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18강, 총 12강에 걸쳐 <소크라테스의 변론> 본문에 관한 강독은 끝났다.  19강과 20강은 강독을 종합하는 결론인데, 1강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이 강독의 목적은 아테나이 민주정에 비추어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정을 검토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마지막 두 강은 민주정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19강 <메넥세노스>편 간략하게 정리 



먼저 19강에서는 플라톤의 또 다른 대화편인 <메넥세노스> 에 나타난 당대 아테나이 민주정에 대한 비판을 소개한다.  처음 들어보는 대화편이라 강의를 들으며 매우 궁금했다. 아주 짧은 대화편이라 도서관에서 빌려와 금방 읽을 수 있었는데, 예상했던 바와는 전혀 달랐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실린 그 유명한 페리클레스의 장례식 추도문을 비판한 내용이라고 들어서 굉장히 풍자적이거나 냉소적이거나 아이러니하거나 하여튼 알레고리 형식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학교 선생님이 아테나이와 희랍의 역사를 차근차근, 약간 지루하게 설명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강유원 선생이 <메넥세노스>가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을 6가지 면에서 비판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메넥세노스>를 읽으면서 비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는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19강을 들을 때도 지금 왜 <메넥세노스>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강의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19강을 정리하기 위해 두 번을 더 들었는데, 그제서야 어렴풋이 연결되는 지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히 써보려고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 




페리클레스의 추도문은 당대 아테나이 민주정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중등학교 세계사에도 페리클레스의 시기를 '민주정의 전성기'로 표현하고, 그 제도로서의 추첨제와 수당제를 강조한다.  누구나 능력만 되고 의사가 있으면 공직을 수행할 수 있고, 그 대가를 국가가 지급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이면에는 제국주의로서의 아테나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 설명하지만 아테나이가 주변 동맹국들에 행한 이른바 갑질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 




페리클레스는 아테나이를 '헬라스의 학교'라고 단언한다.  아테나이인들에게는 자부심 가득한 아름다운 표현으로 들리겠지만, 다른 폴리스들에게는 독선과 오만으로 추종을 강제하는 제국의 선언으로 들린다.  페리클레스가 지은 파르테논 신전도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그 비용은 델로스 동맹의 기금으로 충당했다.  공공의 일에 참여하면 지급하는 수당도 동맹들에게 거둬들인 기금을 유용한 측면이 있다.  아테나이의 자랑인 민주정의 이면은 제국주의 즉 협력을 빙자한 압박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내전이다. 아테나이가 주도한 델로스 동맹과 이에 대항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의 전쟁이다. 전쟁 3년 째에 역병으로 죽는 펠리클레스는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이 전쟁은 27년을 끌면서 희랍 세계 전체를 쇠락으로 몰고 갔다. 


전몰 장병에 대한 추도사에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고인의 용기를 칭찬하고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지만, 이 전쟁은 공통의 언어와 공통의 역사를 가진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이었다.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동족을 죽이는 전쟁을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선동이다.  



페리클레스의 추도문은 당대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연설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 추도문이 당대 아테나이의 심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면,  오만하고 독선적인 아테나이의 제국주의적 성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5권. 아테나이 대표단과 멜로스 대표단의 대화. 일명 멜로스 회담




페리클레스 사후 이 전쟁은 그나마의 명분도 상실하고 철저히 경제적 이득에 의해 자행되는 약탈 전쟁으로 변질된다.  아테나이인들은 전쟁이 돈과 명성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와 명예가 삶의 행복이라는 시대정신, 쾌락주의가 횡행하게 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가장 유명한 내용 중 하나인 멜로스 원정과 이 전쟁의 분기점이 되는 시켈리아 침공이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메넥세노스>는 소크라테스가 페리클레스의 연설문으로 준비되었던 또 다른 연설문을 메넥세노스에게 들려주는 것인데, 또 다른 연설문이 있었다는 설정 자체가 페리클레스의 추도사에 대한 비판을 나타내는 것이고, 대안 연설문의 판이한 내용이 비판의 구체적인 내용을 함축하고 있고, 그럼에도 페리클레스가 이 연설문이 아니라 그 유명한 연설을 하게 된 것은 당대 아테나이의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메넥세노스> 자체는 굳이 함께 읽어 보자고 할 만큼 재미있지는 않다. 그냥 국가 기념일에 들을 법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지루한 역사와 신과 선조에 대한 감사일 따름이다.   


그런데 강유원 선생이 페리클레스의 연설에서 비판한 6가지 중 선조에 대한 찬양이 짧고 신에 대한 언급이 없고, 현재의 아테나이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하다는 것과 그 자부심이 다른 폴리스들을 자극하고 전쟁을 부추긴다는 것을 지적한 부분을 염두에 두고 <메넥세노스>를 떠올려 보면 그 지루한 연설의 의미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실제로는) 플라톤이 새롭게 쓴 추도문은 과거에 대해 오래 기술한다.  신들의 보살핌과 선조들의 훌륭한 업적이 오늘의 아테나이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헬라스는 공통된 조상을 가졌고, 공통의 신을 모시고,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며 협력해 왔다.  


