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사 - 독일 정신은 존재하는가
비토리오 회슬레 지음,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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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도전으로서 정밀과학과 분석철학의 부상 : 프레게, 빈학파와 베를린학파, 비트겐슈타인

 

인간 영혼의 심연을 측정하고자 한 니체의 소망에 대립하여 고틀로프 프레게(1848~1925)는 추론 형식에 절대적 명확성을 가져오고자 했다. 프레게의 《개념 표기법, 산수적인 것에 따라 형성된 순수 사유의 형식 언어》 이후로 논리학은 연역학적 학문일 뿐 아니라 형식화한 분과학문 이기도 하다. 개념 표기법의 논리적 언어에 의해 진술논리학을 위해서 뿐 아니라 술어논리학을 위해서 제시한 것과 같은 논리 계산이 가능해졌다. 복합명제의 진리치는 요소명제의 진리치의 함수다.

 

물론 프레게의 논리주의 프로그램의 구체적 실행은 러셀이 고전적 집합론에서 구성할 수 있는 이율배반을 알렸을 때 실패했다. 프레게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언어철학은 고전적 지위를 보유한다. 프레게는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같은 대상을 지시하지만 같은 뜻을 지니지는 않는다며, 뜻과 지시체를 구별했다. 프레게는 개념을 함수에 비교한다. 둘 다 텅 빈 자리일 뿐이고 고유명사에 의해 채워질 때에야 비로소 완결된 뜻을 갖기 때문이다.

 

프레게는 논리학과 수학철학 및 언어철학 외에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 특히 그의 정치적 일기는 그가 반유대주의적 극우파임을 드러내 준다. 개념 표기법적인 명민함이 윤리적-정치적 기만과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이 20세기 철학을 비추고 있다.

 

 

프레게의 논리적 혁명은 분석철학을 낳았다. 분석철학은 오늘날 특히 앵글로색슨 세계에서 지배적이지만, 그 기원에서 영국적인만큼이나 독일-오스트리아적이기도 하다. 물론 대부분의 주창자들이 1933년 이후 앵글로색슨 나라들로 이주한 것이 사실이므로, 이 책에서는 분석철학의 후기 저작들을 다루지 않는다.

 

분석철학의 최초 형태는 논리실증주의 또는 논리경험주의였다. 논리실증주의의 중심지는 베를린과 특히 빈이었다. 수학과 물리학의 철학에 대한 일등급 저작들은 논리경험주의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논리경험주의의 철학적 물음들은 스스로의 능력을 넘어설 뿐 아니라 지금까지의 철학보다 놀랄 만큼 그 수준이 떨어진다. 물론 논리경험주의는 과학적 철학으로 사변적 철학을 영구히 극복했다고 믿었지만 말이다.

 

논리실증주의의 목표는 통일과학이다. 논리실증주의가 추구하는 구성 체계는 자기의 심리적 성질로부터 물리적 대상에, 이 물리적 대상으로부터 낯선 심리적 대상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과학의 대상에 다다르고자 한다. 낯선 심리적 대상과 관련해서는 정신적인 것을 행동으로 환원하는 행태주의가 과학적 세계 파악으로서 간주된다. 이런 새로운 파악의 적수는 형이상학이다. 논리실증주의에 따르면 형이상학의 진술은 거짓이 아니라 무의미하다. 하나의 단어가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이 단어를 포함한 명제를 검증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모든 명제는 프로토콜 명제로 환원 가능해야만 한다. 형이상학적 신 개념은 그 타당성을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이라는 개념은 무의미하다. 이런 개별 분석으로부터 모든 형이상학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도출된다. 형이상학의 판단들은 분석적이지도 경험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은 음악이나 시와 마찬가지로 삶의 감정의 표현이다. 형이상학자는 “음악적 능력이 없는 음악가” 이다.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비판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것 자체의 역설이다. ‘오로지 경험에 의해 그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진술이나 분석적 진술만이 의미 있다’는, 진술 자체, 이 판단 자체의 지위는 무엇인가? 이 진술 역시 경험적이지도 분석적이지도 않다. 이 진술은 본성상 규범적이다. 결국 이 이론은 자기모순의 딜레마에 빠진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거짓말쟁이의 역설 혹은 이발사의 역설이다. 나는 이것들을 그냥 러셀의 역설의 생활 버전으로 생각한다. 여기에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도 연관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프레게의 실패를 끌어낸, 러셀의 고전적 집합론에서의 이율배반이라는 것도 아마 이것이 아닐까 싶지만 책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내 생각이므로 틀릴 지도 모른다.) 괴델에 따르면 완전하면서 동시에 무모순적인 체계는 없다. 그리고 무모순의 공리계라해도 그 공리계 자신의 무모순성은 증명할 수 없다. 즉 그 공리계에는 논증할 수 없고 반박할 수 없는 명제가 최소 하나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거짓말쟁이다.’ 는 참, 거짓을 논증할 수 없는 명제다. 논리실증주의를 근거 짓는 공리, 즉 ‘오로지 경험에 의해 그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진술이나 분석적 진술만이 의미 있다’ 는 명제 역시 경험으로 증명 불가능하다.

