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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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가면(MASK)' 한번쯤 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현대란 어찌보면 가면을 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인지도 모릅니다.

 

 상사에게 야단 맞을 때는 아무리 억울해도 수긍한다는 가면을 써야 하고 시시하기만 한 상사의 농담에도 아주 웃겨 죽겠다는 가면을 써야 합니다. 이런 저런 가면을 하도 많이 쓰다 보니 어느 때는 진짜 내 얼굴이 무엇인지 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조직사회에서 버티려면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납득시키지만 점점 진짜 나를 잃어간다는 상실감에서 오는 씁쓸함은 달랠길이 없죠. 그리고 보니 프로이트도 여기에 대해 말했던 것 같군요. 사회는 개인의 솔직한 욕망들을 인정하지 않는데 ( 그렇게 되면 너무도 다양하고 한계가 없는 개인의 욕망 때문에 사회의 지속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개인들이 그 사회에 끼어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짜 욕망을 감추고 사회가 원하는 가면을 쓸 수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그 때 개인들이 쓰게되는 가면을 프로이트는 가면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페르소나'라고 불렀습니다. 프로이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실은 사람의 자아라는 것 자체가 페르소나에 불과하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만큼 가면이란 우리에게 필수이며 스스로 다른 것으로 꾸미는 위장은 삶과 불가분 관계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죠.

 

  이렇게 보자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생활 25주년을 기념하는 작품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그대로 우리 삶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호텔 이름이 사실은 '코르테시아도'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가면무도회를 뜻하는 '매스커레이드'라 이름 붙인 게 아닌가 싶어지네요. 아마도 제목 자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에서 무엇을말하려는지 직접 드러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코르테시아도 호텔의 프런트 담당 나오미는 손님이 호텔에 머무르는 동안만은 최상의 만족을 얻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열혈 호텔리어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하루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떨어지는데요, 그것은 최근 도쿄에서 잇따라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 수사를 위하여 경찰들이 호텔 직원으로 위장 취업하게 되었다는 그것입니다. 형사로서의 자질은 어떨지 몰라도 호텔리어로서는 초심자라 어설프기 짝이 없어 손님들의 기분을 망치고 호텔의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 분명한 그들이 나오미로서는 여간 달갑지가 않은데요. 그래서 나오미는 결심합니다. '연쇄살인 수사야 어쨌든 아무리 형사라고 해도 호텔에서 일하는 동안은 호텔리어가 우선이야! 어엿한 호텔리어가 될 수 있도록 내가 가르치겠어!'라고 말입니다. 그것도 아주 단단한 각오로!

 

  이 각오에 희생양이 된 사람이 바로 경시청의 닛타입니다. 사실은 그 역시 이 호텔 직원 위장 수사가 그리 달갑지가 않았어요. 연쇄살인사건의 유일한 단서인 암호를 뛰어난 추리로 해독해낸 그이니만큼 호텔에서 언제올지 모르는 범인을 기다리기 보다는 바깥에서 단서들을 찾아내어 추리를 통해 숨어있는 범인을 추적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죠. 하지만 명령은 명령. 본심을 숨기고 순종하는 가면을 쓸 수 밖에요. 그것만으로도 실은 괴로워 죽을 지경인데 이 나오미란 여자는 수사를 위해 임시로 쓴 것에 불과한 호텔리어라는 가면을 자신의 진짜 얼굴이라는 듯이 시종일관 가르치고 야단치고 성가시게 굴고 있으니 더욱 고달플 수 밖에 없습니다. '제길! 나는 형사라구!' 몇 번이나 그렇게 어필해 보지만 투철한 신념의 소유자 나오미 앞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일 뿐!

 

 

  여기까지 이르면 우리는 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소설은 제목 자체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던 대로 가면과 위장이 핵심이라는 것이 말이죠.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그것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 바로 그것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통해 보여주려 합니다. 그것에 다가가기 위한 첫 걸음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람들이 가면을 쓴다는 것을 알았을 때 보이게 되는 반응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불륜의 장소로 자주 애용되는 호텔을 소설의 주된 공간적 배경으로 가져온 까닭입니다. 만일 당신이 호텔의 프런트 직원이라면 불륜이라는 자신의 진짜 욕망은 숨기고 그저 잠만 자러온 것 처럼 가면을 쓰고 온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겠죠. 거짓말엔 개인차가 존재하니 능숙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서투른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그 가면을 쓴 자들 앞에서 당신의 반응은 어떤 것일까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바로 그 질문을 위하여 호텔이라는 배경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예 소설에는 불륜을 저지르기 위해 호텔에서 사용하는 교묘한 속임수마저 등장하기까지 하지요. 이것까지 고려하면 바로 이 질문이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문 자체라고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바탕해서 보자면 사람들이 타인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가 그 가면 아래 깃들어 있는 진짜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쓰고 있는 가면을 그게 진짜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를테면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각시탈에서 어떻게든 각시탈을 벗겨서 그 정체를 알고자 했던 일본 형사 슌지가 전자에 해당한다고 한다면 각시탈의 정체가 누구이건간에 그 활약만으로 환영했던 조선 백성들은 후자라 할 수 있겠네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에서 이 두 가지 반응을 다 고려하고 있다고 하겠는데요. 그것은 정확히 그 두 반응이 소설 속에서 각각 하나의 인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앞서 말한 나오미와 닛타 입니다.

