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사 - 독일 정신은 존재하는가
비토리오 회슬레 지음,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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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부르주아 세계에 대한 반란 :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카를 마르크스

 

저자 회슬레는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닌 것 같다. 확실히 그는 마르크스를 얕보는데, 막 말하자면 마르크스를 철학적으로 매우 무식한 놈 취급을 한다. 물론 그렇다고 마르크스의 역사적 의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의심할 바 없이 독일 철학은 카를 마르크스에 의해 직접적으로 가장 강력한 역사적 힘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회슬레가 보기에 마르크스는 재능 있는 철학자들이 오랫동안 고민해 온 인식론적 물음과 형이상학적 물음 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종교 비판은 많은 경우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종교성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했으며, 무신론적인 권력 의지가 오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순진할 만큼 무지했다. 마르크스의 지적인 태만은 전체주의의 부상을 방조했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 무수한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1장에서 회슬레 자신이 미리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독일정신의 흐름에 대한 커다란 노선을 보여주려는 목적 아래 정확한 지식도 복잡한 기술적 논증도 포기했다. 그러므로 일단 회슬레가 보여주려는 ‘커다란 노선’ 혹은 ‘항공뷰’에서 마르크스가 어떤 지표석이 되고 있는지를 지켜보자.

 

헤겔 철학의 완성은 그를 뛰어넘고자 하는 제자들의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 헤겔의 제자들은 헤겔 우파와 헤겔 좌파로 나뉘었는데, 유럽의 의식 역사에 대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헤겔 좌파였다. 1848년 3월 혁명 이전 시기의 억압적인 정치적 상황과 구체제의 부활 그리고 더 이상 시대에 적합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그리스도교가 헤겔 비판을 촉진했다. 헤겔 좌파의 저작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것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1804~1872)의 《그리스도교의 본질》이다.

 

포이어바흐는 진지하게 신학을 공부했지만, 그 후 헤겔 밑에서 철학으로 향하며 어느 정도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얻었다. 헤겔의 종교철학이 역사적 그리스도교의 수많은 표상을 사변적 형이상학으로 대체하는 데 반해, 포이어바흐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그 구체적 표상들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포이어바흐는 종교의 근저에 놓여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적인 것뿐이며, 종교는 “인간 정신의 꿈”, “인류의 어린이 같은 본질”이라고 말한다.

 

포이어바흐에게 있어 종교는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좀 더 정확하게는 다른 본질로서 자기의 본질에 대한 태도다. 종교에서 인간은 그 자신의 정신의 특성을 대상화하며, 그 특성을 외적인 힘에서 특히 가치 충만한 것으로서 경험한다. “무한자의 의식은 의식의 무한성에 관한 의식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종교사는 인간 정신의 진화에 대한 중심적인 지표일 것이다. p235

 

스스로를 인간이 되는 신으로 창조하는 것은 그 자체에서 신적인 인간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다른 이들을 위해 고난당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의 신격화, 즉 나-너-관계의 삼위일체론이다. 형상에서의 성인 숭배는 성스러운 것으로서의 형상 숭배다. 그리고 기적의 힘은 상상력의 힘을 현시한다. 신의 인격성에 대한 반성에서 사람들은 “다른 본질의 비밀들을 엿본다고 하는 망상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사유한다. 특히 야훼는 “이스라엘 민족의 인격화한 자기 욕망” 이다.p236

 

비판의 날카로움에도 불구하고 포이어바흐를 그리스도교의 적대자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칭호는 니체에게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포이어바흐가 비철학적인 이유는 자기 고유의 세계관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윤리학적 전제를 전혀 해명하지 않는 것에 있다. 라이프니츠 또는 칸트의 형이상학적이고 메타윤리학적인 섬세함과 비교하면 포이어바흐는 원시적이다. 물론 이 점이 그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것에 기여하기는 했다. 포이어바흐가 1869년 사회민주노동자당에 가입했지만 그는 정치적 선동가가 아니었다. 그 역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주어졌다.

