소

친구들은?

당신은 이날까지도 내가 그 의미조차 모르는 말을 하는 구려.

조국은?

그게 어느 위도 아래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오.

미인은?

불멸의 여신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겠지.

황금은 어떤가?

당신이 신을 싫어하듯, 나는 황금을 싫어하오.

그렇군! 그렇다면 너는 도대체 무엇을 사랑하는가, 별난 이방인이여?

나는 구름을 사랑하오……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 신

비로운 구름을!

 

-샤를 보들레르, 이방인-

 

 

  마치 카뮈를 위해 지은 시 같지 않은가!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벙어리처럼 살았던 어머니의 존재, 프랑스와 알제리 가운데서 정체성의 고민이 끊이지 않았던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야했던 카뮈의 고독감,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아내의 배신 등 삶 자체가 온통 부조리였던 카뮈를 온전히 떠올릴 수 있는 시여서 묘한 신비감이 느껴졌다.이방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에도 파리 지식인들 사이에서의 냉담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 후유증으로 밀실 공포증을 겪기도 한다.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비판으로 사르트르와의 결별 등 파리의 좌파 지식인 사회에서 고립된다. 이런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연극 활동에 주력하며, 지식인들 사이에서보다는 연극을 하는 사람들과 더 진한 동지애를 느꼈으며 직접 몸으로 뛰면서 축구를 할 때 살아있는 자신을 느꼈다. 카뮈는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윤리도 축구 경기장과 연극무대에서 배운 것이라고 할 만큼 애정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시대가 급변하여 카뮈의 정치적 신념이 옳았음이 인정되었고 짧은 생을 치열하게 살며 실천한 지식인으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루르마랭에 있는 카뮈의 집. 지금은 그의 딸 카트린이 살고 있다고 한다.

 

 

 

                                  루르마랭에 있는 카뮈 묘석.

 

 

  자신의 남은 삶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을 미완성인 채로 놓아두고 떠나지는 않을 텐데. 1960년 미셸 갈리마르의 차를 타고 루르마랭에서 파리로 가던 중 가로수를 들이받는 사고로 마흔 일곱의 짧은 삶을 마치게 된다. 그때 튕겨 나간 가방 속에서 최초의 인간미완성 작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가난과 폐병, 두 나라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독감, 냉대를 극복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려 했던 그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는다. 좀 더 오래 살아남아서 온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우리도 또 하나의 감동적인 메시지를 듣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이다. 카뮈의 딸 카트린의 노력으로 최초의 인간34년 만에 출간될 수 있어서. 인생이란 언제나 연습이 없고 미완성으로 끝난다. 작품의 뒷이야기는 살아남은 우리가 잘 살아냄으로써 찾아야하는 몫이 아닐까. 아직 읽지 못한 카뮈의 많은 작품을 만날 생각을 하니 기대감으로 설렌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뷰어클럽 이벤트에서 이 책을 접했을 때 두근두근 설렜다. 이름만 봐도 울렁거리는 버지니아 울프부터 프리다 칼로까지 지난 400년간 이름을 알린 소설가, 안무가, 화가, 영화감독 등 131명의 예술가들의 은밀한 일상의 루틴을 소개하는 이야기라고 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 다르다. 똑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성과를 내면서 성공을 이루어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전이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디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 답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위대한 작가와 예술인들은 영원한 우리들의 우상이 아닌가. 우리는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감추어진 노력은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단조로운 일상의 루틴을 따랐던 사람도 있었고, 불규칙하지만 영감을 받아 폭풍처럼 일을 했던 이들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아침을 커피 한 잔으로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흥미로웠다.

 

  작가나 에디터,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하루에 관심이 많았던 메이슨 커리는 2013년에 데일리 루틴이라는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어 그동안 모은 결과물을 토대로 리추얼을 출간했다. 하지만 그 책에 소개한 161명 중 여성은 단 27명뿐인 성비 불균형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기울인 결과 예술하는 습관이 탄생했다 한다.

작가는 물론이고 화가, 작곡가, 저널리스트, 시인, 복식 디자이너, 사회운동가, 극작가, 사회학자, 싱어송라이터 등 정말 다양한 일에서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한마디로 말하면 거저 성공을 거머쥔 경우는 없었다. 좋은 배경의 집안에서 성공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열정과 땀으로 성취해낸 삶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작가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쏠렸다.

