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이틀이 갔다. 모든 연휴는 허무하다는 알버트 푸홀스 선생의 경구를 부정하기 위해 이틀간을 정리해봤다.
-책 270페이지 읽다(겨우?).
-노빈손 A4 두장 쓰다. 시작을 했으니 절반은 한 것 같다.
-친구 돌잔치 다녀옴(나이 마흔에 첫애 돌잔치라니!).
-대작 한편 포함, 글 9편 썼음.
이틀 잘 보냈네,라고 생각하기엔 약간 부족한 듯싶어 ‘가문의 위기’(이하 위기)를 보러갔다. 빈자리는 거의 없었고, 영화는 재미있었다.
내 생각에 유머 연기를 소화하는 능력은 김정은이 가장 뛰어나고, 김선아가 그 다음이다. 이와 달리 김원희는 유머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인간 자체가 웃기다. 그런 김원희가 주인공을 맡았고, 정준하, 탁재훈, 김수미, ‘안녕 프란체스카’에 나온 여자, 거기에 공형진까지 나오는, 한마디로 웃기려고 작정한 영화였다. 극장 안에는 <가문의 영광(이하 영광)> 때보다 양적, 질적으로 열배는 큰 웃음이 터졌다. 내 옆에 앉은 여자들도 웃겨 죽겠는 듯, 배를 잡고 “어떡해!”를 외쳤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들 영화를 봐놓고, 나와서는 “1편보다 재미없다”고 떠든다는 것. 그러니 주의해야 한다. <영광>이 더 재밌다고 하는 사람은 혼자만 재밌고자 하는 사람이며, 당신의 진정한 벗은 아니다.(참고로 별점 점수도 <영광>은 6.04, <위기>는 7.7이었다).
전편의 인기에 기대려는 마음이 있었다 해도, 이 영화는 <영광>과는 아예 다른 영화다. 스토리의 설정부터 크게 다르고, 표방하는 이데올로기는 물론 주인공도 다 바뀌었다. 그래도 <영광>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은 정준호와 김정은이 처음으로 애틋함을 느꼈던 천체 망원경 씬이 <위기>에도 나온다는 것이고, 김정은이 피아노를 치면서 불렀던 ‘나 항상 그대를’을 공형진이 패러디한다는 거다. 원작의 엄숙함을 조롱하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게 패러디, 슬프게 들렸던 김정은의 노래와는 달리 공형진의 그것은 웃음만 던져줄 뿐이었다. 영화보는 내내 시계를 보면서 “어떡해. 곧 끝나겠네”라고 중얼거려야 하는 재미있는 영화, 비판받을 만한 점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내 연휴 이틀을 용으로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거기다 눈을 그려넣어 줬다.
* 영화에서 맡은 배역-김수미한테 “어머님” 이래가면서 깍듯이 대한다-때문인지 김원희가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도 참 다정하고 참한 여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원희 부부는 아마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