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이야기 11 -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춘추전국이야기 11
공원국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대학 다닐 때, 중국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때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난다. 춘추 전국 시대에 활동했던 사람들의 삶을 잘 살피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많이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춘추 전국 시대가 두 가지 점에서 오늘날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저마다 생존과 정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무한 경쟁 시대라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타고난 태생이 아니라 개인이 가진 능력이 모든 것을 좌우했던 시대라는 점이었다. 그러므로 춘추 전국 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들의 면면을 잘 살피고 헤아리면 분명 그와 비슷한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꽤 많은 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당시 나는 춘추 전국 시대를 그저 공자가 유세를 하던 때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교수의 그런 말씀은 꽤나 흥미로웠고 그 때부터 춘추 전국 시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기란 어려웠다. 교수님은 사마천의 '사기'를 훌륭한 텍스트로 추천해 주셨지만 '사기'를 읽어본 분은 아시겠지만, 특히 열전은 인물 별로 나열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지라 얼른 명쾌하게 정리하기가 다소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춘추 전국 시대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은 바람은 못 다 이룬 꿈으로만 남았다. 그러다 사는 게 바빠 그 미련조차 깡그리 잊고 있을 무렵, 불현듯 인터넷 서점 광고로 한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공원국 작가 '춘추 전국 이야기'였다. 



 제목을 보자마자 예전의 열망이 삽시간에 환기되면서 그 책을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요모조모 살펴보니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갔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집필한 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내가 찾고 있었던 바로 그 책이었다. 2010년에 첫 선을 보인 이 책은 시리즈로 계속 나오다 어느덧 8년의 세월이 흘러 드디어 올해 11권으로 대단원의 막까지 내린 참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떻게 이 책의 존재를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가진 바람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던 관심을 타박하면서 난 얼른 이 책으로 뛰어들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11권, 그러니까 마지막 권이다. 부제는 '초한쟁패'로 진이 망할 무렵에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중국의 패자를 두고 자웅을 겨루었던 때를 담고 있다. 나는 '초한지'를 언젠가 꼭 한 번 읽어봐야지 마음 먹고 있을 정도로 항우와 유방에게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목구멍 아니 호기심이 포도청이라 이 책부터 만나기로 했다. 


 사실 11권이 담고 있는 시간은 엄밀히 말해 '춘추 전국'이 아니다. 춘추 전국 시대는 진나라의 통일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대해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으리라. 저자도 그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듯 하다. 책 머리에 왜 이 책을 써야만 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원래는 진나라의 통일로 춘추 전국 이야기가 끝났어야 하지만 굳이 이처럼 한 권의 책을 더 더하면서 그것도 진나라가 갈가리 쪼개지고 유방에 의해 다시 한으로 통일되는 시대의 이야기를 하게 된 연유엔 사실 한 인물이 있었다. 첫 권의 주인공인 관중에 필적할만한 인물이 이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등장하는데, 작가는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인물이야 말로 자신이 왜 춘추 전국 이야기를 썼는지, 그 주제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는 춘추 전국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보이고 싶었던 이상적인 군주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고 그가 세운 나라는 중국 역사를 통틀어 그나마 가장 바람직한 체제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야 그는 꼭 그 이야기를 하여야만 하였다. 그 인물이 바로 유방이다. 본디 결말이란 작가의 주제가 한껏 드러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권에서 이렇게 유방과 한 나라를 통하여 8년 간 계속해온 춘추 전국 이야기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는지 전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라 할만 하며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가진 영웅과 체제 그리고 역사에 대한 시각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사마천의 '사기'와 함께 보면 더 좋을 것 같아 찍어 본 사진입니다.

