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클레온 :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조국보다 친구를 더 소중히 여기는 자 역시 나는 조금도 존중하지 않소이다.  ..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조국 땅이며, 조국이 무사히 항해해야만 우리가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음을 내가 잘 알기 때문이오. 이런 원칙에 따라 나는 이 도시를 키워나갈 작정이오.

 

 

안티고네 : 나는 또 그대의 명령이, 신들의 확고부동한 불문율들을 죽게 마련인 한낱 인간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아무튼 하데스는 이런 의식을 요구해요.

 

하이몬 : 아버지의 눈초리가 하도 무서워 일반 시민은 아버지의 귀에 거슬릴 만한 말은 입 밖에 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 소녀를 위하여 도시가 이렇게 비판하는 소리를 어둠 속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여인들 중에서 가장 죄 없는 그녀가 가장 영광스러운 행위 때문에 가장 비참하게 죽어야 하다!”

 

클레온 : 나는 이 나라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뜻에 따라 다스려야 하니?

하이몬 : 한 사람에 속하는 국가는 국가가 아닙니다.

레온 : 국가는 그 통치자의 것으로 간주되지 않느냐?.

 

 

『안티고네』는 오디푸스 3부작 중 내용상으로는 가장 나중의 이야기지만, 가장 일찍 쓰여진 소포클레스의 비극이다.  소포클레스의 현존하는 비극 7편은 대부분(혹은 모두?) 소포클레스 자신의 순수 창작물이 아니다. 전설로 전해져 오거나 역사상 존재했다고 알려진 이야기들을 비극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 오디푸스도 이미 있던 있던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티고네』 - 『오디푸스왕』 - 『콜로노스의 오디푸스』 순으로 창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 앞뒤가 딱딱 맞는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용상으로는 오디푸스가 스핑크스의 비밀을 풀고 테바이의 왕이 되어서 신탁의 불길한 예언대로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들을 낳고 비극적 최후를 맞는 『오디푸스왕』이 첫 번째이다. 어머니이자 아내였던 이오카스테의 브로치로 자신의 눈을 찌른 후 테바이에서 쫒겨나 방랑하던 오디푸스가 콜로노스에서 죽음을 맞는 『콜로노스의 오디푸스』가 두 번째다. 아버지 오디푸스를 끝까지 수발하던 안티고네가 테바이로 돌아가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주려다 클레온에 의해 산채로 무덤에 갇히는 이야기인 『안티고네』가 마지막 작품이다.   

  디오니소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비극 경연대회를 보고 있던 아테나이의 시민들은 아마도 익히 알던 이야기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앞뒤 세세한 설명이 없어도『안티고네』의 두 오빠들이 왜 싸움을 하다가 한날 한시에 죽게 되었는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2500년 후의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은 이야기가 일어난 순으로 읽어야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안티고네』는  『오디푸스왕』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철학책을 읽다 보면 가끔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헤겔같은 근대 철학자도, 라캉이나 들뢰즈같은 현대 철학자들도 언급하고 있다. 헤겔은 『안티고네』를 통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대비하고 있다.

  당시 아테나이 시민들에게는 신들의 불문율과 인간의 도리를 주장하는 안티고네가 더 큰 정당성을 얻었던 듯 하다.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외국 군대를 끌고 조국을 쳐들어온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금지하고 국가의 법을 주장했던 클레온이 자식과 아내를 모두 잃고 파멸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나의 눈에는 안티고네의 주장이 더 막무가내로 보인다. 클레온은 합리적인 반면 안티고네는 아무튼 신이 그렇게 원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한 것이다. 우리 현대인은 여전히 '근대성'의 정신을 갖고 있다. 합리성이 판단의 절대 기준이다. '이성의 권위에 대한 계몽의 신앙' 이란 표현이 있다.  신으로부터 인간의 눈을 뜨게 한 이성 역시 또 하나의 신앙이다. 그 맹목적인 신앙으로부터 1,2차 대전이라는 대파국이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성의 신앙 속에 산다. 또 다른 신을 찾아내기 이전에는 아마도 이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유일신으로 혹은 올림푸스의 신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안티고네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먼저 읽은 회원들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고 중국 소설을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개구리도 물론 좋아하지 않고. 그런데 책은 재미있었다. 처음 약간만 참고 넘기면 자연스럽게 빨려들어가는 흡인력이 있다. 가슴을 울리거나 머리를 한동안 멍하게 하는 그런 감동에 빠지지는 못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내게 나쁜 소설은 지루하거나 엉성하거나 너무 감각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마음은 복잡해졌다. 우리말로 옮기면 진짜 비인간적으로 들리는 '계획생육' 이란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걸까?  어떤 책에서 보았는데, 멜서스가 구빈법에 반대한 이유가 경악스러웠다. 빈민들을 죽지 않게 도와주면 그것이 결국 빈민들에게 더 나쁘다는 것이다. 자식을 낳아 인구를 증가시키면 환경이 더욱 나빠진다. 일자리 구하기는 더 어렵고 입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돌아가는 식량이 더 적어지고 화장실 따위의 위생 환경도 더 나빠지고. 인구가 줄어야 살아있는 사람이 그 나마 더 나은 환경에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근근이 목숨만 붙여 자식이나 낳게하는 구빈법은 더 나쁜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현대의 우리 생각에는 악질적이고 비인도적으로 들리지만 그 당시에는 그럴듯하게 들렸던 것 같다. 구빈법 논쟁에서 반대자들이 승리했다는 것을 보면. 

  『개구리』의 '계획생육'도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발상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한 세대 전만해도 실행했던 '산아제한' 역시 그렇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라는 기발하면서도 어딘지 해학적인 표어가 참 인상적이었다. 중국의 '계획생육'은 지금도 실시하고 있는 주요 정책이라고 한다. 이 정책 때문에 무호적자도 엄청나고 혼외자식도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소설을 읽어보면 참 무지막지하게도 실행했다. 그만큼 중국인의 특히 중국 농촌의 반감이 극심했다. 그걸 보면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쉽게 '산아제한'에 적응했는지가 더 신기할 정도이다. 왜 그랬을까?

