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선언 펭귄클래식 80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권화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마음에만 있고 선뜻 읽지는 못했던 책을 읽게 되는 때가 가끔 온다.  우연하게도 자꾸 눈에 뜨인다거나, 믿을만한 사람이 권한다거나 할 때가 그렇다.  작년 말부터 읽게된 강유원의 책들 중 『역사 고전 강의』를 방학 동안 두명의 이웃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책의 특성상 다루고 있는 고전을 함께 읽어야 하지만 영 엄두가 나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나 콩드르세의 『인간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같은 고전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열의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중에는 그래도 한번 읽어볼만한 고전이 아주 없지는 않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그렇다. 공통점은 두 책 다 비교적 얇다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은 작년 말에 언니네 갔다가 조카의 책꽂이에서 우연히 보았다. 책의 명성에 짓눌려 그랬는지 그 책이 그렇게 얇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한마디로 좀 만만해 보였다는 것이다. 백 페이지도 안되니, 어려워봤자 그걸 못 읽기야 하겠나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역사 고전 강의』에서 『공산당 선언』을 다시 만나게 되니 꼭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우연히 눈에 뜨이기도 했고 믿을만한 사람이 권하기도 하니 진짜로 때가 온 것이 틀림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그 유명한, 그러나 말로만 들어봤던  『공산당 선언』을 내 눈으로 직접 읽게 되었다.

 

 

  『공산당 선언』은 한마디로 하자면 공산주의자들의 '커밍아웃'을 선언하는 팜플릿이다. 본문만 치면 46쪽 (펭귄 클래식 판)밖에 안되는 소책자다. 그러니 당연히 어렵지 않다. 누가 '커밍 아웃'을 어려운 말로 하겠는가! 그런데도 부르주아지의 탄생과 자본주의의 발전 양태, 다가올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까지 근대의 역사와 미래의 전망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힘이 넘치는 문장은 신랄하면서도 유려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첫 문장,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와  마지막 문장인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들이 잃을 것이라고는 그들의 쇠사슬밖에 없다. 그들이 얻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만 보아도 이 팸플릿의 선동성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을 지켜보아야 했던 현재의 우리들에게 『공산당 선언』은 실패한 예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르주아 자본주의에 관한 분석과 묘사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부르주아들의 힘을 너무 만만히 보았던 것 같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상, 문화 등 세계 전부를 장악해 버린 부르주아는 죽음 의 불길 속에 새 생명을 얻는 불사조처럼 악마적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예견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예언했던 많은 것들이 지금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현실이 된 것도 사실이다.

 

  처음 도서관에서 『공산당 선언』을 검색했더니 강유원의 『공산당 선언』이 걸렸다.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없고 강유원의 것만 있었다. 어떤 대학이었는지 궁금하지만 여하튼 놀랍게도 대학 야간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책이었다. 시험도 보고 학점도 주는 정식 강의에서 한 학기 동안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강의한 것이다. 씨네21의 '정훈이' 삽화도 있고,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라는 부제도 붙어있다. 같이 읽으면 재미있다. 

 

  요즘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와 『아틀라스 세계사』도 함께 공부 중이다. 세계사를 전반적으로 그려보는데 매우 좋은 책이다. 청소년용이지만, 청소년 정도의 지식밖에 없는 처지라 아주 재미있다. 여하튼 조금 알게 된 역사에 따르면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1848년은 유럽 근대사에 아주아주 중요한 해이다.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 입헌군주제가 폐지되고 제2 공화정이 시작되었고, 이 혁명의 불길은 전 유럽으로 퍼저 나가 온 유럽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이 혁명의 승자는 부르주아지임이 드러나고, 승기를 잡은 부르주아지는 혁명의 맨 앞줄에 내세웠던 프롤레타리아트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 비극적 귀결은 1871년의 파리코뮌 대학살이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 그 자체로 부르주아지가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귀족과 잡았던 손을 놓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이용했던 혁명이기는 했지만, 혁명정신은 그 자체로 성장을 거듭했고, 부르주아지는 상황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를 이용하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하면서 지배권을 확보했던 것이다.

  이런 복잡한 구도 속에서 1848년에 이미 마르크스·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적이 부르주아지임을 명백히 천명하면서, 봉건적 사회주의, 소부르주아적 사회주의, 독일 사회주의, 보수적 사회주의, 부르주아적 사회주의, 비판적-유토피아적 사회주의 등 각종 사회주의를 비판했다. 이들 사회주의들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존속케하는 지지대의 역할을 할 뿐이며 오직 공산주의만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마르크스가 낭만주의적 유토피아적 사상을 끝장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가 처음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이 바로 낭만적-유토피아적 사회주의였는데, 1848년에 마르크스는 이것과 결별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바로 그 마르크스 자신의 사상을 낭만적이며 유토피아적인 사상으로 여기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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