 

 

물론 논리실증주의는 한 사람의 철학적 천재를 탄생시켰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 이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독일 철학자 인가? 《처음 읽는 영미 현대 철학》 을 읽을 때, 비트겐슈타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때는 비트겐슈타인이 영미 철학자인가?, 의아했다. 20세기 불세출의 천재인데다, 언어철학의 태두인 셈이니 서로 욕심을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스트리아 철강 갑부 집안의 이 천재는 1929년 최종적으로 케임브리지로 옮겨 갔지만, 독일어에 충실했다고 한다. 저자 회슬레는 처음부터 언어를 기준으로 독일철학을 규정한다고 했으니, 보통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로 정의되는 비트겐슈타인을 독일 철학자에 포함시킨다 해서 일관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주요 저서는 《논리-철학 논고》와 《철학적 탐구》다. 30대 초반에 《논리-철학 논고》를 출판하면서, 모든 철학적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언한 그의 오만(?)은 유명하다. 그러나 오만한 만큼 깔끔하게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죽을 때까지 새로운 사유에 매달린 끝에 30여년의 간격을 두고 《철학적 탐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비록 사후에 출판되기는 했지만.

《논리-철학 논고》의 이론을 보통 그림이론이라고 부른다. 명제와 그림은 일대일 대응해야 한다. 이런 상응은 세계와 그림에 공통적인 논리적 형식 덕분에 가능하다. 비트겐슈타인의 명제 이론에서 결정적인 것은 반성성의 금지다. 어떠한 명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참된 명제들의 총체는 자연과학의 총체다. 윤리학의 명제들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논리-철학 논고》 자체의 명제는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은 그것들의 무의미한 본성을 인정한다. 그것들은 세계를 올바르게 보기 위해서 타고 올라가는 사다리로서, 올라간 다음에는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비트겐슈타인이 현실에 대해 가치중립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신이 더 이상 세계 속에 현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세계의 실존에는 무언가 신비적인 것이 드러난다. 다만 그에 관해 이론화할 수 없을 뿐이다. 실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스스로 드러난다. 그것이 신비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일상 언어의 이해를 위한 암묵적 협약은 엄청나게 복잡하다.” 《논리-철학 논고》의 이 명제는 일상 언어를 그것이 논리적 이상 언어와 어느 정도까지 다른가 하는 판단에 종속 시키는 대신 그것의 미묘한 적응 능력을 추적하고자 하는 《철학적 탐구》의 프로그램을 가장 일찍이 미리 보여준다. p307

 

1929년 케임브리지로 옮겨 간 후,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와 세계에 대한 눈길은 변화했다. 그는 또 다시 새로운 경향을 창조했다. 이상 언어의 철학을 일상 언어의 철학이 뒤따랐다. 결정적인 것은 플라톤적이고 데카르트적인 의미 이론과의 단절을 나타내는 언어놀이 개념이다. 그림이론에서 놀이 개념으로 언어관이 바뀐 것이다. “우리의 언어는 오래된 도시로 간주할 수 있다. 즉 그것은 골목길과 광장, 낡은 집과 새 집 그리고 서로 다른 시대에 증축된 것들을 갖는 집들의 미로다. 그리고 이것은 반듯하고 규칙적인 도로와 단조로운 주택이 있는 다수의 새로운 교외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되돌아오는 주제는 본질주의에 대한 그의 반박이다. 가령 언어 놀이의 공통된 본질을 추구하는 대신 비트게슈타인은 연속적인 중간 형식에 의해 심지어 아주 상이한 대상마저도 결합하는 가족 유사성을 지시한다. 그의 언어 놀이 개념의 상대주의적 귀결은 곧바로 사회과학으로부터 학문 이론에 이르는 많은 분과에서 끌어내졌다. 그러나 가장 급진적인 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제안하는 새로운 철학 개념이다. 철학의 성과는 “지성이 언어의 한계에 달려가 부딪쳐서 감염된 종기들” 이며, 자기의 목표는 “파리에게 파리통에서 빠져나오는 출구를 보여주는”거라는 것이다. 《논리-철학 논고》에서 계속해서 문제되는 게 결국 반성의 고된 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명백한 일이지만 철학에서 불행한 사람은 비트겐슈타인을 헤겔보다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자율을 견지하고 개인이 그를 길들이는 사회적 세계에 반대해 옳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고려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고전적 사상가에게 손을 내밀거나 비트겐슈타인의 의미 이론보다는 후설의 그것을 택하라는 좋은 충고를 할 수 있다. p310

