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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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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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 2014-12-03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이건 올해의 책 투표한건데 여기로 막 연결되네 -.-
 
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지음, 박민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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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시대

 

언제나 궁금했던 것이 있다. 르네상스는 정확히 언제를 말하는 걸까? 언제부터 근대라고 부르는 걸까? 근대와 현대의 구분은 언제를 기준으로 하는 걸까? 문제는, ‘언제’ 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지 역사가 구분한 것일 뿐,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할 것이다. 시대 구분에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다리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책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그 기준에 짜증이 났더랬다. 아니면 너무 복잡해서 짜증이 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부터 이 책을 기준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4부는 1장과 2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장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시대는 15세기와 16세기이다. 이 시기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이행기다. 2장은 바로크 시대, 17세기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근대가 시작된다. 강유원은 어느 책에서 17세기는 과학혁명의 시대,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또한 산업혁명의 시대), 19세기는 부르주아의 시대라고 불렀다. 근대는 과학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셈이다.

 

  

 

 

 

 

 

제 1장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대의 철학 : 15~16 세기

 

 

Ⅰ. 중세에서 근세로의 정신적 전환

 

아래의 소제목들만 봐도 이 시대의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1. 발명과 발견

 

나침반, 화약, 인쇄술의 발명은 유럽의 면모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콜럼부스도 대포를 싣고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서쪽을 향하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것이 1492년이다. 인쇄술은 새로운 정신 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었다.

 

2. 새로운 자연지식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시대다. 갈릴레이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3. 인본주의와 르네상스

 

르네상스란 “고대 인간의 부활을 통한 인간의 부활” 이란 의미를 내포하는데, 고대 인간은 희랍인을 말한다. 신에서 인간으로 중심이 이동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반으로 한 스콜라철학이 붕괴되었다. 이 시대 철학의 공적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다. “이 사상들은 스콜라철학의 색안경을 벗은 채 최초로 아무 편견 없이 그리스․로마 철학을 고찰했으며 이를 세속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당대와 후속 세대에게 보여 주어 그로부터 새로운 창조의 자극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p432”

 

철학자는 아니지만, 이 시대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몽테뉴다. 몽테뉴의 에세이와 여행기에는 그가 전형적인 시대의 아들임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는 철저히 현세적인 정신의 소유자였고 비판적이며 회의적이고 일체의 편견에서 자유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이란 무엇인가? 란 수수게끼에 몰두했다. 그의 사상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물론 르네상스하면 예술을 빼 놓을 수 없고,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대표된다. 또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있다. 이 시대는 메디치가와 엘리자베스 1세, 스페인의 필립 2세가 통치하고 있었다.

 

4. 종교개혁

 

루터의 종교개혁과 동로마 제국의 멸망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기점으로 중세 기독교 사상이 쇠퇴했다고 알기 쉽게 기억한다. 1453년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끝난 해이기도 하다. 전쟁이 끝나면서 프랑스는 바로 중앙집권제가 실시되고, 영국은 다시 30년간의 장미전쟁을 치룬 이후 중앙집권 체제가 이루어지며, 에스파냐는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 중앙집권제를 실현했다고,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의 연보에 실려 있다. 절대왕정은 근대 국민국가로 가는 초석이 아니었던가 싶다.

 

루터는 정신생활의 모든 영역을 아울렀던 교회의 전횡을 타파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실제로는 성서에 관련해서만 연구의 자유를 요구했다. 코페르니쿠스에 대해서는 “바보의 아주 영리한 발상” 이라 말했다.

 

“결국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철학이 다시 신학의 시녀로 전락했으며, 교의 체제도 급속히 경직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중세의 선례 못지않게 불관용의 태도를 보이는 프로테스탄트적 스콜라 철학이 탄생한 것이다. p439”

 

5. 근세 여명기의 사회․정치적 변혁 - 새로운 법사상과 국가사상

 

이런 정신적 변혁의 토대를 이룬 것은 유럽 사회의 심대한 구조적 변화였다. 기사 계급이 몰락했고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계급이 부상했다. 이들은 신대륙 발견이 가져온 활발한 무역으로 새로운 경제 질서를 구축했으며, 세속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리고 종교개혁과 맞물려 농민전쟁이 발생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중앙집권화, 절대군주제이다.

 

이런 근본적 변화는 전적으로 새로운 법사상과 국가사상을 필요로 했는데,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마키아벨리와 홉스, 모어가 있다.

