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이 글은 리뷰 상품을 세움판으로 잘못 선택해 올렸던 예전 글입니다. 예전 글을 비공개로하고(댓글들이 있어서)  민음사판 리뷰로 다시 올려 놓습니다.

 

다시 읽은 『이방인』은 생각보다 간결했다. 이상도 하지, 내 기억의 어디에도 『이방인』에 대한 옛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스무 서넛 무렵 까뮈에 푹 빠진 나는, 서점과 헌책방을 가리지 않고 까뮈의 책들을 찾아 다녔다. 온라인 서점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사실 나는 까뮈의 소설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재미도 없었고 이해도 못했다.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그의 두 편의 시론試論 (당시 책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었다. 나는 시론이 뭔지도 몰랐다.)인, 『시지프의 신화』와 『반항인』이었다.

 

『시지프의 신화』의 첫 문장은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이다. 『이방인』의 첫 문장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이다. 까뮈를 대표하는 두 문장에 모두 죽음이 있다. 까뮈의 세계는 ‘죽음’과의 대면이다. 그의 시론들인, 『시지프의 신화』는 부조리와 자살, 『반항인』은 살인과 반항을 탐색하고 있다. (링크『시지프의 신화』와 『반항인』에 관한 리뷰) 이 두 작품은 엄밀한 상관관계에 있는데, 사실 까뮈의 모든 작품이 그렇다. 까뮈는 노벨 문학상 소감을 통해, 그의 작품들이 상호 관련성 아래 철저히 기획된 것임을 밝혔다.

 

「 “나는 처음 시작 때부터 내 작품 세계의 정확한 계획을 세워가지고 있었다. 나는 우선 부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세 가지 형식으로. 그것이 소설로는 『이방인』, 극으로는 「칼리굴라」와「오해」, 사상적으로는 『시지프의 신화』였다. 나는 또 세 가지 형식으로 긍정을 표현하기로 예정하고 있었다. 소설로는 『페스트』, 극으로는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 그리고 사상적으로는 『반항하는 인간』이 그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벌써 사랑의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세 번째 층도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다.”  이와 같이 부정(부조리), 긍정(반항), 사랑 등의 발전 단계를 전제로 한 작품 세계의 체계적 청사진은 이미 그가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기록해 온 『작가 수첩』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랑을 주제로 하는 “세 번째 층”은 작가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인하여 실현을 보지 못했다. 『이방인』은 그러니까 카뮈가 구상한 첫째 번 층위인 “부정”, 즉 “부조리” 삼부작 중 하나로 그에게는 최초의 소설에 해당한다. 철학적 에세이는 설명하고 소설은 묘사하고 연극은 이 부조리의 감정에 생명과 운동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 한가운데로 1939년 가을에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이 관통한다. p170~1」

 

 

 

 

 

이 책들의 일관된 주제는 죽음이다. 그러나 까뮈의 ‘죽음’은 개인적 죽음이 아니다. 자살과 살인 혹은 사형이라는 죽음의 방식을 통해 세계의 부조리를 드러내고, 이에 끝까지 맞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는(그러나 헛된) 인간 반항의 정신과 그 행위를 철학적, 역사적, 예술적으로 탐구하는 작업이다. 까뮈의 출발점은 서양 근대정신의 바탕인 “신은 죽었다”와 그러므로 모든 것은 인간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절망적 세계인식이다. 신의 죽음이 절망적인 이유는 “모든 것은 허용되어 있다” 가 해방과 기쁨의 외침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 대한 결박임을 쓰디쓰게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신, 옳고 그름의 가치 기준인 대타자의 부재는 이제 인간 자신이 그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함을 뜻한다.

 

인간은 무엇으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세계를 통일시킬 것인가? 이 험난한 과정이 서구 근대 사상의 역사다. 근대의 주인은 ‘이성’이다. 그러나 “이성의 권위에 대한 계몽의 신앙” 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성은 또 다른 신이 되어 인간을 억압했다. 이성이 지배한 서구 근대의 역사는 1,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 파국으로 귀결되었다. 신을 죽이고 건설한 부르주아 자본주의 체제도, 퇴폐적 자본주의에 대한 반동인 나치즘 체제도, 계급 없는 유토피아를 지향한 공산주의 체제도 모두 대재앙을 초래했다. 세계는 통일되지 못했고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존재할 뿐이다. 세계는 비합리적이다.

