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고전 연속 강의 2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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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2

 

 

* 읽는 고전

①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②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헤르더의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제 31강

 

1. 프랑스 혁명사 

 

 

 

2. 혁명에서의 계급 관계

 

 

 

 

3. 이중의 혁명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 : 두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지가 19C의 주인공으로 등장

 

4. 민중공화정 : 1792년 8월 10일(튈르리 궁전 습격) ~ 1794년 7월 27일 (테르미도르 반동)

   ① 자코뱅파 중 산악파와 상퀼로트의 결합으로 가장 민중적인 인민중심의 통치가 이루어진 시기 : 신분에 의한 투표가 사라진 인민주권의 시대

   ② 혁명전쟁(1792~1802) 과 국민군 탄생 : 민중공화정을 두려워한 주변 왕정국가들의 연대가 강화되면서 프랑스 혁명은 외부의 반혁명 세력과 전쟁에 돌입

   ③ 프랑스의 ‘국민’ 의식 형성

   ④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 국내에서는 제3계급 중심의 온건파와 적대관계를, 국외에서는 혁명전쟁에 돌입하면서 혁명의 유토피아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내부 결집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공포정치로 귀결된다.

 

5. 나폴레옹

   혁명전쟁 중에 등장한 나폴레옹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획득하고 연이어 공화정을 파괴하고 제정을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 법전 등을 통해 인민주권 등을 확고히 법률화했다. 직업 관료제, 상비군, 경찰제도 등이 정착되었고, 그 결과로 중앙집권적 근대 국민국가 체제가 성립했다. 이 체제는 급진파의 인민주권론, 초보적인 의미의 사회주의, 국가주의가 결합된 것으로 나폴레옹은 혁명의 과업을 승계하였다.

 

 

제 32강

 

   프랑스 혁명은 유럽 전역에 혁명과 그 정신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독일에서는 나폴레옹 법전을 둘러싼 지식인 사회의 논쟁이 뜨거웠다.

 

 

제 33강

 

1. ‘역사철학’이라는 학문의 본격적인 탄생

   ① 볼테르 (1694~1778)

   역사철학이라는 용어 창안

   계몽주의적 역사관 : 인간 활동의 총체로서의 역사, 인과관계의 총체로서의 역사

   ② 데이비드 흄 (1771~1776)

   주관주의적 역사관 : 역사에는 법칙 따위는 없으며 역사란 각자의 주관적 관점에서 배열한 인간의 경험에 불과하다

   ③ 헤르더 (1744~1803)

   역사는 인류 도야Bildung의 학교,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내재화된 섭리 즉 합당한 이치를 갖춘 법을 파악하고 그것에 따라 개인과 집단이 교양의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 목적론적 역사관의 위험성

 

2. 인문주의 : 역사를 인간의 주인으로 보는 것, 인공물Kunstwerk

   ① 고대 아테나이

   ② 르네상스 인문주의

   ③ 독일 인문주의 18~19C :

   시작과 끝은 괴테 (1749~1832), 낭만주의 시대와 겹침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출간부터 헤겔의『법철학』출간까지의 약 40년

   이 시대 독일 민족주의는 자민족 중심주의가 아니라 보편사적 맥락을 가짐

 

 

제 34강, 35강, 36강, 37강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1848

 

1. 발문과 총 4장의 본문으로 구성된 약 46쪽(펭귄 클래식 판)의 팜플랫으로, 공산주의 coming-out 선언서라 할 수 있다.

 

2. 선언문이 발표된 1848년은 프랑스 2월 혁명을 기점으로 유럽 전역이 혁명의 열기에 들끓던 시기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혁명의 영향을 받아 선언문을 발표했지만, 혁명은 곧 시들어버린다. 곧 대호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848년부터 1875년까지 유래 없는 대호황 기였다.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철도가 확장되고, 산업구조가 섬유, 중공업, 화학, 전기공업 순으로 고도화 되었으며, 대중 교육 제도가 정착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성립했고 역사는 본격적으로 세계사의 단계에 돌입했다. 조선 역시 이 시기에 세계사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3. 각 장의 내용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과 그 주인공인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설명

   가장 중요한 장으로서 강유원이 인용하는 모든 문장이 1장에 속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 부르주아계급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등장,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처참한 상황,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최종적인 승리라는 완결된 드라마적 구조를 갖고 있다.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를 짧은 문장 속에 압축적이면서도 수사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명문이다.