 

 소설 속에서 형사 닛타는 프런트에서 내보인 손님의 가면에 만족하지 않고 의심하고 의심해 어떻게든 그들이 쓴 가면을 벗기고 맨 얼굴을 드러내보이고자 합니다. 반면에 나오미는 설령 그들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그들의 맨얼굴을 상관하지 않습니다. 가면을 썼다면 나름대로의 속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가면을 가면 그대로 존중해 줍니다. 그렇게 둘은 상반되면서 가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각각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닛타와 나오미 커플은 바로 소설의 주인공들 입니다. 그렇다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두 반응들을 모두 아우르면서 그 진정한 해답을 추구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닛타와 나오미는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탐정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게이고의 뛰어난 점은 주제에 천착하느라 미스터리를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를 끝까지 몰입시키는 필력은 여전할지 몰라도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은 많이 퇴색되었다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만 이 '매스커레이드 호텔'만은 거기에 대해 제대로 된 카운터 펀치를 먹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쇄 살인 사건마다 남겨진 수수께끼의 숫자 암호를 푸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범행 수법의 교묘함이나 범인의 의외성이 가져다 주는 반전의 맛 또한 기가 막히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만으로써도 25주년이라는 기념작에 충분히 값할만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욱 주목하고 싶은 것은 주제와 관련해서 닛타와 나오미가 보여주는 서로 다른 추리의 특색 입니다. 거기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하필이면 커플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는지 그 이유가 더욱 드러나게 되는데요, 그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반응 못지 않게 그 반응들이 또 어떻게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아울러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그들 각자의 추리 스타일인 것이죠. 탐정으로 활약하는 닛타와 나오미는 가면에 대한 반응만큼이나 추리 스타일도 상극인데요. 비유하자면 닛타가 C S I 같다면 나오미는 브라운 신부와 같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닛타는 C S I 가 드러난 물리적 증거만을 추적하듯이 철저히 사건의 보여지는 부분에 천착합니다. 그에겐 행위의 결과만이 중요할 뿐 행위자가 처했던 상황이나 그 마음의 과정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닌 것이죠. 반면 나오미는 닛타가 무시하는 것들이 오히려 더 큰 주목의 대상이 됩니다. 왜 하필이면 그가 그때 그렇게 해야 했을까가 나오미가 가장 많이 묻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해 닛타가 그 겉모습만 보는 사람이라면 나오미는 그 안에 숨겨진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이 가면에 대해 보여주는 반응과 정확히 반대입니다. 가면 보다는 그 안에 숨겨진 맨 얼굴을 보려고 했던 닛타는 그 반응대로라면 나오미처럼 행동했어야 했었습니다. 가면 그 자체를 본 모습만큼이나 존중했던 나오미는 그 반응대로라면 닛타처럼 행동했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죠. 그들은 완전히 거꾸로 행동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밖에 없겠죠.

 

 '히가시노 게이고는 왜 이렇게 아이러니한 모습을 연출했을까?'

 

 바로 여기에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녹아들어 있지는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해답은 그 반전된 태도에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 마디로 이것은 '가면에 대한 진실과 존중의 문제'입니다. 닛타는 진실을 나오미는 존중을 상징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우리는 진실을 최우선적 가치로 고려합니다. 존중도 진실을 기반으로 했을 때 정당하다 여깁니다. 그래서 흔히들 가면을 쓴다는 것에 가식적이라 경멸을 보내고  자신이 그것을 써야만 할 때는 씁쓸함을 느끼는 것이겠죠.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닛타를 통해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게 꼭 진실을 따져보는게 좋은 것인가? 진실과는 상관없이 그저 존중만 해주면 안되는 것인가?' 하고 말이죠. 그 반문을 위한 존재가 바로 나오미 입니다. 반문은 보통 해답을 미리 가지고 있는 경우에 내어놓는 것입니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도 마찬가지죠. 그의 해답은 다름아닌 나오미에게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닛타의 추리가 가로막혔을 때 마다 활로를 열어주는 것이 바로 나오미라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아니, 나오미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존재가 있죠. 닛타와 파트너로 나오는 나이 든 형사. 타인을 대하는 태도나 생각에서 여러모로 나오미와 유사한 그 형사 역시 닛타가 올바른 해결을 향해 가도록 때때로 출구를 열어줍니다. 보다 더 결정적으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 진짜 원인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답을 더욱 명확하게 말해줍니다.(이것은 중대한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빼겠습니다. 아마도 읽으시면 제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곧 알게되리라 생각합니다.)

 

 

 

                        가면에 대해 진실 보다는 존중에 우위를 두는 나오미를 그려 봤습니다.^ ^

 

