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 석필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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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책을 소설책 처럼 쓸 수 있는자! 이덕일!!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한편의 소설책을 읽고 있는듯하다. 딱딱한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서술하는 그의 탁월한 글재주는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다. 그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고 싶던 차에, 올해 처음으로 도서관 업무를 맡게되었다. 폐기해야할 도서를 골라내던 중에 이덕일의 책을 발견했다.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표지 책날개에 있는 이덕일의 사진은 무척 애떼보였다. 이덕일 초기의 역사관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기에 책을 펼쳐들었다. 


1. 이덕일의 역사관의 변천을 살피다. 

  이덕일이 수많은 책을 썼다. 특히 조선시대를 소재로한 많은 역사책을 썼다. 그가 어떠한 책을 서술할지 그 맹아를 알 수 있는 책이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이다. 이 책에는 윤휴에 대한 언급부터, 송시열, 정조 등등. 이덕일이 이 책을 서술한 이후에 저술하게될 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에 대한 평가가 이미 이책을 쓸때부터 확립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있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사람의 역사관은 바뀌기 마련이다. 이덕일은 이 책에서는 비교적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히 역사를 서술하려 노력했다. 이후 보이는 노론에 대한 맹렬한 비판보다는 소론과 남인에 대한 비판을 같이하면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 노력했다. 


  "실제로 남인들이 서인들과 다른점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당쟁을 파국으로 이끌어간 세력은 이들 남인이었다."-261쪽


  이덕일이 남인을 이렇게 맹렬히 비판하니,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이덕일은 노론의 잔당들이 나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인의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했다. 그리고 윤휴를 비롯한 인물들을 역사 서술의 소재로 사용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다. 그런데, 그의 역사서술 초기에는 남인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덕일의 역사관이 확연히 변한 흥미로운 주제가 있다. 바로 북벌이다. 


"승승장구하는 청나라에 맞서 북벌을 단행하여 망한 명나라를 다시 세워줄 힘이 조선에 있을 수가 없었다. 명나라를 다시 세워줄 힘이 있으면 조선이나 다시 세우는데 써야했다."-236쪽


 이덕일은 '윤휴'에 관한 책을 쓰면서 서인들이 북벌을 하면 나라가 망할 것 처럼 생각한다며 그들을 맹렬히 비판했다. 삼번의 난을 이용해서 조선이 같이 청을 공격한다면 북벌이 성공할 수 있었으리라고 이덕일은 기대를 갖았다. 그런데,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에서는 '명나라를 다시 세워줄 힘이 있으면 조선이나 다시 세우는데 써야'한다며 북벌의 허구성을 맹렬히 지적한다. 사람이 나이를 들면, 보수적이면서 진취성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이덕일은 오히려 진취성이 더욱 강해졌다. 

  북벌에 대한 생각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변천했다면, 혜경궁에 대한 이해는 심화되었다.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롯해서 이덕일의 책에서 '한중록'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혜경궁이 자신의 가문을 복권시키기 위해서 쓴것이 한중록이며, 그녀는 남편보다는 당파를 선택한 냉혹한 여인이라 이덕일은 평가했다. 그런데, '한중록'에 대한 심도있는 사료비판을 찾아볼 수 없어서 이덕일의 주장에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에는 한중록에 대한 명밀한 사료비판이 서술되어 있다. 특히, 정조가 혜경궁의 집안을 멸문지화 시킬수밖에 없는 이유와 홍봉한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음에도 혜경궁이 한중록에서 이를 부인한 점을 지적하는 이덕일의 날카로움이 빛났다. 탁월한 이덕일의 사료분석과 그의 혜안에 감탄하며, 한편으로는 남편보다 당파를 선택한 그녀의 냉혹함에 몸서리가 쳐온다. 

  이밖에도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이 책에서는 긍정하고 있으나, 이후의 저술에서는 서인이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로 규정한다. 크고 작은 역사관의 변천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어 읽은 내내 즐거웠다. 


2. 날카로운 이덕일의 역사 논평

  이덕일의 책이 여타 작가와 다른 점은 그의 날카로운 역사 논평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이덕일의 시퍼렇게 날이 서있는 역사 논평을 살펴보자.