 '춘추전국이야기'를 읽고 '사기'를 읽었는데 '사기'의 내용을 훨씬 더 쉽고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책은 진시황의 둘째 아들 2세가 이사와 조고의 음모로 장자인 형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진나라 말기의 시간으로 시작의 문을 연다. 나라는 하늘이 정해주지 않은 자가 간사한 무리의 협잡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인지 국운은 쇠퇴하여 당장 내일 멸망한다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되어 있다. 무릇 나라가 이렇게 되는 이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사해서 따지고 보면 결국 그 자리에 있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온갖 간사한 꾀와 아첨하는 세치 혀로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조고가 그랬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왕위의 정당한 후계자를 죽음으로 몰았으며 덜 떨어지고 조고만큼 자기밖에 모르는 2세를 왕위에 앉혔다. 위가 그러니 아래 또한 어떻게 바르겠는가? 똥에 똥파리가 꼬이듯 대저 꾀와 아첨으로 흥한 자 곁에는 그와 비슷한 무리가 모이게 마련이다. '회남자'에게 이르기를 나라가 망하기 가장 손쉬운 길은 상 받을 자가 벌을 받고 벌 받을 자가 상을 받으면 된다고 했는데, 이 때의 진나라가 그와 같았다. 이러한 나라는 백성의 신뢰를 금방 잃게 되니 곧 진승과 오광 같은 자들이 나왔다.


 진승과 오광. 그들은 정말 가진 것 하나 없는 무지렁이 백성이었다. 죄마저 지어 진나라 수도로 압송되어 가던 도중, 진승과 오광은 어차피 죽을 거 이름이나 남겨 보자면서 사람을 모아 난을 일으켰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자가 아무런 준비 없이 일으킨 봉기 임에도 불구하고 삽시간에 많은 사람이 호응하여 그 아래로 모인 것을 보면 나라가 백성에게 얼마나 신망을 잃었는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진승이 사람을 불러 모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 이 말을 우리들 대부분은 국사 교과서를 통해 고려시대 노비 만적이 난을 일으키며 했던 것으로 알고 있을 테지만 실은 그 말의 원래 저작권은 진승의 것이었다. 진승의 난은 결국 성공하여 많은 영토를 차지하고 진에게 커다란 위기를 안긴다. 그러나 옛 초나라 사람들이 진승을 왕으로 추대하자 그는 그만 안주하고 더이상 전쟁 선봉에 나서지 않는다. 저자는 그것을 진승의 대단한 패착으로 평가한다. 신념이 아니라 더이상 이대로 못살겠다고 일어난 난이요 사람들이 모인 이상 그 마음이 변질되지 않고 바라는 세상이 올 때까지 지속되기 위해선 흔들리지 않게 잡아줄 구심점이 필요한데 그래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되어준 진승은 전장의 선봉이 되어야 했다. 사람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따를 수 있도록. 하지만 큰 눈으로 천하를 도모하기 보다 자기 잇속에 빠져버렸고 그 때문에 모처럼 평범한 백성에 의해 타올랐던 혁명의 불길 또한 중원 모두를 불태우진 못했다. 진승이 자기 잇속만 챙기자 그를 따르던 이들 역시 진승의 명을 받아 정벌하러 나갔던 무신이 진여와 장의의 간계로 진승의 명을 어기고 조나라 왕이 되었듯 자기 잇속만 챙겼던 것이다.


 이는 큰일을 도모할 때 자신이 언제 나아가고 언제 물러가야 하는지에 대한 소중한 교훈이 된다. 항우와 유방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항우와 유방은 진승과 달리 자신의 전쟁에서 항상 선봉에 섰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듯, 항우는 졌고 유방은 이겼다. 전쟁에서 승패란 모두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지만, 그래도 궁금증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과연 무엇이 승패를 갈랐던 것일까? 항우와 유방은 태생부터 많이 달랐다. 쉽게 말해 항우는 고귀한 신분에 기골 장대한 육체하며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유방은 미천한 신분에 가진 것도 거의 없었다. 항우는 일찌기 장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유방은 건달로 지내다가 겨우 말석의 벼슬 하나 얻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천하는 끝내 유방의 차지가 되었으니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항우는 결코 하지 못했던 보다 더 큰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기 것을 희생하는 마음가짐이었다. 항우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오만했고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인정하지 않았던 반면, 유방은 늘 자신의 장점 보다 결점을 더 많이 생각했고 사람에 대해 항상 겸손하게 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것은 챙기려 하지 않았고 언제나 득실을 따져야 할 때마다 이해 관계 보다 대의를 중시했다. 결국 나 보다 더 큰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유방으로 하여금 천하를 손에 쥐게 했던 것이다.