 결정적으로 이것은 우선순위에 대한 것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나 나오미를 통해 내어놓는 대안은 진실 보다는 먼저 존중에 더 우위를 두자는 것이죠. 그래서 나오미라는 캐릭터를 손님이라는 타인의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열혈 호텔리어로 만든 것입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무리할 것이 뻔한 타자의 요구에 최선을 다해 응대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죠. 오히려 그러한 나오미의 모습이 너무나 바보같아서 독자인 우리들 속이 다 답답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결코 거기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습니다. 형사로서의 신념이라면 누구에게도 절대 지지않는 닛타 역시 굴복시킬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둘의 신념이 가장 강하게 맞부딪히는 장면이 있었죠. 바로 경찰들이 범죄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일어날 걸 알면서도 호텔 측에 숨긴 것을 나오미가 알게 될 때였습니다. 그것은 타자의 입장을 먼저 고려한다는 나오미의 신념과 드러난 진실만을 쫓는다는 닛타의 신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독자는 그 때 닛타의 편에 서서 나오미의 결단을 답답하게 여겼을지 몰라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지지한 것은 결국 그녀의 그런 우직한 결단이었습니다. 결국 그녀가 옳았기 때문이었죠. 닛타는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호텔측의 상황 따위 상관하지 않았지만 나오미는 범인 체포를 위해 헌신적으로 뛰었던 그들의 심정을 먼저 헤아렸고 그래서 결국 자신의 태도를 양보 했습니다. 닛타는 보다 더 좋은 결과를 위해서면 지금의 작은 희생 따위 치뤄도 좋다고 여겼지만 나오미는 아무리 작은 희생이라해도 그것은 끝까지 보호되어야 한다고 여겼죠. 바로 이것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지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닛타가 보여주는 태도는 바로 나치즘을 낳고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을 불러왔으며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종교를 이유로 한 테러리즘에 이르기까지 온갖 비극을 낳았던 '근대성(modernity)'이 지녔던 태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구조주의 시학'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츠베탕 토도로프는 '민주주의 내부의 적들'이라는 최근의 책에서 그것을 두고 '정치적 메시아주의'라 불렀습니다. 그는 정치적 메시아주의가 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을 단적으로 '나 아니면 안된다' '보다 더 나은 대의를 위해서라면 작은 희생은 얼마든지 치뤄도 좋다'고 정의했는데 이것은 닛타가 보여주는 태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토도로프는 그 책에서 최근의 이라크 전쟁까지 정치적 메시아주의가 얼마나 많은 비극을 가져왔는지 낱낱이 열거하고 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가 나오미의 손을 들어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현대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면 바로 나오미의 우선은 존중 부터 하고 진실은 그 다음에 추구하는 그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죠.

 

 이것이 히가시노 게이고가 코르테시아도 호텔에서 한바탕 치뤄진 가면무도회를 통해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보여주려 했던 진심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미스터리적으로도 좋았지만 현대가 만들어내는 비극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것을 극복할만한 대안을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쓸 수 밖에 없는 '가면'이라는 것을 통해서 제대로 풀어나갔다는 점에서 더욱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더구나 미스터리와 주제의 깊이를 동시에 추구할 경우 대부분 하나를 소홀히 하게 되거나 따로 놀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러지 않고 미스터리 자체가 천착하고 있는 주제와 유기적으로 잘 맞물려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주제를 보다 명확히 하고 깊이있게 만드는데 확실히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만족스러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상에서 가면을 쓴다는 것에서 느꼈던 씁쓸함을 조금쯤은 지울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서 별로 만족을 못 느꼈던 분들에게는 오랜만에 다시금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 외칠 수 있도록 할만한 작품인 것 같네요. 팬이 아니시더라도 미스터리가 천착하고 있는 주제와 어떻게 엮이어야 하는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니만큼 보다 깊이 있는 미스터리를 원하신다면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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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9-09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헤르메스님 그림 자주 그리시는 군요 ㅎㅎ
타블렛이라도 하나 장만하셨습니까? ㅎㅎㅎ

오드득 2012-09-09 22:25   좋아요 0 | URL
뭔가 새로운 변화를 줘 보려는 시도로 이해해줘요.^ ^
그런데 자꾸 그리다보니까 이거 꽤 재미가 붙는 걸요.^ ^

이진 2012-09-10 00:09   좋아요 0 | URL
그림에 소질(?)이 있으신걸요 ㅋㅋㅋㅋ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 - 시스템이 붕괴된 한국 사회의 아찔함을 읽다
이정국.임지선.이경미 지음 / 레디셋고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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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일의 철학자 헤겔에 따르면 사람에겐 근본적으로 타인들로 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고 합니다. 헤겔은 심지어 그 욕망을 근본 중의 근본, 즉 가장 주된 욕망으로 보고 사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들은 바로 그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생겨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저마다 내는 목소리들로 넘쳐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쳇말로 목소리 큰 자가 이긴다는 말도 있듯이 정작 우리들에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모든 목소리가 아니라 힘있고 돈있는 자들의 목소리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확성기와도 같은 그들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만 볼륨을 크게 높여주는 언론들까지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에 대한 가까운 예가 하나 있지요. 바로 얼마전에 많은 이들을 화나게 만들었던 전기요금이 바로 그것입니다. 올 여름은 정말 더웠습니다. 낮에도 더웠고 밤에도 더웠습니다. 정말 살인적인 더위였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많은 분들이 이 폭서로 인해 운명을 달리하시기도 했습니다. 사람들 뿐만이 아닙니다. 돼지도 닭도 더위에 죽었습니다. 살인적인 더위일뿐만 아니라 살돈(殺豚), 살계(殺鷄), 살견(殺犬)의 여름이었습니다.(아, 살견은 아니군요. 더위 보다는 사람 손에 더 많이 죽었을테니...) 그런 더위니 많은 이들이 에어컨의 힘을 빌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평소보다 몇 배나 되는 전기요금을 치러야 했습니다. 거기다 정부는 그동안 숱하게 블랙아웃을 경고하며 우리 가정용 전기를 아껴 써라고 으름장을 놓아 자기 에어컨을 켜는데도 어쩐지 조바심을 느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가정용은 전체 전기 사용량에 겨우 10%남짓을 차지할 뿐입니다. 아무리 아껴라고 얘기를 해봐야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죠. 전체 사용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산업용 입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기업 프렌들리를 외치는 이 정부는 변함없는 수출량은 위해서는 여기의 전기를 아껴서는 안되니 가정용이 대신 희생을 치뤄야 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가정용은 겨우 도토리 수준. 아무리 굴러보았자 수박 한 번 구르는 걸 당해내겠습니까. 사실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세계 수준으로 보아도 비싼 편입니다. 하지만 전력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번에도 한전은 가정용을 또 4.6%를 인상했죠. 물론 산업용은 그대로 두고 말이죠. 이건 뭐 경제위기는 다 같이 겪는데 그 희생은 모두 가정용의 등에다 짊어지게 하는군요. 어차피 수출이 잘된다고 해도 낙수효과는 없다는 것이 증명된 마당에 삥 뜯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을 당하면서 어디까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인지 서민들의 가정이 대기업들을 위한 총알받이들인가요.

