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 석필 / 1997년 6월
평점 :
품절


  역사책을 소설책 처럼 쓸 수 있는자! 이덕일!!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한편의 소설책을 읽고 있는듯하다. 딱딱한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서술하는 그의 탁월한 글재주는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다. 그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고 싶던 차에, 올해 처음으로 도서관 업무를 맡게되었다. 폐기해야할 도서를 골라내던 중에 이덕일의 책을 발견했다.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표지 책날개에 있는 이덕일의 사진은 무척 애떼보였다. 이덕일 초기의 역사관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기에 책을 펼쳐들었다. 


1. 이덕일의 역사관의 변천을 살피다. 

  이덕일이 수많은 책을 썼다. 특히 조선시대를 소재로한 많은 역사책을 썼다. 그가 어떠한 책을 서술할지 그 맹아를 알 수 있는 책이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이다. 이 책에는 윤휴에 대한 언급부터, 송시열, 정조 등등. 이덕일이 이 책을 서술한 이후에 저술하게될 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에 대한 평가가 이미 이책을 쓸때부터 확립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있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사람의 역사관은 바뀌기 마련이다. 이덕일은 이 책에서는 비교적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히 역사를 서술하려 노력했다. 이후 보이는 노론에 대한 맹렬한 비판보다는 소론과 남인에 대한 비판을 같이하면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 노력했다. 


  "실제로 남인들이 서인들과 다른점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당쟁을 파국으로 이끌어간 세력은 이들 남인이었다."-261쪽


  이덕일이 남인을 이렇게 맹렬히 비판하니,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이덕일은 노론의 잔당들이 나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인의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했다. 그리고 윤휴를 비롯한 인물들을 역사 서술의 소재로 사용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다. 그런데, 그의 역사서술 초기에는 남인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덕일의 역사관이 확연히 변한 흥미로운 주제가 있다. 바로 북벌이다. 


"승승장구하는 청나라에 맞서 북벌을 단행하여 망한 명나라를 다시 세워줄 힘이 조선에 있을 수가 없었다. 명나라를 다시 세워줄 힘이 있으면 조선이나 다시 세우는데 써야했다."-236쪽


 이덕일은 '윤휴'에 관한 책을 쓰면서 서인들이 북벌을 하면 나라가 망할 것 처럼 생각한다며 그들을 맹렬히 비판했다. 삼번의 난을 이용해서 조선이 같이 청을 공격한다면 북벌이 성공할 수 있었으리라고 이덕일은 기대를 갖았다. 그런데,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에서는 '명나라를 다시 세워줄 힘이 있으면 조선이나 다시 세우는데 써야'한다며 북벌의 허구성을 맹렬히 지적한다. 사람이 나이를 들면, 보수적이면서 진취성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이덕일은 오히려 진취성이 더욱 강해졌다. 

  북벌에 대한 생각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변천했다면, 혜경궁에 대한 이해는 심화되었다.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롯해서 이덕일의 책에서 '한중록'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혜경궁이 자신의 가문을 복권시키기 위해서 쓴것이 한중록이며, 그녀는 남편보다는 당파를 선택한 냉혹한 여인이라 이덕일은 평가했다. 그런데, '한중록'에 대한 심도있는 사료비판을 찾아볼 수 없어서 이덕일의 주장에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에는 한중록에 대한 명밀한 사료비판이 서술되어 있다. 특히, 정조가 혜경궁의 집안을 멸문지화 시킬수밖에 없는 이유와 홍봉한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음에도 혜경궁이 한중록에서 이를 부인한 점을 지적하는 이덕일의 날카로움이 빛났다. 탁월한 이덕일의 사료분석과 그의 혜안에 감탄하며, 한편으로는 남편보다 당파를 선택한 그녀의 냉혹함에 몸서리가 쳐온다. 

  이밖에도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이 책에서는 긍정하고 있으나, 이후의 저술에서는 서인이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로 규정한다. 크고 작은 역사관의 변천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어 읽은 내내 즐거웠다. 


2. 날카로운 이덕일의 역사 논평

  이덕일의 책이 여타 작가와 다른 점은 그의 날카로운 역사 논평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이덕일의 시퍼렇게 날이 서있는 역사 논평을 살펴보자.