 

마키아벨리의 다음 말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법과 자연 법칙인 폭력이 통치의 근간임을 명백히 한다.

“분쟁을 끝내는 데는 오직 두 가지 길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즉 법으로 정해진 방식을 따르거나 폭력의 방식을 취하는 길밖에 없다. 첫 번째 방식은 인간이 취하고 두 번째 방식은 동물이 사용한다. 그러나 첫 번째 방식이 언제나 해결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므로 때로는 두 번째 방식도 취해야 한다. p445”

 

『리바이어던』으로 유명한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자연 상태로 보았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와는 다르게(?) 폭력은 안전에 대한 인간의 소망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법적 보호와 안전, 실제적 도덕행위의 가능성은 인간들이 국가 내에서 합의에 의해 상위의 권력을 창출하고 모두가 이 권력의 의지에 복종할 때만 가능하다.p447” 고 생각했다. 이것이 홉스가 말하는 국가의 기원이다. 그에 의하면 “무엇이 정의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국가이다. 국가가 허용하는 것은 정의이며, 국가가 금지하는 것은 불의이다. p447”

 

“홉스의 사상에 반영되어 있는 것은, 개인과 국가 모두를 신의 구원 질서에 편입시켰던 중세적 세계관이 파괴되고 그로부터 ‘해방된’ 개인과 세속 국가가 탄생하는 당대의 변화과정이다. 양자 즉 개인과 세속 국가의 요구를 조화시키는 것은 이후의 정치 역사와 근세 사상 전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대두한다. 이때 홉스는 완전히 국가편에 선다. p448”

 

모어의 『유토피아』는 가장 선구적인 자본주의 비판이다. 그는 “영국에서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며, 인클로저 운동에 의한 농민계급의 몰락을 고발했다. 유토피아는 판타지가 아니라 당대 국가와 사회상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며, 유토피아는 그 대안으로 그려진 사회주의 공동체의 모습이다.

 

 

Ⅱ. 과도기의 주요 사상가

 

이 책이 ‘철학사’ 임을 감안한다면, 이 시대의 주요 사상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별 흥미가 없어 이름만 거론하고 넘어간다. “이 시대는 많은 것이 실험되고 다시 많은 것이 폐기되는 거대한 작업장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p474” ‘실험과 폐기’ 된 것 말고도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죄송하다.

 

1. 니콜라스 쿠사누스 (1401~1464) : 처음 듣는 이름이다.

 

2. 조르다노 브루노 (1548~1600) : 우주의 무한성을 탐구하다 화형 된 불운한 수도사다. 갈릴레이와 동시대인데, 갈릴레이는 훨씬 오래 살았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를 혼잣말로 중얼거린 덕택이다.

 

3. 프랜시스 베이컨 (1561~1626) : 우상론으로 유명하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자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지만, 베이컨 연구자들은 동조하지 않는다.

 

4. 야코프 뵈메 (1575~1642) : 처음 들어보는데, 그의 사상은 유럽 전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뉴턴, 라이프니츠, 헤겔, 셀링이 그의 정신적 유산에 깊은 존경심을 표했다고 한다.

 

 

 

제 2장 바로크 시대의 3대 체계 : 17 세기

 

이 시대는 이미 르네상스에서 성숙한 것으로 천명된 이성이 승승장구의 길로 들어섰고, 이 시대의 철학은 수학과 분리될 수 없었다. 그 특성이란 명석하고 일목요연한 형태와 조화로운 구조 및 전체를 이루는 모든 부분의 균형에 대한 당대인들의 추구를 말한다.

 

 

Ⅰ. 데카르트 : 1596~1650

 

그 유명한 방법서설의 원제목은 길다. 『이성을 옳게 인도하고 여러 학문에서 진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서설』이다. 1637년에 출간되었다. 근대의 대표 아이콘 ‘이성’ 이 등장한다.

 

1637년은 30년 전쟁의 와중이다. 유럽 핵심 강국이 모두 참가한 30년 전쟁은 프로테스탄트 연합과 가톨릭 동맹 사이의 대립으로, 1618년에 시작되어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며 끝났다. 흔히 베스트팔렌 이후를 근대국가의 출발로 삼는다.