 

 하지만 올 여름 내내 들려온 목소리는 모두 정부의 목소리 뿐이었습니다. 이 같은 현실을 알리고 전기 요금의 부당함을 알리는 목소리는 우리에게 전혀 들려오지 않았죠. 이번에 맞은 요금 폭탄으로 이제야 누진제에 대한 화난 여론의 목소리가 불붙듯 일어나니까 그제서야 조정 국면에 들어가는 시늉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지 않고 가만있으면 그 누구도 신경써 주지 않습니다. 미국도 그렇죠. 미국에서도 선거를 치를 때 실제 정책으로 만들 공약을 펼치는 대상은 오로지 중산층 뿐입니다. 자신의 한 표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계층을 위해서만 그들의 구미를 돋굴 수 있는 공약을 마련한다는 말이죠.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일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는 엄연히 필터링이 존재합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특히 언론들이죠. 이미 언론인 사명 따위는 화석과 같은 존재가 된지 옛날이라 정경과 유착해도 언론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오로지 그들이 원하는 것만 내보낼 뿐입니다. 영화 '브이 오브 벤데타'에서 처럼 모든 독재국가가 독재자 하나의 목소리만 퍼뜨리듯이 우리의 귀에도 그들의 목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 목소리에 가려진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의 목소리들은 전혀 들려오지 않습니다.  오로지 저 홀로 울려 퍼지는 커다란 목소리는 G20 때 처럼 온갖 장밋빛 전망을 내어놓지만 그 아래 가리워진 목소리들의 주인공들은 60년대에도 겪었고 70년대에도 겪었고 80년대에도 겪었던 그 고통 그대로를 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역사는 오로지 그 목소리들의 주인공에게서만 발전했을 뿐, 가리워진 목소리의 주체들에게 있어서는 역사는 한 번도 나아간 적이 없습니다.

 

  경제위기는 점점 가시화되고 있고 이제 여기저기서 보다 분명한 신호로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의 목소리에만 취해서 몰랐던 현실을, 진실을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작은 목소리들을 우리가 먼저 나서서 찾아 들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012년 한국 언론 인권상 수상작인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는 바로 그 신호에 응답하는 책입니다.

  우리에게 들려오지 않았던, 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우리 이웃들의 작은 목소리를 모아 들려주는 책입니다.

 


 

 

 여기에는 날마다 원치 않아도 웃느라 감정을 착취당하는 감정노동자의 목소리도 있고 어차피 배경으로 선정될거면서 괜한 희망 고문으로 마지막에 가서는 늘 절망만 안게 되는 인턴 사원의 울컥하는 목소리도 있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출산을 장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임신했다는 이유 하나로 차별을 받는 직장맘들의 목소리도 있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학업을 중단하기를 반복하다가 끝내 자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의 목소리도 있고 아직도 연탄을 땔 수 밖에 없어서 날마다 연탄 가스 중독을 두려워하고 살아야 하는 이의 목소리도 있으며 유학와서 개발도상국 출신이란 이유로 차별을 받는 유학생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여기엔 평소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도 있고 잘 알고는 있으나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던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들을 통해 미처 몰랐던 현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무심했던 예전을 탓하며 좀 더 관심을 두리라 결심하게도 됩니다. 하지만 이 책이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 실린 22개의 목소리가 모두 이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 주인공이 되어보았을 목소리라는 사실입니다. 네, 이것은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일 수도 있고 어쩌면 과거에 아니면 장차 다가올지도 모를 그런 목소리 입니다. 내게서 저만치 떨어진 목소리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바로 나 자신의 목소리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몰랐던 현실을 알게 되거나 무심했던 현실에 관심을 가지거나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의 몫이 될지도 모르는 이 모든 상처와 고통을 잉태하고 있는 목소리를 끊어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차원까지 말이죠.  그리고 아마도 그 고민의 끝엔 그것을 위한 우리의 목소리가 하나의 실천으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이 지향하는 것은 이제 우리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상존하고 있는 이 목소리들의 고통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말이죠. 진실은 때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발휘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기 때문이겟죠. 그 자리에 바로 나 자신도 설 수 있음을 말이죠.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는 그런 책입니다. 당신이 잊고 있었던 혹은 잃어버렸던 목소리를 되찾아주는...

  이제 당신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자, 두 팔을 힘껏 벌리고 외치세요.