 이는 진나라의 재상 이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이사는 진시황을 도와 춘추 전국을 끝내고 통일한 뛰어난 재상이다. 원래 그는 장량만큼 현명한 책사였지만 진나라가 통일하고 높은 벼슬 자리에 오르자 그만 거기에 깊이 안주한 나머지 조고의 세치 혀에 어리석게 놀아나 결국 진나라도 패망하고 자신과 가문 또한 멸문 당하게 만든다. 진승도 그랬고, 항우도 그랬듯 모두 자신이라는 따스한 이불속을 절대 벗어나려 하지 않은 결과였다.


 오로지 유방만이 유일하게 이불 속을 박차고 뛰쳐 나갔다. 그래서 비록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세상이라 하여도 더 가까이 보듬어 안으려 노력했다. 궁극적으로 그런 자세가 유방을 천하의 제왕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지략과 무예 모두 유방을 월등하게 앞섰지만 결국 유방에게 배신당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한신 또한 이불 속이 주는 온기에 취해버린 자였다. 그만한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헛되이 삶을 잃어버리고 만 것은 괴철의 충고를 깊이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철은 그런 일이 있기 훨씬 전에 한신에게 '토사구팽'을 이야기 하며 너무 뛰어난 사람은 바로 그 뛰어남이 군주에게 위험이 되어 시대가 평안하게 되면 살아남지 못하게 되니 지금 한신의 나라로 항우와 유방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하는 쪽으로 나아가라고 권했지만 새겨듣지 않았다. 자신의 재능과 현재 상황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모험 보다 안주의 길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자면 결국 자신을 얼마나 던질 수 있느냐가 승패를 좌우하는 것 같다.

 '11권'의 역사는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신을 내려놓고 더 멀리 볼 수록 승리의 여신에게 안길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아마도 이런 유방의 면모가 저자로 하여금 유방을 관중과 같은 뛰어난 존재로 평가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진과 한의 싸움은 인간의 복합성을 재정의 하는 싸움이었고 한과 초의 씨움은 제왕이 되고자 하는 이와 패자로 만족하고자 하는 이의 싸움이었다.(p. 16)


 '춘추 전국 이야기'의 마지막 권은 역사란 궁극적으로 자신을 얼마나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잘 알려주는 책이었다.

 아무리 커다란 나라를 다스리고 또 아무리 천하의 대권을 두고 다퉈도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늘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대할 때 취하는 태도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보다 큰 것을 위해 자신을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느냐가 성공 여부를 좌우했던 것이다. 나의 것을 많이 내려놓고 더 많은 사람과 더 큰 세계를 품에 안을수록 성공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것은 마치 손을 쥐고 펴는 것과 같았다. 내 것을 지키려 움켜쥐는 손은 주먹 안의 협소한 공간밖에 가지지 못하지만 내주려 손을 활짝 벌리면 하늘 전체를 받칠 수 있듯이 말이다. 이제야 왜 대학 교수님이 오늘을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지혜는 춘추 전국 시대에서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지 잘 알겠다. 앞에 한 말을 그냥 들었다면 난 전혀 공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승과 항우, 이사와 한신 그리고 유방의 구체적 삶을 통해 여실히 느끼고 나니 마음에 깊이 와 닿지 않을 수 없다. 유방은 큰일을 본격적으로 도모하기 직전 도망자의 몸이 된 적이 있는데 그 때 자신의 길을 가로막은 뱀을 칼로 베어버렸다고 한다. 당시의 사람들은 장차 그가 진을 멸망시킬 계시라 여겼으나 지금 드는 생각으론 유방이 베었던 뱀은 바로 자신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욕망, 이해 관계, 이기심 같은 것들. 진승과 항우 그리고 이사와 한신을 보니 결국 자신의 길을 가로 막았던 뱀은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게도 그런 뱀이 있다. 지금까진 그 뱀을 못 본척 하고 비켜가거나 살살 달래기만 했는데 유방의 이야기를 한껏 겪은 지금 이제는 베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미루는 것도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 역시 책을 통해 똑똑히 보았으니.


