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변화경영사상가라는 구본형(나는 사실 이 분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다른 리뷰를 보니 꽤나 많이 알려진 분이라 다소 놀랐다.)에게 있어 신화란 하나의 접점이다.

 단순히 그리스라는 먼 나라에 존재하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바로 우리 삶과 연결되는 살아있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구본형의 이 책, '신화 읽는 시간'은 카이로스(kairos)적이다.

시간이 단순히 언젠가는 닥쳐올 사멸을 위하여 그저 일직선으로만 움직이는 크로노스의 시간이었다면 구본형의 신화는 그저 해묵은 과거의 허황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더 헤집어 보는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지금 여기의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그래서 물리적으로 객관적인 시간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주관적인 시간의 의미를 더 중시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에서라면 구본형의 신화는 더이상 먼지를 뒤집어 쓴 과거의 유물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신화를 언제나 바로 오늘 우리의 동반자로 초대하기에 오히려 마치 갓잡은 참치의 날뛰는 생생한 푸르름 처럼 선연하게 살아 숨쉬는 존재가 된다.

 

 거기서 구본형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래서 신화 속 아라크네 처럼 오늘의 우리 삶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관련하여 신화에 깃든 의미들을 쉼없이 자아내여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여 우리의 사유가 입을 수 있는 하나의 옷으로 만든다.

 

때로는 여름 날 삼베옷 처럼 왜 이렇게 사는지에 대한 우리 마음의 갑갑증을 시원하게 풀어주고

때로는 겨울 날 두터운 스웨터처럼 한파와도 같은 현실을 이기기 위한 따스한 희망을 전해주는...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은 그런 책이다.

 

 여기서 구본형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한다.

 하나는 너무도 방대해서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그리스 신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한 눈에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파악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문제들과 관련하여 그리스 신화가  그것을 슬기롭게 풀어 갈 어떤 혜안들을 가지고 있는지 수박을 쪼개어 그 빨간 속을 드러내듯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신화의 지식만이 아니라 그 혜안들을 통해서 나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힘까지 얻을 수 있도록...

 

모든 신화는 자신의 과거를 죽이고 새롭게 태어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바로 변화의 정수다. 신화는 모험을 통한 변화의 이야기이다. 나의 신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나의 세계가 없는 평범한 삶에서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세계를 창조해냄으로써 내 안에 신의 세계를 구현해가는 과정이다. 스스로 주도하고 고난과 맞서고 마침내 세상에 자신의 작은 왕국 하나를 건설해나가는 이야기다. 성공과 실패가 하나의 물결처럼 서로를 교환하는 것, 승리와 환희와 패배와 모멸이 온몸을 휩싸는 일에 뛰어드는 것, 모든 신화는 바로 이 무수한 모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나'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을 시작하도록 부추긴다. (p. 15)

 

 이러한 새로이 나를 찾아주는 이야기가 이 '신화 읽는 시간'이라는 판도라 상자에는 모두 29개가 담겨있다. 그 중에는 욕망의 전성시대라고도 일컫는 우리 시대에 있어 그 욕망의 덧없음을 말하는 아프로디테의 이야기도 있으며 분노가 점증하는 이 시대에 있어 그 화를 절제하는 법을 가르켜줄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도 있다. 혐오가 사실은 엄청난 창조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음을 일러주는 피그말리온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 비극을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다이달로스의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구본형은 그저 신화의 이야기만 담지 않는다. 그가 새롭게 발굴해낸 의미가 더욱 설득력을 가지도록 문학과 영화는 물론 예술과 철학까지 동원한다. 혐오에게 간직된 창조 에너지를 보다 설득력있게 하기 위해 그는 니체와 살로메의 이야기를 가져오며 '무사유'가 불러 일으키는 악에 대해서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가져온다.

 

 그렇게 구본형은 그 이야기가 간직한 빛을 조금도 잃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이야기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연결한다.

 그야말로 신화를 접점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학창시절 때, 우리나라 고전문학을 가르치시던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이 분의 수업은 정말 우리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그건 특히 사자성어 때문이었다.

 그 분이 가르치는 사자성어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냥 사자성어 뜻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유래된 역사적 사건을 방대한 역사적 지식으로 참으로 쉽고도 재미나게 설명해주셨기 때문이다. 마치 사자성어가 그냥 네 개의 글자가 아니라 그 한 자, 한 자가 저마다 무궁한 의미로 살아 숨쉬는 하나의 세계를 포함하고 있는 듯 했다.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을 읽으면 그 분이 떠오른다.

 분필로 칠판에 신나게 나라와 한자를 적으시며 하나라도 더 재미있게 들려주려고 애쓰시던 그 분의 밝은 표정이 기억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물론 그 분을 모르겠지만 어쩌면 구본형의 책에서 그 분의 표정을 찾아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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