 

 

 

12 신칸트주의와 딜타이에서 정신과학과 사회과학의 근거 짓기 시도 및 후설에서 의식의 해명

 

20세기 전반부의 또 다른 커다란 운동을 살펴보기 전에 비록 신칸트주의가 실증주의나 현상학 같은 독창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먼저 언급해야만 한다. 독일 관념론의 종언과 세계관적 유물론의 부상 이후 수긍이 가는 중간노선은 칸트로 돌아가 숙고하라는 것이었는데, 그러한 숙고는 초월론적 사상을 계속해서 사유하고 그럼에 있어 특히 철학사학과 과학사학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p311

 

신칸트주의의 대표적 분파는 마르부르크학파와 바덴학파다. 바덴학파의 대표자인 빈델반트와 리케르트는 칸트가 비워둔 주제, 즉 자연과학과의 경계를 설정한 정신과학과 사회과학의 철학적 근거 짓기를 다뤘다. 게오르크 짐멜, 막스 베버 등에 의해 이론적 사회학이 엄청나게 진보하던 시기에 이러한 주제는 특히 시급했다.

 

막스 베버(1864~1920)는 오늘날까지 가장 포괄적인 사회학적 범주론을 사회적 현상에 대한 풍부한 영속적인 정의들과 함께 내놓았다. 그는 경제와 국가의 발전에 대한 종교의 기여를 탐구하는 동시에 가치중립성에 대한 근대적 요구를 분명히 표현했다. 그는 1919년의 강연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에 대해 심정 윤리 대신 책임 윤리를 요구하고 근대의 합리화 및 관료화 과정에 함께 시작되는 의미 및 자유의 상실을 묘사했다. 개념 형성의 정밀함, 다양한 문화의 수많은 원전에 대한 숙달, 근대의 실존적 고통은 베버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회과학자로 만들었다.

 

베버는 사회학자이지만, 신칸트주의에 대해서 정리할 것이 마땅하지 않아, 익숙한 베버를 짧게 요약하고 또 하나의 생소한 이름 딜타이로 넘어간다.

 

 

빌헬름 딜타이(1833~1911)는 이미 신칸트주의 이전에 ‘역사 이성 비판’ 즉 정신과학의 정초를 이해심리학의 입장에서 시도했다. 그는 정신과학을 자연과학으로부터도 형이상학으로부터도 경계 긋고자 한다. 독일 관념론과 실증주의적 자연주의에 대항해 이중의 전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딜타이의 발상이 갖는 최종 결과는 역사주의적 상대주의였다. 정신적 세계에서 존재한 적이 있던 모든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이 정신적 형성물에서 무엇이 참인지에 대한 물음에는 대답할 수 없거나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확실히 딜타이는 이 결과에 괴로워하며 상대주의를 극복하려 했다. 정신과학은 삶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타자의 심적인 에너지를 추체험하는 것이 그 자신에게도 동일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표상된 의지와 현실적 의지 사이에서보다 더 강렬한 심연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사상가 가운데 가장 일찍부터 전통적인 이성 개념에 신실하게 머무른 사람은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이었다.

 

그의 작업의 사태 관련성과 명확성, 항상 본질적인 구별, 정신의 내적 삶에 대한 수학적으로 정밀한 측정, 철학에 대한 믿음의 파토스, 플라톤주의의 하나의 형식과 최종적 심급으로서 네오데카르트주의적인 주관성 이론을 결합하는 독창성 및 인격의 통합성은 그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라는 판단을 정당화해준다. p323

 

