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제와 관련된 토지제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특히 기출 문제를 보면, 강의나 교재를 달달 외운다고 다 풀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듭니다. 일단은 무엇보다 원칙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교재 뒷부분의 <주제사>를 보면 흐름을 이해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p262>

 

 

1. 기본은 수조권입니다.

 

직역의 대가로 녹봉과 함께 관리에게 토지에 대한 수조권, 즉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는 것이 (물론 우리에게) 이 복잡한 문제의 원인입니다. 깨끗하게 녹봉만 줬다면 이게 무슨 문제겠습니까? 다행히 (?) 조선 명종 때에 와서 녹봉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됩니다. 수조권이 사라지죠. 당연히 전주전객제도 소멸됩니다. (물론 관리의 수조권을 말합니다. 토지에 대한 국가의 조세는 당연히 계속되겠지요.)

 

 

 

 

여하튼 이때까지 국가가 관리에게 직역의 대가로 지급하는 것은 녹봉과 수조권입니다. 그런데 고려 원종 때에 와서는 국가 창고가 텅 비어 녹봉을 주지 못하고 오로지 토지 즉 수조권만 주기도 합니다. 경기지역의 땅에 한해 수조권만을 주는 이 제도를 녹과전이라고 합니다. 녹과전은 고려 전시과와 조선 과전법의 중간 단계로 보시면 됩니다.  

 

 

2. 수조권은 조세에만 해당할까요?

 

기본적으로 수권은 세에 대한 권리인 것 같습니다.

수취제도는 조세, 역, 공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 당나라의 조(租)용(庸)조(調)제도와 유사하다고 합니다. 세종실록에 "전(田)이 있으면 조(租)를, 신(身)이 있으면 역(役)을 징수하고, 호(戶)단위로는 공물을 징수하니 이것이 옛 조용조의 법에 부합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답니다. 조세-조(租)-전(田), 역-용(庸)-신(身), 공물-조(調)-호(戶)입니다. 조용조라는 말을 알아야 합니다. 시험 문제에 관료전이 조용조를 거두는 것 운운 이런 지문이 나오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수조권은 고려의 전시과나 조선의 과전법 모두 조세에 대한, 즉 토지에 대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통일신라도 그럴까요? 녹읍과 식읍은 조세, 역, 공물 모두를 취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위의 표를 자세히 보면,  녹읍에 수조권, 공납, 역이라고 표기함으로써, 수조권은 조세에만 해당하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습니다.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p262> 

 

신문왕 때 와서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했습니다. 관료전은 조세와 공물에 대한 권리는 가지되 역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것도 경덕왕 때 금방 부활합니다. 신문왕 때의 강력한 왕권이 그만큼 빨리 약화되었다는 뜻입니다. 신문왕경덕왕 사이의 왕인 성덕왕은 정전을 농민에게 지급하여 토지에 대한 국가 통제력을 높였다는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3. 소작지인 경우 조세는 누가 낼까요? 전객입니다.

 

수조권을 기준으로 한 토지 제도는 전주전객제입니다. 전주는 수조권자 즉 국가가 직역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관리입니다. 전객은 토지 소유자입니다. 자작농인 경우 당연히 경작자 자신이 조세를 냅니다. 소작농의 경우는 어떨까요? 소작지의 주인은 소유자인 전객입니다. 그러므로 소작농은 조세를 내지 않습니다. 대신 소유자 즉 지주에게 지대를 냅니다. 보통 병작반수제라고 해서 지주와 소작인이 반반씩 가져갑니다. 그래서 지대가 1/2이 됩니다. 아래 표를 자세히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소작농은 관리(여기서는 땅 주인)에게 지대를 내고 공물과 역만 국가에 직접 냅니다. 땅주인인 관리 즉 전객은 국가에 1/10 조세를 내고 공물을 바칩니다. 관리이므로 역에서는 제외됩니다.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p262>

 

 

4. 공음전은 세습됩니다. 구분전과 한인전은요?