  일명 기레기 신문에서 자주 사용하는 양비론을 이덕일은 날카롭게 비판한다.


  "양비론에는 정치 자체를 둘다 나쁜 세력끼리의 싸움으로 격하함으로써 특정한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하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45쪽


 "둘다 나쁘다"라는 정치 혐오를 불러 일으키는 세력은 이 사회를 퇴보시키려는 수구세력이다. 그들은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켜, 대중이 정치에 관심 없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나라를 망쳐도 대중 잠자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쟁 자체가 없으면 이익을 보는 세력"은 누구이겠는가? 바로 수구세력이다. 우리는 현실이 괴로울 수록 옥석을 가리며 정치에 관심을 갖아야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지면, 고통을 당하는 것은 민중이다. 

  안빈낙도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이덕일은 송순의 '명앙정가'를 소개하며 조선시대 양반들의 위선을 매섭게 지적한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니,

  나 한간 달한 간에 청풍한 간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447쪽


  어떠한가? 안빈낙도를 즐기는 조선 선비의 모습이 떠오르는가? 나도 그러했다. 그런데, 이덕일의 설명을 듣고는 조선 시대 양반 사대부의 위선이 떠오르게 되었다. 송순의 분재기를 보면 장녀에게만 노비 41명과 전답 1백 53두락을 주었다. 장녀에게 이정도 주었으니, 8명의 자손들에게 준것 까지 생각하면 송순은 대지주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재산 규모가 "나 한 간달 한 간 청풍 한 간"에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는 읊조림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는 데 있다."-448쪽


  공상적 안빈낙도와 세속적 현실이 송순의 머릿속에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동거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청빈함을 노래하지만, 그들은 세속적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갔다. 조선시대 공상적 안빈낙도를 노래하는 양반들에게서 현실에서도 안빈낙도를 즐기리라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해본다. 이덕일의 혜안에 다시금 감탄한다. 



  오랜만에 이덕일의 책을 읽어 내려갔다. 조선시대 당쟁을 서술한 역사책을 읽어내려가다보면, 오늘의 정치를 나도모르게 떠올린다. 율곡 이이가 수미법을 주장했다. 그런데, 율곡의 학맥을 이었다고 자칭하는 서인들은 대동법 실시를 주장하는 김육을 비난한다. 현실의 이익 앞에서 자신의 학맥에 배치되는 행동을 거리낌 없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집값을 하향 안정화하겠다는 여당 후보의 말을 싫어하며, 집값이 뛰어 올라 부동산투기로 한몫 벌어보려는 우리 이웃의 탐욕이 떠오른다. 영조에게 노론 대신이 양반에게도 포를 걷으면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말을 들으면서, 집값이 올라 부동산 세금이 늘었다며 보수당에 투표하는 동료를 떠올렸다. 가진자가 더 많이 갖기를 바라며, 대의 보다는 사익을 앞세우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붕당정치가 자당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민생도 군주도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파국으로 치달았듯이, 지금 당장 나의 집값을 올리는데 이익을 준다면 매국노에게도 투표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진 어리석은자들이 출현하지는 않을지 진지하게 걱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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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2-04-17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우리안의 식민사관 읽고있는중인데 이덕일 책이야기가 나와서.

음 조선왕독살사건으로 이덕일을 첨접했어서 잘팔리는 글 쓰는 작가인가 하며 긴가민가 그랬던적이 있었거든요. 잘 몰라서. (김진명 책 읽다 뒷통수 맞은기억도 있고해서)
근데 또 생각해보면 작가의 역사책으로 좀더 역사에 관심갖는 계기가 돼서 이후 좀 편하게 생각하고 읽게됐어요.

강나루 2022-04-17 21:01   좋아요 1 | URL
이덕일을 기존 강단사학자들은 유사사학자라면 비판하지요.
저의 입장에서는 이덕일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상당히 공감가는 주장이 많아요. 특히 독립운동사와 조선시대에 관한 주장은 이덕일의 주장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어요.
singri님, 즐거운 독서하세요^^

2022-04-18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나루 2022-04-18 03:58   좋아요 1 | URL
네 이덕일의 모든 주정이 맘에 들 수는 없지요.
좋은 저작들을 골라 봐야죠.
즐거운 한주 보내세요.
 