 

강유원의 『역사 고전 강의』는 30년 전쟁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전쟁은 종파의 대립을 명분으로 하여 시작되었으나 그 뒷면에는 정치적 쟁투가 도사리고 있었고,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서 이 전쟁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를 둘러싼 싸움은 무의미한 일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종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살육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30면 전쟁이 가져다 준 가장 역설적인 효과라 할 수 있습니다. p268~269”

 

한마디로 종교에 넌더리를 내게 되었다는 것인데, 문제는 신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삶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신에 대한 회의는 곧 세계에 대한 회의이고 인간에 대한 회의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데카르트의 사상이다. 데카르트는 어떻게 우리가 확실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지?, 어떤 진술이나 판단이 확고한 타당성을 갖는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중세라면 답은 명백히, 신이다. 그러나 17세기의 신은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만약 인식되는 모든 것이 가장 단순한 원리들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면, 나는 제일 먼저 내 출발점의 확실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확실한가?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일단 나는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고 가정하겠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고 그런 철저한 의심을 견뎌 내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겠다. 나는 학습과 독서를 통해,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습득한 모든 것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낱 상상에 불과한 것인지, 달리 말해 내가 지각하는 그대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 의심해 볼 것이다. 그럴 것이 인간의 감관이 다양한 착각을 유발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나는 모든 것 중 가장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수학의 원리들도 의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지성은 진리 인식에 부적합하여 끊임없이 오류를 낳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모든 것을 철저히 의심하는 데서 철학을 시작한다 할지라도 끝내는 내가 의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내가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더욱 확실해질 수밖에 없는 무엇이 남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내가 지금 이 순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생각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내가 외계로부터 지각하는 모든 것은 착각일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오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의심 과정 속에서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나 자신만은 확신한다. p480~1”

 

이것이 우리가 그 이름만은 매우 익숙한, ‘코기토’가 탄생한 배경이다. Cogito ergo sum. 영화 <메트릭스>의 세계에 대한 의심이 이미 17세기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영화와는 달리 데카르는, 의심하는 자기 존재를 확신했다.

 

“합리주의 시대의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데카르트는 감성적 경험이란 너무 불명료한지라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한다. 오로지 사유하는 지성에 의해 아주 명백하고 합리적이며 ‘수학적인’ 개념에서 표현될 수 있는 것만이 전적인 타당성을 갖는 인식으로 간주된다. 물체 세계와 관련해 그처럼 전적인 타당성을 갖는 인식은 연장의 속성, 즉 공간을 차지한다는 속성이다. 따라서 공간적 연장은 물체 세계의 본질이다. 물체는 공간이며, 공간은 물체로 구성된다. 비어 있는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p.484”

 

사유와 연장. res cogitans와 res extensa. 일반인에게 연장이란 단어는 참 ‘에고~ 의미 없다.’ 데카르트가 인용되는 문장을 여러 책에서 읽었지만, 이 책을 읽을 때까지 나는 연장의 의미를 사실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보니 연장은 공간이다. 아인슈타인이 정의한 중력이 물체에 의한 공간의 휨을 말한다더니, 여기에 데카르트를 대입한다면, 연장이란 공간의 휨을 유발하는 것, 혹은 휘어진 공간이라 해도 되겠다.

 

여하튼 이 사유와 연장의 구분은 두고두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의 발목을 잡는다. 이분법, 기계론적 사고, 자연의 대상화가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고, 결국 근현대를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끌게 했다는 원망이다. “데카르트는 정신의 개념을 사유에 국한 시켰고 동물은 이런 의미에서 사유할 수 없으므로 결국 동물은 정신세계에 관여하지 못한다. 동물은 순전한 메커니즘이며 기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p484” 심지어 데카르트는 인간의 육체 또한 연장에 포함시키며, 동물 및 기계와 동급에 놓았다.

 

“정신 내지 사유와 인간의 육체를 포함한 물체 세계를 철저히 분리하는 데카르트의 입장은 서양 사상의 발전에 다대한 (그러나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입장은 물체 세계에만 현실성을 부여하는 대중적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일면적인) 대중적 ‘관념론’이 형성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P490”

 

 

Ⅱ. 스피노자 : 1632~1677

 

스피노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노자? 장자?, 왠지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주워들은 몇몇 개념 때문일 것이다. 보통 <윤리학>으로 알고 있는 그의 주저서는 『기하학적 방식으로 서술된 윤리학』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기하학과 윤리학이 굉장히 생뚱맞은 조합이지만, 17세기는 수학과 철학이 하나이던 시대였다.

