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친구가 소개팅을 하라고 졸랐다. 어쩌면 내가 시켜달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나이 마흔에 다시 대학에 간 친구니, 젊은 여자를 많이 알지 않겠는가? 그렇다 해도 소개팅 운운한 건 순전 빈말이었을 거다. 시간이 갈수록 여자에게 시니컬해지는데, 설마 내가 진심으로 그랬으려고. 하지만 난 오늘 소개팅을 했고, 소주를 마셨다.
그녀를 만난 건 오후 6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6시 10분이었다. 40분을 더 버틸 수 있었던 건 순전 친구에 대한 예의였다. 미모고 아니고를 떠나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여자와 50분을 보낸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라탕은 영 입에 안맞았고, 음악 소리는 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나이가 들면 좋은 점이 시간낭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
나: 몸이 정 안좋으시면 집에 갈래요?
여자: 네. 내일 회사도 가야 하고...
내가 내려야 할 합정역을 지나친 건 7시 반, 그때 내리지 못한 이유는 소개팅을 한다고 기뻐하신 어머님께 실망을 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집에 와있을 남동생의 아들과 놀 기분이 아니었다는 것, 난 신촌에서 내렸고 허전한 마음을 영화로 달래고자 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보면서 <러브 액츄얼리>를 떠올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임창정, 주현, 엄정화, 황정민, 김수로, 그밖에 이름을 알듯말듯한 스타들이 갖가지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니까.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심 불안했다. <러브>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가 거기 나온 여러 인간들의 갈등을 잘 해결할 수 있을까 해서. 그건 기우였고, 난 <러브>보다 훨씬 더한 감동을 이 영화를 통해 얻었다. <러브>에서처럼 억지스러운 건 없었고, 남들만 동참해 줬다면 난 기립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그 흐뭇함은 잠시였다. 영화가 끝난 뒤 난 집에 갈 때 소주를 사들고 갔고, 어머님을 앞에 앉혀놓고 마셨다. 내 허전함의 근원을 알게 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그 근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