쟁점 한국사 : 전근대편 쟁점 한국사
한명기 외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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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선생님들이 역사교에게 하는 말이 있다. '역사과목은 한번 교재연구하면 다시 교재연구를 하지 않아도 되니 좋겠다.! 역사가 바뀔리 없으니 말이야'라는 말을 부러운듯 말한다. 그 선생님 주변에는 게으른 역사교사밖에 없던가, 아니면 역사도 바뀐다는 사실을 모르는 우둔한 교사일 것이다. 역사도 바뀐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국사'라는 과목과 현직에 발령받고 가르치기 시작한 '국사'과목,그리고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한국사'과목의 내용이 다르다. 교과서가 바뀌었는데, 교재연구를 하지 않고 수업에 들어가면,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임용고사를 준비할때는 분명,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6천년경 부터 시작되었다고 공부했다. 그런데, 임용을 받고 난 후 받아든 교과서에서는 나의 지식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교육과정이 바뀐 새 교과서에서는 기원전 8천년경으로 변경되어있었다. 신석기 시대의 시작연대는 교과서가 바뀌면서 순식간에 2천년이나 수직상승했다. 쟁점한국사는 바로 그러한 책이었다. 


  송호정 교수의 '우리 고대사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와 강종훈 교수의 '신라의 여왕 출현, 어떻게 가능했나'라는 글의 내용은 이미 오래전서부터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채웅석 박사의 문벌 사회의 빛과 그림자'라는 글은 이번에 새로 바뀐 한국사 교과서를 접해야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보길 추천한다. 새 교과서에서는 고려시대의 지배층을 더 이상 '문벌 귀족'이라 지칭하지 않는다. 고려 사회에 대해서는 '관료제설'과 '귀족제설'이 대립하고 있었다. 한치의 양보도없이 치열하게 서로를 공격하며, 상대방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눈길도 마주치려하지 않는다고 지적던 고려시대사 전공 교수님의 강의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로, 고려시대의 치열한 쟁점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교과서에 '문벌 귀족'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문벌'이라는 단어가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제가 엄존했던 고려시대를 '문벌 귀족' 사회로 보는 것은 분명한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고려시대를 관료제 사회로 보기에는 공음전과 음서제의 힘이 너무도 강력해다. 양극단의 시각을 제거하면 '문벌'이라는 단어가 합리적으로 다가온다. 앞세대의 치열한 논쟁이 사라지고 이제 후학들이 새로운 학설로 새롭게 교과서를 서술했다. 

  이러한 시각은 도현철 박사의 '원 간섭기를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글에서도 묻어난다. 최씨정권이 몽골과 항쟁하기 위해서 강화도로 천도했고, 수전에 약한 몽골군은 강화도 점령을 포기하고 내륙을 휩쓸고 돌아갔다. 라는 서술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도현철은 그것이 허구임을 지적한다. 몽골군은 다국적군이기에 강화도를 점령하려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점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은 강화도로 답사를 갔을 때, 동양사 전공 교수님도 지적했었다. 교수님은 한국사를 공부하는 연구자들의 시각이 너무도 협소하다고 일갈했다. 민족주의적 시각이 강하게 투영되다보니, 우리의 시각에서 역사를 논할 뿐, 몽골의 입장을 고려한 객관적인 연구가 되지 못했다. 도현철은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원 간섭기의 고려왕들은 유난히도 함량미달의 군주가 많았다. 아들과 권력투쟁을 하는가하면, 닥치는데로 성폭행을 하다가 원에 끌려가 비참하게 죽은 왕까지.... 고려의 왕에게 유교를 통해서 군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려고 고려 유학자들은 노력했다. "국가 개조와 유교적 문명사회 건설"이라는 목표 속에서 고려의 유학자들은 몽골지배기를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반면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민족의 자주성이라는 명제 속에서 역사를 바라보면서 원 간섭기를 암흑의 시대로 보았다. 역사를 어느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달리 보인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원간섭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그렇다고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글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았다. 임기환의 '연개소문과 김춘추, 국운을 바꾼 선택'과 이정철의 '조선 정치의 저력, 당쟁과 대동법'이 바로 그러한 글이다. 