 

그러므로 인간 실존의 조건은 부조리이다. 부조리란 “희구하는 정신과 실망을 주는 세계 사이의 단절, 통일에 대한 나의 향수, 여러 갈래로 분산된 우주, 그리고 그것들을 사로잡는 모순이다.『시지프의 신화』p68 ”   인간과 세계 사이의 단절이 부조리다. 인간은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만, 세계는 그 자체로 무의미할 뿐이다. 그런데 이 단절, 이 간극, 이 대립이 사실은 인간과 세계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끈이다. 이 대립을 부정하는 것은 그것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세계의 무의미에 실망하여 자살하거나,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신으로 돌아가는 것은 모두 패배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조리한 세계를 사는 인간에게 유일하게 긍정적 입장은 ‘반항’ 이다. 반항은 인간과 세계와의 끊임없는 대결이다. 반항은 어떠한 통일이나 주인도 거부하고 순간순간 세계를 문제 삼는 것이다.

 

까뮈는 부조리가 소설 속에서 유지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했다. 그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카라마조프, 키릴로프 등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고찰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자신의 작품 『이방인』과 『페스트』야말로 20세기 이후, 부조리한 인간에 대한 가장 치열한 탐색일 것이다.

 

 

 

 

 

『이방인』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 젊은 청년이 알제의 어느 바닷가에서 아랍인 한 사람을 살해했다. 수사 결과 그 청년은 얼마 전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렀는데, 울지도 않고 그 다음날 바로 여자와 만나 수영과 섹스를 했다. 재판정은 아랍인에 대한 살해 사실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무심한 태도’를 문제 삼아 이 청년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사형 집행 전 교도소 부속사제가 회개를 설득하지만 그는 격렬히 거부하고, 행복을 느끼며 죽음을 기다린다.

 

『이방인』에는 세 가지 ‘죽음’이 나온다. 엄마의 자연사, 아랍인의 살해, 뫼르소의 사형이다. 죽음은 이 책의 주제이자 형식이기도 하다. 1부는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해변에서의 아랍인 살해로 끝난다. 2부는 아랍인 살해에 따른 재판으로 시작해서 사형이 언도된 뫼르소가 집행을 기다리는 것으로 끝난다. 소설 전체의 시작과 끝에 죽음이 배치되어 있고, 이 두 죽음은 또 다른 죽음으로 매개되어 있다. 아랍인 살해는 1부의 종결과 2부의 시작을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사실 아랍인의 죽음은 매개 역할 이외에는 별 다른 중요성이 없다. “태양 때문이다.” 라는 이해할 수 없는 뫼르소의 진술 때문에, 아랍인 살해의 원인을 놓고 독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지만, 소설 자체에서 그의 죽음은 특별한 의미로 취급되지 않는다. 살해자인 뫼르소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부조리한 사건일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뫼르소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일까? 프랑스 식민지였던 당시 알제리의 현실에 비추어서도 사형은 예상 밖의 가혹한 판결이라고 한다. 뫼르소는 까뮈와 같이 프랑스 이주민 혈통의 백인이다. 백인이 아랍인을, 식민 종주국 국민(?)이 식민지 원주민을 쏘아 죽인 것은 중죄로 취급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뫼르소의 진정한 범죄는 무엇일까? 그것은 재판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국선 변호사는 처음 만난 날, 재판에서 이길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면서,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질문을 한다. 다만 문제가 될 것이 있다면,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에서 보여준 태도일 뿐이라는 듯이. 그날 마음이 아팠느냐고 질문한다.  “그러나 나는 자문해 보는 습관을 좀 잃어버려서,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 그러자 변호사는 내 말을 가로막았는데, 매우 흥분한 듯이 보였다. 그는 그러한 말은 법정에서나 예심판사의 방에서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며 나를 다그쳤다. p75"  재판정이 오직 관심을 갖는 것은 뫼르소가 엄마의 장례식 날 보였던 '무심한 태도' 이다. 배심원 앞에서의 실제 재판에서도 어찌나 모든 것이 엄마의 죽음에 집중되었던지 변호사마저 이렇게 외친다.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매장한 것으로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을 한 것으로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p107” 그러나 검사는 이 두 가지에는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범죄자의 마음으로 자기의 어머니를 매장했으므로, 나는 이 사람의 유죄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p108"  이 엉뚱해 보이는 주장은 그러나 방청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변호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야 했다.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기는 했지만, 뫼르소는 검사가 주장하는 본질적인 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뫼르소의 '무심한 태도'가 살인 자체 보다 더 극악한 죄악으로 비난받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가치’를 무용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아버지를 살해한 잔학한 범죄보다 뫼르소의 ‘무감각함’이 더 전율스런 공포가 된다. 부친 살해는 ‘아버지의 이름’에 대한 부정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법 혹은 사회의 가치 체계이다. 그러나 이 적극적 살해와 증오는 그것 자체에 대한 ‘무심함’ 보다는 덜 치명적이다. 아버지를 죽인 아들은 그 스스로 아버지가 된다. 그러나 뫼르소는 모든 가치에 대해 무심하다. 세계는 어떤 의미도 없다. 인간들이 헛되이 부여한 가공의 의미만이 있을 뿐이다. 뫼르소는 인간들의 이 절망적 노력을 ‘무심함’으로 무력화시킨다. 그러나 어떤 가치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사회를 인간들은 견뎌낼 수 없다. 그러므로 뫼르소의 무심함은 용서될 수 없다. 그것은 세계 전체를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까뮈 스스로가 밝혔듯이  “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p141 ”