 

원칙적으로 수조권은 세습불가입니다. 양반전은 세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귀족 사회의 특징인 5품 이상 관리에게 지급되던 공음전은 세습됩니다. 5품 이상의 관리가 죽어도 가족들은 먹고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6품 이하 하급 관리가 퇴직하거나 죽으면 그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요? 하급 관리의 가족을 위한 제도가 구분전과 한인전입니다. 구분전은 하급관리의 유가족에게, 한인전은 직역이 없는 하급관리의 자식에게 지급하는 수조권입니다. 세습되지는 않습니다. 군인전과 외역전은 수조권이 아니라 직역 자체가 세습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수조권도 세습되는 모양을 띱니다. 아래 표는 세습 토지를 표기해 놓고 있습니다.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p262>

   

 

<정재준, 통합한국사>

 

5. 고려 말 공양왕 때 시행된 과전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전법은 고려 시대에 시행되었지만 사실상은 조선의 수취제도입니다.

고려의 전시과와 마찬가지로 몇 번의 변화를 겪습니다. 미리 슬쩍 훑어볼까요? 아찔하군요. 그래도 전주전객제를 기반으로 한 과전법(직전법)은 결국 명종 때에 전격 폐지됩니다. 수조권이 폐지되기 때문입니다. 명종부터는 관리에게 녹봉만 지급하는 녹봉제가 전면 시행됩니다. 골치 아픈 수조권도 조선 전기까지만 알면 되니, 그나마 다행이겠죠?^^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p264 : 요긴 오타가 있네요;; 찾아보셔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강 고려의 대외 관계

 

 

강의에 박스 칸이 많습니다. 내용이 많다는 얘기죠.;;

고려는 약 500년 동안 (918~1392),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우리 민족 최대의 위기도 있었지요.

몽골에 한방에 먹혔다면 지금쯤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고구려가 민족의 방파제였다면,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 역시 그에 못지않게 민족의 방패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영광의 혹은 치욕의 역사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1. 거란의 침입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19강 강의> 

 

1차 침입은 성종(993),

2차 침입은 목종이 강조의 변으로 시해당한 직후인 현종1년 (1010),

3차 침입은 현종9년 (1018)에 일어납니다.

 

그런데 거란은 왜 고려를 쳐들어 왔을까요? 영토를 넓히기 위해?

중국의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완성했다고 하잖아요. 이 만리장성은 그 당시부터 (기원전 3세기) 북방의 유목민족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조금씩 쌓았다고 하니 그때부터 중국의 농경민족은 유목민족에게 시달렸던 것입니다. 거란도 그런 유목민족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유목민족들은 유목이라는 특성상 쳐들어오면 식량 따위를 빼앗고 금방 초원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요 거란족은 야심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만리장성 이남의 기름진 옥토에서 눌러 살기로 한 거지요. 요나라를 세운 거란족은 발해도 무너뜨리고 송나라를 공격합니다. 그러자니 후방의 고려가 켕깁니다. 송나라와 친한 고려가 뒤통수를 치면 곤란한 거지요. 거란의 목적은 고려 땅보다는 고려와 화친을 맺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게 말로 하지, 왜 군대를 끌고 왔냐고요? 소위 ‘눈앞의 현실’ 즉 힘을 보여주어야 화친이든 뭐든 말을 잘 듣지 않겠습니까?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p200>

 