  임기환은 '연개소문과 김춘추, 국운을 바꾼 선택'이라는 글에서 연개소문을 비판하고 당태종을 두둔한다. 우선 연개소문을 비판하면서 연개소문이 자주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가 대당강경책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당나라로부터 도교를 받아들이는등 화평정책을 쓴 점을 지적하며, 연개소문이 자주적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없음을 지적한다. 이부분은 읽는 순간, 나는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쿠데타를 일으킨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바로 대외적인 강경책을 실시할 수는 없다. 내부의 체제정비를 끝낸 후에야 비로서 대외적인 강경책을 추진할 수 있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국제정치 속에서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전술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여 상대방을 비판하는 근거로 삼은 임기환의 논리가 너무도 초라해보인다. 

  임기환의 논리는 당태종을 두둔하는 부분에서 최고조의 웃음을 선사한다. 당태종은 스스로를 중원과 막북의 유일한 지배자인 황제 천가한이라고 칭했고, "그는 만백성 위에 중화적법과 질서를 구현하는 자신의 치세에 왕을 죽이고 권력을 독단하는 연개소문 같은 대역죄인이 있음을 용납할 수 없었다."라며 당태종의 입장을 변호한다. 순간, 임기환의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햇갈렸다. 당태종은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형을 죽이고, 아버지를 협박해서 황제자리를 빼앗은 인물이 아닌가! 패륜을 저지른자가 연개소문을 '대역죄인'이라고 말할 자격이있을까? 우리속담에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란다.'라는 말이 있다. 당태종은 '똥묻은 개'가 아닌가! 그런데, 한국의 유명대학 교수인 임기환은 연개소문을 꾸짖고 당태종의 입장을 변호한다. 우리 학계에 국적이 의심스러운자가 있다는 이덕일의 말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정철의 '조선 정치의 저력, 당쟁과 대동법'도 나를 실망시켰다. 이정철은 대동법 시행이 늦어진 이유를 설명하면서,양반 지주의 저항 때문에  대동법 실시가 늦어진 것이 아니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에는 사회적 발언권이 재산과 비례하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당시 공동체의 공공선을 대표하는 이는 지주가 아니라 사림이었다. 대동법 성립의 가장 큰 반대세력 또한 그들이었다."라고 지적한다. 이정철은 양반 지주와 사림이 별개의 존재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다. 그런데, 묻고 싶다. 양반 지주와 사림이 별개인가? 조선시대에 글공부를 하려면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한다. 또한, 중소지주층이 자식을 공부시켜 과거에 합격시키면 그들은 출세하며, 조선후기에 그들은 사림이된다. 양반 지주와 사림은 완전히 동일체가 될수는 없어도, 상당부분이 중첩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이정철은 분리하기 힘든 양반 지주와 사림을 분리해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다.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밀려온다. 

  이번 대선을 떠올려보자. 보수당이 승리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강력한 것은 집값때문이다. 내 주변에 어느 분은 자신은 아무일도 하지 않았는데 집값이 올라 세금을 내야했다며, 여당 후보를 "양아치"라고 말했다. 또 어떤 집없는 사람은 자신도 내집을 마련해서 집값이 올라가길 바라는데, 이재명은 "안정 하향"을 시키겠다고 한다며 그를 싫어했다. 집값이 우상향하기를 바라는 가진자와 가진자의 마음을 가진 못가진자의 합작품이 바로 지금의 대선결과이다. 그렇다. 대동법은 대단한 개혁임에는 틀림없다. 사림의 도덕적인 담론도 그들의 경제적 욕구를 무시하고 말할 수 없다. 조선시대 근엄한 성리학이 자리잡은 시대로 알지만, 엄연히 춘화가 유행했던 사회이다. 근엄함 속에 숨겨진 욕망을 무시하고 역사를 바로 볼 수 없다. 이정철은 이를 놓쳐버렸다.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시 쓰여진다. 쌍둥이 사이에도 세대차를 느끼는 시대이다. 오늘 내가 바라본 역사가 내일도 같으리라 보장할 수 없듯이, 오늘 읽은 '쟁점 한국사-전근대편'이 절대적인 진리일 수 없다. 오늘을 바로 보기 위해서 어제의 역사를 바로보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설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오늘의 역사를 만들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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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2-03-20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중간에 끊겼습니다..