 

  첫째 장의 쓰는 사람들의 집필 습관에서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을 만나게 된다. 올콧의 글쓰기가 얼마나 맹렬했는지 알게 되었다. 창의적 에너지가 쏟아질 때는 식사도 건너뛰고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쓸 정도여서 오른 손에 쥐가 나서 왼손으로 쓰는 법을 익혀야 했다고 한다. 작품 속 주인공 조에게 글쓰기용 모자가 있었다면 올콧에게는 기분 베개가 가족과의 소통을 연결해주는 도구였다. 인기 있는 아동서의 수익성을 바라는 편집자와 아버지를 즐겁게 해 주려고 썼던 작품이 순식간에 돌풍을 불러일으켰다니 놀라웠다.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오랜 시간 무명 시절을 버텨야 했으니 독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고 돈이 잘 들어왔기 때문에 그 일을 했다는. 그 덕분에 전업 작가가 되었지만 야망은 도리어 사그라졌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작품이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영감을 느끼지 못했던 작품이라니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엄격하게 루틴을 지키는 작가도 있었다.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에게 쓰기 시작한 편지로 첫 소설 영혼의 집을 출간한 이사벨 아옌데의 루틴은 얼마나 황당하고 재미있었는지.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는 등 차려입고글을 쓴다는 것이다. 잠옷을 입은 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면을 자주 들어와서 인지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아옌데의 경우는 외관을 갖춤으로써 글쓰기에 필요한 정신을 무장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개성이 남다른 이들의 색다른 루틴을 만나는 것도 신선한 기쁨을 주었다.

 

  좋은 날이든 나쁜 날이든 언제나 쓰는 버지니아 울프가 있는가 하면 습관적 삶은 따분하다는 프랑수아즈 사강도 있었다. 겨우 열여덟 살에슬픔이여 안녕으로 놀라운 데뷔를 한 그녀에게 우리는 천재 작가라는 칭호를 아끼지 않는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것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습관적 삶에 빠지고 싶지 않아요. 전 항상 이사를 다녀요. 광적일 정도죠. 일상생활의 물질적 문제들은 따분하기 그지없어요.”(321)

 

그 작품을 아무런 준비 없이 하루에 두세 시간씩 써서 두세 달 만에 그 작품을 끝냈다고 한다. 하루에 쓸 분량을 정해놓고 규칙을 지키는 이들도 있지만 사강의 경우는 몰입을 활용해서 작업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방법이든 두 경우 모두 그것을 해 내고야 말겠다는 열정과 신념이 공통분모였던 것이다.

 

정신이 녹슬기 시작하면 대책 없이 심각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글을 쓰는 게 중요한 것이다. 더없이 한탄스러운 허튼 소리를 쓸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매일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한두 쪽의 글이 나온다. 그러므로 계속 글을 써야 한다. 그것이 레이스 드기를 제외한 여성의 유일한 희망이다.(P196)

 

  20세기 모더니즘 영문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동성애를 주제로 한 대표작나이트우드를 쓴 주나 반스(Djuna Barnes 1892-1982)의 말이다. 매일 써야 한다는 글쓰기의 중요성에 공감이 간다. 보통 사람인 우리가 얼마나 영감을 받을 일이 있을까 생각하면 기분이 좋든 나쁘든 매일 쓰는 습관이야말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시키는 요소라고 생각되었다.

 

화장실, , 제트기, 헛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는 기차나 파리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기차에서도 글을 썼어요. 침대에 누워서, 혹은 병원의 기계장치에 기대어 글을 썼고, 호텔과 지하창고, 모텔, 자동차 안에서도 글을 썼죠. 건강하든 아프든, 행복하든 절망적이든 상관하지 않고 항상 글을 썼어요.”(P296)

 

  스물한 살 때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매일 아침 9시에 일어나 하루 천 단어를 목표로 글을 썼다는 에드나 페버의 이야기다. 그녀는 일반근로자는 주 5일을 일하지만 작가는 일주일 내내 일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매일의 힘이 소설 12권과 단편소설집 12, 연극 각본 9, 자서전 2권을 내면서 50년의 집필 경력을 이루었던 것이다. 작가를 부러워하면서도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둥 글을 쓰는 분위기 조성이 안 된다는 핑계의 무덤 속으로 파고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떤 환경이든 언제든 하고자 하는 열정만 있다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에드나 페버의 성취로 배울 수 있다.

