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고전 연속 강의 2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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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 읽는 고전

①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②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③ 헤르더의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④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제 21강

 

1. 우리 시대의 기원인 근대의 4가지 특징

① 과학혁명 17C

② 계몽주의

③ 산업혁명 18C

④ 자본주의

 

   이 네 가지 요소는 ‘근대를 꿰뚫는 특징적 개념’인 ‘진보’로 총칭된다. 그러나 30년 전쟁 발발기인 1618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기인 1945년까지 약 300년의 근대사는 전쟁의 시기이기도 하다. 진보의 귀착점이 전쟁과 잔인한 살육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성찰을 요구한다.

 

2.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 르네상스에서 절대주의 국가체제로

   ① 화약과 대포

   ② 왕과 관료의 중앙집권적 체제

   ③ 사업과 정치의 결합

   ④ 자연과학에 대한 열망

   ⑤ 종교에 대한 회의

   르네상스는 중세말의 현상이다. 아테나이인들의 Kunstwerk인공물 개념을 부활시킨 르네상스기의 두드러진 특징은 예술이 아니라 화약과 대포 등 전쟁 기술의 발전에 있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전쟁기술의 사용에 따라 군소 영주들은 몰락하고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가 확립되었으며, 세금으로 전쟁 비용을 충당할 수 없는 왕들은 사업가들과 손을 잡게 되었다. 군상 복합체가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이후에 군산복합체로 변모한다.

   지성사적으로는 30년 전쟁이 가져온 파괴와 불안정의 결과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고, 확실성을 추구하며 자연과학을 새로운 가치 기준으로 열망하게 된다.

 

3. 근대 절대국가를 만든 두 가지 강력한 힘

   ① 30년 전쟁 : 봉건제 해체

   ② 과학 혁명 : 새로운 시대정신 확립

 

4. 30년 전쟁 : 1618 ~ 1648

   ① 카톨릭 동맹국과 프로테스탄트 연합국 사이의 국제전으로 유럽 핵심 강국들이 모두 가담했으며, 전쟁은 주로 독일 땅에서 용병들에 의해 잔인하게 치러졌다.

   ② 전쟁의 부정적 영향은 종교에 대한 극심한 회의이며, 긍정적 성과는 국민군의 탄생이다.

   ③ 국민군의 탄생

      아테나이의 시민군 모형이 무너지고 로마제국이 게르만 용병을 운용함에 따라 서유럽지역은 오랫동안 용병 제도가 확립되어 있었다. 그런데 30년 전쟁을 치르면서 왕들은 국적 의식의 필요성과 용병 전쟁의 문제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미 마키아벨리는 1513년 <군주론>에서 “용병을 쓰면 나라가 망하고 자국군을 쓰면 나라가 흥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④ 군상 복합체 : 전쟁과 시장이라는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두 개의 축이 형성

국민군 유지를 위해 막대한 물자가 필요해졌고, 상인들이 무기 납품에 관여하면서 군상 복합체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나중에 독일에서 보는 것처럼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기업과 손을 잡는 군산복합체로 발전한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전쟁은 사업이 되어버렸다. 19C 전 지구적인 제국주의는 아시아,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었지만 유럽인들에게는 값싸고 손쉬운 사업이 되는 상황에 이른다.

     유럽의 귀족 계급들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입지를 찾아내는데, 그것이 바로 전쟁을 전문적으로 치르는 계급이 되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유명한 로맨스 소설들에도 자주 장교 군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아프리카 등에 식민지를 개척하러 가는 직업 군인들이다.

 

5. 새로운 유럽 : 세계의 강자로 부상

   「르네상스 이후로 계속되어 온 기술적인 발전과 새로운 군대 기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인 변화들이 결합하여 유럽은 전혀 새로운 세력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앞서 맥닐이 말한 것과 같은 “사업으로서의 제국주의”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p271」

 

 

 

제 22강

 

1. 과학 혁명의 시대 : 17C

   ① 30년 전쟁으로 종교에 대한 회의가 만연하고 확실성에 대한 추구가 높아지자 종교를 대체한 새로운 권위로서 ‘과학’이 떠오른다.

   ② 과학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자 미래의 비전을 제공하는 원천이 되었다.