드디어 후설이다. 지금까지의 여러 철학자들 중 나는 후설이 가장 힘들다. 심지어는 헤겔조차도 여기저기 찔끔찔끔이나마 보아온 것들이 있어, 대충 어림짐작이나마 하는데, 후설의 현상학은 전혀 깜깜하다. 언젠가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넘겨보다가 집어 던졌다. 그때 본 내용과 회슬레가 말하는 후설은 많이 달라 보인다. 현상학에 대해 말하기 보다는 후설의 논리학을 심리학과 비교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많다. 글 자체로는 그다지 읽기 힘들지 않다. 그런데도 요약하기는 힘들다. 뭐가 더 중요한지, 어떤 부분을 뽑으면 말이 이어질 수 있는지 감을 잡기 힘들다.(지금까지 죽 그래왔지만 ;;) 워낙 기본지식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철학 입문서이자 후설의 첫 번째 걸작 《논리 연구》에 대한 설명을 이것저것 짜깁기 했다. : 순수논리학은 동시에 존재론이자 초월적 학문론인데, 이 점은 헤겔의 경우와 많이 다르지 않지만 신학적 야망을 지니지는 않는다. 후설은 세계관 철학이 아니라 학문적 철학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의 여섯 가지 연구는 순수 논리학을 오로지 인식 비판적으로만 준비하고 이를 위해 언어철학적인 주제도 논의하고자 한다. 후설은 표현과 의미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그는 유의미한 표현과 가리켜 보이는 기호를 구별한다. 개념과 판단 그리고 추론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그와 같은 종류의 이념적 통일체다. 이념적인 것은 영국 경험주의에서 그러하듯 심리학주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는 영국 경험주의의 혼동을 비판한다. 《논고》의 비트겐슈타인과 비슷하게 후설은 의미 양상에서의 합법칙성을 추구한다. 합법칙성에 모순되는 것은 무의미하다. 후설은 경험적 언어학과 더불어 선험적 언어학을 요구한다. 인식은 의미 지향이 충전적 직관에 의해 충족될 때 존재한다. 결정적인 것은 감성적 직관뿐만 아니라 범주적 직관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후설이 칸트와 함께 그리고 헤겔에 반대해 모든 범주적인 것은 감성적 직관 안에 있다고 가르치는 데 반해, 헤겔과 함께 그리고 칸트에 반대해 범주가 대상을 변조한다는 이론을 비판한다. 원리적으로 지각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후설을 칸트 및 헤겔과 떼어놓는 것은 그에게는 범주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어떠한 시도도 낯설다는 점이다. 범주는 그 원천을 직관에서 지닌다. 그 점은 최종적 타당성 기준으로서 명증성에 대한 호소가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불만족스럽다.

 

후설의 두 번째 걸작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을 위한 이념들》에는 그 유명한 노에시스와 노에마가 등장하는 것 같다. 이 새로운 학문은 사실학이 아니라 본질학이며, 그것의 현상은 이전 저작에서와 달리 비실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심리학과 구별된다. 후설은 공동으로 현상학적 환원을 이루는 형상적 또는 초월론적 환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 번째 환원은 플라톤을 계승하는데, 물론 최종적 토대로 간주되는 의식에 대한 근세적인 집중 아래서 그리한다. 의식 내용의 실재적 실존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이른바 에포케(판단중지)에 의해 ‘괄호에 넣어’진다. 하지만 의식 내용은 그 자체로서 그것이 물적인 것에 관계되는지 아니면 심적인 것에 관계되는지의 물음과는 독립적으로 의심할 여지없이 주어져 있다. 아킬레스건은 사태의, 가령 의식 작용의 본질을 그것이 더 이상 동일한 본질을 갖지 않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대상을 가상적으로 ‘변경’함으로써 파악하고자 하는 후설의 방법이다. - 이러한 방도는 불가피하게 순환적인 것으로, 다시 말하면 본질에 대한 선이해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험주의와 회의주의에 반대해 본질에 대한 인식을 견지하는 것은 그 기획에 대해 결정적이다. p331

 

후설의 초월론적 관념론은 이전의 형식 특히 버클리와 흄의 그것에 비해 중요한 진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유 작용과 사유 대상의 혼동에 토대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것들은 《이념들》에서 서로 상관적인 서로 상관적인 노에시스와 노에마로서 모범적으로 서로로부터 구별된다. p332

 

후설의 노에시스와 노에마의 세분화는 대가답다. 하지만 범주를 지니지 않는 직관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개념 형성 방법의 결여는 여전히 현상학을 괴롭히는 결함이다.

 

1929년 파리 강연인 《데카르트적 성찰》은 현상학에 대한 탁월한 입문서다. 무엇보다 나를 사유하는 실체로 사물화함으로써 상실해버린 데카르트에 대한 후설 자신의 갱신을 강조한다. 결정적인 마지막 성찰은 초월론적 유아론을 모나드론적 상호주관성에 의해 대체하고자 한다.

 

후설의 타당성 이론에 충실하게 머문 현상학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는 막스 셸러(1874~1928)다. 그는 또한 탁월한 사회학자, 특히 지식사회학의 창시자였다. 그는 니체와 프로이트의 도전을 일찍부터 받아들여 그들의 심리학적 통찰을 도덕적 실재론으로 통합하는 일을 해냈다. 그의 주저 《윤리학에서의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은 최소한, 독일어로 된 20세기의 가장 풍부한 가치론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 저작의 목표는 칸트의 현식주의를 그의 선험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극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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