 

 

카를 마르크스(1818~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는 세계를 단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기를 원했다. 마르크스는 헤겔에 대해, 이념으로부터 출발해 본래적인 현실을 놓친다고 비판했다. 인식의 정적에 빠져들고 정신으로서 오만하게 대중을 내려다보는 순수한 비판은 공허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가 이에 대립하는데, 필요한 것은 관념이 아니라 존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념은 아무것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저술한 《독일 이데올로기》는 헤겔 좌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저술의 주요 관심사는 프랑스인과 영국인보다 열등한 독일인의 관념론에 대한 논박이다. 독일 관념론이 헤겔에 의해 완성되자마자, 그에 대한 반란이 터져 나온 셈이다. 첫 번째가 쇼펜하우어, 두 번째로 마르크스, 그리고 다음에 나올 니체가 세 번째이다.

 

종교와 개념의 힘에 대한 믿음에 대해 “정치적인 주요 행위와 국가 행위”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그의 자연적인 기초, 특히 그의 경제적 활동으로부터 이해하는 역사 서술이 강령적으로 대립된다. 다양한 생산 관계, 예를 들어 소유 관계는 생산력의 발전에 달려 있었다. 정신적 상부구조는 경제적 토대의 함수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독일 철학과 정반대로 여기서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간다. … 이리하여 도덕, 종교, 형이상학, 그리고 그 밖의 이데올로기와 그것들에 상응하는 의식 형식들은 더 이상 자립성의 가상을 지니지 않는다.” 그것들은 외부적으로 설명되어야만 하지 자기로부터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독일의 역사학은 “각각의 모든 시기가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고 상상하는 것을 믿는다.” 언어적으로 매개된 것으로서 의식은 언제나 사회적 산물이다. 중심적인 것은 계급 형성이다. 계급투쟁은 생산력과 교통 형태 간의 모순으로부터 발원하며 역사의 추동력이다. 근대 국가는 부르주아 사회의 지배 계급의 기능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지배 계급의 사상은 한 시기의 지배적인 사상이다. p243~4

 

9장의 마르크스 부분이 상대적으로 매우 쉽게 읽히는 것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들도 있고, 저자 회슬레의 서술이 명확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마르크스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을 강조하는 까닭에 매우 직설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악명 높은 《자본》 은 예외로 해야겠지만. 여하튼 그렇게 해서, 계급과 소외, 공산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등, 이어지는 설명은 뭐 특별하달 것은 없다.

 

마르크스의 가장 유명한 책은 《자본》이겠지만, 가장 많이 읽힌 책은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이다. 이 책은 논증적인 텍스트라기보다는 정치적 팸플릿이다. 나도 읽어 보았는데, 힘이 넘치면서도 화려한 그 문장들은 가히 선동적이었다. 짧은 글 속에 부르주아의 탄생과 성취 및 예견된 몰락이 웅변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마르크스의 수많은 정치 저술 가운데 저자 회슬레가 최고로 꼽는 것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다. 이 책 역시 딱딱한 제목과는 달리 매우 재미있다. 특히 박정희의 딸이란 이름밖에 가진 것이 없는 박근혜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다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 루이가 단지 보나파르트라는 이름 하나로 권력을 거머쥐는 과정을 통해 고찰해 볼 수 있다. 마르크스의 가장 유명한 책이면서,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함께 명성에 타격을 입은 책이 바로 《자본》이다. 비록 《자본》의 여러 가지 이론들이 현실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해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상품물신’ 개념의 탁월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 물신적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구별을 이용한 것은 천재적이다. 교환가치는 사회적 관계들로부터 생겨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관계는 감각적 대상인 상품 속에서 사라지며, 이를테면 대상화한다. “그러므로 상품 형태의 신비함은 단순히 다음과 같은 점에 존립한다. 요컨대 그것이 인간에게 그들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 생산물 자체의 대상적 성격으로서, 즉 이 사물들의 사회적인 자연 속성들로서 나타내 보이며, 따라서 또한 총 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도 그들 외부에 실존하는 대상들의 사회적 관계로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상품에 대한 욕망은 그들이 빚지고 있는 복잡한 과정에 대해 눈멀게 만든다. 그리고 사회적 세계는 외적 대상의 모델에 따라 구상되며, 그러므로 죄르지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이래로 그렇게 여겨지듯 “사물화” 한다. p250