   ③ 과학 혁명을 통한 세계관의 전환은 계몽주의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다.

     「당시 유럽은 절대왕정 체제였지만, 계몽주의는 과학에 근거해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웠고 결국에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념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념은 싸움의 원천일 뿐이므로 실용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국가의 미래는 항상 이러한 이념적 비전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p274」

 

2. 중국은 화약과 화포를 발명했으면서도 왜 유럽처럼 범선에 대포를 싣지 않았는가?

   과학 기술은 그 자체만으로 변혁을 이루어내지 못한다. 여기에는 사회적 신념 체계와 관습의 광범위한 변화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조선시대 말 ‘동도서기 東道西器’ 즉 동양의 도를 지키되 서양의 기술은 받아들인다는 식으로는 변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道와 器가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만이 시대정신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중국이 왜 우수한 대포를 만들지 못했느냐고 묻는 것은 중국이 왜 산업화하지 못했느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과 문화적 자부심, 제도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p282」

 

 

제 23강

 

1. 계몽주의 시대 : 18C

   ① 18C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의 시대이기도 하다.

   ② <<헤겔>>의 저자 바이저는 계몽을 이렇게 정의한다.

        “이성의 권위에 대한 계몽의 신앙”

        종교로부터 인간의 독립을 외친 계몽은 사실 또 다른 신앙인 이성의 광신도 라는 것 ;;

   ③ Enlightenment 빛을 비추다, Aufklarung 명확하게 하다

   ④ 프랑스 계몽주의

      볼테르와 몽테스키외 같은 사람들이 영국으로부터 뉴턴주의와 자유주의를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2. 이성의 시대

   17C 과학혁명기와 18C 계몽주의 시대는 공히 ‘이성의 시대’ 다. 과학혁명의 이성은 자연의 제1 원리를 탐구하는 과학적 이성인 반면, 계몽주의의 이성은 ‘사회운동의 원리로서의 이성’ 이다.

 

3. 계몽주의자들의 낙관적 진보주의

   「계몽철학자들은, 이성적 사색을 통해 자연과학을 발전시키고 과학적 방법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면 편협한 신앙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식이 점차로 확대되어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기본적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진보주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p291」

 

   그러나 계몽주의로 시작한 근대는 대량학살과 잔인한 살육의 세계대전으로 종말을 맞았다는 슬픈 사실 .

 

 

제 24강

 

   계몽주의자의 아름다운 환상으로 가득 찬,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는 과학과 진보에 관한 낙관적 믿음에 따라 인간의 ‘완전가능성’을 예언한다.

 

1. 계몽주의의 시대정신을 집약한 역사철학 책이다.

 

2. 완전가능성

   루소가 처음 내놓은 개념으로, 콩도르세는 이 개념으로 진보성의 원칙을 표현했다. 콩도르세는 역사가 진보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결국 완전해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 개념은 이후 칸트와 독일 관념론 철학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인간이 완전가능성을 향해 가는 것이 진보이며, 이는 이성을 통해 일반법칙을 알아내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이성의 힘을 이처럼 철저하게 믿는 것은 계몽주의자들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완전가능성을 믿지 않습니다. p293~4」

 

   그러나 현대는 과학 자체가 세계의 불완전성, 불확정성을 입증하고 있다.

 

3. 콩도르세에 따르면 무한한 진보와 완전가능성을 가능하게 해 주는 제1전제는 ‘자연과학’ 이다.

 

4. 어떻게 완전가능성에 도달할 것인가?

 ① 국가 간의 불평등 파괴: 프랑스 헌법의 원리를 적용

   ② 국민 모두의 평등한 진보 : 공교육 및 교육의 평등을 강조

   ③ 인간의 현실적 완성 : 현실적 이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

 

5. 계몽의 야망은 왜 실패했는가?

   계몽의 환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러나 계몽의 현실은 대규모 전쟁과 살육으로 귀결되었다. 제국주의와 빈부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있고,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왜 콩도르세의 예언은 실패했을까?

 

 

제 25강

 

1. 18C는 'modernity'의 기원이다.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 일어났고, 계몽주의가 새로운 사상으로 등장했다. 오늘날의 우리는 ‘18C에 기원을 둔 modernity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시대까지 6개의 분야에서 일어난 혁명적 변화를 먼저 살펴보자.

