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악명 높은 책을 2권이나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지난 3월 독서회에서 나는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 발제를 맡았다. 전기와 평론를 에세이 형태로 결합시킨 이 독특한 책을 발제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프루스트의 원작을 구경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이 깁스, 시베리아 행단 열차 운운하며 겁을 잔뜩 준 터라, 약간만 아주 약간, 콕 집어서 '마들렌 과자'가 나오는 부분만 읽어보려 하였다. 

 

그런데 그만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권과 2권을 모두 읽고 말았다. 팽귄 클래식 출판사가 기획하고 있는 이 책의 완역본은 총 7권이다. 프루스트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형식이라는 번역자께서 열심히 작업중인 것 같은데 아직 두 권밖에 출간되지 않았다. 원래 불어판 원작이 총 15년에 걸쳐 출판되었다는데, 번역도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닌 것 같다. 1권은 작년 5월, 2권은 7월에 출판되었으나 ,3권은 아직 언제 나온다는 소문도 들리지 않는다. 일년에 두 권 정도 예상하면 2016년 정도면 완성되지 않을까 짐작만 해본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처음 100쪽 정도는 정말 힘들었다. 불면증이 있는 주인공이 침대에 누워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인데, 문장은 끝도 없이 길고,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잡생각이 끼어들어도, 잠에서 갓 깨어난 사람처럼 문장 속을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빽빽한 문장 속에 숱하게 길을 잃으며 헤맸지만 80쪽 정도 읽었을 때, 마침내 그 유명한 마들렌 과자와 꽁브레가 나타났다. 어찌나 기뻤던지.  여기까지만 읽으면 어디가서 나도 프루스트 좀 알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들이나 강연에서 사람들이 대부분 인용하는 것도 어차피 여기니까.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이 지긋지긋한  책을 탁 던져 버릴 수 없었다. 어느새 프루스트의 문장에 길이 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두어달에 걸쳐 이 책을 읽었다. 주로 새벽에  압력밥솥 버튼을 눌러 놓고 거실 쇼파에 드러누워 읽거나,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조금씩 조금씩 읽었다. 이 책은 한꺼번에 욕심내면 지쳐버린다. 마카롱을 살짝 베어물 듯, 한 문장씩 한 문장씩 음미해야 한다. 그때서야  아드리아네의 실을 따라가듯  프루스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사유의 미로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그 미로는 섬세하고, 부드럽고, 찬란하고, 경이롭다. 나는 이제껏 이런 소설의 세계를 만난 적이 없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이다.  대여기한 2주에 다 읽지 못해, 같은 책 연속 대출 제한에 걸려, 기다렸다  다시 빌려와 읽은 책이다.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이 책을 대출해서 읽다니. 그런데 오래전부터 나는 책을 특히 소설책은 사지 않는다. 20대에는 벽면 가득 메운 책들이 무엇보다 뿌듯했다. 잠에서 깬 의식에 맨 처음 들어오는 책들의 풍경에 행복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책들이 나를 짓눌렀고, 나는 책들을 몽땅 없애버렸다. 내가 평생 갖고 싶은 수십 권의 책들만 빼놓고. 그때 이후 왠만하면 책들은 빌려서 읽었다. 그래도 줄을 쳐가며 읽어야 하는 책들이 생겼고, 다시 책꽂이가 빽빽해졌다. 그렇지만 문학책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제 십여년 만에 소설책을 사야할 것 같다.  아마도 잠 안오는 어떤 밤, 홀로 깬 이른 새벽, 무시로, 나는  프루스트와 함께 하게 될 것 같다.  열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을 그의 치밀하고 섬세한 문장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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