강나루 2022-03-20 21:27   좋아요 0 | URL
중간에 날라가서 다시 썼어요.

singri 2022-03-20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찜하고 오니 리뷰가 있어서 깜짝 놀랐네요. 이런 자세한 설명을 듣는 역사시간. 👍 잘 읽고갑니다.


강나루 2022-03-21 04: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명작으로 읽는 통섭의 한국사 - 명작 밖으로 나온 한국사, 한국사 속으로 들어온 명작
이동연 지음 / 북오션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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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작으로 읽는 통섭의 한국사'!! 책 제목이 참으로 멋있다. 한국사를 명작들과 같이 읽는다는 기획 자체는 참으로 산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상은 크지만 그 이상을 실현할 능력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가이다. 저자 이동연은 풍부한 문학작품을 읽고 이를 한국사에 녹여내려 노력했다. 문학만 공부하는데도 벅찰텐데 역사까지 공부해야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동연의 노력과 시도 자체에 일단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이동연 이상은 높지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 왜 그럴까? 이동연이 빅뱅에서 부터 역사를 서술하면서 '어린왕자'를 먼저 언급했다. "우리가 서로 길든다면, (중략) 가령 4시에 만나기로 했다면 내 가슴은 벌써 3시부터 설레기 시작하리라"-14쪽 라는 문장을 제시한 것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역사를 서술하면서 이렇게 아름답게 서장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이동연의 이러한 시도를 실생활에서 사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명작으로 읽는 통섭의 한국사'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기대는 거기까지 였다. 

  이동연은 '환단고기'에 근거하여 역사를 설명했다. 역사 학계에서 위서로 결론난 책을 근거로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서술하는 자체가 나로서는 불편했다. 저자의 역사에 대한 전문성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책에 서술된 내용 중에서 내가 보지 못한 사료에서 근거해서 서술된 내용이 있겠지만, 혹시 작가의 상상력과 '환단고기'와 같은 조작된 사료를 근거로 주장하는 내용이 있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역사책을 서술하면서 당연히 오류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애교수준으로 믿고 책을 편히 읽어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이동연의 책은 나에게 불신을 안겨주었다. 

 책을 다읽고, 생각에 잠겼다. 이상은 높지만, 이를 실천할 능력이 없는자는 이상을 이루려 도전하는 것이 부적절할까? '논어'에 문지기가 '당신은 누구의 제자요?'라고 묻자, 자로는 '나의 스승은 공자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문지기는 '아! 그 안되는 걸 알면서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말이요.'라고 답했다. 역사에 대한 해박하면서도 정확한 지식을 갖았다고 보기 힘든 이동연이 명작과 한국사를 통섭시키려한 노력은 참으로 놀랍다. 지금은 그 결과물이 초라하다할지라도, 이러한 노력이 쌓인다면 뒤에서 오는 작가에게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동연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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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3-09 1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
환단고기는 정말...

별 한 개가 빤짜거립니다.

강나루 2022-03-09 17:11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도 역사전공이군요^^

mini74 2022-03-09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환단고기를 근거로 하는 책이라니 헉. 강나루님 속상하셨겠어요 ㅠㅠ

강나루 2022-03-09 17:22   좋아요 1 | URL
답답했지요. ㅠㅠ
 
낯선 중세 - 잃어버린 세계, 그 다채로운 풍경을 거닐다
유희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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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도 친근하기에 모르는 경우가 많다. 너무도 가까이 있기에 그 사람을 잘안다고 생각했으나,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양 중세는 우리에게 '그 사람'과 같은 존재이다. 서양 중세하면, 봉건제를 떠올릴뿐, 더 이상의 사실을 알지 못한다. 유희수 교수의 '낯선 중세'를 친근하게 다가오게 했다. 