   ① 정치혁명 :국가state의 등장 (국민국가 nation state)

      국가가 정치적 행위의 주체이자 주요한 행위자로 등장했으며, 근대 여러 국가들은 통일 국가를 건설한 뒤 제국주의적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는 세계대전이다.

   ② 산업혁명 :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를 결합하여 경제 구조를 변화시켰다.

   ③ 통신혁명 : 전신, 전화, 철도 등의 발명이 산업혁명을 촉진시켰다.

   ④ 사회혁명 : 핵심지표는 도시거주 인구비율로서, 50%가 넘어가면 산업화에 이른 것이다.

   ⑤ 국제관계혁명 : 무역에 의해 전지구적 단위이 경제가 이루어졌다.

   ⑥ 문화혁명 : 엘리트 문화와 평민 문화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2. 절대왕정 체제를 규정하는 세 가지 요소

   중세 봉건제와 근대 국민국가 사이의 과도기 체제로서의 절대왕정은 관료와 상비군, 이데올로기로서의 왕권신수설, 중상주의 경제정책의 세 요소로 규정된다.

 

3. 잉글랜드의 절대 왕정

   ① 헨리 7세 ~ 찰스 1세 재위 기간 150년 (1485,장미전쟁이후~1649, 30년 전쟁 이후)

   ② 헨리 8세 : 귀족 계급에 대항하는 gentry 계급을 육성했다. gentry는 평민출신의 부농으로 이후 bourgeois가 되었다.

   ③ 엘리자베스 1세 : 잉글랜드의 황금기로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1600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④ 경제 구조에서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이었다.

   ⑤ 청교도 혁명 : 올리버 크롬웰은 젠트리 출신의 정치가. 하원 의원의 60%가 젠트리 또는 상공업자. “대표 없이 과세 없다.”

      청교도 혁명으로 절대왕정은 무너지고 입헌군주제가 되었다.

 

 

제 26강

 

1. 산업자본주의의 성립 요건 두 가지는 ‘자유로운 노동자’의 공급과 ‘기술 혁신’이다. 둘 중 자유로운 노동자가 훨씬 중요한 요건인데, 과학이 더 발전했던 프랑스 보다 영국이 먼저 산업혁명을 이룬 것은 영국에서 자유로운 노동자가 먼저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2. 자유로운 노동자의 등장

   ① 잉글랜드의 농업혁명 : “농민을 땅으로부터 떼어 내 부랑자로 만든 다음, 도시로 몰아넣는 폭력적인 과정”

       농업혁명의 결과 식량생산이 증가하여 도시까지 식량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고, 원시 자본이 축적되었으며, 사회간접자본이 형성되었다. 그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토지의 상품화가 이루어졌고 사람들의 마음도 이윤을 추구하는 심성으로 변해갔다. 이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나면서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② enclosure 운동

      토지의 사유화, 상품화가 법적으로 뒷받침 되었다. 이전까지 없었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강화되었다. (<레미제라블>에서 빵 한 조각에 가혹한 형벌을 내렸던 이유도 소유권의 신성화에 따른 엄벌정책 때문이라고 한다.)

   ③ 토지에서 쫓겨 난 많은 농민이 부랑자가 되었다. 당시 부랑자 문제는 큰 사회적 문제로 ‘구빈법’ 논쟁이 격렬했다. 이후 ‘각자가 재주껏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 는 자본주적 이념이 득세했다.

 

3. 기술혁신 : 대표적 사례가 산업혁명

   철강으로 증기기관을 만들면서 기계제 공업 시대가 시작되었고, 힘센 남자 대신 여자와 어린이가 공장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기계화가 진행되자 인간이 필요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잉글랜드는 이 때 쯤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의 ‘대영제국’ 시대를 맞고 있었다.

 

 

제 27, 28, 29강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1845년

 

1. 산업혁명이 한 국가와 사회, 사람들의 삶에 끼친 영향을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2. 산업혁명의 도시 영국 맨체스터와 노동자들을 관찰한다.

   ①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오늘날 모든 사회운동의 진정한 토대이자 출발점이다.

   ② 산업자본주의의 고전적인 나라는 영국이고, 고전적인 땅은 맨체스터이며, 고전적인 행위자는 영국의 노동자계급이다. 어떤 사회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장소와 행위자’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고전적’은 ‘전형적’의 의미이다.