   1장의 첫 문장은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로, 투쟁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계급임을 천명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있어 역사의 행위자는 계급으로서 그들의 역사관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2장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입장에서 본 향후 세계 전망

   3장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문헌 : 당시의 세계정세 분석과 사회주의 운동의 방식

   4장 현존하는 여러 반정부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입장 : 부록(?)

 

4. 『공산당 선언』의 주요 문장 : 출처는 모두 1장

   「지금까지의 봉건적 또는 동업 조합적 공업 경영 방식은 새로운 시장과 함께 늘어난 수요를 맞추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때 증기와 기계장치가 공업 생산에 혁명을 일으켰다. 공장제 수공업 대신 현대의 대공업이 등장했고, 공업 중간 신분 대신 공업 백만장자들과 공업 군대 전체의 우두머리들 그리고 현대의 부르주아가 등장했다.」

   「아메리카의 발견으로 대공업은 세계시장을 갖추게 되었다.」

   「철도가 확장된 만큼 꼭 그만큼 부르주아계급은 발전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현대의 부르주아계급이 어떻게 해서 기나긴 발전 과정의 산물이며, 생산방식과 교통방식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혁의 산물인지를 알게 된다. 」

   「부르주아계급이 발전해 온 이러한 단계 각각에는 그것에 상응하는 정치적 진보가 병행하였다. (...) 납세 의무를 지닌 군주국의 제3신분이었고, 그 다음 공장제 수공업 시대에는 신분제 군주국이나 절대적 군주국에서 귀족에 대한 균형 세력이었으며, 일반적으로 대군주국의 주요 기반이었는데, 대공업과 세계시장이 세워진 이후에는 마침내 현대의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를 쟁취하였다.」

   「현대의 국가권력은 부르주아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부르주아계급은 역사에서 매우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

   「이해타산이라고 하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속에」

   「부르주아계급은 지금까지 존경받았고 사람들이 경건하게 바라보던 모든 활동에서 신선한 후광을 벗겨 버렸다. 부르주아계급은 의사, 법률가, 시인, 학자를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 놓았다. (...) 부르주아계급은 가족관계에서 심금을 울리는 감상적 장막을 찢어 버리고 그것을 순전히 화폐관계로 환원시켰다.」

   「부르주아 시대는 생산의 끊임없는 변혁, 모든 사회적 상황의 부단한 동요, 영원한 불안과 격동을 통해 다른 모든 시대와 구별된다. 견고하고 녹슨 모든 관계들은 오래되고 존귀한 생각들 및 의견과 함께 해체되고 새롭게 형성된 것들도 모두 자리를 잡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신분과 관련된 것들과 정체되어 있는 것들은 모두 증발해 버리고, 신성한 것은 모두 모욕당하며 마침내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의 지위와 서로의 관계를 냉철히 응시해야만 한다.」

   「부르주아계급은 자신들의 세계시장을 착취함으로써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가 범세계적인 형태를 갖추게 하였다.」

   「이른바 문명을 자기 나라에 도입하라고 다시 말해 부르주아가 될 것을 강요한다. 한마디로 부르주아계급은 자신의 고유한 모습에 따라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자신을 조각내어 팔아야만 하는 이 노동자는 다른 모든 판매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이며 그에 따라 다른 상품과 똑같이 모든 경쟁의 부침과 시장의 변동에 내맡겨져 있다.」

   「오늘날 부르주아계급에 대항하고 있는 모든 계급들 가운데 프롤레타리아계급만이 현실적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그 밖의 계급들은 대공업과 함께 쇠퇴하고 몰락하지만 프롤레타리아계급은 대공업이 만들어 낸 가장 고유한 산물이다.」