  새마을 정책으로 농촌이 단번에 해체되고 도시로 밀려든 산업노동자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좁은 땅덩어리의 우리나라는 중국 대륙보다 도시화가 훨씬 빨리 진행되었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느끼는 거지만 도시빈민은 농촌의 소작농 보다도 더 살기 어렵다. 제일 비참한 사람들이 도시 빈민이다. 서너 평짜리 토굴 같은 벌집 외에는 딱히 나가 숨쉴 곳도 없다. 아득바득 자식을 셋,넷 낳아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도시는 상대적 빈곤을 피부로 곧바로 느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엄청난 빈부격차에 욕망은 터질듯이 부풀어 오르고 삶은 극심한 좌절 속에 빠진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하나만 낳아 잘 먹이고 잘 입히겠다 이를 깨물게 될 것 같다. 농촌은 거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숨이 좀 트이지 않았을까? 사실 나는 잘 모른다. 농촌에 살지도 않았고 이런 현상을 깊이 생각해 본적도 없다. 그냥 그렇지 않을까 싶다. 특히 요즘의 극빈자 노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빛도 들지 않는 한평짜리 어두운 방에서 겨우 숨만 쉬는 도시 노인들 보다는 똑 같은 독거노인이라도 들에 나가 야채라도 뜯는 노인들이 한결 건강해 보인다. 뭐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든, 도시화가 더 빨리 진행되었건 한국인의 욕망이 중국인들의 것 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든 하여튼 우리는 『개구리』에 나오는 그런 비극 없이 산아제한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것은 사실이다.

  중국이 그렇게 무자비하게 '계획생육'을 하는 것은 우리 보다 훨씬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일 것 같다. 조금 먹고 살만해진 '고구마 세대'를 거치면서 20년 만에 중국인구가 3억명이 늘었다니, 멜서스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는다는 학설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생각하면 아찔하기는 하다. '계획생육'이 기본적으로 나쁜 정책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농민들의 의식이 그것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이성적 계도가 되지 않으니 강제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고, 반감이 크면 클수록 하나의 예외도 어떤 정상도 참작할 수가 없다. 무자비한 원칙을 고수하지 않으면 제도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극은 그 대상이 사람 그것도 산모와 태아에 있다는 것이다. '계획 생육'은 임신 자체를 제한하는 것에서 나아가 불법으로 임신한 태아를 강제 낙태시키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묵인하게 되면 너도 나도 불법 임신을 하게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 만큼 중국 농민들의 자식에 대한 특히 아들에 대한 집착은 강하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여기서 인도주의 정신을 들먹이는 것은 쉽다. 멜서스의 구빈법 반대가 경악스럽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 아무 대책 없이 태어나서 아무 죄도 없이 죽어가는 수없이 많은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오늘도 TV화면에서 인도주의에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인도주의가 아니다. 그렇게 만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아프리카에 대한 서구 선진국의 구조적 수탈을 막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아이들이 대책없이 태어나는 것 역시 방지해야 한다. 거기에다가 하느님이 주신 자식 운운하는 것은 죄악이다. 

  『개구리』의 '계획생육'의 문제는 그들이 이성을 거부하는 농민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몇 권 읽어 보지 않았지만, 중국 근현대사의 인민들은 유난히 무지하다. 아Q가 그들의 전형이다.  '계획생육'을 해서 더 나은 환경에서 살 것인가, 전통의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다. 전 지구적 인구 증가가 재앙이 될 수 있겠지만 일단은 그들의 선택이 우선이다. 선택을 하려면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 필요하다. 중국 인민들에게 결여된 것은 이성이고, 이성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육을 하려면 먼저 인구의 제한이 필요하다. 한정된 자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교육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계획생육'을 먼저 강제해야 할까? 인민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먼저 교육해야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고전 연속 강의 2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Ⅲ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2

 

 

* 읽는 고전

①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②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헤르더의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제 31강

 

1. 프랑스 혁명사 

 

 

 

2. 혁명에서의 계급 관계

 

 

 

 

3. 이중의 혁명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 : 두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지가 19C의 주인공으로 등장

 

4. 민중공화정 : 1792년 8월 10일(튈르리 궁전 습격) ~ 1794년 7월 27일 (테르미도르 반동)

   ① 자코뱅파 중 산악파와 상퀼로트의 결합으로 가장 민중적인 인민중심의 통치가 이루어진 시기 : 신분에 의한 투표가 사라진 인민주권의 시대

   ② 혁명전쟁(1792~1802) 과 국민군 탄생 : 민중공화정을 두려워한 주변 왕정국가들의 연대가 강화되면서 프랑스 혁명은 외부의 반혁명 세력과 전쟁에 돌입

   ③ 프랑스의 ‘국민’ 의식 형성

   ④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 국내에서는 제3계급 중심의 온건파와 적대관계를, 국외에서는 혁명전쟁에 돌입하면서 혁명의 유토피아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내부 결집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공포정치로 귀결된다.

 

5. 나폴레옹

   혁명전쟁 중에 등장한 나폴레옹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획득하고 연이어 공화정을 파괴하고 제정을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 법전 등을 통해 인민주권 등을 확고히 법률화했다. 직업 관료제, 상비군, 경찰제도 등이 정착되었고, 그 결과로 중앙집권적 근대 국민국가 체제가 성립했다. 이 체제는 급진파의 인민주권론, 초보적인 의미의 사회주의, 국가주의가 결합된 것으로 나폴레옹은 혁명의 과업을 승계하였다.

 

 

제 32강

 

   프랑스 혁명은 유럽 전역에 혁명과 그 정신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독일에서는 나폴레옹 법전을 둘러싼 지식인 사회의 논쟁이 뜨거웠다.

 

 

제 33강

 

1. ‘역사철학’이라는 학문의 본격적인 탄생

   ① 볼테르 (1694~1778)

   역사철학이라는 용어 창안

   계몽주의적 역사관 : 인간 활동의 총체로서의 역사, 인과관계의 총체로서의 역사

   ② 데이비드 흄 (1771~1776)

   주관주의적 역사관 : 역사에는 법칙 따위는 없으며 역사란 각자의 주관적 관점에서 배열한 인간의 경험에 불과하다

   ③ 헤르더 (1744~1803)

   역사는 인류 도야Bildung의 학교,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내재화된 섭리 즉 합당한 이치를 갖춘 법을 파악하고 그것에 따라 개인과 집단이 교양의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 목적론적 역사관의 위험성

 

2. 인문주의 : 역사를 인간의 주인으로 보는 것, 인공물Kunstwerk

   ① 고대 아테나이

   ② 르네상스 인문주의

   ③ 독일 인문주의 18~19C :

   시작과 끝은 괴테 (1749~1832), 낭만주의 시대와 겹침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출간부터 헤겔의『법철학』출간까지의 약 40년

   이 시대 독일 민족주의는 자민족 중심주의가 아니라 보편사적 맥락을 가짐

 

 

제 34강, 35강, 36강, 37강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1848

 

1. 발문과 총 4장의 본문으로 구성된 약 46쪽(펭귄 클래식 판)의 팜플랫으로, 공산주의 coming-out 선언서라 할 수 있다.

