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관한 역설力說이다. 로자 아줌마는 전직 창녀 출신의 유대인으로, 창녀들이 낳은 불법적인 아이들을 길러 주는 일을 한다.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로자 아줌마는 히틀러의 사진을 침대 밑에 몰래 넣어두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꺼내보며, 현재의 삶을 위로받는다. 모하메드는 세 살 때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져 10여년을 함께 산 아랍인 아이다. 90킬로그램이 넘는 로자 아줌마는 치매에 걸려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로자 아줌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식물인간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의사 카츠 선생이 17년 동안이나 식물인간으로 살았던 미국인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로자 아줌마에게 식물인간이란 심지어 나치의 포로수용소만큼이나 끔찍한 것이다. 연명을 위한 병원 치료는 나치의 학대고문과 같다고 생각한다. “모모야, 그들은 나를 억지로 살려놓으려 할 거다. 병원이란 데가 원래 늘 그 모양이야. 법이 그러니까. 나는 필요 이상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이제 더 살 필요가 없어. 아무리 유태인이라도 한계가 있는 거야. 그들은 나를 죽지 않게 하려고 온갖 학대를 다 할 거다. 의사는 처방전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끝까지 괴롭히면서 죽을 권리조차 주지 않을 거야. 그것이 그들의 특권이니까.” 모하메드는 로자 아줌마에게 식물인간이 되게 하지는 않겠다고 맹세한다. 로자 아줌마의 상태가 절망적이 되자, 모하메드는 의사 카츠에게 안락사를 부탁하지만, 카츠 선생은 펄쩍 뛰며 거절한다. “그건요. 그런 권리가 있다면 로자 아줌마에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마음대로 할 신성한 자결권이 있다는 거죠. 아줌마가 자결하고 싶다면 그건 아줌마의 권리라고요. 그리고 아줌마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도와주어야 해요.” 로자 아줌마는 온갖 고통 속에서 겨우 숨만 붙어 있다. “아줌마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사람이에요. 의사들을 즐겁게 해주자고 아줌마를 식물처럼 살게 해서 세계 챔피언이 되게 할 생각은 없어요. .... 로자 아줌마를 고통스런 생에서 구해주세요. 생이란 것은 아줌마를 엉덩이로 걷어차버렸어요. ... 로자 아줌마를 도와주지 않는 더럽고 멍청한 의사들은 비난받아야 해요. 그건 범죄라구요. ...” 그러나 카츠 선생이 로자 아줌마를 병원으로 옮기려고 하자, 모하메드는 몰래 로자 아줌마를 비밀 은신처로 옮겨, 사랑하는 아줌마가 그토록 원하던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지켜 준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가능한 안락사가 왜 노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지 말이다.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 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은 셈이니까. 더 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넣어주는 것보다 더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주제는 인종문제다. 유태인, 아랍인, 아프리카인들이 모여 사는 파리의 사창가가 배경이라는 점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러 인종들이 파리 빈민가에 모여 살게 된 것은 아마도 프랑스 식민통치와 이민정책 그리고 나치즘에 기인할 것이다. 프랑스에 잡혀온 노예의 후손들과 불법이주민들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과 하층 프랑스인들이 서구 문명의 꽃, 파리의 주변부를 형성하고 있다. 서구 문명의 찬란함이란 식물인간이 된 이 ‘불쌍한 사람들 - 레미제라블’의 희생 위에 피어난 것이다.

 

안락사의 권리,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라고 생각한다. 몇몇 종교에서는 그것을 신의 권리라 주장하고 있지만, 나는 철저히 인간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운명의 잔인한 장난에 놀아난 오이디푸스가 파국의 벼랑 끝에서 그 어떤 신의 뜻도 아닌 자기 자신의 손으로 자기의 두 눈을 찌른 것처럼, 마지막 순간을 선택할 권리는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에는 오이디푸스와 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치매에 정신을 빼앗겨 가고 있던 로자 아줌마는 문득문득 정신이 늙은 육체에 되돌아오는 그 짧은 순간순간 마다 식물인간을 거부하고 인간으로 죽을 권리를 주장했다. 십자가에 매달려 의사들의 속죄의 희생양이 되기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으로 죽기를 고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로자 아줌마는 파리 사창가의 식물인간들, 그 다양한 유색인종들의 염원이기도 할 것이다. 엉덩이를 내주며 사는 것은 곧 십자가에 매달린 채 연명하는 것, 빛나는 파리의 어두운 죄를 대속하는 식물인간과 같은 것이기에. 하지만 에밀 아자르가 식물인간을 파리의 사창가에 비유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가 그리고 있는 사창가는 구질구질하지만, 너무도 따뜻하기에. 여하튼 내게는 하나의 유비처럼 읽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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