 

우리의 일치된 존재감을 보여주는 영웅적인 시기였어요. 작업 환경이 열악했지만 우리는 아주 행복했어요. 우리는 하루하루를 그 실험실에서 보냈죠. 그 허름한 창고에는 깊은 평온이 감돌았어요. 우리는 때때로 몇몇 실험을 지켜볼 때 현재와 미래의 작업에 이야기하며 왔다 갔다 했죠. 추위가 느껴지면 난로 근처에 놓아둔 뜨거운 차 한 잔으로 추위를 달랬어요.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한 가지에 사로잡혀 지냈죠.”(P411)

 

  마리 퀴리가 남편과 함께 방사능 연구를 하여 최초의 방사성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다.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행복은 성취로 이어지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도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신념으로 버텨내며 성취해 낸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쉽게 미루고 포기하곤 했던 것이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여성들의 이야기라서 더욱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집안일은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육아를 하며 그 많은 일들을 해냈는지, 위기는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 궁금한 마음을 안고 읽어나갔다. 예술을 위해서 평범한 삶과 결혼을 거부한 이사도라 덩컨을 비롯한 몇몇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설거지를 끝내고 나서야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화가 캐럴리 슈니먼이 있었고,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아침을 제일 힘든 일로 시작했던 줄리아 워드 하우 같은 작가도 있었다. 그녀는 남편 몰래, 남편의 허락 없이 시계꽃을 출간하여 남편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당시 여성의 사회 참여가 어려웠던 상황을 상기할 때,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성취 해낸 열정과 도전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또 일요일도 아까워하며 일과 치열하게 연애를 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일 중독자였던 코코 샤넬 이야기 등 잘 알지 못했던 많은 예술인의 루틴을 읽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졌다. 여성에게 있어 일상의 삶과 자신의 일을 균형 있게 양립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충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지만, 무엇에 우선하느냐에 따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일상 루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루틴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전에 비해서 얼마나 성장했는가. 보완할 점은 없는가, 등등... TV를 끊은 지 수 년이 되었는데도 나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다독하는 편도 아니고 한 달에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어려울 만큼 시간에 쫓기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잠은 일곱 시간을 자야 하는 것을 고정관념으로 갖고 있는 나... 그래서 다짐했다. 나도 좀 아침형인간이 되어보자고. 어려운 조건하에서도 훌륭한 업적을 이루었거나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 똑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일까. 131인의 다양한 예술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마법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그것을 성취하고 싶다는 열정과 신념만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위대한 작가와 예술가들의 루틴을 따라한다고 해서 당장 삶의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활 습관을 점검하고 재고하면서 동기부여를 갖게 되면 이전보다 성장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로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밤에는 그런 의욕으로 가득하지만 아침이 되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약한 멘탈을 가졌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매일은 힘들겠지만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욕을 느꼈다. 꼭 예술가를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삶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이들 131인의 루틴 이야기가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나태함이 내 안에 파고들 때마다 자주 펼쳐 보게 될 책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렌드 읽는 습관 - 모든 기획의 시작 좋은 습관 시리즈 4
김선주.안현정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 19 초유의 사태로 인해 사회 각 전반에 대한 트렌드 변화를 알리는 언론 매체의 기사를 시시각각 전해 듣고 있는 요즘이다. 몇 달 전에 비하면 그나마 움직임이 좀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문제가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모임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공연 실황을 유투브로 보여준다는 기사도 눈에 띄어서 세상이 변화하고 있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이러한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지 못했던 만큼 일상에서 트렌드를 읽는 습관을 알려준다는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읽게 되었다. 하얀 표지의 심플한 디자인이 시선을 끌었다. ‘좋은습관연구소의 네 번째 책이다.