 

3. 맨체스터는 근대도시의 전형적인 공간 배치를 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의 거주지와 삶은 체계적으로 은폐되고 배제되어 있다.

 

4. 공간배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표상이다. 공간배치와 계급구조는 대응관계에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항상 나의 계급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나의 계급적 이익에 철저히 복무하면서 사는 것이 근대인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계급의식을 조장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근대 사회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계급적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외부의 형태 중 하나가 바로 ‘사는 곳’입니다.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p337」

 

5. 19C 영국의 가장 하층민은 아일랜드 이주 노동자다. 이주 노동자는 지금도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하층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6. 부르주아지는 끊임없이 단결하며, 프롤레타리아트 안에서의 경쟁을 부추긴다.

 

   「경쟁은 근대 시민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이다....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지 집단과 마찬가지로 그들 내부에서 서로 항상 경쟁 상태에 있다. .... 노동자계급 사이의 경쟁은 노동자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나쁜 측면이며 부르주아지가 노동자계급을 공격하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단결을 통해서 경쟁을 없애려고 노력하며, 부르주아지들은 단결을 증오하며 노동자들의 단결이 실패할 경우 승리감에 도취한다. p343~4」

 

7. 노동자계급에게는 사회의 살인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 살인행위는 구조적 살인이다.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생활필수품을 박탈당하고 더 이상 살아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에 어쩔 수없이 빠져 버릴 때 이것도 사회적 살인 행위이다. (...) 이러한 사회의 살인 행위는 숨겨진 사악한 살인이며, 누구도 그 살인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살인이며 살인 형태가 작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작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희생자의 죽음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살인이다. p347」

 

8. 사회적 전쟁 상태에서 최선의 합리성은 ‘냉혹한 계산’ 이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역시 이윤과 냉혹한 계산에 따라 행동한다.

9. 엥겔스는 결국 분노에 찬 프롤레타리아트의 총 봉기가 일어나 부르주아계급이 타도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희망사항에 그쳤을 뿐이다. 그 이유는 부르주아지가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는 산업혁명으로 경제적 구조를, 프랑스혁명으로 정치적 구조를 바꾸는데 성공함으로써 19C를 완전히 장악하고 그 주인공이 되었다.

 

 

 

제 30강

 

   서구 사회는 자신들의 근대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개발해냈다. 그 핵심은 자본주의의 이윤추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중세까지만 해도 탐욕으로 간주되던 금전 추구 행위가 어떻게 존경받는 행위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이 작업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주로 ‘인간의 파괴적인 정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도출되었다.

 

1. 아담 스미스 <<국부론>>1776

   상업과 제조업이라는 경제적 요소가 개입되면 경제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질서와 훌륭한 정치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안전 같은 정치적인 효과도 나온다고 생각했다.

 

2. 존 로크 <<통치론>>1689

   이해관계를 잘 따지는 것을 합리적인 행위로 간주하였다. 로크는 부르주아적 합리성을 옹호하며 부르주아지 당파성을 대변하였다.

 

3. 온화한 상업론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 행위가 인간의 나쁜 성향을 억누르고 좋은 면을 활성화시킨다는 이유로 자본주의를 찬양하고 있다. 또한 온화한 상업론을 주장한 사상가들은 이윤 추구 행위가 인간 본성의 파괴적이고 불길한 요소를 억누를 수 있다고 기대했다.

   ①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1748

      상업주의 정신에는 근검절약, 온화함, 평정, 지혜, 질서 및 규칙성의 특성이 있다.

   ② 데이비드 흄 <상업에 대하여> 1752

      경제적 요인이 개입하면 개인의 정념이 순화될 뿐 아니라 국가의 부도 늘릴 수 있다.

   ③ 존 케인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1936

      인간의 위험한 기질은 돈벌이와 개인적인 재산 축적의 기회에 의해 비교적 무해한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 동료 시민을 학대하기보다는 자신의 은행계좌를 멋대로 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자신의 은행계좌를 멋대로 하는 바로 그 사람이 동료 시민을 학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인간의 사악함을 억누르기 위해서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왜 이윤추구의 화신인 자본가는 사악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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