  일명 기레기 신문에서 자주 사용하는 양비론을 이덕일은 날카롭게 비판한다.


  "양비론에는 정치 자체를 둘다 나쁜 세력끼리의 싸움으로 격하함으로써 특정한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하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45쪽


 "둘다 나쁘다"라는 정치 혐오를 불러 일으키는 세력은 이 사회를 퇴보시키려는 수구세력이다. 그들은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켜, 대중이 정치에 관심 없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나라를 망쳐도 대중 잠자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쟁 자체가 없으면 이익을 보는 세력"은 누구이겠는가? 바로 수구세력이다. 우리는 현실이 괴로울 수록 옥석을 가리며 정치에 관심을 갖아야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지면, 고통을 당하는 것은 민중이다. 

  안빈낙도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이덕일은 송순의 '명앙정가'를 소개하며 조선시대 양반들의 위선을 매섭게 지적한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니,

  나 한간 달한 간에 청풍한 간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447쪽


  어떠한가? 안빈낙도를 즐기는 조선 선비의 모습이 떠오르는가? 나도 그러했다. 그런데, 이덕일의 설명을 듣고는 조선 시대 양반 사대부의 위선이 떠오르게 되었다. 송순의 분재기를 보면 장녀에게만 노비 41명과 전답 1백 53두락을 주었다. 장녀에게 이정도 주었으니, 8명의 자손들에게 준것 까지 생각하면 송순은 대지주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재산 규모가 "나 한 간달 한 간 청풍 한 간"에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는 읊조림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는 데 있다."-448쪽


  공상적 안빈낙도와 세속적 현실이 송순의 머릿속에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동거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청빈함을 노래하지만, 그들은 세속적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갔다. 조선시대 공상적 안빈낙도를 노래하는 양반들에게서 현실에서도 안빈낙도를 즐기리라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해본다. 이덕일의 혜안에 다시금 감탄한다. 



  오랜만에 이덕일의 책을 읽어 내려갔다. 조선시대 당쟁을 서술한 역사책을 읽어내려가다보면, 오늘의 정치를 나도모르게 떠올린다. 율곡 이이가 수미법을 주장했다. 그런데, 율곡의 학맥을 이었다고 자칭하는 서인들은 대동법 실시를 주장하는 김육을 비난한다. 현실의 이익 앞에서 자신의 학맥에 배치되는 행동을 거리낌 없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집값을 하향 안정화하겠다는 여당 후보의 말을 싫어하며, 집값이 뛰어 올라 부동산투기로 한몫 벌어보려는 우리 이웃의 탐욕이 떠오른다. 영조에게 노론 대신이 양반에게도 포를 걷으면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말을 들으면서, 집값이 올라 부동산 세금이 늘었다며 보수당에 투표하는 동료를 떠올렸다. 가진자가 더 많이 갖기를 바라며, 대의 보다는 사익을 앞세우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붕당정치가 자당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민생도 군주도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파국으로 치달았듯이, 지금 당장 나의 집값을 올리는데 이익을 준다면 매국노에게도 투표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진 어리석은자들이 출현하지는 않을지 진지하게 걱정을 해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ingri 2022-04-17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우리안의 식민사관 읽고있는중인데 이덕일 책이야기가 나와서.

음 조선왕독살사건으로 이덕일을 첨접했어서 잘팔리는 글 쓰는 작가인가 하며 긴가민가 그랬던적이 있었거든요. 잘 몰라서. (김진명 책 읽다 뒷통수 맞은기억도 있고해서)
근데 또 생각해보면 작가의 역사책으로 좀더 역사에 관심갖는 계기가 돼서 이후 좀 편하게 생각하고 읽게됐어요.

강나루 2022-04-17 21:01   좋아요 1 | URL
이덕일을 기존 강단사학자들은 유사사학자라면 비판하지요.
저의 입장에서는 이덕일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상당히 공감가는 주장이 많아요. 특히 독립운동사와 조선시대에 관한 주장은 이덕일의 주장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어요.
singri님, 즐거운 독서하세요^^

2022-04-18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나루 2022-04-18 03:58   좋아요 1 | URL
네 이덕일의 모든 주정이 맘에 들 수는 없지요.
좋은 저작들을 골라 봐야죠.
즐거운 한주 보내세요.