 

마르크스는 화폐물신과 상품물신을 비슷하게 본다. 사실 화폐야말로 최고의 상품이다. 원래 상품의 교환 수단에 불과했던 화폐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면서, 상품-화폐-상품의 과정은 자본주의에서 화폐-상품-화폐 과정으로 역전되었다. 상품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금융 자본주의에 와서는 수단으로서의 상품마저 생략된 채, 화폐-화폐 과정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주식시장을 보라!

 

9장을 시작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회슬레가 마지막에 다루는 것도 역시 마르크스의 철학적 약점이다. 첫째, 무엇이 경험적이고 무엇이 선험적으로 근거 지어져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한마디로 철학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경제적인 것의 우위에 대한 마르크스의 강조는 일면적이다. 인간정신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 여기서 재미있는 표현은 마르크스와 함께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이다. “자신의 철학적 진리 요구를 회복하는 중심 과제에서의 경솔함은 쇼펜하우어와 함께 시작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바로 다음 단계를 나타내며, 물론 니체는 이를 훨씬 더 뛰어 넘는다 p252.” 회슬레가 8장, 9장, 10장의 제목을 공통으로 ‘~에 대한 반란’으로 표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셋째는 서구의 윤리적 전통과의 경악할만한 단절이다. 이전까지 독일정신이 다듬어낸 견고한 윤리적 기초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는 전무하다. 혁명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넷째, 역사의 공산주의적 최종 상태에 대한 예측은 경쟁 없는 경제가 정체한다는 경험과 모순된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위기·공황이 내재적이라고 한 게 옳다고 하더라도,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규범적 권력 분립론을 다듬어내길 거부한 것은 치명적이다. 우리가 값비싼 역사적 경험으로 알아낸 것처럼, 그 사회에도 모든 지배가 남겨질 것이고, 엄청난 권력 남용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 정신에 대한 두 번째 반란도 이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10 보편주의 도덕에 대한 반란 : 프리드리히 니체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라는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자신의 말처럼, 그는 실제로 다이너마이트였다. 다른 어떤 사상가도 이 철학적 테러리스트만큼 많은 것을 파괴하지 못했다. 그러나 니체가 그렇게 많은 것을 때려 부술 수 있었던 것은 다만 그가 반대했던 것이 이미 썩어 문드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871년의 정치적 통일 이후 독일 문화의 공허함을 개념화했다. 그의 시대비판이 여전히 현실적인 것은 그가 부수려했던 많은 것이 점점 더 확대되었고, 고급문화의 표준이 계속해서 붕괴했기 때문이다. 니체의 비극은 현상학적 힘과 빛나는 문체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질의 결여가 문화의 쇠퇴를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저널리스트와 지식인이 그를 즐겨 읽었지만, 저널리즘과 문화는 그것에 의해 더 나아지지 않았다.

 

저자 회슬레는 쇼펜하우어와 마르크스에 이어 니체를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한마디로 이들에 의해 고급스러웠던 독일 정신이 천박해졌다는 것인데, 니체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에 못지않은 격한 반론이 있을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도 들뢰즈 붐에 힘입어 니체가 굉장한 조명을 받았다. 또한 철학과 관계없이 니체의 잠언들은 지금도 금과옥조로 회자되고 있다. 여하튼 회슬레가 그려 보이는 ‘독일정신’의 역사에서 니체의 이 숭고한 반란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지 따라가 보자.