 

1년 가까이에 걸친 재판과정의 시작과 마지막에는 하느님의 구원을 주제로 한 격한 논쟁과 갈등이 놓여있다. 예심판사는 처음에는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도와주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뫼르소가 쓰러진 아랍인의 시체에 다시 총 네 발을 쏜 이유를 끝내 대답하지 않자, 십자가를 꺼내 휘두르며,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뉘우쳐야 한다고 흥분한다. 예심판사에게 두 번째의 네 발은 뫼르소의 구원 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가 고집을 부리는 것은 잘못이고, 그 마지막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그에게 말할까 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말을 가로막고, 다시 한 번 벌떡 일어나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으면서 훈계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분연히 주저앉았다. 그럴 수는 없다고 하며 누구나, 비록 하느님을 외면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을 믿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신념이었고, 만약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해야 한다면 그의 삶은 무의미해지고 말리라는 것이었다. “당신은 나의 삶이 무의미해지기를 바랍니까?” 하고 그는 외쳤다. 내가 볼 때 그것은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벌써 책상 너머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을 나의 눈앞에다 내밀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기독교 신자야. 나는 이분께 네 죄의 용서를 구하고 있어. 어째서 너는 그리스도께서 너를 위해 고통 받으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말인가?” p79~80 ”

 

변호사와 검사가 이 사건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뫼르소의 적절한 애도이다. 그것은 사회의 질서, 법체계, 가치를 뫼르소가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뫼르소는 사회가 원하는 애도를 거부하고 이방인이 되기를 선택한다. 한편 예심판사에게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그 판단의 기준이다. 한 사람이라도, 길 잃은 어린 양이 한 마리라도 있다면, 그것은 세계 전체에 대한 부정이 되는 것이다. 세계에 의미가 없다면 인간의 삶 역시 의미가 없어진다. 그는   “당신은 나의 삶이 무의미해지기를 바랍니까?”  라고 격분한다. 까뮈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교회가 이교도들에게 그토록 가혹했던 것은 길 잃은 어린 양보다 더 나쁜 적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148” 라고 쓰고 있다. 하느님의 세계는 하나의 의문과 의심으로부터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 교회는 브루노도 갈릴레이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태양계와 같은 항성체계는 수도 없이 많고, 지구는 태양을 오늘도 돌고 있다. 그러자 신은 죽고 이성의 시대가 왔다. 그러나 신은 여전히 건재하다. 인간들은 세계의 무의미함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예심판사는 이 격렬한 감정의 분출 후에 더 이상 뫼르소에게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열한 달에 걸친 예심을 끝마친다. 그는 아마도 뫼르소를 세계에서 추방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사형집행을 앞두고 부속사제는 뫼르소에게 하느님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유한다. 뫼르소는 거절한다. 지루한 설득이 계속되는 가운데 갑자기 뫼르소가 폭발한다.  “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사제복을 움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 버렸다. 그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뭐냐? 그러나 그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어.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그에게는 없지 않으냐?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p133”  뫼르소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의 특권이 있다고 외친다. 모든 사람을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특권은 죽음이다. 우리 모두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것은 분노인 동시에 기쁨이었다.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을 생각한다. 엄마가 왜 생의 마지막에 ‘약혼자’를 만들었는지, 죽음이 임박한 그 순간에 어떤 해방감을 느꼈을지 이해되었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p135~6 ”

 