 

2. 선언문이 발표된 1848년은 프랑스 2월 혁명을 기점으로 유럽 전역이 혁명의 열기에 들끓던 시기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혁명의 영향을 받아 선언문을 발표했지만, 혁명은 곧 시들어버린다. 곧 대호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848년부터 1875년까지 유래 없는 대호황 기였다.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철도가 확장되고, 산업구조가 섬유, 중공업, 화학, 전기공업 순으로 고도화 되었으며, 대중 교육 제도가 정착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성립했고 역사는 본격적으로 세계사의 단계에 돌입했다. 조선 역시 이 시기에 세계사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3. 각 장의 내용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과 그 주인공인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설명

   가장 중요한 장으로서 강유원이 인용하는 모든 문장이 1장에 속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 부르주아계급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등장,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처참한 상황,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최종적인 승리라는 완결된 드라마적 구조를 갖고 있다.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를 짧은 문장 속에 압축적이면서도 수사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명문이다.

   1장의 첫 문장은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로, 투쟁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계급임을 천명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있어 역사의 행위자는 계급으로서 그들의 역사관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2장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입장에서 본 향후 세계 전망

   3장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문헌 : 당시의 세계정세 분석과 사회주의 운동의 방식

   4장 현존하는 여러 반정부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입장 : 부록(?)

 

4. 『공산당 선언』의 주요 문장 : 출처는 모두 1장

   「지금까지의 봉건적 또는 동업 조합적 공업 경영 방식은 새로운 시장과 함께 늘어난 수요를 맞추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때 증기와 기계장치가 공업 생산에 혁명을 일으켰다. 공장제 수공업 대신 현대의 대공업이 등장했고, 공업 중간 신분 대신 공업 백만장자들과 공업 군대 전체의 우두머리들 그리고 현대의 부르주아가 등장했다.」

   「아메리카의 발견으로 대공업은 세계시장을 갖추게 되었다.」

   「철도가 확장된 만큼 꼭 그만큼 부르주아계급은 발전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현대의 부르주아계급이 어떻게 해서 기나긴 발전 과정의 산물이며, 생산방식과 교통방식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혁의 산물인지를 알게 된다. 」

   「부르주아계급이 발전해 온 이러한 단계 각각에는 그것에 상응하는 정치적 진보가 병행하였다. (...) 납세 의무를 지닌 군주국의 제3신분이었고, 그 다음 공장제 수공업 시대에는 신분제 군주국이나 절대적 군주국에서 귀족에 대한 균형 세력이었으며, 일반적으로 대군주국의 주요 기반이었는데, 대공업과 세계시장이 세워진 이후에는 마침내 현대의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를 쟁취하였다.」

   「현대의 국가권력은 부르주아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부르주아계급은 역사에서 매우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

   「이해타산이라고 하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속에」

   「부르주아계급은 지금까지 존경받았고 사람들이 경건하게 바라보던 모든 활동에서 신선한 후광을 벗겨 버렸다. 부르주아계급은 의사, 법률가, 시인, 학자를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 놓았다. (...) 부르주아계급은 가족관계에서 심금을 울리는 감상적 장막을 찢어 버리고 그것을 순전히 화폐관계로 환원시켰다.」

   「부르주아 시대는 생산의 끊임없는 변혁, 모든 사회적 상황의 부단한 동요, 영원한 불안과 격동을 통해 다른 모든 시대와 구별된다. 견고하고 녹슨 모든 관계들은 오래되고 존귀한 생각들 및 의견과 함께 해체되고 새롭게 형성된 것들도 모두 자리를 잡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신분과 관련된 것들과 정체되어 있는 것들은 모두 증발해 버리고, 신성한 것은 모두 모욕당하며 마침내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의 지위와 서로의 관계를 냉철히 응시해야만 한다.」

   「부르주아계급은 자신들의 세계시장을 착취함으로써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가 범세계적인 형태를 갖추게 하였다.」

   「이른바 문명을 자기 나라에 도입하라고 다시 말해 부르주아가 될 것을 강요한다. 한마디로 부르주아계급은 자신의 고유한 모습에 따라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자신을 조각내어 팔아야만 하는 이 노동자는 다른 모든 판매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이며 그에 따라 다른 상품과 똑같이 모든 경쟁의 부침과 시장의 변동에 내맡겨져 있다.」

   「오늘날 부르주아계급에 대항하고 있는 모든 계급들 가운데 프롤레타리아계급만이 현실적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그 밖의 계급들은 대공업과 함께 쇠퇴하고 몰락하지만 프롤레타리아계급은 대공업이 만들어 낸 가장 고유한 산물이다.」

 

5. 19C의 주인공, 부르주아

   ① 귀족 작위를 거절할 만큼(독일의 철강왕 크루프) 대단한 계급적 자부심

   ② ‘근면과 검소’를 제1의 미덕으로 삼으며 종교에 무관심하고 과학과 문화를 신봉. 다윈주의에 열광함으로써 그들에 의해 다윈주의가 사회적 진화론으로 왜곡 변형됨. ‘능력 있는 개인’

   ③ 정치적 토대로서의 ‘자유주의’ :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것. 프랑스 혁명의 제4계급이 원했던 ‘자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내용의 자유

   ④ ‘소유권’의 원칙 : 로크의 기본 사상으로 가장 신성시되는 최고의 가치

   ⑤ 「부르주아는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기 이전의 세상을 구체제라고 부르면서 귀족과의 관계를f 단절했습니다. 또한 화폐를 매개로 인간관계를 재조직하면서 근면과 성실을 중심으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경쟁을 통해서 승패가 결정된다는 시장 사회의 모형이 만들어지면서, 성공한 사람은 합리적인 사람이고 실패한 사람은 비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결과론적 설명이 자리 잡았습니다. 물론 부르주아는 자유, 평등, 우애 같은 보편적인 이상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이익이 관철되는 한에서만 용인되며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의 세계관에 찬동하는 한에서만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체제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를 부정하는 순간, 체제 밖으로 떨려 나갑니다. p406 」

 

6. 부르주아가 변형시킨 정치제제로서의 민주주의

   19C 부르주아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보통 선거가 없는 정치시스템으로서의 자유주의를 선호하였다. 그러나 파리코뮌 진압 이후 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되자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는 민주주의 방식을 개발하게 된다. 그 첫 째는 미국의 ‘상원 의원’ 같은 신분제다. 상원은 현대적 의미의 귀족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포퓰리즘’ 이다. 부르주아계급의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선전선동 방법을 개발한다.

