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야수와 미녀>를 보았다. 엄청나게 보고 싶다기보다 신민아의 팬으로서 예의는 갖춰야 하겠기에, 그리고 상대역으로 나오는 류승범도 꽤 괜찮은 배우니까. 시각장애인이었던 신민아에게 자기가 잘생겼다고 거짓말을 해온 류승범이 그녀가 막상 눈을 뜨니까 못생긴 얼굴 때문에 섣불리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는 게 영화의 스토리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보면서 웃으라는 건데, 못생긴 얼굴 때문에 무지하게 수모를 겪어온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편히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펜팔을 싫어했던 것도, 그리고 채팅에 별반 관심이 없던 이유도 지금 생각해보니 막상 만났을 때 상대가 내 얼굴을 보고 실망할까봐 그런 거였던 것 같다. 이젠 면역이 되어서인지 얼굴 때문에 자학을 하거나 그러진 않지만, “너는 결코 못생긴 게 아니야.”같은 말을 들으면 어릴 적 상처가 덧나는 느낌이다. 그보다는 “넌 못생겼지만, 난 그래도 네가 좋다.”는 솔직한 말을 난 더 좋아한다.
영화를 보면서 90년인가에 <시라노>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여인에게 아름다운 편지들을 잔뜩 보내면서, 그녀가 막상 만나자고 하니까 자기 대신 잘생긴 젊은이를 내보냈던 시라노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다룬 그 영화는 <야수>보다 내게 훨씬 더 공감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건 <시라노>가 <야수>보다 더 잘 만들어진 영화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던 십오년 전에는 내가 얼굴 때문에 무지하게 자학을 하고 있어서라는 게 더 큰 이유일 것이다. 하여간 이제는 못생긴 내 얼굴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몸매라도 날씬하게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니 긍정적으로 변화한 거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살은 안빠지고, 이번주에 운동을 게을리했더니 배가 한층 더 나왔다. 노력만 하면 뭐하나. 실적이 없는데. 그래서 나는 어제도 “제발 좀 가방을 내려놓으라.”는 말을 외면한 채 가방으로 배를 가리고 술을 마셨다.
<야수>에 대해 비판을 하려면 할 게 많을거다. 시각장애인의 감각이 남보다 예민한데 류승범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걸 신민아가 몰랐다는 게 말이 안되고, 꼭 예민한 감각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류승범의 정체를 알아내는 건 셜록 홈즈같은 추리력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영화를 선택한 사람들은 그 정도의 오류들은 이미 각오를 했을테고, 나 역시 ‘사운드 어브 뮤직’같은 감동을 기대한 건 아니었으니, 영화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인 신민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개성적인 미모를 갖추고 있는 신민아인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렇다할 대박을 터뜨리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얘기다. 그녀의 미소는 싱그럽기 그지없지만, 그 미소 하나만으로 영화계의 정상에 서는 건 어렵나보다. 귀여움으로 한시대를 풍미한 최진실, 섹시함에서는 당할 자가 없는 하지원, 연기력의 화신 전도연, 당찬 매력의 전지현... 난 신민아가 이국적인 외모로 승부했더라면 하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조성모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처음 봤던 그녀는 영락없는 베트남 처녀였다. ‘화산고’에서의 그녀도 보통 연예인과는 다른 뭔가가 있었고, 내가 그녀의 팬이 된 건 바로 그 영화를 보고나서 부터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구리빛 피부 대신 하얀 얼굴과 정형화된 미모를 가진 연예인이 되어 버렸고, 싱그러운 미소 말고는 별반 보여주는 게 없다. 한 일이년간 연기력을 높이기 위한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으면 어떨까? 아니면 안젤리나 졸리처럼 ‘전사’역을 도맡아하는 액션스타로 성장하던지. 하여간, 신민아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게 내 소박한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