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데미안 (블랙 스카이버(가죽) 금장 에디션) -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데미안』 금장 에디션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헤세의 이 작품을 고1때 읽었고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독서회 선정도서로 두 번째 읽었으니, 이번이 세 번째인 셈이다. 앞의 두 번 읽은 것은 그 유명한 명문장 말고는 가물가물했는데 이제 겨우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읽기는 초판본 금장 디자인으로 소장의 기쁨까지 누리게 되어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이 작품은 1919년에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간되었다. 이미 성공한 작가였지만 작품성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명으로 출간했다 한다. 소설가 토마스 만이 출판사에 에밀 싱클레어가 누구인지 알려달라는 일례도 있었고 평론가 코로디가 데미안의 문체를 분석해서 헤세임을 밝혀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어있다.(역자(이순학) 해설에서) 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출간되자마자 이 작품의 작가가 헤세임을 알아보았다는 이야기는 정여울 작가의 클래식 클라우드 헤세에서 알았다.

 

 

 이 작품은 헤세가 중년의 나이가 되어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써 내려간 이야기다. 열 살 때 고향에서 라틴어 학교에 다닐 때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싱클레어가 다른 두 친구와 함께 프란츠 크로머라는 친구를 따라 놀러 간다. 그들 사이에서 왠지 이방인 같은 자신과 놀아주지 않을까봐 하지도 않은 도둑질을 했다고 거짓말로 으스댔다가 크로머에게 덜미를 잡히고 그는 싱클레어에게 2마르크를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싱클레어는 물에 빠져 죽어버릴까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게 되고 이전의 따뜻하고 밝았던 세계의 삶이 산산조각 난다.

 

 여기서 헤세의 자전적인 작품 수레바퀴 밑에서의 주인공 한스가 떠올랐다. 모범적이고 마냥 여린 성격의 한스는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수줍어서 친구를 사귀지 못하다가 헤르만 하일너에게 매료되어 결국은 학교생활이 엉망이 되고 병을 얻어 주검이 된다. 그 한스 보다는 조금 베짱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크로머에게 돈을 주기 위해 집에서 좀도둑처럼 물건이나 돈을 훔치기 시작한다. 모범적인 가정, 사랑, 따뜻함의 밝은 세계에서 어두운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어두운 세계가 싫지만은 않아 보인다. 부모님께 사실을 털어놓고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혼자서 고통을 감당하려고 한다. 물론 여러 번 망설이기는 하지만 우선은 비밀로 한다. 혼자만의 비밀을 가진 채 가족들과 지내는 일은 어딘가 어색하고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결국 크로머에게 2마르크를 다 주고도 그 고통은 끝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신비스런 존재 막스 데미안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데...

 

 데미안은 부유한 미망인의 아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과 동시에 온갖 소문을 달고 다닌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점점 매료되기 시작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읽어낸다. 이미 알고 있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반론을 펼치면서 싱클레어를 놀라게 하더니, 크로머를 때려 죽여서라도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무시무시한 말을 한다. 데미안 덕분에 크로머라는 악마에게서 벗어났지만 싱클레어는 이제 자신의 내면의 어두운 세계와 싸우기 시작한다.

 

 데미안과 열띤 토론을 벌이던 어느 날, 사색에 빠져 딴 세계에 있는 듯한 데미안에게 전율을 느낀 싱클레어는 행복했던 유년 시절이 낯선 것이 되고 무너져 내린다.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하고 퇴학처분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어느 날 공원에서 마주친 한 소녀를 만나고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이고 숭배하다가 땅에 떨어질 만큼 비참해진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된다. 데미안이 그리워진 싱클레어는 어떻게든 다시 만나기 위해 집 현관에 있는 문장의 새를 그려 데미안에게 보냈는데 그 유명한 문장이 답장이 되어 싱클레어에게 돌아온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P123)

 

 처음 접했을 때부터 참 강렬한 인상을 주는 문장이었다. 신비함을 주는 신의 이름 아브락사스도. 하지만 알이 세계이고 세계란 누구든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장벽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장벽을 깨고 신에게 날아가는데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며 아브락사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뜻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를 모두 포괄하는 세계,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 아닌가. 장벽이란 개인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청소년에게 있어서는 성적과 이성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고 어른들에게 있어서는 삶에서 각자 안고 있는 해결해야 할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 시절 헤세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온갖 고뇌로 인해 들끓는 청춘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메시지이기도 하다. 나락에 떨어졌다가 회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내면에서 간절하게 그리던 형상인 에바 부인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내면 탐구를 거의 마칠 무렵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전쟁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외부의 세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험하게 한다. 싱클레어는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장면은 뭉클한 감동이었다.

 

꼬마 싱클레어, 들어봐! 나는 떠나야 해. 자네는 아마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겠지. 크로머나 그 밖의 일 때문에 말이야. 그땐 네가 나를 불러도 내가 말이든 기차든 되는대로 막 타고 올 수는 없어. 그때 너는 네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이미 너와 함께 있음을 알게 될 거야. 알겠지? 그리고 또 하나! 에바 부인이 부탁했어. 만약 네가 언젠가 나쁜 처지에 처하면 그녀가 나에게 보낸 입맞춤을 너에게 전해주라고 말이야…… 눈을 감아. 싱클레어!”(P227)

 

 서로 이마의 표식을 꿰뚫어 봄으로써 친구가 되고 우정을 나눈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이야기는 다소 판타지 같은 느낌도 들었다. 유난히 꿈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몽상가였던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여행이기 때문이었을까. 처음부터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감사와 두려움, 놀라움과 불안감, 호감과 반항심이 뒤섞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닮고 싶은 또는 그렇게 되고 싶은 싱클레어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니었을까. 헤세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며 써 내려간 이 작품은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역시 헤세의 작품은 여러 번 읽어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다음에 읽으면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무척 기대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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