 

7. 1870년대 이후 변화한 시장 환경 : 독점, 제국주의, 보호무역주의

   1870년대 이후 자본주의 체제가 독점 상태로 변하면서 동시에 국가 단위의 경쟁체제인 제국주의가 시작되었다. 1876년부터 1914년 사이 단 6개국이 지구 영토의 4분의 1을 나눠가졌다. 이 경쟁이 치열해지자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아니라 보호무역주의가 등장해 자국의 거대기업을 보호하였다. 장하준 교수가 현대에 이들 선진국들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사실상 ‘사다리 걷어차기’에 지나지 않다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8. 세기말 ‘유한계급’이 된 부르주아

   세기말의 부르주아는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말하는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삼는 부르주아가 아니라 소비에 치중하는 기생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 즉 유한계급으로 변질되었다. 『유한계급론』의 베블린은 미국의 기부 문화를 이런 현상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부르주아가 증세를 반대하고 기부를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할 수 있도록 사회적 제도를 변화시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 제도의 대표적인 예가 대학이다. 시카고 대학은 록펠러가 세웠고, MIT는 산학협동을 목표로 세워졌다. 세기말의 부르주아는 막연한 불안감, 목표를 잃은 상실감, 기생하는 삶에 대한 죄책감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세기말 문화를 만들어 냈다.

 

9. 마르크스가 말한 단일한 프롤레타리아계급이 형성되지 못한 이유

   ① 19C가 대호황의 시기였다.

   ② 노동자들 내의 구분과 차별이 있었다.

   대기업 노동자, 중소기업 노동자, 여성 노동자, 외국인 이주 노동자 등

   ③ 민족적,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가 노동자 의식 보다 우선했다.

   “만국의 프롤레아리아여, 단결하라!” 는 마르크스의 이상일 뿐이었다.

 

10. 19C 말 노동자계급 대중 정당 등장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미합중국에서도 사회주의 정당들이 등장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요소로는 노동자계급이라는 이데올로기의 내재화, 조직화된 집단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도시 공간이 계급적으로 구분됨에 따라 용이하게 된 노동자 의식의 공유이다. 거기다가 부르주아계급이 유한 계급화 함에 따라 근검절약이라는 프롤레타리아계급과의 공통점이 사라졌고, 부르주아계급의 특권화가 심화되자 국가권력과 특권을 남용하면서 프롤레타리아계급과의 대립이 심해졌다. 여기에 제2 인터내셔널과 러시아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1. 수정주의 논쟁 :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

   로자 룩셈부르크와 베른슈타인 사이에서 가장 격렬하게 이루어진 수정주의 논쟁은 ‘자본주의가 즉각적으로 붕괴하지 않는다면 독일 사회민주당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일어난 논쟁이다. 베른슈타인은 사회혁명을 목표로하지만 실천적으로는 체제 내로 들어가자는 수정주의 노선을 주장했고,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질서를 뒤엎는 계급투쟁이 아니라면 결국은 자본주의에 동조하는 것으로 사회민주주의 자체가 죽는다고 주장했다. 결과는 수정주의가 대세가 되었고 아마 이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독일사민당의 효시가 아닐까.

 

 

 

 

 

Ⅳ 제 1, 2차 세계대전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 읽는 고전

에드워드 카 『20년의 위기』

 

제 38강

 

1. 1차 세계 대전의 영향

   1914년 8월에 시작하여 1918년 11월에 끝난 제1차 세계 대전, Great War 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한 부르주아의 시대를 무너뜨리고, 국가가 행위 주체가 되는 국가권력의 시대를 열었다.

   「국가중심주의, 즉 국가주의의 깃발 아래 국민은 애국주의로 뭉쳤고, 부르주아 시대의 자유시장 경제가 아닌 전시 명령 경제가 지배적인 경제체제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국가는 인간 사회를 계획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하였고, 그 힘을 획득하였습니다. 이 국가주의와 국민 동원은 모든 개인, 모든 계급을 하나로 몰아넣은 괴물이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극성을 부린 파시즘은 이미 이때에 그 전조를 보였습니다.... 국가라는 괴물의 위력 아래서 인간 진보와 이성에 대한 신념은 파괴되었고, 인간의 삶의 조건 자체가 극적으로 변화하였습니다. p431 」

 

2. 제국주의 시대의 경제적 상황 : 제2차 산업혁명

   기술의 혁신으로 산업구조가 중공업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이에 따라 유럽 열강들은 고무, 철강, 석유 등의 새로운 원자재를 위한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 2차 산업 혁명은 과잉생산과 이윤율 하락으로 이어진 불황을 가져왔고 식민지 독점 쟁탈전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팽창주의적 무역경쟁이 바로 1차 세계 대전의 ‘조건’ 이다.

 

3. 제국주의 국가들의 엄청난 군비경쟁

   사태 해결방법이 무력밖에 없는 상황에서 군수산업과 정부가 긴밀히 연관되면서 군·산·정軍産政 복합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철강회사 크루프는 1,2차 세계대전 모두에 깊숙이 관여한 군수산업체이기도 하다. 전쟁이 비즈니스에 포함되면서 군수산업의 이익을 위한 전쟁도 벌어질 수 있게 되었다. 이 군비경쟁은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5년 전부터 엄청나게 치열해졌다.

 

4. 1차 세계 대전의 원인

   ① 깊은 원인 : 삼국협상(러시아, 영국, 프랑스) 대 삼국동맹(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양극체제로 전쟁의 긴장감 고조

   ② 중간 원인 : 독일의 세력 강화와 미숙한 외교 정책

   ③ 촉발 원인 :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의 청년이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건

 

5. 1차 세계 대전의 결과 사회주의 운동 궤멸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국제주의와 평화주의를 버리고 애국주의를 선택하며 서로 적이 되어 싸웠다. 제1차 대전을 겪으면서 대중도 국가교육 과정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대중은 국민이 되었으며, 국민의 탄생은 계급의 멸망을 불러왔다.