뫼르소는 신의 구원을 거부하고 인간들의 증오를 선택한다. 무관심한 세계에 마음을 열고, 행복을 느낀다. 고뇌와 함께 희망이 사라지자 행복을 찾은 것이다. 『이방인』은 『시지프의 신화』와 함께 부정 계열의 삼부작에 속하지만, ‘행복’ 이란 말로 끝이 난다. 뫼르소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  희망을 버리고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희망이란 구원에의 희망 혹은 세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다. 이 희망은 투항이다. 부조리한 세계와의 힘겨운 긴장에 지쳐 인간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까뮈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모든 것은 신에 달려 있으며 우리들은 신의 의지에 반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시지프의 신화』p141”  고 했다. 자신의 관심은  “구원의 호소 없이 살 수 있는가를 아는 것” 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방인』은 그 가능성을 그려내고 있다. 독자로서는 선뜻 동의하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신의 죽음은 서양 근대사의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할 문제이다. 구원을 거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 신앙의 문제가 아니다. 소설도 불분명하고 세계도 분명하지 않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반항하는 인간” 을 주장하기 위해 까뮈가 철학뿐만 아니라 소설과 희곡의 형식을 택해야 했던 이유도 이 불분명함 때문이다.  “만약 세계가 명료한 것이라면 예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시지프의 신화』p130 ” ,  “표현은 사고가 끝난 곳에서 시작된다. 『시지프의 신화』p130”  고 했다. 그러니 『이방인』을 논리적으로 읽기 힘들다고 해서 서둘러 실망할 일은 아니다. 뫼르소가 아랍인을 왜 죽였는지 답하지 못한 것처럼 우리 역시 『이방인』에 대해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뫼르소의 ‘태양’처럼 우리에게도 ‘뫼르소의 행복’ 이 어렴풋이 떠오른다면... 그것으로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정서 판 『이방인』을 두고 알라딘 서점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논쟁에 대해 한마디만 하고 싶다. 논쟁이 한창 일 때는 『이방인』을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고, 이정서 판 역시 보지 못했던지라, 어느 편이 더 논리적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정서 측에서 “정당방위” 라고 주장했다는 말을 듣고 관심을 끊어 버렸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음사 판으로 다시 『이방인』을 읽고 나니, 문득 그 심각해 보였던 논쟁이 우스꽝스러운 난리굿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랍인의 살해 원인이 정당방위라는 해석은 『이방인』을 그리고 까뮈의 부조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아랍인의 살해는 권태 속에 살아가던 뫼르소가 어느 날 “왜?” 하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살해는 우연적이고, 사건은 부조리하다. 그것이 명료했다면, 『이방인』이 어떻게 사르트르의 말처럼 “부조리에 관해서, 그리고 부조리에 맞서 쓰인 책”이 될 수 있었겠는가! 정당방위라면, 『이방인』은 살인 사건에 관한 하나의 흥미로운 판례에 불과했을 것이다. 세세한 번역의 문제에 관해서는 불어 원서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무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트윗 친구의 번역관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글이 관련되어 싸움질 중인 상황 혹은 글 내의 생각을 싸움질의 에너지가 담기게 옮겨야 한다는 것.” “옮기는 작업이 아니더라도 독해란 그런 것이고 말의 힘을 안다는 것은 말과 맥락의 투쟁을 느끼는 것과도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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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넓어지는 이슬람 세계

 

 

 

 

 

 

 

 

 

 

1. 이슬람 세계를 누빈 나라들

 

무함마드가 7세기 초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 공동체를 건설한 이래, 이슬람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세 제국에 걸친 거대한 제국을 이룩했다.

  

  <9세기 ~11세기 초의 이슬람 세계>

 

13세기 몽골제국이 세계 최초의 유라시아 제국을 건설하면서 이슬람 세계도 몽골의 침략을 받았다. 그러나 몽골이 물러간 후 이슬람 세계에는 다시 다양한 세력이 활약하며 이슬람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13세기에는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14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이, 15세기에는 티무르 제국이 이슬람 세계의 대표자로 떠올랐다. 16세기에는 시아파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은 사파비 왕조가 옛 페르시아의 땅을 차지하였다.

 

 

2. 세 대륙에 걸친 나라, 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은 1453년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크리스트교 세계의 천년의 역사를 품은 도시를 손에 넣었다. 동로마제국은 이로써 멸망하고, 오스만제국은 계속 세력을 확장하여, 과거 이슬람 세계 전체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함으로써 지중해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절정에 달하였는데, 오스트리아 빈 근처에서 이란 국경 너머까지,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 일부와 모로코를 제외한 북아프리카 전체에 오스만의 깃발이 꽂혔다.