1차 침입에서 거란의 소손녕은 신라를 계승한 고려가 왜 고구려 땅을 갖고 있느냐 우리 땅이니 내놔라 어쩌고 하면서 으름장을 놓는데, 요걸 간파한 서희가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했다, 너네랑 놀려고 해도 여진이 방해한다, 여진이 차지한 강동6주를 우리한테 주면 송과는 안 놀고 너네랑만 친하게 지내겠다, 요렇게 세치 혀로 나불나불(죄송함다;;), 거란을 물리치고 당당히 압록강 동쪽의 6주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고려는 거란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송과 몰래 교류를 합니다. 거란은 당연히 약이 오르겠지요. 그런데 마침 이 때 강조의 변이 터집니다. 혹시 <천추태후>라는 드라마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전 안 봤지만 채시라가 천추태후 역을 한 것은 기억합니다. 이 천추태후가 목종의 엄마죠. 김치양이라는 남자와 얼레리 꼴레리 하고 막 하여튼 그랬다지요. 여하튼 이 목종이 강조에 의해 폐위되면서 천추태후가 실각하고 현종이 즉위한 사건이 강조의 변입니다. 거란은 강조의 변을 구실 삼아 2차 침입을 합니다. 이때 개경까지 함락되어 현종이 피난을 가고 난리가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아마 개경에 나성을 쌓게 되는 것이겠지요. 하여튼 앞으로 현종이 친조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강화를 맺습니다. 하지만 거란이 퇴각하는 길에 양규가 활약하여 큰 타격을 입힙니다. 양규는 이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하지만 고려가 어떤 국가입니까? 북방 유목민에게 그렇게 호락호락 친조를 할 민족이 아닙니다. 현종은 개경에 돌아온 뒤 거란에게 쌩깝니다. 거란은 또 당한셈이지요. 다시 공격. 이것이 3차침입니다. 여기서 강감찬이 귀주에서 대활약합니다. 귀주대첩으로 거란을 막아냅니다.

 

3차례에 걸친 거란과의 싸움으로 송-요-고려의 세력 균형이 유지됩니다. 고려를 굴복시키지 못한 거란은 송을 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원한 동지도 없고 적도 없는 것처럼 고려와 요는 사이좋게 지내기로 했습니다. 강동6주도 그대로 고려가 차지하고 친조 같은 굴욕도 없던 일로 하고요. 힘의 균등에 의한 평화가 찾아온 것이지요.

 

거란의 침입을 받은 고려는 물론 앗 뜨거워했겠지요. 그래서 개경에 나성을 쌓고, 압록강에서 도련포까지 '천리장성‘을 쌓습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당 침입에 대비해 쌓은 천리장성과는 다른 것이지요. 이때 초조대장경을 새깁니다. 불교의 힘으로 거란을 물리치겠다는 것이지요. 몽골 침입 때 초조대장경이 불타고 다시 판각한 대장경이 바로 팔만대장경입니다.

 

움... 너무 길었군요.

 

 

2. 여진족의 침입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19강 강의>

 

여진족은 전에 말갈족으로 불렸고 나중에 만주족으로 이름을 바꾸는 유목민족입니다. 고대에 고구려와 특히 발해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발해는 지배민족이 고구려인이고 피지배인의 대다수가 말갈인 즉 여진족이었습니다. 그러던 여진이 이제 중국 본토를 넘보게 된 것이지요. 여진은 금나라를 세우고(1115), 송과 손을 잡고 거란족의 요나라를 멸망시킵니다. 그런 다음 송을 양쯔강 쪽으로 밀어내고 화북지역까지 차지합니다. 이제 금과 남송 그리고 고려라는 새로운 삼각체제가 이루어집니다.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p206>

 

윤관이 여진을 무찌르고 동북9성을 차지한 것은 여진이 세력을 한참 키우고 있

을 때입니다. 1107년(예종)입니다. 처음에 한판 붙었다가 깨지고 난 뒤 윤관이 별무반을 만듭니다. 다시 다그닥 다그닥 말 타고 가서 샤사삭 무찌르고 동북 9성을 세웁니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p139>   

 

그런데 이때 고려사회의 꼬라지는 묘~합니다. 호족의 진취적 기상은 쏙 빠지고 문벌귀족의 향락적 풍토가 판을 칩니다. 당연히 전쟁을 싫어하고, 영토가 넓어지는 것도 별로 탐탁치 않습니다. 여진족이 끊임없이 탈환을 노릴테니 관리가 더 힘들다고 판단합니다. 윤관과 백성들이 피로 얻은 동북 9성을 문벌 귀족들은 조공을 받는다는 조건 아래 여진에게 홀라당 넘겨버립니다. 여진은 이 때 돌려받은 동북9성을 거점으로 금나라를 세워 다시 고려를 압박합니다. 조공은커녕 거꾸로 고려에게 사대를 요구하지요. 문벌귀족들은 이것도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이자겸, 김부식 등 개경파의 이런 사대사상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촉발하게 됩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금은 동북9성을 돌려받을 때 한 약속을 지켜 송을 강남으로 몰아내면서도 고려는 침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때 의주를 고려에 양도하기도 합니다. 금과의 화친이 전혀 무익하지만은 않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3. 몽골의 침입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19강 강의>