 

5. 19C의 주인공, 부르주아

   ① 귀족 작위를 거절할 만큼(독일의 철강왕 크루프) 대단한 계급적 자부심

   ② ‘근면과 검소’를 제1의 미덕으로 삼으며 종교에 무관심하고 과학과 문화를 신봉. 다윈주의에 열광함으로써 그들에 의해 다윈주의가 사회적 진화론으로 왜곡 변형됨. ‘능력 있는 개인’

   ③ 정치적 토대로서의 ‘자유주의’ :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것. 프랑스 혁명의 제4계급이 원했던 ‘자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내용의 자유

   ④ ‘소유권’의 원칙 : 로크의 기본 사상으로 가장 신성시되는 최고의 가치

   ⑤ 「부르주아는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기 이전의 세상을 구체제라고 부르면서 귀족과의 관계를f 단절했습니다. 또한 화폐를 매개로 인간관계를 재조직하면서 근면과 성실을 중심으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경쟁을 통해서 승패가 결정된다는 시장 사회의 모형이 만들어지면서, 성공한 사람은 합리적인 사람이고 실패한 사람은 비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결과론적 설명이 자리 잡았습니다. 물론 부르주아는 자유, 평등, 우애 같은 보편적인 이상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이익이 관철되는 한에서만 용인되며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의 세계관에 찬동하는 한에서만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체제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를 부정하는 순간, 체제 밖으로 떨려 나갑니다. p406 」

 

6. 부르주아가 변형시킨 정치제제로서의 민주주의

   19C 부르주아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보통 선거가 없는 정치시스템으로서의 자유주의를 선호하였다. 그러나 파리코뮌 진압 이후 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되자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는 민주주의 방식을 개발하게 된다. 그 첫 째는 미국의 ‘상원 의원’ 같은 신분제다. 상원은 현대적 의미의 귀족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포퓰리즘’ 이다. 부르주아계급의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선전선동 방법을 개발한다.

 

7. 1870년대 이후 변화한 시장 환경 : 독점, 제국주의, 보호무역주의

   1870년대 이후 자본주의 체제가 독점 상태로 변하면서 동시에 국가 단위의 경쟁체제인 제국주의가 시작되었다. 1876년부터 1914년 사이 단 6개국이 지구 영토의 4분의 1을 나눠가졌다. 이 경쟁이 치열해지자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아니라 보호무역주의가 등장해 자국의 거대기업을 보호하였다. 장하준 교수가 현대에 이들 선진국들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사실상 ‘사다리 걷어차기’에 지나지 않다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8. 세기말 ‘유한계급’이 된 부르주아

   세기말의 부르주아는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말하는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삼는 부르주아가 아니라 소비에 치중하는 기생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 즉 유한계급으로 변질되었다. 『유한계급론』의 베블린은 미국의 기부 문화를 이런 현상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부르주아가 증세를 반대하고 기부를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할 수 있도록 사회적 제도를 변화시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 제도의 대표적인 예가 대학이다. 시카고 대학은 록펠러가 세웠고, MIT는 산학협동을 목표로 세워졌다. 세기말의 부르주아는 막연한 불안감, 목표를 잃은 상실감, 기생하는 삶에 대한 죄책감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세기말 문화를 만들어 냈다.

 

9. 마르크스가 말한 단일한 프롤레타리아계급이 형성되지 못한 이유

   ① 19C가 대호황의 시기였다.

   ② 노동자들 내의 구분과 차별이 있었다.

   대기업 노동자, 중소기업 노동자, 여성 노동자, 외국인 이주 노동자 등

   ③ 민족적,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가 노동자 의식 보다 우선했다.

   “만국의 프롤레아리아여, 단결하라!” 는 마르크스의 이상일 뿐이었다.