 무협지를 읽는 것만큼 재밌고 흥미진진한 역사서였다. 그러나 항우와 유방이 활약했던 시대보다 더 많은 알게 된 건 바로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역사가 무엇보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답을 알고 싶다면 '춘추 전국 이야기'를 벗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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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1-2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타고난 태생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이 모든 걸 좌우하던 시대˝가 잠깐 왔다가 끝나버려서 춘추전국시대가 난감해졌겠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드득 2017-11-28 17:56   좋아요 1 | URL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한나라까지는 이어졌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으셨을지도 모르겠네요^^
끝나도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 어떤 시대든 좋은 것들은 자취를 남겨 뒤에 오는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는 것 같습니다. 길이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걸어갔기에 길이 되었다는 루쉰의 말처럼.^^

sslmo 2017-11-2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1권까지 다 구해놓고는,
지금 앞부분 어디에서 잠깐 멈춤입니다.
제가 이쪽에 대해서 지식이 워낙 얄팍하다보니,
군데 군데 숨은 복병처럼 막혀버립니다.

일단 팟캐스트 방송 들으며 워밍업하고,
다시 내달려야 겠습니다.^^

저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드득 2017-11-28 18:00   좋아요 0 | URL
앗! 양철나무꾼님 너무 반갑습니다. 말씀도 감사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막혀버리는 게 양철나무꾼님의 지식이 아니라 문장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제게도 좀 편한 문장들은 아니었거든요. 어쨌든 이렇게 말씀 남겨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기쁘네요. 양철나무꾼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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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출판사 '다산책방'에서 새로운 소설 시리즈 하나를 런칭한 것 같다. 바로 '페미니즘' 소설이다. 첫 시작을 연 것은 이번에 나온 '현남 오빠에게'. 단편집이다.



 이번에 '82년 김지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조남주와 작년에 '쇼코의 미소'로 특히 여성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던 최은영을 비롯하여 오늘날 가장 핫(hot)하다고 할 수 있는 일곱 명의 여성 작가가 쓴 단편이 여기에 들어있다. 기존에 쓴 작품을 모은 게 아니고, 먼저 작가들에게 여성주의 소설이라는 주제가 부여되고 거기에 따라 쓴 작품을 모은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읽으면서 언뜻 일곱 작가의 백일장을 구경하는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아, 왜 이 소설을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생각하는지 이유를 아직 말 안했다. 그건 뒤에 있는 책날개에 '다산책방 페미니즘 소설 1'이라고 나와있기 때문이었다. 1이라는 건, 2가 있다는 뜻이니 시리즈라 여길 수밖에. 말하고 보니 별 거 아닌 단서이긴 하다만.


 그러나 이 단편집은 결코 별 거 아닌 게 아니다. 미리 주어진 주제에 따라 집필된 단편집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나 읽을만 했다. 시작은 조남주 작가의 '현남 오빠에게'가 연다. 연인인 현남 오빠에게 청혼을 받은 여인이 1인칭 화자가 되어 왜 그 청혼을 거절하는지 밝히는 게 단편의 주된 줄거리다. '현남'이라는 이름 자체에서 느껴지듯이, 이 여인의 메시지는 그저 한 개인의 남자가 아니라 '현대 남자' 전체라고 볼 수 있다. 그 보통의 현대 남자에게 단편은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려 들지 말라고 통박한다.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p. 38)


 뒤이은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는 유진이라는 주인공의 엄마인 정순의 며느리를 맞이하면서 생긴 울화에 관한 것인데, 이 정순이란 인물은 어떻게 보면 '현남 오빠에게'에 나왔던 여성 화자가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고 현남 오빠와 결혼하여 내내 살았다면 되었을 것 같은 인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자기 주체적인 삶을 전혀 누려보지도 못하고 그저 남성 가부장제에 매몰되어 있었던 인물. 그런 정순이 새 며느리 선영을 맞아 문득 자신의 인생에 정작 자신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울화를 하나밖에 없는 딸 유진에게 며느리에 대한 험담으로 풀려한다. 그러나 그런 엄마와 대학 때 진보 운동에 참여하면서 진보를 부르짓는 남성들마저 아무렇지 않게 여성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남성 가부장제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진작에 깨달은 유진은 그동안 그토록 정순을 무가치하게 대했던 할머니의 모습을 엄마인 정순이 닮으려 하자 이렇게 매섭게 비판한다.