 

“이 책의 출발점을 이루는 것은 ‘실체substantia’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오늘날의 언어 사용에서와 달리 물질을 뜻하지 않는다. ‘substantia’ 라는 라틴어 단어가 원래는 ‘그 아래 놓여 있는 것’ 이란 뜻임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이 개념이 지시하는 의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스피노자가 이 개념으로 지시하는 것은, 모든 사물의 근저나 배후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모든 존재를 자체 내로 통합하고 포괄하는 일자 내지 무한자이다. 실체는 영원하고 무한하며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어 존재한다. 그리고 실체 바깥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된 실체 개념은 결국 신의 개념과 일치하며, 모든 존재자의 총괄이라는 점에서 동시에 자연 개념과도 일치하게 된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사상은 다음과 같은 등식에서 출발한다.

실체 = 신 =자연

 

실체와 대립하는 개념은 ‘양태modus’이다. 실체가 자기를 원인으로 하여 자유로운 동시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왜냐하면 자기를 원인으로 한다면 필연과 자유가 합치하므로) 것을 뜻한다면, 양태란 이런 것이 아닌 모든 것, 즉 다른 것에 의해 제약되어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가장 넓은 의미에서 세계, 즉 (유한한) 현상들의 세계가 바로 양태라고 할 수 있다. p496”

 

스피노자는 실체가 한없이 커다란 평면 예를 들어 커다란 종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양태 즉 개별 사물은 거기에 그려지는 도형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 설명을 보며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 나오는 가이아 혹은 갤럭시아가 생각났다. 우리 인간으로 양태는 하나하나의 세포이며, 실체는 전체로서의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무한한 실체 내지 신은 (어쨌거나 우리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한에서는)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유와 연장이다. 신은 한편으로 무한한 연장이며 (즉 신은 유한성을 갖는 물체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무한한 사유이다 (즉 신은 특정한 사유, 제약된 사유가 아니다). 그런데 모든 것은 신 안에 존재하므로, 모든 개별 존재 역시 이러한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될 수 있다. 즉 모든 개별 존재는 사유의 관점에서 관념으로 나타나며 연장의 관점에서는 물체로 나타난다. 고로 (데카르트가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두 개의 상이한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며, 개별 존재 -특히 인간- 역시 두 개의 분리된 실체인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두 가지가 동일한 존재의 두 측면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현대 인간학에서도 널리 인정되고 있다. p498”

 

스피노자는 사유와 연장이라는 데카르트의 개념을 받아서, 데카르트와는 정반대로 그것을 하나로 합쳐 버렸다.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실체를 바라보는, 사유와 연장이라는 두 개의 관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체를 신 혹은 자연이라고 보면 개별 존재인 인간은 양태 아닌가?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자유가 없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유의지, 결단의 자유는 없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서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거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통해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자유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때의 자유는 필연성을 긍정하는 자유,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운명애 등등이라고 스피노자가 역설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제목이 윤리학인가?

 

그런데 이런 그의 철학은 “숙명론적 달관의 성격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이런 성격이 반드시 방관적 무위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무위로 귀결되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p507” 고 한다. 그래서 노자가 생각났던 걸까..

 

 

Ⅲ. 라이프니츠 : 1646~1716

 

뉴턴과 미적분의 창시자 자리를 놓고 싸우신 분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철학자로서, 특히 들뢰즈에 의해 우리들에게 유명해진 개념은 모나드이다.

 

“그렇다면 모나드는 무엇인가? 스피노자가 말하는 무한한 하나의 실체를 우리가 무수히 많은 점처럼 존재하는 개별적 실체들로 분할한다면 우리는 이 개념이 지시하는 내용에 가까이 근접하게 된다.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나드의 문제만 배제하고 생각한다면 스피노자의 견해는 옳았다.”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모나드의 특성은 네 가지 관점에서 고찰될 수 있다. p515”

 