 

  "HEAR MY V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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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진보
심보선.장석준.박상훈 외 지음 / 이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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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시기를 사람들은 진보의 무덤이라 말한다. '지금 여기의 진보'에는 홍세화의 글이 마지막에 실려 있는데 지금 진보신당 대표인 그가 총선의 저조한 득표율로 당이 취소되고 다시 당사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맞딱드린 현상은 이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여의도 당사를 비워져야 할 기일을 다가오는데 새로 옮길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결국 한 달 보름이 걸려서야 겨우 계약할 수 있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당 이름을 말하는 순간 건물주가 바로 고개를 가로젓는 일이 허다했고 심지어 계약을 하고 나서 취소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사태 이후 벌어진 풍경이었다. '우리(진보신당)는 그 당(통합 진보당)이 아니'라거나 구차함을 무릎쓰고 우리는 당이 아니라 준비하는 단체라고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p. 283~ 284)

 

 하지만 진보는 이번 총선까지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 진보진영의 주체가 모여서 만들어진 통합 진보당은 눈부신 성공을 이루었다. 지역구 의원 7명에 비례대표 6명. 모두 13명의 의원을 산출했을 뿐만 아니라 제3당으로까지 그 지위가 격상했다. 바야흐로 이제 좀 진보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때가 왔다고 다들 기대가 컸다. 그것으로 총선의 결과가 준 실망감에 대한 위안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기대와 위안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구당권파의 선거 조작이 탄로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뒤통수를 더 강하게 내리쳤던 건 다른 데 있었다. 비록 부정 선거가 이루어졌어도 도덕적인 것을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진보답게 그 선거로 인해 당선된 사람들이 자진 사퇴했으면 좋게 마무리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진보라는 이름표를 붙인 자로는 정말 어울리지 않게 사퇴를 하지 않고 버텼으며 그들의 세력인 구당권파는 온갖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들을 비호했다. 더구나 그들의 사퇴를 의결하기 위해 모인 대의원 회의때는 12시간이 넘는 동안 조직적인 의사 방해 공작으로 우리 모두의 공통된 가치인 민주주의마저 망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래도 그들은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들은 당당했고 오히려 부정선거로 당선된 자들을 정당하게 사퇴시키려 하는 사람들을 음모라며 공격했다. MB정권 때 가장 많이 썼던 사자성어는 바로 '후안무치'였다. 정확히 그 때의 구당권파도 거기에 막상막하였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적어도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 다음날 모두 쌍욕이 작렬했다. 배신의 정도가 컸던 한 사람은 지금도 진보란 말만 들어도 진동 모드의 휴대폰처럼 부르르 떨기도 한다. 그렇게 진보는 비오는 날의 쓸모없는 전단지처럼 바닥에 버려졌다. 진보의 깃발은 남의 말은 전혀 들을 줄 모르는 막귀에다 자기 목소리만 크게 낼 줄 아는 입을 가진 자들의 손에 의해 갈가리 찢겨지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진보의 신념 따위는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치고 비민주와 불합리로 무장한 자들에 의해 무너졌다.

 

 진보가 살던 동네는 이제 폐허만 남았다.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사람들은 귀신이 나온다는 흉가나 폐가를 보듯 멀리 떨어져서 이제 그곳을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무시도 오래갈 수 없다. 거기를 보지 않으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보다 훨씬 더 어둡고 희망없는 세상이 빵셔틀을 하려는 일진들 처럼 '씨익' 웃으며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도 없고 돈도 없는 약자들은 언제나 그 모든 것들을 가진 자들의 총알받이로 살아야 하는 세상이. 그래서 네거리만 나가면 만나게 되는 편의점 마냥 상처와 절망을 받게 되는 세상이 말이다. 그러니 '그래, 똥 묻는 개보다는 그래도 겨 묻은 개가 낫겠지' 싶어서 진보를 포기하지 않게 된다. 그나마 약자가 살려면 그래도 진보가 좀 나아보이니까. 다시 말해 지금의 세상이 영혼을 익사시킨다고 한다면 진보는 적어도 조금의 숨통은 풀어줘서 자맥질이라도 할 수 있게는 해주니까...

 

 그래서 다시 찾았다. 망해버릴대로 망해버린 진보지만 다 타버린 건물 더미에서 쓸만한 것을 건져내듯 다시금 진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싶었다. 여전히 완전히 믿지는 못해도 칠흙 같은 어둠 보다는 그나마 반딧불 정도의 밝기라 해도 빛이 있는게 나으니까. 오늘의, 너무도 어이없어서 오히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 사태를 보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거쳐야 했던 시행착오로 여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보게 된 책이다. '지금 여기의 진보'라는 책은...

 진보진영 10명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내게 꼭 진보 위에 드리워진 무덤 속 같은 깊은 어둠 속을 저마다 홀로 날아다니고 있는 진보의 목소리라는 반딧불 하나 하나를  채집해 모아 놓은 유리병 같았다. 진보 진영에서는 제법 명망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무너진 진보를 어떻게 새로운 축대와 서까래로써 다시 새롭게 지을 것인가 그 고민이 담겨있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의 고민들이라는 것이다. 즉 이 책은 어떤 하나의 줄기 아래 같은 이야기를 하자고 모인 책이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진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저마다 생각한 것을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광장이다. 그래서 군무가 아니라 독무다. 개성을 가진 열 마리의 반딧불이 저마다의 빛깔로 사람들의 앞길을 비춰주고자 모여 청사초롱과 같은 빛을 내는 것. 그게 바로 '지금 여기의 진보'라는 책이다.