 

제 39강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의 전간기 20년을 분석한 에드워드 카의 『20년의 위기』가 분명한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다시 2차 대전이라는 전쟁 속에 휘말렸다.

1. 정치권력은 권력과 도덕이 결합된 것으로 이것은 군사력, 경제력, 생각에 대한 통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 군사력은 국가 활동에 필요한 수단인 동시에 그 자체가 목적이다. 군사력 강화나 다른 나라의 군사력 억제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3. 경제력 : 정치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다. 군사력이란 개념 안에도 이미 정치적 가치와 경제력이 포함되어 있다.

 

   「적국의 경제 체계를 마비시키는 것이 적국의 육해군을 격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전쟁 목표가 되었다. 국가가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활동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하는 계획경제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산물이었다. 전쟁 잠재력이라는 용어는 경제력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p453」

 

4. 생각의 통제 : 대중의 동의 그리고 대중의 선택의 위험성

   「히틀러의 말을 빌리면 ‘과학적 설명’은 인텔리를 위한 것이고, 프로퍼간다는라는 현대적 무기는 대중을 위한 것이다.p454」

   대중의 동의 없이는 권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독재는 대중의 뜻을 완벽히 실현하겠다는 공언을 통해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얻어내기도 한다. 즉 영도자 자체가 인민의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독재는 가장 성공한 민주정일 수 있다. 민주정의 절정은 대중 독재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나이의 민주정에 환멸을 느낀 플라톤은 민주정을 전제정으로 가는 전 단계의 저급한 정치제제로 경멸했다.

 

 

제 40강

 

   1939년 9월 1일에 발발하여 1945년에 끝난 제 2차 세계 대전의 결과 세계는 미합중국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시대가 되었다.

 

1. 원인

   ① 깊은 원인 : 독일 문제

   독일은 인구, 자원, 유럽 대륙에서의 지리적 조건 등에 있어 언제든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독일에 대한 유럽의 견제 세력이 균형을 잃고 있었다.

   ② 중간 원인 : 배상 문제

   1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한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독일에 부과한 전쟁 배상금이 독일 국민의 반감을 사고 있었다. 당시 경제 상황의 악화는 배상금이 아니라 물가폭등과 대공황의 영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국민들은 모든 문제를 배상금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③ 촉발 원인 : ‘단치히’ 문제

   현재 폴란드 지역인 자유 중립 도시 단치히를 독일인이 많이 산다는 이유를 들어 돌려받겠다며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틀 뒤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2. 종전 후 세계사의 재편 : 미국의 패권과 ‘마셜 플랜’

   1945년 종전 이후의 세계사를 현대사로 부른다. 이 현대사는 미합중국의 세계패권이 관철되고, 각국의 정치적 경제적 구조가 재편되는 과정이다. 미합중국은 막대한 돈을 투자해 마셜플랜이라는 유럽 부흥 계획을 실행했고, 세계패권 국가가 되었다. GATT, IMF 등 전후 경제체제가 성립되었다. 유럽은 이 시기 유럽형 복지를 시작했고, 노동운동은 혁명을 포기하고 자본가 계급의 동반자가 되는 corporatism을 채택했다.

 

3. 전후 자본주의 황금시대

   전쟁을 통해 과잉생산물이 모두 소비 되고 난 뒤, 자본주의는 황금기를 맞았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포즈주의와 완전 고용, 사회보장 확대 등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케인즈주의가 주류 이론이 되었다. 그러나 이 황금기의 풍요는 미합중국의 세계재편으로 주변부로 전락한 각 나라들이 수탈당한 결과이기도 했다. 신식민주의 체제가 가동된 것이다.

 

4. 신자유주의 등장의 배경

   1960년대 후반부터 이윤율이 감소했다. 1971년 닉슨은 금본위제를 폐지했다. 1973~74년 석유파동은 포드주의와 케인즈주의에 결정타를 가했다. 아시아에서는 중심부로부터 제조업부분을 넘겨받은 네 마리의 용이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 시기 경제학계에서는 시카고 학파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이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자본의 이윤율 하락, 중심부의 경제체제 변화,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변화 속에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이윤을 축적하는 체제로 등장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산당 선언 펭귄클래식 80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권화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마음에만 있고 선뜻 읽지는 못했던 책을 읽게 되는 때가 가끔 온다.  우연하게도 자꾸 눈에 뜨인다거나, 믿을만한 사람이 권한다거나 할 때가 그렇다.  작년 말부터 읽게된 강유원의 책들 중 『역사 고전 강의』를 방학 동안 두명의 이웃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책의 특성상 다루고 있는 고전을 함께 읽어야 하지만 영 엄두가 나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나 콩드르세의 『인간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같은 고전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열의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중에는 그래도 한번 읽어볼만한 고전이 아주 없지는 않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그렇다. 공통점은 두 책 다 비교적 얇다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은 작년 말에 언니네 갔다가 조카의 책꽂이에서 우연히 보았다. 책의 명성에 짓눌려 그랬는지 그 책이 그렇게 얇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한마디로 좀 만만해 보였다는 것이다. 백 페이지도 안되니, 어려워봤자 그걸 못 읽기야 하겠나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역사 고전 강의』에서 『공산당 선언』을 다시 만나게 되니 꼭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우연히 눈에 뜨이기도 했고 믿을만한 사람이 권하기도 하니 진짜로 때가 온 것이 틀림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그 유명한, 그러나 말로만 들어봤던  『공산당 선언』을 내 눈으로 직접 읽게 되었다.

 

 

  『공산당 선언』은 한마디로 하자면 공산주의자들의 '커밍아웃'을 선언하는 팜플릿이다. 본문만 치면 46쪽 (펭귄 클래식 판)밖에 안되는 소책자다. 그러니 당연히 어렵지 않다. 누가 '커밍 아웃'을 어려운 말로 하겠는가! 그런데도 부르주아지의 탄생과 자본주의의 발전 양태, 다가올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까지 근대의 역사와 미래의 전망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힘이 넘치는 문장은 신랄하면서도 유려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첫 문장,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와  마지막 문장인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들이 잃을 것이라고는 그들의 쇠사슬밖에 없다. 그들이 얻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만 보아도 이 팸플릿의 선동성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을 지켜보아야 했던 현재의 우리들에게 『공산당 선언』은 실패한 예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르주아 자본주의에 관한 분석과 묘사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부르주아들의 힘을 너무 만만히 보았던 것 같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상, 문화 등 세계 전부를 장악해 버린 부르주아는 죽음 의 불길 속에 새 생명을 얻는 불사조처럼 악마적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예견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예언했던 많은 것들이 지금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현실이 된 것도 사실이다.

