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었다면  <크리톤>과 <파이돈>이 궁금하게 마련이다.  사형 확정 이후 독배를 마시기까지 소크라테스가 무엇을 했길래 플라톤은 두 편이나 되는 대화편을 쓴 것일까?



아주 짧기도 하거니와 순서상으로도 먼저 읽어야 할 <크리톤>에 대해 정리해 둔다.  고전 스타디에서도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끝나면 읽기로 계획되어 있다.


나는 '현대 지성' 출판본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희랍어 완역본인데,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향연>이 함께 수록되어 있고, 책값은 싼 편이기 때문이다.  박종현 번역을 사지 않은 것이 좀 아쉽기는 하다.  소위  '소크라테스 최후의 날들'이라는 네 편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조금 더 비싸더라도 선택했을 것이다. 박종현 선생은 플라톤 전공자이고, 대화편을 거의 대부분 번역하고 계신다. 




번역본에 대한  '리브레 위키'의 깔끔한 도표가 있다. 


플라톤 - 리브레 위키 (librewiki.net)




<크리톤>의 내용은 간단하다.  소크라테스의 사형 집행은 아테나이의 연례 행사 때문에 연기되었다. 델로스로 태양신 아폴론에게 제물을 바치러 간 사절단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신성한 행사에 부정이 탈까봐 이 기간에는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절친한 친구이다.  델로스로 갔던 배가 돌아 온다는 소식을 들은 크리톤이 애가 타서 감옥으로 달려 온다.  소크라테스를 설득하여 탈옥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늘 하던 대로 탈옥이 올바른 행위인지 아닌지를 먼저 검토한 후에 그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리톤은 친구의 논박을 이기지 못하고 탈옥시키기를 포기하게 된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를 설득하기 위한 전략으로,  소크라테스가 그대로 독배를 마시게 되면 살아 있는 친구들이 시민들로부터 욕을 먹게 될 것이라고 압박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돈 때문에 친구를 버렸다고 자신을 비난할 것이라는 말이다.  당시 아테나이에는 사형 집행을 모면할 수 있는 편법들이 있었고,  이것들은 거의 돈으로 해결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기에 소크라테스의 핵심적인 사상이 등장한다.  다수가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강유원 선생의 강독에서도 아테나이 민주정의 타락상을 대중 독재로 설명했다. 민주정은 '어떤 사람, 어떤 집단의 의견이 다수의 것으로 확인되면 국가 정책으로 채택'하는 체제인데, 이때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올바르지는 않다는 것이 민주정의 아킬레스건이다. 


에우리피데스의 <오레스테스>에는 당대 소피스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있다. "그 자는 군중들의 갈채와 자신의 어리석고 방종한 혀에 의존했는데 청중에게 재앙을 안겨 줄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었어요." 


다수가 옳다고 믿도록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아테나이 민주정을 유린하고 있었고, 그 최대의 증거가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우게 만든 '오래된 소문' 즉 비방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다수의 견해를 주장의 근거로 들고 나오는 크리톤에 대해 단호히 반박하며 중요한 것은 현명한 사람들의 올바른 의견이라고 말한다. 



다수에 대한 비판이 끝나자, 소크라테스는 오로지 정의의 관점에서 탈옥에 대해 논박해 보자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탈옥이 법과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행위임을 밝힌다. 







소크라테스는 그러려고 했으면 얼마든지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재판정에 나가지 않고 돈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고, 재판정에서 배심원들에게 읍소해서 동정에 호소할 수도 있었고,  대안 형량으로 추방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 소크라테스는 재판을 받아 들였고, 재판정을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는 마지막 대중 연설의 기회로 삼았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짧은 시간에 자신에 대한 오래된 비방을 해소할 수 있을 만큼 재판관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혹은 하지 않았고,  재판정은 아테나이의 법에 따라 정당하게 판결을 내렸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나이의 통치 제도와 법 자체를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아테나이는 다수 시민의 의견에 따라 채택된 법과 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 토대를 무너뜨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법과 제도를 움직이는 시민들의 의식, 가치관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정의나 진리와는 무관하게 부와 명성을 좇는 선동가들에 의해 다수 의견이 결정되는 저급한 시민 의식과 그 무지에 대해 질타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그 결과가 법이 선고한 사형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지만,  시민의 유무죄를 결정하는 시스템인 법과 제도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존중했다. 그가 법정에 나온 이유도 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공정하게 자신을 변론할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그 권리를 충분히 행사했다.  적법한 절차에 따른 판결이기 때문에 결과가 불만족스럽다 해도 승복해야 하는 것이 민주정의 규범이다. 


현대의 민주주의도 그렇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출되었다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가스통을 들고 청와대로 들어 가겠다는 발상은 민주주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법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이런 태도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출처없는 조어를 탄생시킨 배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악법은 마땅히 폐기해야 한다.  다만 악법 때문에 혹은 악하게 이용당하는 법 때문에 법치라는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크리톤>의 요지라고 볼 수 있다.  


2004년에 헌법재판소가  '악법도 법이다'는 준법을 강조하는 사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교육부에 그 내용을 삭제해 주기를 요청했다고 하니,  요즘 학생들은 이런 오해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읽은 여러 글들에서 공통된 부분은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라는 것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라는 것이고, 부와 명성에는 그렇게 노고를 다하면서 영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하는 부끄러움은 모두 자신을 향해 있는 부끄러움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실로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워하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의 권유를 받아들여 다른 폴리스로 달아나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평생을 아고라를 누비며 역설한 자신의 말을 배반하는 부끄러운 짓이고, 재판정에 자신을 기소한 비방가들의 말이 진실임을 입증하는 부끄러운 짓이다.  그 부끄러움은 타인들에게는 비웃음거리가 된다. 


 <크리톤>의 마지막 대화는 이렇다. 


크리톤 : 소크라테스, 내가 할 말이 없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크리톤, 신이 우리를 이 길로 인도하니 이 길을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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