  

  

오스만 제국은 세 대륙, 20개 민족, 6000만 명의 인구를 거느리며, 이슬람의 정신으로 페르시아의 전통과 튀르크의 기질, 아라비아의 솜씨를 버무려 거대한 문화를 발달시켰다. 오스만의 문화는 17세기 유럽인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에게 유럽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카페와 튤립도 실은 당시 오스만 제국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슬람 사제가 처음 마셨다고 알려진 커피는 ‘카파(혹은 카와)’, 카페 하우스는 ‘카웨’로 불리며, 오스만 제국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다. 튤립은 터키가 원산지인 야생화였는데, 오늘날에는 네덜란드의 상징으로 변해버렸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바자회(영어로 bazaar) 역시 오스만 제국의 ‘바자르’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스탄불에는 ‘그랜드 바자르’라는, 말 그대로 그랜드한-거대한 시장이 있는데, 1461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바자르란 원래 ‘덮여 있는 시장’ 이란 뜻으로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에는 세계 각국의 선박과 상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자선 모금을 위한 일회적 시장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런 유럽 문화의 뿌리를 이슬람 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이 아니라 이슬람 세계와 아시아가 세계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3. 인도의 새로운 전통, 무굴제국

 

16세기에 티무르의 5대손 바부르가 인도에 무굴제국을 세웠다. 무굴은 몽골이란 뜻인데, 몽골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티무르는 또한 이슬람교도이다. 그러므로 무굴제국은 인도-이슬람-몽골이 혼융된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이루어낸 악바르는 힌두교도와 비이슬람인을 억압하지 않고, 종교에 관계없이 화합을 추구하는 정치를 펼쳤다. 또한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에게 공평하고 효과적인 경제정책을 실시하려 노력하였다. 세계사를 공부하다 보면, 성공한 제국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통치 원칙을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경제적인 평등이다. 민족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평등한 경제활동을 보장하고 공평한 세금을 부과했다. 특히 농민들에게 토지를 골고루 분배하고, 일부 지배층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것을 막았다. 다른 하나는 사상의 자유이다. 관용을 베풀어 각 민족의 독자적인 종교 활동을 보장해주었다.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고, 자신이 믿는 가치가 억압받지 않는 한, 제국은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었다.

 

무굴제국을 통해 이슬람 문화와 힌두문화가 점차 융합되어 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라는 타지마할은 두 문화의 만남이 꽃피워낸 걸작이다. 이외에도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통합한 시크교, 힌두어와 인도어가 융합된 우르두 어, 아라베스크 무늬에 연꽃무늬를 결합시킨 건축 양식 등 이슬람 풍과 힌두 양식이 결합된 다양한 문화가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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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악명 높은 책을 2권이나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지난 3월 독서회에서 나는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 발제를 맡았다. 전기와 평론를 에세이 형태로 결합시킨 이 독특한 책을 발제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프루스트의 원작을 구경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이 깁스, 시베리아 행단 열차 운운하며 겁을 잔뜩 준 터라, 약간만 아주 약간, 콕 집어서 '마들렌 과자'가 나오는 부분만 읽어보려 하였다. 

 

그런데 그만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권과 2권을 모두 읽고 말았다. 팽귄 클래식 출판사가 기획하고 있는 이 책의 완역본은 총 7권이다. 프루스트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형식이라는 번역자께서 열심히 작업중인 것 같은데 아직 두 권밖에 출간되지 않았다. 원래 불어판 원작이 총 15년에 걸쳐 출판되었다는데, 번역도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닌 것 같다. 1권은 작년 5월, 2권은 7월에 출판되었으나 ,3권은 아직 언제 나온다는 소문도 들리지 않는다. 일년에 두 권 정도 예상하면 2016년 정도면 완성되지 않을까 짐작만 해본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처음 100쪽 정도는 정말 힘들었다. 불면증이 있는 주인공이 침대에 누워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인데, 문장은 끝도 없이 길고,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잡생각이 끼어들어도, 잠에서 갓 깨어난 사람처럼 문장 속을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빽빽한 문장 속에 숱하게 길을 잃으며 헤맸지만 80쪽 정도 읽었을 때, 마침내 그 유명한 마들렌 과자와 꽁브레가 나타났다. 어찌나 기뻤던지.  여기까지만 읽으면 어디가서 나도 프루스트 좀 알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들이나 강연에서 사람들이 대부분 인용하는 것도 어차피 여기니까.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이 지긋지긋한  책을 탁 던져 버릴 수 없었다. 어느새 프루스트의 문장에 길이 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두어달에 걸쳐 이 책을 읽었다. 주로 새벽에  압력밥솥 버튼을 눌러 놓고 거실 쇼파에 드러누워 읽거나,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조금씩 조금씩 읽었다. 이 책은 한꺼번에 욕심내면 지쳐버린다. 마카롱을 살짝 베어물 듯, 한 문장씩 한 문장씩 음미해야 한다. 그때서야  아드리아네의 실을 따라가듯  프루스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사유의 미로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그 미로는 섬세하고, 부드럽고, 찬란하고, 경이롭다. 나는 이제껏 이런 소설의 세계를 만난 적이 없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이다.  대여기한 2주에 다 읽지 못해, 같은 책 연속 대출 제한에 걸려, 기다렸다  다시 빌려와 읽은 책이다.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이 책을 대출해서 읽다니. 그런데 오래전부터 나는 책을 특히 소설책은 사지 않는다. 20대에는 벽면 가득 메운 책들이 무엇보다 뿌듯했다. 잠에서 깬 의식에 맨 처음 들어오는 책들의 풍경에 행복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책들이 나를 짓눌렀고, 나는 책들을 몽땅 없애버렸다. 내가 평생 갖고 싶은 수십 권의 책들만 빼놓고. 그때 이후 왠만하면 책들은 빌려서 읽었다. 그래도 줄을 쳐가며 읽어야 하는 책들이 생겼고, 다시 책꽂이가 빽빽해졌다. 그렇지만 문학책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제 십여년 만에 소설책을 사야할 것 같다.  아마도 잠 안오는 어떤 밤, 홀로 깬 이른 새벽, 무시로, 나는  프루스트와 함께 하게 될 것 같다.  열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을 그의 치밀하고 섬세한 문장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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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몽골제국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다