  제1부 쌍두 마차의 사회에서는 게르만의 대이동에서 부터 프랑크왕조의 성립과 해체, 교권과속권의 제휴와 대립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보통의 서양 중세사 책이라면 여기에서 서술을 마무리할 것이다. 이 책은 기사에서 부터 농노에 이르는 중세 시대를 살았던 주인공들의 삶을 자세히 설명했다. 박제화된 기사와 농노가 아닌, 그들의 살결 냄새가 나는 중세의 역사가 펼쳐졌다. 그들이 먹었던 빵과 고기에서 부터, 그들이 입던 옷, 그들이 믿었던 민간 신앙 부터, 전설과 성에 이르기까지 중세인들의 삶을 그들의 채취가 묻어나도록 실감나게 서술했다. 

  유희수의 '낯선 중세'를 덮는 순간, 낯설었던 중세는 친근하게 다가왔다. 세계사 교과서 수준의 앞은 지식으로 만난 중세와 그들의 땀냄새가 풍겨나는 중세는 너무도 다르게 다가왔다. 서양 중세는 '교회를 떠나서는 태어날 수도, 살아갈 수도, 죽을 수도 없다.'라는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러나, 교회는 시골의 농민의 삶 속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지 못했다. 오히려, 교회는 민간 신앙을 흡수하며 민간신앙과 융합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중세인들이 필요로할 때는 원시 크리스트교에는 없었던 개념을 창조해내기도 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이 만들어 내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연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냈다. 그렇게 중세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고 창조해나갔다. 우리는 박제화된 교과서 속의 중세인과 결별하고, 살결 냄새 가득한 중세인을 만나야한다. 이 책을 통해서....


ps. 관련 사료를 소개한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이 기독교 신도들을 다스리도록 주신 왕의 위엄은 다른 두위엄[동로마 황제와교황]을 능가하며 현명함에서 이들을 압도합니다. 이제 기독교 교회가 의지할 곳은 당신뿐이며, 만인이 구원을 바라는 것은 당신뿐입니다. 죄인을 처벌하고, 헤매는 자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선한 자들을 받들 이는 당신뿐입니다.-65쪽(잉글랜드 출신 측근인 알쿠이누스가 799년 카롤루스에게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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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역사학과 입학해서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질문은, "그럼, 너의 역사관은 무엇이냐?", "너는 너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니?"라는 물음이었다. 역사학도로서,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기 위해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사색하고 토론해야했다. 지배층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말라는 충고를 들으면서도 우리의 역사를 왕과 양반들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는 사료상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러면서도 역사 서술에서 소외된 민중과 사회적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 바라보고자 노력했다. 윌리엄 A. 펠츠의 '유럽 민중사'는 관념적 구호에 그쳤던 민중과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바라보라는 역사관에 실질적 결과물을 제시했다. 제목부터 매력적인 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가 놓쳐버린 민중의 이야기를 파헤쳐보자.

 