페르시아 전쟁에 관해서도 오래 이야기하는데, 페르시아 전쟁이야말로 펠로폰네소스 전쟁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거대한 이민족의 침략에 대항해 여러 폴리스들이 단합하여  희랍 세계 전체를 구원한 위대한 전쟁이었다.  물론 이 전쟁이 아테나이를 희랍 세계의 최 강대국으로 떠오르게 만들었지만 아테나이 혼자 이루어낸 승리가 아니라 스파르테를 비롯한 여러 폴리스들과 힘을 합쳐 이루어 내었다는 것에 당대 희랍 세계가 처해 있는 내전의 상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플라톤의 바람은 페리클레스가 내전을 찬양할 것이 아니라  동족이 단합하여 영광을 얻었던 페르시아 전쟁을 상기하여 이 전쟁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를 캐물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 




누구나 정치에 참여하고 국가 정책, 전쟁도 시민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한다고 페리클레스는 화려한 언번으로 자랑하지만,  강유원 선생이 말한 것처럼 "어떤 사람, 어떤 집단의 의견이 다수의 것으로 확인되면 국가 정책으로 채택"되는 민주정에서 그 의견이 올바름에 근거하지 않고 오로지 쾌락만을 좇을 때 혼란과 파멸로 빠져든다는 것을 플라톤은 <메넥세노스>의 평범한 연설문을 통해 웅변하고 있는 것 같다.  






20강.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민주정 문제 




강의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강유원 선생이 <위기의 시대에 읽는 고전>에서도 강조한 소크라테스와 민주정의 문제를 다시 한번 짚어 보자.






소크라테스에 대한 잘못된 속설들이 여러 가지 있다.  "악법도 법이다."가 대표적일 텐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을 반대하다 죽었다는 것이다.  


스무 번의 강의를 통해 강유원 선생이 힘주어 반박하는 것이 이 속설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민주정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대 아테나이 민주정을 파괴하고 있던 쾌락주의 그리고 대중 독재에 반대한 것이다. 




<메넥세노스> 




그렇다면 <국가, 정체>에서 비판하는 그 민주정은 무엇인가?  플라톤이 제시한 칼리폴리스는 철인이 통치하는 일종의 엘리트 정치가 아닌가? 




<플라톤 아카데미. 이태수. 국가> 




<메넥세노스>에 따르면 아테나이가 민주정으로 부르는 것도 실제로는 최선자 정체다.  속된 말로 똑똑한 놈이 통치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통해 잘난 놈이 지배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잘 통치할 수 있는 인물을 알아보고 선택할 것인가로 고심한다.  그 최선자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민주정이 있고, 귀족정이 있고, 어쩌면 왕정이 있다. 


고대인은 신이 그 잘남을 보증했다고 믿었고,  귀족정은 혈통이 증거임을 인정했고, 민주정은 다수 대중의 선택으로 결정했다. 




<플라톤 아카데미. 이태수. 국가> 




플라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민주정이냐 철인통치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훌륭한 통치자를 기를 것인가 하는 교육에 있었다.  그 탐구가 <국가.정체>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고 그 과정에서 철인통치가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플라톤을 민주정의 반대자로 낙인 찍는 근거가 되어 왔다.  




게시글: 찬성이 수반된 최선자 정체 | 정암학당 (jungam.or.kr)




강유원 선생은 <메넥세노스>의 "평등"을 강조하는 부분을 들어 플라톤이 민주정에 반대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국가.정체>의 칼리폴리스도 계급이 나누어져 있지만 그것은 교육 과정에서 능력에 따라 구분된 것이지 혈통에 따라 정해진 것이 아니다. 다만 국가에서 그 역할이 다를 뿐이다. 



<플라톤 아카데미. 이태수. 국가> 




수호자 집단 즉 통치자와 군인은 부도 가족도 만들 수 없다. 오직 생산자만 누릴 수 있다.  국가 통치와 보호 이외의 목적은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쾌락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수호자 집단이 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공동선을 위한 목적을 가진 사람만이 수호자가 되어 칼리폴리스, 아름다운 국가를 이끌 것이라고 상상한다. 








씁쓸하게도 이런 나라는 현실에 존재하기 힘들겠지만, 플라톤은 그런 국가를 하늘의 本으로라도 세워 두려고 한다.  플라톤의 하늘은 저술이었고, 그 本은 <국가.정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셈이다.  하늘의 별이 있다면 땅 위의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강유원 강독의 마무리를 할 시점에서 조금 멀리 나갔다. 이제 정리하자면 강유원 선생은 우리의 현실을 검토해 보자고 촉구한다.  우리는 칼리폴리스가 아니라 현실의 민주정체인 대한민국에 산다. 


우리의 민주정은 소크라테스-플라톤 시대의 아테나이와 지나칠 정도로 비슷하다.  통치자는 대중의 선출로 권력을 획득하고, 그 과정은 비방과 선동으로 얼룩져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주정의 대안을 찾지 못하는 한 선거에 의해 훌륭한 통치자를 뽑아야 한다.  


답은 간단하다.  민주정의 수준은 그 구성원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쾌락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국가도 쾌락을 향해 질주할 것이고, 우리가 올바름을 따져 묻는다면 국가도 정의로운 법과 제도를 구축하려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행복이 무엇인지,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의 탁월함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우리의 앎은 unknown unknown 인가?  known unknown인가? 를 따져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강독해 주신 강유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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