모나드의 네 가지 특성은 점, 힘, 영혼, 개체이다. 설명은 생략한다. 들어도 안 들은 것과 비슷하다. ;; 스피노자의 실체들이 무수히 많은 점들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빠르게 이해된다. 그런데 ‘창문이 없다’는 이 무수한 모나드들은 어떻게 조화로운 세계를 구성하는가? 라이프니츠는 간단히 신을 데리고 왔다. “신은 각각의 실체가 자신의 현존과 더불어 주어진 고유한 법칙만을 준수해도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게끔 두 실체의 속성을 정해 놓았다.”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이다. 신은 철학자들의 막다른 골목에 등장하기를 즐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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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26kr 2018-06-2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 합니다 찾아 헤메던 좋은글 퍼감니다. 진심 감사합니다
 

혹시 놓친 책이 있을까, 몇 날을 훑어보다 산 책이다. 도서정가제 기념 덤핑(?) 시즌에 -.-;

 

 

 

 처음 알라딘에서 봤을 때, 책이 너무 두꺼워 놀랐다. 조금 무서웠다. 그리고는 싼 가격에 또 놀랐다. 50% 할인이기도 했지만, 정가 자체가 책 두께에 비해 싸다. 39,900원. 나는 19,950원에 샀다.   

 

 

철학을 계통을 밟아 배워 본 적이 없어서, 철학책을 읽을 때 나는 항상 불안하다.  공자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를 경구로 새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學은 스승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동학들 사이의 토론을 포함한다. 함께 읽고 배우고 논쟁하여야 비로소 學이 된다. 그래서 혼자 읽는 책은 思에 더 가까울 것 같다. 그것은 殆, 위태롭다. 그냥 좋아서 읽는데, 기회가 되면 강유원의 아카데미 같은 곳을 찾아볼 생각이다. 

 

몇 권의 철학사를 읽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얇팍한데 지루하고, 어려운데 깊이는 없고, 체계적 지식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또 샀다. 조금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세계 철학사』는 제목으로 일단 사람의 기를 죽인다. 이래도 읽을래?  그런데 목차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르네상스 이후부터 계몽주의, 칸트, 그리고 헤겔로 이어질 19세기 철학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두툼한 분량의 칸트, 어느새 칸트가 내 손안에 들어온 듯 했다.

 

철학사든 세계사든, 나는 보통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한다. 우리의 현대를 이루는 토대가 이 시기부터 시작된 서양의 근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대는 자본주의, 합리주의, 국민국가라는 특성을 갖는다고, 강유원의 책에서 읽었다. 우리의 행동과 사고의 기준은 합리성이다. 합리성의 기준은 실용성이고, 실용성이란 한마디로 이익이 되는것, 돈이 되는 것이다. 그 외의 일은 모두 쓸데없는 짓, 비합리적인 행동이 된다. 

 

어릴 때 엄마에게 자주 듣던 말, "책 읽으면 돈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당시, 가난한 환경에서는 그랬다. 이야기책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었다. 지금 이야기책은 다양한 쓸모를 가지고 있지만, 하다못해 '서재지수'라도 올라간다, '쓸모' 라는 기준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부터 쓸모, 실용을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부터이다. 우리의 근대는 일본을 경유한 서양의 근대에 바탕한 것이다. 우리는 仁보다 資本을, 禮 보다 자유와 평등을 더 사랑한다. 조선 500년이 가르쳐 왔던 것 보다, 유럽이란 먼 땅의 혁명이 만든 사상에 더 깊이 공감하고, 그 토대 위에 삶을 바꾸어 왔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우리 사는 꼬라지를 되돌아 보기 위해, 고려와 조선 보다 먼저 서양의 근대에 눈을 돌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주 알라딘의 메일이 도착했다. 『세계 철학사』리뷰를 올려달라는, 통상적인 광고 메일인데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도착한 지 보름도 되지 않은 이 두꺼운 책을 벌써 어떻게 읽고 어떻게 리뷰를 쓰냐? 이 바보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게다가 이번 달은 소소한 일들이 많아서, 마음먹고 책상 머리에 앉거나 카페를 찾을 시간도 없었다.   

 

지난주에 겨우 읽기 시작해서 <4부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시대>를 읽었다.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어떤 점이 그랬냐고 묻는다면... 그냥 정리겸 리뷰를 쓸 생각이다. 총 7부라 적어도 7개 이상의 리뷰가 될 것 같다. 분류상으로 그렇지만 아마도 10개가 넘을 것 같고, 두세달은 족히 걸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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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1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말리 2014-12-1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고전강의 혹은 역사고전강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게시글 성격이 아니고 혼자 노트 정리하는 수준의 글이 많습니다.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세실 2014-12-0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표지랑 크기 맘에 드네요. 두께는 부담스럽지만요^^
우리 독서회 선정도서로는 다소 부담스럽겠죠?