 

 

 

 

1. 유목 국가에서 정복 국가로

 

유목민족이 중국 대륙에서 처음 나라를 세운 것은, 한나라가 멸망한 후 위진 남북조 시대였다. 이후 수 문제가 대륙을 통일하고 중국은 다시 농경민족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런데 당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유목민족인 거란족이 요나라를 세우고 이어서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웠다. 다시 중국 대륙에 유목국가가 세워진 것이다. 요나라는 한반도의 고려를 세 번이나 침략한 국가인데, 서희 장군과 강감찬 장군이 이를 물리쳤다. 중국의 농경민족은 당나라가 망하자 송나라를 세웠지만, 금나라가 송을 침략하여 송은 강남으로 쫓겨나 남송으로 축소되었고, 화북지방은 금나라가 차지했다.

 

2. 양쯔 강 이남에서 다시 일어난 송

 

당나라를 이은 송나라는 매우 발달된 경제를 이룩했다. 서민들의 경제력도 커졌고 서민 문화도 발전하였다. 그런데 군사력은 매우 약했다. 송나라는 이웃의 요나라, 서하, 금나라 등에게 막대한 재물을 선물하는 대가로 평화를 유지했다. 전쟁 보다는 비용이 적었지만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갈수록 국가의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귀족사회였던 송나라에서는 엄청난 토지를 소유한 지배계층은 세금을 내지 않고 일반 백성들이 모든 세금을 부담했다. 지배층은 더욱 부유해지고 일반 백성은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백성들은 세금을 감당하지 못했고 국가의 재정 또한 악화되었다.

 

왕안석은 대대적인 개혁을 통하여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 중·소상인을 보호하려 하였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당하게 된 고위 관리들의 반대에 부딪혀 개혁은 실패했다. 그 결과 송나라는 더욱 약해져서 결국 금나라에 의해 강남으로 쫓겨 가게 되었다.

  

 

 

KBS 사극 <정도전>에서도 이와 비슷한 역사를 볼 수 있다. 고려 역시 송나라와 마찬가지의 귀족사회였고, 대부분의 토지는 일부 지배층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정도전은 백성들의 집에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국가를 만들고자 했으나 고려라는 나라에서는 이것을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권력을 장악한 지배세력이 완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새로운 나라를 세워 모든 토지를 몰수하여 백성들에게 고루 나누어주고자 하였다. 이 정책을 ‘계민수전計民授田’이라고 하는데, 백성들의 수자를 계산하여 그 수대로 공평히 전답을 나누어 준다는 뜻이다. 비록 정도전은 계민수전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했지만, 완화된 개혁을 실시하여 착취구조를 철폐하고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도와주었다. 그 결과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된 백성들은 쌀밥을 ‘이밥’이라고 불렀는데, 정도전이 왕으로 내세운 ‘이성계가 준 밥’ 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이었다.

  

 

 

화북지방을 금나라에 빼앗긴 송나라는 해상무역을 발전시켰다. 고려는 송나라와 교류하였는데, 송나라가 개발한 항로를 통해 이슬람 상인이 고려에까지 들어왔다. 수도 개경에서 가까운 벽란도는 국제 무역항으로 이름을 떨쳤다. Korea라는 명칭은 이 당시 이슬람 상인이 ‘고려’를 부르던 말에서 유래했다.

