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 - 시스템이 붕괴된 한국 사회의 아찔함을 읽다
이정국.임지선.이경미 지음 / 레디셋고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독일의 철학자 헤겔에 따르면 사람에겐 근본적으로 타인들로 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고 합니다. 헤겔은 심지어 그 욕망을 근본 중의 근본, 즉 가장 주된 욕망으로 보고 사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들은 바로 그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생겨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저마다 내는 목소리들로 넘쳐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쳇말로 목소리 큰 자가 이긴다는 말도 있듯이 정작 우리들에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모든 목소리가 아니라 힘있고 돈있는 자들의 목소리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확성기와도 같은 그들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만 볼륨을 크게 높여주는 언론들까지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에 대한 가까운 예가 하나 있지요. 바로 얼마전에 많은 이들을 화나게 만들었던 전기요금이 바로 그것입니다. 올 여름은 정말 더웠습니다. 낮에도 더웠고 밤에도 더웠습니다. 정말 살인적인 더위였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많은 분들이 이 폭서로 인해 운명을 달리하시기도 했습니다. 사람들 뿐만이 아닙니다. 돼지도 닭도 더위에 죽었습니다. 살인적인 더위일뿐만 아니라 살돈(殺豚), 살계(殺鷄), 살견(殺犬)의 여름이었습니다.(아, 살견은 아니군요. 더위 보다는 사람 손에 더 많이 죽었을테니...) 그런 더위니 많은 이들이 에어컨의 힘을 빌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평소보다 몇 배나 되는 전기요금을 치러야 했습니다. 거기다 정부는 그동안 숱하게 블랙아웃을 경고하며 우리 가정용 전기를 아껴 써라고 으름장을 놓아 자기 에어컨을 켜는데도 어쩐지 조바심을 느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가정용은 전체 전기 사용량에 겨우 10%남짓을 차지할 뿐입니다. 아무리 아껴라고 얘기를 해봐야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죠. 전체 사용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산업용 입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기업 프렌들리를 외치는 이 정부는 변함없는 수출량은 위해서는 여기의 전기를 아껴서는 안되니 가정용이 대신 희생을 치뤄야 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가정용은 겨우 도토리 수준. 아무리 굴러보았자 수박 한 번 구르는 걸 당해내겠습니까. 사실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세계 수준으로 보아도 비싼 편입니다. 하지만 전력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번에도 한전은 가정용을 또 4.6%를 인상했죠. 물론 산업용은 그대로 두고 말이죠. 이건 뭐 경제위기는 다 같이 겪는데 그 희생은 모두 가정용의 등에다 짊어지게 하는군요. 어차피 수출이 잘된다고 해도 낙수효과는 없다는 것이 증명된 마당에 삥 뜯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을 당하면서 어디까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인지 서민들의 가정이 대기업들을 위한 총알받이들인가요.

 

 하지만 올 여름 내내 들려온 목소리는 모두 정부의 목소리 뿐이었습니다. 이 같은 현실을 알리고 전기 요금의 부당함을 알리는 목소리는 우리에게 전혀 들려오지 않았죠. 이번에 맞은 요금 폭탄으로 이제야 누진제에 대한 화난 여론의 목소리가 불붙듯 일어나니까 그제서야 조정 국면에 들어가는 시늉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지 않고 가만있으면 그 누구도 신경써 주지 않습니다. 미국도 그렇죠. 미국에서도 선거를 치를 때 실제 정책으로 만들 공약을 펼치는 대상은 오로지 중산층 뿐입니다. 자신의 한 표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계층을 위해서만 그들의 구미를 돋굴 수 있는 공약을 마련한다는 말이죠.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일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는 엄연히 필터링이 존재합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특히 언론들이죠. 이미 언론인 사명 따위는 화석과 같은 존재가 된지 옛날이라 정경과 유착해도 언론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오로지 그들이 원하는 것만 내보낼 뿐입니다. 영화 '브이 오브 벤데타'에서 처럼 모든 독재국가가 독재자 하나의 목소리만 퍼뜨리듯이 우리의 귀에도 그들의 목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 목소리에 가려진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의 목소리들은 전혀 들려오지 않습니다.  오로지 저 홀로 울려 퍼지는 커다란 목소리는 G20 때 처럼 온갖 장밋빛 전망을 내어놓지만 그 아래 가리워진 목소리들의 주인공들은 60년대에도 겪었고 70년대에도 겪었고 80년대에도 겪었던 그 고통 그대로를 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역사는 오로지 그 목소리들의 주인공에게서만 발전했을 뿐, 가리워진 목소리의 주체들에게 있어서는 역사는 한 번도 나아간 적이 없습니다.

 

  경제위기는 점점 가시화되고 있고 이제 여기저기서 보다 분명한 신호로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의 목소리에만 취해서 몰랐던 현실을, 진실을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작은 목소리들을 우리가 먼저 나서서 찾아 들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012년 한국 언론 인권상 수상작인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는 바로 그 신호에 응답하는 책입니다.

  우리에게 들려오지 않았던, 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우리 이웃들의 작은 목소리를 모아 들려주는 책입니다.

 


 

 

 여기에는 날마다 원치 않아도 웃느라 감정을 착취당하는 감정노동자의 목소리도 있고 어차피 배경으로 선정될거면서 괜한 희망 고문으로 마지막에 가서는 늘 절망만 안게 되는 인턴 사원의 울컥하는 목소리도 있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출산을 장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임신했다는 이유 하나로 차별을 받는 직장맘들의 목소리도 있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학업을 중단하기를 반복하다가 끝내 자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의 목소리도 있고 아직도 연탄을 땔 수 밖에 없어서 날마다 연탄 가스 중독을 두려워하고 살아야 하는 이의 목소리도 있으며 유학와서 개발도상국 출신이란 이유로 차별을 받는 유학생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여기엔 평소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도 있고 잘 알고는 있으나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던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들을 통해 미처 몰랐던 현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무심했던 예전을 탓하며 좀 더 관심을 두리라 결심하게도 됩니다. 하지만 이 책이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 실린 22개의 목소리가 모두 이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 주인공이 되어보았을 목소리라는 사실입니다. 네, 이것은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일 수도 있고 어쩌면 과거에 아니면 장차 다가올지도 모를 그런 목소리 입니다. 내게서 저만치 떨어진 목소리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바로 나 자신의 목소리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몰랐던 현실을 알게 되거나 무심했던 현실에 관심을 가지거나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의 몫이 될지도 모르는 이 모든 상처와 고통을 잉태하고 있는 목소리를 끊어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차원까지 말이죠.  그리고 아마도 그 고민의 끝엔 그것을 위한 우리의 목소리가 하나의 실천으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이 지향하는 것은 이제 우리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상존하고 있는 이 목소리들의 고통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말이죠. 진실은 때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발휘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기 때문이겟죠. 그 자리에 바로 나 자신도 설 수 있음을 말이죠.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는 그런 책입니다. 당신이 잊고 있었던 혹은 잃어버렸던 목소리를 되찾아주는...

  이제 당신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자, 두 팔을 힘껏 벌리고 외치세요.

 

  "HEAR MY V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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