 

10. 19C 말 노동자계급 대중 정당 등장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미합중국에서도 사회주의 정당들이 등장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요소로는 노동자계급이라는 이데올로기의 내재화, 조직화된 집단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도시 공간이 계급적으로 구분됨에 따라 용이하게 된 노동자 의식의 공유이다. 거기다가 부르주아계급이 유한 계급화 함에 따라 근검절약이라는 프롤레타리아계급과의 공통점이 사라졌고, 부르주아계급의 특권화가 심화되자 국가권력과 특권을 남용하면서 프롤레타리아계급과의 대립이 심해졌다. 여기에 제2 인터내셔널과 러시아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1. 수정주의 논쟁 :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

   로자 룩셈부르크와 베른슈타인 사이에서 가장 격렬하게 이루어진 수정주의 논쟁은 ‘자본주의가 즉각적으로 붕괴하지 않는다면 독일 사회민주당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일어난 논쟁이다. 베른슈타인은 사회혁명을 목표로하지만 실천적으로는 체제 내로 들어가자는 수정주의 노선을 주장했고,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질서를 뒤엎는 계급투쟁이 아니라면 결국은 자본주의에 동조하는 것으로 사회민주주의 자체가 죽는다고 주장했다. 결과는 수정주의가 대세가 되었고 아마 이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독일사민당의 효시가 아닐까.

 

 

 

 

 

Ⅳ 제 1, 2차 세계대전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 읽는 고전

에드워드 카 『20년의 위기』

 

제 38강

 

1. 1차 세계 대전의 영향

   1914년 8월에 시작하여 1918년 11월에 끝난 제1차 세계 대전, Great War 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한 부르주아의 시대를 무너뜨리고, 국가가 행위 주체가 되는 국가권력의 시대를 열었다.

   「국가중심주의, 즉 국가주의의 깃발 아래 국민은 애국주의로 뭉쳤고, 부르주아 시대의 자유시장 경제가 아닌 전시 명령 경제가 지배적인 경제체제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국가는 인간 사회를 계획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하였고, 그 힘을 획득하였습니다. 이 국가주의와 국민 동원은 모든 개인, 모든 계급을 하나로 몰아넣은 괴물이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극성을 부린 파시즘은 이미 이때에 그 전조를 보였습니다.... 국가라는 괴물의 위력 아래서 인간 진보와 이성에 대한 신념은 파괴되었고, 인간의 삶의 조건 자체가 극적으로 변화하였습니다. p431 」

 

2. 제국주의 시대의 경제적 상황 : 제2차 산업혁명

   기술의 혁신으로 산업구조가 중공업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이에 따라 유럽 열강들은 고무, 철강, 석유 등의 새로운 원자재를 위한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 2차 산업 혁명은 과잉생산과 이윤율 하락으로 이어진 불황을 가져왔고 식민지 독점 쟁탈전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팽창주의적 무역경쟁이 바로 1차 세계 대전의 ‘조건’ 이다.

 

3. 제국주의 국가들의 엄청난 군비경쟁

   사태 해결방법이 무력밖에 없는 상황에서 군수산업과 정부가 긴밀히 연관되면서 군·산·정軍産政 복합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철강회사 크루프는 1,2차 세계대전 모두에 깊숙이 관여한 군수산업체이기도 하다. 전쟁이 비즈니스에 포함되면서 군수산업의 이익을 위한 전쟁도 벌어질 수 있게 되었다. 이 군비경쟁은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5년 전부터 엄청나게 치열해졌다.

 

4. 1차 세계 대전의 원인

   ① 깊은 원인 : 삼국협상(러시아, 영국, 프랑스) 대 삼국동맹(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양극체제로 전쟁의 긴장감 고조

   ② 중간 원인 : 독일의 세력 강화와 미숙한 외교 정책

   ③ 촉발 원인 :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의 청년이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건

 

5. 1차 세계 대전의 결과 사회주의 운동 궤멸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국제주의와 평화주의를 버리고 애국주의를 선택하며 서로 적이 되어 싸웠다. 제1차 대전을 겪으면서 대중도 국가교육 과정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대중은 국민이 되었으며, 국민의 탄생은 계급의 멸망을 불러왔다.

 

제 39강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의 전간기 20년을 분석한 에드워드 카의 『20년의 위기』가 분명한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다시 2차 대전이라는 전쟁 속에 휘말렸다.