 

 

3. 몽골의 정복, 이에 맞선 항쟁

 

칭기즈 칸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하고, 유라시아 제국을 하나로 묶은 인물이다. 중국 대륙은 물론 서쪽으로 이슬람 제국과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등의 유럽지역을 단숨에 휩쓸었다. 프랑스 등의 서유럽은 아무 대책 없이 곧 닥쳐올 재앙에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데 서유럽의 코앞에서 기적처럼 몽골 군대가 사라졌다. 칭기즈 칸이 사망한 것이다. 몽골제국의 관습에 따라 새로운 칸을 추대하기 위하여 모든 군대가 정복활동을 중지하고 몽골의 수도로 되돌아 왔다. 그 덕분에 서유럽은 간신히 몽골제국의 포화를 면할 수 있었다. 몽골 제국은 칭기즈칸의 사후에도 정복활동을 벌였고, 유럽과 아시아의 양 끄트머리 일부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라시아 대륙을 몽골제국의 이름 아래 통합하였다. 세계 최초의 유라시아 제국이 탄생한 것이다.

  

 

 

 <아틀라스 세계사 : 서유럽과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라시아 제국이 몽골의 영토가 되었다. 고려는 원의 세력권 아래 놓이긴 했으나 끝까지 저항하여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4. 유라시아가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다

 

몽골제국은 그 넓은 땅을 어떻게 다스렸을까? EBS 다큐 프라임의 <강대국의 비밀> 몽골제국 편에서는 그 답을 ‘관용’이라고 한다. 몽골제국은 침략 전쟁에서 보여준 무자비함과는 딴판으로, 통치에서는 그 어느 국가도 보여주지 못했던 관용의 정치를 펼쳤다고 한다. 일단 항복한 모든 민족은 몽골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으며, 민족과 지역에 관계없이 능력 있는 사람들을 고루 등용하였고, 피지배지역의 발달된 문물을 적극 수용하였다. 중국에서는 통치 기술과 제도를, 세금걷기나 살림살이는 이슬람에서, 정치와 군사의 주요직은 몽골이 맡았다. 각 민족은 자신의 문화와 종교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몽골제국의 평화 아래 유라시아는 동서 간에 문물을 활발히 교류하였다. 몽골제국 즉 원나라의 수도 대도는 각양각지에서 몰려 온 다양한 인종들로 넘쳐났고, 이슬람 사원, 절, 교회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이었다. 일종의 ‘종교 배틀’도 열렸는데, 각 종교를 대표하는 수도자들이 한 자리에 앉아 서로 논리를 가지고 공격하며 적절한 답을 하지 못한 경우 벌주를 마시는 대회였다. 유럽의 배타적인 종교 국가와는 달리 몽골제국에서는 서로 논쟁하며 다양한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이런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관용이야말로 몽골제국을 세계제국으로 만들어준 기본 정신이었다.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드넓은 땅을 하나로 묶는 교통 통신망이 필수적이다. 고대 로마제국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는 속담에처럼, 거미줄 같은 도로망을 형성하여 통치의 효율성을 높였다. 초원지대를 질풍같이 말달리며 살아왔던 몽골민족은 도로대신 역참제를 만들었다. 역참에 말과 식량 숙박시설을 갖추어 두고 관리나 사절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초원이나 사막에도 예외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역참을 두어 칸의 명령이 대도에서 유럽까지 열흘이면 전달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교통 통신망을 구축하였다.

 

유럽인들은 죽기 전에 몽골의 수도 대도에 가보기를 꿈꾸게 되었고, 그 중에는 동방견문록을 남겨 유명해진 마르코 폴로가 있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항해한 것도 대도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13세기에는 유럽이 아시안 드림을 꾸었을 만큼 아시아는 문화와 문물이 발달한 곳이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신대륙 개척을 기점으로 유럽은 아시아에 앞서 나가게 되었으니, 역설적이게도 몽골제국은 잠자던 유럽을 흔들어 깨웠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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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2014-06-16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몽골의 칭기즈 칸이 나와 거대한 대륙을 통치하는 것을 보니 정말 위대한 사람 같다.
관용이라는 방법은 정말 좋은 것 같다.
칭기즈 칸이 그 많은 대륙들을 통치할 수 있게 만들어준 방법이니까.
 
