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라 불린 남자 스토리콜렉터 5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디선가 쿨함이 마구 느껴지고 있다면, 그건 에이머스 데커가 당신 가까이에 있다는 뜻입니다.

 에이머스 데커, 이 남자 혹시 아시나요? 아신다면 당신은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읽어보신 분이겠군요. 우리에겐 아직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세계에선 스릴러 거장의 반열에 든 미국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 놀랍게도 데뷔 하자마자 발표한 작품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과 감독을 겸했던 영화 '절대 권력'으로 만들어졌었죠. '에이머스 데커'는 그의 대표적인 시리즈의 주인공입니다. 195센티미터의 거구. 소설에서 그를 본 이들은 자주 뚱보라 부르는 그는 지금의 몸매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 대학 때 미식 축구 선수로 프로까지 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 도중 사고로 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선수 생활을 접어야했죠. 사고가 남긴 건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머리에 받은 충격으로 뇌가 그만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려버린 것입니다. 과잉기억증후군이란 한 번 본 것은 절대로 잊지 않고 모조리 기억하는 증후군입니다.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부러워 할 능력을 그는 가지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에게 이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실은 저주였죠. 왜냐하면 형사 시절, 잠복을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와 딸이 무참히 살해되어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죠. 상실의 아픔은 망각에 기대어 치유되는 법인데 데커에겐 그것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바로 1분 전에 본 일처럼 아내와 딸에 대한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좋은 추억과 더불어 무참히 살해된 모습마저. 그것이 그를 망가뜨렸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데커가 그 어둡고 질척한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와 다시금 삶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였죠.


 거기에 바로 뒤이어 계속되는 이번 작품, '괴물이라 불린 남자'는 그런 데커가 자신과 똑같은 일을 겪은 멜빈 마스라는 남자를 자기처럼 삶의 환한 빛으로 인도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종교 소설인가 하시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아주 빼어난 스릴러 소설로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단 한 번도 손에서 놓여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흥미와 재미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줄거리를 대강 소개하면 이것을 바로 아실 겁니다.



 소설은 멜빈 마스로부터 시작합니다. 고교 시절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미식 축구 선수였던 그는 20년이 지난 현재 사형수의 몸으로 감방에 있습니다. 표지에 나와 있는, 철창에 갇힌 흑인이 바로 그인 것이죠. 왜 이렇게 급전직하의 삶을 살게 되었나? 그것은 그가 부모님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그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알리바이가 모조리 거짓으로 밝혀지는 바람에 그는 2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이제 사형 집행이 이뤄지는 날이 되었습니다. 마스가 사형을 당하려는 찰라, 갑자기 집행이 정지됩니다. 앨러바마 감옥에 수감된 또 다른 사형수 몽고메리가 마스의 부모를 자신이 죽였다고 자백한 것입니다. 오로지 경찰만 알고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은 사실을 몽고메리가 알고 있었기에 그의 자백이 신뢰를 얻어 마스의 사형 집행이 정지된 것입니다. 단순한 천운이었을까요?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 입니다. 그는 현재 전작에서 협력한 FBI 특수 요원 보거트와 함께 있습니다. 데커의 뛰어난 수사 능력을 알아본 보거트가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주로 유능한 외부 인사들을 모은 수사팀에 데커를 참가시킨 것입니다. 데커는 셜록에 버금가는 기억력과 추리력으로 왜 그가 이 수사팀의 에이스인가를 같은 팀의 동료 밀리건이 수사하자고 가져온 케이스의 허점을 단번에 간파하여 범인을 정확히 일러줌으로써 보여줍니다. 아마도 이 부분을 읽을 때 분명 저처럼 데커의 능력에 혀를 내두를 것입니다. 그런 데커의 눈에 마스와 몽고메리 케이스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에게 항상 죽음의 그림자를 알려주는 '일렉트릭 블루'의 뇌리 속 번쩍임과 함께 그는 이 사건에 뭔가 심상치 않은 게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여, 데커의 리드로 수사팀은 마스가 있는 텍사스로 날아갑니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여전히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있는 그 곳으로...


 흔히 반전이 마구 튀어나오는 것을 '반전의 반전'이라 말하는데, 이 소설이 정말 그렇습니다. 단순한 사건인 줄 알았는데 규모가 점점 커지고, 지금까지 알았던 사실과 전혀 다른 진실이 잇달아 밝혀지니까요. 그런데 이게 전혀 무리하거나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 전에 반전에 대한 단서가 다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주의 깊게 읽으면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발다치가 정말 아주 세부에 이르기까지 설정을 치밀하게 설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더군요. 정말 '와~!' 하게 되는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리도 이야기를 잘 발전시켜 나가지 하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정녕 전 세계 80개국에 그의 작품이 출간되고 지금까지 팔아치운 것만 해도 1억 3천만부나 되는 거장으로서의 풍모를 실감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단순히 스릴러적인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마스는 가장 불쌍한 존재인데, 그의 고통과 절망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그 내면의 파란을 독자가 잘 감응하도록 하였고 그러면서도 마스와 비슷한 경험을 한 데커 사이에 공감을 통한 인간적인 우정까지 감동적으로 연출해(특히 이 둘의 마지막 장면이 참 여운이 많았습니다.) 결국 인간이란 자신을 깊이 이해해주는 누군가의 연대가 있어야만 자신의 커다란 상처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작품을 뭐라고 표현할까요? 모자라는 제 머리론 그저 시쳇말이나 다름없는 '재미와 깊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작품'이라는 것밖에는 떠오르지 않는군요. 셜록의 두뇌와 필립 말로의 감성을 가진 탐정 캐릭터를 원하셨다면 꼭 이 작품을 만나 보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에이머스 데커'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