민중과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지배층 중심의 역사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역사의 새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와트타일러의 난이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농민반란을 윌리엄 A. 펠츠는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와트타일러의 난'이라는 명칭만 소개되어 있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영국 정부는 페스트로 고통 받는 농민들에게 위로를 해주기는 커녕 '노동자법령'을 통과시켜 농민의 삶을 억압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 페스트 이전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봉건적 노동 지대가 가능하도록 법령을 만들어 봉건 영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거기에다 백년전쟁 비용을 거두기 위해서 인두세법까지 도입했다. 잉글랜드 농민들은 이러한 억압에 대항해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지배층의 회유와 속임수에 걸려 패배한다. 그러나 이러한 패배는 헛되지 않았다. 영국 의회는 임금 인상을 포기했고, 귀족들은 농민에게 과도한 요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잉글랜드 농민 반란은 실패했지만, 역사에서 봉건제를 땅에 묻는 성과를 가져온 것이다. 잉글랜드 농민들이 뿌린 피가 역사의 도도한 물결이 되어,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민중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 단순히 민중들이 일으킨 반란을 공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역사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서 민중의 삶이 달리보인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산업혁명을 서술하며 제임스 와트를 비롯한 수많은 발명가를 소개한다. 이들에 의해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세계를 뒤바꿔 놓는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서술한다. 물론, 아동노동을 비롯한 산업혁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소개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산업혁명이 농촌에서 땅을 빼앗기고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시련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설명이 미약하다. 18~19세기 산업혁명을 일으킨 국가와 20세기 개도국 노동자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함을 선사했다. 부모가 노동현장으로 가기 위해서 방치된 아이에게는 마약 성분이 첨가된 '앳킨스 특허 유아 예방약'이 투여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유아 사망률이 70%까지 치솟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높은 임대료와 낮은 임금 속에서 비참한 삶을 강요받은 노동자와 민중의 삶에 대해서 서술하면서도 기존 세계사책들은 이처럼 참혹한 현실을 순화해서 표현한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만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 역사책에서는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제대로 주었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노동자들이 비참한 생활을 하는 원인에 대해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게으름과 과음을 지적한다. 사회 구조적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전형적인 술책이다. 윌리엄 A. 펠츠는 극단적 노동과 여가시간이 부족한 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술로 해소했다고 지적한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직후의 농촌에서 노름꾼과 술꾼들이 많았던 이유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열심히 일을 해도 산미증식계획과 강제 공출로 생산한 모든 것을 빼앗기는 상황 속에서 농민들의 고통을 달래주는 것은 술과 노름이었다. 광복이 되었지만, 저곡가 정책으로 농촌의 삶은 여전히 어려워졌다. 잘 살아보고 싶었던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갔다. 농촌을 지키려했던 이들은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났다. 결국, 알콜 중독이라는 덧에 빠져 절망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들 중에는 나의 아버지도 있었다. 술을 먹었기에 가난해지기 보다는 혹독한 노동과 비참한 현실이 술꾼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더 적합할 것이다. 아니, 비참한 현실이 술꾼을 만들었고, 술꾼이 현실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설명이 가장 합리적이리라....

 

세계사 교과서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충돌이라고 설명한다. 독점 자본이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제국주의가 출현하고, 더 많은 시장 확보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식민지 확보 경쟁이 발발해서 결국, 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서술이다. 그러나, 세계 대전 이전에 노동자의 성장이 있었다. 19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의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독일만 하더라도 188795천명이던 것이 1890년에는 294천명으로 늘어난다. 세계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에 대한 서술 뿐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서술도 있어야했다.

 

1차 세계 대전의 전개과정을 서술하면서도 참호전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인명살상만을 설명한다. 이 서술에서 놓쳐버린 것이 있다. 이 서술에서는 전선에 끌려간 민중들의 저항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민중은 지배층들이 민족의 영광이라는 명분에 현혹되어 자발적으로 전선에 나간 것으로 서술한다. 물론, 그러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돌격 명령을 내리며 권총으로 위협하는 상관에게 총을 쏜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전선에서도 이러한 항명을 교전중 전사로 보고한 경우가 많았다. 민중은 온순한 노예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위한 충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을 거부한 용기 있는 민중이 있다. 그들을 새롭게 조명할 때 역사는 달리보이기 마련이다.

 