 

드디어 몽골이 고려로 쳐들어왔습니다. 13C 유라시아 제국을 일거에 통일한 그 몽골제국입니다. 1231년, 고종 18년 (고종은 조선이나 고려나 괴롭습니다.;;) 몽골 장수 살리타가 군대를 이끌고 들이닥칩니다. 이때 고려는 최우의 무신정권기입니다. 몽골은 7차례(실제로는 11차례) 침입을 하지만, 고려는 40년간 끈질기게 이 무시무시한 몽골제국을 막아냅니다. 지배층은 썩었어도 백성들은 가히 고구려의 후예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끝내 항복하여 원의 간섭을 받습니다만, 고려라는 이름만은, 즉 국가만은 잃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p210~1> 

 

 특히 몽골장수 살리타를 단 한발의 화살로 꿰어 죽인 처인성(용인) 전투는 승려 장군인 김윤후와 처인성의 부곡민이 이루어낸 쾌거로 대몽항쟁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충주성을 끝까지 사수한 노비들의 중추성 전투에도 이 김윤후가 노비 문서를 불태우며 사기를 북돋우었다고 합니다.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 항쟁도 있지요. 이런 항쟁들이 계속되어 고려는 어떤 민족도 이토록 끈질기게 저항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몽골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이에 반해 최우 무신정권과 지배층은 강화도에서도 잔치를 열고 호화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p162>   

 

몽골 전쟁의 와중에 선덕여왕 때 지은 황룡사 9층 목탑과 거란 침입 때 판각한 초조대장경이 불탔습니다. 둘 모두 불교로 환란을 이겨내려 했던 호국불교의 상징인데요. 고려인들은 다시 팔만대장경을 조판하여 불교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려하였습니다. 가히 불교의 나라답습니다.

 

4. 원 간섭기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19강 강의>    

 

유라시아를 지배한 몽골은 칭기즈칸 사후에 후손들이 정복지를 분할 통치합니다. 쿠빌라이는 몽골의 발흥지였던 땅과 중국을 통합하여 원나라를 세웁니다. 원나라는 고려의 독립을 인정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엄청난 간섭을 합니다. 이런 원나라에 찰싹 달라붙어 출세가도를 달리던 고려의 지배층이 권문세족입니다. 권문세족은 과거의 문벌귀족부터 전쟁을 통해 부상한 천민계층까지 다양한 세력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일단 원 간섭의 치명타는 영토축소와 다루가치 파견이겠지요. 다루가치는 일제 시대의 총독과 비슷하다고 배웠고요. 원은 화주에 쌍성총관부, 서경에 동녕부, 탐라에 탐라총관부를 두어 일대의 영토를 원의 직접적 지배 아래 둡니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p162>  

 

또 독특한 기관으로 정동행성이 있습니다.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고려에 설치한 기관입니다. 이 정동행성의 부서 중 특히 이문소가 골칫거리였습니다. 이문소는 대원관계 범죄를 다스리는 기구인데, 부원세력을 규합하고 그 이권을 대변하는 기구로 변질되었습니다. 백성들의 땅을 함부로 빼앗고 행패를 부려도 고려의 지방관은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일종의 치외법권적 권리를 누렸다는 거죠. 공민왕이 개혁을 하면서 가장 먼저 폐지한 것이 바로 이문소입니다.