 

 저자 김선주, 안현정은 현재 트렌드 전문 컨설팅 펌인 COA컨설팅의 대표와 파트너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역시 공저로 트렌드 와칭, 마켓센싱하라, 트렌드 코드에서 비즈니스 기회 찾기가 있다. 저자는 트렌드 읽기를 주로 비즈니스 활용에 중점을 두어 연구했기 때문에 일시적 이벤트성으로 생각했지만 습관처럼 매일 해야 하는 일상적인 일로 생각의 전환을 하면서 집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구성은 1트렌드를 읽기 위한 4가지 질문’ 2트렌드를 읽는 12가지 습관’ 3트렌드를 비즈니스로 연결하기세 가지를 다루고 있다. 더 읽기코너에서는 트렌드 읽기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나 팁을 깊이 있게 알려주고 있다. 어렵지 않고 쉽게 읽혀서 좋았고, 접한 적은 있지만 모호했던 용어들을 검색해 보면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1부 트렌드를 읽기 위한 4가지 질문

 

 먼저 트렌드, 패드, 마이크로트렌드, 메가트렌드 등의 용어에 대해 먼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또 트렌드를 읽을 때 트리거(trigger)와 배리어(barrier)가 될 수 있는 거시 환경 요인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자는 트렌드를 폭발적으로 확산시키는 방아쇠(trigger)역할을 하거나 반대로 성장을 멈추고 지연시키는 장벽(barrier)의 역할을 한다. 코로나19는 트렌드에 영향을 주는 환경요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또 트렌드의 중요한 특징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생성, 성장, 쇠퇴의 과정을 거치므로, 주목하는 트렌드가 있다면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지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트렌드의 사전적 정의는 장기간에 걸친 성장, 정체, 후퇴 등의 변동 경향으로 5~1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유행하는 것을 말한다. 패드(Fad)For A Day의 약자로 지속되는 시간이 짧은 것이 특징이다. 최근 식품 업계에서 핫한 트렌드였던 흑당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시간의 경과에 따라 트렌드로 발전할 수도 있고 패드 상태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했다. 몇 달 전 흑당이 주방에 놓여 있어 뭔가 했는데 작은 아이가 사왔다는 걸 알았다. 음악을 하는 아들이 새로운 식품에 은근히 관심이 많다. 자주 밖에 나가고 다양한 정보에 많이 노출되어서 그런가.

 

 마이크로트렌드((Microtrends)5~10년 지속되는 유행이지만 더 좁은 대상을 상대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마지막으로 메가트렌드(Megatrends)는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Johnn Naisbitt)가 동명의 저서에서 처음 언급한 용어라고 하며, 어떤 현상 혹은 변화가 특정한 영역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전체로 퍼져 정치, 경제, 문화 등으로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인공지능이나 사물 인터넷, 1인 가구의 증대, 고령화 등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현재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코로나19도 메가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2부 트렌드를 읽는 12가지 습관

 

 2부에서는 사람, 매장 거리 모습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장소에서 일상의 트렌드를 읽는 방법을 알려준다. 뜨는 거리, 핫 플레이스, 전시회, 박람회, 대형 서점, 친인척 집 방문, 다양한 네트워크, SNS 활용, 뉴스 구독 서비스까지 다양한 경로에서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트렌드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 나가는 태도에 달려있지 않을까 한다. 나와는 관련 없다고 단정 짓는 것 보다는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내가 속한 일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생각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대형서점은 트렌드의 집합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흥미로웠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의 유명한 도쿄 구상이야기다. 역시 신간이며 베스트셀러 목록이라면 변화의 흐름을 살피며 신사업을 구상하는 것이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2년 전 도쿄 여행을 갔다가 들렀던 긴자식스의 츠타야 서점에서 보았던 광경이 떠오른다. 수많은 책들이 쌓여있는 것만 해도 웅장하고 눈부실 지경인데, 서점 한 가운데서 명품 경매가 행해지고 있었다. 책만 있는 서점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뭔가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등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변화의 흐름이 느껴졌다. 대형 서점이 트렌드의 집합체라는 말에 수긍하게 되는 이유다.