 "그래서 할머니가 엄마에게 어떻게 했는데. 나쁘고 부당하게 대했다는 걸 엄마도 잘 알잖아, 왜 그걸 부정해. 지금 엄마 누구에게 화났어? 정말 선영씨야?"(p. 69)


 계속되는 김이설의 '경년'는 '갱년'을 '재생 혹은 다시'라는 뜻을 더 강조하기 위하여 살짝 바꾼 것으로, 그런 갱년기에 도달한 중학생 아들을 둔 중산층 엄마의 이야기다. 소설 속 내용이 다소 충격적이라 이게 정말 현실인지, 아니면 소설적인 과장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어느날 주인공은 중학생인 자기 아들이 여러 여자와 문란한 성관계를 맺었다는 말을 듣는다. 충격 속에서 아들을 닥달해 보니, 아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엄마가 하라는 공부 잘 하고 원하는 대학 가려면 나도 숨통 트일 곳이 필요하니 거기에 대해선 간섭하지 마라'고 하면서 당당하다. 남편과 상의해도, 자식만 두둔할 뿐 어울린 여학생들이 문제지 아들은 아무 문제없다고 말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주인공은 지금 사람들에게 여자를 가르는 기준이 '골빈애'와 '되바라진 애', 두가지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윤서 엄마의 논리대로라면 성적에 목숨 건 여자아이는 되바라진 여자애였고, 성적에 관심 없는 여자애들은 아이돌이나 따라다니면서 화장이나 하는 골빈 여자애였다. 윤서도 내 딸아이도 요즘 여자애들이라는 것을 잊은 사람 같았다.(p. 111~112)


 혼란에 빠진 주인공은 이 시간이 그저 갱년기처럼 푹풍우가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저 겪고 참아내기만 하면 되는 시간이 아니라 변화를 위해 뭔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네번 째인, 최정화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남성에게 당한 성폭력이 트라우마로 남은 여성의 이야기다. 자기 신체의 일부분마저 그 남자의 것으로 여겨질만큼 삶 깊숙이 자리한 상처를 그녀가 주로 하는 일인 붕괴된 빌딩 촬영을 통해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다섯 번째인 손보미의 '이방인'은 근미래의 어딘가로 남성 중심 사회에서 고립을 자처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느와르 적으로 그리며 여섯 번째인 구경모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은 회사 동료를 대신하여 여장 축제에 참여한 '표'가 축제가 열리는 고립된 섬에서 느닷없이 당하게 된 살육의 밤을 그린다. 알고보니 그 축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여성을 성추행하거나 성폭력을 행한 가해자 남성들을 모아 피해자의 모습으로 만들어 처벌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그런 짓을 하지 않았던 표는 하지만 그런 추행이나 폭행을 보면서도 그저 내 일이 아니기에 관망했던 자로 소설은 그런 자마저 가차없이 처벌함으로써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켜만 봤던 자 역시 가해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은연 중 강조한다. 마지막은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다. 제목에서 얼른 느껴지듯, SF다. 화성으로 쏘아올린 열두 마리 실험 동물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개가 주인공이다. 화성에 도착한 뒤, 그는 '라이카'란 개를 만나는데, 그 '라이카'란 57년에 소련에서 쏘아올린 스푸트닉 2호에 탔던 바로 그 개다. 이 두 마리의 개가 중심이 되어 인간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에서 모든 인간적인 관념에서 해방된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그려간다.