 

 그러므로 순서에 구애받을 필요도 없다. 마음에 드는 이 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이 열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뿌려내는 다채로운 색깔들은 잭슨 폴락의 액션 페인팅 처럼 당신 앞에서 진보라는 그림으로 탄생한다. 시인이자 사회학자 심보선은 진보의 개념이 옛 것 그대로가 아니라 오늘에 맞게 새롭게 설정되어야 함을 말하고 현재 진보신당 창당준비위회 정책위원회 의장인 장석준은 이제 진보가 녹색사회주의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번 총선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녹색당이 참여했었다.)  후마니타스 출판사 대표인 박상훈은 진보가 대중들의 사랑을 어떻게 하면 받을 것인가를 현실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번역해서 더욱 유명해진 홍기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살림살이 경제학을 다시 되살려 그것을 하나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한다. 이렇게 이 책은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열 명의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고유의 선율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진보에 대한 그들이 가진 고민의 깊이는 비슷하고 그것을 그저 말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하여 진지하게 접근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서 모아놓고 들으면 불협화음의 아니라 근사한 오케스트라가 된다.

 

  마음을 도닥여주고 평화로움에 젖게 하다가 나중에는 웅대한 비젼을 연출하여 저절로 희망을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오케스트라 말이다. '지금 여기의 진보'는 그런 희망을 위해 열 명의 반딧불들이 연주하는 빛의 오케스트라이다. 일독(一讀)이 아니라 일청(一聽)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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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변화경영사상가라는 구본형(나는 사실 이 분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다른 리뷰를 보니 꽤나 많이 알려진 분이라 다소 놀랐다.)에게 있어 신화란 하나의 접점이다.

 단순히 그리스라는 먼 나라에 존재하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바로 우리 삶과 연결되는 살아있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구본형의 이 책, '신화 읽는 시간'은 카이로스(kairos)적이다.

시간이 단순히 언젠가는 닥쳐올 사멸을 위하여 그저 일직선으로만 움직이는 크로노스의 시간이었다면 구본형의 신화는 그저 해묵은 과거의 허황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더 헤집어 보는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지금 여기의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그래서 물리적으로 객관적인 시간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주관적인 시간의 의미를 더 중시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에서라면 구본형의 신화는 더이상 먼지를 뒤집어 쓴 과거의 유물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신화를 언제나 바로 오늘 우리의 동반자로 초대하기에 오히려 마치 갓잡은 참치의 날뛰는 생생한 푸르름 처럼 선연하게 살아 숨쉬는 존재가 된다.

 

 거기서 구본형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래서 신화 속 아라크네 처럼 오늘의 우리 삶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관련하여 신화에 깃든 의미들을 쉼없이 자아내여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여 우리의 사유가 입을 수 있는 하나의 옷으로 만든다.

 

때로는 여름 날 삼베옷 처럼 왜 이렇게 사는지에 대한 우리 마음의 갑갑증을 시원하게 풀어주고

때로는 겨울 날 두터운 스웨터처럼 한파와도 같은 현실을 이기기 위한 따스한 희망을 전해주는...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은 그런 책이다.

 

 여기서 구본형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한다.

 하나는 너무도 방대해서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그리스 신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한 눈에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파악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문제들과 관련하여 그리스 신화가  그것을 슬기롭게 풀어 갈 어떤 혜안들을 가지고 있는지 수박을 쪼개어 그 빨간 속을 드러내듯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신화의 지식만이 아니라 그 혜안들을 통해서 나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힘까지 얻을 수 있도록...

 

모든 신화는 자신의 과거를 죽이고 새롭게 태어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바로 변화의 정수다. 신화는 모험을 통한 변화의 이야기이다. 나의 신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나의 세계가 없는 평범한 삶에서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세계를 창조해냄으로써 내 안에 신의 세계를 구현해가는 과정이다. 스스로 주도하고 고난과 맞서고 마침내 세상에 자신의 작은 왕국 하나를 건설해나가는 이야기다. 성공과 실패가 하나의 물결처럼 서로를 교환하는 것, 승리와 환희와 패배와 모멸이 온몸을 휩싸는 일에 뛰어드는 것, 모든 신화는 바로 이 무수한 모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나'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을 시작하도록 부추긴다. (p. 15)

 

 이러한 새로이 나를 찾아주는 이야기가 이 '신화 읽는 시간'이라는 판도라 상자에는 모두 29개가 담겨있다. 그 중에는 욕망의 전성시대라고도 일컫는 우리 시대에 있어 그 욕망의 덧없음을 말하는 아프로디테의 이야기도 있으며 분노가 점증하는 이 시대에 있어 그 화를 절제하는 법을 가르켜줄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도 있다. 혐오가 사실은 엄청난 창조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음을 일러주는 피그말리온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 비극을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다이달로스의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구본형은 그저 신화의 이야기만 담지 않는다. 그가 새롭게 발굴해낸 의미가 더욱 설득력을 가지도록 문학과 영화는 물론 예술과 철학까지 동원한다. 혐오에게 간직된 창조 에너지를 보다 설득력있게 하기 위해 그는 니체와 살로메의 이야기를 가져오며 '무사유'가 불러 일으키는 악에 대해서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가져온다.

 

 그렇게 구본형은 그 이야기가 간직한 빛을 조금도 잃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이야기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연결한다.