 

니체는, 그리스도교 가치 질서의 붕괴와 (살기에 가득 찬) 대안적 가치 체계의 창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1989년 이래로 마르크스주의에 실망한 자들이 대거 투신한 상대주의의 전 세계적 확산에 대해서도, 주요한 책임이 있다. 중반 이후의 니체 자신으로서는 독일 내셔널리즘과 당대의 반유대주의를 경멸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학적 민감성과 심리학적 명민함 그리고 문헌학적-역사학적 지식이 논리적 지성과 일관된 형이상학에 대한 감수성을 동반하지 않을 때, 그것은 유용하기보다 해롭다. 위대한 덕과 몇 가지 약점의 결합은 종종, 오히려 모든 악이 뒤섞이는 것 보다 더 위험하다.

 

니체의 사유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와 사회적 사유에 대해서는 일생 동안 일관되게 혐오했다. 니체는 첫 시기에 자신의 두 영웅인 바그너와 쇼펜하우어를 맹목적으로 숭상했다. 두 번째 시기에서는 좀 더 미묘한 심리학에 근거해 그들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세 번째 시기에서는 자기 자신을 천재로서 구축했다.

 

니체의 중기는 철학적으로 가장 결실이 풍부했다. 그의 거의 모든 중요한 철학을 학문에 대한 신뢰 속에서 분명히 표현했고, 독일 철학의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그 자신과 정신적으로 동일한 아포리즘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아포리즘은 체계에 대한 반대 형식이다. 그것은 핵심을 찌르고 역설적인 표현을 하면서도, 이런 개별적인 통찰이 일관적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포리즘에 승리를 보장한 것은 윤리학에서 자율성을 향한 칸트의 혁명이었다. 그러나 객관적 도덕에 대한 믿음을 지니지 않은 이 모럴리스트, 니체의 역설은 그의 도덕적 민감성이 오히려 아포리즘이라는 장르 자체를 해친다는데 있다. 세 개의 아포리즘 모음집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자유로운 정신을 위한 책 ≫, ≪아침놀. 도덕적 선입견들에 대한 사상≫, ≪즐거운 학문≫ 이다.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도덕의 형이상학적 중요성을 거부하는 데 반해 인간 사회가 강자와 약자로 분열되는 역사 과정에서 도덕적 표상과 가치의 성립은 그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니체는 마르크스와 달리 더 강한 자를 선택한다. 강제와 폭력으로부터의 도덕적 이념의 발생과 마법으로부터의 종교의 발생에 대한 그의 인과적 설명은 항상 언어 구사력이 뛰어나며 종종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역사학적 접근이 타당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한다. 심리학과 역사학은 제일철학과 윤리학에 대한 대체물이 아니다. 오로지 발생과 타당성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만이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저 성립에 대한 통찰과 함께 저 믿음도 사라진다.” p268

 

도덕에 대한 비판은 종교 비판 특히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으로 발전한다. 니체는 금욕을 권력의지에 근거해 설명한다. 다른 이들을 지배할 수 없는 자가 자신의 지배욕을 자기 자신에게 행사한다는 것이다. 형이상학과 종교 그리고 도덕과 결별한 후 니체가 지닌 유일한 가치는 문화이다. 그에게는 오로지 좀 더 고차적인 문화 촉진만이 문제가 된다. 물론 니체는 고차적인 문화가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행복주의자가 아니라 완벽주의자였다.

 

니체는 근대국가를 경멸하고, 사회주의의 정의 가치를 비웃었으며, 혈통을 동경하고, 전쟁의 긍정적 영향에 경탄했다. 독일 교양의 허위와 학자들을 비판하고, 그리스인을 찬양하며, 사회주의와 금권 정치를 동시에 논박했다. 그는 “오직 정신을 가진 자 만이 소유해야 한다.” 고 생각했다.