1. 정치권력은 권력과 도덕이 결합된 것으로 이것은 군사력, 경제력, 생각에 대한 통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 군사력은 국가 활동에 필요한 수단인 동시에 그 자체가 목적이다. 군사력 강화나 다른 나라의 군사력 억제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3. 경제력 : 정치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다. 군사력이란 개념 안에도 이미 정치적 가치와 경제력이 포함되어 있다.

 

   「적국의 경제 체계를 마비시키는 것이 적국의 육해군을 격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전쟁 목표가 되었다. 국가가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활동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하는 계획경제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산물이었다. 전쟁 잠재력이라는 용어는 경제력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p453」

 

4. 생각의 통제 : 대중의 동의 그리고 대중의 선택의 위험성

   「히틀러의 말을 빌리면 ‘과학적 설명’은 인텔리를 위한 것이고, 프로퍼간다는라는 현대적 무기는 대중을 위한 것이다.p454」

   대중의 동의 없이는 권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독재는 대중의 뜻을 완벽히 실현하겠다는 공언을 통해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얻어내기도 한다. 즉 영도자 자체가 인민의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독재는 가장 성공한 민주정일 수 있다. 민주정의 절정은 대중 독재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나이의 민주정에 환멸을 느낀 플라톤은 민주정을 전제정으로 가는 전 단계의 저급한 정치제제로 경멸했다.

 

 

제 40강

 

   1939년 9월 1일에 발발하여 1945년에 끝난 제 2차 세계 대전의 결과 세계는 미합중국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시대가 되었다.

 

1. 원인

   ① 깊은 원인 : 독일 문제

   독일은 인구, 자원, 유럽 대륙에서의 지리적 조건 등에 있어 언제든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독일에 대한 유럽의 견제 세력이 균형을 잃고 있었다.

   ② 중간 원인 : 배상 문제

   1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한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독일에 부과한 전쟁 배상금이 독일 국민의 반감을 사고 있었다. 당시 경제 상황의 악화는 배상금이 아니라 물가폭등과 대공황의 영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국민들은 모든 문제를 배상금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③ 촉발 원인 : ‘단치히’ 문제

   현재 폴란드 지역인 자유 중립 도시 단치히를 독일인이 많이 산다는 이유를 들어 돌려받겠다며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틀 뒤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2. 종전 후 세계사의 재편 : 미국의 패권과 ‘마셜 플랜’

   1945년 종전 이후의 세계사를 현대사로 부른다. 이 현대사는 미합중국의 세계패권이 관철되고, 각국의 정치적 경제적 구조가 재편되는 과정이다. 미합중국은 막대한 돈을 투자해 마셜플랜이라는 유럽 부흥 계획을 실행했고, 세계패권 국가가 되었다. GATT, IMF 등 전후 경제체제가 성립되었다. 유럽은 이 시기 유럽형 복지를 시작했고, 노동운동은 혁명을 포기하고 자본가 계급의 동반자가 되는 corporatism을 채택했다.

 

3. 전후 자본주의 황금시대

   전쟁을 통해 과잉생산물이 모두 소비 되고 난 뒤, 자본주의는 황금기를 맞았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포즈주의와 완전 고용, 사회보장 확대 등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케인즈주의가 주류 이론이 되었다. 그러나 이 황금기의 풍요는 미합중국의 세계재편으로 주변부로 전락한 각 나라들이 수탈당한 결과이기도 했다. 신식민주의 체제가 가동된 것이다.

 

4. 신자유주의 등장의 배경

   1960년대 후반부터 이윤율이 감소했다. 1971년 닉슨은 금본위제를 폐지했다. 1973~74년 석유파동은 포드주의와 케인즈주의에 결정타를 가했다. 아시아에서는 중심부로부터 제조업부분을 넘겨받은 네 마리의 용이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 시기 경제학계에서는 시카고 학파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이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자본의 이윤율 하락, 중심부의 경제체제 변화,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변화 속에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이윤을 축적하는 체제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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