 그야말로 신화를 접점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학창시절 때, 우리나라 고전문학을 가르치시던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이 분의 수업은 정말 우리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그건 특히 사자성어 때문이었다.

 그 분이 가르치는 사자성어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냥 사자성어 뜻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유래된 역사적 사건을 방대한 역사적 지식으로 참으로 쉽고도 재미나게 설명해주셨기 때문이다. 마치 사자성어가 그냥 네 개의 글자가 아니라 그 한 자, 한 자가 저마다 무궁한 의미로 살아 숨쉬는 하나의 세계를 포함하고 있는 듯 했다.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을 읽으면 그 분이 떠오른다.

 분필로 칠판에 신나게 나라와 한자를 적으시며 하나라도 더 재미있게 들려주려고 애쓰시던 그 분의 밝은 표정이 기억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물론 그 분을 모르겠지만 어쩌면 구본형의 책에서 그 분의 표정을 찾아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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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9월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번 8월은 정말 개인적으로도 힘든 나날이었는데

  가을엔 좀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아, 다시 돌아온 신간 추천 시간

  이번엔 또 어떤 작품들이 우리의 눈과 머리를 즐겁게 할까요?

 

 

 

 그동안 신간평가단에서

 단편집은 선정된 적이 한 번도 없었죠.

 그래서 한 번 선택해 봤습니다.

 

 거기다 마이클 클라이튼, 스티븐 킹, 닉 혼비,

 할란 엘리슨, 마이클 무어콕, 엘모어 레너드

 등등...

 

 이건 뭐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만신전과

 같은 단편집이로군요.

 

 언제나 좋아하는 작가들을 만나는 건 즐겁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가지만  우리나라에서 알려지지 않아 조금은 아쉬운  할란 엘리슨의 단편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기쁩니다.

 

 혹시 예전에 KBS에서 방영했던 환상특급을 아시는지요?

 

  거기서 브루스 윌리스가 다이하드로 뜨기 전에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나왔었는데요.

 제목이 'SHATTERDAY'로 여피인 주인공이 너무도 사는 게 한심해서 그의 그림자가  이제 본체를 대신하여 살려고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브루스 윌리스는 거기서 1인  2역을 했구요. 감독은 공포영화의 거장인 웨스 크레이븐 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번째  에피소드로 방영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원래 바로 이 에피소드가 가장 첫번째 방영작이었죠. 여기엔 사실 웨스 크레이븐의 어떤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80년대 미국이 넘쳐나는 돈으로 흥청망청 거리고 여피들이 양산되기 시작할 때, 그러니까 신보수주의의 레이거노믹스의 과실로 영혼들이 욕망으로 비틀거릴 때 정말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거냐고, 그저 물질로만 충족되면 다 끝난거냐고 웨스 크레이븐은 두 영혼으로 쪼개어져 버린 브루스 윌리스를 통해 물었던 것이었죠. 물론 그 브루스 윌리스는 그림자에게 자신의 패배를 선언합니다. 바로 이것이 웨스 크레이븐이 물었던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이었고 그것이 환상특급을 만들게 된 계기였습니다. 미국 자체로는 찾을 수 없는 대안을 경계 저 너머 그러니까 이성의 영역을 넘어선 완전한 타자의 영역에서 찾아오는 것. 그것이 바로 환상특급이 추구하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장엄한 시작의 에피소드를 쓴 사람이 할란 엘리슨이었습니다. 

 

                                         할란 엘리슨의 'SHATTERDAY' 표지 

 

  할란 엘리슨이 'SHATTERDAY'가 잘 보여주듯이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자화상들을 SF적 설정으로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간단히 말해 SF의 카프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실 환상특급중 할란 엘리슨이 쓴 것은 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가이지만 국내에는 정말 번역이 안되더군요. 그런데 비록 단편 하나지만 그의 작품을 이 단편집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는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합니다.

 

 

 다음 추천작도 지극히 개인적인 선호가 기준입니다.

 

 

 

  그 이유를 이 작품의 이름만 봐도

  아실 분은 다 아시지 않을까 싶네요.

  네.

  이 작품을 제가 추천하는 이유는

  제가 이 작품의 원작인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제대로 공포스럽고

  흥미진진한 설정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그런 게임인데 공포소설의 대가

  브라이언 에븐슨이 게임의 프리퀄을

  소설로 만들었다고 하니 어찌 아니

  볼 수가 있겠어요.

  이 책의 소문이야 진작에 들었는데

  드디어 번역판이 나왔네요.

 

 

 

 

                                                               원작인 게임의 표지

                                          소설은 이 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작품도 정말 번역되기를 기다려 왔던 책 입니다.

 

 

 

  로맹 가리의 흰 개.

 

  아마도 이보다 십년 전에 나왔다면

  분명 '마견'으로 나왔을 겁니다.

  미국 인디 영화의 거장

  사무엘 풀러가 이 원작으로 만든 영화가

  마견이라는 어이없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비디오로 출시되었거든요.

 

  아무튼

  유하의 하울링이 나왔을 때 페이퍼로 쓰면서

  로맹 가리의 흰 개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http://blog.aladin.co.kr/748481184/5369501)

 (자세한 얘기는 이걸로 대신합니다. 이른바 재활용^ ^)

 

 그 때만 해도 설마 번역되어 나올까 했었는데

 오! 그런 저의 예상을 깨고 나왔습니다.