 

그러나 결국 원나라도 기울기 시작합니다. 중국에서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주원장이 부상하면서 곧 원명 교체기가 시작됩니다. 이때를 틈타 공민왕이 개혁의 칼날을 뽑습니다. 공민왕은 정동행성이문소를 폐지하고, 쌍성총관부를 공격하고, 요동을 칩니다. 원의 간섭을 모두 되돌려 놓습니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p167>    

 

특히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합니다. 권문세족들이 불법으로 침탈한 전田과 민民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둡니다. 땅은 원 주인에게, 노비는 양인으로 회복하여 국가의 기틀을 다집니다. 광종 때 호족세력을 약화시켰던 노비안검법을 상기하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역사는 똑바로 나아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돈은 권력에 탐닉하고 공민왕은 미쳐갔습니다.(?) 환관과 자제위에 의해 공민왕이 살해당하고 고려말의 마지막 개혁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5.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최태성의 고급한국사 19강 강의> 

 

고려의 지방행정조직이 5도 양계입니다. 북계와 동계, 이 양계의 목적이 북방 민족의 침입과 왜구의 침입을 막는 것입니다. 거란침입을 겪은 현종 때에 실시된 것입니다만, 고려 말에도 이 양쪽에서 정신없이 이민족의 침략이 계속됩니다. 이때 신흥무인 세력으로 부상한 대표자가 최영과 이성계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여서 어렵지는 않습니다. 드라마 <정도전>에서도 상세히 다루었고,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란 책도 아주 훌륭합니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p177>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을 실행한 것은 명의 주원장 때문입니다. 공민왕이 회복한 철령 이북의 땅을 다시 내놓으라며 철령위를 설치한 것입니다. 고려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국권침탈입니다. 그런데 이 철령위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쌍성총관부 자리라는 말도 있고 요동지역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성계는 요동정벌을 극구 반대하다 결국 위화도에서 회군하고 맙니다. 압록강을 다시 건넌 것이지만, 루비콘강을 건넌 것과 마찬가지죠. 위화도 회군으로 정치적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혁명파 신진사대부는 곧이어 과전법을 실시함으로써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조선 건국의 기초 작업을 마칩니다. 물론 조선건국은 이성계의 신흥무인세력과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신진사대부의 합작품입니다.

 

우왕~ 엄청 길어졌네요. 용서하세요 ~

 

 

* 이 글은 한국사 모임 카페에 올리려고 했으나 글이 용량을 초과해서 올라갈 수 없다고 하여

부득이 블로그에 올리니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벌써 마지막 주목신간을 써달라는 문자가 왔다.

벌써이기도 하고, 아직이기도 하다.

책읽는 것을 겁내 본적은 없는데,

신간평가단 책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인문분야로 뭉뜽그려진 책의 영역이 굉장히 넓어서

평가단 개개인의 취향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회를 더할수록 책이 두꺼워지기까지 한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5월의 책은 900쪽인 것도 있다.

 

좋은 신간을 찾아내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책이름과 저자, 기껏해야 약간의 책소개만으로 선택한 책은

기대를 배반하기가 일쑤이다. 

그래도 마지막 주목신간은 별 고민없이 골랐다.

분량도 적당하고,

모두 어떤 형태로든 신뢰를 갖고 있는 책이다. 

 

 

동녘 출판사의 처음읽는 철학 시리즈 네번째 책이다. 지은이(개인이 아니라 단체다)가 다르긴 하지만, 프랑스, 독일, 영미 현대 철학에 이은 우리나라의 현대철학이다.  철학 아카데미의 앞선 세권의 책이 모두 괜찮아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이번 책도 그만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서양철학을 즐겨 읽다보니 정작 우리나라에 독자적인 현대철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떤 내용일지 매우 궁금하다.

 

"최제우의 ‘동학’에서 함석헌의 ‘씨ㅇ·ㄹ 철학’까지
우리가 잘 몰랐던 한국 현대 철학자들의 철학과 사상! "
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후마니타스의 두번째 살레츨 책이다.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읽지는 않았지만, 레나타 살레츨이 지젝과 함께 슬로베니아 학파라는 것은 알고 있다. 간혹 지젝이 책에서 언급하기도 했고, 지젝의 전처이기도 하다. 정신분석학에서 '불안'은 매우 핵심적인 감정이어서, 제목 자체로도 충분히 흥미를 일으킨다. 굵은 글씨로 된 책 소개를 가져오자면 이렇다.