 다 소개한 김에 총평하자면, 재밌게 읽었다. 마지막 단편은 좀 모호하게 여겨졌지만 그래도 장르마저 다양하여 계속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여성의 오늘과 달라져야 할 지금의 현실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 각성의 시간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목소리를 더 많이 만나봤으면 좋겠다. 의욕적으로 시작된 '페미니즘 소설 시리즈'에 건투를 비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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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판사판 이라고 판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가 방영중인가 본데, 제목을 잘못 지은 거 같다.
맞는 제목은 ‘개판‘이 아닐까 싶다.
우병우 관련된 건 모조리 영장 기가하는 판사도 그렇고,
구속적부심에서 김관진 풀어준 판사도 그렇고
‘개판‘이 아니라면 달리 뭐라 할 수 있을까?
오늘도 흙탕물 만드는데 여념이 없는 이런 사법부의 적폐들이 하루빨리 말끔히 청소되길 빈다.
눈은 내리는데 속은 부글 끓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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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라 불린 남자 스토리콜렉터 5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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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쿨함이 마구 느껴지고 있다면, 그건 에이머스 데커가 당신 가까이에 있다는 뜻입니다.

 에이머스 데커, 이 남자 혹시 아시나요? 아신다면 당신은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읽어보신 분이겠군요. 우리에겐 아직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세계에선 스릴러 거장의 반열에 든 미국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 놀랍게도 데뷔 하자마자 발표한 작품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과 감독을 겸했던 영화 '절대 권력'으로 만들어졌었죠. '에이머스 데커'는 그의 대표적인 시리즈의 주인공입니다. 195센티미터의 거구. 소설에서 그를 본 이들은 자주 뚱보라 부르는 그는 지금의 몸매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 대학 때 미식 축구 선수로 프로까지 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 도중 사고로 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선수 생활을 접어야했죠. 사고가 남긴 건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머리에 받은 충격으로 뇌가 그만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려버린 것입니다. 과잉기억증후군이란 한 번 본 것은 절대로 잊지 않고 모조리 기억하는 증후군입니다.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부러워 할 능력을 그는 가지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에게 이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실은 저주였죠. 왜냐하면 형사 시절, 잠복을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와 딸이 무참히 살해되어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죠. 상실의 아픔은 망각에 기대어 치유되는 법인데 데커에겐 그것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바로 1분 전에 본 일처럼 아내와 딸에 대한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좋은 추억과 더불어 무참히 살해된 모습마저. 그것이 그를 망가뜨렸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데커가 그 어둡고 질척한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와 다시금 삶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였죠.


 거기에 바로 뒤이어 계속되는 이번 작품, '괴물이라 불린 남자'는 그런 데커가 자신과 똑같은 일을 겪은 멜빈 마스라는 남자를 자기처럼 삶의 환한 빛으로 인도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종교 소설인가 하시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아주 빼어난 스릴러 소설로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단 한 번도 손에서 놓여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흥미와 재미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줄거리를 대강 소개하면 이것을 바로 아실 겁니다.



 소설은 멜빈 마스로부터 시작합니다. 고교 시절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미식 축구 선수였던 그는 20년이 지난 현재 사형수의 몸으로 감방에 있습니다. 표지에 나와 있는, 철창에 갇힌 흑인이 바로 그인 것이죠. 왜 이렇게 급전직하의 삶을 살게 되었나? 그것은 그가 부모님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그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알리바이가 모조리 거짓으로 밝혀지는 바람에 그는 2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이제 사형 집행이 이뤄지는 날이 되었습니다. 마스가 사형을 당하려는 찰라, 갑자기 집행이 정지됩니다. 앨러바마 감옥에 수감된 또 다른 사형수 몽고메리가 마스의 부모를 자신이 죽였다고 자백한 것입니다. 오로지 경찰만 알고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은 사실을 몽고메리가 알고 있었기에 그의 자백이 신뢰를 얻어 마스의 사형 집행이 정지된 것입니다. 단순한 천운이었을까요?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 입니다. 그는 현재 전작에서 협력한 FBI 특수 요원 보거트와 함께 있습니다. 데커의 뛰어난 수사 능력을 알아본 보거트가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주로 유능한 외부 인사들을 모은 수사팀에 데커를 참가시킨 것입니다. 데커는 셜록에 버금가는 기억력과 추리력으로 왜 그가 이 수사팀의 에이스인가를 같은 팀의 동료 밀리건이 수사하자고 가져온 케이스의 허점을 단번에 간파하여 범인을 정확히 일러줌으로써 보여줍니다. 아마도 이 부분을 읽을 때 분명 저처럼 데커의 능력에 혀를 내두를 것입니다. 그런 데커의 눈에 마스와 몽고메리 케이스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에게 항상 죽음의 그림자를 알려주는 '일렉트릭 블루'의 뇌리 속 번쩍임과 함께 그는 이 사건에 뭔가 심상치 않은 게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여, 데커의 리드로 수사팀은 마스가 있는 텍사스로 날아갑니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여전히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있는 그 곳으로...