 (마음산책에게 고마워요^ ^)

 

  드디어 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네요.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기다리고 있던 작품이 번역되는 일만큼 신나는 일은 또 없겠죠.

  당장 읽으러 갑니다~

 

 

 

                                   1970년 갈리마르에서 나온 초판본의 표지입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작 입니다.

 키에르 케고어의 '죽음의 이르는 병'이란 제목을 차용해서 더 유명해진

 서술트릭의 대표적 작품 '살육에 이르는 병'으로 유명한 아비코 다케마루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본격 미스터리 입니다.

  그것도 영화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의 주된 무대가 되는 것이 바로

  탐정영화 입니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작품이 그러하죠.

  한 감독이 몇몇 배우들과 스텝들로 하여금 투자하게

  하여 본격 미스터리 영화 한 편을 만듭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일어난 트릭과 범인을 알려주지

  않고 영화를 찍다가 홀연히 사라지고 맙니다.

  투자한 돈 때문에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영화를

  완성해야 하는 스텝과 배우들은 감독이 찍어 놓은

  미완성의 영화를 가지고 범인과 트릭을 이리저리 추리합니다.

 

 개인적으로 참으로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무엇보다 영화속의 미스터리 라는 허구가 스텝과 배우들에게 실제 사건으로 되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확히 본격 미스터리를 읽는 우리의 모습을 복제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도 어디를 보아도 완연한 허구의 티가 역력한 본격 미스터리를 읽으면서 그 트릭을 풀기 위해 마치 실제 눈 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인 양 몰입하니까요. 아마도 아비코 다케마루는 그런 식으로 독자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독자 스스로 자신과 닮은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을 보면서 미스터리를 읽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걸 생각하도록 하려고 말이죠...

 어쨌거나 이바코 다케마루의 진심은 작품을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겠죠.

 

  그리고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이 두 편이나 나왔습니다.

 

 

 

    

 

 

 

 

 

 

 

 

 

 

 

 

 

 

 

 

 

  늘 폐쇄된 곳에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10대들의 몸부림을 보여주는 츠지무라 미즈키...

  이번엔 또 어떤 어두운 십대들은 날카로운 통증을 보여줄런지 기대가 되네요.

 

 

 끝으로,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해버린 신간 추천...

 

 

 

 

 

 

 

 

 

 

 

 

 

 

 

 

 

  뭐,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달리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과연 어떻길래 이토록 유명한건지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휴우~

 이번의 신간 추천은 여기까지입니다.

 개인적으로 기다렸던 작가,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던 신간 추천이었습니다.

 다음엔 또 어떤 일들이 뒤로 선물을 감춘 채 다가올지 궁금해지네요.

 그럼, 다음에 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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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9-0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재밌겠어요.
살육에 이르는 병은 엄마한테 사달라고 졸랐다가 퇴짜맞았어요.
19금 딱지가 붙어도 이상한 내용은 없다고 계속 졸랐건만 엄마는 넘어올 듯 하면서 안 넘어 왔네요. 어떻게 구할 수도 없고 반 포기 상태입니다.
로맹 가리의 흰개는 읽어보고 싶어서 장바구니에는 담아 두었어요. 물론 안 그래도 쌓인 책더미로 인해 곧 퇴출될 예정이지요.
아~ 피곤하다 ㅠ

오드득 2012-09-08 00:22   좋아요 0 | URL

정말 저도 왜 그 소설이 19금인지 이해가 잘 안가더라구요. 아마도 묘사가 잔인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 정도가 19금까지 될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사실 요즘 왠만한 미국 드라마는 그 이상도 많이 보여주잖아요. 우리나라 케이블 드라마들도 그렇고. 아무튼 어떡해요. 살육에 이르는 병은 정말 서술트릭의 걸작인데... 뒤통수 제대로 맞는 작품인데요...
도서관에서 대출 안 해 줄까요?^ ^

이진 2012-09-09 15:24   좋아요 0 | URL
헤헤
서술트릭은 우타노 쇼고로 충분히 즐기고 있어요.
알라디너 한 분이 저에게 추천해줄만한 책이 아니라 하더군요.
하긴 요새 외국 번역책 절대 읽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번역체가 계속 튀어나와서 말이지요...

오드득 2012-09-09 19:12   좋아요 0 | URL
하하.. 그런가요?^ ^
그런데 우타노 쇼고도 요즘은 작품 성향이 많이 바뀌어서 서술 트릭은 거의 내놓지 않고 있는 것 같던데... 저도 '벗꽃...' 밖에는 못 읽어본 것 같네요. 외국 번역책 읽지 않기로 다짐했다니 어떤 책이 그런 다짐을 하도록 충격을 주었을까요? 괜스레 궁금해지네요^ ^ 저는 번역책을 많이 봐서 그런지 번역체가 마구 튀어나와도 그러려니 해요. 익숙하다보니 무감해진것이겠죠.^ ^

이진 2012-09-10 00: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요새 우타노 쇼고는 약간 추리 입문자를 위한 소설을 쓰고 있는 거 같아요. 번역되는 순서랑 쓰는 순서가 다르긴 해도 요새 번역 되어지는 순서로 치면 말이죠 ㅎㅎ 충격을 받았다기 보다 이제 문창과를 지망하는데 번역체 문장은 독이잖아요. . 헤헤... 번역체가 글에 많이 보인다는 평을 받은 뒤로 충격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