 

"불안한 일상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탐구
현대자본주의는 어떻게 우리의 불안에 기생하는가? "

 

 

 

5.18을 철학적으로 탐구한 김상봉의 책이다. 소설로만 반복했던 5.18을 철학으로 접근할 수 있다니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왜 5.18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없었겠냐만, 한번도 찾아 읽어보려 하지 않았다. 5.18은 그저 가슴과 눈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었던가 보다. 제목이 핏빛 바탕색 보다 더 강렬하게 눈을 찌른다. 철학의 '헌정' 

 

 

 

 

 

 

 

여자라면 이 제목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트윗에서 몇번 언급되는 것을 보았는데, 제목만큼 흥미로운 내용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골라본다. 글 많이 쓰는 인기 작가의 <산문집> 이라니, 그것도 2014년 원작이라니, 페미니즘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읽힐 것 같다. 남자들이 뭘 자꾸 가르치려 드는 것은 사실 말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관습 자체를 통해서이다. 아버지 말씀하실 때 대꾸하면 큰일나는 교육을 받은 중장년 이상의 세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6개월 동안 신간평가단을 이끌어 온 알라딘 담당자님과 인문분야를 책임지신 파트장님께 미리 감사를 전한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최태성의 한국사 강의>를 제일로 꼽더군요. 저도 명성에 혹해 듣기 시작했는데... 재미있습니다^^. 특히 도표로 구조화(도식화라 해야 할까요?) 하는 정리방법이 마음에 꼭 듭니다. 보통 인문학 전공자들은 굉장히 싫어하던데, 저는 이과출신이라 도표나 그래프 엄청 좋아합니다. 딱딱 타타탁 정리가 되어야 머리에 쏘옥 들어오는 느낌이 듭니다.

 

이번 주부터 한국사 <공부모임>을 합니다. 뭐 일종의 스타디인데, 58년 개띠부터 86년 호랑이띠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모임입니다.^^ 일단 가시적 목표는 ‘한국사 능력 검증시험’입니다. 각자 이유는 다르겠지만, 우리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이니 나쁘지는 않겠지요.

 

다음 주는 삼국시대가 주요 내용인데, 공부를 하다가 저도 그림(?) 좀 그렸습니다. 먼저 삼국의 왕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았습니다. 사실 남이 해놓은 것도 도움이 되지만 직접 그려보는 것이 제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딱딱한 도표 보다는  이런 성장곡선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그런데 잘보면 연대 간격이 자의적입니다. 따라서 성장곡선의 모양이 엄정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설명할 것이, 따라서 외울 것이 많은 시기가 삼국마다 다 달라서 이렇게 그려 놓으신 것이겠죠.  어쨌든 세 나라를 겹쳐 놓으려면 간격이 각기 달라 불가능합니다. 세 곡선을 한꺼번에 놓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직접 그려보았습니다. 물론 개발새발 삐뚤빼뚤입니다. 그림판으로 그렸는데 손이 달달 떨려서 ;;

 

 

알다시피 4C는 백제, 5C는 고구려, 6C는 신라가 잘 나가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물고 물리는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4C에는 백제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죽이고, 5C에는 고구려의 장수왕이 복수를^^;; 하여 백제 개로왕이 죽습니다. 6C는 신라의 진흥왕이 백제 성왕의 뒤통수를 쳐서 죽입니다. 나제동맹을 배신하고 함께 되찾은 한강유역을 신라가 낼름 집어삼킨 것입니다. 그 증표가 북한산 비봉의 순수비죠. 물론 북한산에 있는 것은 지표석이고, 진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비봉 아래를 여러번 둘러 갔는데, 정작 비봉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한번은 올라가다가 내려왔습니다. 엄청 험해서 잘못하다가는 떨어질 것 같아서 ㅠ.ㅠ.... 어쨌든 비봉이라는 이름 자체가 순수비에서 왔겠지요?

 

신라의 왕이름은 아직 외우지 못했지만, 고구려와 백제 왕의 이름을 외우고 나니, 저 어지러운 도표의 갖가지 사건들이 얼추 외워지기는 합니다.