 

3부 트렌드 비즈니스로 연결하기

 

 이렇게 트렌드를 읽기 위한 4가지 질문의 내용을 알고 12가지 습관을 배웠다면 이제는 내 일의 관점으로 주관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트렌드를 재빨리 포착했다면 내가 하는 일에 적용할 수 있는 순발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트렌드 주관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념 이해보다 트렌드의 원인이 되는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덧붙이자면 해당 트렌드가 어떤 이유로 나타났고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이해가 될 때 해당 트렌드를 우리 업에 접목시킬 주관화와 연결고리도 쉽게 찾을 수 있’(P153)다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트렌드라는 속성을 볼 때 새롭고 독특한 것이 아니면 시선을 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익숙한 것만을 연결 짓는 것보다는 관련 없는 산업의 트렌드까지도 함께 가져와서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제 1인 가구가 600만 시대라는 뉴스 기사를 보았다. 가족과 가정이라는 개념을 유연하게 변화시켜 놓았다고 할 수 있을까. 수많은 트렌드 변화는 이미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도 수많은 형태의 비즈니스 아이템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일상에서 트렌드를 읽는 12가지 습관 중 단 몇 가지라도 연습을 해보고, 실천할 수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트렌드의 사업화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조직의 협조와 이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트렌드 변화(Why)가 있었는지 명확하게 했다고 해도 누가, 어느 조직(Who)에서 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다면 사업화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출해 낸 트렌드로 성공 비즈니스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역량과 조직 내 구성원들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했다.

 

 트렌드가 확산되고 그에 반하는 역 트렌드가 발생하는데 인간 심리가 작용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코로나 19는 이미 우리의 많은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비접촉을 의미하는 언택트는 온라인 구매부터 재택근무, 화상 회의, 온라인 교육, 원격 의료 등 사회 전반에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에 있다. 꼭 마케팅과 비즈니스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트렌드 변화를 읽을 수 있는 혜안이 생긴다면 여러 가지 상황에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이전보다 유연한 생각을 할 수 있겠고, 일상적으로 거리를 다니더라도 좀 다른 풍경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시선에서 새로운 기획을 얻고 싶은 직장인이나 트렌드 변화를 어떻게 비즈니스에 연결할 수 있을까 궁금한 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침묵의 언어'를 살피는 것이야말로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 오해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P104)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이란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설레는데 코로나19로 온 세상을 뒤덮어 꿈도 못 꾸는 요즘 상황에 딱 어울리는 책을 만났다. 여행책이 아니고 여행준비 책이라는 책 소개에서 벌써 재미는 보장하겠다 싶었다. 여행은 못 하지만 여행준비는 할 수 있다. ? 책은 제목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참 잘도 지었다. 여행준비의 기술이라니. 원래 여행을 가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떠나기 전부터가 이미 설렘과 기대감으로 날개를 단 기분이지 않나. 이 책 쓰려고 계획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예약해 두었던 출장과 여행이 모두 취소되는 바람에 서둘러 쓰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이 취미가 아니라 여행준비가 취미였다는 것을 다시 떠올리면서 말이다.

 

 

 

 

 

영어가 안 되면 시원스쿨

여행을 못 가면 여행준비!

딱 보는 순간 영어학원과 여행사 합작의 광고 카피인가 했다

다 읽고 나서 보니 이 책 핵심 내용을 제대로 뽑아 놓은 거였다.

 

 저자의 다재다능한 이력도 흥미를 끌었다. 의사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여행준비러책 팟캐스트(YG)JYP의 책걸상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장편소설 종합병원2.0, 한국의료 해설서 개념의료, 평론집 한국의료, 모든 변화는 진보다등이 있고, 청진기가 사라진다(공역), 환자의 경험이 혁신이다(공역), 차가운 의학, 따뜻한 의사8권의 책을 번역했다.

 

 이 이야기는 여행준비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 오래전 여행 추억담과 여행준비를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떠나지 못한 아쉬운 여행 등 온갖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더구나 가보지 않은 여행지를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리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여행준비 스토리도 들어있다. 이 정도 되면 여행준비가 취미라는 걸 확실히 인정해야 할 정도다.

 

 저자가 말하는 여행준비의 기술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일은 여행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는 시점의 각종 기념일을 활용하거나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성취를 기념하는 것으로 명분을 만들면 된다. 후자의 경우 예를 들면, 책 한 권 낸 후, 승진 후, 악기 하나 배운 후 등 나에게 보상하는 것으로 여행의 명분을 찾으면 된다. 여행적금을 들어 여행을 준비하거나 노력형의 대표격인 외국어 공부를 적극 추천하고 있다. 적금은 2년이 적당하며 끊이지 않게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어 공부에 대한 부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여행 때마다 현지인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돌아왔던 일을 떠올리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동안 여행을 돌아보니 어쩌다 1년에 한 번 아니면 두 번의 여행이라 최소한으로 준비만 하고 갔지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해 본 적이 없다.