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관한 역설力說이다. 로자 아줌마는 전직 창녀 출신의 유대인으로, 창녀들이 낳은 불법적인 아이들을 길러 주는 일을 한다.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로자 아줌마는 히틀러의 사진을 침대 밑에 몰래 넣어두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꺼내보며, 현재의 삶을 위로받는다. 모하메드는 세 살 때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져 10여년을 함께 산 아랍인 아이다. 90킬로그램이 넘는 로자 아줌마는 치매에 걸려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로자 아줌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식물인간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의사 카츠 선생이 17년 동안이나 식물인간으로 살았던 미국인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로자 아줌마에게 식물인간이란 심지어 나치의 포로수용소만큼이나 끔찍한 것이다. 연명을 위한 병원 치료는 나치의 학대고문과 같다고 생각한다. “모모야, 그들은 나를 억지로 살려놓으려 할 거다. 병원이란 데가 원래 늘 그 모양이야. 법이 그러니까. 나는 필요 이상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이제 더 살 필요가 없어. 아무리 유태인이라도 한계가 있는 거야. 그들은 나를 죽지 않게 하려고 온갖 학대를 다 할 거다. 의사는 처방전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끝까지 괴롭히면서 죽을 권리조차 주지 않을 거야. 그것이 그들의 특권이니까.” 모하메드는 로자 아줌마에게 식물인간이 되게 하지는 않겠다고 맹세한다. 로자 아줌마의 상태가 절망적이 되자, 모하메드는 의사 카츠에게 안락사를 부탁하지만, 카츠 선생은 펄쩍 뛰며 거절한다. “그건요. 그런 권리가 있다면 로자 아줌마에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마음대로 할 신성한 자결권이 있다는 거죠. 아줌마가 자결하고 싶다면 그건 아줌마의 권리라고요. 그리고 아줌마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도와주어야 해요.” 로자 아줌마는 온갖 고통 속에서 겨우 숨만 붙어 있다. “아줌마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사람이에요. 의사들을 즐겁게 해주자고 아줌마를 식물처럼 살게 해서 세계 챔피언이 되게 할 생각은 없어요. .... 로자 아줌마를 고통스런 생에서 구해주세요. 생이란 것은 아줌마를 엉덩이로 걷어차버렸어요. ... 로자 아줌마를 도와주지 않는 더럽고 멍청한 의사들은 비난받아야 해요. 그건 범죄라구요. ...” 그러나 카츠 선생이 로자 아줌마를 병원으로 옮기려고 하자, 모하메드는 몰래 로자 아줌마를 비밀 은신처로 옮겨, 사랑하는 아줌마가 그토록 원하던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지켜 준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가능한 안락사가 왜 노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지 말이다.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 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은 셈이니까. 더 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넣어주는 것보다 더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주제는 인종문제다. 유태인, 아랍인, 아프리카인들이 모여 사는 파리의 사창가가 배경이라는 점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러 인종들이 파리 빈민가에 모여 살게 된 것은 아마도 프랑스 식민통치와 이민정책 그리고 나치즘에 기인할 것이다. 프랑스에 잡혀온 노예의 후손들과 불법이주민들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과 하층 프랑스인들이 서구 문명의 꽃, 파리의 주변부를 형성하고 있다. 서구 문명의 찬란함이란 식물인간이 된 이 ‘불쌍한 사람들 - 레미제라블’의 희생 위에 피어난 것이다.

 

안락사의 권리,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라고 생각한다. 몇몇 종교에서는 그것을 신의 권리라 주장하고 있지만, 나는 철저히 인간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운명의 잔인한 장난에 놀아난 오이디푸스가 파국의 벼랑 끝에서 그 어떤 신의 뜻도 아닌 자기 자신의 손으로 자기의 두 눈을 찌른 것처럼, 마지막 순간을 선택할 권리는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에는 오이디푸스와 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치매에 정신을 빼앗겨 가고 있던 로자 아줌마는 문득문득 정신이 늙은 육체에 되돌아오는 그 짧은 순간순간 마다 식물인간을 거부하고 인간으로 죽을 권리를 주장했다. 십자가에 매달려 의사들의 속죄의 희생양이 되기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으로 죽기를 고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로자 아줌마는 파리 사창가의 식물인간들, 그 다양한 유색인종들의 염원이기도 할 것이다. 엉덩이를 내주며 사는 것은 곧 십자가에 매달린 채 연명하는 것, 빛나는 파리의 어두운 죄를 대속하는 식물인간과 같은 것이기에. 하지만 에밀 아자르가 식물인간을 파리의 사창가에 비유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가 그리고 있는 사창가는 구질구질하지만, 너무도 따뜻하기에. 여하튼 내게는 하나의 유비처럼 읽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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