말리 2014-12-0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그럴것 같아요. 혹시 안하셨다면 강유원의 <역사고전강의>나 <인문고전강의> 추천합니다. 지난 겨울 같은동네 지인 셋이서 했는데 다들 좋아했습니다. 한권을 한 4회 정도 나누어 읽으니 부담없이 깊이있게 이야기할만 했습니다.

수양 2014-12-1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리님
혹시 저 위에 비밀댓글
말리님이 달아주신 댓글인가요?

에고.. 제가 읽어볼 수가 없네요..ㅜ_ㅜ

말리 2014-12-13 11:36   좋아요 0 | URL
헥;; 제가 서재에 서툴러서 ;;
 

트윗을 보다가 흥미로운 링크를 발견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에 관한 글인데, 제목은

"Lewis Carroll's Photographs of Alice Liddell, the Inspiration for Alice in Wonderland" 이다.

영문이라 대충대충 읽다가, 사전을 찾아가며 다시 찬찬히 읽었다. 마침 다음주 독서회 책이 『거울나라의 앨리스』이다.

 

 

 

루이스 캐럴은 "polymath", 박학다식한 사람이다. 수학자, 논리학자, 작가, 시인에 성공회 성직자로까지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진작가로서의 캐럴이다. 당시 사진은 매우 새로운 매체였는데, 그는  “became a master of the medium, boasting a portfolio of roughly 3,000 images and his very own studio.” 

 

이 삼천 장의 사진 중 반 이상이 아이들 사진이고, 그 중 30장은 누드이거나 세미 누드 사진이다. 캐럴을  pedophile, 소아성애자로 의심하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가 아마도 이 사진들일 것이다. 펭귄 클래식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서문에는 앨리스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앨리스 자매들과 캐럴의 관계를 끊어버린 이야기가 나온다.

 

 

 

「일기가... 1863년 6월 말경 3일 동안 또 한 번 중단된다. 이 기간 동안 도지슨이 앨리스 자매들과 가깝게 지내던 관계는 급작스럽게 영원히 단절되고 만다. 이는 앨리스의 어머니, 즉 리오너 리델이 개입한 결과였다. 리델 부인은 도지슨이 앨리스에게 보낸 모든 편지도 불태웠다. 이는 도지슨의 삶에 있어 가장 커다란 아이러니 중 하나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1865년 출간되어 앨리스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일곱 살 소녀가 되고, 도지슨이 가장 유명한 아동문학 작가가 되었던 그 시기 동안, 그들의 관계는 과거의 사실로 멀어졌으며 도지슨이 학장 관사에 방문하는 일도 금지되었다. 우리는 왜 입맞춤이 멈추었는지, 또는 무엇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틀을 형성했던 이야기들과 사진과 강 여행을 끝나게 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p25

 

도지슨 (캐럴의 본명)이 앨리스에게 청혼을 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여하튼 그래서 그런지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물론이고,『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서시조차 기쁨의 바닥에는 쓸쓸함이 깊이 배여있다.

 

그런데, 링크한 글에 의하면, 아이들의 누드 사진이나 세미 누드 사진이  빅토리아 왕조 시대에는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 눈에는 명백히 호색적으로 보이는 사진들조차 당대에는 '순진무구함 그 자체'를 예술화한 것으로 받아들여 졌다.  아이들의 누드 사진이 우편엽서나 생일카드에 찍히기도 했다.

 

Some of his portraits—even those in which the model is clothed—might shock 2010 sensibilities, but by Victorian standards they were… well, rather conventional. Photographs of nude children sometimes appeared on postcards or birthday cards, and nude portraits—skillfully done—were praised as art studies […]. Victorians saw childhood as a state of grace; even nude photographs of children were considered pictures of innocence itself.

 

이런 글쓴이(글쓴이가 인용한 캐럴의 전기작가)의 옹호에도 불구하고, 한 세기 이상 계속된 캐럴의 소아성애적 취향에 대한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캐럴을 비판하는 측과 옹호하는 측의 대립은 여전히 팽팽하며 어떤 결론도 내려지지 않았다. 캐럴의 행동은 충분히 의심할만하지만 결정적 증거는 없다.