 

  처음 도서관에서 『공산당 선언』을 검색했더니 강유원의 『공산당 선언』이 걸렸다.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없고 강유원의 것만 있었다. 어떤 대학이었는지 궁금하지만 여하튼 놀랍게도 대학 야간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책이었다. 시험도 보고 학점도 주는 정식 강의에서 한 학기 동안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강의한 것이다. 씨네21의 '정훈이' 삽화도 있고,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라는 부제도 붙어있다. 같이 읽으면 재미있다. 

 

  요즘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와 『아틀라스 세계사』도 함께 공부 중이다. 세계사를 전반적으로 그려보는데 매우 좋은 책이다. 청소년용이지만, 청소년 정도의 지식밖에 없는 처지라 아주 재미있다. 여하튼 조금 알게 된 역사에 따르면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1848년은 유럽 근대사에 아주아주 중요한 해이다.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 입헌군주제가 폐지되고 제2 공화정이 시작되었고, 이 혁명의 불길은 전 유럽으로 퍼저 나가 온 유럽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이 혁명의 승자는 부르주아지임이 드러나고, 승기를 잡은 부르주아지는 혁명의 맨 앞줄에 내세웠던 프롤레타리아트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 비극적 귀결은 1871년의 파리코뮌 대학살이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 그 자체로 부르주아지가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귀족과 잡았던 손을 놓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이용했던 혁명이기는 했지만, 혁명정신은 그 자체로 성장을 거듭했고, 부르주아지는 상황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를 이용하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하면서 지배권을 확보했던 것이다.

  이런 복잡한 구도 속에서 1848년에 이미 마르크스·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적이 부르주아지임을 명백히 천명하면서, 봉건적 사회주의, 소부르주아적 사회주의, 독일 사회주의, 보수적 사회주의, 부르주아적 사회주의, 비판적-유토피아적 사회주의 등 각종 사회주의를 비판했다. 이들 사회주의들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존속케하는 지지대의 역할을 할 뿐이며 오직 공산주의만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마르크스가 낭만주의적 유토피아적 사상을 끝장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가 처음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이 바로 낭만적-유토피아적 사회주의였는데, 1848년에 마르크스는 이것과 결별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바로 그 마르크스 자신의 사상을 낭만적이며 유토피아적인 사상으로 여기게 되고 말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고전 연속 강의 2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Ⅲ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 읽는 고전

①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②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③ 헤르더의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④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제 21강

 

1. 우리 시대의 기원인 근대의 4가지 특징

① 과학혁명 17C

② 계몽주의

③ 산업혁명 18C

④ 자본주의

 

   이 네 가지 요소는 ‘근대를 꿰뚫는 특징적 개념’인 ‘진보’로 총칭된다. 그러나 30년 전쟁 발발기인 1618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기인 1945년까지 약 300년의 근대사는 전쟁의 시기이기도 하다. 진보의 귀착점이 전쟁과 잔인한 살육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성찰을 요구한다.

 

2.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 르네상스에서 절대주의 국가체제로

   ① 화약과 대포

   ② 왕과 관료의 중앙집권적 체제

   ③ 사업과 정치의 결합

   ④ 자연과학에 대한 열망

   ⑤ 종교에 대한 회의

   르네상스는 중세말의 현상이다. 아테나이인들의 Kunstwerk인공물 개념을 부활시킨 르네상스기의 두드러진 특징은 예술이 아니라 화약과 대포 등 전쟁 기술의 발전에 있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전쟁기술의 사용에 따라 군소 영주들은 몰락하고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가 확립되었으며, 세금으로 전쟁 비용을 충당할 수 없는 왕들은 사업가들과 손을 잡게 되었다. 군상 복합체가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이후에 군산복합체로 변모한다.

   지성사적으로는 30년 전쟁이 가져온 파괴와 불안정의 결과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고, 확실성을 추구하며 자연과학을 새로운 가치 기준으로 열망하게 된다.

 

3. 근대 절대국가를 만든 두 가지 강력한 힘

   ① 30년 전쟁 : 봉건제 해체

   ② 과학 혁명 : 새로운 시대정신 확립

 

4. 30년 전쟁 : 1618 ~ 1648

   ① 카톨릭 동맹국과 프로테스탄트 연합국 사이의 국제전으로 유럽 핵심 강국들이 모두 가담했으며, 전쟁은 주로 독일 땅에서 용병들에 의해 잔인하게 치러졌다.

   ② 전쟁의 부정적 영향은 종교에 대한 극심한 회의이며, 긍정적 성과는 국민군의 탄생이다.

   ③ 국민군의 탄생

      아테나이의 시민군 모형이 무너지고 로마제국이 게르만 용병을 운용함에 따라 서유럽지역은 오랫동안 용병 제도가 확립되어 있었다. 그런데 30년 전쟁을 치르면서 왕들은 국적 의식의 필요성과 용병 전쟁의 문제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미 마키아벨리는 1513년 <군주론>에서 “용병을 쓰면 나라가 망하고 자국군을 쓰면 나라가 흥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④ 군상 복합체 : 전쟁과 시장이라는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두 개의 축이 형성

국민군 유지를 위해 막대한 물자가 필요해졌고, 상인들이 무기 납품에 관여하면서 군상 복합체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나중에 독일에서 보는 것처럼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기업과 손을 잡는 군산복합체로 발전한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전쟁은 사업이 되어버렸다. 19C 전 지구적인 제국주의는 아시아,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었지만 유럽인들에게는 값싸고 손쉬운 사업이 되는 상황에 이른다.

     유럽의 귀족 계급들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입지를 찾아내는데, 그것이 바로 전쟁을 전문적으로 치르는 계급이 되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유명한 로맨스 소설들에도 자주 장교 군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아프리카 등에 식민지를 개척하러 가는 직업 군인들이다.

 

5. 새로운 유럽 : 세계의 강자로 부상

   「르네상스 이후로 계속되어 온 기술적인 발전과 새로운 군대 기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인 변화들이 결합하여 유럽은 전혀 새로운 세력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앞서 맥닐이 말한 것과 같은 “사업으로서의 제국주의”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p271」

 

 

 

제 22강

 

1. 과학 혁명의 시대 : 17C

   ① 30년 전쟁으로 종교에 대한 회의가 만연하고 확실성에 대한 추구가 높아지자 종교를 대체한 새로운 권위로서 ‘과학’이 떠오른다.