 

 

복습삼아(?), 조금 더 잘 보여서 강의 교재의 삼국 성장 곡선도 올려 놓습니다. 빈칸도 채워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혐오와 수치심]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다 읽었다. 아마 다 읽지 못하고 리뷰를 썼다면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신간평가단의 리뷰는 내가 자원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곧 염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사 너스바움이 쓴 『혐오와 수치심』의 부제는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이다. 혐오뿐만 아니라 수치심까지도 부정적인 감정으로 분류하고 있다. 부끄러워해야 할 때 마땅히 부끄러워하는 것이 인간다움이다. 그런데 왜 혐오와 수치심을 인간성의 적이라고 할까?

 

제목이 주는 인문학적 인상과는 달리 이 책은 철저히 법률학적이다. 수치심이 때때로 인간성을 지켜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법적용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혐오는 말할 것도 없다. 본문만 600쪽이 넘는 책이, 그것도 법률 용어와 법적 엄격함이 가득한 이 책이, 술술 읽혔다는 것이 읽고 나서도 뜻밖이다. 지난달 신간평가단의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보다도 심지어는 이번 달의 『음식의 언어』 보다도 더 잘 읽혔다. 단지 개인적 취향 때문일까?

 

혐오와 수치심이 법적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감정이 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너스바움은 분노와 두려움 같은 감정은 법집행의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있으며, 피고인에 대한 동정심 또한 배심원의 정당한 권리라고 말한다. 이런 감정들은 단순한 직관이 아니라 이미 사고와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감정은 개인적 삶과 개인이 구성하는 사회적 삶 모두에서 쉽사리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두 감정은 지배적인 집단이 다른 집단을 예속시키고 낙인찍는 사회적 행위 양식과 연결된다. 혐오의 경우, 동물성과 유한성에 대한 행위자의 두려움과 연관된 속성은 힘이 약한 집단을 대상화해서 투영하며, 이들 집단은 지배적인 집단이 자신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는 수단이 된다. 예속된 집단과 그 구성원들의 몸은 혐오스럽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예속된 집단의 구성원들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경험한다. 수치심의 경우, 무력감과 통제의 결여가 불러일으키는 보다 일반적인 불안은 완전무결함에 대한 추구로 이어진다. 지배집단은 자신들이 지닌 안정적인 통제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위협한다고 여기는 하부 집단에 낙인을 안겨 줌으로써 통제하고 있다는 겉모습을 얻게 된다. 하부 집단은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키는 사회적 불안의 초점이 되어서 낙인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단순히 ‘정상’ 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낙인을 받을 수도 있다. 지배 집단은 ‘정상’ 이라는 편안함을 안겨 주는 허구를 통해 더욱더 효과적으로 〔자신이 지닌 불안을〕 숨길 수 있다. p603」

 

혐오와 수치의 역사적 상징은 물론 유대인이다. 너스바움뿐만 아니라 많은 철학자들이 (나는 지젝을 통해 처음 접했지만), 유대인은 특히 나치 아래의 유대인은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독일인들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이 투여된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그들 자신의 욕망이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적 형상이다. 그 결과 가치판단이 전도된다. 유대인이 이러저러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유죄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의 행위는 모두 이러저러한 범죄가 된다. 우리 시대에 유대인의 역할은 제3세계 이주민, 이슬람교도들이 맡고 있다. 물론 뉴스를 보면 미국은 여전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그리고 우리나라는 SNS의 여론상 호남인들이 그 저주받을 올가미에 걸려있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그 책임을 전가하고 두려움을 가라앉힐 수 있는 희생양이 만들어지기 쉽다. 저들을 싹 도려내기만 하면 윤택한 삶이 가능할 것 같은 환상이 사회를 지배하고, 일본의 재특회나 우리나라의 일베가 활개를 친다.