 

니체는 열광적으로 보편주의적 도덕을 논박한다. -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그 속에서 화해되는 인류는 절멸될 가치가 있으며, 정의의 나라는 “가장 심오한 평균화”의 하나로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것 없이는 그리스를 생각할 수 없는 노예제의 새로운 형식에 대해서는 분명 숙고할 만하다는 것이다. 국가사회주의 국가는 이러한 조언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의 위대함에로 되돌아가지는 못했다. 오로지 긍정을 말하는 자이고자 시도한 니체는 자신이 인간 증오로부터 자유롭다고 알았는데, 왜냐하면 그의 경멸은 여전히 증오와 통합되기에는 너무도 깊었기 때문이다. p277

 

인간적 자기기만과 그리스도교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지겨워졌을 때쯤 니체는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세워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논증하지는 않았다. 니체 자신의 인식에 따르면 논증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논증 대신 문학을 선택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그것이다. 여기서 니체는 새로운 윤리학을 고지하는 자를 서술한다. 그가 니체의 초인이다. 회슬레는 이 책이 너무도 키치적이라는 점에서 강력 비판한다. 차라투스트라의 연설은 수다스럽고 주제넘고, 그의 성격은 심리학적으로 단순하다. 고독한 천재는 현실의 상호 주관성이라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내용도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것들이다. 회슬레가 새로운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초인론과 영원회귀에 관한 교설이다.

 

새로운 것은 다윈의 진화론을 미래로 연장하는 초인론이다. - 이러한 미래주의적 정당화 확보는 마르크스주의를 연상케 한다. 권력에의 의지에 관한 교설은 모든 가치 정립의 원리로서 그리고 지상에 충실하게 머물라는, 다시 말하면 세계를 위한 초월을 거부하라는 요구로서 강화된다. 특히 새로운 것은 《즐거운 학문》에서 단지 암시했을 뿐인 영원 회귀에 관한 교설이다. 그것은 분명 고대의 모범으로 소급되며, 그리스도교의 역사신학 및 진보의 낙관주의적 역사철학에 반대한다. 그것을 위한 사태적인 논증을 니체는 갖고 있지 않지만,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그의 안간힘을 다하는 의지의 가장 극단적 표현이다. - 요컨대 역사의 가장 끔찍한 범죄도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이며, 이는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p278

 

니체에 대한 회슬레의 평가는 가혹하다. 니체는 여전히 20세기의 수많은 철학적 몰취미의 원천으로서 읽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니체는 진리 개념을 포기하고, 호객 상인처럼 ‘악의와 위험성’을 자신만의 유일무이한 고유함으로 강조했다. 망치를 가지고 그리스도교적-민주주의적 유럽을 분쇄하고 가치의 전환을 도입할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그의 허풍선은, 역설적이게도 니체가 경멸했던 의지 박약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쉬웠다. 그런 대중에게 지지를 받는 것이 천박하다는 것을 니체 자신도 알았다. 니체를 국가사회주의와 바로 엮는 것은 엄청난 해석학적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확실히 국가사회주의와 니체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독일 역사에서는 어떤 집단적 실험이 분명히 존재했다.

 

공격적-반유대주의적 내셔널리즘의 이름으로 니체의 반그리스도교적 권력 숭배와 바그너의 고대 게르만 신화의 부활을 종합한 것은 아돌프 히틀러의 지휘 아래 독일 민족이 시도한 집단적 실험이었다. 물론 이러한 이념사적 결과로 인해 니체가 우리에게 남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철학적 과제의 해결을 도외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정신이 우리가 아는 한 몇몇 유기체에서만 뒤늦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정신의 진리 요구의 더 이상 그 뒤로 물러 설 수 없음과 함께 사유할 수 있는가? 그리고 보편주의적 윤리의 무제약적 타당성은 어떻게 우리의 도덕적 감각에 거의 호소력을 지니지 못하는 역사 및 현실과 매개될 수 있는가?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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