   ② 과학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자 미래의 비전을 제공하는 원천이 되었다.

   ③ 과학 혁명을 통한 세계관의 전환은 계몽주의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다.

     「당시 유럽은 절대왕정 체제였지만, 계몽주의는 과학에 근거해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웠고 결국에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념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념은 싸움의 원천일 뿐이므로 실용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국가의 미래는 항상 이러한 이념적 비전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p274」

 

2. 중국은 화약과 화포를 발명했으면서도 왜 유럽처럼 범선에 대포를 싣지 않았는가?

   과학 기술은 그 자체만으로 변혁을 이루어내지 못한다. 여기에는 사회적 신념 체계와 관습의 광범위한 변화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조선시대 말 ‘동도서기 東道西器’ 즉 동양의 도를 지키되 서양의 기술은 받아들인다는 식으로는 변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道와 器가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만이 시대정신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중국이 왜 우수한 대포를 만들지 못했느냐고 묻는 것은 중국이 왜 산업화하지 못했느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과 문화적 자부심, 제도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p282」

 

 

제 23강

 

1. 계몽주의 시대 : 18C

   ① 18C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의 시대이기도 하다.

   ② <<헤겔>>의 저자 바이저는 계몽을 이렇게 정의한다.

        “이성의 권위에 대한 계몽의 신앙”

        종교로부터 인간의 독립을 외친 계몽은 사실 또 다른 신앙인 이성의 광신도 라는 것 ;;

   ③ Enlightenment 빛을 비추다, Aufklarung 명확하게 하다

   ④ 프랑스 계몽주의

      볼테르와 몽테스키외 같은 사람들이 영국으로부터 뉴턴주의와 자유주의를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2. 이성의 시대

   17C 과학혁명기와 18C 계몽주의 시대는 공히 ‘이성의 시대’ 다. 과학혁명의 이성은 자연의 제1 원리를 탐구하는 과학적 이성인 반면, 계몽주의의 이성은 ‘사회운동의 원리로서의 이성’ 이다.

 

3. 계몽주의자들의 낙관적 진보주의

   「계몽철학자들은, 이성적 사색을 통해 자연과학을 발전시키고 과학적 방법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면 편협한 신앙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식이 점차로 확대되어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기본적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진보주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p291」

 

   그러나 계몽주의로 시작한 근대는 대량학살과 잔인한 살육의 세계대전으로 종말을 맞았다는 슬픈 사실 .

 

 

제 24강

 

   계몽주의자의 아름다운 환상으로 가득 찬,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는 과학과 진보에 관한 낙관적 믿음에 따라 인간의 ‘완전가능성’을 예언한다.

 

1. 계몽주의의 시대정신을 집약한 역사철학 책이다.

 

2. 완전가능성

   루소가 처음 내놓은 개념으로, 콩도르세는 이 개념으로 진보성의 원칙을 표현했다. 콩도르세는 역사가 진보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결국 완전해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 개념은 이후 칸트와 독일 관념론 철학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인간이 완전가능성을 향해 가는 것이 진보이며, 이는 이성을 통해 일반법칙을 알아내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이성의 힘을 이처럼 철저하게 믿는 것은 계몽주의자들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완전가능성을 믿지 않습니다. p293~4」

 

   그러나 현대는 과학 자체가 세계의 불완전성, 불확정성을 입증하고 있다.

 

3. 콩도르세에 따르면 무한한 진보와 완전가능성을 가능하게 해 주는 제1전제는 ‘자연과학’ 이다.

 

4. 어떻게 완전가능성에 도달할 것인가?

 ① 국가 간의 불평등 파괴: 프랑스 헌법의 원리를 적용

   ② 국민 모두의 평등한 진보 : 공교육 및 교육의 평등을 강조

   ③ 인간의 현실적 완성 : 현실적 이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

 

5. 계몽의 야망은 왜 실패했는가?

   계몽의 환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러나 계몽의 현실은 대규모 전쟁과 살육으로 귀결되었다. 제국주의와 빈부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있고,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왜 콩도르세의 예언은 실패했을까?

 

 

제 25강

 

1. 18C는 'modernity'의 기원이다.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 일어났고, 계몽주의가 새로운 사상으로 등장했다. 오늘날의 우리는 ‘18C에 기원을 둔 modernity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시대까지 6개의 분야에서 일어난 혁명적 변화를 먼저 살펴보자.

   ① 정치혁명 :국가state의 등장 (국민국가 nation state)

      국가가 정치적 행위의 주체이자 주요한 행위자로 등장했으며, 근대 여러 국가들은 통일 국가를 건설한 뒤 제국주의적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는 세계대전이다.

   ② 산업혁명 :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를 결합하여 경제 구조를 변화시켰다.

   ③ 통신혁명 : 전신, 전화, 철도 등의 발명이 산업혁명을 촉진시켰다.

   ④ 사회혁명 : 핵심지표는 도시거주 인구비율로서, 50%가 넘어가면 산업화에 이른 것이다.

   ⑤ 국제관계혁명 : 무역에 의해 전지구적 단위이 경제가 이루어졌다.

   ⑥ 문화혁명 : 엘리트 문화와 평민 문화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2. 절대왕정 체제를 규정하는 세 가지 요소

   중세 봉건제와 근대 국민국가 사이의 과도기 체제로서의 절대왕정은 관료와 상비군, 이데올로기로서의 왕권신수설, 중상주의 경제정책의 세 요소로 규정된다.

 

3. 잉글랜드의 절대 왕정

   ① 헨리 7세 ~ 찰스 1세 재위 기간 150년 (1485,장미전쟁이후~1649, 30년 전쟁 이후)

   ② 헨리 8세 : 귀족 계급에 대항하는 gentry 계급을 육성했다. gentry는 평민출신의 부농으로 이후 bourgeois가 되었다.

   ③ 엘리자베스 1세 : 잉글랜드의 황금기로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1600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④ 경제 구조에서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이었다.

   ⑤ 청교도 혁명 : 올리버 크롬웰은 젠트리 출신의 정치가. 하원 의원의 60%가 젠트리 또는 상공업자. “대표 없이 과세 없다.”

      청교도 혁명으로 절대왕정은 무너지고 입헌군주제가 되었다.