 흔히 반전이 마구 튀어나오는 것을 '반전의 반전'이라 말하는데, 이 소설이 정말 그렇습니다. 단순한 사건인 줄 알았는데 규모가 점점 커지고, 지금까지 알았던 사실과 전혀 다른 진실이 잇달아 밝혀지니까요. 그런데 이게 전혀 무리하거나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 전에 반전에 대한 단서가 다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주의 깊게 읽으면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발다치가 정말 아주 세부에 이르기까지 설정을 치밀하게 설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더군요. 정말 '와~!' 하게 되는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리도 이야기를 잘 발전시켜 나가지 하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정녕 전 세계 80개국에 그의 작품이 출간되고 지금까지 팔아치운 것만 해도 1억 3천만부나 되는 거장으로서의 풍모를 실감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단순히 스릴러적인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마스는 가장 불쌍한 존재인데, 그의 고통과 절망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그 내면의 파란을 독자가 잘 감응하도록 하였고 그러면서도 마스와 비슷한 경험을 한 데커 사이에 공감을 통한 인간적인 우정까지 감동적으로 연출해(특히 이 둘의 마지막 장면이 참 여운이 많았습니다.) 결국 인간이란 자신을 깊이 이해해주는 누군가의 연대가 있어야만 자신의 커다란 상처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작품을 뭐라고 표현할까요? 모자라는 제 머리론 그저 시쳇말이나 다름없는 '재미와 깊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작품'이라는 것밖에는 떠오르지 않는군요. 셜록의 두뇌와 필립 말로의 감성을 가진 탐정 캐릭터를 원하셨다면 꼭 이 작품을 만나 보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에이머스 데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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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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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에서 먹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싸우는 일이야 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 잘 싸워서 전쟁에 승리토록 하려면 잘 먹여야 할테니까요. 그래서 옛날 전쟁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언제나 장군을 괴롭히는 가장 커다란 문제는 보급로를 어떻게 적군으로부터 잘 지킬 것인가였죠. 현명한 장군은 적의 본진을 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보급로부터 끊어놓고 전투를 시작했구요. 당나라와 고구려가 혈전을 벌인 안시성 전투에서 보듯, 아무리 강한 군대라 해도 보급이 일단 끊기면 추풍낙엽이 되어 쓸려가는 것은 뻔한 운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허다하게 만들어진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이런 먹거리에 대한 것은 쉽게 무시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전쟁은 언제나 전투가 중심일 뿐, 그들이 뭘 어떻게 먹었나 하는 것은 그리 잘 나오지 않았죠. 그래서 이 소설이 더욱 제 눈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후키미도리 노와키의 '전쟁터의 요리사들'이란 소설이 말이죠. 놀랍게도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그토록 많은 전쟁 관련 작품에서 여지껏 단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취사병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있었거든요. 그것도 노르망디 상륙 이후의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해서 말이죠.



 이야기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있었던 1944년에 열 아홉살이던 에드워드 그린버그를 중심으로 시작합니다. 인생을 사는 낙이 먹는 것인 그는 열 일곱의 나이가 가지기 쉬운 영웅심과 모험심 때문에 군대에 지원합니다. 그러나 훈련 받던 도중 아무래도 군인이 자기 적성에 맞지 않다고 깨달은 그는 어느날 문득 조리병 모집 공고를 보고는 요리 잘하는 할머니 밑에서 내내 레시피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자랐던 그에게 조리병은 적성에 맞지 않을까 생각하고 거기에 응모, 결국 조리병이 됩니다. 그러나 곧 후회하고 맙니다. 군대 내에서 조리병의 평가가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이죠. 군인들에게 조리병은 흔히 '낙오자'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1944년. 미 육군 제101 공수사단에 배속된 그는 노르망디로 떠나게 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성공한 후에 전개됩니다. 바다가 아니라 낙하산으로 공중에서 강하하여 도착한 프랑스의 이즈빌 마을부터 시작하여 카랑탕을 지나선 연합군의 뼈아픈 실책이 된 마켓 가든 작전 수행 도중인 네델란드의 에인트호벤을 거쳐 미 육균 제101 공수사단의 가장 어려운 전투이기도 했던 아르덴에서 정점을 찍고 드디어 독일에 입성, 소설 속 최후의 거점인 쾰른에 이르기까지의 대장정이 주요 주둔지를 중심으로 모두 5장에 걸쳐 진행됩니다.