1936년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은 파시즘의 선전장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스포츠 운동이 노동계급 문화운동이있었다는 사실은 세계사 교과서에서 서술되어 있지 않다. 1937년 제3차 노동자 올림피아드가 아트베르펜에서 열렸다. 27천명의 노동자가 17개국에서 참여했다. 우리에게는 베를린 올림픽에 대한 기억만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서구중심의 역사 서술에 대항해서 역사를 균형있게 본다는 명분으로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을 소련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스탈린이 독일 침략에 대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독일과 폴란드 침공을 선택했다는 변명을 그대로 인용한다. 그러나, 윌리엄 A. 펠츠는 독일과 소련의 야합이 프랑스와 독일의 반파시스트전선을 분열시켰으며, 심지어는 무력화 시켰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지적한다. 역사를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이 서구의 반대편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것은 스탈린이 히틀러를 도와 침략전정을 일으킨 죄악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중용이라는 말은 가운데를 뜻하지 않는다. 중용 있는 시각을 갖는 다는 것은 사물을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을 뜻하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역사관의 가운데가 아닌, 정의와 평화의 시각에서 그들의 행위를 평가해야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음을 윌리엄 A. 펠츠는 지적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을 서술하면서 보통의 역사책들은 독일과 소련의 전쟁범죄를 소개하며 그 야만성을 비판한다. 이러한 역사책을 읽는 보통의 사람들은 미군으로 대표되는 연합군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들을 전쟁기간 동안 하지 않았다고 자연스럽게 믿는다. 소련군이 독일 여성을 강간했고, 부다페스트에서만 5만명을 강간한 사실은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이 19만명의 독일 여성을 강간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기에는 굶주린 자녀를 둔 여성을 음식으로 유인해서 성을 착취한 경우는 제외되어 있다. 냉전의 논리로 역사를 바라볼 경우, 미군에 의해서 이뤄진 강간은 조명되지 않는다. 미군의 전쟁 범죄를 알지 못하는 우리들은 세상을 흑백 논리로 바라보게 된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파수꾼이다. 미국은 독재자를 미워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전세계 민중의 편이다.'라는 환상이 깨진지 오래다. 우리는 반공논리 속에서 미국을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세상에서 살았다. 그러나, 미국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보통의 나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윌리엄 A. 펠츠는 미국도 정의 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스페인의 민주화를 도와주기보다는 독재를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스페인의 민주주의란 곧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뜻한다며, (중략) "스페인에 필요한 일이라면 미국이 뭐든 해야한다고 생각한다."-363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보통의 나라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자와도 손을 잡는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 칠레의 쿠데타에 미국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윌리엄 A. 펠츠는 우리가 놓쳐버리거나, 의도적으로 서술하지 않는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물론,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삶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며 역사의 진실을 믿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국왕을 비롯한 지배층들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려한다면,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는 논리를 진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막기 위해서 윌리엄 A. 펠츠는 '유럽 민중사'라는 책을 저술했다. 역사를 약자의 입장에서, 민중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지만, 그러한 이상을 현실화시키지는 못했다. 윌리엄 A. 펠츠의 '유럽 민중사'는 역사를 공부하는 나에게 역사를 어떻게 새롭게 바라보아야하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주었다. 윌리엄 A. 펠츠가 책을 마무리하며 우리에게 당부한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평범한 유럽 노동자나 농민이 지구 위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대부분 그들이 이제껏 싸워온 덕택이다. 오늘날 많은 이가 누리는 우위는 계몽된 지배계급이 안겨준 선물이 아니었다. 모든 개혁,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의 모든 양보는 평범한 유럽인들의 자주적 행동의 결과다. (중략)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393~394

 

오늘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앞선 세대의 희생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핏땀이 없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더 비참한 생활을 할 것이다.

 

 ps. 인상 깊은 사료를 적어 놓는다. 


독일 함대가 적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여서 '황제와 조국'의 영광을 위해 승리하든가 아니면 죽기로 결정했다는 요지의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함대 수병들이 생각하는 '조국의 영광'은 전혀 달랐다. 수병들끼리 만났을 때 경례 구호는 '리프크네히트 만세'였다.(사회 민주당 소속 카를 리프크네히트 의원은 제국의회에서 가장 먼저 홀로 전쟁 예산에 반대표를 던지고 난 뒤 다수 민중 사이에서 반전 저항의 상징이 됐다.) -독일 대양함대에 복무한 한 수병의 회고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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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8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리뷰 보며 항상 배웁니다. 당선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투표 꼭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3-08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 꼭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이하라 2022-03-08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물감 2022-03-08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리뷰당선 축하합니다~!

강나루 2022-03-09 09:02   좋아요 2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 꾹~~ 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bookholic 2022-03-08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대선일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09:02   좋아요 1 | URL
bookholic님, 감사합니다.

저는 사전 투표했어요. bookholic님 투표 안하셨다면, 투표하시고, 행복한 대선일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3-09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17: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투표 결과 나오길 기도합니다.

러블리땡 2022-03-10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2-03-10 02: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cott 2022-03-10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 합니다!
나루님 리뷰 자주 읽고 싶습니다 ^ㅅ^

2022-03-11 0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