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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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온 :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조국보다 친구를 더 소중히 여기는 자 역시 나는 조금도 존중하지 않소이다.  ..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조국 땅이며, 조국이 무사히 항해해야만 우리가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음을 내가 잘 알기 때문이오. 이런 원칙에 따라 나는 이 도시를 키워나갈 작정이오.

 

 

안티고네 : 나는 또 그대의 명령이, 신들의 확고부동한 불문율들을 죽게 마련인 한낱 인간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아무튼 하데스는 이런 의식을 요구해요.

 

하이몬 : 아버지의 눈초리가 하도 무서워 일반 시민은 아버지의 귀에 거슬릴 만한 말은 입 밖에 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 소녀를 위하여 도시가 이렇게 비판하는 소리를 어둠 속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여인들 중에서 가장 죄 없는 그녀가 가장 영광스러운 행위 때문에 가장 비참하게 죽어야 하다!”

 

클레온 : 나는 이 나라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뜻에 따라 다스려야 하니?

하이몬 : 한 사람에 속하는 국가는 국가가 아닙니다.

레온 : 국가는 그 통치자의 것으로 간주되지 않느냐?.

 

 

『안티고네』는 오디푸스 3부작 중 내용상으로는 가장 나중의 이야기지만, 가장 일찍 쓰여진 소포클레스의 비극이다.  소포클레스의 현존하는 비극 7편은 대부분(혹은 모두?) 소포클레스 자신의 순수 창작물이 아니다. 전설로 전해져 오거나 역사상 존재했다고 알려진 이야기들을 비극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 오디푸스도 이미 있던 있던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티고네』 - 『오디푸스왕』 - 『콜로노스의 오디푸스』 순으로 창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 앞뒤가 딱딱 맞는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용상으로는 오디푸스가 스핑크스의 비밀을 풀고 테바이의 왕이 되어서 신탁의 불길한 예언대로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들을 낳고 비극적 최후를 맞는 『오디푸스왕』이 첫 번째이다. 어머니이자 아내였던 이오카스테의 브로치로 자신의 눈을 찌른 후 테바이에서 쫒겨나 방랑하던 오디푸스가 콜로노스에서 죽음을 맞는 『콜로노스의 오디푸스』가 두 번째다. 아버지 오디푸스를 끝까지 수발하던 안티고네가 테바이로 돌아가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주려다 클레온에 의해 산채로 무덤에 갇히는 이야기인 『안티고네』가 마지막 작품이다.   

  디오니소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비극 경연대회를 보고 있던 아테나이의 시민들은 아마도 익히 알던 이야기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앞뒤 세세한 설명이 없어도『안티고네』의 두 오빠들이 왜 싸움을 하다가 한날 한시에 죽게 되었는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2500년 후의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은 이야기가 일어난 순으로 읽어야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안티고네』는  『오디푸스왕』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철학책을 읽다 보면 가끔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헤겔같은 근대 철학자도, 라캉이나 들뢰즈같은 현대 철학자들도 언급하고 있다. 헤겔은 『안티고네』를 통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대비하고 있다.

  당시 아테나이 시민들에게는 신들의 불문율과 인간의 도리를 주장하는 안티고네가 더 큰 정당성을 얻었던 듯 하다.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외국 군대를 끌고 조국을 쳐들어온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금지하고 국가의 법을 주장했던 클레온이 자식과 아내를 모두 잃고 파멸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나의 눈에는 안티고네의 주장이 더 막무가내로 보인다. 클레온은 합리적인 반면 안티고네는 아무튼 신이 그렇게 원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한 것이다. 우리 현대인은 여전히 '근대성'의 정신을 갖고 있다. 합리성이 판단의 절대 기준이다. '이성의 권위에 대한 계몽의 신앙' 이란 표현이 있다.  신으로부터 인간의 눈을 뜨게 한 이성 역시 또 하나의 신앙이다. 그 맹목적인 신앙으로부터 1,2차 대전이라는 대파국이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성의 신앙 속에 산다. 또 다른 신을 찾아내기 이전에는 아마도 이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유일신으로 혹은 올림푸스의 신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안티고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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