  각 장마다 그린버그가 소속된 취사 부대의 조리병 일행들이 낙하산이라든가 달걀 분말가루 등 전쟁이 아니었다면 잘 만날 수 없는 소재로 이루어진 미스터리를 마주하며 과거가 불분명한 '에드'라는 조리병이 탐정이 되고 그린버그가 왓슨이 되어 그것을 해결합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실제 전쟁 상황과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어 아주 실감나게 읽혔습니다. 작가가 자료 조사를 정말 많이 했는지 후방 부대에 있는 병사들의 일상이라든가 조리병들의 주로 했던 일이나 요리하며 부대 내 인종차별 문제 등 다른 데서 잘 볼 수 없었던 내용까지 두루 있어서 더욱 재밌게 읽었습니다. 한 가지, 라디오에서 밥 딜런의 노래가 나왔다는 부분은 명백한 오류로 흠이었지만요. 밥 딜런은 41년 생으로 44년 당시는 네 살이었죠. 혹시 동명 가수가 있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작품은 독특한 설정만으로 반을 먹고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제게 반은 먹고 들어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조리병이 주인공이란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탐정이 되어 전쟁이라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미스터리를 풀어간다는 것 역시 이 책에 대한 제 점수를 50점 부터 시작하게 만든 요소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전쟁이란 지극히 비일상의 시공인데, 거기에 일상 미스터리 장르를 섞었다니 이런 용감한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평소 소심한 저는 점수를 주고 싶네요. 그렇지만 시도 했다는 것만으로 점수를 주는 것은 역시 비합리적입니다. 그러나 기꺼이 높은 점수를 주려합니다. 그 시도가 꽤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었으니까요. 전쟁터에 어울릴만한 일상 미스터리가 나왔고 그것을 또 설득력있게 풀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전쟁이 가지고 있는 잔혹함과 비극 역시 놓치지 않았으니. 이건 뭐, 올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중 하나라고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네요. 그동안 너무나 비슷한 모습만 보여주는 일본 미스터리에 물리신 분들이라면 이 소설 추천합니다.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분명 일본 미스터리의 새로운 맛을 충분히 느끼게 할 겁니다.


 후카미도리 노와키가 일본이 한창 전쟁 가능 국가로 향해 가는 이 시점에서 하필이면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 이유는 명백합니다. 아베가 지금 획책하는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서죠. 이야기와 에필로그마다 세심하게 누벼져 있는 전쟁이 망가뜨리는 평범한 인간의 삶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베의 그런 정책이 좀 더 타오르도록 만드는 연료가 이방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에 기반을 둔 자국민 우월주의인데 소설은 거기에 대해서도 분명히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지요. 아예 챕터 하나를 거기에 할애해서 말이죠. 다시 말해,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동시대에 대한 작가의 우려가 깊이 배인 작품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 자체가 꽤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작가를 응원하고 싶네요. 물론 독일이 아니라 일본을 적군으로 삼아 주인공들이 싸우는 이야기를 그렸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최근에 나온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완전히 묘사한 것도 아니고 겨우 몇 구절로 '난징대학살'을 언급하는 바람에 우익에게서 거센 비난과 공격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작가로서 결코 쉽지 않을 선택이었을 겁니다. 최근 일본의 분위기가 좀 그렇죠. 그래서 더욱 '전쟁터의 요리사들'을 응원하고 싶네요. 뒤이어 더 많은 용감한 발언들이 나와 일본에서 횡행하고 있는 전쟁과 무력을 향한 무분별한 광기에 찬물을 끼얹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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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8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26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