 

 여행준비하는 과정도 버리기 연습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여행의 기회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여행지를 찾는 과정에서 버릴 것은 버려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시 여행준비러다운 통찰이다. 여행지 목록을 만들 때는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처럼 막연하게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적으라고 했다. 예를 들어 현대미술관 다섯 곳, 영화 촬영지 다섯 곳, 특이한 박물관 등. 이렇게 목록을 만들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엔 자신에게 딱 맞고 만족할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내는 작업이고 그렇지 않은 곳을 걸러내는 작업이 여행준비의 단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준비가 취미일 때 장점은 무엇일까. 이것은 여행준비를 많이 하고 떠난 여행일 때도 그렇지만 준비만 하고 떠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노르웨이 여행이 화제에 올라 대화가 무르익었는데 가본 적은 없지만 미리 여행준비를 해 두었기에 척척 이야기가 진행된다. 상대방은 가봤느냐고 물었다는데 아직이라는 저자의 말에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 결국 좋은 분위기가 미팅 결과도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화의 기술이 제대로 빛을 발한 것이다. 여행준비의 진가는 이런 것이었다.

 

여행의 좋은 점은 무엇일까. 여행의 좋은 점은 100만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라고 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피하고 싶었으나 평소에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P78)

 

 여행준비에 있어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과 지겨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에 큰 비중을 둘 것이냐에 있다고 했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준비의 시작은 평소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찾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다 주어지는 여행을 별다른 계획 없이 떠났다가 가보고 싶은 장소가 문을 닫았거나 하는 바람에 아쉬운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여행준비는 다르다. 특히 구체적인 여행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언젠가 꼭 가리라는 다짐도 없는 채로 느릿느릿 하는 여행준비는 괴로울 까닭이 없다. 내가 이런 여행 계획을 세웠노라고 어디 가서 발표할 일도 없고, 내가 준비한 계획을 다른 사람의 그것과 비교하여 잘했니 못했니 따질 필요도 없다. 그저 가고 싶은 곳의 목록을 하나 늘리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두 가지 상상만 하면 된다.’(P87)

 

 시험준비, 출근준비, 식사준비, 회의준비 등은 즐겁지 않아도 어쩔 수 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여행할 곳을 공부하고 준비하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참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구글 지도에 가고 싶은 곳의 별을 찍으며 여행지의 목록을 늘리는 방법도 있었다. 이 부분은 욕심보다는 희망에 방점을 찍으며 희망은 최대한 많이 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여행의 목록을 늘리면서 언젠가의 여행을 꿈꾸고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공부하는 과정도 좋을 것 같다. 이밖에도 인생의 맛집, 추억의 맛집에 대한 에피소드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애착으로 좋은 식당을 예약하고 거기를 찾아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독서와 여행준비는 좋은 짝이다. 둘 다 좋은 취미지만, 두 가지를 다 좋아하면 확실한 시너지가 생긴다. 목적지가 정해졌을 때, 조금만 검색해보면 그곳과 관련된 책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책값 몇만 원을 미리 쓰면, 여행이 최소 몇십만 원어치는 더 즐거워진다. 독서는 여행준비를 자극하고, 여행준비는 독서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독서는 여행을 더 즐겁게 만들고, 여행은 독서를 더 즐겁게 만든다. 이런 게 바로 선순환의 좋은 예가 아닐까.(P167) 

 

 코로나로 인해 우울증 비슷한 상황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 정말 여행의 기분을 되살릴 수 있다. 역시 기대한 것처럼 재미있었다. 나도 이제는 닥쳐서 준비하지 말고 평소에 차근차근 여행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여행지를 꿈꾸며 틈틈이 가고 싶은 장소의 정보를 탐색하고 목록의 리스트를 적어 가면서 여행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공부도 되고 여행하는 설렘으로 일상에 활력소가 될 테니까. 지금 여행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 우울한 기분 탁 털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