 

 

 

또한 누드뿐만 아니라 요정이나 중국인처럼 아이들을 꾸며놓고 사진을 찍는 것은 당대의 유행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문학이나 신화속 의 인물 등으로 아이들을 치장하기도 했다. 당시 캐럴 이외의 사진작가들도 캐럴과 비슷한 사진을 찍었다. 이런 사진들이 “brilliant testimonies to the taste, the sentiment, and perhaps the sexuality of mid-Victorian England.”란다.

 

어떻게 보면 저것이 19세기의 영국이 아닌가 싶다. 전 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자랑하며, 만든 '빅토리아 시대'... 저 사진들을 순진무구함 그 자체의 상징으로 보든지, 퇴폐와 향락적 성애로 보든지, 앨리스 자매의 커다란 중국 우산 뒤에는 영국 함대에 억눌린 식민지인들의 지친 얼굴이 가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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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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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회를 하고 나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도는 책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무심히 넘겼던 어떤 장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기억을 더듬어 반납해버린 책의 앞뒤를 맞춰보다, 퍼뜩 머리를 스치는 어떤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아, 그것이었을까.

 

어제는 『댈러웨이 부인』의 날이었다. ‘버지니아울프의 생애’와 셉티머스, 봉헌으로서의 파티에 대한 이야기 끝에 미스 킬먼이 나왔다. 누구에게나 비호감인, 증오와 질투로 배배 꼬인 그녀는 단지 댈러웨이 부인을 밝히는 어두운 단역에 불과한 것일까. 그런데 왜 댈러웨이 부인은 전혀 뜻하지 않은 순간에 미스 킬먼을 떠올리며 “그녀를 혐오했다. 그리고 사랑했다.” 라고 했을까.

 

사실 지난 번 리뷰를 썼을 때, 나는 미스 킬먼에 마음이 갔다. 나의 성장 환경이 그래서인지, 유독 측은했고, 댈러웨이 부인보다 더 공감이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가난 때문에 그리고 가난으로 인한 심성의 왜곡 때문에. 감추려 해도 어느새, 어두운 마음과 질투, 억눌린 분노, 때로는 격렬한 증오가 비집고 나온다. 세상의 빛 속에 드러난 그것들은 너무 혐오스러워 또 한 번 그들은 절망한다.

 

그러나 미스 킬먼의 이 어둠이 댈러웨이 부인에게는 “과격하고, 위선적이고, 사악한 여자” 의 무시무시함으로 보일 뿐이다. 미스 킬먼과 댈러웨이 부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타자이다. 작은 물건들 하나하나에 대한 댈러웨이 부인의 섬세한 심미안, 하녀들에 대한 친절한 태도 따위가 미스 킬먼에게는 단지 허영과 가식에 지나지 않는다.

 

 

“적이란, 그의 이야기를 당신이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그의 타자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모, 전두환의 의리를 안다고 해서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 적이란, 프로이트의 표현을 적용한다면 unheimlich 하다. unheimlich는 heimlich의 반대말이 아니라, (un)heimlich다. heim은 영어의 home이다. 익숙하면서도 두렵고 낯선 적, 그것은 또한 이웃이다. 한나 아렌트가 보았던 아이히만이 그랬다.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가 너무도 평범하고 성실한 얼굴을 한 우리의 이웃이었다. 아렌트는 그것에 ‘악의 평범성’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평범한 악의 얼굴이야말로 unheimlich하다.

 

「오래전 프로이트가 이미 간파한 바와 같이, 이웃이란 본래 하나의 사물이고, 충격을 안겨주는 침입자이며, 우리와 다른 생활 방식을 지니고 있어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웃은 저 나름의 사회적 관습과 의식에 따라 구체화된, 주이상스를 추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를 불안케 하는 자이고, 우리 생활방식의 균형을 깨트리는 자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p98》 」

 

 

댈러웨이 부인은 성공적인 파티의 마지막에 느닷없이 미스 킬먼을 떠올린다. 기억을 맞추어 보면, 아마도 셉티머스라는 청년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직후였을 것이다. (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고 도서관에 잠깐 들러 찾아보니 소식을 듣기 직전이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조금 생뚱맞았다. 잠깐 나왔다 사라진 미스 킬먼을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의 절정에서 떠올린다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뒤 설명도 없고, 그 유명한 <의식의 흐름>도 없이, 갑작스레 댈러웨이 부인은 미스 킬먼의 존재를 긍정한다. 어떻게 미스 킬먼은 댈러웨이 부인의 의식 위로 튀어 올랐을까?