 

너스바움은 이런 거시적 통찰을 지극히 현실적인 법적용에서 짚어낸다. 미국의 법적 논쟁에 등장하는 것은 물론 유대인이 아니라 동성애자, 장애인, 유색인종, 매춘부 등이다. 애팔레치아 숲에 숨어사는 유랑자가 레즈비언 커플을 목격하고 총을 쏘아서 한명은 사망, 한명은 중상을 입은 일급 살인 사건에서 피고는, 주체할 수 없는 혐오와 불쾌감에 휩싸여 저지른 범죄이므로 과실치사로 죄를 경감해 줄 것을 요청했다. 판사는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미국의 어떤 법정에서는 혐오를 근거로 죄를 경감해주는 판결이 내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동성애자, 인종적 소수자, 여성, 유대인에 대한 혐오는 원초적인 혐오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매개된 혐오이다. 사회적 혐오를 법적으로 인정한다면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사실은 지금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난민 공습이나 종교 갈등으로 인한 대량 학살은 국가적•사회적•법적으로 인정된 혐오가 불러일으키는 참극이다. 물론 미국의 백인 경찰관들이 유색인종 범죄 혐의자를 무차별 사살하는 일도 되풀이 된다.

 

수치심은 나르시시즘에 기반 한다는 흥미로운 분석도 있다. 플라톤의 《향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수치심을 자신이 전혀 전지전능하지 않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 p335” 이라고 했다. 완전했던 인간이 우주를 지배하기 위해 신들을 공격하자 제우스가 인간의 몸을 변형시켜 “약해지게” 만들었다. 인간 몸의 형태가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표식이다. 그 중에서 배꼽은 “오래 전에 겪은 일에 대한 기억”을 표상한다.

 

“배꼽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은 우리가 영양공급과 편안함의 원천에서 떨어져 나와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삶을 시작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p335”

 

아이는 탯줄을 잘리고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부터, 완전체에서 불완전체로, 전지전능함에서 무력함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주는 원초적 수치심은 완전한 인간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애착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수치심과 나르시시즘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자기가 외롭고 분리된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경험하면, 그만큼 더 과장되게 자신의 이상과 하나 된 완벽한 존재가 되길 추구하는 것이다. p355”

 

수치의 대상은 인간에게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상기하게 만든다. 우리의 나르시시즘을 방해하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와 같은 ‘정상인’ 이 아니라 ‘비정상인’이나 ‘하위집단’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수치심에 대한 형벌은 특정 행위가 아니라 인간 자체를 겨냥하게 된다. 수치심 형벌은 “당신은 결함을 지닌 사람입니다.” 고 낙인찍는다. 역사적으로도 수치심 형벌은 그 사람이 지닌 정체성을 대상으로 했다. 주홍 글씨, 자자와 같은 형벌은 일생동안 지울 수 없는 낙인이었다.

 

일탈자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면서 스스로를 이들보다 우위에 있는 ‘정상인’으로 내세우는 것은 사회구성원을 서열화하는 작용을 한다. ‘수치심 주기’는 법의 영역이 아니라 언론이나 여론의 영역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리디언, 개상도뿐 아니라 삼포세대, 칠포세대 같은 자학적 낙인까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서열화를 촉진한다. 따라서 너스바움은 법이 수치심에 관여하는 것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는 자유주의 사회가 ‘법이라는 공적인 체제를 통해’ 그러한 특정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분명 적절하지 못한 면이 있다. 국가가 수치심을 주는 행위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을 낙인찍을 것이고, 범죄자들은 그러한 낙인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가 이처럼 모욕을 주는 행위에 참여하는 것은 자유주의 사회가 기초하고 있는 평등과 존엄이라는 관념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p422」

 

물론 세부적인 사항에서 너스바움의 원칙에 반발하고 싶은 충동도 인다. 가령 아동성범죄자 명단 공개 같은 것들은 분명 수치심을 주는 처벌이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수치심을 줄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그런 놈들까지 보호해야 되나 싶기도 하다. 성추행으로 징계를 받은 교수가 버젓이 학교를 옮겨 선생질을 하는 이 나라에서는 인간 자체를 매장해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법은 법이다. 법이 원칙을 거스르면 먼저 무너지는 것은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핵심 가치이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지는 말라고 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