 

 

제 26강

 

1. 산업자본주의의 성립 요건 두 가지는 ‘자유로운 노동자’의 공급과 ‘기술 혁신’이다. 둘 중 자유로운 노동자가 훨씬 중요한 요건인데, 과학이 더 발전했던 프랑스 보다 영국이 먼저 산업혁명을 이룬 것은 영국에서 자유로운 노동자가 먼저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2. 자유로운 노동자의 등장

   ① 잉글랜드의 농업혁명 : “농민을 땅으로부터 떼어 내 부랑자로 만든 다음, 도시로 몰아넣는 폭력적인 과정”

       농업혁명의 결과 식량생산이 증가하여 도시까지 식량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고, 원시 자본이 축적되었으며, 사회간접자본이 형성되었다. 그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토지의 상품화가 이루어졌고 사람들의 마음도 이윤을 추구하는 심성으로 변해갔다. 이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나면서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② enclosure 운동

      토지의 사유화, 상품화가 법적으로 뒷받침 되었다. 이전까지 없었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강화되었다. (<레미제라블>에서 빵 한 조각에 가혹한 형벌을 내렸던 이유도 소유권의 신성화에 따른 엄벌정책 때문이라고 한다.)

   ③ 토지에서 쫓겨 난 많은 농민이 부랑자가 되었다. 당시 부랑자 문제는 큰 사회적 문제로 ‘구빈법’ 논쟁이 격렬했다. 이후 ‘각자가 재주껏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 는 자본주적 이념이 득세했다.

 

3. 기술혁신 : 대표적 사례가 산업혁명

   철강으로 증기기관을 만들면서 기계제 공업 시대가 시작되었고, 힘센 남자 대신 여자와 어린이가 공장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기계화가 진행되자 인간이 필요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잉글랜드는 이 때 쯤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의 ‘대영제국’ 시대를 맞고 있었다.

 

 

제 27, 28, 29강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1845년

 

1. 산업혁명이 한 국가와 사회, 사람들의 삶에 끼친 영향을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2. 산업혁명의 도시 영국 맨체스터와 노동자들을 관찰한다.

   ①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오늘날 모든 사회운동의 진정한 토대이자 출발점이다.

   ② 산업자본주의의 고전적인 나라는 영국이고, 고전적인 땅은 맨체스터이며, 고전적인 행위자는 영국의 노동자계급이다. 어떤 사회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장소와 행위자’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고전적’은 ‘전형적’의 의미이다.

 

3. 맨체스터는 근대도시의 전형적인 공간 배치를 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의 거주지와 삶은 체계적으로 은폐되고 배제되어 있다.

 

4. 공간배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표상이다. 공간배치와 계급구조는 대응관계에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항상 나의 계급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나의 계급적 이익에 철저히 복무하면서 사는 것이 근대인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계급의식을 조장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근대 사회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계급적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외부의 형태 중 하나가 바로 ‘사는 곳’입니다.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p337」

 

5. 19C 영국의 가장 하층민은 아일랜드 이주 노동자다. 이주 노동자는 지금도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하층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6. 부르주아지는 끊임없이 단결하며, 프롤레타리아트 안에서의 경쟁을 부추긴다.

 

   「경쟁은 근대 시민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이다....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지 집단과 마찬가지로 그들 내부에서 서로 항상 경쟁 상태에 있다. .... 노동자계급 사이의 경쟁은 노동자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나쁜 측면이며 부르주아지가 노동자계급을 공격하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단결을 통해서 경쟁을 없애려고 노력하며, 부르주아지들은 단결을 증오하며 노동자들의 단결이 실패할 경우 승리감에 도취한다. p343~4」

 

7. 노동자계급에게는 사회의 살인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 살인행위는 구조적 살인이다.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생활필수품을 박탈당하고 더 이상 살아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에 어쩔 수없이 빠져 버릴 때 이것도 사회적 살인 행위이다. (...) 이러한 사회의 살인 행위는 숨겨진 사악한 살인이며, 누구도 그 살인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살인이며 살인 형태가 작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작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희생자의 죽음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살인이다. p347」

 

8. 사회적 전쟁 상태에서 최선의 합리성은 ‘냉혹한 계산’ 이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역시 이윤과 냉혹한 계산에 따라 행동한다.

9. 엥겔스는 결국 분노에 찬 프롤레타리아트의 총 봉기가 일어나 부르주아계급이 타도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희망사항에 그쳤을 뿐이다. 그 이유는 부르주아지가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는 산업혁명으로 경제적 구조를, 프랑스혁명으로 정치적 구조를 바꾸는데 성공함으로써 19C를 완전히 장악하고 그 주인공이 되었다.

 

 

 

제 30강

 

   서구 사회는 자신들의 근대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개발해냈다. 그 핵심은 자본주의의 이윤추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중세까지만 해도 탐욕으로 간주되던 금전 추구 행위가 어떻게 존경받는 행위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이 작업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주로 ‘인간의 파괴적인 정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도출되었다.

 

1. 아담 스미스 <<국부론>>1776

   상업과 제조업이라는 경제적 요소가 개입되면 경제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질서와 훌륭한 정치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안전 같은 정치적인 효과도 나온다고 생각했다.

 

2. 존 로크 <<통치론>>1689

   이해관계를 잘 따지는 것을 합리적인 행위로 간주하였다. 로크는 부르주아적 합리성을 옹호하며 부르주아지 당파성을 대변하였다.

 

3. 온화한 상업론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 행위가 인간의 나쁜 성향을 억누르고 좋은 면을 활성화시킨다는 이유로 자본주의를 찬양하고 있다. 또한 온화한 상업론을 주장한 사상가들은 이윤 추구 행위가 인간 본성의 파괴적이고 불길한 요소를 억누를 수 있다고 기대했다.

   ①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1748

      상업주의 정신에는 근검절약, 온화함, 평정, 지혜, 질서 및 규칙성의 특성이 있다.

   ② 데이비드 흄 <상업에 대하여> 1752

      경제적 요인이 개입하면 개인의 정념이 순화될 뿐 아니라 국가의 부도 늘릴 수 있다.

   ③ 존 케인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1936

      인간의 위험한 기질은 돈벌이와 개인적인 재산 축적의 기회에 의해 비교적 무해한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 동료 시민을 학대하기보다는 자신의 은행계좌를 멋대로 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자신의 은행계좌를 멋대로 하는 바로 그 사람이 동료 시민을 학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인간의 사악함을 억누르기 위해서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왜 이윤추구의 화신인 자본가는 사악하게 되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