 

겉으로 드러난 풍요로움과 평화로움의 이면에 댈러웨이 부인의 의식은 끝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영혼을 질식시키고> 그녀의 세속적인 면을 부추겨 한갓 안주인으로 만들어 버릴 <완벽한 신사들>” 중의 한 사람인 리처드 댈러웨이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영혼이 질식된” 댈러웨이 부인은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녀의 반쪽에는 영혼의 질식을 거부하며 저항하는 ‘비정상적인’ 셉티머스가 있다. (물론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지만, 버지니아 울프 자신도 언급한 것처럼 그들은 하나이다.) 댈러웨이 부인은 그녀 자체로 unheimlich 하다. 집처럼 편안하고 친숙한 댈러웨이 부인은 동시에 낯설고 두려운 셉티머스이다. 댈러웨이 부인의 심연에는 적이자 이웃인 셉티머스가 있다. 그런데 셉티머스가 자살한다. 이제 낯설고 두려운 존재로부터 벗어난 댈러웨이 부인은 완벽하게 heimlich 해졌을까? 비정상을 떨쳐내고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을까? 그런데 영혼의 질식을 거부하는 것이 비정상이고, 영혼이 질식된 채 사는 것이 정상인가? ‘영혼을 질식’ 시키지 않고는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것인가?

 

셉티머스가 창가에서 떨어질 즈음, 댈러웨이 부인은 미스 킬먼을 떠올린다. 무시무시한고 사악한 적, 미스 킬먼을, 그러나 그녀에게 반드시 필요한 미스 킬먼을.

 

「정말이지 수상이 와주다니 친절하기도 하지. 클라리사는 생각했다. 저기 샐리, 저기 피터가 있고 리처드는 아주 흡족한 얼굴이고, 모든 사람들이 아마도 조금은 부러운 눈길로 지켜보는 가운데 수상과 함께 방을 지나면서, 그녀는 순간의 도취를, 심장의 신경들이 부풀어 올라 파르르 떠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 그래,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느낀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 느낌을 사랑했고 그 온몸이 저리는 짜릿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모든 외양과 승리는(가령 피터는 그녀가 아주 멋지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공허한 것이었다. 그것들은 팔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지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전처럼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수상이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토시를 낀 어린 소녀를 그린 조슈아 경의 그림이 든 금빛 액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불현듯 킬먼이 생각났다. 그녀의 적인 킬먼이. 그것은 마음에 와 닿았다. 그것은 현실이었다. 아, 얼마나 그녀를 혐오하는지 - 과격하고, 위선적이고, 사악한 여자, 무서운 힘으로 엘리자베스를 유혹한 여자.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와 더럽히는 여자(리처드가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그녀를 혐오했다. 그리고 사랑했다. 필요한 것은 적이지 친구가 아니었다. p227」

 

unheimlich한 셉티머스가 죽는다는 것은 또한 댈러웨이 부인의 영혼이 일상의 공허에 투항하여 완전히 질식한다는 뜻은 아닐까? 셉티머스가 죽어갈 즈음, 그를 대신할 또 하나의 unheimlich인 미스 킬먼이 떠올랐던 것은, 그러므로 너무나 당연한 무의식의 작용이 아닐까? 왜냐하면 댈러웨이 부인은 영혼의 질식을 거부했던 것이다. 안락함을 위해 그녀 스스로 질식시켰던 영혼이지만, 그것 없이 삶은 외양과 공허일 뿐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리처드 댈러웨이도 피터 월시도 수상도 아닌 미스 킬먼이다.

 

미스 킬먼은 댈러웨이 부인을 불안하게 하고, 안온한 생활 방식을 깨트리는 적이다. 그러나 그 불안함과 두려움이야말로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충격이다. 댈러웨이 부인이 셉티머스의 죽음을 기뻐하며, 소소한 일상을 그토록 소중히 느낄 수 있었던 것도 그녀 곁에 미스 킬먼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므로 댈러웨이 부인은 미스 킬먼을 혐오하면서도 사랑해야 했고, 그 무엇보다 필요로 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필요한 것은 적이지 친구가 아니었다.” 투명하고 길들여진 이웃이 아니라, 낯설고 섬뜩한 이웃 속에 우리 삶은 생명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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